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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백산》문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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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수: 유전(단편소설)
2019년 07월 14일 09시 26분  조회:448  추천:0  작성자: 문학닷컴

유전

김동수

 

동철아, 동철아…

두세번 불러도 아들은 죽었는지 살았는지 도무지 통 대답이 없이 이불을 둘둘 말아 가랭이에 끼고는 참바로 사지를 꽁꽁 묶어 끌고 가도 모르게 달게 자고 있었다. 

요염한 목단꽃 두송이를 한뜸한뜸 화사하게 수놓은 핑크빛 베개는 저혼자 외로이 너부러져있고 머리맡에는 빨간 담배곽과 하얀 종이장들이 삐죽이 얼굴을 내민 검은색 문건가방이 자고 있는 주인이 깨기를 기다리는듯 입을 벌리고 댕그러니 놓여있었다. 동철이가 늘 보물처럼 겨드랑이에 끼고 달아다니던 문건가방이였다. 

무슨 악어가죽이라나. 쳇, 악어피면 어떻고 잉어피면 어떻고 그 속에서 밥이 나나 돈이 생기나? 애비의 부탁은 강건너 불 보듯하면서…

박령감은 죽은 검은 개미가 총총 들어박혀있는 것 같은 묵은 흑미밥을 밥솥에 쏟아넣고 재가열 버튼을 눌러놓고는 부엌에 내려가 아궁이에 콩각대를 밀어넣고 두꺼비 껍질 같이 터실터실하고 커쿨진 손가락으로 앙증맞은 라이타 다이얄을 홱 돌렸다. 

불똥이 퐁 솟으며 하얀 봇에 불이 확 달렸다. 뭐니뭐니해도 불쏘시개는 기름기 많아 물에 젖어도 불이 잘 붙는 봇이 최고였다. 

푸접 좋은 이웃집 한족아낙네의 뒤잔등처럼 넙죽한 평가마우에 흑석을 쪼아 다부지게 만든 곱돌을 올려놓고 몇해 잘 묵은 된장 한술을 푹 떠넣고 엊저녁에 먹다 남은 콩나물채를 쭈룩 쏟아넣었다.

동철이가 끙! 발로 이불을 걷어차며 돌아누웠다. 뽀얀 먼지발이 가마목 우에서 시루떡가루처럼 날렸다.

다리가 몹시 쏜 모양이였다.

후! 무슨 놈의 세월인지.

옛날에는 자식을 키워 대학문에까지만 집어넣으면 출세의 길이 순한 아낙의 곧은 가리마 같이 거침이 없이 순순히 열려 만사대길이였는데 요즘은 어지간한 대학문을 나와서는 사업터에 두발은 고사하고 발가락 하나 걸기도 하늘의 별 따기라고 한다.

능력과 돈은 제쳐놓고도 빽이 있어야 하고 배경이 있어야 하고 문이 있어야 하고 줄이 있어야 한다고 한다. 그 줄과 문은 대체로 어떻게 생겨먹었고 또 어떤 이들이 드나드는 문인지 마치도 연기를 피운 오소리굴 속 같아 박령감 같은 평백성은 열번 죽었다 깨여나도 그 속내를 알 수 없는 미궁 같은 존재였다.

아들 동철이도 그렇다.

연변대학이면 청화대나 북경대에는 못 미쳐도 지방에서는 몇손가락 안에 꼽는 유명대학이였다. 

이 세상에 부모마음 다 그러하듯이 박령감도 겉으로는 통 아무런 내색을 내지 않았지만 속궁리로는 아들이 큰 나라님은 못되여도 어느 괜찮은 단위에서 꼬리에 장자 붙은 자리나 한자리 했으면 하고 중이 념불하듯 간절히 바라고 바랐다. 

그런데 믿던 나무기둥이 바람에 쓰러진다고 아들 동철이가 고작 대학생촌관으로 발탁되여 마래동의 촌장을 맡는다고 하였을 때 가슴에서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아 결사반대를 선언하였다. 

그러나 세상에 자식 이기는 부모 없었다. 

동철이는 부임하는 그 날부터 ‘새농촌건설’이니 뭐니 하며 가랭이에 불이 날 지경으로 향으로 현정부로 올리뛰고 내리뛰고 하더니 게딱찌 같이 올망졸망한 초가집들을 일거에 허물어버리고 고래등 같은 벽돌집 30채를 덩실하게 지어놓았다. 장화의 신세 없이는 촌보난행이던 진흙탕길은 반듯한 세멘트길로 바뀌였고 신비하기 그지없는 태양능가로등이 기린처럼 줄줄이 세워졌으며 두만강가에 흔해빠진 둥글둥글한 물돌들로 고풍스럽고 아담한 담장길도 만들어졌다. 

