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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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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백석 / 자작나무 댓글:  조회:2539  추천:0  2018-09-08
  백석 /자작나무   山넘어는 평안도平安道땅도 뵈인다는 이 山골은 온통 자작나무다 그리고 감로甘露같이 단샘이 솟는 박우물도 자작나무다 그맛있는 모밀국수를 삶는 장작도 자작나무다 밤이면 캥캥 여우가 우는 山도 자작나무다 산골집은 대들보도 기둥도 문살도 자작나무다 처음 이 시를 이렇게 읽었을 때에 너무도 단순한 내용이 의아했습니다. 그냥 산골의 모습을 말하고 있으면서 화자의 감정도, 화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것도 시가 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가 되는 이유를 찾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백석이 시로 발표했으니까 시라고 해야하는데 지금까지 백석의 시를 보았을 때 이렇게 단순하게 쓴 것이 없어서 화장을 하는 내내 고민이 되었습니다. 그러다 '-도 자작나무다'의 반복을 시로 본다면 이 시는 운율을 반복한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시라 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山넘어는 평안도平安道땅도 뵈인다는' 부분이 없을 때에 오히려 운율이 살아납니다.   이 부분을 없애고 읽으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 山골은 온통 자작나무다 그리고 감로甘露같이 단샘이 솟는 박우물도 자작나무다 그맛있는 모밀국수를 삶는 장작도 자작나무다 밤이면 캥캥 여우가 우는山도 자작나무다 산골집은 대들보도 기둥도 문살도 자작나무다   그러면 화자가 자작나무 숲을 이루고 있는 산골에 가서 온통 하얀색으로 뒤덮인 세상을 경험하는 것이 됩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담샘물을 마시고 맛있는 모밀국수도 먹고 산골집에 자면서 밤에 여우가 우는 소리를 들으며 하얀 대들보, 기둥, 문살 등 온통 흰색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외는 다른 뜻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백석이 단지 자신이 본 자작나무을 통해서 본 흰색을 강조하는 것인가? 이렇게 단순하게 나열을 통해서 운율을 보여주려고 시를 쓴 것인가? 그렇다면 백서이 생각하는 시는 무엇인가? 아니면 내가 못 본 다른 부분이 있는 것인가? 생각하다가 '山넘어는 평안도平安道땅도 뵈인다는'는 부분을 괜히 붙인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평안'이라는 말의 의미를 생각했습니다. '걱정이나 탈이 없음'이란 의미이다. 화자는 이것을 말하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궂이 '山넘어는 평안도平安道땅도 뵈인다는' 첫구에 붙여 첫구의 길이가 길어서 부조화를 이루고 이 첫구를 제외하고 모두 '-도' 붙은 것을 볼 때에 이 부분을 강조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보니 시상이 점점 큰 곳에서 작은 곳(산에서 집안의 방)으로 좁아지면서 단샘물도 마시고 맛있는 모밀국수도 먹고 편안하게 방에 있고 하니 이 산골방이 바로 평안에 가까운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백석의 다른 시를 보면 이렇게 뜬금없는 말이 하나씩 있어 백석이 말하려는 의미를 나타낸다. 특히 '함주시초'에 시에서 두드러진다.'백화'는 '산중음'에 속해있는데 '산중음'은 면밀하게 살펴보지 않아서 이런 면이 있는지 확신할 수없다. 그러나 이전 시를 바탕으로 보면 백석이 '山넘어는 평안도平安道땅도 뵈인다는'을 그냥 붙인 것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고 그러므로 백석은 이 시에서 백석이 원하는 '평안'을 더 확장하면 백석이 일제강점하에 있는 이 땅에 이 자작나무 숲에서 느끼는 '평안'이 오기를 바라는 내용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여러번 생각한 끝에 그렇다고 확신했다. 다만 이 부분을 첫구에 써서 조금은 자연스럽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이 시를 검색하니 시가 이렇게 되어있었다.   백석 白樺   산골집은 대들보도 기둥도 문살도 자작나무다 밤이면 캥캥 여우가 우는 山도 자작나무다 그맛있는 모밀국수를 삶는 장작도 자작나무다 그리고 감로甘露같이 단샘이 솟는 박우물도 자작나무다 山넘어는 평안도平安道땅도 뵈인다는 이 山골은 온통 자작나무다 '山넘어는 평안도平安道땅도 뵈인다는'이 맨 뒷구인 것이다. 백석이 말하려는 결론인 것이다. 백석이 '산골집'에서 자신이 원하는 '평안'에 가까운 것을 느꼈다는 것이다. 오! 그리고 이렇게 시를 읽으면 시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된다. 역시 백석은 단순하게 운율만으로 시를 쓰는 사람이 아닌 것이다. 시 속에 자신이 바라는 세상을 쓰고 있는 것이다.       백화(白樺) / 백석 산골집은 대들보도 기둥도 문살도 자작나무다  밤이면 캥캥 여우가 우는 산(山)도 자작나무다  그 맛있는 메밀국수를 삶는 장작도 자작나무다  그리고 감로(甘露)같이 단샘이 솟는 박우물도 자작나무다  산(山) 너머는 평안도(平安道) 땅도 뵈인다는 이 산(山)골은 온통 자작나무다      조선 건국 70주년  [ 2018년 09월 10일 ]        
5    [매일 윤동주 시 한수 공부하기] - 유언 댓글:  조회:3238  추천:0  2018-09-08
유언 / 윤동주 후언─ㄴ한 방에  유언은 소리없는 입놀림.  ──바다에 진주 캐러 갔다는 아들  해녀와 사랑을 속삭인다는 맏아들  이 밤에사 돌아오나 내다봐라──  평생 외로운 아버지의 운명(殞命),  감기우는 눈에 슬픔이 어린다.  외딴집에 개가 짖고  휘양찬 달이 문살에 흐르는 밤.  /// 1937년에 창작한 시이다. 식민지하의 고독한 영혼이 숨어 흐르는 듯하다. 한적한 시골의 정서에 담담한 슬픔이 어려있는 듯 시인의 내성적인 생각의 깊은 강에 놓인 현실, 어쩌면 터질 것 같은 암담함을 말하고자함인 듯싶다.   ========================///덤으로 더...   1. 조선일보 39.2.6에는 윤동주의 이 실리는데, 이 작품에서는 특이하게도 필자의 이름이 ''尹 柱'라고 되어 있었습니다. (당일 신문의 마이크로 필름, 영인본 등에서 교차 확인했습니다.) 오기인지 필명 중 하나인지는 확인할 수 없으나 전자일 확률이 높을 것이라 사료됩니다.   2. 는 조선일보의 1938년 10월 17일에 게재된 것이 맞습니다. 39년에 발표되었다는 연보가 틀린 것입니다.    3. 윤동주는 위의 2개 글 이외에도 조선일보에 산문을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1939년 1월 23일, ) 위의 두 작품이 수록된 신문지면은 전집에 수록되어 있으나  는 그렇지 않습니다. 가 수록된 조선일보 신문을 영인한 PDF 파일...   4. 위의 모든 글은 조선일보의 "學生 페-지' (당연히 '페-지'는 page를 일본식 장음표현으로 음차한 것입니다.)라는 섹션에 수록되었습니다. 이 섹션은 일요일자 신문에 나오던 것인데(당시의 조선일보는 석간이고 일요일에 신문이 나왔습니다.) 이름 그대로 학생들의 글(비평, 수필, 시, 꽁트 등)을 수록한 지면이었던 것 같습니다.   =====================덤으로 더 더... ‘감는 눈’의 시선과 폭력에의 저항 - 윤동주의 시를 읽는 새로운 방법 - 1)임현순* 1. 시작하는 말 2. ‘감는 눈’의 상징과 내재된 시선 3. 공간화된 ‘눈’과 시선의 확장 4. ‘눈’ 상징의 분화와 시선의 연계 5. 마치는 말 참고문헌 1. 시작하는 말 시인 윤동주가 1945년 29세의 젊은 나이로 후쿠오카의 차디찬 감옥 에서 옥사한 지 어느덧 6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정지용이 서문을 쓴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가 발간된 것도 그로부터 오래지 않 다.1) 그런데 반세기가 넘는 시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윤동주는 독자 들 가까이에 있다.2) 세대를 초월해 독자를 사로잡는 윤동주 시의 매력 * 이화여자대학교 강사. 1) 윤동주,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정음사, 1948). 2) 1994년~2004년 상반기까지 최근 10년간 국내대형서점의 대표격인 교보문고의 베스트셀러 목록을 살펴본 결과 2002년을 제외하고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는 매해 시 부문 베스트셀러로 집계되어 있다. 윤동주가 시작활동을 활발히 한 1930년대뿐만 아니라 우리 시사를 통틀어 이렇듯 오랜 시간 스테디 78 민족문화연구 제43호 은 과연 무엇일까? 그 실체를 규명해내는 것은 전문독자로서의 연구자 가 담당할 몫일 것이다. 현시대를 살아가는 독자들은 ‘저항시’로 분류되는 과거 윤동주의 시 를 지금, 여기의 의미로 읽어낸다. 시대적 상황의 변화에 제약받지 않 고 자신이 처한 위치에서 그의 시에 현재적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윤동주의 시는 저항시의 전형에서 벗어나 열린 구조를 지 닌 텍스트로 변화한다. 역설적이게도 시대에 밀착되어 있는 만큼 그의 시는 시대성에서 자유롭다. 아직까지 윤동주 시의 저항성이 논의의 대 상이 되고 있는 것은 이러한 특성에 기인한 바 크다. 그러므로 시공을 초월하여 울림을 전해주는 시의 특질, 하나로 규정 되지 않는 윤동주 시의 면모를 면밀히 파악하기 위해 상징의 쓰임에 주목하는 것은 윤동주의 시를 해석하는 연구방법으로서 의의를 지닐 수 있다. 여기에서는 특수한 형태로 반복되어 나타난 상징의 구조를 추적해 윤동주 시의 특질을 새롭게 조명해보고자 한다. 윤동주의 시에 나타난 시선은 크게 내부를 향한 자아 성찰의 시선과 외부를 향한 시선으로 나뉠 수 있다. 이제까지의 연구들은 윤동주의 시에 나타난 시선을 전자에 한정된 의미로 파악하였다. 그러나 주로 ‘들여다보기’, ‘바라보기’와 같은 ‘뜬 눈’의 형상으로 논의되어 온 그러 한 시선은 기실 ‘감는 눈’의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리고 윤동주의 시에서 ‘감는 눈’의 상징은 이와 같은 내부를 향한 시선과 외부를 향한 시선이라는 의미의 이중성을 특질로 삼는다. 선행 작업에서 필자는 ‘뜬 눈’을 중심으로 주체의 자기 인식 과정에 매개로 작용하는 윤동주 시의 ‘눈’ 상징에 대해 고찰한 바 있다.3) 그 후속작업으로서 ‘감는 눈’의 상징을 중심으로 진행될 이번 연구에서는 셀러로 자리 잡게 된 시집을 발간한 시인은 전무하다. 3) 졸고, .윤동주 시의 ‘눈’과 매개된 인식., 한국근대문학회 편, 한국근대문학연 구 12집(태학사, 2005) ‘감는 눈’의 시선과 폭력에의 저항 79 윤동주 시의 주체가 단순히 개인적 윤리, 도덕의 범주에 국한되지 않 는 존재라는 사실이 저항성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통해 규명될 수 있 을 것으로 기대한다. 이는 다의성을 지닌 상징의 구조를 추적해 외부 적 계기로부터 규정되어 온 윤동주 시의 저항성을 시의 내부적 계기에 서 출발해 되짚어보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논의를 위해 이 논문은 일단 언어의 단계에서 출발하여 ‘눈’ 상징의 의미구조를 살펴볼 것이다. 이는 기존의 연구 성과를 존중하는 가운데, 고정화, 신비화된 의미틀의 제한을 벗어나 시어, 비유의 유기적 연관성 을 분석하는 데서부터 출발하여 다시금 상징에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 이다. 그러한 시도를 통해 이 논문은 윤동주 시의 반성하는 주체에 대 한 논의가 정작 시에 내재된 저항성의 의미층위를 규명하는 작업과 연 계되어 있음을 보여주게 될 것이다. 구체적으로 이는 크게 세 가지 방향에서 진행될 것이다. 그 하나는 몸 상징으로 살펴본 윤동주 시의 시선에 대한 논의로서, ‘감는 눈’의 상징에 집중하여 그 의미경로를 추적해보는 것이다. 또 하나는 그러한 시선이 투과적 실체로서의 공간인 풍경4)과 결부되어 상징의미를 심화 시키는 과정에 대한 고찰인데, 이를 통해 ‘감는 눈’의 시선이 공간화를 통해 확장되는 과정을 살펴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감는 눈’이 ‘뜨는 눈’, ‘뜬 눈’으로 형상화된 윤동주 시의 또 다른 ‘눈’ 상징들 과 맺는 관계를 규명하는 작업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윤동주의 시 에 나타난 ‘눈’ 상징의 총체적 고찰과 더불어 근대적 저항시로서의 윤 동주 시의 면모를 재조명해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4) 오귀스탱 베르크는 독특한 역사를 공간에 담고 있는 하나의 현상인 풍경의 시 공간성을 ‘투과적’이라는 용어로 표현하였다. 환경 자체의 역사와 이를 바라보 는 자의 기억이 풍경 안에서 서로 결합하고 있다는 두 가지 시간성의 우연적인 합치가 풍경의 공간성을 형성한다는 것이다. 오귀스탱 베르크(김주경 옮김), 대지에서 인간으로 산다는 것 (미다스북스, 2001), 122면. 이는 시선을 공간으로 확장시키는 3장과 2장간의 연계성을 설명해준다. 80 민족문화연구 제43호 2. ‘감는 눈’의 상징과 내재된 시선 윤동주의 두 번째 습작노트인 에는 퇴고 과정을 보여주는 표기 외에 “베루린”5), “모욕을 참어라”와 같은 낙서가 포함되어 있다. 그 중 후자는 .異蹟.이라는 시의 뒷부분에 씌어진 것으로 시작(詩作) 당시 의 상황이나 시인의 마음자세를 유추해볼 단초를 제공해준다. 여기에 는 당시대에 드리워진 어두운 그림자를 대하는 시인의 응전방식이 나 타나 있다.6) 5) 의 마지막 작품 .自像..의 뒷부분인 노트 맨 끝장에 기재되어 있다. 