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룡운
http://www.zoglo.net/blog/jianglongyun 블로그홈 | 로그인
<< 5월 2024 >>
   1234
567891011
12131415161718
19202122232425
262728293031 

방문자

조글로카테고리 :

나의카테고리 : 칼럼/수필

백양나무꽃씨
2013년 07월 23일 16시 01분  조회:2401  추천:3  작성자: 강룡운
수필

백양나무꽃씨

강룡운


 
1
나의 옛기억을 더듬어보면 내가 어렸을 땐 우리 이 고장에는 백양나무가 유난히 많았다. 우리 동포들이 아기자기 모여사는 고장이면 그 어데라없이 가는곳마다에서  우리 동포들의 얼굴을 자주 볼수 있었듯이 마을근처나 학교주변이나 길녘이나 강변에서 언제나 흔히 볼수 있는 수목이 바로 백양나무였다.

나무 잎사귀가 둥글넙적한 우리 겨레들의 얼굴을 닮아서인지 아니면 나무껍질이 희슴프레하여 마치 우리의 선인들이 옛날부터 많이 입고다니던 베천으로 만든 허름한 바지저고리나 두루마기와 비슷하여서인지 백양나무는 마냥 우리에게 친근한 존재였다.

해마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 오면 백양나무는 이파리가 채 피여나기도 전에 겨우내 몸속에 한가득 품고있던 자양분을 유전인자에 몰부어 제나름대로 일찌감치 씨앗을 잉태하여 새하얀 꽃씨를 온 누리에 날려보낸다. 우리 백의 동포들을 많이 닮은 민들레의 홀씨 같은 새하얀 꽃씨를 수없이 천하 방방곡곡에 날려보낸다. 이 꽃씨들이 여기저기 날아다니다가 땅에 떨어져 흙속에 묻히여 새봄을 맞아 싹을 티우고 뿌리를 내리게 되면 또 새로운 군락을 이루게 되는것이다. 때문에 새하얀 그 꽃씨가 나의 눈에는 꼭 마치 우리 겨레의 무한한 번성을 축원하는 꽃보라와도 같이 곱게 안겨와 나는 우리 겨레의 미래에 대해 늘 희망으로 부풀어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백양나무는 경제림 조성에서는 락엽송과 같은 수종에게 밀리우고 가로수가운데서는 관상가치가 더 높은 다른 멋쟁이  나무들에게 밀려나면서  점차 우리의 주변에서 줄어들기 시작했다.

올해도 백양나무꽃씨가 하늘을 뒤덮고 하늘하늘 날아예는 화창한 봄날이 찾아왔건만 백양나무가 워낙 예전보다 많이 줄어서인지 눈에 잘 띄이지 않고 하늘을 날아예는 벡양나무의 새하얀 꽃씨들도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다.
 
2.
해해년년 봄이면 만천하에 흩날리는 새하얀 백양나무꽃씨를 중국의 고대문인들은 양화(杨花)라고 불렀다. 즉 백양나무꽃이라는 말이다. 일설에 따르면 고대문인들의 시구에 자주 등장하는 이른바 “양화”는 백양나무꽃씨가 아니라 버드나무꽃씨라는 주장도 있다. 백양나무꽃씨든 버드나무꽃씨든 그것이 결코 꽃이 아니고 꽃씨임을 그네들도 분명히 잘 알고있었던것 같다. “사화환사비화(似花还似非花)”라는 소동파의 “양화사(杨花词)”가 이를 잘 말해준다. 얼핏 보기엔 꽃과 흡사하여 꽃이라고 이름하였지만 결코 꽃은 아니라고 대서특필하였으니 천만 지당한 말씀이다. 백양나무꽃씨는 백양나무꽃이라고 불리우지만 필경 백양나무의 꽃이 아니고 백양나무의 씨앗인것이다. 깃털같은 새하얀 천사의 날개를 달고 날아다니는 백양나무꽃씨 하나를 손에 잡아쥐고 유심히 살펴보면 새하얀 날개속에는 티끌 같은 새까만 알맹이가 박혀있는데 그게 바로 백양나무의 유전인자를 간직한 씨앗이다. 그것이 바람타고 이리저리 날아다니다가 어느 한곳에 정착하여 흙속에 묻히여 싹을 티우고 뿌리를 내리면 백양나무 애나무로 자라나게 되는것이고 또 한데 모여 자라면 새로운 군락을 형성하여 그네들의 새동네가 이루어지는것이다. 아마 백양나무꽃씨의 이같은 끈질긴 생명력의 상징적의미때문에 백양나무꽃씨가 예로부터 줄곧 문인묵객들의 사랑을 받아왔는지도 모른다.

고대문학사를 한쪽에 저쳐놓고 중국의 당대문학사를 살펴보아도 옛문인들 못지 않게 백양나무꽃씨에 관한 멋진 시구를 남긴 위인이 계신다. 그분이 바로 중국 당대의 가장 위대한 정치가이자 시인이였던 모택동주석이다.

——나는 어엿한 양씨를 잃고 그대는 류씨를 잃었네. 양류는 훨훨 날아 하늘 높이 구중천에 올라가 오강더러 무엇이 있냐고 물었더니 오강은 계수나무꽃으로 빚은 계화주를 받쳐들고 나오더라.

