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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광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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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 늦으면 늦은대로
2021년 03월 05일 14시 20분  조회:695  추천:0  작성자: 리광학
  
 
늦으면 늦은 대로
 
리광학
며칠 전, 버스정류소에서 버스를 기다리다 녀성 지인 한분을 만났다. 례의상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는 버스가 언제 오나 기웃거리고 있는데 그녀가 옆으로 다가왔다.
“그래 자네 딸은 올해 몇 살인가?”
서른셋이라고 대답했더니 “나이가 적지 않구먼, 어이구”하며 아닌 걱정을 한다.
‘허참, 오지랖이 넓어도 유분수지. 속이 타도 내가 더 탈 텐데 당신이 무슨 한숨을 쉬고 그래’라며 속으로 아니꼽게 생각했다.
솔직히 딸애가 서른 고개를 넘어서부터 딸애의 장래가 심히 걱정된 것만은 사실이다. 특히 주위 사람들이 딸애의 혼인상황을 두고 뭐라 할 때마다 저도 몰래 위구심이 들면서 구렁이 담 넘어가듯 얼렁뚱땅 둘러댄 적이 한두번이 아니였다.
다행히 요즘 딸애가 좋은 사람을 만나 얼마 전 약혼을 하고 결혼식 날자까지 잡은 터라 어깨가 으쓱해서 말했다. 이쯤하면 “어이구, 축하해요, 이젠 한시름 놓겠어요”라는 말로 위로를 해주는 것이 례의 건만 도대체 뭐가 그리 궁금한지 꼬치꼬치 캐여 묻는다.
“그래 신랑은 몇 살이우?”
살짝 짜증이 났지만 대놓고 내색 할 수는 없는지라 곧바로 서른여섯이라고 알려주었다.
“어이구, 로총각이 구먼”
또다시 아픈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격이다.
‘그걸 굳이 로총각이라고 콕 꼬집어 말해야 직성이 풀리나? 내 딸이 서른을 넘겼는데 그렇다고 산에 가서 애고사리를 뜯겠는가?“
지인의 입에서 또 어떤 말이 튀여 나올지 지레 겁부터 났다. 오늘따라 제시간에 딱딱 도착하던 버스마저 전혀 나타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아니나 다를가 지인이 또 한발 들이밀며 집요하게 물어왔다.
“신랑감은 조선족이요, 한족이요?”
남이야 조선족한테 시집가든 한족한테 시집가든 무슨 상관이냐고 한마디 따끔하게 내뱉으려는 순간 그토록 기다리던 버스가 역에 도착하여 난처한 상황에서 빠져나오게 되었다.
10여간 타향살이에 길들여졌던 딸애는 아마도 아침 일찍 출근하고 저녁 늦게까지 야근하는 일상에 익숙해졌던 것 같다. 거기에 세방살이 해수가 한두해 이어지면서 나이는 늘어나는데 전혀 결혼할 생각이 없어 보이니 마음이 급해난 건 우리 쪽이였다. 첫 몇해는 그래도 명절 때마다 고향에 돌아오는 딸애를 붙러놓고 “너도 이젠 련애도 하고 결혼도 해야지”하며 권고 반 걱정 반으로 슬슬 밀어 붙혔다. 하지만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한두번이라고 결혼애기가 되풀이 되자 어느 날 갑자기 딸애가 아주 홀로 살겠다고 배수진을 치는 것이 아니겠는가? 괜히 심기를 건드린 게 아닌가 싶어 더럭 겁부터 났다. 그후부터는 결혼이라면 아예 도리질하는 딸애 앞에서 결혼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언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속으로 썩 내키지 않았다. 자식이 평생 독신으로 살겠다고 하는데 “그래, 잘 생각했어, 네가 어떤 결정을 하던 우린 그걸 백프로 지지할거다”라며 등을 밀어줄 너그러운 부모는 이 세상에 흔치 않을 것이다.
요즘 세대를 보면 대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벌써 20중반이다. 언제결혼을 고려할 겨를도 없이 취업 때문에 혈안이 되어있다. 치렬한 취업 경쟁 속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각종 자격증도 따야 한다. 인차 취직을 하지 않더라도 석사, 박사 과정까지 밟고 나면 서른을 넘기는 건 비일비재이다. 몇 년간 힘들게 갈고 닦은 실력으로 자신을 튼튼하게 포장했으니 몸값도 그많큼 뛰여 올라 결혼상대가 줄쳐서 기다릴 거란 기대는 결국 물거품이 되고 만다. 현실은 왕왕 무정하다. 눈이 높아 웬만한 상대는 거들 떠 보지도 않지만 그 웬만한 상대마저 알고 보면 오래전에 임자를 정해둔 몸일 때가 많다.
모든 부모는 자식이 성장하면 홀로 서기를 하고 경제적으로 자립하기를 바란다. 하지만 그게 그리 녹녹치가 않다. 타향에서 요행 적성에 맞는 일자리를 찾아 월급도 우리가 살고 있는 지방에 비하면 훨씬 많이 받는 것 같지만 그곳의 높은 소비수준에 맞추어 집세에 필요한 지출까지 하고 나면 손에 남는 돈이 거의 없다. 그러니 취직을 하고 나서도 부모에게 손을 내밀지 않으면 되려 자식에게 고마워해야 될 판이다.
결혼을 하려면 집 장만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새 아파트들이 하루가 멀다 하게 일떠서서 빌딩숲을 이루는데 하늘 뚫을 기세로 치솟는 건 아빠트뿐이 아니다. 부부가 꿈을 품고 이국 타향에서 3년만 벌면 고향에 돌아와 근사한 아파트를 장만하던 시절은 호랑이 담배 피우던 옛날 얘기다. 요즘 세대들이 자기 힘으로 신혼집을 장만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나 다름없다.
경제 발전과 더불어 요즘 젊은이들의 가치관에도 많은 변화가 발생하고 있다.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두 손으로 하나하나 갖추어갔던 우리 세대의 소박한 삶의 방식은 어느새 빛을 잃어가고 무었이든 다 이루고 다 갖춘 다음에야 결혼을 저울질하는 게 요즘 세대들이다. 어디 그뿐이랴, 자고 일어나면 몰라보게 달라지는 사회와 빠른 생활절주는 미래생활에 대한 불안정감을 야기시킴과 동시에 진정한 경제적 자립에 대한 정의를 갈수록 흐릿하게 만들어 가고 있다. 이러한 복합적인 요소들을 두루 살펴보았을 때 결혼 적령기를 놓치는 게 어찌 애들만 탓할 일이겠는가?
해마다 봄이 오면 진달래는 어김없이 꽃을 피운다. 떄론 모진 꽃샘추위를 이겨내고 뒤늦게 꽃망울을 터치며 피여난 진달래가 더 오래피고 더 아름다울 떄가 있다. 우리 부모들도 느즌한 마음으로 애들의 결혼을 기대해 보는 건 어떨가?
2020년 로년세계1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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