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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림호 소설의 미, 륜리학적 취향진단
2014년 09월 02일 15시 26분  조회:798  추천:1  작성자: 장학규

평론
 
윤림호소설의 미,윤리학적 취향진단
                       
                                           
장학규
 
 
 
머리글
 
  오늘날 북방소설문단에서 윤림호는 변론할 나위도 없는 당당한 스타이다.문학년령의 각도에서 보면 아직은 청년작가행렬에 서야 하는 41세의 나이에 2권의 개인작품집을 펴내였고 여러권의 다인작품집에 오른 윤림호이다.뿐만 아니라 "은하수", "송화강","도라지","아리랑","천지" 등 잡지들의 수상대에 여러번 올랐었고 성소수민족문학상,연변작가협회상,해외에서 날아온 불교법왕상 등 큼직한 성과도 올린 윤림호이다.또 "투사의 슬픔"과 같은 작품들은 한문으로 번역되어 전국에까지 소개되었었고 작품 발표총수의 3분의 1남짓이 평단에서 운운하고 있다.이러한 성과는 북방은 물론 연변문단에서도 드문 일이다.그러니까 우리는 당연히 윤림호를 건드리지 않을 수 없다.
  윤림호의 창작방법은 물론 사실주의수법이다.유구한 역사와 휘황찬란한 전과를 이어온 사실주의 수법은 여전히 효과적인 창작방법중의 한가지로 공존공영을 제창하는 시대에서 절대 비난거리로 되지 말아야 한다.그러나 본 글은 그런 시비에는 걸려들념을 않고 오로지 사실주의 수법을 통하여 표현된 윤림호의 부동한 창작년대의 미학 및 윤리학적 취향을 진맥하고저 한다.
  여러 독자층의 감독,연구에 편리를 주고저 본 글은 작가의 2권의 개인작품집만 참고자료로 삼았음을 밝힌다.
 
1,전단계: 전통적 윤리도덕에 뿌리를 둔 작품이 대다수
 
  현재까지의 윤림호의 창작활동은 1985년을 분계선으로 하여 전후 두 단계로 나누어볼 수 있다. 즉 첫 개인작품집의 출판이 횡적가름선이 되었다는 말이다.
  주지하다싶이 윤림호의 창작초기는 전국 여러 분야에서 좌경 노선의 흑운을 몰아내고 반성과 극복,나아가서 재기를 시도하던 시기였다.문단도 예외없이 스스로의 점검을 시작하지 않으면 안되었다.하여 자연 상처문학과 같이 지난 시절에 대한 성토가 이루어질 수 있었고 따라서 그간 냉대되고 멸시되었던 인성이 새롭게 큰 화제거리로 나서게 되었던 것이다.
  윤림호는 물론 시대의 관성에 밀리우지 않을 수가 없었다.하여 그의 전단계 작품들은 주로 빈번한 운동세례를 걸치면서 비틀어지고 뒤범벅이 된 윤리도덕관념을 둘러싸고 진행된 것이다.
  히트작품 "투사의 슬픔"은 참회의식을 다룬 작품이다.염창록이는 사랑에 충실한 인간이었다.문벌관념이 엄격했던 낡은 사회에서 부자집 아들로 태어난 그는 과감히 여염집 계집애를 추구하는 새 사상의 소유자였다.그래서 부자간에 대판 싸움까지 벌어졌고 나중엔 집에서 쫓겨나는 신세가 된다.감옥에서 영옥이와 희극적인 재상봉을 한 창록이는 옛사람이 되살아나 순사의 직분도 불구하고 지하당에 정보를 날라주고 또 영옥이를 구원하는 실제 행동으로 사랑의 심정을 표달한다.마침내 영옥이의 꼭 닫쳤던 마음의 문을 열어제치고 사랑을 획득한다.그러나 그 대가가 너무나도 엄청났다.사랑하는 이의  총에 맞아 불구로 되었는가 하면 동란의 년대에는 반혁명으로 몰려 심한 투쟁도 받았다.그에 비해 영옥이는 너무너무 행복했다.단란한 가정을 소유했고 항일 여투사로 대접받고 있었다.그러니까 옛연인의 죽음을 두고 흘리는 투사의 눈물은 단지 창록이가 불쌍하다는 차원에서 흘리는것 만이 아니었다.창록이의 홀몸에 대비한 양심 발견이 그 밑바닥이었고 창록이의 생존함을 안 후에도 모종 원인으로 찾지 못했다는 가책이 그 둘러리였다.두말 할것 없이 투사 역시 피와 살이 있는 보통 인간이었던 것이다.작가는 이 글에서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에게 생소했던 영웅형상을 창조했던 것이다.돌부처같이 정감이란 전혀 없는 영웅형상에 아주 습관되었던 독자들에겐 자식앞에서 과거지사를 솔직하게 털어놓으면서 참회할 줄 아는 영옥이란 이 인물은 그렇게도 생신할 수밖에 없었다. 이 작품이 당시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도 여기에 있었다.한편 주인공의 양심 발견을 통하여 체현된 순수한 애정미가 독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겨준다.창록이는 오직 사랑을 위하여 직업도덕마저 버리고 연락원 노릇을 했으며 평생을 장가 들지 않았으며 억울한 누명을 썼을 때도 영옥이와의 관계를 밝히지 않았다.성분이나 사상 따위를 사랑에 융합시켰던 그때나 돈,가정을 사랑에다 연계시키는 지금에 비기면 진정한 사랑의 이미지가 확 안겨오는 마당이었다.이 점이 또한 이 작품으로 하여금 성공의 길로 닫게 한 미적요소가 아닌가 생각된다.
 
