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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최동일 아동소설집-민이의 산

금쪽 같은 내 새끼
2010년 03월 11일 07시 52분  조회:1571  추천:0  작성자: 동녘해
금쪽 같은 내 새끼

1,

광명거리에는 “로송식품상점”이란 간판을 건 자그마한 식품가게가 있다. 주인할아버지는 몇해전에 소학교에서 교편을 잡고있다가 정년퇴직을 하신후 소일거리나 찾으려고 이 소매점을 꾸렸다고한다. 그때문인지 할아버지는 경영에 크게 신경을 쓰지않으셨다. 할아버지는 언제나 매대뒤에 앉아서 신문을 보다가 손님이 들어와서 “아바이, 물건을 삽시다.”고 소리를 하면 보던 신문을 내려놓고 안경을 벗으며 “무엇을 사시겠소?”하고 일어선다. 물건을 들고 얼굴에 웃음꽃을 피우며 가게문을 나서는 손님들을 보는것이 어쩜 할아버지의 유일한 락인듯싶다.
이렇게 어언 3년이라는 세월이 물에 물탄듯 조용히 흘러버렸다. 헌데 올해 봄부터 할아버지의 마음을 슬그머니 끌어당기는 작은 일이 한가지 생겼다. 그것은 식품상점 앞을 지나다니는 한 녀자애를 보는것이였다. 드문드문 상점으로 간장이나 소금을 사러도 들락거리군하는 녀자애였다.
얼굴이 노루무레한 그 녀자애는 몸이 몹시 야위고 가냘퍼보였다. 하냥 연두색저고리에 파랑치마를 입고있었다. 수심에 폭 잠긴 얼굴우에 자리잡은 쌍까풀눈은 언제나 아래로 살풋이 내리깔리고 아래입술은 노상 웃 이발에 꼭 깨물려있었다.
30여년의 교원생활속에서 어떤 애들을 보지못했으랴만 그 녀자애만은 새삼스럽게도 할아버지의 마음을 무척이나 쓰이게 했다.
(웃음만을 알고 살아야 할 저 애에게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것일가?)
할아버지는 그 녀자애를 보며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의문들을 꼭 풀고싶었다.
그날도 녀자애는 손에 무엇인가를 들고 소매점앞을 지나갔다. 역시 머리를 살풋이 숙이고있었다.
“오늘도 얼굴이 수심에 폭 잠겼네.”
할아버지는 녀자애의 뒤모습을 속깊게 바라보았다. 녀자애는 할아버지의 왼심을 아는지 모르는지 자박자박 락조를 밟으며 어디론가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기고있었다.
(이 시간에 어디로 저렇게 바삐 걸어가는것일가?)
할아버지는 생각을 굴리며 소매점 남쪽벽에 걸어놓은 벽시계를 흘끔 쳐다보았다. 시침이 여섯시를 가리키고있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나?)
할아버지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매대뒤의 걸상에 앉아 낮 수입을 헤아리기 시작했다. 할아버지가 손때 묻은 돈을 무릎에 대고 소가락끝에 건침을 묻혀가며 쪽쪽 주름살 펴기에 여념이 없을 때 “삐꺽”하는 문소리와 함께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한 녀인이 상점안에 들어섰다. 할아버지는 그 녀인에게 피끗 눈길을 주며 “어서오시우~”하고 변죽좋게 맞아주었다. 녀인은 무엇을 애타게 찾는듯한 눈길로 매대를 둘러보고있었다. 몹시 초조해하는 눈치였다. 할아버지는 유심히 녀인의 얼굴을 살폈다. 비록 눈가에 몇오리 잔주름이 보였지만 그래도 예쁨이 물씬 흐르는 얼굴이였다. 한참이나 매대를 살피던 녀인이 드디여 속삭이듯 입을 열었다.
“아바이, 애들이 무엇을 즐겨 먹을가요?”
할아버지는 그러는 녀인의 얼굴에서 눈길을 떼지 않고 되물었다.
“몇살이나되는 앤지요?”
“한 열살, 될가요?”
녀인은 잠간 머뭇거리다가 아래 말을 이었다.