담장 밑에는 키 낮은 과일나무들과 아름다운 화초들이 심어졌다.

마래동은 일약 전 현의 새농촌 건설 모범촌으로 지정되여 매일이다 싶이 견학이나 참관을 빌미로 찾아오는 손님들의 발길이 줄레줄레 끊기지 않았다. 그 통에 아들 동철이는 손님접대로 술자리가 마를 새 없었다.

보글보글 콩나물국이 끓어오르며 구수한 토장국냄새가 집안에 다분히 퍼졌다. 

어느새 아침해살이 창문을 꿰뚫고 방안에 환등빛 같이 속속 쏟아져내렸다.

올여름에는 무슨 스내민지 잰내빈지 머리에 털이 돋아서는 있어본 적 없는 엄청 큰 폭우가 쏟아져 온 동네가 물에 잠기는 통에 제 몸도 운신이 바쁜 늙은이들을 뒤산으로 엎다 싶이 대피시키고 생나무를 찍어 비바람을 피하고 뜨거운 물이라도 끓여마실 수 있게 챙기느라 동철이는 꼬박 이틀을 지새워 두눈이 토끼눈처럼 뻘겋게 충혈이 되여 뛰여다녔다. 

다행히 재산은 조금 피해를 봤으나 인명사고 하나 없어 향정부에서도 그렇고 동네에서도 나이 어린 동철이에 대한 칭찬이 입이 다슬도록 자자하였다.       

그러나 홍수 지기 전부터 부탁하고 닥달을 멈추지 않던 청을 마치도 이붓애비 제사날 취급하는 아들에게 고까운 생각이 가셔지지 않고 벼르고 벼르다가 어제저녁 밤 늦게 귀가한 아들에게 최후통첩 식으로 그루를 박아 말했다.

“동철아 어쩌겠니? 이제 안 고쳐주면 래일 당장 현장을 찾아갈 거다.”

“야- 아버지, 아들을 망신시킬 일이 있슴까? 향민정에서 이미 고쳐준다고 했잽니까?”

“민정조리, 고 이마에 피도 안 마른 건방진 눔을 그러지. 고쳐준다 고쳐준다 하며 벌써 1년이 거의 된다. 80이 래일모레인 이 늙은 게 향정부 문턱이 다슬게 몇십번을 뛰여다녔는지 아니. 원래 너를 믿은 내가 곰보다 더 우둔하지. 현장어른을 찾아야 해결되지 안되겠다.”

“어디 가기만 해보쇼. 아버지하고 리별임다, 리별.”

아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이미 속으로 중대한 결심을 굳힌 터라 높이 계시는 현장을 만나면 무슨 말부터 어떻게 해야 할가 하고 이 궁리 저 궁리로 장밤을 거의 뜬눈으로 새우다 싶이 했다.

박령감은 가마목에 쭈크리고 앉아 아침밥을 둬술 뜨네 마네하고 옷궤 깊숙한 곳에 누구도 모르게 소중히 갈무리해두었던 신문지에 꽁공 싸고 비닐주머니를 돌돌 감은 작은 함을 호주머니에 집어넣고 현성으로 향하는 뻐스에 올라탔다.

 

아침안개에 씻긴 시골의  산과 들은 마치도 해수욕을 마치고 금방 뭍에 오른 말쑥하고 터질 것 같은 녀인의 몸매처럼 청신하고 싱그럽고 쾌청하였다. 

뻐스가 삼각산 기슭을 에돌아 열아홉굽이 령길에 들어섰다. 참으로 좋은 세상이였다. 마차나 소수레가 겨우 굴러다니던 가파르고 험한 이 령길에 비행기 활주로 같이 넓고 반들반들한 아스팔트길이 생기리라고는 누가 꿈엔들 생각이나 했을가.

말 그대로 천지개벽이고 상전벽해였다.

차가 통하지 않던 그 시절 소 되넘기기 장사를 하면서 몇십번 이 산길을 넘어다니며 더운 고생 추운 고생 배고픈 고생 다해봤고 몇번은 죽을 번한 고비도 넘겼었다.

한번은 친구를 만나 음식점에서 진한 국밥에다 얼큰히 한잔씩 하고 얼룩황소를 앞세우고 령을 내리는데 갑자기 소가 코김을 푸푸거리며 가재뒤걸음을 치는 것이였다. 차디차고 서늘한 바람이 얼굴을 휙 스치고 몸이 오싹해나며 말할 수 없는 공포로 온몸에 소름이 쫙 끼치였다. 틀림없이 큰 짐승이 나타난 것이였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은 똑바로 차리라고 했다. 급급히 쌈지에서 담배를 말아물고 성냥을 그으려니까 손이 와들와들 떨려났다. 가까스로 진정하고 담배불을 붙여물고 길가의 검불에 불을 달자 주위가 밝아졌다. 한참 지나니 얼룩이가 투레질을 멈추고 긴 혀로 옷섶을 핥으며 길을 재촉했다. 사람이고 소고 뒤잔등은 식은땀으로 축축히 젖어있었다.

