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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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문학사랑 인간사랑
2018년 09월 30일 16시 45분  조회:437  추천:0  작성자: 최균선
                               문학사랑 인간사랑
 
                                     최 균 선

    험난하고 고달픈 인생살이에서 사랑을 하는것보다 더 좋은 일은 없다. 진정 사랑을 하는 자만이 보람있는 삶을 사는 자이다. 행복한 삶의 의미보다 삶 그자체를 더 사랑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지적인 인간으로서 문학을 사랑하는 일만큼 좋은 일도 더 없다. 문학을 사랑한다는것은 되돌려 사랑을 받는 일이다. 만약 작가가 인간을 사랑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다른 사람들이 그 작가의 작품을 사랑하겠는가.
    내주어야 가득차는 문학사랑, 불타는 마음으로만 꽃피울수 있는 문학사랑, 산울림처럼 평생 마음의 골짜기에서 울리는 사랑, 이 세상을 사는 동안 밝아지고 어두워지는 마음처럼 웃고울고 좋아하고 미워하고 분노하고 삭이고 관용하는 문학사랑은 참으로 의로운 사랑이다. 너무 사랑했기에 가슴이 찢기는 아픔도 감내하지만 사랑으로 아물고 사랑으로 다시 찾아오는 문학사랑이기에 성스러운 사랑인것이다
    인간의 그 모든 사랑을 포섭한것이 문학사랑이다. 문학은 인간을 총체적으로 연구하고 보듬어주는 전인류적인 사랑을 한다. 허무한 인생에 허전해지는 마음에 무엇인가 채워주기 위해 로심초사하는 사랑이 글사랑이다. 글쟁이들의 글사랑은 그 모든 사랑의 의미를 초월한 인간사랑이다. 문학을 리해하지 못하거나 관심없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현대문명 사회에 문맹자이다.
    물론 문학이 생계걱정이 태산같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무슨 도움을 주지는 못한다.  시대의 발전, 변화와 더불어 문학은 이제 더는 출세의 문을 두드리는 벽돌장이 아 니고 인간생활에 필수적인 음식같은것이 아니지만 불공평과 수모와 아픔을 습관처럼 몸에 익혀 가며 살고있는 사람들에게 문학은 계몽을 시작으로 높은 차원에로 각성하게 한다. 문학은 이래서 없어서는 안될 정신량식이 된다.
    문학은 억압과 피억압의 정체를 파악하고 그 부정함을 조명한다. 그 부정함에 대한 인식은 인간으로 하여금 불합리한 현실을 개조하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자각과 함께 당위성을 느끼게 한다. 문학은 이러한 사람들이 살고있다는 현실을 까밝히고 빈익빈 부익부의 불공평한 삶의 현장에 칼질한다. 그래서 이러한 현상의 근원을 탐 색하면서 인간사회의 허위성과 기만성을 날카롭게 폭로하여 추문으로 만든다.
    문학을 사랑하느냐 않느냐는 죽고사는 문제가 아니지만 문학사랑을 모른다면 감각을 따라 산다는 현대인으로 말하면 감정이 도끼등같은 불쌍한 사람이다. 포식의 욕망뿐인 짐승과 다르게 인간은 실현이 막연함에도 꿈을 가지고 산다. 인간만이 몽상에 취할수 있다. 몽상 자체가 절대 자유공간이다. 그 누구를 억압하지 않기때문이다. 문학은 누군가 그런 자유로운 꿈을 가지고 있을 때 반성해 보게 한다.
    소위 '감동'이라는 말로 요약되는 복잡다단한 정서파동이다. 감동이나 령혼의 울림은 한 인간이 대상을 정감적으로 파악하는 지적인 활동이다. 인간은 문학을 통해 얻는 감동을 통해 자기와 다른 모습의 인간과 공통되면서도 각양각색의 기쁨과 슬픔과 고통을 확인하고 그것이 자기의것일수도 있다는것을 재삼 예상하게 한다. 
    만포식하고 게트림질하는 자들에게는 문학이 무지를 깨우쳐 준다기보다 문명의 금상첨화가 되여 자신들의 복된 삶에 자족하게 할수도 있고 자기 구원의 하책으로 소일거리로 삼을수도 있는바 문학이 부정적인 면에서 쓸모가 있게 된 셈이다. 그와 반대로 문학은 글을 못읽고 글을 읽을수 없는 인간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사람들게 사색의 불을 달아주는 불심지가 된다. 