  성과작 "개를 잡은 사람"은 작가 사상경개의 그대로의 표출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구체적인 해석에 들어가기에 앞서 우선 이 작품과 같은 부류에 속하는 "태양은 내일 또 뜬다"에서의 염라왕의 말을 한단락 먼저 인용해보자.
  "...첫부류는 지상나라에서 창생을 위하여 공덕을 쌓다가 불행히 이사오게 되었거나 만창생이 우러르는 부류로 12층대의 첫층에 받들어 모시옵고...12층대 지옥에 있는 무리는 악을 덕으로 삼던 무리오이다..."
  보다싶이 "덕은 쌓은대로 가고 죄는 지은대로 간다."는 전통도덕관념이 강하게 엿보이고 있는 것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단순한 인과보응에만 얽매이지 않고 그런 경지에 빠져들어간 주인공들에게 반드시 새로운 길을 제시해주고 있는데 그것은 호인인 작가의 개성과 맞물리는 것이라 생각된다.
  "개를 잡은 사람"에서 조봉규는 자기밖에 모르는 위인이다.고향다리 건설할 때 일전한푼 내지 않는가 하면 최과부 남편이 죽었을 때 급히 수요되는 관널을 팔아먹으면서 주지 않는다.뿐더러 이웃 문서방네 집이 무너지게 되어도 일손을 도우기는커녕 시까스르기만 했고 나무 몇가지를 빌리는 것마저 거절한다.마침내 하늘이 크게 노하여 덩실하던 기와집이 일조에 재더미가 되고 조영감 자신은 그만 병석에 눕고만다.그래도 마을에는 동정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고 오히려 명절 분위기에 휩싸인다.좌상 아닌 좌상 오영감의 환갑잔치를 온 마을이 일떠나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인간공동체에 외면당한 조영감은 질식할 듯한 외로움에 모대긴다.물론 결말이 희극적으로 반전이 되면서 조영감의 새 출발을 암시하고 있으나 인과보응의 범주에 들기에는 별로 방해가 되지 않는다.
  이 소설은 그 시대배경을 빼거나 바꾸어놔도 마찬가지로 이해되고 접수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윤리도덕이란 것이 실제 인간사회에 적용된다는 말이 아닐가.최소한 인간행위의 준칙으로도 될 수 있고 사회질서의 보장에도 유익할 것이다.모름지기 작가의 초점도 그런 쪽으로 돌려진 것이 분명하다.그로써 인간의 행위미를 규명한 것이다.
 
