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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화 수필에서 드러나는 작가적 스찔
2016년 03월 18일 12시 13분  조회:769  추천:0  작성자: 장학규
평론

리화 수필에서 드러나는 작가적 스찔
 
 
작품은 작가의 손을 벗어나면 객관적인 존재가 된다. 작품 한편을 두고 부동한 해독이 나오게 되는 리유이다. 또한 그래서 대부분 평론이 먼저 작품해석에 치중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필자는 평론이 단순한 문장 해부의 기능만 수행한다면 자격미달이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많은 평자들은 글의 내용에 집착한 나머지 작가의 개성이나 스찔은 지나쳐버리는 경향이 심하다. 우리의 평론이 독자들이 대부분 인지하고있는 내용에 대한 장황한 설명에 그치고있다고 비판받고있는 대목이다. 특히 나름대로 글은 이렇게 저렇게 써야 한다고 도도하게 지적하는 고약한 버릇이 있는 사람들을 보면 머리가 아프다. 

어쩌면 일련의 작품을 통하여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작가의 창작 개성을 살펴보는것이 더 보람찬 평론이 될지도 모른다. 이런 출발점에서 필자는 근년에 문단에서 조용히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리화의 수필에 주목했다. 

남달리 시조에 애착을 보이고있는 리화는 시창작에 천부적인 재능을 보여주고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량적으로 수필을 더 많이 창작하였고 성과도 수필에서 거두고있다. 

리화의 수필을 읽다보면 금세 리화의 글일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을 앞세우게 된디. 쉬운 말로 풀이하면 작자의 이름을 밝히지 않는 전제하에서도 이건 리화의 글이겠구나 먼저 짐작하게 된다. 그만큼 리화의 수필은 리화만의 모습과 냄새와 색갈이 진하게 묻어있다. 
 

제목으로부터 보는 작가의 스찔

작가의 스찔은 어느 한편의 글이나 어느 한시기의 작품에 국한되는것이 아니라 전반적인 창작활동에 관통되는 특성을 가진다. 때문에 작가가 어느 정도로 성숙했냐를 가늠하는 척도는 그 작가가 자체의 스찔을 얼마나 형성하고있냐에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작가의 스찔은 여러면에서 표현된다. 심리학에 정세(定势)라는 말이 있다. 일종 마음의 준비상태를 지칭하는 말인데 “정세”는 앞으로의 행위활동에 정향 또는 반향적인 추동역할을 놀게 된다. 

문학창작에도 모름지기 “정세”란것이 있다. 작가가 어떤 준비과정을 거쳤냐에 따라서 그에 어울리는 형식의 작품이 형성되는데 작가의 스찔은 바로 그렇게 저도모르게 작품속에 녹아버리게 되며 내용과 형식의 제요소에 구체적으로 표현된다. 

그 일례로 창작의 첫 순서가 되는 제목을 살펴볼수 있다. 형상적으로 표현하면 제목은 작품에서 출입문과 같은 역할을 가진다. 글 잘 쓰는 사람은 제목부터 특색이 있다. 일단 제목이 독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을때 그 작품은 이미 절반은 성공했다고 볼수 있다. 

그럼 리화 수필의 제목에서 어떤 작가적인 스찔이 엿보이는가 살펴보자.

앞에서 필자는 리화가 시적 재능을 갖추고있다고 지적한바 있다. 그래서인지 리화는 수필 제목도 시적인 정서가 다분한걸로 선택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솨~솨~’ 카드고개 넘어가네(흑룡강신문)”는 시 같은데 많이 쓰이면서 감탄의 뜻도 함께 나타내는 종결토 “네”가 들어갔는데다 의성의태어 “솨~솨~”가 가미되여 제법 운률이 전달된다. 제목 자체가 시어로 되여진 케이스이다. 

“도라지” 잡지 “장락주문학상” 우수상 수상작인 “선녀야, 계곡물에 막걸리 부어라”는 그대로 풍월을 읊는 격이다. “선녀”를 불러놓고 “계곡물에 막걸리 부어라”고 명령하는 언어구사는 시인다운 배짱이 아니고서는 상상해내기 어렵다. 더불어 작가가 전달하고저 하는 이미지를 한결 형상화하는 효과를 거두고있다. 

“내 머리에 꽃핀 하나 달아줄수 있나요(흑룡강신문)”에서는 수줍은 녀자의 아름다운 소원 하나가 간절하게 호소되고있다. 수십년후 파파 백발로인이 되여서도 “꽃핀”을 달고싶은 녀자의 본성을 이보다 더 정서적으로 표달할수 있을까?!

