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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속] - 비녀
2020년 03월 21일 23시 04분  조회:4822  추천:0  작성자: 죽림
비녀

흑각석류비녀: 길이 14.5㎝, 나무. 도금니사죽잠: 길이 17.5㎝, 대나무. 산호매화비녀: 길이 18.5㎝, 산호. 옥초롱비녀: 길이 29㎝, 옥과 나무. 도금용비녀: 길이 37㎝, 은과 도금. 단국대학교석주선기념민속박물관 소장.

유형 물품
성격 장신구
용도 장식용

목차

  1. 정의
  2. 내용

정의

부녀자가 쪽을 진 머리가 풀어지지 않게 하기 위하여 꽂거나, 관()이나 가체를 머리에 고정시키기 위하여 꽂는 장식품.

내용

이를 표현하는 한자어로 잠()·계()·차()가 있다.

≪증보문헌비고≫에는 단군이 나라 사람들에게 머리털을 땋고 머리를 가리는 법을 가르쳤다고 한다. 이와 같이 머리털을 정리하게 되면서 머리를 고정시키기 위한 비녀도 발달하게 되었을 것이다.

삼국시대에 이르러서는 성인이 되면 남자는 대개 상투였으며, 여자는 얹은머리·쪽찐머리를 비롯하여 여러 가지 머리모양을 하였다. 따라서 정리한 머리가 풀어지지 않게 하기 위하여 비녀의 사용이 더욱 많아졌을 것이다. 부여에서 발견된 백제의 은비녀는 한 끝이 고리모양으로 구부러져 있어 당시 비녀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신라에서는 진골녀()는 장식비녀[]에 글씨나 그림을 새기거나[], 구슬을 다는[]것을 금하였다. 육두품녀()는 순금 사용을 금하고 은에 누각하거나 철주하는 것을 금하였다. 오두품녀는 백은을 사용하게 하였고, 사두품녀에게도 누각·철주와 순금 사용을 금하였다.

그리고 평인녀()에게는 놋쇠[]를 사용하게 하였다는 내용이 ≪삼국사기≫ 신라 흥덕왕 복식금제에 나오고 있다. 이것으로 미루어보아 그 당시 비녀가 다양하게 발달하였음을 알 수 있다. 부녀자의 머리모양은 고대 이후 고려시대까지 별다름이 없어 고려의 여인들도 머리에 작은 비녀를 꽂았다.

조선 중기에는 가체에 의한 얹은머리가 유행하였다. 얹은머리(둘러머리)는 본머리[]와 다리를 합쳐 땋아서 위로 둥글게 둘러 얹은머리모양이다. 다리를 본체에 고정시키는 데 비녀가 사용되었다.

궁중 의식용인 큰머리[, 일명 떠구지머리]·대수(), 궁중 및 양반 집안의 예장용인 어여머리[]등에도 비녀를 사용하여 가체를 고정시켰다. 얹은머리는 이에 소요되는 다리의 값이 너무 고가였고 장식을 위한 금옥주패()의 사치가 날로 심해졌다.

또 그에 따른 폐단이 많게 되자, 영조·정조 때의 발제개혁()과 더불어 이에 대한 금령이 여러 차례 있었다. 순조 중엽에 와서는 얹은머리 대신 쪽찐머리가 일반화되면서 다양하게 발전되었다. 쪽머리는, 대개는 머리를 땋아 아래 뒤통수에서 둥글게 서리고 쪽이 풀어지지 않게 비녀를 꽂았다.

얹은머리의 가체에 치중하였던 사치가 점차 비녀로 옮겨지면서 그 종류가 다양해졌고 기교도 발달하여 당시의 공예미술을 대표하는 것의 하나가 되었다. 이 밖에 비녀는 관을 고정시키기 위하여 사용되었다.

남자의 경우에는 면류관에 꽂는 옥잠도() 또는 금잠도(), 조신()의 양관()에 꽂는 각잠(, 일명 ) 등이 있었다. 여자의 경우에는 화관에 비녀를 꽂아서 관을 고정시켰다.

부녀자의 수발용 비녀는 그 재료와 잠두()의 수식에 따라 명칭이 달랐다. 재료에 따라 금비녀·은비녀·백동비녀·놋비녀·진주비녀·영락비녀·옥비녀·비취비녀·산호비녀·목비녀·죽비녀·각비녀·골비녀 등으로 나누어진다.

잠두의 수식에 따라서는 봉잠()·용잠()·원앙잠()·조두잠()·어두잠()·매죽잠()·매조잠()·죽잠()·죽절잠()·목련잠()·모란잠()·석류잠()·가란잠()·국화잠()·화엽잠()·초롱잠()·호도잠()·심잠()·두잠()·완두잠()·민잠()·말뚝잠·조리잠·연봉잠 등으로 구분된다.