  "삼자경"은 "사람은 본래 착했다."는 말로 시작된다.선량한 인성은 고금을 막론하고 모두가 감동하고 선호하는 바이다.대표작 "호박꽃"은 인간공성으로서의 선이란 구경 어떤 것이며 그것이 파급시켜주는 사회적 공감은 어떠한 것인가를 형상적으로 밝혀주었다.거기에 사회미로 통한 인격의 미를 유기적으로 조합시킴으로써 심미주체로 하여금 고도의 예술적 미감을 갖게 하였다.
  자식 낳이도 못해본 장모는 수수한 농촌 여인이었다.하지만 장모의 몸에는 만사람의 심금을 울려줄 수 있는 신비한 매력이 있었는데 그것인즉 자기 희생을 전제로 한 선량한 마음이다.이붓 딸의 남편이 대학에서 꾸리는 문학강습반에 추천 받았다는 소식을 접한 장모는 불편한 몸으로 진둥한둥 40리 길을 달려온다.가정의 끌끌한 일군인 영수를 사위 대신 남겨놓고 장모는 병약한 몸으로 집안팎 일을 돌본다.그래도 언제나 환한 얼굴로 "천벌" 소리를 외우고 닭모가지를 비틀 것을 추긴다.대학에 가게 된 영일이에게 새옷을 갖춰주려고 연 닷새째나 점심을 굶어가면서 장마당을 오르내렸고 약값을 공부하는 영일이와 사위의 용돈으로,그리고 아버지의 술돈으로 내놓는다.장모의 약궤를 열었을 때 주인공들은 물론 독자들도 깜짝 놀란다.장모의 이러한 행위들은 친어머니 못지 않은 혹독한 모성애가 그 출발점이었다.자신의 생명을 걸어야만 하는 막부득이한 사정이라면 계모라는 입장은 왜소하고 애매하다.물보다 진한 것이 피이기 때문이다.그것마저 서슴치 않았다면 물론 선량한 덕성이 갖추어져 있기 때문이다.그러한 행위미가 자사자리한 아버지의 형상과 격렬히 충돌되면서 공명대가 강한 장모의 인격미가 형성되게 된 것이다.나아가서 그러한 인격미가 일종의 사회미로 통하고 인정되는 것이 인간사회의 어쩔 수 없는 도덕관념이라는 해석이기도 한 것이다. 또 사실상 장모의 형상은 방대한 위력을 과시하면서 이붓 사위뿐만 아니라 석고같은 아버지마저도 끝내 울렸으며 따라서 수천의 독자들도 감동시켰던 것이다.
 
  이로써 우리는 윤림호 전단계 작품의 주요한 취향성문제를 살펴보았다.두말할 것 없이 이 시기 모든 작품들을 상술한 부류들에 억지로 갈라놓을 수 없는 것이다.이를테면 수상작 "자취"가 그렇다.이 소설에서 강하게 나타나는 개혁개방자태가 바로 다음 단계의 주류로 되는 것이다.
 
2,후단계: 비판의식의 앙양과 새로운 시각의 윤리관
 
  80년대 중반을 전후하여 중국대지에는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났다.농업구에서는 도급제를 기본상 실현했고 공업구에서는 연해개방도시,경제특별구들을 확정하고 가동했다.국문이 서서히 열림과 더불어 장기간 페쇄되고 구속되었던 사상이 활기 띠기 시작했고 백가쟁명,백화만발의 분위기가 새롭게 조성되었다.이런 시대의 변모에 가장 빨리 합세한 분야가 곧바로 문단이었다.지성적이고 양심적인 문인들은 한결같이 일떠나 시대와 동조하면서 비판적인 안광을 가지고 인간의 본질과 개성을 까밝히기 시작하였다.
  윤림호는 들끓는 시대격정을 피부로 느끼고 소위 문제작,반향작,파문작들을 연달아 내놓았다.물론 창작은 작가 개인의 사유활동인만큼 역사를 가르듯 그 어느 한 시각을 확정해서 가를 수 없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우에서 이미 언급했듯이 윤림호는 전단계에서 이미 "자취"와 같은 탐구적인 작품을 발표했었다.그 맹아가 이쯤에 와서 합리적인 계승과 발전을 가져왔던 것이다.
 