이 근방에서 제일 이름이 높고 신비한 산은 삼각산이다. 말 그대로 생김새가 삼각형 모양인 산은 동서남북 어느 방향에서 바라보나 변함없이 그 모양 그대로 삼각으로 보인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때묻지 않은 숫처녀의 야드르르한 몸매 같이 수려한 삼각산은 티없이 맑디맑은 골물과 소소리 높고 험한 기암괴석 그리고 수백년 우거진 무성한 나무숲이 꽉 들어찼고 그 속에서 진귀하고 이름 높은 야생동식물들이 서식하고 있어 산 그 자체가 보물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였다. 요 사이에는 얼룩배기 동북호랑이가 송아지를 잡아먹는 모습이 림업부문에서 가설한 고성능 카메라에 포착되여 사람들을 흥분시키고 있었다. 

전하는 데 의하면 옛날 이곳 깊은 산속에 한 로스님이 작은 암자를 짓고 하얀 구름과 푸르른 산과 청정한 공기와 청아한 물소리를 벗 삼아 청빈하게 살았다고 한다.

그 스님은 몹시 가난하여 겨우 끼니를 이어가고 있었지만 남에게 페가 되는 일을 티끌 만치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스님은 늘 삼각형 모양으로 만든 선상 우에 앉아서 좌선했는데 그 우에 앉기만 하면 인간세상의 모든 희로애락과 생로병사와 흥망성쇠들이 제 손금 들여다보듯이 알린다고 하였다. 한번은 욕심 많은 이웃나라 왕이 스님이 좌선한다는 그 삼각형 모양의 선상이 부럽고 탐이 나서 부하들을 이끌고 스님을 찾아와서 숱한 금은보화를 두두룩이 하사할 테니 선상을 내놓으라고 호령하였다. 그러자 스님은 “로승은 불법을 위해 선상에 앉아있기 때문에 그까짓 하찮은 금은보화가 나한텐 필요치 않습니다.”고 단연히 거절하였다. 화가 치민 왕이 큰 칼로 스님을 내리치자 갑자기 땅이 천길이나 갈라지며 검은 연기가 뭉게뭉게 타래쳐오르고 하늘에서 불광이 번뜩이더니 스님은 큰 산으로 변하였다. 

그 때로부터 사람들은 이 산을 삼각산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삼각산이 푸르른 치마폭을 내리고 수많은 크고 작은 산봉우리들이 메돼지무리처럼 들어앉은 큰 골짜기 어귀에 두만강을 끼고 남향으로 오붓하게 터를 잡은 동네가 바로 박령감이 살고 있는 마래동이다.

어느 해인가 단발머리에 군대모를 눌러쓰고 팔에 붉은색 완장을 두르고 까죽띠로 허리를 질끈 조인 꼬마맹장들이 하루아침에 몇백년의 년륜을 자랑하는 큰 수양버드나무 밑에 자리잡고 있던 사당을 재더미로 만들어버렸다. 

해마다 마래동 사람들의 명줄이나 다름없는 송이버섯의 풍년을 기원하며 송이제를 지내던 사당이였다. 

한번은 재빛 장삼을 거치고 중머리를 빡빡 깎은 웬 늙은이가 마을에 나타나서 자기는 가근방에서 일등으로 알아주는 점술쟁이인데 풍수지리도 기막히게 잘 본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없는 살림에도 배 터지도록 만대접을 받은 그는 마래동이 수입이 낮고 생활이 가난하고 구차한 것은 전적으로 마을 뒤산에 아슬하게 솟아있는 도끼봉 탓이라고 주절거리였다.

도끼봉이 퍼런 도끼날을 번뜩이며 마을을 찍을듯이 내려다보고 있으니 어떻게 마을이 번창하고 잘살 수 있는가? 절대 그럴 수 없다는 것이였다.

지푸라기든 뭐든 잡고 싶은 어렵고 궁벽하고 무지한 시기라 이튿날부터 마을 남정네들은 죄다 동원되여 하루아침에 도끼봉을 허물어버렸다. 그래도 수입이 오르기는커녕 되려 곤두박질쳐서 나중에는 마이나스를 기록하면서 일을 하면 할수록 밑지고 마는 형국에까지 이르렀다.