“사쿠라야, 톡톡 터져라, 꽃비 내려라(장백산)”는 2행 시구가 그대로 글의 제목이 되여진 구조이다. 제목이 두마디로 이루어져 특이하고 생경한것만큼이나 호기심을 부쩍 당겨준다. 읽지 않으면 밥맛이 잃어질 지경이다. 여기서도 의성의태어 “톡톡”이 사용된 경우로 작가의 스찔이 한결 드러나는 대목이다. 

흑룡강신문 랑시문학상 우수상 수상작인 “겨울 수채화에는 그리움이 물들고”는 정서적인 색채를 매개물에 접목시켜 상상의 폭을 한층 넓혀주고있으며 대구법을 활용한 “날아라 양말, 달려라 맨발(도라지)”은 향음자음의 분포에서도 가사적인 특색을 먼저 보아낼수 있다. 

이외에도 시적 표현을 시도한 제목으로 “취미(료녕신문)”, “새벽, 소리를 듣다(송화강)”, “주방이여, 나의 천국이여(장백산)” 등이 있다. 

리화 수필 제목의 또다른 특색으로 서사성을 꼽을수 있다. 일반적으로 제목은 글의 내용을 고도로 함축하는 언어를 선택하는게 주류적인 흐름이라 해야겠다. 

그러나 리화는 제목을 풀어쓰기를 즐긴다. 그것을 굳이 “서사성”이라고 해석하는건 짤막한 제목일망정 대개 하나의 사연을 담아내고있기때문이다. 

“도반은 지금 수련중입니다(도라지)”는 인생을 살면서 겪는 풍파와 그것을 이겨나가는 과정을 수련이라고 직설적으로 말하고있다. 그런데 그 수련의 주인공이 “나”가 아니고 “도반”이다. “도반”은 불교용어로 함께 불도를 수행하는 벗을 가리킨다. 자칫 지인의 인생수업 과정을 말하는것처럼 보이나 실은 작가 자신의 체험을 스스로에게 전하고있는것이다. 

“내 DNA는 어디로 흘러가는가(흑룡강신문)”는 반문구를 사용한 그대로 아주 단순하게 자신의 DNA 기원을 더듬고 현재 상황을 검토하고 미래의 불활실성에 대해 탐구하고있다. 

“게임, 그 세상에도 희노애락은 있었다(송화강)”는 말하려는 주제가 일목료연하다. 어쩌면 내용을 더 읽을 필요가 없어져보인다. 

“이제 일년, 상큼한 인연(송화강)”도 누군가와 엮은 1년간의 연분을 얘기하려는 목적성이 확연히 드러난다. 

이런 류형의 작품은 “그런 꼬리 하나 필요했다(도라지)”, “계절의 옥상에서 락원을 만나다(도라지)”, “네모난 내가 동그란 꿈을 꾸다(장백산)” 등이 더 있다. 

제목이 주제를 담아내는건 당연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리화의 제목에서 색다른 점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수 있다. 특히 “다, 가”와 같은 종결토를 많이 사용함으로써 제목 자체가 하나의 문장으로 완성된다. 따라서 전달하려는 이미지가 한결 또렷하고 명확하다. 
 

예술적표현방식으로부터 보는 작가의 스찔

작가의 스찔은 제재, 주제를 포함한 작품 전반에 나타난다. 그렇지만 필자는 그래도 작가의 스찔은 예술적표현방식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고 고집하고싶다. 언어를 유일재료로 하고 언어의 파악을 통해야만 형상재창조가 가능하다는 문학의 특성상 어떠한 류형의 언어를 자주 선택하고 어떠한 문체를 구성하기를 즐기냐에 따라서 작가들은 서로 구별된다. 김학철선생의 글에서 풍자적이고 비판적인 냄새를 직접 맡을수 있었다면 림원춘선생의 작품에서는 향토적이고 구수한 정서를 바로 접할수 있었다. 

여기서 한마디 짚고넘어가야 할 일이 하나 있다. 우리문단에서는 작가의 문체연구에는 많이 등한한거 같다. 장기간 작품의 내용에만 집념하는 경향이 강하고 가끔 문체에 눈길을 돌렸더라도 미문(美文)에만 필묵을 할애할뿐 다른데는 신경을 도사릴 궁리 자체를 하지 않는다. 천편일률적인 문장구성과 문장 다듬에 구미가 굳어진 느낌이다. 작가는 언어를 나름대로 조합하는 특성이 있고 그러다보면 그것이 하나의 스찔로 굳어져 다른 사람과 구별되는 가장 뚜렷한 특색이 된다. 이런 의미에서 표현방법에서의 특수성을 찾아내는것은 그 작가의 스찔을 료해하는 하나의 도경이 되기도 한다. 