이 는 독자들이 .자화상.으로 알고 있는 작품의 습작으로 에는 아직 완성되 지 않은 형태로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베루린”은 독일의 “베를린”을 의미하 는 듯하다. .자화상.에 나타난 ‘우물’ 이미지가 릴케의 그것과 닮아 있음을 상 기해보건대, 이 시를 창작할 당시 윤동주는 그가 즐겨 읽던 릴케를 염두에 두 고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6) 윤동주의 세심한 기록습관은 후대 연구자들의 노고를 일정 정도 덜어준다. 습작 용 노트에 자필로 또박또박 적어놓은 시편에는 창작년도와 개작일자, 그리고 퇴 고과정들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으며, 간혹 “平壤서”와 같이 시를 집필한 장 소가 기록된 경우도 있어 창작 당시의 상황을 짐작하게 해준다.(왕신영 외 엮 음, 사진판 윤동주 자필시고전집 (민음사, 2002), 15~110면 참조) 미로의 비너 스상 탁본과 “藻文”이라는 활자가 새겨진 첫 번째 습작노트 표지에는 제목 와 “芸術은 길고 人生은 쩝다”라는 부제가 자필로 씌어 있다. 또 노트 첫 장의 목차는 창작순서에 따라 기록되어 얼추 한 권의 시집 형태를 갖추었다. 노트 곳곳에 배인 이 같은 시인의 숨결은 시 창작에 임 하는 자세와 시에 대한 사랑, 예술관, 그리고 자신의 시에 대한 겸양과 자부심 등을 대변해주는 듯하다. 그런가 하면 두 번째 습작노트는 첫 번째 노트에 비해 평범해 보인다. “窓”이라 는 표제를 붙인 겉표지 앞면에는 활을 쏘고 고삐를 당기는 포즈의 말 탄 기수 두 명이 상하로 배열된 그림이 있고, 그 상단에 “原稿 ノ-ト”라는 일문이 표기 되어 있다. 한편 뒤표지에는 문양그림 아래 작은 글씨로 “TOKYO”라는 영문이 표기되어 있는데, 이 글씨는 사진상으로 인쇄 여부의 판독이 쉽지 않다. 하지만 앞, 뒤 표지의 정황상 이 노트가 일본에서 제작되었음을 짐작하는 데는 큰 무 리가 없다. 노트의 시편들은 1936년에서 1939년 사이에 창작된 것으로 기록되 어 있다. 당시는 윤동주가 광명학원과 연희전문에서 수학하고 있던 시기이므로, 국내에 유입된 일본산 노트를 구해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당시 한반도 ‘감는 눈’의 시선과 폭력에의 저항 81 글귀가 씌어진 1938년은 일제가 만주사변(1931), 중일전쟁(1937) 등 의 침략전쟁을 일으키며 철저한 군국주의 파쇼체제로 바뀌어가던 시기 에 거주하던 한국인이 일본에서 들여온 공산품을 사용했음을 반증해주는 것이 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한편 노트의 속표지에는 나막신을 신은 두 사람이 선창 부둣가에서 건너편의 풍 차와 돛단배가 떠 있는 바다를 바라다보는 판화가 등사되어 있고, 그 그림 위 쪽에 첫 번째 습작노트의 겉표지에 새겨진 것과 동일한 “藻文”이라는 글자가 자필로 적혀있다. 이는 두 번째 노트와 첫 번째의 습작노트와의 연계성을 표현 하기 위한 것으로 생각된다. 실제로 첫 번째 노트에 수록된 여러 시들이 개작 되거나 혹은 원문상태 그대로 두 번째 노트에 재수록되었으며, 시인은 그러한 사항을 각각의 노트에 실린 개별시의 상단에 세밀히 기록하고 있다. 습작노트 에도 정규시집과 동일한 비중을 두는 이 같은 태도에서 시작과정에 쏟은 윤동 주의 애정을 읽어낼 수 있다. 이제 각 노트의 내부를 들여다보면, 나의 習作期의 詩 아닌 詩>에 실린 첫 번 째 작품은 .초 한 대., 마지막 작품은 .나무.라는 동시로 구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에는 대략 1934년부터 1937년 사이에 씌어진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으며 창작년도는 “昭和九年”과 같은 일본연호(“昭和(しょうわ)”는 124대 히로 히토 일왕의 재임기간(1926.12.25~1989.1.7) 나타내는 연호이다.)와 양력을 혼용 하여 표기하고 있다. 그런데 “昭和十一年一月六日”로 창작일자가 표기된 이후에는 일본연호를 사용한 기록이 발견되지 않는다. “昭和十一年”인 1936년 제 7대 조선총독 미나미 지로(南次郞)가 취임하면서 일제는 탄압을 강화 하기 시작했고, 일장기 말소사건 등이 있었으나 이들 사건의 시점은 8월이다. 따라서 일본연호를 사용한 1936년 1월과 다음 작품의 창작시기―2, 3월에 집중 적으로 시를 쓰고 있는데― 사이 윤동주의 심경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를 역 사적 사건과 결부시켜 파악하는 것은 어렵다. 그렇다면 두 번째 노트의 수록작품에 문제해결의 실마리가 있나 살펴보도록 하 겠다. 1935년 10월로 기록된 시 한 편이 중간 부분에 수록된 것을 제외하고, 에는 1936년 봄부터 창작된 시가 실려 있다. 또한 습작노트에는 1935년 부터 1938년에 창작된 동시가 수록되어 있는데, 이 중 절반가량이 1936년에 집 중적으로 씌어졌다. 동일한 시기인 1936년 봄에 창작된 시 중 동시의 대부분이 첫 번째 노트에 수록되어 있는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시인이 두 노트의 성격을 구분 짓기 위해 일부러 동일시기에 두 권의 노트를 병행하여 사용했다는 가설 이 성립될 수 있다. 또한 이렇듯 노트를 병행하기 시작한 시기와 일본연호를 사용하지 않게 된 시기가 매우 근접해있다는 점에서 노트를 분리, 사용한 것과 시대적 상황, 시인의 의식 사이에 어떤 식으로든 연관관계가 형성되리라는 추 정이 가능하다. 82 민족문화연구 제43호 였다. 당시 일본은 ①군사력과 경찰력의 증강 ②철저한 사상통제 ③전 시체제 강조를 통한 국민생활 감시 등의 방법으로 파쇼체제를 강화시 켜 나갔다. 또한 이 시기에 일본은 ‘내선일체(內鮮一體)’를 강조하였으며, 조선민족의 황국신민화(皇國臣民化)라는 기치 아래 우리말과 글을 금지 하고 창씨개명을 단행하는 등의 민족말살정책을 지속적으로 전개하기 도 하였다. ‘지원병’, ‘징용’, ‘보국대’, ‘위안부’ 등의 다양한 형태로 우리 민족을 전쟁에 동원시켰던 것도 1938년경부터 시작된 일이다. 이렇듯 정치.경제.사회.문화의 전 분야에 걸쳐 자행된 일제의 횡포로 당시 는 식민지 지배의 절정을 이루게 된다.7) 따라서 그러한 고난의 시기에 시인이 원고 말미에 적어 넣은 “모욕을 참어라”는 구절을 단순한 개인 범주의 낙서로 치부해버릴 수만은 없다. 거기에는 당시 우리 민족이 겪은 참상에 대한 시인의 분노와 절치부심의 고뇌가 담겨 있기 때문이 다. 정의가 그 의미를 잃어버린 세상에 맞서는 시인의 응전방식은 일단 모욕을 참는 형태로 드러났다.8) ‘참는다’는 것은 무언가를 기대하고 기 다리는 자에게만 허락되는 인내이다. 아무런 희망이 없는 미래만 남아 7) 강만길, 韓國現代史(창작과비평사, 1984), 32~37면 참조. 8) 광기로 미쳐 날뛰는 일제치하에서 진실은 왜곡되었고, 용인될 수 없는 폭력의 정당화가 공공연하게 이루어졌다. 하지만 폭력은 정당화될 수 있을지언정 결코 정당성을 가질 수 없다.(한나 아렌트(김정한 옮김), 폭력의 세기 (이후, 1999), 85면) 정당한 폭력의 규준은 공동체의 보존, 안녕, 평화의 차원에서 행해지는 정당방위로 제한되며, 이 역시 보복정의의 차원을 넘으면 안 되고, 특히 전쟁의 경우 주권자의 명령, 정당한 근거, 올바른 의도 등이 있어야 한다는 성 토마스 의 견해(정의채, “현대사회의 폭력의 의미 - 폭력과 평화에 대하여”, .폭력이란 무엇인가 : 그 본질과 대안 - 폭력에 대한 철학적 성찰.(2002년도 한국학술진흥 재단 기초학문육성 일반연구 연세대학교 철학연구소 공동연구팀 발표논문집, 2003), 20면)에 비추어볼 때, 이차대전 당시 일본의 전쟁수행과 식민통치는 그 들의 끊임없는 정당화 노력에도 불구하고 본질적으로 결코 정당화될 수 없는 것이었다. 자신들의 고유성 속에 한국인을 포함시키려 했던 일본은 우리 민족 의 고유한 이타성을 부인하고 주체성의 장소를 말살하는 만행을 자행하였던 것 이다.(오귀스탱 베르크, 앞의 책, 154~156면 참조.) ‘감는 눈’의 시선과 폭력에의 저항 83 있다면, 현재는 그 어떤 의미도 가질 수 없다. “내일은 없다”()고 외치는 시인에게 “내일”은 또 하나의 “오 늘”이다. 잠깐의 혈기로 맞서는 것은 “오늘”로 존재태를 바꿀 “내일” 을 소멸시켜버리는 결과를 초래하고 만다. 그러한 대응방식은 일을 그 르칠 뿐 아무것도 해결해주지 못한다. 따라서 여기에서 윤동주가 말하 는 ‘참음’은 결국 비겁한 침묵이 아닌 미래를 바라보는 자의 기다림의 자세를 의미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와 같은 ‘참음’의 정신은 윤동 주의 시편 곳곳에서 발견된다. 太陽을 사모하는 아이들아 별을 사랑하는 아이들아 밤이 어두었는데 눈감고 가거라. 가진바 씨앗을 뿌리면서 가거라. - .눈감고간다. 부분9) 우선 텍스트에 충실하여 이 시의 전개를 따라가 보도록 하겠다. 천 상에 있는 “태양”과 “별”은 ‘빛남’의 속성을 가지고 있는 존재이다. “아이들”은 “태양”과 “별”을 사랑하지만, 2연에 제시된 상황은 ‘빛남’ 의 대칭항에 놓여진 ‘어둠’일 뿐이다. ‘어둠’에 직면한 자는 주위를 분 9) 여기에 인용하고 있는 시들은 윤동주의 자선시집에 수록된 것을 기본으로 하고 그 외의 경우 퇴고과정을 고려하여 가장 나중의 형태를 원본으로 확정하여 사 용한다. 왕신영 외 엮음, 앞의 책 참조.; 논의의 흐름상 여기에서는 .눈감고간다 .의 마지막 연을 생략한 채 수록하였다. 윤동주의 시에는 ‘감는 눈’ 외에도 생 략된 연인 “발부리에 돌이 채이거든/감었든 눈을 왓작떠라”에서 볼 수 있는 ‘뜨는 눈’의 상징, 그리고 .자화상.등으로 대표되는 ‘뜬 눈’의 상징 형태가 발견 된다. 4장에서 이들 ‘감는 눈’과 ‘뜨는 눈’, ‘뜬 눈’의 연계성에 대해 구체적으로 다룰 것이다. ‘뜬 눈’의 상징에 대한 상세한 고찰은 졸고, 앞의 책 참조. 84 민족문화연구 제43호 간하기 위해 눈을 크게 뜨고 주의를 기울여 사방을 살피기 마련이다. 그런데 화자는 “아이들”에게 “밤이 어두웠는데/눈감고” 가라고 상식에 위배되는 조언을 한다. 이러한 비상식적 조언의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먼저 “밤이 어두웠는 데”의 언어적 용법에 주목하여 논의를 진행시키겠다. 여기서 ‘-는데’는 ‘-으니’와 동일위치에 놓일 수 있는 연결어미이다. ‘-으니’가 ‘ㄹ’을 제외 한 받침 있는 용언의 어간이나 어미 ‘-었-’, ‘-겠-’ 뒤에 붙어 앞말이 뒷 말의 원인이나 근거, 전제 따위가 됨을 나타내거나 어떤 사실을 먼저 진술하고 이와 관련된 다른 사실을 이어서 설명할 때 쓰이는 연결 어 미라면, ‘-는데’는 ‘있다’, ‘없다’, ‘계시다’의 어간, 동사 어간 또는 어미 ‘-으시-’, ‘-었-’, ‘-겠-’ 뒤에 붙어 뒤 절에서 어떤 일을 설명하거나 묻거 나 시키거나 제안하기 위하여 그 대상과 연관되는 상황을 미리 말할 때에 쓰이는 연결 어미10)이다. 그러므로 만일 ‘밤이 어두웠으니’라고 표현했다면 어두운 밤에 눈을 감는 것이 당연한 수순의 상식적 행동이 라는 전제를 깔고 있는 것이겠지만, 이 시의 “밤이 어두웠는데”는 단 지 “눈감고 가거라”라는 제안을 하기 위한 관련 상황을 언급하는 표현 일 뿐인 것이다. 즉 .눈감고간다.의 ‘어두운 밤’과 ‘눈 감는 행위’ 사이 에는 문법상의 필연적 인과관계가 성립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밤이 어두웠는데/눈감고 가거라”의 내포적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다른 측면의 접근이 필요하다. 유종호는 윤동주에게 세계의 어둠을 절감하게 한 것은 기독교적 세계파악의 영향력 못지않게 그의 시대의 식민지 상황과 그 부정의였을 것이라고 추정한 바 있다.11) “밤”과 ‘어두움’이라는 시어에서 암흑과 같던 당시의 시대상을 추출해 내는 그 같은 의미부여는 문학사회학을 비롯한 수많은 연구에 의해 이 10) 국립국어연구원, 표준국어대사전 (국립국어연구원, 1999), 1310, 4836면. 11) 유종호, .청순성의 시, 윤동주의 시., 김학동 편, 윤동주 (서강대학교 출판부, 1997), 35면. ‘감는 눈’의 시선과 폭력에의 저항 85 미 충분히 규명된 바 있다. 이들 연구를 기반으로 삼아 ‘어두운 밤’이 다음 행의 ‘눈감는’ 행위와 결부되며 특수한 개별상징을 만들어내고 있 음에 주목해보도록 하겠다. 바른 의기를 가리고 내리눌러야 하는 세상, 못 볼 일들이 벌어지고 이해할 수 없는 행위가 버젓이 자행되는 그곳에서 버텨내기 위해 시인 은 ‘눈을 감는다’. 두 눈을 버젓이 뜬 채 모든 것을 용인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 때 ‘눈’은 물리적 실체의 형상을 파악하는 신체기관으로 인 간존재를 특징짓는 얼굴에서 가장 응집력 있는 존재의 장소이며, 존재 의 진리탐구 또한 그 ‘눈’의 시선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12) 그러 므로 시에서 ‘눈을 감는’다고 한 것은 시선을 차단하여 세상의 것을 보 지 않겠다는 의지의 발현인 동시에 눈앞에 펼쳐진 거짓과 위선에 호도 되지 않고 ‘마음의 눈’을 통해 이면에 감추어진 진실을 바라보고 싶다 는 소망의 표명이기도 하다. 즉 그와 같이 어두운 시대 상황 속에서 ‘눈을 감는’ 것은 불구가 되어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자만이 역설적으 로 참된 의미의 정상적 생을 영위하는 진실의 수호자가 된다는 확신이 있기에 가능한 행위라 하겠다. 이러한 해석은 눈을 감는 행위가 3연의 “가진 바 씨앗을/뿌리면서 가거라.”로 이어지면서 그 타당성을 담보 받게 된다. ‘눈감고 가는’ 자 에게 시인은 ‘씨앗을 뿌리며 가라’는 또 하나의 주문을 한다. 이는 ‘눈 을 감는’ 것이 단순히 보기 싫은 세상을 거부하는데 그치지 않고, “씨 앗을 뿌리면서” 미래를 준비하는 자세로 이어짐을 말해준다. 따라서 이 시의 “눈감고 가거라”는 주문은 어두운 시대상에 굴복하지 않고 참 12) 이렇게 시선은 인간 실존의 상징적 차원과 생태적 차원을 동시에 표현한다. 또 한 나아가 시인의 시선은 본질을 파악하는 물질적 상상력까지를 포함한다. 따 라서 ‘눈’의 상징을 중심으로 ‘시선’을 논하는 것은 “세계와 인간의 관계에 대 한 우리의 의식과 우리 육체의 구체성(눈에 보이는 기관)인 시선 안에서 결합 되고 있기 때문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오귀스탱 베르크, 앞의 책, 159~164 면 참조. 86 민족문화연구 제43호 된 눈으로 진실을 바라보겠다는 시인의 강한 바람을 담은 것으로 해석 될 수 있다. 