세상만사 새옹지마라고 마래동 사람들에게도 짓눌렸던 허리와 오금을 쭉 펴고 때벗이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도래했다. 쥐구멍에 볕이 든 것이다.

산골에서 사는 사람들은 산을 파먹고 산다고 송이버섯은 마래동 사람들에게는 황금덩어리였다. 아니, 세상에 금덩어리가 어디 그리 흔할가?

브로콜리를 채소 중의 왕이라고 하면 송이버섯은 버섯 중의 왕이라고 할 수 있었다. 전문 일본으로 수출한다는 송이버섯은 그 값과 인기가 구름을 꿰뚫고 하늘에 치닫고 있었다. 

정말인지는 몰라도 원자탄의 폭격을 받은 이듬해 산림 속에서 모든 식물들이 재생하지 못하였지만 유독 송이버섯만이 자라났다는 아이러니한 말까지 일본땅에서 류행되고 있다고 한다. 게다가 바야흐로 인공지능 시대가 도래하고 있는 현재까지도 송이버섯 인공재배가 불가능하다고 하니 자연산 송이버섯의 인지도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송이버섯 말이 나왔으니 하는 소리지만 조상 때부터 이곳에 뿌리를 내리고 산속을 훑듯 샅샅이 누비다 싶이 살아온 박령감은 송이 뽑기에서만은 최고의 달인이라고 늘 자부하고 있었다.

그만큼 일초일목이 사뭇 눈에 익고 기억 속에 또렷했다.

아들 동철이는 부임한 이듬해 연변대학 교수들과 조선족민속학자들을 부지런히 쫓아다니더니 마래동 입구에다 ‘송이고향’이라고 둥글소 머리 만한 큰 글자를 음각한 어마어마한 석비와 함께 거인의 거시기 같이 거대한 송이모양의 조형물을 제작하여 보란듯이 세워놓았다. 그리고는 마래동에서 대대로 내려오면서 관행으로 벌려오던 송이제를 다시 회복하였다.

송이제의 회복은 마래동 력사에서 일대 ‘혁명’이였고 대사중의 대사였다. 송이버섯 뽑기 체험, 송이버섯 문화관광을 활성화하여 마래동에 잠재해있는 오랜 전통과 민속을 발굴하고 지명도와 이미지를 최대한 높임과 동시에 마을 사람들의 수입을 몇배로 늘인다는 오돌찬 야심에서 벌이는 축제였다.

첫 송이제를 지내던 날은 그야말로 굉장하였다. 

로인회 회장을 맡고 있는 박령감이 하얀 두루마기에 누른색 배감투를 눌러쓰고 흰 수염발을 날리며 송이제를 선두 지휘하였다. 

돼지머리를 삶아 가운데 놓고 떡, 과일, 포, 전, 생선 등속들이 홍동백서红东白西, 어동육서鱼东肉西의 순으로 질서정연하게 진설된 푸짐한 제사상이 정성껏 마련되였다. 

그 좌우에 아침결에 산에 가서 금방 채집해온 향기롭고 싱싱하고 탐스러운, 넉살 좋고 수다스럽고 입이 걸죽한 동네 아낙네들이 송이 뽑으러 산에 갔다가 거시기하게 잘생긴 먹음직스러운 동송이를 만나면 치마를 활 올리고 얼씨덩 앉았다 일어난다는 송이버섯들이 보기만 해도 군침이 꿀컥 돌았다.

징징, 쟁강쟁강, 투덕투덕, 둥둥 그 주위를 동네 사물놀이패들이 용케 타원을 그리며 빙빙 돌고 돌았다.

숱한 형형색색의 차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섰고 소형 대포신 같은 렌즈가 달린 고급카메라를 둘러멘 기자들과, 민속춤 표현을 준비하고 온 오뉴월 물오이처럼 잘 빠진 녀배우들과 사처에서 모여온 호기심 많은 관중들로 마을은 그야말로 울긋불긋 시끌벅적 장사진을 이루었다. 

공중에서는 대게 다리 같이 사면으로 뻗은 다리에 앙증맞은 프로펠라를 부착한 드론이 대가리 파란 쉬파리처럼 윙윙 소리내 울며 아래우로 솟구쳤다.

그런데 호사다마라고 첫시작부터 박령감과 촌장인 동철이 사이에 갈등이 생겼다.

“동철아, 아무리 궁리해도 송이제를 지내기 전에 먼저 렬사비를 참배하는 것이 도리인 것 같다.”

“그건 아무런 상관 없는 일임다.”

“왜 상관 없냐? 그게 말이 되냐?”

“렬사비야 청명이나 추석에 올라가면 되지. 하필 오늘…”

“헛소리 집어쳐라. 피와 목숨을 바친 저들을 잊어서는 절대 안된다. 렬사비를 참배하지 않으면 우리 로인회에서는 집단적으로 송이제에서 탈퇴하겠다.”

