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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광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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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이덕”의 눈빛
2021년 03월 01일 09시 27분  조회:463  추천:0  작성자: 리광학
 
단편소설
“부이덕”의 눈빛
리 광 학
“눈깜쟁이, 새끼를 낳았다…”
어느 남자애의 다급한 소리에 마을 탈곡장 주변에서 놀던 코흘리개 들이 가지고 놀던 나무꼬쟁이들을 그대로 쥐고 우르르 줄을 지어 우사간 마당으로 달려갔다. 아닌게 아니라 먼 산장에서 방목을 하던 “눈깜쟁이”이라 불리우는 세살배기 암소가 새끼 송하지 한 마리를 덜컥 낳았던 것이다. 그것도 수송아지를 말이다. 사양원오령감의 입이 귀에 걸려 다물지를 못한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생산대에 부림 수송아지 한 마리가 늘어났는데, 이런 경사가 또 어디에 있으랴.
집체로 농사를 짓던 지난 세월, 소는 힘든 농사일에서 없어서는 안되는 명물이였다. 마득하면 항간에 “농사일에 아버지가 없어도 되지만 소가 없으면 안된다”는 말이 있었겠는가. 사람들은 기나긴 농경사회에서의 소의 중요한 작용과 소의 부지런하고 끈끼있고 오직 인간에게 주는것밖에 모르는 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한때 연길시의 중심교인 “하남다리” 량옆 입구에 위풍스러운 소의 조각상을 정중히 모시기도 했었다. 한국의 여의도 증권가에 큰 황소상이 있는데 듣는 말에 의하면 황소상의 커다란 그곳(불알)을 만지면 부자가 된다는 설에 시집가지않은 처녀들도 부자가 되고 싶은 욕망에 끌려 그 곳에 가면 꼭 소의 그 곳을 살살 만지고 소원을 빈다고 한다. 이렇듯 소는 힘과 부의 상징으로 받들려 왔다.
세상이 발달되여 대부분 기계로 농사를 짓고있는 지금 우리 고장에서는 소가 농사일에 밀리면서 인젠 고기소를 기르는 산업이 자리를 굳히고 있다. 하기에 소의 세계에서도 음성양쇠라고나 할가 그 제날처럼 힘꼴을 쓸수 있는 수소가 값비싼것이 아니라 모래발에서 무우를 뽑듯이 새끼를 쑥쑥 낳을 수 있는 암소가 절대적인 높은 가격과 좋은 대접을 받는다.
어미배속에서 방금 떨어진 송아지의 몸체에는 진득진득한 하얀 막과 량수물이 그대로 흘러 바닥에 펴 놓은 벼집우에 흘러 내리고 어미소는 넙적 고무신바닥같은 큰 혀를 쉴새없이 놀려 새끼소의 몸뚱이를 핧아 댄다. 새끼 송아지는 수시로 몸체를 오돌오돌 떨어대는가 하면 말똥말똥하고 부허연 빛을 내는 눈알을 굴리며 자주 씀벅이기도 한다. 사양원 오령감이 어디에서 주어왔는지 낡은 고무신 한짝을 흘러내리고 있는 암소의 태반에 달아 맨다. 고무신짝은 암소가 움직일 때마다 시계추처럼 우습게 좌우로 흔들거린다. 옆에서 이 장면을 구경하뎐 애들이 나무꼬쟁이로 낡은 고무신을 톡톡 쳐보다 오령감의 “ 아서라, 이놈들!” 하는 불호령 소리에 놀라 후닥닥 달아난다.
어미소가 한참 지극히 핧은 덕에 새끼 송아지몸체의 물기가 점차 사라져갔다. 이윽고 새끼 송아지는 누웠던 자리에서 일어서려고 죽기내기로 뻐득거린다. 그러다 끝내는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리고는 구부정한 네 다리를 뻗치고 평형을 잡으려고 애쓰지만 아직은 몸체가 자꾸만 앞뒤로 흔들린다. 조금 지나자 제법 비틀거리며 어미 소의 젖무덤을 향해 한발한발 움직인다. 송아지가 세상을 본지 얼마나 됐다고 모든 것이 동물의 본능에 의해 진행되는 소행이라지만 도무지 믿기 어려웠다. 참, 생명이라는 것은 보귀한것이고 위대한 것이다.