리화의 수필은 우선 산문이라는 그 자체에 충실하여 짜임새가 느슨하고 긴박감보다 넉넉함을 선사한다. 작가의 여유로운 성격과 많이 담아있다. 특히 작품 갈피에 자작시를 한두개 끼여넣는것이 거의 습관이 되고있다. 리화 수필 작품의 절반이상에 시작품이 삽입되여있다는것을 감안할때 그것이 이미 작가의 하나의 “고질”로 고착되였다고 결론내려도 무리는 아닐것이다. 

그중 “바다를 듣다(장백산)”에는 4수의 시가 들어있다. 여기서 작가의 자유분방함과 느끗함을 엿볼수 있다. 한편 대자연과 인간사회에 대한 작가의 락관적인 정서와 진취적인 태도를 반영한다. 

리화 문체의 또 하나 잘 드러나는 특징은 남성적인 추세와 취향이다. 

“취미(료녕신문)”는 첫머리에 “수퍼에 가면 술 코너에서 한참씩 서성대군 하는 나는 애주가이다. 가끔은 맛있게 보이는 술 몇병 골라와서 맛보기도 하지. 나한테 작은 소원이 하나 있어. 널직한 집에서 살게 되면 술창고 하나 따로 마련하는거야. 세계 각국의 미주들을 갖춰놓고 그 술을 따라 마실수 있는 다양한 술잔들을 쭉~ 진렬해놓고 방문하는 사람에게마다 한잔씩 권하는거야.”라고 적고있다. 연후 술에 취해 된장국을 찾는 장면, 술을 보면 그속에 뛰여들고싶은 심정, 술과 박치기하려는 충동 등을 핍진하게 그리고있다. 작가의 이름을 밝히지 않는다면 녀성의 글이라고 판단하기 쉽지 않다. 그만큼 작품의 파워가 강세적이고 스케일이 확장적이다. 

“선녀야, 계곡물에 막걸리 부어라(도라지)”에서는 서두에 “막걸리 담은 호리병을 옆구리에 찬” 주인공이 등장한다. 아직 술을 마시기전인데도 “청담(清潭)”을 보고 선녀가 되고싶어지고 “내가 선녀라면 먼저 나무군 꼬셔야지. 내가 일부러 놓은 사랑의 투명한 날개옷 덫에 걸린 사냥군과 한평생 살아보고싶다.”고 통 큰 상상부터 앞세운다. 이어 “오솔길로 흰 수염을 내리쓰는 신선들이 나타남직도 하다”면서 “그러면 선주(仙酒)는 아니지만 내 컬컬한 막걸리 한잔 권해보고싶을텐테”라고 소원한다. 끝내 “계곡이 시작되는 정상에 이르러 막걸리 호리병을 꺼내여 퐁퐁 솟는 샘물에 담근다…샘물처럼 시원해진 막걸리가 그대로 시원한 감로수가 되여 혀끝을 적시고 목구멍을 적신다. “. 작가는 이쯤에서 “선녀인들 나에 비기랴, 신선인들 나에 비기랴.”면서 “취하지 않는체 하는것은 인간의 몫이지만 지레 취해서 흥겨워지는건 자연의 몫일지라…나도 취해보고 너도 취해보자”고 격정 높이 부르짖는다. 

황진이와 같은 도고함과 대범함 그리고 일필휘지로 내달리는 기세가 돋보인다. 그보다 웅성미에 대한 고양을 통해 자연의 기적과 화려한 경치앞에서는 누구나 자신의 정체성을 무시하고 한번쯤은 일탈할수 있다는 주장이 동감된다. 

“바다를 듣다(장백산)”에서도 어김없이 남성의 점유물같은 “술”이 등장한다. 
“술을 마셨다. 정확히 맥주 한병을 아주 잠간사이에 비워버렸다. 컵의 필요함도 못 느끼고 병 그대로 꿀꺽꿀꺽 마셨다.”
서두의 말마디들이다. 세마디가 3개 단락으로 나뉘여져 있다. 빠른 절주와 동시에 패기가 넘쳐난다. 바다를 듣기 위한 전주치고는 나름 요란하다. 바다의 지름과 깊이에 전률해서인가 아니면 바다의 속도와 기세와 사나움에 두려움을 느껴서일까. 작가는 바다에 앞서 먼저 취해있다. 

상기 류형의 수필들을 분석해보면 언어 선택에서 격앙적이고 즉흥적이며 밝고 생동한 언어가 주를 이루고있다. 하나의 창작흐름을 형성하기 위해 단어 하나라도 의식적으로 다듬고 또 다듬은 흔적이 진하다. 
 

수사법으로부터 보는 작가의 스찔

작가라면 물론 다양한 수사법을 능숙능란하게 다룰줄 알아야 한다. 장기간의 창작실천과정에서 수사법은 작가의 필속에 이미 녹아들어 특별히 신경을 도사리지 않아도 저절로 흘러나오게 된다. 머리속에 생각이 돌기에 앞서 필이 먼저 알아서 달려나가는 경우도 자주 있다. 