물론 진실을 목도하려는 의지를 내포한 ‘감는 눈’의 모티프가 비단 . 눈감고가다. 한 편에만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윤동주의 시 전반 에 걸쳐 유사한 방식으로 유기적 의미군을 형성하면서 상징으로 작용 하게 된다. 다음 장에서 살펴볼 .돌아와 보는 밤., .소년., .사랑의 전 당., .명상., .유언. 등 여러 편의 시에 등장하는 “눈” 또한 그 같은 ‘감는 눈’의 변주된 형태로 나타난다. 3. 공간화된 ‘눈’과 시선의 확장 세상으로부터 돌아오듯이 이제 내 좁은방에 돌아와 불을 끄옵니다. 불을 켜두는것은 너무나 피로롭은 일이옵니다. 그것은 낮의 延長이옵기에― 이제 窓을 열어 空를 밖구어 드려야 할턴데 밖을 가만이 내다보아야 房안 과같이 어두어 꼭 세상같은데 비를 맞고 오든길이 그대로 비속에 젖어 있사옵니다. 하로의 울분을 씻을바 없어 가만히 눈을 감으면 마음속으로 흐르는 소리, 이제, 思想이 능금처럼 저절로 익어 가옵니다. - .돌아와 보는 밤. 전문 이 시에는 세 개의 공간이 등장한다. ①‘비에 젖은 밖’, ②‘불을 끈 房안’, ③‘세상’이 그것이다. 여기에서는 이 세 공간을 연결시키는 직유 의 용법을 살펴봄으로써 앞 장에서 논의한 ‘감는 눈’의 상징의미를 재 ‘감는 눈’의 시선과 폭력에의 저항 87 구해보도록 하겠다. ①, ②, ③은 ‘어두움’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 그 중 ③은 “세상으로부터 돌아오듯이”나 “세상같은데”에서처럼 직유의 형식과 결 부되어 쓰이고 있다. 전자는 “세상으로부터” 떠나 “내 좁은 방에 돌 아”온 실제상황을 표현한 것이 아니다. “~듯이”라는 직유의 형식을 취 함으로써 ③은 “밖”이라는 물리적 공간의 층위를 넘어선다. ③의 두 번째 직유형식에서도 전자와 동일한 상황을 발견할 수 있다. “세상같 은데”는 “房안과같이”에서처럼 “밖”의 어두움을 묘사하는데 사용되었 다. 여기서 “세상”, “房안”, “밖”을 연결시켜주는 것은 바로 ‘어두움’이 다. 이렇듯 ②와 ①의 공간에 동일하게 드리운 ‘어두움’이 “세상”으로 비유되면서 ③의 두 번째 용례 역시 물리적 공간을 벗어나 ‘어두운 현 실상황’이라는 새로운 의미차원에 속하게 된다. 이제 공간적 측면에서 논의한 위의 분석이 얻어낸 의미를 다른 각도 에서 조명하여 시를 분석해보겠다. 1연의 “낮”과 2연의 ‘어두운 밖’에 서 연상할 수 있는 ‘밝음’과 ‘어두움’의 상반된 의미항은 ③을 공통분모 로 삼고 있다. 1연에서 “방”에 돌아온 내가 불을 끄는 것은 “낮”의 피 로함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서라고 했다. 이로써 “낮”의 피로와 “세상” 에서 느끼는 피로는 “~듯이”의 직유로 연결되어 유사성의 범주에 속 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긍정의 의미항에 속하는 “낮”이 “피로”를 매개 로 “세상”과 동가의 위치에 놓이게 된 것이다. 결국 “불을 켜두는것”이 “낮”의 피로함의 연장이라는 1연의 상황은 ③과 결부되면서 다른 연들과의 유기적 관계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부 여받게 된다. 그 논리에 따르면 ‘낮(밝음)’ : ‘밤(어두움)’ = ‘부정’ : ‘긍 정’과 같은 도식이 성립될 수 있다. 여기서 일반적으로 ‘밤’의 속성으로 알려진 ‘어두움’이 “세상”과 동일하게 취급되면서 부정적 의미를 가지 게 된다는 2연의 논의를 떠올려보면, 1연과 2연에 나타난 ‘어두움’이 각각 긍정적인 의미와 부정적인 의미로 변별됨을 알 수 있다. 88 민족문화연구 제43호 그렇다면 이러한 차이는 어디에서 연유하는가? 그 질문에 답하기 위 해 다시금 논의의 초점인 ‘눈을 감다’의 상징성으로 돌아가 보겠다. 앞 장에서 ‘눈을 감는’ 것이 모순된 세상을 거부하고 참된 진실에 눈뜨고 자 하는 의지의 표명임을 밝혀낸 바 있다. 1연의 ‘불을 끄는’ 행위에서 도 ‘눈을 감는’ 행위에 내재된 그 같은 불구의식이 발견된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행위가 누군가에 의해 실명을 당하는 (불이 꺼지는) ‘피동’의 상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눈을 감는(불을 끄 는) ‘능동성’에 기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1연과 2연의 ‘어두움’ 은 불을 끄는 능동적 행위로 인한 ‘어두움’과 해가 기울자 저절로 찾아 든 ‘어두움’으로 차별화된다. 1연의 ‘어두움’이 “세상”과 동일시되었던 2 연의 부정적인 ‘어두움’과 다른 층위의 상징적 의미를 갖는 것이다. 결국 이 시의 마지막 연에 나타난 ‘눈 감는’ 행위는 이미 1연에서부 터 그 전조를 보여 왔던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는 단순한 물리적 반응 이 아니라, “울분”을 삭이기 위한 의지적 행위이다.13) ‘눈을 감는’ 것이 울분을 일게 한 “세상”을 거부하고 진실을 목도하고자 하는 의지의 표 명이라는 이 같은 해석은 이어지는 시구인 “눈/을 감으면 마음속으로 흐르는 소리.”의 시상 전개에 의해 뒷받침된다. 이는 의지적 불구의 상 태로 접어든 주체가 혼란스러운 외부를 차단하고 내면에 집중함으로써 세상에 유혹당하지 않고 자기 자신의 본질과 참된 진실을 바라볼 수 있게 됨을 의미한다. 이렇듯 1연과 2연에 나타난 긍정과 부정의 ‘어두움’은 3연의 ‘눈 감 는’ 행위로 귀결되며 참된 “思想이 능금처럼 저절로 익어”가는 결과를 만들어내게 된다. 그러한 정, 반, 합의 변증법적 질서는 이 시의 상징 의미를 보다 풍요롭게 해준다. 13) 이 부분은 앞에서 언급했던 “모욕을 참어라”를 연상케 한다. ‘감는 눈’의 시선과 폭력에의 저항 89 가츨가츨한 머리갈은 오막사리 처마끝, 쉿파람에 코ㄴ마루가 서분한양 간질키오. 들窓 같은 눈은 가볍게 닫혀, 이밤에 戀情은 어둠처럼 골골히 스며드오 - .명상. 전문 이 시에 나타난 ‘눈’의 공간화 양상은 전반적으로 유사성14)에 기반을 둔 비유의 용법과 몸과 사물 범주를 혼합시키는 상상력에 의해 구성된 다. 먼저 1연 1행을 보면 “가츨가츨한 머리갈”과 “오막사리 처마끝”이 은유적으로 결합되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15) 신체 일부인 “머리갈” 과 “오막사리 처마”를 만드는 ‘볏단’의 형태적 유사성으로 유추되는 계 열적(paradigmatic) 선택관계16)에 놓인 것이다.17) 14) 유사성은 기실 차이를 전제로 한 닮음이다. .명상.의 1연에 나타난 형태적 유 사성 또한 질료의 차이를 전제하고 있다. 형이상학 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다름 속에서 같음을 보는 것을 닮음으로 정의하였다. 리쾨르는 이러한 개념을 받아들이면서, 은유란 다름을 같음 속으로 융합해가는 의미론적 과정이라고 했다. 은유가 차이에도 불구하고 유사성을 찾아내는 의미론적 과정이며, 기존 의 낡은 범주화를 부수고 새로운 논리를 세우는 유별(classification) 작업이라는 리쾨르의 주장은 고전수사학의 범주를 벗어나는 것이다. 정기철, 상징, 은유, 그리고 이야기 (문예출판사, 2002), 71-72면 참조. 15) 이는 종에서 종으로의 전용(transference)인 은유의 양태를 보여준다. 아리스토 텔레스(천병희 역), (개역판)시학 (문예출판사, 1995), 116~117면; Paul Ricoeur (1975), The Rule of Metaphor : multi-disciplinary studies of the creation of meaning in language, trans. by Robert Czerny with Kathleen McLaughlin and John Costello(1978), London: Routledge & Kegan Paul, 13면 재인용; T. 토도로프(신진.윤여복 공 역), 상징과 해석 (동아대학교출판부, 1987), 96~98면 참조. 16) 소쉬르는 단어와 단어 사이의 관계를 계열적(paradigmatic) 관계, 연쇄를 이루 는 단어를 통합적(syntagmatic) 관계라고 불렀다.(페르낭 드 소쉬르(최승언 역), 일반언어학 강의 , 샤를르 발리.알베르 세쉬에 편(민음사, 1990)) 로만 야콥 슨은 소쉬르의 이런 논의를 받아들여 ‘통합체’를 ‘환유’에, ‘체계’를 ‘은유’에 접 근시켰다. 김치수 외, 현대기호학의 발전 (서울대학교출판부, 1998), 164면. 17) 한편 이러한 형태적 유사성 외에도 개별 시어들이 갖는 어감에서 유추된 유사 성이 발견된다.(카시러에 의하면 “시 언어에서는 추상적인 개념 표현뿐만 아니 90 민족문화연구 제43호 “가츨가츨한 머리갈”과 “오막사리 처마끝”에서 ‘몸’의 한 부분을 ‘집’ 의 일부로 전이시키던 혼합의 양상은 다음 행의 “코ㄴ마루”와 2연의 “들窓 같은 눈”에서도 동일한 방식으로 나타난다. 1연 1행에서 시작된 혼용의 원리―유사성에 근거한 은유의 특성―가 이어지는 시어(낱말)와 비유에도 동일하게 적용된 것이다. ‘머리카락’과 ‘지푸라기’, ‘콧등’과 ‘마루’, ‘눈’과 ‘창’ 사이에는 형태상, 기능상의 유사성이 존재한다. 그리 고 이들 유사성간의 유기적 관계는 2연 마지막행인 “이밤에 戀情은 어 둠처럼 골골히 스며드오”의 애매성을 해결해준다.18) 2연에서 밤에 “어둠”이 스며들듯이 “戀情”이 “골골히” 스며든다고 했다. 여기서 “골골히”는 현대어 “골골이”로 추정되는 표기이며,19) ‘고 을고을에’, ‘골짜기마다’ 정도로 풀이될 수 있다. 물론 이것이 시 속에 서 “오막사리”, “들窓” 등 가옥을 표현하는 시어들과 맺는 관계를 고 려하면 전자의 의미를 취하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그렇지만 “戀情”은 인간의 마음, 즉 신체기관 중 ‘심장’과 관련된 단어이다. 결국 2연의 2 행은 “어둠”이 ‘마을’에 스며들듯 삽시간에 “戀情”이 ‘마음’에 스며드는 모양을 표현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는 앞에서 살펴본 인간의 몸 라 모든 단어가 소리가Klangwert와 감정가Gefuhlswert를 갖는다.” E. 카시러(오 향미 역), 인문학의 구조 내에서 상징형식 개념 외 (책세상, 2002), 43면.) 이 경우 1연의 은유를 형성하는 “가츨가츨한”과 “오막사리”의 어감은 경제적 상 황에 대한 정보를 환기시킨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하나의 비유일 뿐 1연의 은유를 추적하는 것으로는 그 이상의 의미를 찾아낼 수 없다. 하나의 시어, 하 나의 비유가 다른 시어, 다른 비유들과 대응, 대립하며 공명하는 상호관계 속 에서 새로운 의미가 도출되고, 그 과정에서 상징의 형식이 발견되기 때문이 다.(위의 책, 42~44면 참조.) 18) 습작노트의 기록을 살펴보면, 처음 작품을 창작할 당시 “골골히”라는 시어는 존 재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왕신영 외 엮음, 앞의 책, 78면) 이는 퇴고과정에 서 부가된 부분인데, “골골히”가 첨가됨으로써 .명상.의 2연 2행은 단순한 직 유의 형태를 벗어나 시 해석상의 애매성을 불러일으키며 상징적 추론을 유도 하게 된다. 19) 권영민 엮음, 윤동주 연구 (문학사상사, 1995), 79면. ‘감는 눈’의 시선과 폭력에의 저항 91 과 사물간의 전용양상이 기능적 유사성에 토대를 두고 표출된 예라 할 것이다. 그런데 왜 하필 “戀情”을 의미적 대립항인 “어둠”에 비유했을까? 기 능적 유사성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이들 결합의 애매성20)을 벗어나려면 .명상.을 포함한 윤동주 시 전반에 포진된 상징형식에 의존해 그 형식 들간의 상호관계를 규정하는 방향으로 논의가 진행되어야 한다.21) 이를 위해 먼저 시구에 있어서의 애매성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2연 은 “들窓 같은 눈은 가볍게 닫혀,/이밤에 戀情은 어둠처럼 골골히 스며 드오”의 두 행으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서 1행의 맨 끝에 표기된 쉼표 (,)는 1행과 2행이 선후관계 혹은 인과관계로 인접되었음을 가리키는 연결표지이다. 즉 이 부분은 ‘눈이 닫히(감기)고 나서 연정이 마음에 스며들었다’와 같은 선후관계이거나, ‘눈이 감기자 빛이 차단되어 어두 워졌기 때문에 세상으로부터 유리돼 마음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와 같은 인과관계로 해석될 수 있다. 2행의 “어둠처럼”이라는 비유를 생 각해보면 후자의 해석이 타당해 보인다. 이 때 “어둠”은 “밤”이라는 외부적 상황과 결부된 물리적 현상일 뿐만 아니라, “눈이 닫히는” 신 체작용으로 초래된 결과를 의미하기도 한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1연에 나타난, 머리카락이 콧마루를 간질이는 상황에 대한 묘사는 독자들로 하여금 다음 연의 “들窓 같은 눈”을 1연 의 해석틀과 동일한 연계성 속에 받아들이게 해준다. 여기에서도 역시 인간의 신체와 사물간의 유사성이 발견된다. “이제 窓을 열어 空를 밖구어 드려야/할턴데”(.돌아와 보는 밤.)의 시구를 다시 살펴보도록 하겠다. “窓”은 “空氣”가 집의 외부와 내부를 드나들게 해주는 매개체 이다. “窓”이 내부/외부의 경계인 동시에 이 두 공간을 이어주는 매개 20) “독자들 입장에서 보면 애매성이란 연루(complicity)를 의미하는 것이다.” T. 토 도로프, 앞의 책, 118면. 21) 에른스트 카시러, 앞의 책, 면44. 92 민족문화연구 제43호 체의 역할을 한다면, 내부에서 외부로 눈물을 흘려보내는 통로인 “눈” 은 인간신체의 내/외부를 가르는 기준이면서 동시에 내면의 상태(마음) 를 외부로 드러내고 외부현상을 내부에 전달해주는 매개체로 기능한다 고 할 수 있다. 공간분할과 매개적 역할이라는 공통성을 지닌 “窓”과 “눈”의 이 같은 결합은 인간의 몸과 사물간의 기능적 유사성에 토대를 둔 비유의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그 결합의 근저에서 주위세계 를 향한 인간주관성의 개인적, 집단적 투사를 발견하게 된다.22) 윤동주 시의 주체상이 지닌 그러한 시선의 특성은 비유와 상징의 사 용에서도 동일한 양상을 보여준다. 2연의 1행 “들窓 같은 눈은 가볍게 닫혀,”를 자세히 들여다보겠다. 앞에 인용한 두 시와 달리 이 시에서 ‘눈감는’ 행위는 피동의 형태로 묘사된다.23) 그렇다면 이러한 피동현상 을 초래한 원인은 무엇인가? 