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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광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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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우긋한 사랑
2013년 12월 27일 15시 31분  조회:615  추천:0  작성자: 리광학

키(簸箕)는 강변이나 습한 버들방천에서 곁다리가 없이 쭉 빠지고 알쭌한 버들가지들만 골라 파란 껍질을 바르고 튼다. 키의 결은 앞은 넓고 평평하고 뒤는 좁고 우긋하게 생긴 농구이다.

키는 지나온 농경사회에서 농사군들이 즐겨 썼던 전통농구중의 하나였다. 키는 일년동안 땀을 흘리며 수확한 농작물을 모으고 담는 작업과 곡식따위를 까불러 쭉정이나 티끌을 걸러내는 일에 제격이였다. 농사일에 한족들은 광주리(框子)를 즐겨 사용했고 우리 민족은 키를 즐겨 사용했었다.

키는 이렇듯 농군들에게 자못 중요했지만 집집이 다 갖추고 사는것은 아니였다. 서로 빌려쓰고 빌려주며 농가의 소통과 인맥을 돈독히 했다.

키는 농사일외에 또 다른 일에도 사용했다. 지난 세월, 우리 마을에서는 미신을 믿어 그랬는지 아니면 아이한테 자극이나 벌을 주려고 그랬는지 어느 집 애가 오줌을 가릴 나이가 되였지만 밤에 하얀 이불에 보기 싫게《지도》를 그리면 부모들은 애의 볼기짝을 가볍게 때리고는 키를 머리에 씌워 동네집으로 소금 빌러 다니게 했다.

농사군인 아버지는 키를 무척 아끼고 사랑했다. 새 키를 사면 키를 사용하기전에 꼭 키의 웃모서리를 두꺼운 천쪼박이나 혹은 가죽으로 감싸고 마대를 깁는 코바늘에 삼으로 꼰 가느다란 실을 꿰여 한뜸한뜸 꿰맸다. 아버지의 터실터실한 손이 닿은 정성이 슴배여서인지 우리 집에서 사용했던 키들은 앞부분이 닳아떨어질 때까지 사용했다.

키는 어머니가 주로 사용했다.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지금도 키를 떠올리면 약소한 체구에 하얀 수건을 머리에 두르고 마당에 쪼그리고 앉아 이것저것 키에 담아 부지런히 키질하며 다듬어내던 어머니의 그 아련한 모습이 잔잔히 안겨온다. 모든게 부족하고 귀하여 가증스러웠던 지난 세월이였기에 어머니의 손을 거치지 않은 일이란 거의 없었고 또 그 고달픔속에서 어머니는 키에 무엇이든 담고 키질하며 다듬는 일솜씨를 잘 익혀왔었다.

어머니의 키질하는 능숙한 솜씨는 가히 수준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였다. 아무리 어지러운 곡식도 어머니가 키를 두손에 잡고 아래우로 절주 있게 흔들면 휙휙 바람소리와 더불어 묘하게도 잡것은 키의 앞부분의 넓은 곳으로 대부분 슬슬 밀려나가고 영근 낟알은 뒤부분의 우긋한 곳으로 곰실곰실 신나게 밀려들었다.

어느해인가 어머니는 논에서 다 여문 돌피이삭을 모았는데 마대에 차고넘쳤다. 어머니는 그것을 가마에 넣어 푹 쪄낸후 마당에 널어놓고 싸리꼬챙이로 돌피이삭을 톡톡 치니 용케도 줄기에서 돌피알들만 똑똑 떨어졌다. 돌피알들을 해볕에 며칠 잘 말리우니 제법 한주머니의 《겉곡식》이 되였다. 하지만 어머니는 적은 수량이라 서뿔리 정미소에 갈수 없어 한나절이나 절구에 찧고 키에 담아 부지런히 까불러 겉겨를 버리고 우긋한 곳으로 밀려온 먹음직하고 알쭌한 돌피쌀만 골라냈다. 그해 우리 형제들은 돌피쌀로 배고픔을 달래며 어려운 고비를 넘길수 있었다.

어쩜 어머니는 한생을 키를 잡고 삶을 터득하신것 같다. 지지리 가난하고 힘든 세월임에도 늘 지나친 욕심과 자질구레한 근심걱정들을 훌훌 키질하여 털어버리고 우긋한 곳으로 느릿느릿 밀려오는 주어진 삶에 만족하시며 불평 없이 평범하게 한생을 보내셨다.

헌데 세월이 흐르며 어머니 삶의 로련한 키질에도 털어버릴수 없는것이 있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바로 자식들에 대한 근심걱정이였다. 내 나이 지천명을 넘겼지만 매양 날이 어두워지면 하염없이 창문밖을 내다보시며 근심어린 얼굴로 퇴근하는 아들을 기다리셨다. 근심할 필요가 없다고 늘 말했지만 들을념도 안했다. 어머니의 년세면 이젠 마음속의 잡다한 물건들을 키질하여 쓱쓱 날려버리고 편안한 삶을 즐길 때인데 말이다. 그때는 도무지 리해되지 않아 내가 늙으면 절대 어머니처럼 자식들에 대해 근심걱정하지 않으리라 속다짐을 했었다.

세월이 흘러 어머니는 근심걱정을 다 버리시고 하늘나라에 가시고 이제 내 자식들도 커서 사회인으로 되였다. 품안에서 나가고 눈에서 멀어져 시간이 흐름에 따라 속절없이 자식들에 대한 근심걱정이 끊임없이 밀려오는것은 웬 일일가? 곁에 둔 자식은 곁에 둔 리유때문에, 멀리 가있는 자식은 멀리 가있기에 근심한다. 딸애한테서 한주일 좀 넘게 소식이 뜸하면 이런저런 엉뚱한 근심에 갑갑해나고 불편하다. 참지 못하고 딸애한테 먼저 전화하면 잘 지내고있고 쓸데없는 근심을랑 하지 말라고 짜증섞인 대답을 한다. 그러면 스스로 까닭 모를 서글픔이 밀려오기도 한다.

어머니처럼 근심걱정을 부둥켜안고 피곤하게 살지 않으려고 했는데 저도 모르게 어머니를 닮아가고있지 않는가?! 이러고보니 인생이란 다 그런가부다. 살다보면 자식이 쓸데없는 근심걱정을 한다고 푸념하지만 이제 제 자식을 다 키우고 우리 나이가 되면 내가 어머니를 닮아가듯이 자식들도 우리를 닮아갈것이다.

이래서 세상은 요지경이라고 했는가? 하다면 아무리 《키질》에 능한 어머니일지라도 키앞부분의 넓은 곳으로 자식들을 한시도 밀어낼수 없었다. 언제나 가슴속의 우긋한 곳으로 짜릿하게 파고드는 자식사랑을 털어버리지 못한 어머니셨다. 이것이 바로 《키》의 우긋한 사랑이 아니겠는가?!

/리광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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