“난 그 애를 참 귀여워해요. 그 앤 아마 우유과자를 즐겨먹을 거예요. 애들은 모두 우유과자를 즐겨먹거든요. 한번 먹기 시작하면 반근짜리 한봉지를 다 먹어버리지요. 바삭바삭 소리를 내면서요…”
녀인은 무시로 손등을 마주 부비며 얼굴에 가벼운 미소를 짓고있었다. 할아버지는 어쩐지 이 녀인이 이상스럽게 생각되였다. 하여 이모저모 추측을 하고있을 때 녀인이 지갑에서 100원짜리 돈을 꺼내놓았다.
“그래요, 전 우유과자를 사야겠어요. 옳아요. 꼭 우유과자를 사야겠어요.”
녀인은 기뻐서 손벽까지 짝짝 쳐대며 애들처럼 “우유과자를 사야겠어요.”하고 몇번이나 곱씹었다. 할아버지도 얼굴에 약간 웃음을 띄우며 녀인의 말을 받아주었다.
“우유과자, 좋지요. 애들이 좋아할거요.”
“아바이, 그렇죠? 애들이 좋아할거죠? 애들은 우유과자를 즐겨먹는거죠? 한달분을 주세요, 한달분이요. 한달 내내 좋아하게요.”
녀인의 말에 할아버지가 깜짝 놀라며 되물었다.
“방금 한달분이라 했소?”
“그래요, 하루에 한봉지씩 딱 한달분이요. 한달분을 사야겠어요.”
녀인의 대답은 무척이나 단호해보였다. 할아버지는 녀인의 말이 롱담이 아님을 느꼈다. 그럴수록 눈앞의 녀인이 큼직한 물음표로 되여 할아버지의 머리를 치고 들어왔다. 할아버지는 설레설레 머리를 저으며 조심스레 녀인을 향해 입을 열었다.
“한번에 한달분이라, 너무 많은것이 아니우? 과자는 날마다 새것이 나올텐데…”
“아니요. 하나도 많은게 아니거든요. 전 아바이가 린근에서 맘이 곱기로 정평이 나있는 줄을 알거든요. 그래서 특별히 아바이를 찾아온거예요. 아바이, 배달이 되는거죠?”
녀인의 눈길에서 일종의 간절한 기대를 읽을수있었다.
“어, 배달?”
할아버지께서 말끝을 흐렸다.
“그래요, 배달이요. 아바이, 이 상점 뒤의 련꽃화원을 아시죠? 4동 3층일거예요..”
“4동 3층?”
“그래요. 4동 3층이요. 그 곳에 무지 예쁜 녀자애가 살고있거든요. 과자를 먹기 좋아하죠. 하루아침에 한봉지씩 보내주세요.”
말하는 녀인의 얼굴에 행복의 미소가 아렷이 피여오르고있었다. 할아버지는 점점 오리무중에 빠지는 자신을 느끼고있었다. 사실 전에도 할아저지는 주문호들에 물건을 배달해준적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느닷없이 한달치의 우유과자를 주문하는 이 녀인에게 그무슨 비밀이 숨어있을듯 싶어 선뜻 답복을 주기가 저어되였다.
갑자기 할아버지의 머리를 치는것이 있었다.
(아, 방금 련꽃화원이라 했지?)
할아버지는 머리를 끄덕였다.
(옳아, 그 녀자애가 바로 련꽃화원 4동 3층에 살지. 그래, 그랬어. 접때 물건사러 와서 분명 그 곳에 산다고 말했어! 그러면 이 녀자와 그 애 사이에 무슨 끈이 이어져있는게 아닐가?)
예까지 생각이 미치자 할아버지는 궁금증을 풀어보고싶은 마음이 생겨났다.
“그래, 좋소. 하루에 한봉지씩 그 애에게 배달하면 되는거요? 그리구 과자를 주면서 무슨 전할 말이라도 없수?”
“저… 이렇게 말씀해주세요. 너를 귀여워하는 한 엄마가 보내더라구요. 그래요. 전 그애가 너무도 귀엽거든요. 감사합니다. 아바이, 그 애는 분명 좋아할거예요. 애들은 모두 우유과자를 좋아하거든요. 감사합니다.”
“근데 왜 댁이 직접 전해주지 않는거요?”
할아버지께서 궁금증을 풀어보고싶은 마음에 넌짓이 녀인을 바라보며 미끼를 던졌다. 녀인의 얼굴이 대뜸 복잡하게 번져갔다.