  "깊섶의 들국화"는 당시에 상당한 호성을 받았던 작품이다.
  소설은 두 여인의 동일한 운명그라프를 통하여 사랑이란 권리로도 강박으로도 얻을 수 없음을 알려주고 있다.그러나 이런 주제보다도 인간심리,인간생리에 대한 진실한 반영이 퍽 돋보였다.최형근은 항일비밀연락원, 새사회지도간부의 신분에서 선후로 월향이와 계모를 강간하여 손에 넣는다.그리고 사랑의 적수에게 추호의 사정도 없이 호된 강타를 안긴다.작가가 즐겨 부각했었던 도의적이고 이상적인 인물형상과는 너무나도 판이했다.월향의 형상도 약간 빗나가는 실정이다.한번 마음을 주면 평생을 변치 않는다는 전통 사유모식에 굳어진 월향이지만 여자는 한 남자만 알고 죽는다는 윤리관념을 무시하고 서습없이 수수밭에서,오두막집에서 옛연인과 정을 나눈다.계모는 더욱 노골적이다.달아오른 욕정을 식히려고 거리낌없이 군사내들을 끌어들이는가 하면 이붓 자식에게도 분별없는 정열을 쏟아붓는다.그녀들은 낡은 정조관념의 배반자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그녀들을 대함에는 동정과 지지를 보여주었는데 그것은 그 행위들이 정주제에 충실하게 복무할 수 있기 때문이다.최형근에게 본능이란 기댈 언덕을 마련했다면 월향이나 계모에겐 인지상정을 부여하고 있다.그래서 우선 인물부터 진실하다는 감각이다.다른 일면으로 윤리도덕이란 자기 희생을 전제로 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이 잡혀온다.그리고 남녀간의 사랑은 심령의 공명과 육체적향수가 같은 분동으로 작용한다는 역설이 당금 안겨온다.이 점은 우리 소설이 애정주제를 다룸에 있어서 인간육정을 의식적으로 외면해버렸던 현실을 직접적으로 비판한 것으로 된다.
 
  단편소설 "천치 빵덕이" 역시 인간본질을 파헤친 작품이다.은원관념이 공공연히 멸시되는 삶의 현장에 착안점을 두고 날따라 메말라가는 인정세태를 시사하고 있다.
  빵덕이는 그 자신이 천치였던 관계로 피동적인 인생을 영위하게 된다.좁쌀 한자루에 팔리워 서캐 서말이라는 장외톨의 안해가 되는가 하면 철부지 방국이의 고집에 넘어가 안해된 책임과 의무를 무시하기도 한다.장서방이 넘겨주는 쌀과 돈을 납작납작 받아서 생계를 유지하면서도 추호의 후회나 가책도  없이 장서방을 밖으로 내몬다.반면에 싫다는 방국이를 한사코 붙쫓으며 눈먼 사랑을 퍼붓는다.그에 비해 사유가 건전한 방국이는 고의적인 배반을 한다.천치누나가 힘겨웁게 펼쳐주는 그늘밑에서 탈없이 자라고 공부했건만 자기를 보고파 찾아온 빵덕이를 더러운 송충이 피하듯 한다.뿐더러 누나와 함께 살게 한다는 조건을 내걸고 장외톨의 소 네마리를 끌고 가서 감옥에서 놓여나왔지만 그것이 장외톨이나 빵덕이의 덕이 아니라 친구들의 신세로 일축해버린다.그때에야 빵덕이는 천치의 감각에서도 "세상에서 누가 제일이야? 그래도 내 서방이지..." 하는 체득을 얻고 장서방을 찾아나섰지만 그는 이미 타역의 객이 된 뒤었다.
  이 소설은 경제시대에 들어서면서 점차 표면화된 인간의 자사자리한 본질적 측면을 생동하게 그려내였다.그로써 복잡한 인생을 살아가면서 구경 어떤 마음 가짐을 가져야 할 것인가 하는 물음을 넓은 사색의 공간을 두고 던지고 있다.한편 인간의 개성이 고도로 발휘될 때 윤리도덕이란 얼마나 무맥한 것인가를 예술적으로 해명하고 있다.
 