이미 흥덕왕 복식금제에서도 그 일단을 보았듯이 계급사회에서는 존비·귀천·상하의 차별이 심하였으므로 금은·주옥 등 귀중한 재료로 만든 비녀는 상류계급에서 사용하였다. 서민계급의 부녀자는 나무[]·뿔[]·뼈[] 등으로 만든 비녀를 사용하였다. 또한 잠두의 수식에 있어서도 크게 차이가 있었다.

잠두의 수식은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그 형태가 대부분 길상적()인 것으로 부귀·장수·다남()을 기원하는 것들이다. 그 중에서 봉잠·용잠은 왕비나 세자빈이 예장할 때 다리를 드린 큰 낭자쪽에 꽂았다.

일반 부녀자는 혼례 때에 봉잠을 사용하였다. 그밖에 일종의 보조비녀로 두 가닥으로 된 차가 있다. 이것은 가체 또는 족두리·떠구지 등을 머리에 고정시키기 위하여 보이지 않게 꽂았던 것으로 은으로 만들었다.

비녀는 재료와 잠두의 수식에 따라 예장 때와 평상시에 사용하는 것이 달랐다. 또 젊은 사람과 나이든 사람, 계절에 따라서도 그 사용을 달리하였다.

이를 헌종의 후궁 경빈 김씨()의 ≪사절복색자장요람 ≫에서 보면, “비녀도 계절에 맞추어 직금당의()에는 봉잠이나 옥모란잠을 꽂는다. 평시 문안에는 10월 초하루부터 용잠, 2월에는 모란잠, 4·8·9월에는 매죽잠이나 옥모란잠을 꽂는다. 원삼에 큰머리를 할 때는 칠보수식을 하고, 금박당의에는 옥봉잠·원앙잠 또는 이사련잠()을 꽂는다. 옥칠보가 무거울 때에는 금칠보를 하여도 좋으나, 원칙적으로는 젊어서는 옥칠보를 하는 것이 좋고 노년에는 금칠보를 사용하는 것이 좋다. 조짐머리에는 10월부터 정월까지 도금용잠을 꽂고, 2월에는 옥모란잠을 꽂는 것이 좋으나, 조심스러울 때에는 은모란잠을 꽂아도 좋다. 옥모란잠은 호사할 때 꽂으면 더욱 좋다. 5월에 백광사당의()를 입을 때는 민옥잠()이나 용잠에 떨잠을 꽂는다. 봄과 가을에는 모란잠·매죽잠을 꽂고 그 위에 이사떨잠을 꽂아 수식한다”고 하였다.

이것은 경빈 김씨 개인이 궁중에서 사용하던 한 예이기는 하나, 일반 상류사회에서도 이와 비슷하였을 것이다. 지난날 비녀는 수식물로서 뿐만 아니라 후손에게 물려주는 가보로도 귀중히 여겨졌다.

참고문헌

  • 『석명(釋名)』
  • 『고려도경』
  • 『한국복식사연구』(유희경,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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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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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락봉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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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녀

비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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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네이버 지식백과]비녀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우리 전통 사회에서 혼인한 여인은 치렁치렁한 머리를 곱게 빗어 둥글게 쪽찌었다. 다듬어 틀어 올린 머리를 풀어지지 않게 고정하고 더불어 훌륭한 장신구 역할을 한 것이 비녀이다. 이러한 비녀에는 꽂는 이의 넋을 모으는 마력이 있다고 생각했고, 내면세계를 반영하는 화장 기구로 여겼다. 그래서 여성이 비녀를 잃거나 빼면 정절이나 긍지를 잃음을 상징했다.

비녀

비녀여인이 머리를 틀어 올려 장식할 때 꽂은 것으로 잠두의 모양에 따라 봉잠, 용잠, 모란잠, 국화잠 등으로 불렀다.

함경도 지역에서 구전되는 승천 신화 ‘치원대 양산복’에서는 비녀가 사랑하는 두 사람을 만나게 하는 매개물로 등장한다.

어느 마을에 치원대와 양산복 두 아이가 한날한시에 태어났다. 여자인 치원대는 부모에 의해 남자 옷을 입고 남자처럼 자라났다. 둘이는 한방에서 같이 공부를 하며 지냈는데, 치원대가 여자임을 안 양산복은 상사병에 걸려 죽었다. 그는 “치원대가 시집가는 길목에 묻고 봉분을 만들어 달라.”라고 유언했다. 시집가는 날, 치원대는 양산복 무덤을 지나다가 오줌을 누겠다며 가마에서 내려 양산복의 무덤으로 가서 금채봉 비녀를 뽑아 무덤 한복판을 내리쳤다. 그러자 무덤이 둘로 갈라지고, 그 순간 치원대는 무덤 속으로 뛰어들어 갔다. 치원대를 삼킨 무덤은 신랑의 손에 치원대의 찢긴 치맛자락만 남긴 채 닫혀 버렸다. 얼마 안 되어 무덤에서 찬란한 쌍무지개가 솟고 두 남녀는 무지개를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 이처럼 비녀는 이승에서 이루지 못한 사랑을 저승에서 이루도록 하는 역할도 하였다.