“전, 전… 할 일이 많은 사람이거든요. 전 꼭 찾아낼거예요. 이렇게 떠나면 한달이 걸려야 돌아올거예요. 감사합니다. 전 날마다 그 애를 보고싶었어요. 하지만 오늘까지 더는 한번도 그 애를 보지못했거든요. 그 애는 우유과자를 먹어야 해요. 감사합니다.”
말을 마친 녀인은 손으로 얼굴을 싸쥐고 상점문을 나서며 야릇하게 소리쳤다.
“전 꼭 찾아낼거예요. 찾아낸다구요!”

2,

혜경이는 또 할머니에게 된욕을 먹었다.
금방 숙제를 하자고 밥상을 펴놓았는데 할머니의 불호령이 떨어졌던것이다. 할아버지에게 바꿔입을 옷견지들을 가져다주라는것이였다. 할아버지는 시내에서 20리밖에 떨어져있는 한 양돈장에서 남의 일을 거들어주고있었다. 벌써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가는데 그 곳까지 갔다오자면밖에 어둠이 깔릴것은 물론이고 수학숙제며 어문숙제며 한어숙제며 하는것들은 언제할지 묘연하기만 한것이였다. 어제밤에도 혜경이는 할머니의 분부를 받고 하남에 있는 작은 집에 심부름을 갔다오느라고 지쳐서 숙제를 하지못했었다. 선생님께서는 오늘 동학들 앞에 혜경이를 세워놓고 “이렇게 공부를 할거면 아예 집어치우라.”고 엄하게 비판을 했던것이다.
(오늘까지 숙제를 못하면 안되는데, 어쩔가?)
혜경이는 할머니에게 사정을 해보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할머니의 얼굴이 험상궂게 눈앞에 찾아들어 감히 말을 못하고 할머니의 눈치만 살피며 옴찔거리고있었다. 아니나다를가 할머니의 꼬장꼬장한 욕설이 터졌다.
“너, 이년아 들었니? 뭐하고 있는거야?”
“할머니, 오늘은 숙제가 너무 많이 밀려서…”
“숙제는 무슨 썩어 빠진 숙제냐? 그 꼴에 공부나새나.”
할머니의 욕설에 혜경이는 대꾸 한번 못하고 속으로 울먹이며 애꿎게 손톱여물만 썰었다.
“이 년, 왜 그렇게 서고만 있어?”
할머니가 꽥 소리지르더니 혜경의 머리카락을 와락 잡아다벽에 마구 짓쪼아댔다.
혜경이는 울면서 길에 올랐다. 남들이 볼가봐 울지말자고 해도 눈물은 샘솟듯 자꾸자꾸 흘러내렸다. 혜경이는 걸으면서 많은 것을 생각했다.
20여리 길을 한달음에 다녀와서인지 이튿날 혜경이는 늦잠을 자고야 말았다. 새벽녘에 혜경이는 꿈속에서 어머니를 보았었다. 분명 어머니라고 하는데 아무리 봐도 면목이 없었다. 혜경이는 그래도 좋았다.
“어머니, 전 어머니와 함께 살래요. 인젠 어머니와 떨어지지 않을래요.”
혜경이가 소리치며 어머니의 옷섶을 잡아쥐려고 하자 어머니는 마법에라도 걸린듯 휙하고 하늘로 솟아오르더니 두터운 구름층을 뚫고 훨훨 날아가는것이였다.
“어머니, 어머니~”
혜경이는 애타게 어머니를 부르다가 깨여났다. 벽시계가 일곱시를 가리키고있었다. 혜경이는 가슴이 덜컥해났다. 학교까지 가려면 20분은 걸어야했던것이다.
(할머니가 또 일을 시키면 어쩐담? 빨리 가자, 숙제를 못했는데 지각까지 하면 선생님도 오늘은 나를 가만놔두지 않을거야.)
혜경이는 아침밥도 먹을념을 못하고 살그머니 집을 빠져나왔다. 학교옆 개울에서 대충 세수나 할 예산이였다. 이렇게 부랴부랴 달음박질을 쳐 로송식품상점문앞을 지날 때 “얘야~ ”하고 부르는 자애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혜경이는 걸음을 오똑 멈추고 소리나는 쪽에 머리를 돌렸다. 눈에 익은 상점할아버지께서 인자하게 웃으시며 혜경이를 향해 손짓을 하고있었다.
“할아버지, 저를 부르셨어요?”
혜경이가 반신반의하며 물었다.