새끼 송아지는 쩝쩝 소리를 내며 어미젖을 잘도 빨고 있다. 따스한 가을 해볕에 부시시한 털이 마르기 시작하자 이윽고 송아지의 실체가 들어나기 시작한다. 송아지의 연한 털은 어미소의 짙은 누런 색갈과는 달리 조금은 보얀 색을 띠였다. 분명 애비소의 털 색갈을 닮은것이 분명하였다.
그럼, 애비소는?
“눈깜쟁이” 어미소는 지난 봄에 저 멀리 황지기골이 라는 깊은 산속에 있는 방목장으로부터 생산대부역의 수요에 의하여 끌려 왔다. 소의 임신기는 아홉달반이다. 그렇다면 시간적으로 보아 애비소는 방목장에 있는것이 틀림없었다.
지난 70년초 생산대에서는 많은 소들을 벌방인 마을에서 키우기 어려운 점을 감안해 풀놀이가 좋고 공지가 넓은 타지방의 깊은 산장을 빌려 방목지를 세웠다. 그해 방목장에는 소사양 경험이있는 로인 한분과 젊은이를 짝을 무어 파견하였다. 그들은 일년사시절 인가가 없는 깊은 산속에서 외롭게 소들과 동무하며 긴 시간을 흘러 보냈다. 며칠 아니 몇달을 사람머리하나 구경못하는 때가 많고도 많았다. 늙은이는 늙었다고 치고 장가도 가지않은 젊은 사양원은 자고나면 힘이 뻗치는 지라 이성에 대한 그리움으로 미칠건만 같았다. 거기다 원체 로인이 과묵한데다 젊은이와의 너무 큰 세대차이가 있어 온 하루 일에 관한 말 이외는 오고가는 이야기가 별로 없었다. 저녁이면 누워서 반도체라지오를 듣는 일과 석유등잔 밑에서 장기를 두는 재미뿐이였다. 하도 적막하고 무료한 나머지 어느 날 누가 먼저 제기하였는지 장기를 두고 이기는 쪽이 손가락을 놀려 대방의 이마를 튕기기로 하였다. 그래서 뜻하지않게 두 사람의 배꼽이 떨어질듯한 웃음판이 벌어지도 했다…
우리 고장의 새끼 송아지들은 보통 6, 7개월이면 젖을 떼고 어미와 떨어져 먼 방목장에 보내진다. 그 곳에서 “유치원, 소학교, 중학교” 생활을 마치고 세살이 차면 다시 벌방으로 돌아와 멍지를 메게 된다.
방목장에서는 소들을 더 살찌우고 잘 관리하기 위해 암송아지들과 수송아지들을 따로 “두 개 반”으로 격리시켜 사양하였다. 송아지들의 성장은 비교적 빨라 암송아지들은 세살에 가까우면 새끼를 밸 수 있었고 빠른 수송아지들은 한살반이 넘으면 제법 숫놈의 구실을 할 수 있다고 한다. 당시 방목장에는 세살에 가까운 수송아지들이 여러 마리 있었다. “못된 송아지 엉뎅이부터 뿔이 난다” 더니 수송아지들 가운데 어느 놈이 사양원들 몰래 “눈깜쟁이” 암소와 눈이 딱 맞아 자유련애 끝에 행운스럽게 덜컥 새끼를 뱄던것이다. 이는 동물의 원초적인 욕망과 종족보존을 위한 자유스럽고 용맹한 행위로 이루어진 걸작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집체화시기에 사람들의 욕심과 의지에 의해 소들의 자유번식은 금물이였다. 생산대마다 우량종소를 받아내기 위해 한, 두 마리의 몸체가 크고 색갈이 좋고 튼튼한 종자소를 선택했기에 그 소들만 “사랑”을 할 수 있고 후대를 남길 수 있는 자격과 행운이 주어졌다. 다른 많은 수소들은 그 곳을 거세하지는 않았지만 억울하게도 본능에 의한 씨를 남길 자유나 기회가 박탈 당한채 공손하게 한생을 머리만 숙이고 멍지를 끌어야 할 “복”만 주어졌었다.
“눈깜쟁”이 새끼는 탈없이 잘도 컸다.