“야, 아버지!”

“왜?”

결국 동철이가 두손 들고 말았다.

어느 땐가부터 농촌에서 청년조직이 아침해빛을 받은 안개처럼 가뭇없이 사라지고 대신 로인회가 그 자리를 메우면서부터 로인회의 지위와 작용이 급상승하며 역할이 만만치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로인회가 집단탈퇴하는 날에는 어벌 크게 준비한 전반 송이제가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는 것도 문제겠지만 아버지의 말에도 너무 일리가 없는 건 아니였다. 

하여 그 날 모인 수많은 사람들은 마을 뒤산 언덕에 있는 렬사비 앞에서 3분간 묵념을 드리고 나서야 송이제를 시작하였다.

송이제는 송이술, 송이차, 송이화장품 등 송이제품 판촉행사와 함께 성황리에 성공적으로 막을 내리였다.

 

현장을 찾아간다고 아들 앞에서 큰소리 떵떵 치던 박령감은 뻐스가 향정부소재지 마을에 도착하자 슬며시 뻐스에서 내렸다.

현장어른을 찾아갈 담도 담이겠지만 잘못하다간 공연히 그것도 벼슬이라고 촌장으로 일하는 나이 어린 아들의 장래에 혹시 좋지 않거나 시끄러운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꼼꼼하면서도 단순한 속궁리와 부질없는 로파심을 더한 계산에서 도중하차하였다. 

대신 속으로는 오금에 불이 나게 몇번을 찾아다니며 홀아비가 과부한테 청혼하듯 청들고 부탁해도 마이동풍으로 여기는 아들 또래의 향민정 조리 녀석을 어지간히 혼구멍을 내줄 잡도리를 단단히 하였다. 

노크고 뭐고 자주 다녀 익숙해진 민정 조리 사무실 문을 발로 툭 차고 들어서니 검은 구두를 신은 커다란 두발을 책상 우에 걸쳐놓고 의자에 비스듬히 걸터앉아 정신없이 휴대폰을 주물고 있던 민정 조리 녀석이 놀라 화닥닥 자리에서 일어났다.

“놀랐슴다. 동철이 아버지.”

“왜? 놀라긴 무슨 죄를 범했냐?”

“죄는 무슨, 어째 또 왔슴까?”

“어째라니, 몰라서 묻냐?”

“인차 고쳐준다는데 고까짓 작은 일을 가지고.”

민정 조리 녀석은 바쁘고 시끄럽다는듯이 눈이 꼿꼿해서 다시 제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제 놀음에 다시 빠졌다.

“뭐, 작은 일? 어쩜 요즘 젊은 애들은 모두 한결같이 그 모양이냐? 야 이눔아, 니한테는 써개같이 작은 일일지는 몰라도 나한테는 세상 큰일이다. ” 

화가 치밀어 소리 치는 박령감의 목소리가 복도까지 쩌렁쩌렁 울렸다.

그 소리에 어디서 나타났는지 키가 작달만하고 양복을 입고 안경을 쓴 다부진 중년사나이가 들어와서 웬 일이냐고 물었다. 민정 조리 녀석이 금방까지도 돌장승처럼 굳어졌던 얼굴표정과 꼿꼿하던 눈길을 자라 목 움츠리듯 어디다 감춰버리고 금시 해시시 날웃음을 개여올리며 김서기라고 굽신 머리를 깊숙이 숙였다.

“로인님, 여기서 이러지 마시고 저의 사무실에 가서 얘기합시다.”

말씨가 무척 부드러웠다.

그 사람이 이끄는 대로  2층으로 올라가 어딘가는 조금은 초라한 코구멍 만한 사무실에 들어섰다. 제 스스로는 오지랍이 넓고 온갖 산전수전 다 겪은 이 세상 무엇도 두려울 것이 없노라고 언제 어디 가나 당당하고 배포가 두둑한 박령감이였지만 정작 작고 매운 고추 같은 서기어른 앞에 마주앉자 어딘가는 조금은 긴장해났다. 

그것을 알기라도 한듯 그 사람은 손수 커피를 풀어 두손에 쥐여주었다. 

로친 생전에 아침마다 늘 챙겨주던 감자누룽지 숭늉처럼 구수하고 향긋하며 어딘가는 야릇하기도 한 커피냄새가 코를 자극하고 간지럽혔다. 

“마래동이면 올해 홍수피해를 많이 본 촌이지요. 참 고생이 많았겠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그렇게 노하셨습니까?”

“김서기, 내 성깔이 나지 않게 생겼나 한번 들어봅소.”

