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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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문) 시와 시인의 아리러니
2018년 11월 09일 15시 58분  조회:361  추천:0  작성자: 최균선
                                          시와 시인의 아이러니
 
                                                        최 균 선
 
                              내 죽으면 한 개 바위가 되리라.
                              아예 애련(愛憐)에 물들지 않고
                              희로에 움직이지 않고
                              비와 바람에 깍이는 대로
                              억년 비정(非情)의 함묵(緘黙)에
                              안으로 안으로만 채찍질하여
                              드디어 생명도 망각하고
                              흐르는 구름
                              머언 원뢰(遠雷)
                              꿈 꾸어도 노래하지 않고
                              두 쪽으로 깨뜨려도
                              소리하지 않는 바위가 되리라.
 
    이 시는 말썽많은 한국시인 유치환의 “한 개 바위가 되리라”는 시의 전문이다. 이 시를 누군가 찬양하여 가라사대 작자의 기질적 특성인 의지를 가장 잘 반영한 시란다. 바위의 속성은 어떤것에도 움직이지 않고 흔들리지 않는 작자 자신의 의지적 태도라는가, 그래서 그는 '내 죽으면 한 개 바위가 되리라”했다고, 그러나 인간은 변화될수밖에 없는 약하고 슬픈 존재.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자신을 단속하며 의지적 존재가 되기를 념원하던들 그게 어디 마음을 먹는대로 되는 노릇인가?
    시의 끝련에서 ‘두 쪽으로 깨뜨려져도 소리하지 않는 바위가 되리라.’란 변질되지 않는 의지는 첫연의 발진과 수미쌍관을 이룬 단호하고 강인한 결의로 읽혀지는것은 사실이나 실지로 청마(靑馬)선생님은 그런 사람이였던가! 누구신가 찬양하는바에 의하면 그는 외양적으로 과묵하고 고독(孤獨)의 내면에는 비정의 강인함과 사랑의 불 꽃이 이글거렸다는가,
    당시 시조류에 야합하지 않고 독특한 내면세계에 군림하였다는 그는 후에 정말 바위같이 드놀지 않은 지성인이 되셨던가? 묻지 않을수 없다. 해답은 그의 론란거리 가 된 시 “首”가 잘 해석해 줄것이다.   

                                                                          首
 
                                                                       유치환
 
    十二月의 北海 눈도 안오고 오직 萬物이 苛刻하는 黑龍江 말라빠진 바람에 헐벗은 이 적은 街城 네거리에 匪賊의 머리 두 개 내걸려있나니 그 검푸른 얼굴은 말라 少年같이 적고 반쯤 뜬 눈은 먼 寒天의 模糊히 저물은 朔北의 山河를 바라보고 있도다 너희 죽어 律의 處斷의 어떠함을 알았느뇨 이는 四惡이 아니라 秩序를 保全하려면 人命도 鷄狗와 같을 수 있도다 혹은 너희 삶은 즉시 나의 죽음의 위협을 意味함이었으리니 힘으로서 힘을 除함은 또한 먼 原始에서 이어온 피의 法度로다 내 이 각박한 거리를 가며 다시금 生命의 險烈함과 그 決意를 깨닫노니 끝내 다스릴수 없는 無賴한 넋이여 暝目하라! 아아 이 不毛한 思辨의 風景위에 하늘이여 思惠하여 눈이라도 함빡내리고지고…