그것을 찾아내는 것이 .명상.의 상징의미 를 탐사하는 열쇠가 된다. .돌아와 보는 밤.의 “눈/을 감으면 마음속으로 흐르는 소리, 이/제, 思想이 능금처럼 저절로 익어/가옵니다.”에 쓰인 능동태의 행위동사는 “마음” 속의 “思想”이라는 직접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이와 비 교해볼 때, “들窓 같은 눈은 가볍게 닫혀,/이밤에 戀情은 어둠처럼 골 골히 스며드오”에 나타난 피동태의 동사는 “戀情”이 “스며드”는 모호 한 상황을 유발시킨다. 여기에는 “마음”과 같은 장소가 명시되지도 않 았고, 능동의 의지가 “思想”으로 표출되지도 않았다. “밤”이 되어 “어 둠이” 도처에 스며들듯이 “戀情”이 “골골히” 스며든다는 간략한 정보 가 제공될 뿐이다. 22) 풍경의 시공간성은 투과적이나, 이는 단지 세계를 주관화하는 것을 말하지 않는 다. 오귀스탱 베르크, 앞의 책, 108~116, 122면 참조. 23) 위에서 살펴본 바 있듯이, 피동태는 주어가 어떤 동작의 대상이 되어 그 작용 을 받을 때 서술어가 취하는 형식이므로 그 이면에 동작을 초래한 원인이나 주체가 숨겨져 있게 마련이다. 졸음에 겨운 눈이 스르르 감겨버리는 행위에는 화자의 의지가 반영되어 있지 않다. ‘감는 눈’의 시선과 폭력에의 저항 93 이 부분에서 초래되는 해석상의 애매성24)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스 며드오”라는 표현에 주목해보아야 한다. “스며들다”라는 동사는 외부로 부터 내부로의 진입이라는 함의를 갖는다. ‘戀情이 어둠처럼 고을고을 에 스며들다’에서와 같이 이 시의 ‘스며들다’는 무형의 것들이 부분에서 전체로 퍼져나가는 현상을 표현한다. 그런데 그 상황을 전달해주는 주 체는 시간적으로 “밤”에 위치해 있다. 밤풍경을 바라보다 눈이 감기자 차단된 내면 속에 외부와 동일한 상황―“어둠”―이 발생한 것이다.25) 이제 인체의 외부와 내부에는 각각의 분리된, 그러나 유사한 공간이 형성된다. 이 두 장소를 이어주는 매개체인 “눈”이 닫히자, 이들 공간 에 “스며듬”의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밤이 되어 외부적 공간에 고을 고을 어둠이 스며들고, 눈이 감기니 차단된 내면 곳곳에 연정이 스며 들게 된 것이다. 여기서 ‘어두운 밤’의 상징의미에 대한 사회, 역사적 틀의 개입이 비로소 요구되고, 그에 따라 “戀情”의 대상과 의미는 진폭 을 확대하게 된다. “戀情”이라는 내면정서를 발생시킨 원인이 외부적 상황인 ‘어두운 밤’일 수 있다는 유추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그에 따르 면 “밤”의 어두움이 “눈”을 감기게 하였고, 그러한 외부적 상황이 외 부와 차단된 내면 속에 “戀情”의 감정을 유발시켰다고 볼 수 있다. 이렇듯 .명상.에 묘사된 밤풍경은 단순한 시, 공간적 배경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시선이 투과된 실체로서 인간의 몸과 결부되어 시인의 시 선을 전달해준다. 인간의 신체와 외부 사물의 혼합이라는 유기적 관계 성이 이 시 전체의 통일성을 형성하는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 24) 앞에서 언급했듯이 현대어 “골골이”의 표기로 추정되는 “골골히”는 “밤”에 “어 둠”이 ‘고을고을마다’ 퍼져나가는 물리적 현상의 표현 혹은 “戀情”으로 ‘마음’ 이 구석구석 가득히 채워지는 것에 대한 비유적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애매성으로 인해 “어둠”과 “戀情”은 단순한 비유적 결합을 넘어선다. 25) “감기우는 눈에 슬픔이 어린다”(.유언.)와 같은 또 다른 예에서도 피동적으로 감기게 된 “눈”이 “밤”을 배경으로 “슬픔”이라는 감정과 연계되어 나타남을 확 인할 수 있다. 94 민족문화연구 제43호 다. 그 결과 ‘집’이 ‘고을고을’로 범위를 확장했듯이 신체기관인 “눈”은 인간의 의식 전반으로 ‘시선’을 확대, 전이한다. 이로써 2연의 “戀情”26)은 개인의 내면 정서에 국한된 의미범주를 벗 어나 해석의 지평을 확장하고, 시의 제목인 “명상”은 단순한 감상적 사유의 단계를 넘어 실존에 대한 총체적 성찰과 반성을 의미하게 된 다. “밤”의 일반화된 상징성이 윤동주 시에서 새롭게 의미를 부여받는 것은 바로 그러한 외부적 상황이 인간의 신체를 표현하는 시어들과 긴 밀한 연관관계를 형성하면서, 자기 인식의 방식뿐만 아니라 ‘불구의식’ 을 통해 시대적 어려움을 극복해보려는 주체의 의지까지도 상징적으로 구현해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즉 지금까지 살펴본 ‘감는 눈’의 상징 은 실존의지를 전제한 불구의식의 표출로서 스스로의 본질을 파악하고 자 하는 자세인 동시에, 내재된 시선으로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면밀 히 관찰, 그에 대응하는 근대적 저항성의 표명이라는 의미 또한 지닌 다고 할 수 있다. 4. ‘눈’ 상징의 분화와 시선의 연계 지금까지 ‘감는 눈’의 상징과 그것이 공간으로 확장된 경우를 중심으 26) ① 順아 암사슴처럼 水晶눈을 나려감어라 - .사랑의 전당. 부분 ② 少年은 황홀이 눈을 감어 본다 - .소년. 부분 “戀情”이 갖는 일차적 의미는 사랑하는 이에 대한 정서적 반응이라 할 수 있 다. 인용한 ①과 ②는 “순이”라는 대상에 대한 순수한 사랑을 노래한 시의 일 부이다. “영원한 님에의 그리움”이라고 정의한 마광수(마광수, 尹東柱 硏究 : 그의 詩에 나타난 象徵的 表現을 中心으로 (정음사, 1984), 108~115면 참조)를 비롯해 많은 논자들이 “순이”의 의미를 규명하기 위해 논의를 전개해왔다. ① 과 ②에서 “순이”에 대한 사랑의 감정은 각각 피동형과 능동형의 눈감는 행위 와 결부되어 나타나는데, 여기에서 눈을 감는 행위는 .명상.에서의 “戀情”과 유사한 감정을 유발시킨다. ‘감는 눈’의 시선과 폭력에의 저항 95 로 내재된 시선으로 자신과 세상을 바라보려는 주체의 ‘의지적 불구의 식’에 대해 논구해보았다. 그러한 논의의 연장선상에서 이 장에서는 ‘감는 눈’의 상징이 다른 형태의 ‘눈’ 상징과 맺는 연관관계를 살펴봄으 로써 윤동주의 시에 나타난 ‘눈’의 시선이 지닌 의미를 총체적으로 규 명해보고자 한다. 기실 ‘시선’은 외부적 확장의 방향 외에 근원으로의 내부적 지향의 방향성 또한 지니고 있다. 이는 윤리적, 역사적 의미, 그리고 더 나아 가 종교적 의미범주와 결부될 수 있는 죄의 속성을 감지하는 주체의 자기 인식 방법으로 요약될 수 있다. 내부적 지향성으로서의 시선에 대한 이 같은 논의는 윤동주 시의 주체상이 윤리의식의 범주만으로 해 명될 수 없는 것임을 확인하는 방법이 된다.27) 이에 대한 고찰은 앞에서 인용한 .눈감고간다.의 마지막 연에 제시 된 ‘뜨는 눈’으로부터 시작해볼 수 있다. 동일한 시에 제시된 ‘감는 눈’ 과 ‘뜨는 눈’의 관계가 유기적으로 설명될 수 있어야 앞 장에서 개진한 ‘감는 눈’의 상징에 대한 논의가 의미를 지닐 수 있을 것이다. 밤이 어두었는데 눈감고 가거라. ············ 발뿌리에 돌이 채이거든 감었든 눈을 왓작떠라. - .눈감고간다. 부분 이 시에서 ‘뜨는 눈’은 앞에서 살펴본 ‘감는 눈’의 상징과 연계되어 나타난다. 이 때 전자는 특정 계기로 인한 개안(開眼)을 의미하고, 후 자는 응시의 시선을 나타낸 것으로 자기 자신과 외부세계에 대한 주 27) 졸고, 앞의 책, 참조. 96 민족문화연구 제43호 체의 성찰과 반성을 의미한다. ‘눈’을 감게 되는 계기가 외부적 상황 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불완전성과 오류 가능성에 대 한 주체의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한 것이다. 따라서 인용한 마지막 연의 “발뿌리에 돌이 채이면” “눈”을 뜬다 는 것은 눈을 감음으로써 진실을 목도할 수 있는 시선을 확보한 주 체가 현실의 상황에 직면해 비의지적 신체의 일부였던 이전의 ‘눈’이 아니라, 행위를 이행하는 의지적 신체기관으로서의 새로운 ‘눈’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음을 말해준다. 이렇듯 특정 계기로 인해 참된 것을 볼 수 있게 된 ‘뜬 눈’의 시 선은 다음의 시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빨리 봄이 오면 罪를 짓고 눈이 밝어 - .또太初의아츰. 부분 이 시에서 화자는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 오면 “눈이/밝어”라고 했다. 이는 “눈이 밝”는 현상이 “봄”이라는 시간성과 연관되어 있음 을 나타내준다. 윤동주의 시에는 계절의 변화를 동반한 시간성의 표현이 빈번하게 등장한다. 많은 경우 “봄”은 과거의 시간성인 동시에 인고의 시간을 거쳐 도래할 미래의 희망으로 제시되곤 한다. 그런데 윤동주의 시에 서 그러한 “봄”은 현재의 실존상황과 맞물리며 표면적으로 해독될 수 없는 역설적 의미로 상징화된다.28) 28) 윤동주의 시에서 ‘봄’은 대체로 ‘음산함’, ‘우중충함’, ‘등지다’ 등의 어휘와 함께 쓰이곤 한다. 그러나 이를 암울한 시대배경의 의미로 해석하는 것은 그의 시 를 단순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과거의 시간이나 이상 속에 존재하지 ‘감는 눈’의 시선과 폭력에의 저항 97 이 시에서 그러한 해석의 애매성은 ‘봄이 오다’와 ‘눈이 밝다’라는 두 사건을 연계해주는 인용한 3행의 “罪를 짓”는 상황으로부터 초래 된다. 따라서 이 시에 나타난 ‘뜨는 눈’의 상징을 해석하기 위해서는 먼저 “봄”과 “罪”의 연관관계를 설명할 수 있어야만 한다. 앞에서도 잠시 언급했듯이 일반적으로 ‘봄’의 밝음은 ‘어둠’이 사라 진 상황을 의미한다. 그런데 성경의 에덴동산 모티프를 차용한 .또太 初의아츰.에서는 그러한 ‘봄’의 밝음이 자신의 죄를 인식하게 되는 계 기로 작용하게 된다. ‘봄’의 밝음이 내부로 향해 “눈이 밝”아지는 것 은 외부의 빛이 내부의 시선으로 전이되면서 자신의 본성을 파악할 수 있게 됨을 의미한다. 결국 이 지점에서 이 시의 ‘뜨는 눈’은 본질 을 바로 직시하기 위해 눈을 감는 ‘감는 눈’의 시선과 상통하는 의미 를 갖게 된다. 한편 눈을 감음으로써 형성된 영역에서 진리를 보게 되는 그러한 ‘감는 눈’의 시선은 특정 공간에 진입하여 자신의 본질을 목도하려는 ‘뜬 눈’의 시선과 연계되기도 한다. ①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우물을 홀로 찾어가선 가만히 드려다 봅니다. - .自畵像. 부분 ②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속에 내얼골이 남어있는것은 어느 王朝의遺物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 않는 ‘봄’의 시간성은 현재의 시간을 무화시키며 시간성의 혼재를 가져온다. 그 러한 특성을 지닌 윤동주의 ‘봄’은 역사적 실존의 저항의식, 윤리적 실존의 자 기반성, 종교적 실존의 죄의 고백과 같은 실존상황을 다층위적으로 함의하게 된다. 그리고 이는 식민지 시대의 여타 시인들의 시에 나타난 제한된 ‘봄’의 의미와 차별화된 윤동주의 고유한 ‘봄’을 만들어낸다. 98 민족문화연구 제43호 그러면 어느 隕石밑우로 홀로거러가는 슬픈사람의 뒷모양이 거울속에 나타나온다. - .懺悔錄. 부분 ③ 故鄕에 돌아온날밤에 내 白骨이 따라와 한방에 누엇다. ············ 어둠속에 곱게 風化作用하는 白骨을 드려다 보며 눈물 짓는것이 내가 우는것이냐 白骨이 우는것이냐 아름다운 魂이 우는것이냐 - .또다른故鄕. 부분 위에 인용한 시들에는 ‘뜬 눈’의 상징형태가 간접화되어 나타난다. 이는 이들 시편에서 ‘뜬 눈’의 상징이 신체기관으로서의 몸 상징의 형 태로 구체화되지 않고 ‘들여다보기’, ‘바라보기’와 같은 형태로 간접화 되어 제시되고 있다는 의미이다. 또한 그러한 ‘들여다보기’, ‘바라보기’의 행위가 “산모퉁이를 돌아 논 가 외딴우물을 홀로/찾어가선”(①),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속”(②), ‘고향집의 어두운 방 안’(③)과 같이 외부로부터 차단된 독립적 공간이 전제된 상황에서 형상화된다는 점에서 이들 ‘뜬 눈’의 시선은 비의지적 신체기관의 물리적 시선이라는 일차적 의미를 통과해 참된 자신의 본 질을 직시하고자 하는 의지적 시선이라는 이차적 의미에 가닿는다.29) 이러한 ‘뜬 눈’의 상징 역시 앞에서 논의한 ‘감는 눈’의 상징에서 살펴 29) .自畵像.의 “어쩐지”가 보여준 감정의 근원으로 대표되는 해석의 애매성을 포 함한 ‘뜬 눈’의 상징에 대한 자세한 논의는 졸고, 앞의 책 참조. ‘감는 눈’의 시선과 폭력에의 저항 99 볼 수 있던 본질 직관의 시선과 연계되면서 윤동주의 시에 나타난 ‘눈’ 상징의 특성을 보여준다. 이렇듯 윤동주의 시에서 ‘뜬 눈’, ‘뜨는 눈’, ‘감는 눈’으로 삼분되는 ‘눈’의 상징은 자기 인식과 관련하여 각각 주체의 분화로 귀결되는 주체의 반성행위, 특정 계기로 인한 각성, 참된 본질의 인식을 의미 한다. 오류가능성을 지닌 낯선 주체에 대한 거부감은 기존 논의에서 ‘들여다보기’의 형태로 다루었던 윤리적 반성과 맥락을 같이 한다. 그 러나 간접적으로 형상화된 ‘뜬 눈’의 상징이 ‘감는 눈’, ‘뜨는 눈’의 형태와 연결되어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이 논문의 ‘눈’ 상징이 기존 논의와 차별화되는 지점은 ‘감는 눈’의 상징이 ‘뜨는 눈’, ‘뜬 눈’의 상징형태와 관계를 맺으면서 유한성이라는 인간 실존의 본질적 조건 을 드러내는 한편 그러한 실존이 처한 외부적 상황에 대한 저항의 태도를 함의한다는 사실을 규명한 데 있다. 기존 논의에서 도덕적 정결성에서 비롯된 자기반성으로 인식되던 주체의 내부를 향한 시선은 결국 죄의 속성을 비롯한 자신의 오류가 능성, 불완전성을 인식한 데서 비롯된 주체의 자기 인식을 담고 있 다. 그러나 ‘눈’을 매개로 한 이 같은 자기 인식은 내부를 향한 시선 으로만 머물지 않고 외부적 상황에 의해 촉발된 의지 발현으로서의 저항성으로 나타나게 된다. 서정성을 특질로 하는 윤동주 시의 많은 시편들에 내재된 저항성의 의미층위는 이렇듯 상징의 다의성에 의해 설명될 수 있으며,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그 같은 특질은 저항시로서 의 특성을 지닌 윤동주의 시가 시대를 초월해 현재의 독자들에게도 공감대를 형성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 100 민족문화연구 제43호 5. 