박령감은 그 때야 호주머니에서 소중히 지니고 온 작은 함을 서기 앞에 조심히 펴놓고는 내 이래 뵈도 30년 당령이라고 서두를 떼였다. 

곤두세웠던 긴장이 점차 풀리면서 아버지와 삼촌의 얼굴이 눈앞에 고스란히 나타났다.

박령감이 여섯살 먹던 해 한살 터울인 아버지와 삼촌은 한날한시에 참군하여 해방전쟁에 뛰여들었고 뒤이어는 영문도 모르게 군복을 갈아입고 항미원조전쟁에 참가하였다. 

전쟁은 가렬처절하였다. 

아버지와 삼촌이 소속된 반은 낮다란 언덕 우에 있는 큰 바위 앞에 전호를 파고 놈들의 진공을 두차례나 물리쳤다. 오후 5시까지만 진지를 고수하면 반은 임무를 완수하고 퇴각할 수 있었다. 그 때까지도 아버지가 손등에 쌀알 같은 작은 파편이 몇알 박힌 외에 삼촌과 둘다 크게 다친 데 없이 무사하였다. 

“형, 집앞에 있는 백살구가 먹고파요. 올해도 주렁주렁 많이 열렸을 텐데. 살아돌아갈 수가 있을가요?”

“어떻게든 꼭 살아돌아가야 해. 자두도 참 맛있었지.”  

두 형제는 갈라터진 입술과 숯검댕이칠을 한 것처럼 시꺼멓게 탄 얼굴을 마주보며 두손을 꼭 잡았다.

갑자기 매캐한 화약냄새와 개를 그슬릴 때 풍기던 역한 냄새가 고지에 차고 넘칠 뿐 마치도 전쟁이 결속 된 것처럼 잠잠하고 조용해졌다. 전쟁의 시련을 겪어본 사람들은 다 알지만 싸움터에서 까닭없이 갑자기 찾아드는 고요함과 정적은 이제  곧 더 큰 전투가 벌어짐을 의미하는 것이였다. 

반장이 모든 쌀주머니를 죄다 털어서 밥을 지으라고 명령했다. 생사를 코앞에 둔 전사들에게 맨밥이라도 배부르게 먹이고 싶은 심정에서였다. 

아니나 다를가 해질 무렵에 적들의 진공이 개시되면서 대포알들이 쉴새없이 날아와 굉음을 울리며 터졌다. 그 때 마침 5시, 퇴각명령이 떨어져 전사들은 바위 뒤로 통하는 길에 들어서서 산아래로 내달리였다. 갑자기 쉭쉭 하는 아츠러운 소리가 귀전을 때리더니 꽝! 하고 포탄이 퇴각하는 전사들 앞에서 지축을 울리며 요란하게  터졌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아버지가 눈을 떠보니 얼굴이 검붉게 탄 몇몇 전사들이 둘러서서 아버지를 지켜보고 있었다. 피가 랑자한 왼팔이 제 팔 같지 않았다. 이를 악물고 뼈를 깎는 동통을 참으며 동생의 얼굴을 찾았으나 보이지 않았다.

동생을 포함한 몇몇 전사들이 당장에서 시체도 찾아볼 수 없게 즉사했다는 것이였다. 너무나도 억이 막혀 아버지는 울음도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이름 뿐인 허술하고 초라한 후방병원에서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부지한 아버지는 북으로 북으로 몇날 몇밤을 하염없이 걷고 걸어 마침내 고향이 지척인 두만강가에 이르렀다.

그 때 20호 남짓한 마래동에서 10여명의 끌끌한 청년들이 총을 메고 전쟁에 참가하였는데 대부분은 전장에서 목숨을 잃고 말았다. 

아버지가 하나 밖에 없는 살붙이 동생을 잃고 여위다 못해 피골이 상접한 상거지 같은 몰골로 손목이 없는 왼팔을 가슴 앞에 처매고 홀로 마래동에 나타났을 때 동네는 물론 온 집안은 눈물바다가 되였다. 땅을 치며 울다 못해 할머니는 까무러치기까지 하였다.

얼마 후 삼촌은 혁명렬사로 추존되였다. 

 

박령감은 현성에서 출발하여 향정부 소재지 마을을 거쳐 마래동으로 돌아오는 뻐스에서 내려 뉘엿뉘엿 지는 해와 함께 집에 들어섰다. 

동철이가 부엌에 쪼그리고 앉아 저녁쌀을 일고 있었다. 에미를 일찍 떼운 늦둥이 아들의 처지가 참으로 안스럽기도 하고 불쌍도 하여 가끔 코마루가 찡해날 때도 있었다. 