“그래, 너를 불렀지. 얘야, 너 지금 학교에 가는 길이냐?”
“네, 할아버지.”
혜경이는 할아버지를 향해 달려가며 대답했다. 할아버지께서 혜경이의 홍조어린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며상냥하게 물었다.
“얘야, 너 련꽃화원 4동 3층에 살지?”
“네, 할아버지.”
혜경이는 할아버지를 향해 머리를 끄덕이며 역시 짤막하게 대답을 했다. 할아버지의 입가에 후더분한 웃음발이 비껴올랐다.
“옳구나, 얘야, 널 귀여워하는 한 어머니께서 너에게 주는선물이다. 자, 받아라.”
할아버지는 손에 들었던 비닐봉지를 혜경에게 내밀며 말했다.
“네? 저에게 준다구요? 저를 귀여워하는 어머니가요?”
혜경이는 두눈을 올롱하게 치떴다.
“그래, 꼭 너에게 전해주라고 했단다.”
“그럴수 없어요. 할아버지, 전 어머니가 없어요.”
“그래? 하지만 그 어머니는 분명 너를 귀여워한다구 했거든…”
“……”
혜경이는 까아만 쌍까풀눈을 무시로 깜박이며 의문스럽게 할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얘야, 어서 받아라. 웬 일인지는 잘 모르겠다만, 그 어머니는 너를 무척이나 귀여워하는것 같더구나.”
“그 어머닌 어떤 분이신데요?...”
“글쎄다. 그 어머닌 그저, 너를 귀여워한다고만 했거든. 우유과자 한달치를 주문해놓고 매일 너에게 한봉지씩 전해주라 했단다. 래일부터 난 바로 여기서 너를 기다리겠다. 알겠니?”
혜경이는 머리를 끄덕이며 할아버지의 손에서 과자봉지를 받아들었다. 어쩜 자기가 지금도 꿈을 꾸고있는것이 아닌지 하는 의심에 가슴이 떨려왔다. 이어 코등이 시큼해나며 눈앞이 뿌였해졌다. 문뜩 오늘 새벽 꿈에서 보았던 어머니의 얼굴이 떠올랐다.
(어머니가 아닐가? 정말 어머니가 나를 찾아온것이 아닐가?)
혜경이는 삼검불같이 흩어진 사색의 선을 따라 떠올리고싶지 않은 지난 날들을 더듬었다.
혜경이가 부모들에 대한 첫 기억이라면 끝도 시작도 없는 가정불화였다. 부모들은 거의 날마다 언성을 높이고 얼굴을 붉히며 다퉜다. 서로 물건을 던지고 부수기도 했다. 사발이며, 접시며 지어는 식칼겉은것이 무시로 날아다닐 때면 혜경이는 무서워서 벽구석에 쪼크리고 앉아 오돌오돌 떨기만했다.
여섯살에 접어드는 해에 혜경이는 우연히 자기가 부모들의 친딸이 아니라는것을 알게되였다.
결혼한지 6년이 지나도록 아이가 없은 양부모들은 어느날 파출소 문앞에 누군가 버리고 간 갓난아이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갔었다. 무척이나 귀엽게 생긴 녀자아이였다.
보자기속에는 갓난애의 생년월일과 함께 말못할 사정으로 이렇게 밖에 할수 없으니 미안하며,누군가 이 애를 훌륭하게 키워주면 지옥에 가서라도 그 은공을 꼭 갚겠다는 인사말을 적은 종이쪽지가 들어있었다. 양부모들은 자기몸에서 떨어진 피덩이를 버릴수밖에 없는 그 누구를 동정도 하고 욕도 해보면서 갓난아이를 안아다가 입양수속까지 마쳤다.
후에 들어서 알게된 일이지만 양부모들은 혜경이가 집에 온후 첫 3년은 무척이나 귀엽게 길렀다고 한다. 하지만 혜경이가 4살을 잡는 해로부터 혜경의 양아버지가 다른 녀자를 봐두고 밖으로 돌기시작했다. 따라서 가정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혜경이의 머리속에 남겨진 첫 기억이 바로 이때로부터 온것이였다.
끝없는 싸움끝에 양부모들은 끝내 리혼을 하고 말았다. 혜경이는 양아버지쪽에 남게되였다.