원체 어미、애비소가 젊고 건강하고 거기다 가장 적절한 기회를 포착해 왕성한 기를 타고 태여나서인지 석달을 훌쩍 넘긴 수송아지는 제법 “음메, 음메”하는 소리를 지르며 재롱을 부리는가하면 어미소가 수레를 끌때면 요리조리 수레바퀴를 피해 바싹따라 못다니는 데가 없게 되였다. 색갈도 황소의 일반적인 누런색과는 달리 유달리 부연색을 띠였는지라 사양원은 “부이덕”이라고 이름을 지어 불렀다. 소에게 이름을 지어부르는 것은 집체화때의 류행이라면 류행이였다. 소에게 이름을 지어 부르게 된것은 소사용시의 편리한 점을 고려한것도 있었겠지만 더 중요한 리유중의 하나가 바로 소도 생산대의 고정자산명세에 빠짐없이 기입되여야 하기 때문이였다. 하기에 그때는 생산대의 어느 소에게나 다 이름을 붙여 “호적”에 올렸다. 소의 모양새를 따라 “물레뿔이요, 쓰깔이요, 얼룩이요”, 소의 성질에 따라 “순돌이요, 암소 오라비요, 쌉쌀개요”라고 불렀고 때론 거북하게 사람의 이름을 붙여 부르기도 했다. 60년대말 박주장이 모처럼 사업시찰로 아래 마을로 내려왔다. 박주장은 시찰을 내려오며 그 촌의 생산을 부축하고 지지하는 의미에서 감지덕지하게 생산대에 좋은 수소 한 마리를 척 선사하였다. 생산대에서는 부림소 한마리가 공짜로 늘어남으로 하여 기뻐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그런데 그후 소의 이름을 가지고 울지도 웃지도 못할 일이 벌어졌다. 며칠후 한 사원이 처음으로 박주장이 선물한 소를 부릴려고 우사간에 들어갔다. 사양원이 소를 가리키며 어망결에 박주장의 이름석자를 그대로 부르며 “박성남을 부리오” 하고 크게 소리쳤다. 그 이 후로 소의 이름은 이 사람 저 사람의 입을 통해 옮겨져 마을의 코흘리개들 까지도 그 소만보면 “박성남”이라고 불렀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의 입에 슴배여 소를 부르는데는 별다른 거부감은 따로 없었다. 하지만 개별적인 일꾼들은 소를 부리며 일축을 내기 위해 채찍으로 후려치며 입으로는 “박성남”이라고 줄욕을 퍼붓자 듣는 사람이 너무 거북스럽고 민망스러웠다.
“눈깜갱이”암소가 낳은 새끼 송아지는 사양원으로부터 정식으로 “부이덕” 이라는 이름을 하사받고 생산대의 고정자산에 번듯하게 등록되였다. 가을을 넘기고 추운겨울을 용케 견디고 무럭무럭 잘도자라 또래 새끼소들보다 덩치가 더 컸고 빨랐다. 때론 어미소가 먹는 여물도 제법 잘 먹어댔다.
이듬해 봄, 별탈없이 반년을 넘게 자란 “부이덕”이는 어미를 떠날 림박이 다가왔다. 생산대에서는 관례대로 일꾼 두 사람을 파견하여 “부이덕”이를 포함한 다른 몇 마리 젖을 뗀 새끼 송아지들을 모아 먼 곳에 있는 방목장에 보냈다. “눈깜쟁이” 어미소는 새끼 송아지 “부이덕”이를 보내고 련며칠 여물도 잘 먹지 않고 새끼를 찾아 울어 댔다. “음메, 음메-”하는 소리가 너무도 처량하여 사양원도 며칠 밤잠을 설쳤다.
그로부터 시간은 빨리도 흘러 어느덧 두해 세월이 훌쩍 지나버리고 그해 가을이 다가왔다. 생산대에서는 부림소가 모자라 보충하기 위해 소방목장으로부터 알맞춤한 예비부림 소들을 끌어왔다. 큰 소들이 멍지를 비웠으니 작은 송아지들이 그 뒤를 이어 멍지를 멜 판이다. 도합 다섯 마리의 수송아지들과 암송아지들이 부림소로 끌려왔다. 그중에 “부이덕” 이도 있었다. 세살을 잡은 “부이덕”이는 이젠 송아지의 티를 거이 다 벗어 있었다. 름름한 키꼴에 빽빽히 들어박힌 누렇고 보얀 털은 윤기가 번지르르 돌았고 커다란 두 눈빛은 정기가 차넘쳤고 곤두뿌리를 쳐들고 겉는 모습 또한 다 성숙된 소답게 힘있어 보였다. 다만 옥에 티라고 할가 다리가 여느 소들에 비해 조금은 짧은 것이 흠이라면 흠이였다. 하지만 부림소로치면 아무 탈도 아니였다.