마치는 말 지금까지 이 논문은 언어적 측면의 분석을 기반으로 상징의 의미구 조를 분석하여 윤동주 시의 주체상이 형상화된 방식을 살펴보았다. 이 는 특히 주체의 존재태가 농축되어 있는 “눈”이 ‘눈을 감는’ 특수한 형 태로 반복되며 상징으로 기능하고 있음에 주목한 논의이다. 이를 통해 그러한 몸 상징이 외부의 풍경과 비유적으로 결합하여 변주된 상징의 형태로 의미를 심화시키는 특성과 ‘뜨는 눈’, ‘뜬 눈’과 연계되어 형성 된 ‘감는 눈’의 의미를 밝혀낼 수 있었다. 그 결과 이 논문은 윤동주의 시에 나타난 ‘감는 눈’의 상징의미가 실존의지를 전제한 불구의식의 표출임을 밝혀내었다. 이는 ‘뜬 눈’의 시선과 상통하는 의미화의 지점에서 주체의 내부로 향하는 자기 인식 의 시선인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외부를 바라보는 내재된 시선을 통해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면밀히 관찰, 그에 대응하는 근대적 저항 성을 표명하는 시선이기도 하다. 이러한 ‘감는 눈’ 상징의 의미적 이중 성을 도출함으로써 이 논문은 ‘감는 눈’, ‘뜨는 눈’, ‘뜬 눈’으로 삼분되 는 윤동주 시의 ‘눈’ 상징을 총체적으로 규명해낼 수 있었다. 하지만 논지 전개의 통일성을 기하기 위해 본고에서는 ‘감는 눈’의 변주형태로 설명될 수 있는 또 하나의 저항의 방식인 퍼소나의 치환을 논의에서 배제하였다. 타자와의 직접적 소통을 거부하는 외면행위로 변주되는 ‘가면 쓰기’의 양상은 동시를 포함한 윤동주 시의 퍼소나가 순진성을 가장한 주체의 의도된 저항성을 보여준다는 사실을 설명해줄 수 있다. 이에 대한 고찰은 다음의 연구과제로 남겨두기로 한다. ◆ 주제어 : 감는 눈, 공간, 확장, 뜨는 눈, 뜬 눈, 의지적 불구의식, 저항, 주체, 자기 인식 ‘감는 눈’의 시선과 폭력에의 저항 101 참고문헌 1. 자료 권영민 편저,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 문학사상사, 1995. 왕신영 외 엮음, (증보판) 사진판 윤동주 자필 시고전집 , 민음사, 2002. 윤동주,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 정음사, 1948. 2. 국내 논저 강만길, 韓國現代史, 창작과비평사, 1984. 권영민 엮음, 윤동주 연구 , 문학사상사, 1995. 김영윤, .보들레르에 있어서 우울과 도취., 상징주의 문학론 , 민음사, 1982. 김열규, .윤동주론., 국어국문학 27집, 1964. 김치수 외, 현대기호학의 발전 , 서울대학교출판부, 1998. 김흥규, .윤동주론., 창작과 비평 9.3, 창작과 비평사, 1974. 마광수, 尹東柱 硏究 : 그의 詩에 나타난 象徵的 表現을 中心으로 , 정음사, 1984. 유종호, .청순성의 시, 윤동주의 시., 김학동 편, 윤동주 서강대학교 출판부, 1997. 임현순, .윤동주 시의 ‘눈’과 매개된 인식., 한국근대문학회 편, 한국근대문학 연구 12집, 태학사, 2005. 정기철, 상징, 은유, 그리고 이야기 , 문예출판사, 2002. 정 양, .동심의 신화., 국어국문학연구 5집, 원광대학교, 1979. 정의채, .현대사회의 폭력의 의미 - 폭력과 평화에 대하여., 폭력이란 무엇인 가 : 그 본질과 대안 - 폭력에 대한 철학적 성찰 (2002년도 한국학술진 흥재단 기초학문육성 일반연구 연세대학교 철학연구소 공동연구팀 발 표논문집), 2003. 3. 국외 논저 아리스토텔레스, (개역판)시학 , 천병희 역, 문예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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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도 없는 윤동주'와 함께 있고 싶어  - 윤동주와 가도 게이지 씨  作 이누가이 미쯔히로  내가 윤동주의 이름을 처음 들은 것은 가도 게이지씨에게서엿다.  그는 1980년대의 지문 날인 거부 투쟁을 정력적으로 떠맡았고, 그 필연적인 전개로서 '강제 연행의 자취를 젊은이들과 더듬어가는 여행'의 리더가 되어 수차례나 현해탄을 왕복하였다. 또한 필연적인 전개로서 반천황제 투쟁에 감연히 나서서 정열을 불태우고 있던 차, 암 선고를 받고 갑자기 저 세상으로 가 버린 가도 게이지 씨가 만년에 더없이 사랑한 사람이 윤동주였다.  최근 일본에서도 윤동주에 대한 인식이 달라져 그 시비가 세워지기도 하고, 그의 시나 전기가 출판되어 나오는데 대해 큰 기쁨을 느끼는 터이지만, 가도 게이지 씨를 통해 윤동주를 알게 된 나로서는 한가닥 불안을 느끼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나는 원래가 산문적인 인간이라 나 같은 것이 윤동주에 대해 감히 무엇을 쓴다는 것부터가 가당찮은 일인 줄 알면서도 일본이 윤동주를 받아들이는 데 기여한 가도 게이지 씨의 역할은 의미있는 일이라 생각되어 가도 게이지 씨에게 있어 윤동주란 어떤 존재인가를 증언해 보고자 한다.  가도 게이지 씨는 1991년 11월 2일에 말기 암의 선고를 받았다. 그 때 쓴 글이 이제 소개할 이다. 윤동주의 영향이 얼마나 컸는가를 알 수 있다.  가도 게이지 씨의   -시모노세키를 오후 5시에 출항한 관부연락선은 1시간쯤지나 육련도 부근을 통과합니다.  지난해도 지지난해도, 아니 첫 해부터 그랬습니다. 현해탄의 팔월의 바다는 바람이 거셉니다.  갑판에 부는 바람으로 여러분의 뺨이 일그러지고, 빗어내린 머리카락도 휘말려 올라가겠지요.  그러나 자세를 그대로 하여 바다위를 바라보아 주십시오. 이 해협을 거쳐 강제로 끌려간 이백만명이라는 조선인의 신음소리가 들려옵니다. 잘 들어 보십시오. 신음소리는 말하고 있습니다. "우릴 잊지 말아 다오. 우릴 보상해 다오.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인간의 마음을 되돌려 다오!" 분명히 들으셨지요?  그로부터 1시간쯤이면 앞바다 섬 근처까지 가게 됩니다. 이젠 해질녘인 7시지요.  시선을 서쪽 지평선 쪽으로 돌리십시오. 서녘 하늘에서 해원으로 떨어지고 있는 저녁해가 오늘도 보일런지요.  현해탄은 슬픔의 바다입니다. 당시 배 밑바닥의 누에섶과도 같은 삼단으로 된 선실에 처박혀 있던 조선인들에게는 뺨을 스치는 바람도 빨간 저녁해도 딴 세상의 일이었습니다.  나는 현해탄을 거너는 연락 페리 위에서 언제나 그런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일본이라는 나라에 태어난 사람들이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조선. 아시아의 사람들에게 오직 사죄하는 일입니다. 그것이 너하고 무슨 상관이 잇느냐는 말을 주위에서 항상 들어왔습니다. 당신이나 내가 직접 저지른 잘못은 아니니 그런 일에 구애 받지 말고, 자유로이 살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말도 종종 들어왔습니다. 나도 이전에는 그렇게 생각했었습니다.  그렇지만 조선과 아시아의 사람들이 볼 때, 우리는 일본이라는 죄 지은 배(나라)에서 태어난 사람들입니다. 때문에 우리들은 조상이 지은 죄를 대신 빌어야 하는 것입니다.  두 나라를 가른 바다에 가으링 오고, 진눈깨비 내리던 겨울이 가고 , 봄이 찾아들 무렵이면 바다 사이를 물새가 날아오고 날아갑니다. 물새는 "자, '희망'을 실어왔어요!"하고 정답게 울면서, 죽어간 조선인의 넋을 위로하고 슬픔을 씻어 주려 애를 씁니다. 그러한 따스한 봄을 기다리고 싶습니다.  나는 그런 바다에 잠들고 싶습니다  1991년 11월 2일  죽음을 알려온 날에 가도 게이지  나는 이 을 11월 4일에 건네 받았고, 유골을 현해탄에 뿌려 달라는 부탁도 받았다.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죽음을 당한 윤동주의 유골의 일부가 아버지의 손에 의해 현해탄에 뿌려진 것을 가도씨는 알고 있어서 그렇게 부탁했던 것이다. 가도씨와 절친했던 친구들은 가도씨 역시 산문적인 인간으로 결코 시를 이해하거나 쓸 줄 아는 사람이 아니었다고 한다. 나도 동감하는 터이지만, 만년의 가도씨는 이 에서 알 수 있듯이 독특하고 아름다운 몇 편의 문장을 남기고 떠나갔다  가도씨는 윤동주를 투병의 와중에서 읽으셨다. 이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저항 시인 윤동주' 라고 말하지만, 실제로 일본 제국주의와의 투쟁 속에서 윤동주의 시는 태어났던 것이며, 따라서 윤동주의 시는 투쟁 속에서 읽혀지지 않으면 안 된다.  투쟁 속에서 괴로워하고, 탄식하고, 회의하고, 자신의 욕됨과 신념 없음을 철저히 깨달아 알았기에, 어디에 의지해야 할 지를 알고 꿋꿋이 앞만 바라보고 나아갔던 것이다.  이 가도씨가 1989년 12월 3일에 '강제 연행의 자취를 젊은이들과 더듬어가는 여행' 보고서의 권두언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제목은 .  *'이름도 없는 윤동주'에게  서 시(序詩)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별 헤는 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차 있습니다  ...........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게외다  -내가 좋아하는 시인입니다. '저항 시인' 윤동주는 일본의 식민지 통치하에서 조선의 독립을 꾀했다 하여 붙들려가서 일본의 패배와 조선의 해방을 목전에 둔 1945년 2월,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27세 젊은 나이로 죽었습니다.  조선어 사용을 금지하는 상황에서 한글로 시를 쓰고 , '이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살기를 맹세하면서 죽어갔습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하면서' 살아가고자 했던 윤동주를 죽인 것은 일본인과 일본 정부였습니다  납골 단재에 담기지 못하고 하얀 재가 되어 버린 윤동주의 뼈는 고향으로 돌아가다 아버지의 손으로 현해탄에 뿌려졌다고 그 동생이 전하고 있습니다.  9일 동안의 여행길은 일제에 항거하다가, 아니 어쩌지도 못하고 죽어간 이름없는 '윤동주들'의 뼈를 밟고 걷는 여행길이었습니다. 그러나 여행길에서 희망을 보았습니다. 오무라 강제수용소의 허물어진 흙답벼락에서 본 것은 '한마음......산도 바다도 보인다......기어코 해내리라......바른 마음으로 기다리면 반드시 좋은 일이 온다.'는 구절이었습니다.  어둠 속에 빛이 비치듯이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자랑처럼 풀이 무성한' 그러한 '봄'을 모두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글을 이름없이 죽어간 한국인.조선인에게 바칩니다.  1989년 12월 3일  '강제 연행의 자취를 젊은이들과 더듬어 가는 여행'  실행위원회 대표 가도 게이지  가도씨는 윤동주를 마음속으로 사랑하고 있었다. '나는 그러한 바다(현해탄)에서 잠들고 싶습니다.'고 끝나는 가도씨의 은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스물일곱 젊은 나이로 죽은 윤동주의 뼈의 일부가 그 아버지의 손으로 현해탄에 뿌려진 일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  이 추도문집을 나는 가도 게이지 씨의 비문으로 삼고 싶다. 몇 번이라도 다시 꺼내 읽으며 우리들의 결심을 새롭게 하고 싶다.  1993년 2월 24일  2.  그리스도를 본받아  - 윤동주의 신앙 作 다카도 가나메  나는 이 교회에 오기 전에 이 연세대학교 구내에 있는 윤동주의 시비(詩碑)를 찾아가 둘러보고 왔습니다. 거기에는 물론 아시다시피 그 가 새겨져 있습니다.  이 는 1941년 11월 20일에 쓰여졌으므로 이제 17일 뒤면 만 50년, 꼭 반세기가 되는 것입니다. 50년 전에 쓰여진 시가 오늘도 싱그럽게, 오늘에 쓰여진 시처럼 내 영혼을 뒤흔들어 줍니다. 이 시를 읽을 때마다 새로운 감동이 내 가슴에 끓어 오르는 것입니다. 날카로운 송곳처럼 일본인인 내 가슴을 도려내고 마구 쥐어 뜯어 마음에 아픔을 안겨 줍니다. 동시에 내 마음속에 시커멓게 갈앉은 죄와 더러움이 정화되고 내 마음속에 있는 아픔과 괴로움이 위로받아, 이 나에게도 새로운 만남을 향해 나아갈 용기가 주어지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입니다.  캠퍼스를 걸으면서 나는 윤동주의 발소리를 듣고, 윤동주의 체온의 따스함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그가 우러른 '하늘'을 펴다보고, 그의 피부를 스친 '바람'을 느끼고, 그가 사랑한 '별'을 환상으로 보고, 그가 좋아했던 코스모스를 바로 눈으로 보았습니다.  그리고 내가 마음속에 떠올린 것은 시인 박두진 선생의 말씀입니다  "시인 윤동주의 늠름한 희생은 그 작품과 생애의 불멸의 가치와 더불어 일제의 만행과 침략, 군국주의의 죄악사를 언제까지나 고발하고 또 심판하고 있다."  나 자신도 일본 제국주의의 만행과 침략과 죄악을 증오하고 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크리스천 홈에서 자란 소년이었던 나는 '비국민'이란 욕을 듣고,괴롭힘을 당했던 지난날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한 사람의 일본인으로서 나는 자신이 직접 범하지 않은 '만행과 침략과 죄악'을 "원죄'로 받아 몸에 짊어지고 있습니다. 윤동주를 학대하고 고문하고 죽음에 이르게 한 '더러운 손'은 바로 나의 것입니다. 나는 윤동주가 쓴 가장 원숙한 만년의 그 귀중한 시원고가 일본 관헌의 손에 몰수되어 어쩌면 쓰레기처럼 소각되어 버렸을 것을 생각하면 마치 내가 저지른 것처럼 느껴지는 것입니다. 용서를 빌자 해도 결코 용서받지 못한 '원죄'를 나는 평생 짊어지고 가지 않으면 안 되겠지요.  그러나 동시에 나는 시비가 있는 언덕 위에서 시인이며 목사인 문익환 선생이 했던 말을 떠올리고 있었습니다.  "그에게서는 모든 대립이 해소되었다. 그 미소에 감도는 포근한 기운으로 녹지 않는 얼음은 없었다. 모든 사람들이 피를 나눈 형제였다. 나는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가 있다.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숨을 거둘 때 그는 일본인들의 일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렸으리라고. 