양아버지는 어린 혜경이를 집에 두고 여전히 밖으로 돌았다. 밥이며 반찬같은것을 한번에 많이 해서 랭장고에 넣어두고저절로 덮여먹으라면 그만이였다. 한번 나가면 이틀이고 사흘이고 집에 들지 않을 때도있었다.
올해 봄, 그러던 양아버지가 새장가를 들게되였다. 혜경이는 방법없이 양할머니네 집으로 옮겨 오게되였다. 양할머니네집에서 혜경이는 천덕꾸러기였다. 좀만 잘못을 저질러도 할머니의 매운 손에 엄청 혼나군 했다. 성격이 괴벽하기로 린근에 소문이 나있는 할머니는 혜경이를 과녁으로 작은 분풀이도 빼놓지 않고 해댔다. 혜경이는 설음을 속으로 삼키며 얼마나 많은 밤을 울음으로 보냈는지 모른다. 울면서 속으로 얼굴도 모르는 친어머니를 부르고 또 불러보았다. 그러면서 친어머니를 그리워도 하고 증오도 해보았다. 그런 혜경이 앞에 뜻밖에도 “어머니”가 나타났으니, 혜경이는 생각할수록 흥분되여 가슴이 떨렸다.
이튿날에도 그 이튿날에도 상점할아버지는 꼭 같은 곳에서 혜경이를 맞아주었고 갈라질 땐 “얘야, 랠 또 만나자.”하면서 오래도록 손을 흔들어 바래주었다. 그러면 혜경이는 “할아버지, 안녕~”하고 판에 박은듯 인사를 하군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혜경이의 의문은 커지기만했다. 그새 여러번 자기의 궁금증을 할아버지에게 물었지만 할아버지는 여전히 “너를 귀여워하는 한 어머니가 보냈다.”는 대답뿐이였다.
어느날 오후 혜경이는 하학하는 길에 또 할아버지를 찾아 “불로송식품상점”에 들렸다. 그날도 할아버지는 매대뒤에 앉아서 신문을 보고계셨다.
혜경이는 잠간 머뭇거리다가 “할아버지!”하고 조용히 불렀다. 할아버지는 보던 신문을 내리우고 안경을 벗으며 혜경이를 건너다보았다.
“인제 학교에서 오는길이냐?”
“네, 할아버지. 도무지 궁금해서 못 참겠어요. 할아버지께서 실말을 해주지 않으면 다시는 과자를 받지않겠어요.”
“답답하기는 나도 마찬가지라니까. 그냥 그 어머니의 따뜻한 마음이라 생각하고 받아 먹으면 안되냐?”
할아버지께서 막무가내라는듯 혜경이를 바라보았다.
“할아버지. 그래도 어쩐지 전 불안하기만 해요. 그냥 낯모를 사람이 보내주는 과자를 이렇게 받아먹어도 되는지 모르겠구요. 그새, 그 어머닌 한번도 다녀가지 않았나요?”
“다녀가지 않았지. 다녀갔다면 내가 어련히 너의 마음을 전하지 않았으랴구. 어데 가서 한 달 있는다고 했는데, 그래, 벌써 20여일이 훌쩍 지났네.”
할아버지께서 손가락을 꼽아보다가 놀란듯 말씀하셨다.
“한달이 지나면 그 어머니께서 할아버지 보러 오실가요?”
“오겠지, 꼭 올거다.”
할아버지께서 오른주먹을 꾹 쥐여 흔들며 긍적으로 말씀해주셨다.
“할아버지, 그랬으면 얼마나 좋을가요? 그 어머니께서 할아버지 보러 오시면 꼭 저를 불러주세요, 네. 할아버지.”
“암, 그래야지. 그러구 말구.”
“할아버지, 감사합니다.”
혜경이는 할아버지에게 곱게 인사를 올리고 상점문을 나섰다.
할아버지는 사라져가는 혜경의 뒤모습을 바라보며 머리를 끄덕였다.
“참, 얼마나 참하고 똑똑한 앤데…”

3,
“안녕하세요.”
녀인이 인사를 하며 상점안에 들어선것은 오후 2시가 좀 넘은 후였다. 할아버지는 보던 신문을 내리우고 안경을 벗으며 목소리임자를 찾았다.
그 녀인이였다. 할아버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반겨맞았다.
“어서 오시오. 어서요. 이게 얼마만인가…”
“아바이, 그 새 수고많았어요.”
녀인이 곱게 머리를 숙이며 할아버지께 알은체를 했다. 할아버지께서 녀인을 향해 손사래를 하며 답례를 했다.