매번 다 큰 송아지들이 부림소로 되자면 넘겨야 할 첫 고비는 바로 코를 꿰매는 일이였다. 우리 고장에서는 사양원들이 미리미리 산에 들어가 물에 잘 썩지 않고 피부나 살에 감염이 생기지 않으며 질기고 탄력있는 물푸레나무를 선택하여 껍질을 벗기고 매끈하게 다듬어 소코뚜레미를 만들어 썼다. 소코뚜레미를 꿰매는 일은 마음이 모질지 않으면 못해낸다. 소를 틀에 가두어놓고 네 각을 움직이지 못하게 묶은 다음 잘 다듬고 뾰죽하게 만든 물푸레나무가지로 소의 여린 코를 가로 찌른다. 그러면 소의 고통스러운 모진 울음소리는 물론 생생하던 코에서 피가 뚝뚝 떨어진다. 구경꾼인 아이들은 사양원이 물푸레나무가지로 코를 찌르는 순간 너무 무서워 저도 모르게 눈을 딱 감고 얼굴을 가리우며 돌아서 버린다. 이를 본 사양원이 눈을 치켜뜨며 이후 말을 잘 듣지않는 애들은 코를 꿴다고 우스깨를 하며 한수를 더 떴다. 그러자 애들은 그걸 정말로 믿고 사양원만 보면 겁을 절절내며 피해버렸다.
소는 첫날에 부려보면 소의 성미를 알 수 있다. 방목장에서 끌려온 송아지들을 대상으로 하루동안 부림 연습을 진행하였다. 성질이 급한 암소들은 멍지를 메우자 무작정 뛴다. 제일 덩치 크고 힘꼴을 쓸만한 종자소 “물레뿔 아들”로 태여난 송아지는 애비의 성미를 그대로 닮아 서인지 멍지를 목에 걸자 시끄럽다는듯 머리를 좌우로 마구 흔들며 뿌리친다. 그리고는 퉁방울같은 두 눈을 부릅뜨고 뿌리질하며 사람이 언절에 붙게 못한다. 성질이 사나운 놈이다. 이번엔 “부이덕”이에게 멍지를 씌우니 웬 일지 곰상곰상 말을 잘 듣는다. 일해먹을 놈이 틀림없었다. 며칠간의 간고한 멍지 메우기와 끌기 연습을 거쳐 송아지들은 얼마간 길들여졌다. 사나운 “물레뿔 아들”은 제외되고 말 잘 들어 부리기 쉬운 “부이덕”이는 탈곡장 닦기에 선발되였다. 목에 멍지를 메고 무거운 석마돌을 굴리며 일꾼이 이끄는 대로 돌고돌며 탈곡장을 누빈다. “부이덕”소가 고분고분 말 잘 듣고 부리기 쉽다는 소문이 동네에 쫙 퍼졌다.
사람이 모인 군체에 늘 상중하가 있듯이 부림소 군체에도 대개 세개 부류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부리기 힘든 소, 부릴만한 소, 부리기 쉬운 소로 나뉜다. 부리기 힘든 소들은 일반적으로 성질이 사납고 괴벽하여 일반 일꾼들은 다루기가 힘들어 꺼려한다. 부릴만한 소들은 성질은 그리 사납지는 않지만 소가 너무 느리거나 힘꼴이 수수한 소들인지라 먼 길을 떠나는 사람들은 꺼려한다. 부리기 쉬운 소들은 성질이 온순하고 너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고 힘꼴이 괜찮은 소들이다.