    문학은 기득권자, 배부른 자에게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은것이기에 약자들을 압박하지 않고 착취하려 하지 않는다. 누구를 억압하지 않는 문학은 억압하는 모든것 에 반발하여 인간에게 부당한 사회의 구석구석을 비춰보인다. 인간은 자기에게 유용 한것을 독식하기 위해 타인을 억압하고 부려먹으려 한다. 피억압자의 억압된 욕망을 문학이 충동질하고 그것을 얻으려는 욕망이 강렬해지도록 불을 지른다.
    문학은 사람들에게 강요되지 않는 쾌락을 선물한다. 문학은 강요하지 않음으로써 각자 자원적으로 어떤 감각을 얻는 단계에서는 쾌락하다. 그 쾌락이 지적이라면 성찰을 동반하게 되며 자신을 랭철하게 파악하고 고상한 경지에 이른다. 그러면서 문학은 지성을 강요하여 인간을 억압하는 보이지 않는 검은 손들과 싸울것을 촉구한다.
    문학은 아무런 정신적 추구가 없이 시간이 되면 직장에 나가고 무엇인가 하다가 점심을 먹고 다시 일하다가 퇴근하는 기계적 삶을 사는 사람들의 개척되지 않은 의식의 묵밭에, 정신가원이 없는 무료한 사람들의 마음밭에 또 다른 생명의 꽃씨를 심어 주고 꽃워준다. 그리고 그런 인생은 사람다운 삶이 아니라는것을 깨우쳐주고 세상에 그런 인간들이 있다는 사실로 우리를 사색하게 한다.
    “탈무드”에서는 인생을 바이올린줄에 비유하고있다. 바이올린줄이 팽팽하게 당겨져 있어야 저음이든 고음이든 음이 나올수 있고 이런 줄에는 많은 가능성이 숨겨져 있다. 그러나 바이올린을 켜는 사람에 따라서 훌륭한 음색이 나올수도 있고 듣그러운 잡음이 나올수도 있다. 문학은 각자 자기속에 숨겨져 있는 가장 아름다운 음색을 내도록 추동하는 일을 한다.
    문학은 불가능한 어떤 소망을 그리는 일도 한다. 한수의 훌륭한 시는 그것을 향유하는 자에게 그것을 향유하지 못하는 자보다 차원높은 삶의 질감을 느끼게 하고 한수의 침통한 시는 그것을 읽는 자에게 인간을 억압하고 불행하게 만드는 현실을 각성하게 하고 반감을 가지게 하고 항쟁의식을 심어준다. 그러나 바로 그러한 점 때문에 인간을 억압하는 일은 없다. 문학은 절대적인 자유의 사랑임에랴!
문학으로 물질적 풍요로움은 사올수는 있지만 다채로운 마음의 터밭을 바꾸어 올수는 없다. 고결한 령혼을 불러일으키는 고결한 사랑이야말로 우리게 없지 못할 사랑이며 가장 의미로운 사랑이라고 할것이다. 우리에게 절실것은 살아움직이는 육체만이 아니라 보다는 더 가치있고 보람있는 삶을 살도록 시공간을 초월하여 좋은 면에로 인도하는 문학이다. 가슴속에 품은 의문을 포기하고 문자유희에 몰두하는 작가가 있다면 그로서는 펜을 던져버릴 때가 왔다는 반증이다. 그래서 문학은 문학자체, 문학만을 위한 문학이 되여질수 없게 되였다.
    문학은 존재론적 차원에서 무지와의 싸움군이며 의미론적 차원에서 인간의 꿈의 불가능성에 실현가능 성을 제시하는 개척자이다. 작가는 사회에서 국외인이 될수 없 다. 오히려 자기의 시대와 혼연일체가 되기를 바란다. 자기의 시대는 작가의 자아가치실현의 유일한 기회이다. 현실은 작가를 위한것이고 되돌아가서 작가는 시대를 위해 존재한다. 그뿐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불가능성에 의문을 던질 때 비로소 생계를 위해 정신적 여유를 갖지 못하던 사람들이 마침내 속으로만 분노를 끓여야 하는 생계형동물이 아니라 공동체에 참여하며 납함할수 있는 존재라는것을 립증한다. 그리고 그때로부터 비로소 문학은 시작된다. 시간과 공간, 동적인것과 정적인것, 개체성과 정체성, 안녕과 소란, 보이는것과 보이지 않는것 등을 확인시킬 때 문학사랑은 유효한 감각수단으로 거듭나게 된다.
    문학을 죽도록 사랑한다는것은 온 넋으로 사랑한다는것이다. 정신적으로 고독을 채워가려고 문학사랑을 하는것이 아니다. 누가 강요하지도 않는데 필사적으로 문학사랑을 하며 산다는것은 자기 생명을 확충하는 일이다. 그래서 문학사랑 만세다.
 

                                                    2018년 2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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