인간성의 깊이를 간파하고, 그 비밀을 알고 있었으므로 그 누구도 미워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 기이하고도 따뜻한 위로의 말은 실은 나 자신이 (記錄社,1984)를 일본어로 읽으면서 느끼고 있었던 것을 대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인인 윤동주는 일본인을 고발하고 심판하면서 동시에 용서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용서하려 했고 용서하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과거를 간파할 뿐만 아니라 미래도 함께 내다보고 있던 '예언자'가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중간생략.....  나의 상상은 너무 멋대로인지도 모릅니다. 문익환 목사의 말에 동조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으로서 윤동주를 바라보고,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의 만남을 허락받은 자로서 이와 같이 상상하는 것을 용서해 주셨으면 합니다.  내가 존경하는, 지금은 이미 고인이 된 일본의 기독교 작가인 시이나 린조는 한 인간과 인간과의 커뮤니케이션,그 만남은 '상대방을 위해 죽는다고 하는 비주체적 행위를 통하여 상대방의 것이 되어 상대방의 슬픔과 괴로움속에 살'아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한 '공감'없이는 '어떤 대화도 교통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타인과의 만남에서 자신의 주체성을 상대방에게 밀어붙이려고 합니다. 거기서는 '만남'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진정한 '만남'을 성립시키자면 상대방 속에 자기를 죽이는, '주체'가 죽는다고 하는 '비주체적 행위'를 통하여 자기를 '상대방의 것', 상대방의 소유물로 만듦으로써 '상대방의 슬픔'이나 '괴로움'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시이나 린조라는 작가는 기독교 작가이므로 이 점을 잘 알고 말했을 터이지만, 이것은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자신을 죽여서 '상대방의 슬픔'이나 '괴로움' 속에 산다는 것은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하기 어렵다는 것을 시이나 린조는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인간과 인간과의 공감, 인간과 인간과의 만남은 불가능하다고 말하고 있는 겁니다.  시이나 린조라는 기독교 작가가 호소하고 있는 것은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한 이러한 만남을 성립시켜 주는 힘은 예수 그리스도 밖에는 없다는 말인 줄 압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나'를 버리고 '나'를 죽여, 죄있는 인간의 '슬픔'과 '괴로움'속에 살아가셨습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는 불가능한 만남을 가능케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윤동주라는 시인의 시를 읽노라면, 윤동주에게 있어서의 '만남'은 일본의 소설가인 시이나 린조와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만이 할 수 있는,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만남'일 뿐 '참'된 '만남'은 못 된다는 것을 잘 알 것이빈다. 그러면서도 그러한 인가능로서는 불가능한 '참된 만남'을 기구하고 있던 한 사람의 가난한 기독교인이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윤동주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해서 죄사함을 받고 부끄럼을 씻고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 새로운 인간으로 거듭나서 인간에게는 불가능한 "참"된 만남을 성취했다는 것을 거의 의심할 수 없게 해줍니다. 그렇지 않다면 윤동주는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을 노래할 여지가 없습니다.  윤동주가 옥사한 시대에 비해서 지그의 이 시대가 조금은 나은 시대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우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섬세하고 상처받기 쉽고 부서져 버리기 쉬운 영혼이 절망에 빠져들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시대일까요. 절망으로 하여 신에 대한 불신앙을 고백하지 않아도 될 시대일까요. '만행', '침략', '죄악' 따위의 '고발'이나 '심판' 같은 것이 없이도 넘어갈 수 있는 시대일까요.  우리는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마음'에 아픔을 깨달으면서도 '별을 노래하는마음'으로 인간 모두가 '죽어가는 모든 것'을 '사랑하고' '불쌍히 '여기면서 우리들 한사람 한 사람에게 '하늘'로 부터 주어진 길을 걸어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아닐까요. 그렇게 하기란 아마도 불가능한 일이겠지요. 그렇지만 예수 그리스두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하여 우리는 모두가 그 불가능을 가능케 하도록 허락받고 있다고 믿습니다.  나는 이 번에 한국어판인 (전망사)과일본어판 (교문관) 이 두 시집의 출판 기념회를 위해 서울에 왔습니다. 한국의 기독교인과 일본의 기독교인이 시와 문학을 통해서 더욱 싶은 만남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을 우리들 모두의 '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은충이라고 믿습니다.  찬양하리로다, 주 예수 그리스도! 마라나타, 주여 오시옵소서!  1991년 11월 3일  연세대학 교회에서 일요예배 설교  3.  윤동주를 보는 일본인의 시각  -속죄와 화해를 바라는 양심의 소리 作 김우규  1.일본 속의 윤동주 바람  만일,우리말과 우리 글을 빼앗겼던 일제말의 암흑기에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써 남겼던 윤동주의 시가 햇빛을 보지 못하고 사장되었더라면 이 시기는 우리 문학사에 영원한 공백으로 남겨졌을 것이다. 그러나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흙으로 덮였던 윤동주의 이름은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이 땅의 '언덕'위에 영롱한 별빛으로 자랑스럽게 되살아나 우리 문학사의 공백을 메워 준 소중한 기록으로 남게 되었다.  그리하여 '별을 노래하는 마음'은 우리 한국인 모두의 마음이 되어 공감의 폭을 넓혀가며 애송되고 있다. 이 별빛은 또한 지금 이 땅에서 뿐만 아니라 그를 죽음으로 몰아간 '남의 나라' 일본 땅의 '언덕'위에도 촉촉이 내리고 있다. 한국 시인의 시가 이처럼 일본인의 인구에 널리 회자되기는 아마 처음일 것이다.  그것도 일제의 가혹한 탄압과 굴욕 속에서 억울하게 죽어간 한 시인의 작품이 바로 그가 최후를 마친 형무소가 있는 후쿠오카를 비롯한 일본 각지에서 애송되고 있다는 것은 엄청난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아마 생전의 윤동주 자신도 이것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이리하여 윤동주는 모국에서 뿐만 아니라 '남의 나라' 일본에서도 적잖은 사람들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받는 존재로 부각되고 있다.  윤동주의 시전집이 일본에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이름으로 이부키고에 의해 번역 출간된 데 이어, 소설가 송우혜의 이 역시 같은 역자의 손으로 번역 소개된 이래 1992년에 '윤동주를 생각하는 모임'이 생기면서 일본 고등학교 현대문 교과서에도 크게 다루어졌다(일본 여류시인 이바라키 노리코)에 의해 윤동주의 시와 생애가 11페이지 분량으로 상세하게 다루어 졌다). 한국 시인의 작품이 일본 교과서에 수록되기는 처음이라고 한다. 또 1994년에는 윤동주가 옥사한 후쿠오카시에서 '윤동주의 시를 읽는 모임' 이 생겨 지금까지 20여회의 낭송회를 계속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 같은 해 일본 NHK에서는 윤동주 50주기 추모행사로 '윤동주 특집'을 방영하여 대대적으로 소개된 바가 있다. 한 편 시비 건립위원회에서는 윤동주가 다니던 도시샤대학 캠퍼스에 윤동주 시비를 건립하여 언론에 크게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시비에는 윤동주의 가 확대된 그의 친필과 일역문으로 각인되어 있다. 그리고 최근에는 모리다 스스무가 번역한 윤동주의 시편들을 곁들여 일본의 윤동주 연구가들이 집필한 평설집이 란 제목으로 일본 그리스도교단 출판국에서 출간되어 한 달 만에 재판이 나올 정도로 큰 반향(反響)을 얻고 있다. 이로써 윤동주는 오십 년 전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일본 땅에서 지금은 바야흐로 일본의 '성실한 지성과 양심'에 의해 '한국의 위대한 시인'으로 조명을 받고 있다.  .....중간 생략....  2. 한일(韓日) 화해의 파이오니어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윤동주의 시에 대한 일본인들의 독특한 이해의 패턴을 읽을 수 있었다. 특히,윤동주의 시에서 자주 만나게 되는 '부끄럼'의 의미를 종교적. 실존적 차원에서 해명한 점과 그의 저항 정신을 일제말의 암흑기에 '한글로 시를 썼다'는 문학행위에서 확인하면서, 기독교 정신과 민족 정신이 완벽하게 일체화된 시정신의 높이에 심층적으로 접근하고 있는 성실한 통찰력이 주목된다. 그리고 그 보다도 그 저변에 깔려 있는 한결같은 염원-즉 '그의 혼은 한일의 화해와 우호를 바라는 한국과 일본의 많은 사람의 마음 속에 영원히 살아 이어질 것'을 믿고 소망하는 충정에 짙게 배어 있다는 점이 감명 깊게 다가옴을 느꼈다.  이것을 달리 말하면 윤동주로 상징되는 한국인에 대한 가해자로서의 업보를 윤동주의 이름으로 용서받고자 하는 진솔한 사죄의한 표명이기도 하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이 책의 '후기'가 잘 대변해주고 있다.  "1995년은 일본으로서는 패전 50년째가 되는 해이다. 우리는 이 해에 새로운 50년을 향해 걸음을 내딛기 위하여, 일본이 세계, 특히 아시아에 대해서 자행한 침략과 전쟁의 죄악에 가득찬 과거를 똑바로 바라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이것은 모리다 스스무와 같은 이의 작품 해석에서도 엿볼 수 있다. 의 마지막 행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를 '비벼진다'라고 번역한 부분을 들 수 잇다. 여기에서 별은 이 시인이 지향하는 이상, 혹은 이데아의 세계이다. 바람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이해하기에는 시련과 같은삶의 저해 요인이다. 따라서 별과 바람은 대립적인 존재이다. 그가 추구하는 순수 가치의 세계가 바람과 같은 외부적인 힘에 의해서 시달리는 상황을 뜻한다고 보아진다. 그런데 이 '비벼진다'라는 것은 마치 서로 사랑하는 것끼리 정답게 어깨를 마주 비벼대는 것처럼 보고 있다. 대립이나 적대가 아니라, 오히려 우호요 포용의 몸짓이다.  또 다카도 가나메 같은 이는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에서 그 '사랑해야지'의 대상으로 일본인 까지 포용할 것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모든 죽어가는 것' 가운데는 미워해야 할 다른 사람인 일본인도 들어 있다고 생각한다면 일본인인 난만이 독선일까요." 그러면서 문익환 목사의 다음과 같은 말을 인용하고 있다. "그에게서는 모든 대립이 해소 되었다...나는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 있다.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숨을 거둘 때 그는 일본인들을 생각하면 눈불을 흘렸으리라고. 인간성의 깊이를 간파하고, 그 비밀을 알고 있었으므로 그 누구도 미워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윤동주를 학대하고 고문하고 죽음에 이르게 한 '더러운 손'은 바로 나의 것"이라는 죄의식에서 죄사함을 구하고 있다. 그리스도가 원수를 용서하듯이 미워해야 할 원수까지도 사랑하고 용서한 윤동주의 이름으로 용서를 받고자 하는 것이다. 일본인들이 말하는 '한일간의 화해'는 윤동주의 '원수까지도 용서하는 사랑'에서 그 가능성을 찾고자 하는 것이다.  지난날 일제하에서 저들이 우리에게 자행한 엄청난 만행과 학대는 무엇으로도 보상받을 수 없는 '죄악' 임에 틀임없다. 그리고 걸핏하면 독도 영유권 등을 들고나오는 일본인들의 책략이 한없이 가증스럽다. 아마 일본인의 근성가운데는 악의적인 막뿌리가 자라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윤동주를 사랑하는 적지 않은 일본인 가운데는 지난날의 일본의 죄악사를 사죄의 심정으로 돌아보며 진정한 화해를 희망하는 진솔한 양심과 휴매니티가 내재되어 있음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이리하여 윤동주의 존재는 일본의 다카도 가나메가 윤동주 50주기에 추모 강연에서 말했듯이 " 일본 제국주의를 증오하고 고발한 파이오니어가 된 시인은 사랑으로 이어주는 파이오니어로 우리 앞에 다가오고 있다."   