“부이덕”은 세번째 부류에 속하여 생산대의 사원들이 소를 쓸 일이 나지면 너도나도 앞다투어 부리는 소가 되였다. 늙은이와 녀성들, 지어 중학교를 다니고 있는 남자애들도 마을의 공급판매합작사거나 정미소를 갈일이 있으면 서슴치않고 “부이덕”이를 골라잡았다. 다른 소들이 갈 수 있고 가야 할 곳도 “부이덕”이 몫으로 돌아왔다. 일년 365일 쉬는 날이 없는 소가 바로 “부이덕”이였다. 다행히 부역을 많이하는 소들치고 여물을 잘 먹고 변덕 없는 소인지라 별탈없이 그럭저럭 잘 넘겼다.
이듬해 밭갈이철이 돌아왔다. 그해는 논갈이를 정액제를 하기로 정하였다. 마을에서 “참새에게 굴레를 씌운다”는 지나치게 약빠르고 꾀가 많은 한 일꾼이 처음으로 밭갈이에 나서는 “부이덕”이를 골라잡았다. 밭갈이를 시작해서 3일째되던날 사양원이 “부이덕”이에게 여물을 담아주다 소의 목이 크게 부어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사양원이 손으로 만지자 순하던 소가 머리를 마구 저어댔다. 소의 궁둥이를 살펴보니 피자욱이 너덜너덜했다. 사양원은 대뜸 파악이갔다. 꾀가 많은 일꾼이 공수를 많이 벌기 위해 채찍끝에 뾰죽하고 예리한 작은 쇠줄오리를 달아매고 모질게 소를 후려쳤던 것이다. 얼마나 소를 괴롭혔으면 여물도 잘 먹지 않겠는가. 사양원은 여러 사람들 앞에서 호되게 그 일꾼을 질책하고 수의사를 청해 소의 목을 치료했다. 너무 심하게 부려 “목이 넘어간” 소를 계속부리면 망치게 되기에 사양원은 “부이덕”을 며칠 쉬게 하고 다른 소를 밭갈이에 내보냈다. “부이덕”은 목을 상한 “덕”에 며칠간 쉴 수 있게 되였다.
어느 해 “부이덕”이는 탈곡한 벼를 박아실은 공량수레를 끌고 현 량식창고에 가게 되였다. 벼를 다 바치고 돌아오는 길에 여러 일꾼들은 현성의 작은 식당에 들려 식사를 하게 되였다. 그때는 누구나 공량바치는 일에 나서기를 좋아했다. 그것은 공량 바치러 가는 기회에 현성식당에 들려 술을 얻어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였다. 매 일꾼에게 30전의 화식보조가 차례졌기에 여러 일꾼들의 돈을 합쳐 함께하면 한때는 떼울 수 있고 설사 먹은 금액이 초과되였다 하더라도 평균으로 부담하고 개인 왕래장부에 기입하고 년말결산 때 개인수입에서 잘라내면 되는것이다. 가난하고 힘든 세월에 그렇게라도 먼저 먹고 즐기기를 모두가 선호하였다. 그날 늦은 점심인지라 빈속에 술이 들어가자 모두가 인차 거나하게 되였다. 일꾼들은 뒤늦게야 술판을 깨고 트림을 하며 수레에 올랐다. 그날도 “부이덕”이 끌고 가는 수레를 맨 앞에 세우고 그 뒤를 이어 수레들이 한일자로 줄을 지어 길을 떠났다. 날씨가 춥고 모두가 술을 마신 뒤라 공량마대를 쓰고 수레에 앉았다. 넓은 신작로에는 가물에 콩씨나듯 자동차가 어쩌다가 한대씩 지나갔다. 하기에 몰이꾼은 소수레를 오른쪽에 세우고 앞에 있는 수레를 따라 가면 되는 판이다. 현성식당에서 떠난지 얼마나 되였을가 앞에선 일꾼이 찬바람을 맞아서인지 울컥하고 속이 치밀어 올랐다. 불시에 머리를 숙여 연신 토하다가 “억-”하는 소리를 지르며 그만 수레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수레가 당금 일꾼의 몸을 깔며 지날 아슬한 판국에 “부이덕”이 멈춰섰다. 뒤를 따르던 수레들도 멈춰섰다. 일꾼들이 하나둘 수레에서 내려 앞차에 다가왔다. 모두들 “부이덕”의 거동에 놀라움을 금치못했다. 소를 어찌 말못하는 아둔한 짐승이라고만 보겠는가.