“괜찮어, 괜찮아. 그 만한 일에 수고랄게 있소? 그래, 그 새 어데 다녀왔소?…”
“하남성 농촌을 돌았어요.”
녀인의 말에 할아버지께서 놀라셨다.
“하남성 농촌이라니? 웬 일루?>.
“그 곳에 유괴당한 애들이 많다는 소식을 들었거든요.”
“유괴당한 애들이?”
할아버지는 들을수록 오리무중에 빠지는듯싶었다. 녀인이 할아버지를 바라보며 머리를 끄덕였다. 그러는 녀인의 눈길은 황황 타는듯싶었다.
“그래요. 유괴된 애들이 그쪽으로 많이 간다고들 들었거든요. 언젠가 텔레비죤프로에서 봤어요.>.
“그럼?”
할아버지께서 조심스럽게 녀인의 표정을 지켜보며 뒤말을 얼버무렸다.
“우이 백결이도 그곳에 있을지 몰라요. 아니 그곳에 있을거예요. 이번에는 못찾았지만 담엔 꼭 찾을거예요. 아, 우리 백결이! 우유과자를 잘 먹던가요?”
녀인의 눈길이 반짝 빛났다.
“어, 우유과자!”
할아버지께서 깜짝 놀라는듯 하더니 뒤말을 이었다.
“그 애가 정말 자네를 고마와 하고있다오. 자네가 돌아오면 꼭 알려달라고 말했다우.”
“그 애가요? 정말이세요? 그 애 엄마가 또 줄욕을 퍼부었죠? 그 애엄만 원래 그래요. 그 애가 나를 엄마로 따르려는가봐요. 애들은 다 그렇게 정이 많거든요.”
녀인은 사뭇 흥분을 하며 두서없이 련주포를 쏘아댔다. 할아버지는 그러는 녀인을 뚫어지게 바라보다 녀인이 말을 마치자 그중에서 문제가 된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골라 녀인에게 물었다.
“엄마라니? 그 애에겐 엄마가 없는 줄로 알고있는데.”
“네? 그 애 엄마가 없다구요? 아닌데요. 그 앤 분명히 엄마가 있는데요. 드살이 엄청 쎈 엄마가 있는데요.”
녀인의 눈길이 허공에서 허둥거리고있었다. 순간 할아버지는 또 다시 미궁으로 빠져드는듯싶었다. 녀인이 불안한 목소리로 황망하게 물었다.
“아바이, 어느 아빠트에, 몇동에, 그 앤 엄마가 있는데요 ,암펌같이 드센 엄마가 있는데요. 귀요운 녀자애가 맞아요?”
“련꽃화원 4동 3층이라 하지 않았소?”
할아버지께서 나지막한 목소리로 자냥스럽게 물었다.
녀인이 물기어린 두눈을 슴뻑거리며 머리를 끄덕였다.
“그럼 옳은데, 련꽃화원 4동 3층이...”
“3층 어느 쪽 집이던가요? ”
“아하, 그건 내 차실이군, 그저 밖에서 그 애를 보고 만나서 건네줬는데.”
“네? 틀렸어요. 그럼 우리 백결이가 아닐거예요.”
녀인의 동공이 한껐 커졌다. 이어 녀인은 얼굴을 감싸쥐고 선자리에 폭 주저앉더니 흑흑 느끼기 시작했다. 할아버지도 꺼이꺼이 울음을 삼키는 녀인을 보는것이 몹시나 불안하신지 녀인의 주위를 서성이며 중얼거렸다.
“이런 일이있나? 세상에 이런 일이…그래 자네가 찾는 애는 어떤 애란 말이오?”
녀인이 손등으로 찔끔찔끔 눈굽을 찍으며 말을 더듬었다.
“제…제가 귀여워하는 그 애는 어… 암펌같은 엄마가 있어요. 전 그 애가 엄마와 함께 나온걸 보았댔어요.”
녀인은 잠간 머리를 뒤로 제치고 힘껐 코를 들이마시더니 어흠하고 목소리를 다듬으며 말꼬리를 이었다.