제 각시가 옆에 있어서 옷도 빨아주고 때시걱이라도 제때에 끓여주었으면 그야말로 금상첨화련만 개도 먹지 않는 그 돈이 무엇인지 새각시는 결혼 이튿날에 한국으로 제비처럼 날아가버렸다. 

하긴 돈이 없이는 못 사는 세월이니 별수가 없었다. 그래도 잊지 않고 두 홀아비의 용돈은 꼭꼭 챙겨보내서 그 감사함과 고마움을 잔치날 아침 떡사발을 받아안은 벙어리처럼 마음속 깊숙이 안고 살고 있었다.

“아버지 어디 갔다옴까?”

“왜 궁금하냐? 룡정에 가 현장을 만나고 오는 길이다. 왜?”

“예? 정말임까? 거짓말. 이나저나 전번에 하다 만 할아버지의 얘기를 마저 들었으면 좋겠는데…”

동철이가 밥상에 수저를 놓으며 말했다.

“허허, 웬 일이냐. 래일 아침엔 해가 서쪽에서 뜰가부다. 그게 그러니까 아버지가 제대 후였다…”

전쟁마당에서 돌아온 아버지는 1등영예군인으로 되여 현정부에서 어느 기관에 사업터를 배치해주려고 했지만 아버지는 낫 놓고 기윽자도 모르는 까막눈인 내가 무슨 일을 하겠냐며 굳이 사양하고 대대의 지부서기를 맡았다.

그 때 마래동은 전부 한전이였다.

아버지는 시골사람들에게도 벌방사람들처럼 백옥같이 새하얀 이밥을 배불리 먹이려고 두만강의 물을 끌어들여 논을 풀려고 굳게 작심하고 불철주야로 로심초사하였다. 

그런데 제일 큰 문제는 양수기였다. 몇번을 수리국으로 사람을 띄웠으나 이탈 저탈 차일피일 미루기만 하였다. 성이 난 아버지가 수리국에 찾아가 손목이 없는 왼팔을 내 휘두루며 어지간히 목소리를 높여서야 양수기가 해결되였고 소원 대로 수전을 풀고 벼를 심을 수 있었다. 

벼산량을 높이려면 비료가 있어야 했다. 그 때는 지금처럼 화학비료가 흔하지 않았기에 부득불 토비를 모아 밭에 낼 수 밖에 없었다. 

아버지는 사원들을 동원하여 적비운동을 벌렸다.

진흙을 파다 무지고 온갖 잡풀들을 베여다 작두로 썩둑썩둑 썰어서 한벌 덮고는 그 우에 겨울철에 모아두었던 인분을 큰 가마에 설설 끓여 똥바가지로 똥물을 퍼서 골고루 퍼부었다. 그 우에 또 진흙을 두툼하게 한벌 덮었다. 

한가한 겨울철이면 온 마을 남녀로소를 죄다 동원하여 거름 모으기에 나섰다. 돼지똥이든 소똥이든 사람똥이든 가리지 않고 모았다. 지어 아버지는 오줌장군을 등에 짊어지고 차디찬 이른새벽에 집집이 찾아다니면서 사람들의 오줌까지 받아왔다. 

이렇게 산더미처럼 적비를 썩혀서는 이듬해 봄에 논과 밭에 내다 골고루 폈다. 

전 현 적비운동 현장회의가 마래동에서 열렸다. 

그 때 현문화관의 한 작곡가가 〈적비가〉라는 노래를 지었는데 대대의 업여문예선전대가 그 노래에 맞추어 자체로 〈적비춤〉을 창작하여 현장회의 전에 선보였다. 삽과 지게 그리고 쇠갈고랑이를 무대도구로 사용한 〈적비춤〉은 뭇참가자들의 열렬한 박수갈채를 받았다.

 

적비로세 얼씨구 절씨구 적비로세

거름더미 쌀더미라 어서 빨리 거름 내세

일망무제 저 논판에 풍년가을 손짓하네

적비로세 얼씨구 절씨구 적비로세

 

아버지가 현장회의에서 경험총화발언을 하였다. 아버지와 마을 사람들의 공동한 노력으로 벼 단위당 산량이 푹푹 몰라보게 올랐다. 아버지의 감동적인 사실을 알고 어느 기자가 〈똥서기-쌀서기〉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써서 지방신문에 보도하였다. 그래서 아버지는 별명이 똥서기로 되였다. 

한번은 최현장이 현지 시찰을 내려왔다가 아버지와 마을 사람들을 만나보고 똥서기라는 말이 듣기에 거북하고 입에 거슬린다고 하면서 이제부터 우리 모두 쌀서기라고 부르자고 제안하여 아버지는 그 때로부터 쌀서기로 별명이 바뀌였다.