그런데 인간들은 세상을 살면서 지금도 어리석고 아둔한 사람을 늘 소에 비해 야비하게 비웃거나 멸시한다. 기실 어리석고 아둔한 짓은 인간들이 하면서 말이다.
공량바치러 갔던 그 일이 썩 지난 몇 해후, 공사에서는 전 공사범위 내에서 우량종소평의 대회가 있었다. 생산대에서는 “물레뿔 아들”을 선택하여 우량종소평의 대회에 보내려고 하였다. “물레뿔 아들”은 몇 년간의 시간을 거쳐 몰라보게 변했다. 키도 전에 비해 컸고 몸뚱이도 살쪄 름름한 자태가 위풍있어 보였다. 성질이 사납고 우락하고 까탈스러운 덕분에 부역을 적게 다니고 놀고 먹기만 해서인지 다른 소들보다 누런 털도 유난히 반지르르 하여 보기가 좋았다. 몇 해 동안 종목소로 선정되여 여러번 후대를 남기는 작업에 투입되여 “사랑”을 해보는 행운을 가져 보기도 했었다.
사양원은 평의 선발전을 위하여 매일 소의 털을 다듬고 쓸고 지어 엉뎅이에 누릉지처럼 말라붙은 소똥도 물을 쳐서는 뜯어냈다. 먹이도 그 시절에 사람도 자주 먹을 수 없는 찰떡이며 두부며 좋다는것은 다 먹이며 부산을 피웠다. 드디여 우량종소평의 대회가 열리였다. “물레뿔 아들”의 허리에는 붉은 띠를 보기좋게 두르고 목에는 구리로 만든 방울을 달아 놓아 걸을 때마다 왈랑절랑 절주있게 소리를 냈다. 그번 평의에서 “물레뿔 아들”은 공사내의 모든 우량종소들을 져치고 제일 우수한 우량종소로 평의를 받았다. 장금은 생산대에도 주어지고 사양원들에게도 차례졌다.
만약 그번 평의를 우량종소의 선발이 아니라 부역을 제일 잘 하고 많이한 소를 평의 한다면 당연히 “부이덕”이였을 것이다. 헌데 유감스럽게도 그런 평의는 없었다. 사실 그때 소를 기르는 목적은 농사일을 하기 위해서인데 말이다. 소가 멍지를 잘 끌면 되지 소의 색갈이 검으면 어떻고 얼룩이면 어떻고 눈이 작으면 어떤가? 소에게 생산대의 사원들처럼 일을 하면 공수을 기입해 준다고 하자, 그러면 여지껏 부역을 한것을 합치면 그 가치가 얼마나 되겠는가.
매일 부역에 시달리는 “부이덕”은 세월이 가면서 다른 소들보다 더 빠르게 늙어갔다. 예전처럼 그렇게 름름하지도 않고 털도 윤기를 잃어가며 푸실푸실하게 변해갔다. 가까운 곳에 멍지를 메고 가면서도 인츰 코에 땀이 송골송골 돋으며 몹시 힘들어 했다.
이듬해 봄, 새풀이 돋아 오르기 시작하자 더 멍지를 멜수 없게된 “부이덕”은 사양원의 제의에 의하여 부역을 그만두고 먼 방목장에 보내졌다. 방목장에 보내진 “부이덕”은 더는 사람들의 시달림을 받지않고 자유로운 나날을 보냈다. 애어린 송아지떼들 속에 그것도 여린 암소들 무리에 늙은 소 한 마리가 한가롭게 풀을 뜯고 새김질하는 모습이 유표하게 안겨왔다. 공기 좋고 풀놀이가 좋고 사람들의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서인지 늙은 소이였지만 몇 달을 넘기자 제법 또 다시 살이 오르기 시작하고 부연털이 윤기가 돌기 시작했다. “부이덕”은 자기가 여지껏 부역에 나가서 사람들을 위해 일을 했으니 지금은 그에 따른 보상을 받고 있는거라 고맙게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던 어느 날 여지껏 점잖고 순하기만 하던 “부이덕”은 머리를 쳐들고 코를 실룩거리다 입에 거품같은 침을 흘리며 어린 암소들의 뒤를 어슬렁어슬렁 쫓아다니며 냄새를 맡는다. 그리고는 무엇이 그리 좋은지 고개를 높이 쳐들고 “워-어엉…”을 반복하며 숨이 넘어가는듯한 거칠고 둑한 소리를 질러댄다. 그 바람에 얌전하게 풀을 뜯고있던 암송아지들이 후뚤 놀라며 멀리 달아난다. 이런 일이 시도때도없이 일어나자 암소들이 싱숭생숭 해지며 시름놓고 풀을 뜯을 수 없었다. 뒤늦게야 이 광경을 젊은 사양원이 발견하였다. 말못하는 짐승들에게 고유한 본능적인 이성지간의 피치못할 행위임에도 사양원의 가슴속의 그 무엇을 야기시켰는지 별스레 사양원이 격해졌다. “이 빌어먹을 소새끼, 늙어빠졌다고 암소무리에 두었더니 늙따리소가 웬, 쌍지랄이야!” 젊은 사양원은 사정없이 채찍을 휘둘렀다. “부이덕”은 멋도 모르고 사양원의 채찍에 어디라 없이 호되게 얻어맞았다. 한참 소를 채찍질하던 사양원이 제풀에 맥이 지나자 격하게 소고삐를 끌고 왼쪽켠으로 갔다.