“그것은 해빛 좋은 지난 봄날이였어요. 그날도 저는 백결이를 찾으러 거리에 나섰지요. 백결이가 누군인가구요? 저의 딸이예요. 하나밖에 없는 저의 딸이예요. 지난 늦가을의 어느 날, 친구들과 함께 공원놀이를 간다고 나간것이, 그 애만 영~ 돌아오지 않고있어요. 라지오며, 텔레비죤이며 신문이며에 광고를 내구 전단지를 찍어 거리마다 부쳤어요. 하지만 여전히 종무소식이예요. 난 꼭 우리 백결이를 찾아낼거예요. 지옥에 가서라도 우리 백결이를 찾아낼거에요.
그날 공원회전돌림판 옆에서 난 그 애를 보았지요. 색동저고리에 갑사댕길 매구, 엄마 손을 잡구있었는데 신통히도 우리 백결이를 닮았더랬어요. 아니 꼭 같았어요.
전 그 애한테 뛰여가서 그 애를 끌어안으며 <백결아!> 하고 소리쳤어요. 그 애는 기겁을 해서 소리지르겠죠. 그러자 그 애 엄마가 나의 품에서 그 애를 와락 빼앗아내며 저에게 줄욕을 퍼부었어요. 나더러 미쳤다는거예요.
전 울었어요. 멀리서 살금살금 그들의 뒤를 밟으며 그날 내내 울었어요. 그날 전 그들이 련꽃화원 4동 3층으로 올라가는것까지 보고 그들에게 들켜버렸어요.
그 뒤로 전 련꽃화원 문어구에서 늘 그 애를 기다렸죠. 하지만 그 애는 다시 저의 눈에 띄이지 않았어요. 전 미칠것만 같았어요. 그 애라도 보고싶었거든요.
지난달 전 텔레비죤에서 유괴된 애들이 하남성에 많이 간다는 소식을 보았거든요. 그래서 무작정 하남성으로 떠났던거예요. 우리 백결인 없었어요. 없었다구요.”
녀인은 또다시 얼굴을 가리우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할아버지는 잃어진 딸을 그리며 오열을 토하는 이 엄마를 어떻게 다독여야할지 몰라서 한숨만 풀풀 내쉬였다. 한참 지나서야 흐느끼던 녀인이 안정을 찾은듯 잠잠해졌다. 할아버지께서 “음~” 하고 건가래를 떼며 입을 열었다.
“참, 세상이란 한심한 일들도 많구려.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겠소.”
할아버지는 말을 멈추고 녀인을 일별했다. 녀인은 말이 없었다. 뚫어지게 할아버지의 얼굴을 주시하고있었다. 마치도 할아버지의 얼굴에서 그 어떤 위안을 찾으려는듯 했다.
“하느님이 무심하지 않다면 댁의 심정을 알아주고, 백결이를 찾을수있게 도와줄거유, 암 도와줄테지. 비록 내 불찰이였지만, 자네는 이 한달간, 너무도 불쌍한 한 소녀에게 사랑을 전해주었다오.”
할아버지께서 좀은 가라앉은듯한 목소리로 허두를 뗐다.
“네? 제가요?”
녀인의 눈길이 순간적으로 반짝 빛을 뿌렸다. 할아버지는 천천히 머리를 끄덕였다.
“련꽃화원 4동 3층에는 혜경이라 부르는 불쌍한 애가 살고있다오.”
할아버지는 녀인에게 혜경이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야기를 듣는 녀인의 얼굴이 차츰 눈물로 얼룩졌다.
“세상에 어쩜 그렇게 불쌍한 애도 다 있어요? 세상에...”
“그러게 말이오. 강보에 쌓여서 파출소 문앞에 던져진 때로부터 그 애의 불행이 시작되였다할가? 참, 자식을 낳기만해서 부모인가? 기르지도 못할 자식을 낳아서 던지는 부모들도 있다니.”
어쩜 가슴 아픈 현실을 말하는것 좇아 힘겨운지 할아버지께서는 여기서 잠간 말씀을 멈추셨다. 녀인은 으스러지게 입술을 깨물고있었다. 그러던 녀인이 벌떡 자리를 차고 일어섰다.
“그럴수가 없어요. 어쩜 그렇게 천덕꾸러기로 자라는 애들이 있을수있어요? 애들은 모두가 천사거든요. 천사들은 사랑속에서 커야거든요. 혜경에게 사랑을 주고싶어요. 그 애가 사랑을 알게 하고싶어요.”
녀인은 할아버지를 졸라 함께 혜경이를 찾아보기로 했다.