  단편소설 "산촌의 단풍"은 윤리도덕이 즐겨 타매했던 제3자를 정면으로 내세우고 있어 한때 큰 물의를  일으켰었다.그러나 곰곰히 파보면 작가의 도전적인 자세보다도 낡은 관념을 짓부신 동시에 새롭게 구축한 작가 나름의 새 윤리관이 퍽 심각하다.
  소설은 서로 교차되고 평행되는 다층차적 철리구조를 설계하였다.
  우선 가정 윤리가 사회윤리에 종속되지 않는다는 견해가 남달리 독특하다.영송이는 안해있는 몸으로 장옥이와 정을 나누고 임신까지 시킨다.재래의 관습대로 보면 영송이는 정파답지 못한 패덕한이며 타락된 인민교원의 형상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송이는 사후 덕골 사람들이 "신성한 영지로 받들고 주인을 선택하여 모시"는 사뫼산을 오뫼산으로 개칭할만큼 위신이 높았다.여기서 우리는 공공사업과 가정 생활 이 양자가 서로 유기적으로 연계되고 있지만 또 각자가 완전히 틀려진 개념이라는 판단을 쉽사리 터득할 수 있다.바꾸어 말하면 산촌의 교육사업을 위하여 안일한 도회지 환경도 마다하는 영송이의 정면형상은 그의 사생활의 어두운 면에 의하여 압도되거나 말살되지 말아야 한다는 작가의 변론을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이 점은 우리 사회의 고루한 인습에 대항한 것으로 된다.
  다음은 영송이의 사생활을 어떤 입각점에서 해부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얼핏 보기엔 영송이의 논리는 자리잡을 바탕이 전혀 없다.을녀는 현처량모형의 여인이다.굳고 부지런할 뿐만 아니라 외모 또한 아름답다.반면에 장옥이는 "잠이 다닥다닥 핀" 못난 얼굴의 여인이었고 자연을 대비한 생존력이 형편없이 미약했다.그러나 사람은 어디까지나 가정울타리에만 인생의 낙취와 삶의 가치를 부가할 수 없는 것이다.낙후한 덕골의 교육사업에 일생을 바치려는 영송이를 좁은 안광을 가진 을녀로선 지지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그래서 영송이는 심한 고뇌속에서 모대긴다.부부간의 감정이 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점차 멀어져가고 소실되어갈 때 나타난 장옥이는 동정과 사랑으로 영송이의 얼어드는 마음을 녹여주었고 영송이로 하여금 계속 산촌의 후대교양에 헌신하게 하였다.이러한 성애에 도덕멍에를 씌우기는 어려운 일이다.오히려 사랑의 진실한 함의가 노출될뿐이고 인생의 참뜻이 전달될 뿐이다.
  끝으로 장옥이의 형상이 가장 인간 본성에 접근한다는 얘기이다.못생긴 인물로 하여 남성세계에서 축출당한 장옥이는 독신주의를 신봉하게 된다.하지만 그녀 역시 7정6욕이 있는 싱싱한 인간이었다.그리고 마음 심처에 모성애를 간직한 정상적인 여인이었다.장옥이의 본능의 부활은 훌륭한 인격의 소유자인 영송이를 만나서였다.용모가 단정할뿐만 아니라 고상한 정신세계마저 갖춘 영송이앞에서 장옥이의 도고한 마음가짐은 와그르르 무너지고 따라서 사랑의 불길이 타오르게 되는 것이다.그렇다고 누구처럼 꼭 결혼을 전제로 하는 사랑은 아니였다.오로지 마음의 기탁을 찾은 것이며 그로써 영송이를 본받아 덕골의 후대양성에 전력할 것을 다짐하게 되는 것이다.장옥이의 성격발전은 그 계기가 미덥기에 타매할 수 없고 영송이를 구했다는 사실적인 후과를 초래했기에 적극적이다.
 
  상기한 작품외에도 대표적인 것들로 "낙엽","할미꽃" 등을 들수 있다.물론 한결같이 낡은 윤리도덕관념들을 질타하고 새로운 정조관,절개관,효성관을 제시하는 작품들이지만 지면상 제한으로 더 깊이 파고들지 않는다.총적으로 윤림호의 두번째 단계의 작품들은 주로 비판성격을 띠면서 비극을 이루고 있는데 감각주체인 독자의 정서파동을 통한 미적감수가 상당히 효과적이다.또 남들이 건드리기 무척 저어하는 처녀지를 과감히 개간하면서 보여준 시대조류보다 앞선 작가의 심미시각이 탄복된다.
 
맺는말
 
  윤림호작품에 대한 전면적이고 체계적인 평론은 아마 이 글이 처음일것이다.그렇다고 이 글이 정론으로 되어진다는 말이 아니다.한 작가에 대한 평가는 토론과 쟁명을 거치게 되며 종당엔 역사가 판단을 내리기 마련이다.단지 이런 기회가 너무 늦게 온 것이 서글프다는 느낌이며 "재야계" 문인에게도 얼마만한 대우를 해주어야 한다는 생각이다.하여 서툰 글이나마 엮어서 내놓는바이니 평론계뿐만 아닌 여러 선생님들의 기탄 없는 지적과 가르침을 바라마지 않는다.
 
 
                                                                                   1995년 7월 18일 해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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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작성자 : 허창렬
날자:2014-09-02 21:2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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