4    [작문써클선생님께] - 매헌 윤봉길 알아보기... 댓글:  조회:3263  추천:0  2018-09-08
      "23세, 날이 가고 해가 갈수록 우리 압박과 우리의 고통은 증가할 따름이다. 나는 여기에 한 가지 각오가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뻣뻣이 말라 가는 삼천리 강산을  바라보고만 있을 수가 없었다. 수화(水火)에 빠진 사람을 보고 그대로 태연히 앉아 볼 수는 없었다.   여기에 각오는 별것이 아니다. 나의 철권(鐵拳)으로 적(敵)을 즉각으로 부수려 한 것이다.   이 철권은 관(棺)속에 들어가면 무소용(無所用)이다. 늙어지면 무용이다.  내 귀에 쟁쟁한 것은 상해 임시정부 였다. 다언불요(多言不要), 이 각오로 상해를 목적하고  사랑스러운 부모형제와 애처애자와 따뜻한 고향산천을 버리고,  쓰라린 가슴을 부여 잡고 압록강을 건넜다."  *생가(충남 예산)   "고향에 계신 부모 형제 동포여! 더 살고 싶은 것이 인정입니다. 그러나 죽음을 택해야 할 오직 한 번의 가장 좋은 기회를 포착했습니다. 백 년을 살기보다 조국의 영광을 지키는 이 기회를 택했습니다.  안녕히, 안녕히 들 계십시오."      *상해 임시정부 청사 사적관  윤 의사 사적전시관 "너희도 만일 피가 있고 뼈가 있다면  반드시 조선을 위하여 용감한 투사가 되어라. 태극의 깃발을 높이 드날리고  나의 빈 무덤을 찾아와 한 잔 술을 부어 놓으라...."                                     *묘소(효창공원)   사람은 왜 사느냐 이상을 이루기 위하여 산다. 보라 풀은 꽃을 피우고 나무는 열매를 맺는다. 나도 이상의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기를 다짐하였다.   우리 청년시대에는 부모의 사랑보다 형제의 사랑보다 처자의 사랑보다도 더 한층 강의(剛毅)한 사랑이 있는 것을 깨달았다. 나라와 겨레에 바치는 뜨거운 사랑이다.   나의 우로(雨露)와 나의 강산과 나의 부모를 버리고라도 그 강의한 사랑을 따르기로 결심하여 이 길을 택하였다.              *중국 상해 '홍커우' 공원 1932년 4월 29일, 이곳에서 역사적인 사건이 일어났던 곳. 일본의 천장절과 승전기념일 행사에 폭탄을 투척.         *  거사 기념석     * * 최후 순국 장면                                             * 매장 장면     ** 장제스 대만 전 총통의 친필   * 1967년 윤봉길 의사 유족들에게 전달해준 친필 붓글씨 윤 의사 의거를 계기로 독립군은 당시 국민당 장제스 정부의 지원을 받을수 있었는데  장제스는  "중국의 백만 군대가 못한 것을 조선의 한 청년이 해 냈다."고 극찬.  
3    [그것이 알고싶다] - "퀴어축제"?... 댓글:  조회:4364  추천:0  2018-09-08
요약 성소수자를 지칭하는 말 목차 개요 단어의 유래 ┗ LGBT란 개요 성소수자를 지칭하는 포괄적인 단어다. 성소수자는 성적 지향이나 성정체성과 관련해 사회적으로 소수에 해당하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성적 지향은 개인이 타인에게 가지는 감정적, 정서적, 성적 끌림의 방향성이다. 성적 지향에 따른 성소수자로는 게이, 레즈비언, 바이섹슈얼(Bisexual, 양성애), 판섹슈얼(Pansexual, 범성애), 에이섹슈얼(Asexual, 무성애) 등이 있다. 게이, 레즈비언과 같이 자신과 같은 젠더(성별)에 끌리는 성향을 동성애라 한다. 바이섹슈얼은 두 개 이상의 젠더에 끌리는 성향이다. 이때 상대방의 젠더는 자신과 같거나 다를 수 있다. 판섹슈얼은 상대방의 젠더를 구분하지 않는 성향을 말한다. 에이섹슈얼은 타인에게 성적 끌림을 느끼지 않는 성향이다. 자신과 다른 하나의 젠더에 끌리는 성향은 이성애라 한다. 이성애자는 사회적 다수로 성소수자에 해당하지 않는다. 성정체성은 자신의 젠더(Gender)에 대한 정체성을 뜻한다. 생물학적 성별과 자신의 성정체성이 다른 사람은 트랜스젠더(Transgender), 일치하면 시스젠더(Cisgender)라 한다. 여성과 남성의 성별 이분법에서 벗어난 성정체성은 젠더퀴어라 한다.   2016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에서 열린 성소수자 차별 법안(HB2) 반대 시위 HB2(House Bill 2)는 성소수자 차별 금지 조례를 제정하지 못하게 하는 등의 내용으로 성소수자 차별 법안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단어의 유래 퀴어(Queer)는 본래 '이상한, 괴상한, 기묘한'이란 뜻을 가진 단어다. 북부 잉글랜드에서는 ‘사람보다 이상한 것은 없다(There is nothing as strange as people)’는 의미로 ‘There's nowt so Queer as folk’라는 말을 사용했다. 퀴어가 성소수자를 의미하는 단어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20세기 들어서다. 당시 퀴어는 동성애자를 모욕하거나 비하하기 위한 경멸적 호칭으로 사용되었다. 퀴어의 의미는 1980년대 미국 동성애 인권운동의 영향으로 달라지기 시작했다. 동성애자들이 적극적으로 자신들을 퀴어라 지칭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동성애자들이 자신들을 퀴어라 부르기 시작하면서 본래 퀴어가 가지고 있던 경멸적 의미는 사라졌다. 이후 퀴어는 동성애자뿐 아니라 성소수자 전반을 포함하는 단어로 의미가 확장되었다. 한국에서는 2000년부터 매년 퀴어문화축제가 개최되고 있으며 1998년부터 2년에 한 번씩 서울 퀴어 영화제가 개최되고 있다. LGBT란 한편, 퀴어와 마찬가지로 성소수자를 지칭하는 단어로는 LGBT가 있다. LGBT는 레즈비언(Lesbian), 게이(Gay), 바이섹슈얼(Bisexual), 트랜스젠더(Transgender)의 첫 글자를 딴 단어다. 더 다양한 성적 지향과 성정체성을 담기 위해 LGBT를 ‘LGBTI, LGBTAIQ’등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여기서 I는 인터섹스(Intersex)1) , Q는 퀘스처너(Questioner)2) , A는 무성애(에이섹슈얼)를 의미한다. 단, LGBT는 단어의 특성상 다양한 성소수자를 전부 표현하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 ==================   무지개 깃발 성 소수자의 상징   성 소수자는 트랜스젠더, 동성애자, 양성애자, 무성애자 등 성적지향과 성 정체성과 관련된 소수자를 일컫는다. 비슷한 말로는 퀴어와 LGBT가 있다. 본래는 ‘기묘한, 이상한’이라는 뜻으로 동성애자를 멸시할 때 쓰는 단어였으나. 동성애자 인권 운동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당당하게 ‘퀴어’라는 뜻을 사용함으로서 점차 성 소수자 전반을 지칭하는 단어로 자리 잡게 되었다. ===========================///   요약 성적 지향이나 성정체성, 신체 등이 사회적 소수자에 해당하는 사람 목차 개요 성적 지향 성정체성 인터섹스 성소수자 인권운동의 역사 ┗ 스톤월 항쟁 ┗ 퀴어 퍼레이드의 시작 ┗ 미국의 동성결혼 합헌 결정 한국의 성소수자 인권운동 개요 성적 지향이나 성정체성, 신체 등이 사회적 소수자에 해당하는 사람이다. LGBT 혹은 퀴어라고도 한다. 퀴어(Queer)는 본래 동성애자를 비하하는 멸칭이었으나 1980년대 동성애자들이 적극적으로 자신들을 퀴어라 부르기 시작하면서 본래의 경멸적 의미가 희석되었다. 현재는 동성애자를 포함해 성소수자 전반을 포함하는 단어로 사용한다. LGBT는 레즈비언(Lesbian), 게이(Gay), 바이섹슈얼(Bisexual), 트랜스젠더(Transgender)의 첫 글자를 딴 단어다. 더 다양한 성적 지향과 성 정체성을 담기 위해 LGBT를 ‘LGBTI, LGBTAIQ’등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이때 I는 인터섹스(Intersex)1) , Q는 퀘스처너(Questioner)2) , A는 무성애(Asexual)를 의미한다. 단, LGBT라는 명칭으로는 다양한 성소수자들을 모두 지칭하는데 한계가 있다고 여겨지기도 한다. 성소수자를 상징하는 무지개 깃발 성적 지향 성적 지향이란 개인이 타인에게 가지는 감정적, 정서적, 성적 끌림의 방향성이다. 여성이나 남성이면서 자신과 같은 성별에 끌리는 성적 지향은 동성애(Homosexuality), 여성과 남성 모두에게 끌림이 있는 경우는 양성애(Bisexuality, 바이섹슈얼)라 한다. 상대의 성별과 관계없이 끌리는 범성애(Pansexual, 판섹슈얼)와 타인에게 성적인 끌림을 느끼지 않는 무성애(Asexual, 에이섹슈얼)3) 도 있다. 자신을 동성애자로 정체화한 사람 중에서 여성에게 끌리는 여성은 레즈비언(Lesbian), 남성에게 끌리는 남성은 게이(Gay)라 한다. 한편, 여성이나 남성이면서 자신과 다른 성별에 끌리는 성적 지향은 이성애(Heterosexuality, 헤테로섹슈얼)라 한다. 사회적으로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성적 지향으로 성소수자가 아닌 성다수자에 해당한다. 이성애자를 영어로는 스트레이트(Straight)라 표현하기도 한다. 2016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에서 열린 성소수자 차별 법안(HB2) 반대 시위 HB2(House Bill 2)는 성소수자 차별 금지 조례를 제정하지 못하게 하는 등의 내용으로 성소수자 차별 법안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성정체성 성정체성은 개인의 젠더(Gender) 정체성을 뜻한다. 개인이 자신의 젠더(성별)를 어떻게 규정하는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트랜스젠더(Transgender)는 출생 시 지정받은 성별과 자신이 규정하는 성정체성이 다른 사람이다. 이와 달리 사회적 성별와 심리적 성별이 같다면 시스젠더(Cisgender)라 한다. 시스젠더는 일반적인 사회에서 용인하는 젠더 정체성으로 성소수자가 아닌 사회적 다수자에 해당한다. 여성과 남성의 성별 이분법에 해당하지 않는 성 정체성은 젠더퀴어(Genderqueer) 혹은 논-바이너리(Non-binary)라 한다. 논-바이너리에는 남성성과 여성성을 함께 인식하는 안드로진(Androgyne)과 남성도 여성도 아니라고 느끼는 에이젠더(Agender), 다양한 젠더 사이를 의식적·무의식적으로 오가는 젠더플루이드(Genderfluid) 등이 있다. 논-바이너리이면서 트랜스젠더로 자신을 정체화할 수도 있다. 또한, 남녀 단일 젠더에 대해 감정적, 정서적, 성적 끌림을 느끼는 경우에는 자신을 여성애자(Gynephilia)나 남성애자(Androphilia)로 표현하기도 한다. 인터섹스 인터섹스(Intersex, 간성)도 성소수자에 포함된다. 인터섹스는 여성이나 남성 신체에 대한 전형적인 정의에 해당하지 않는 사람이다. 태어날 때부터 혹은 성장하면서 염색체나 생식기, 성호르몬 등에서 남녀의 신체적 차이라고 알려진 특징들과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다. 신체적으로 여성과 남성의 특징을 모두 가지고 있거나 둘 다 가지고 있지 않은 무성(無性)인 경우 등이 대표적이다. 성염색체와 성호르몬이 일치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개인에 따라 자신의 성정체성을 여성이나 남성으로 규정하거나 여성도 남성도 아닌 간성으로 정체화하기도 한다. 국제엠네스티에 따르면 매년 세계에서 약 1.7%의 신생아가 인터섹스로 태어나며 대부분 건강상 특별한 이유가 없어도 본인 의사와 관계없이 어린 나이에 외과 수술을 받는다. 2013년 유엔 고문특별보고관(SRT)은 보고서를 통해 인터섹스 아동에 대한 동의 없는 성전환 수술은 고문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성소수자 인권운동의 역사 스톤월 항쟁 미국에서 본격적인 성소수자 인권 운동은 1969년 스톤월 항쟁(Stonewall Riots)을 계기로 시작되었다. 스톤월 항쟁은 1969년 6월 28일 뉴욕에서 성소수자들이 출입하던 술집인 스톤월 인(Stonewall Inn)을 경찰이 단속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1960년대 미국에서 동성애는 불법이었으며 성별과 다른 옷차림 역시 금지되었다. 스톤월 인(1969) 스톤월 인(Stonewall Inn)은 1960년대 뉴욕에서 성소수자들이 출입하던 술집이다. 1969년 6월 말 성소수자들이 경찰의 차별에 저항하여 일으킨 시위를 계기로 미국에서 본격적인 성소수자 인권운동이 시작되었다.   당시 경찰은 스톤월에 있던 사람들의 신분확인을 진행했으며 이 과정에서 차별적 말이나 행동 등 인권침해가 일어났다. 성소수자들은 이에 강하게 항의했으며 주변에 동참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결국 무력 사태가 발생했다. 스톤월에서는 이날부터 7월 2일 무렵까지 시위가 계속되었으며, 이 영향으로 미국에서는 전보다 활동적이고 대중적인 성소수자 운동이 시작되었다. 퀴어 퍼레이드의 시작 첫 퀴어 퍼레이드(Queer Parade)는 스톤월 항쟁 1주년인 1970년 6월 28일 뉴욕에서 열렸다. 퀴어 퍼레이드란 성소수자들의 권리를 인정받기 위한 시가 행진이다. 성소수자의 자긍심을 올려준다는 뜻에서 프라이드 퍼레이드(Pride Parade)라고도 부른다. 1970년대 후반부터는 퀴어 퍼레이드에서 성소수자의 상징인 무지개색 깃발이 사용되기 시작했다. 무지개의 여러 색상은 성적 지향과 성정체성의 다양성을 상징한다. 미국의 동성결혼 합헌 결정 2015년 6월 미국 연방 대법원이 동성결혼을 합헌이라고 결정을 내리면서 미국 전역에서 동성결혼이 법적으로 허용되었다. 연방 대법원의 합헌 결정이 내려진 날, 백악관에서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 무지개색 조명으로 백악관을 장식하기도 했다. 2015년 기준 미국을 포함해 동성결혼이 합법화된 국가는 20여 개다. LGBT의 상징인 무지개색 조명으로 장식한 백악관의 모습 2015년 백악관은 무지개색 조명을 통해 연방대법원의 동성결혼 합헌 결정을 축하했다.   한국의 성소수자 인권운동 한국에서는 1990년대 무렵부터 성소수자 인권 운동이 시작되었다. 1990년대 중반부터 각 대학에서 성 소수자 동아리가 결성되었으며 2000년에는 민주노동당이 처음으로 성 소수자 위원회를 구성했다. 한국의 성소수자 인권 운동은 차별금지법 제정과 동성결혼 허용 등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 차별금지법이란 대한민국 헌법의 평등 이념에 따라 성별이나 장애, 나이, 경력, 인종, 출신 지역, 성적 지향, 성 정체성, 학력 등을 이유로 하는 경제적·정치적·사회적 차별을 금지하는 법안이다. 혐오주의 발언이나 행위가 공공연하게 드러내는 것을 제재하고 헌법이 명시하는 평등권의 실현을 위해 입법이 시도되었으나 여러 이유로 보류되었다. 2000년부터는 서울에서 퀴어 퍼레이드를 포함한 퀴어문화축제가 개최됐다. 2009년부터는 대구에서도 퀴어문화축제가 열리고 있다. 한국의 성소수자 단체로는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와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언니네트워크, 친구사이, 성 소수자 인권 연대인 무지개행동 등이 있다. 정당의 경우 정의당과 녹색당, 노동당에서 성소수자 위원회를 운영하고 있다. ==========================///   퀴어축제는 성수소자들의 축제입니다.   퀴어문화축제 는 대한민국의 성소수자 행사로써, 현재 2000년 제1회 서울퀴어문화축제를 시작으로, 대구퀴어문화축제, 부산퀴어문화축제, 제주퀴어문화축제 등 각 지역에서 매년 열리고 있다.  