그래도 여러가지 수사법중에서도 작가가 자신의 애호에 따라 특별히 선호하고 손에 익고 또 자주 쓰는 수사법들이 있기 마련이다. 모름지기 그것이 작가간의 직관적인 구별이 된다. 

리화는 창작에서 중단법과 생략법을 유달리 많이 쓴다. 거의 모든 작품에서 사용하고있다고 말할수 있는데 말마디가 끝을 맺지 못하고 갑자기 중단되거나 느닷없이 생략되고있다. 

“적어도 나한테서는.” (“취미”에서)
“강제적인 의념을 주면서.” (“내 머리에 꽃핀 하나 달아줄수 있나요”에서)
“력사는 굳어지고 문명은 흐르고 바뀌고…” (“내 DNA는 어디로 흘러가는가”에서)
“저렇게 나한테로 동그스름한 해평선으로 휘우듬 항하며 달려오는것이.” (“바다를 듣다”에서)
“서른이 넘어서부터는 많이 좋아져서 지금은 거의 확인을 안하지만.” (“도반은 지금 수련중입니다”에서)
“풀과 꽃과 나무와 곤충과 새와 강아지와 그리고 이 땅과 교감하고 하나가 될수 있는 그런 꼬리 하나.” (“그런 꼬리 하나 필요했다”에서)
“계절은 흐르고 풍경은 바뀌는것.” (“선녀야, 계곡물에 막걸리 부어라”에서)
“마치도 기운 양말이 가난의 상징인것처럼.” (“날아라 양말, 달려라 맨발”에서)
“이룩하고싶은게 너무 많고 이룩해드리고싶은게 너무 많은데 벌써 죽음을 생각하고 죽음이 다가왔다면…” (“계절의 옥상에서 락원을 만나다”에서)
“어쩌면 다이아몬드의 변치 않는 강력한 힘보다 강한건 변하기전에 지켜내는 힘인지도…” (“옥반지”에서)

우의 례문들에서 볼수 있는바 리화한테는 어떠한 토도 한개 단락을 마무리짓는데 방해가 되지 않는다. 접속토, 규정토는 물론이고 주어를 보좌하는 격토나 도움토도 미안한줄 모르고 문장을 종결해버린다. 그것도 대부분 경우 생략부호가 인용되지 않고 그대로 마침표가 되여있다. 시가 아니고서는, 그리고 리화가 아니고서는 두번 다시 볼수 없는 진한 풍경이다. 리화가 리화일수밖에 없고 리화의 글이 금방 눈에 들어오는 남다른 특별한 특징중의 하나라고 말할수 있다. 

리화가 즐겨 쓰는 수사법으로 또 렬거법을 들수 있다. 
“풀과 꽃과 나무와 곤충과 새와 강아지와 그리고 이 땅과 교감하고 하나가 될수 있는 그런 꼬리 하나.” (“그런 꼬리 하나 필요했다”에서)
“나, 이 시대의 사내가 되여, 나, 이 시대의 한량이 되여” (“바다를 듣다”에서)
“술이야, 풍경아, 그리고 사람아, 이 세상아, 취한 나를 아름답게 봐주렴. 취한 나도 아름다우니께.” (“취미”에서)
“종교는 없어도 수련은 있었던거 같다. 참다운 나를 더 크게 키우고 거짓의 나를 더 작게 하기 위해 부단히 갈등하고 발버둥치면서 살아온 그 하루하루가 모두 수련이였던것 같다. 많이 아프고 두려움 많고 나약했던 자신을 더 건강하고 더 굳세고 더 강하게 만들기 위해 자기 내면과 싸우고 나를 둘러싼 환경과 싸워온 시간들이 모두 수련이였던것 같다.” (“도반은 지금 수련중입니다”에서)

실례를 들자면 너무 많아 여기서 그치고저 한다. 단 작가가 렬거법을 자주 사용하는 리유는 자신의 감수와 주장을 독자에게 주입하는 효과를 노린 원인도 있겠지만 어순의 율동을 지향하고 절주미와 세련미를 추구하는 작가의 본능적인 욕구가 그 원동력이 되였다고 볼수 있다. 특히 단순 단어의 렬거보다 단일문들의 렬거, 나아가서 복합문 형식의 렬거 조합은 혀를 내두를 지경이다. 리화의 수필을 조금이라도 유의해 살펴본 독자라면 리화는 심리묘사나 정서적인 느낌에서만 렬거법을 활용하는것이 아니라 행동 또는 동선같은 대목에서도 점진식 렬거법을 씀으로써 독자들을 자기가 목적한바로 끌고간다는것을 발견할수 있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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