비녀 본문 이미지 1

제게 있는 이 하나의 금비녀
이것은 시집올 때 찌른 것이네
이제 떠나는 당신에게 드리오니
천리 멀리서도 늘 생각하시라

허난설헌의 「효최국보체()」이다. 비녀는 임과의 정표를 상징했다. 외형상 비녀는 남근을 상징하며, 비녀는 남자를 경험한 여자, 즉 기혼녀만이 꽂을 자격이 있었다. 다만 단옷날에 한해서 처녀도 비녀를 찌를 수 있었고, 부인은 새 비녀를 꽂았다. 단옷날 아침에 창포 뿌리를 깎아 비녀를 만들고, 여기에 붉은 글씨로 수()자와 복()자를 새겨 양끝에 연지를 발라 머리에 꽂았다. 유만공의 『세시풍요』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단오 옷은 젊은 남자에게 잘 맞으니
가는 모시베로 만든 홑치마에 잇빛이 선명하네
꽃다운 나무 아래에서 그네를 다 파하고
창포 뿌리 비녀 떨어지니, 작은 머리털이 비녀에 두루 있다

단옷날의 비녀는 삿된 것과 액을 물리치기 위한 것으로, 작은 머리털이 떨어진 비녀에 두루 있는 것은 재액이 모두 떨어졌음을 상징한다. 또 나무를 깎아 끝이 뾰족하게 하여 비녀로 삼아 머리에 꽂고 다녔는데, 마치 싹이 돋아나는 모습처럼 윗부분 양쪽에 창포잎을 붙였다. 비녀와 창포 잎은 머리를 장식하고 봄의 소생이 가져다주는 희망의 표지 역할을 겸했다.

무속에서는 비녀를 서낭신으로 신봉한 곳이 많은데, 삼척 지방에서는 비녀를 신격화하여 오금잠제()를 지냈다. 무당은 비녀 신을 통해 마을의 풍년과 풍어, 가정의 안녕을 빌어 주었다. 비녀는 벼슬이나 출세를 상징하기도 했다. 비녀와 갓끈을 가리키는 잠영()이라는 말은 흔히 벼슬이 높은 사람을 뜻하고, 관에 꽂는 비녀와 손에 쥐는 홀을 뜻하는 잠홀()은 예복을 입은 벼슬아치인 고관을 상징했다.

신분에 따라 비녀 사용에도 차별이 있었다. 신라 흥덕왕 때에는 비녀 사용을 제한하는 금제가 발표되었는데, 진골 여자는 비녀에 각루() 및 철주()하는 것을 금했고, 6두품 여자는 순금 비녀와 은각루 및 철주를 금했다. 5두품 여자는 백은 이하를 쓰고, 4두품 여자는 각루, 철주 및 순금 비녀를 금했다. 평민 여자는 유석() 이하를 사용하게 했다. 또 조선 시대에 봉황잠은 왕세자비, 용잠은 왕비만 꽂았다. 사대부가에는 혼례식 등 각종 의식에만 용잠이 허락되었으며, 서민에게는 혼례 때에만 용잠이 허락되었다. 재료도 차별되어 금, 은, 옥으로 된 비녀는 상류층 여인을 상징하였다. 그리고 버드나무를 깎아 만든 백목 비녀는 남편을 여읜 여인이 소상 때까지 쓰고, 흑목 비녀는 소상 때부터 대상 때까지 쓰는 미망인의 상징이었다.

비녀의 명칭은 잠두()의 모양에 따라 달랐는데 봉황잠, 용잠, 원앙잠, 매죽잠, 모란잠, 석류잠, 국화잠 등이 있다. 이 같은 잠두의 장식은 대부분 길상을 상징하는 것으로서 특히 부귀와 다남, 장수의 기원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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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녀

비녀흑각석류비녀: 길이 14.5㎝, 나무. 도금니사죽잠: 길이 17.5㎝, 대나무. 산호매화비녀: 길이 18.5㎝, 산호. 옥초롱비녀: 길이 29㎝, 옥과 나무. 도금용비녀: 길이 37㎝, 은과 도금. 단국대학교석주선기념민속박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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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네이버 지식백과]비녀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규방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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