하루는 어머니가 난데없이 꿈결에도 그토록 못 견디게 욕심나고 신고팠던 파란 고무신을 우리 형제들에게 하나씩 신겨주는 것이였다. 

그런데 그것이 큰 화단을 일으킬 줄이야. 

집에 돌아오신 아버지가 우리가 신은 고무신을 보더니 어디서 난 돈이냐고 어머니께 바투 따지고 들자 어머니가 실토정 안할 수 없었다.

“뭐라, 이 싸가지 없는 녀편네, 머리는 한발씩이나 길어싸도 소견머리라곤 통 없는 것이… 그 돈이 어떤 돈이라고… 당장 신을 물리지 못할가!”

화가 난다면 불이고 물이고 가리지 않는 아버지는 담배통을 번쩍 들어 어머니 코앞에 꽝! 메치고는 문을 걷어차고 나가버렸다. 

한참 후 짙고 역한 술냄새를 풍기며 집에 들어선 아버지는 자식들을 조롱조롱 앉혀놓고는 이 돈은 삼촌의 목숨으로 바꾸어온 돈이다. 이 다음 아버지가 꼭 새 고무신을 사주겠다고 약속하고는 고무신을 물린 돈을 움켜쥐고 어머니를 이끌고 삼촌댁을 찾아가 이실직고하였다.

“제수씨, 이 돈은 제수씨 앞으로 내려온 무휼금 200원일세. 다음부터는 제수씨 이름으로 다달이 내려올 거네. 어떡하겠나?  죽은 사람이 되살아나는 법도 없고… 아직 젊고 홀몸이니 새 사람을 만나게나. 진심이네.”

“아주버님, 고맙습니다. 이 돈을 제가 받은 셈 치고… 이제 마을에서 렬사비를 세운다는데 거기에  보태세요. 흑…”

그 후 얼마 안되여 삼촌댁은 아버지와 집안 어른들의 권유로 죽어도 살아도 시집귀신이 되여야 한다던 당시 세습적인 낡은 관습과 룰을 깨뜨리고 말없이 박씨 가문을 떠났다. 

한푼 두푼 돈이 모아지자 아버지는  동네 사람들을 이끌고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뒤산 기슭의 양지바른 언덕받이에 낮다란 렬사비를 세우고 마래동에서 희생된 10명 렬사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정교한 나무패쪽에 정성들여 음각하여 걸어놓고는 비바람과 먼지를 막기 위하여 작은 유리창문까지 안장하여놓았다. 

하얀 렬사비 주위에는 푸르청청한 애솔들이 심어졌고 점차 굳건히 뿌리를 내리고 무성하게 가지도 뻗었다. 

아버지는 매일이다 싶이 아침 일찍 일어나서는 비자루를 들고 렬사비 주위를 깨끗이 쓸고는 한참씩 멍하니 앉아서 날마다 새롭게 변모되여가고 있는 마을과 황금파도 출렁이는 풍요로운 논벌과 여울치며 흐르는 두만강을 바라보며 깊은 상념과 추억에 잠기군 하였다.

어느 날 렬사비 앞에 그대로 쪼크리고 앉아있는 어버지를 발견했을 때는 이미 몸은 차겁게 굳어있었다.

“후, 네 할아버지는 오늘 같이 좋은 세상을 꿈에도 생각 못했을 게다.”

 

다음날, 지난해 전 현적으로 거금을 투자하여 낡은 렬사비를 허물고 통일적으로 새로 웅장하게 건설한 뒤산 언덕에서 대리석을 까고 부시고 하는 소리가 아츠렇게 들려오며 마을의 고요와 정적을 깨드렸다.

박령감은 휘청휘청 힘겹게 몸을 가누며 렬사비 쪽을 향해 어정어정 달려갔다. 

글자가 잘못 새겨진 대리석판이 떨어져나가고 대신 새로운 검은색 대리석이 다시 붙여졌다. 오후부터는 렬사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다시 음각하고 틀림이 없음을 꼼꼼히 재확인하고서야 현성에서 온 일군들은 돌아갔다.

박충국朴忠国 !

박령감은 두눈을 똑바로 뜨고 삼촌이름의 가운데 글자가 전번처럼 중中자가 아니라 밑에 마음심心자가 들어간 충忠자로 정확히 새겨진 것을 똑똑히 확인하고서야 작은 함을 렬사비 앞에 열어놓고는 지니고 간 술을 차넘치게 부었다.

언덕 아래로 동철이가 헐레헐레 뛰여오는 모습이 보였다. 퍽이나 오랜만에 보는 불타는듯한 저녁노을이 동철이의 얼굴과 삼촌의 영웅메달을 진붉게 물들였다.

출처:<장백산>2018 제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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