2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동물보호문제", 남의 일이 아니다... 댓글:  조회:3742  추천:0  2018-09-08
한쪽 눈 잃은 참새에게 새 가족이 생겼다 입력 2018.09.08.  SNS 공유하기   음성 기사 듣기   인쇄하기 새창열림 글씨크기 조절하기   [애니멀피플] 마승애의 내 이웃의 동물들 눈에 피고름 가득 쓰러져 있던 아기 참새  동네 어린이가 구조해 치료 마쳤으나  한쪽 눈 없어 야생 적응 힘들 것으로 보여 [한겨레] 참새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새 가운데 하나다. 게티이미지뱅크 휘리리릭. 마을을 지나는데 어디선가 작은 새 한 마리가 나에게 날아들었다. 깜짝 놀라 가던 길을 멈추었더니, 새는 내 앞을 스치듯 지나 덤불 속 나뭇가지위에 날아가 앉았다. 그러더니 무언가 불안한 듯 연신 이편을 향해 짹짹거렸다. 가만히 보니 참새였다. ‘보통 야생 참새는 사람 주위에 날아들지 않는데, 도대체 저 새가 왜 저러지?; 그런 생각을 하며 갈 길을 다시 가려는데, 저 앞에서 한 동네에 사는 지호가 뛰어오며 외쳤다. “발 아래를 조심하세요!” “응? 발 아래라고?” 얼른 내려다보니 몇 걸음 앞에 나뭇가지 위의 새보다 더 작은 새가 주저 앉은 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나는 궁금해서 물었다. “이 새는 어떻게 된 거니?” “아까부터 날다가는 떨어지고, 다시 날다가 떨어지는 게 이상해서 지켜보고 있었어요. 나무 위 새는 어미새 같고요. 계속 주변을 떠나지 못하고 경계하더라고요.” 지호 말이 맞았다. 나에게 날아들었던 새는 여전히 우리를 주시하고 있었다. 어미새가 분명했다. 지호는 이어 말했다. “아파보이는 새가 있더라도 이소하는 새 일지 모르니 한 시간 정도 지켜보라고 하셨잖아요.” “그래. 잘 날지 못하는 새를 구조할 때는, 둥지를 떠나는 연습하는 아기새일 수 있으니 30분에서 한 시간 정도 잘 관찰해보라고 했었지? 그걸 기억하고 있다니, 대단한걸?” 지호는 우리 큰 아이의 학교 친구였다. 지호네 가족은 동물을 좋아해서 종종 우리집에 놀러왔고, 야생동물 이야기를 해주면 귀 기울여 듣곤 하였다. 아마 지난번 새들 이소에 대해서 말해준 것을 잊지 않고 있었던 듯 했다. 나는 녀석이 대견해서 머리부터 쓰다듬었다. 그리고 물었다. “잘했어. 그럼 지금까지 얼마나 지켜 본거니?” “음, 한 20분정도요? 그런데 아까 길가로 떨어진 이후로는 점점 기운이 없어 보여요. 이젠 사람이 아주 가까이 가도 움직이지도 않고요.” 과연 내가 가까이 다가가도 아기 참새는 눈을 감은 채 움직이려하지 않았다. 한발짝 더 다가가 보니 양쪽 눈이 감겨있었다. 게다가 눈 주위에 피고름 같은 것이 보였다. “아무래도 이 아기 참새는 아픈 것 같구나. 잡아서 자세히 봐야겠어.” 지호와 나는 작은 수건을 펼쳐 새를 잡았다. 어떻게든 도망가야 했을 아기새는 너무나 쉽사리 손바닥 안에 들어왔다. 기운이 몽땅 빠져버린 모양이었다. 우선 눈을 살펴보았다. 양쪽 눈을 다 덮은 피고름은 눈주위 깃털들과 함께 엉망으로 뭉쳐있었다. “이 정도면 앞을 볼 수가 없겠는걸. 안 보이는 채 날다보면 많이 부딪쳤을 텐데. 어서 가서 치료해줘야겠다.“ 하지만 걸음을 옮기자마자 풀숲에서 지켜보던 새가 휘릭 날았다. 앞을 가로막기라도 할 기세였다. 화가 난 모양이었다. 그걸 보고 지호가 소리쳤다. “어미참새야! 우리 나쁜 사람들 아냐! 꼭 치료해서 돌려보내줄게!” 집에 돌아와 아기 참새를 잘 살펴보니 다행히 다른 곳은 부러지거나 다치지 않은 듯 했다. 탈수도 심하지 않아서 1~2일 정도 물과 먹이만 잘 먹이면 금방 기운을 차릴 듯 했다. 다만 눈 주위에 있던 피고름 딱지가 주위 피부를 상하게 해서 눈이 괜찮을 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상당기간 치료가 필요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당장 그날 저녁부터 2주 이상 연구소 일로 해외 출장을 가야했기 때문이었다. ‘저 녀석을 어떻게 치료하지?’ 난감했다. 고민 끝에 지호의 엄마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아이고. 불쌍해라. 눈을 많이 다쳤나봐요.” 지호 엄마는 얼른 달려와 참새 새끼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네. 어미가 잘 먹였는지 몸 상태는 나쁘지 않은데, 어찌된 일인지 양쪽 눈위로 염증이 심각해요. 매일 피고름을 닦아내고 안약을 넣어주어야 할 것 같아요.” “네, 제가 지호랑 함께 잘 해볼게요.” 지호의 엄마는 어릴 적부터 새를 키워 본 경험이 있는 데다가 언젠가 아기 박새를 키울 때 나를 도와준 적이 있었다. 나는 지호 엄마를 믿고 출장길에 나섰다. 하지만 출장 기간 내내 아기 참새의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출장에서 돌아오자마자 지호네를 찾아갔다. “어떻게 되었니? 그 아기새 살았어?” “네, 그런데요···.” 지호가 말끝을 흐렸다. “설마, 죽은 거야?” 고개를 돌려 보니 작은 새장에 아기 참새가 보였다. 의외로 아주 활력 있어 보였다. 답답해 새장 밖으로 나가려는 듯 푸드덕대며 새장 안을 날아다니고 있었다. 그런데, 기우뚱 한 채 한쪽으로 날다가는 곧잘 부딪혀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이었다. “이제 피고름은 모두 사라졌는데, 아무리 찾아도 한쪽 눈이 없어요.” 자세히 살펴보니 지호 말이 맞았다. 눈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아무리 찾아도 눈꺼플조차 보이지 않았다. 애초부터 한 쪽 눈 없이 태어난 기형이었다. “지호야. 그동안 참 고생했어. 먹이도 일일이 손으로 준거지? 한쪽 눈이 없으니 먹이도 못 찾아먹었을 텐데. 네가 정말 고생이 많았구나. 그래도 이 새는 네가 살린 거야. 소중한 생명을 구했어.” 장애로 한쪽 눈이 없는 아기 참새. 눈에 피고름마저 생겨 앞이 안 보여 죽을 위기에 처한 참새를 구조했다. 마승애 제공 이야기를 들어보니 지호네 가족은 그동안 작은 아기 새를 살리느라 애를 많이 쓴 모양이었다. 아기 참새가 배가 고프다고 울어댈 때마다 작은 핀셋으로 먹이를 집어 입에 직접 넣어주곤 했던 것이다. 나는 연신 지호를 쓰다듬었다. 하지만 지호의 표정이 여전히 어두웠다. “그런데 이 아기 참새 엄마가 아이를 찾고 있을 거에요. 제가 돌려보내주기로 약속했어요. 하지만, 한쪽 눈 없이도 밖에서 살 수 있을까요?” 지호는 걱정스레 물었다. 난 사실대로 말해줄 수밖에 없었다. “아니. 이 새는 이제 가족들에게 돌아갈 수 없을 것 같구나. 야생에 돌아가면 먹이를 찾지도 못하고 고양이 같은 천적들을 피하지도 못해 금방 죽을 것 같아.” 그러자 지호는 금방 울상이 되었다. 그런 지호에게 내가 다시 말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 다행히 다른 한쪽 눈은 보이니까, 이제 스스로 그릇에 있는 먹이를 찾아먹도록 가르쳐보자. 보이는 쪽에 그릇을 놓아주고 유도하면 가능할거야.” “네! 그렇게 해볼게요.” 지호가 기쁜 듯 외쳤다. 그런 지호를 보면서 나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자연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야생동물들 사람과 마찬가지로 야생동물들도 자연적 혹은 환경 이상으로 발생한 기형 때문에 혹은 예기치 못한 사고로 장애동물이 되어 자연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 실례로 지난해 한 야생동물구조센터에서 구조된 동물 중 42.7%는 다행히 다시 자연으로 돌아갔지만 , 17.4%는 치료를 마쳐도 자연으로 돌아가지 못했다고 합니다 . 너무 많은 동물이 장애 상태에 놓여 이 모든 동물을 평생 돌봐준다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 더 이상 다치거나 질병 상태에 놓이지 않도록 예방적인 자연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할 것입니다 . 하지만 사라져가는 야생동물들의 유전적 보전을 위해서, 또 장애인에 대한 배려가 당연한 것처럼 장애동물들 또한 품어줄 수 있는 생명존중의 사회로 점차 발전해 가기를 희망해봅니다 . /마승애 동물행복연구소 ‘공존’ 대표
1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나무 한 그루 = 포도 4천5백 송이 댓글:  조회:3799  추천:0  2018-09-08
나무 한 그루에서 4천5백 송이 포도가 '주렁주렁' 박연선 2018.09.08.  SNS 공유하기   음성 기사 듣기   인쇄하기 새창열림 글씨크기 조절하기   [뉴스데스크] ◀ 앵커 ▶ 전북 고창의 한 농장에서 포도나무 한 그루에 무려 4,500송이의 포도가 주렁주렁 열렸습니다. 친환경 농법으로 이룬 결실이어서 더욱 놀랍고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박연선 기자가 다녀왔습니다. ◀ 리포트 ▶ 검은색의 농익은 포도가 주렁주렁 달렸습니다. 뻗어나온 포도나무 줄기의 길이는 무려 40미터. 거대한 비닐하우스를 가득 채운 무성한 포도줄기를 따라가면 단 한 그루의 나무로 이어집니다. 14년 전 심은 이 포도나무 한 그루에만 4천5백 송이가 달렸습니다. 일반적인 포도나무보다 100배나 많은 송이가 맺힌 겁니다. [도덕현/희성 농장 대표] "한 1미터 떨어져서 물을 줘요. 또 시들거리면 더 멀리 물을 주고 해서, 이 나무가 가지고 있는 유전적 능력을…(키웠습니다.) 뿌리가 나와서 너희가 물을 먹어라, 내가 갖다주지 않겠다. 어려서부터 그렇게 교육을 시켜서…"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나무의 비결은 친환경 유기농법에 있습니다. 이 농가만의 특제 비료에는 두부 비지와 대나무, 참나무 톱밥이 들어갑니다. 천연재료를 넣어 정성껏 만든 비료는 면역력을 강하게 만들었고 농약 한 번 치지 않은 철저한 토양관리로 포도나무에는 생기가 넘칩니다. 직접 만든 통풍 장치로 24시간 쾌적한 환경까지 만들어 주면서 유난히 더웠던 올여름도 거뜬히 넘겼습니다. [이영호/고창군 농업기술센터] "이렇게 한 그루에서 4천5백 송이가 달리게 되는 기본 바탕에는 토양부터 살리는 친환경 원칙들을 고수했기 때문에…" 이 농장이 보유한 20여 그루의 포도나무는 모두 천 송이가 넘는 포도가 달려 있습니다. 자식을 대하듯 나무를 존중하는 농가의 노력이 기적 같은 광경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MBC뉴스 박연선입니다. 박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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