    이 시는 유치환이 1942년 3월 ‘국민문학‘ 에 발표한 작품으로서 항일독립군을 비적이라 표현하고 법을 지키지 않아 만주국정부에 의해 처형당했음을 암시. 일제는 조선독립군을 선비(鮮匪), 공산당항일유격대를 공비(共匪), 토착항일민중을 토비(土匪), 만주의 항일군벌을 병비(兵匪), 대도회(大刀會) 같은 항일교단(敎團)을 교비(敎匪), 홍창회(紅槍會) 같은 항일결사원을 회비(會匪)라고 그 전체를 '비적'이라 총칭했다.
     이 시로 하여 당시에는 명망을 떨치게 했는지는 몰라도 그 자신도 예상할수 없었던 후일에는 일제시대 대표적인 친일시로 락인찍힌 작품으로서 평생을 한국의’실록 친일파’의 저자 고 임종씨가 시에서 등장하는 ‘비적(匪賊)’이 대륙침략에 항거하던 항일세력의 총칭이었다.‘라고 말하면서부터 시비거리가 된것이다.
    이 시는 또한 자기 자신의 량지를 속인 거짓말이라는 평가를 받고있다. 보다싶이 일제침략자들의 잔인행위에 대한 고발이 아니라 항일하다 잡혀서 효수당한 '머리 두 개'를 꾸짖은 철두철미 친일시이다. 그럼에도 최근에도 혹자들은 일컬어 남성적이요, 시의 소재를 확대한 혁명적 업적으로 극찬했으니 흑백전도가 가관이라 하겠다.
    죽어서도 바위같이 되리라고 호언장담하던 그는 너무 쉽게 자가당착에 빠졌다. 왜냐하면 이 밖에도 유치환에게는1943년 발표한 '전야'라는 친일시가 또 있기때문 이다. 유치환은 학병지원 특집으로 출간된 친일잡지 '춘추' 12월에 이 시를 발표 하였는데 학병출정 장려시라고 질타한 사람도 있다. 1944년 4월 '조광'에 기고한 '북두성' 에서는 '아세아의 산맥 넘어서 동방의 새벽을 일으키다' 라며 서구제국주의 자들을 물리치고 대동아공영권을 수립하는 일제를 찬양하였다.
    유치환은 만주국에서 일제가 준 농장을 경영하였고 그는 친일세력을 확대하고 반일세력을 진압하기 위해 조직된 최대의 친일단체 '만주협화회'에 근무하기도 했다. 그는 로골적으로 일제침략자를 찬양하는 산문 '대동아전쟁과 문필가의 각오'를 발표하기도 했다. 문필인즉 곧 그 사람이라 한다. 유치환은 초기에는 랑만적, 상징적 경 향의 허무성(虛無性)이였으나 차츰 범신론적(汎神論的) 자연애를 바탕으로 허정무위 (虛靜 無爲)의 세계와 강인한 원시적 생명력의 추구를 보여줬다고 평하고있다.
    허정무위(虛靜無爲) 그것은 바로 자연의 법칙이며 그 길이야말로 훼손을 막고 우리가 다시 살길이라고 말했던 같다. ‘비와 바람에 깎이는대로, 억년 비정의 침묵에 안으로, 안으로 채찍질하여 나만이 아닌 우리 모두를 위한 ‘허정무위’의 길을 제시 하였는가? 참으로 꿈보다 해몽이 더 그럴듯하다고 하리라.
    그러나 피로써 씌여진 력사는 필묵으로 지워지지 않으며 각성한 지성인들의 혜안은 세월따라 무디여지는것이 아니다. 례하면 한국의 “통영시민연대”는 "통영시장과 통영시의원들의 역사관이 도대체 어떠한지 묻고 싶을 따름이다"며 "자신의 영달과 안위를 위해 조국과 민족을 배반한 이들을 지금껏 위인이라고 교육하고 혈세를 부어 기념하고 있는 이 마당에 과연 우리 사회는 일본정부만 나무랄 자격이 있는가!"라고 따지며 대성질호하고있다.
    잡담제하고, 문필은 그 사람의 인격과 백프로 일치하지 않음을 읽을수 있다. 예나제나 약자들인 문인들이 폭압앞에서 절개를 굽히는것은 인간본성의 약점이라고 생각할 때 리해의 여지가 전혀 없는것은 아니다. 인간은 어디까지나 인간이며 인성은 그렇게 강하지 못하다. 그래서 파스칼은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고 했던가, 하지만 바위든 갈대이든 자신마저 속이 얄팍한 분식은 하지 말아야 하리라. 강폭앞에서 견정 불이한 자란 세상에 흔하지 않다. 그러나 자진하여 친일주구가 된 유치환처럼 스스로 아이러니를 창조하여 후세에 웃음거리를 남기는 시인의 이미지는 막무가내한 인성에 개탄하고도 나머지가 있게 한다.
                             
                                                        2017년 6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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