비록 그날, “부이덕”은 젊은 사양원에게 실컷 물매를 맞고 암송아지들과 “사랑”를 이루는 성스러운 목적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부이덕”의 생애에서 이성지간의 가장 가까웠고 자유스럽고 소중한 순간이 바로 암송아지들 무리속에서의 즐거운 생활이였다.
그일 후로 “부이덕”이는 암송아지무리에서 축출되여 수송아지 무리속에 버려졌다. 생면부지의 “부이덕”이를 발견하자 젊은 수송아지들은 씩-씩 코를 실룩거리며 다가선다. 이윽고 상대가 맥없는 늙은 소임을 판단하고 눈을 희번뜩거리며 부릅뜨고 앞발로 땅을 파헤치며 공격태세를 취한다. 젊은 수송아지들은 잠간사이에 사나운 소리를 지르며 “부이덕”을 밀쳐 낸다. 이에 겁을 집어먹은 “부이덕”은 비뚱거리며 구석 쪽으로 피해 달아난다. 젊은 수송아지들은 심심하면 아무리유없이 “부이덕”이를 쫓아다며 괴롭힌다. 수송아지들 속에서 “부이덕”은 왕따를 당해 항상 무리들 맨 뒤쪽에 떨어져 외로이 풀을 뜯었다.
그해 8월 추석이 다가 왔다.
“부이덕”은 사람들에 의하여 다시 하번 마을로 끌려왔다. “부이덕”을 다시 부리자는것도 아니고 다른 곳에 팔아넘기자는 것도 아니였다. “부이덕”은 올 추석, 사람들의 식탁과 제사상의 수요에 의하여 마지막 피와 살점을 바치기 위해서였다.
“부이덕”이 마을 뒤에 있는 강변으로 끌려 가던날, 가을 날씨는 맑고 하늘은 푸르렀다. 누렇게 무르익은 논판은 가을의 정경을 더 짙게 했다. 날씨가 차지며 강물은 류달리 맑아져 물밑에 있는 작은 돌들까지 환히 들여다보였고 물 우에는 잠자리 몇 마리가 꼬리를 흔들거리며 날아옌다. 원체 성미가 온순한 “부이덕”은 영문을 모르는 채 터벅터벅 사람이 이끄는 대로 공손히 따라갔다. 강기슭에 닿자 일꾼 몇이 소의 네 다리목을 꽁꽁 묶고 담이 큰 한 일꾼이 “부이덕”의 뿔 아래쪽의 앞이마를 겨냥하고 큰 메를 휘둘렀다. “텅”소리와 함께 소가 움찔한다. 또 다시 “텅”하는 소리가 나자 무방비 상태에서 불이의 타격을 받은 “부이덕” 은 비칠거리다 옆으로 쓰러진다. 그리고 네 다리를 부르르 떨며 경련을 일으키고 툭 튀여 오른 커다란 맑은 두 눈은 오돌오돌 떨며 눈물이 가랑가랑 어리다가 주르륵 흐른다.
조금 지나 의혹과 원망에 찬듯한 “부이덕”의 눈빛이 부였게 흐려지며 점차 빛을 잃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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