련꽃화원 4동 3층을 손쉽게 찾을수있었다. 동서로 두 가구가 살고있는 평범한 주택이였다.
동쪽집안으로부터 한 로인네의 앙칼진 욕지거리가 흘러나왔다. 혜경이의 양할머니인듯 했다.
“너, 이년아. 공부는 무슨 썩어빠진 공부냐, 래일부터 걷어치우구 일이나 도와라.”
너무도 험한 소리에 할아버지와 녀인은 그만 문밖에 우뚝 굳어지고 말았다.
“공부는 뭐 몸만 다니면 저절로 해지는줄 아냐? 학비를 내야지, 공책을 사야지, 게다가 점심밥값은 또 얼마구…”
잠간 뒤 울음섞인 녀자애의애절한 목소리가흘러나왔다.
“할머니, 제발 절 계속 학교에 가게해주세요. 학교에 다니면서도 전 무슨 일이나 다 할수있어요.”
“걷어치워라, 이 년아! 네 년이 공부는 무슨 공부냐? 네 년이 공부를 할 팔자를 타고나왔더냐.”
로인네의 욕설에 녀인이 참지못하고 주먹으로 출입문을 두드려댔다. 잠간후 신경질적으로 출입문이 벌컥 열렸다. 걍핏한몸집의 로파가 머리를 빠끔히 내밀고 웬 일이냐는듯 까칠하고 작은 눈을 뒤룩거렸다. 로파의 뒤에 서있던 녀자애가 할아버지를 발견하고 구성이나 만난듯 “할아버지.”하고 긴박하게 불러댔다.
그 소리에 로파가 깜짝놀라며 할아버지와 혜경이를 번갈아 보았다.
“미안하게 됐습네다. 암튼 집에 들어가서 얘기 할가요?”
할아버지께서 먼저 집안으로 한발 들어섰다.
로파는 옆으로 한발 비켜서며 “들어오시우~”하고 혼자말 비슷이 중얼거렸다.
“할아버지, 전 공부를 하고싶어요. 전 공부할래요.”
혜경이가 할아버지의 옷섶을 부여잡고 흐느끼며 소리쳤다. 할아버지는 말 없이 혜경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천천히 로파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로파의 얼굴이 일그러지며 혜경의 얼굴을 핥고있었다. 갑자기 로파가 바닥에 무너져내리며 꺼이꺼이 울음을 토해냈다.
“아이고, 내 전생에 무슨 죄를 진게 있다구, 요런 애물단지를 맡아가지고 이 고생인고~ 아이고 내 팔자야~>.
로파는 울면서 주먹으로 연신 바닥을 두드려댔다. 혜경이는 할아버지의 뒤에 몸을 숨기고 오돌오돌 떨고있었다. 로파가 벌떡 일어섰다. 로파는 황황한 눈길로 할아버지와 혜경이를 일별하더니 삽시에 와락 혜경에게 덮쳐들었다. 혜경이가 로파의 손을 피해 벽구석으로 숨어들었다.
“이 년아, 너 죽고 나 죽고, 오늘 결판을 보자, 내가 왜 이런 고생을 해야 하는가, 하늘에 물어 좀 보자.”
로파는 입가에 게질게질 허연 거품을 흘리며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고있었다.
앞에서 생생하게 연출되고있는 인생활극을 멍하니 지켜보고있던 녀인이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백결아~”
너무도 으악스럽고 생경한 목소리에 할아버지도 로파도 혜경이도 그린듯 굳어져서 녀인을 바라보았다.
녀인이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혜경이를 향해 한발한발 다가가고있었다.
“저…저이는… 뭐하는 사람이오?>.
로파가 애써 진정을 하며 녀인을 향해 더듬거렸다.
녀인이 가슴이 미여질듯 소리치고있었다.
“백결아, 내 새끼야, 네가 여기 있었구나!”
녀인이 쿵하고 주저앉아버렸다. 이윽고 크득크득 웃는듯 싶더니 넋을 놓고 소리소리 질러댔다.
“백결아, 찾았구나, 끝내 너를 찾았구나. 금쪽같은 내 새끼야. 너를 끝내 찾았구나. 그래그래, 세상 모든 애들은 다내 새끼들이지, 금쪽같은 내 새끼들이지…”
절규에 가까운 녀인의 목소리가 어지럽게 울려퍼지는 집안은 무시로 터져버리려는 화약고를 방불케하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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