이것은 1957년 5월에 쓴 모주석의 “접련화ㆍ리숙일에게 화답하노라”의 첫대목이다. 모택동은 혁명을 위해 희생된 자신의 애처 양개혜렬사와 리숙일녀사의 부군이였던 류직순렬사의 성씨가 양(杨)씨와 류(柳)씨임을 감안하여 혁명을 위해 먼저 떠나간 이들 두분을 양류(杨柳)라 지칭하고 백양나무꽃씨(杨花)와 버드나무꽃씨(柳絮)에 비유하여 양류는 훨훨 날아 구중천 월궁에 이르러 오강의 환대를 받았다는 기상천외한 시상(诗想)을 펼쳐보이면서 혁명을 위해 몸바친 혁명선렬들의 충혼이 영생불멸하리라는 혁명적영웅주의를 찬미한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양류는 그저 백양나무꽃씨나 버드나무꽃씨가 아니라 혁명선렬들의 충혼을 이르는 말이다. 즉 고매한 인간의 넋을 말하는것이다.
 
3.
그러면 백양나무꽃씨의 넋은 무엇일가?

그것은 그 꽃씨속에 숨어있는 유전인자이다. 이 세상 모든 생명의 존재 리유는 자신의 유전인자를 보전하여 물종의 존속을 유지하는것이라고 한다. 백양나무는 자연환경에 잘 적응하여 꼬챙이를 땅에 꽂아도 살아나는 강한 생명력을 소유한 수종이다. 지금은 인간들이 백양나무를 식수할 때면 나무가지를 꺾어심는 무성번식방법을 사용하고있지만 자연환경에서의 백양나무는 초봄에 벌써 나무가지에서 키워낸 이삭처럼 생긴 꽃줄기들을 땅에 떨어뜨려 일광과 춘풍에 건조된 꽃씨가 터져나오게 하고 자연의 풍력을 빌어 바람따라 산지사방으로 날려가게 하여 대자연속에 자신의 유전인자를 남기는것이다.

백양나무는 암수딴그루 나무이다. 즉 암나무와 수나무가 따로따로인 수종이다. 암나무에는 암꽃이 피고 수나무에는 수꽃이 피는데 수꽃이 피여 화분을 바람에 날려 보내면 암나무에 핀 암꽃이 수분하여 열매를 맺게 되므로 식물학에서는 곤충을 매개로 하기에 충매화(虫媒花)로 분류되는  버드나무꽃과는 왕창 달리 백양나무꽃은 바람을 매개로 하는 꽃이라 하여 풍매화(风媒花)로 분류한다. 암나무와 수나무가 풍력의 힘을 빌어 유전인자의 새로운 조합을 이루어냄으로써 수분과정을 완성하여 이 세상 만물속에 자신들의 후대를 남길수있는 꽃씨를 만들어내여 하늘로 날려보내는것이다. 때문에 백양나무군락에는 언제나 자연스럽게 암나무와 수나무의 혼거상태가 유지되고있는것이다. 만약 백양나무숲속에 수나무만 있고 암나무가 없다면 백양나무꽃씨도 이 세상에 태여나지 못하게 될것이다. 이것은 누구도 엇설수 없는 자연의 섭리이다.

일개 말못하는 나무가 다 이러할진대 인간세상이야 더 말해 무엇하랴. 광활한 대지에 얼기설기 여러 갈래 뿌리를 깊숙히 내리박고 하늘을 떠이고 꿋꿋하게 살아가는  백양나무처럼 우리 겨레들도 이 땅에 뿌리내려 150여성상을 세세손손 대를 이어 남못지 않게 떳떳하게 살아왔건만 언제부터인가 민족존속의 위기에 직면하게 되였다. 처녀애들이라고는 거의 씨를 말린 시골에서 갓난아기의 울음소리를 들어본지도 퍽 오래 되였다. 이것은 우리 겨레들이 오래동난 살아오던 시골마을들이 지금은 자연계에서도 그 류례를 찾아볼수 없는 수나무만 자라고 암나무가 자취를 감춘 그런 백양나무숲과 같은 꼴이 돼버렸다는 얘기이다. 백양나무는 그래도 나무가지를 꺾어심는 무성번식이란 방법이 따로 있어 꽃씨가 없어도 번식이 가능하지만 짝을 이루지 못하고 늙어가는 우리 로총각들은 이 세상에 태여나서 자신의 유전자마저 남기지 못하게 되였으니 이 어찌 통탄할 일이 아니란 말인가!
 
4
모택동주석은 혁명적랑만주의수법으로 백양나무꽃씨와 버드나무꽃씨를 혁명렬사들의 충혼에 비유하여 불후의 시편을 남기였는데 나는 백양나무꽃씨를 볼때마다 어쩐지 나의 뇌리에는 그저 바람따라 산지사방으로 흩어져가는 우리 겨레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올해도 어김없이 백양나무꽃씨가 흩날리는 봄이 찾아왔다. 요즘 우리 주변에서 백양나무가 예전보다 많이 줄어들고 봄이면 하늘에서 흩날리는 백양나무꽃씨가 눈송이처럼 온 하늘을 뒤덮던 그런 광경을 다시는 볼수 없게 되였지만 그래도 부질없이 흩날리는 백양나무꽃씨의 공중 춤사위는 여전히 우리 이 고장에서 자주 보게되는 봄날의 풍경이다. 그런데 지금의 백양나무꽃씨들은 하늘 높이 훨훨 날아다니다가도 자신의 모체가 싹트고 뿌리내렸던 고장이나 그 린근 지역에 내려와 싹티우고 뿌리내릴 기미라고는 좀처럼 보이지 않고 그저 무작정 고향을 등지고 멀리멀리 타향으로만 날아간다.

멀리멀리 날아가더라도 그냥 하늘공중에서만 맴돌지 말고 산좋고 물좋은 고장을 만나면 땅에 내려와 흙속에 파묻혀 싹을 티우고 뿌리를 내려 자리잡는곳마다에서 더욱 번성한  백양나무군락을 이루었으면 하는것이 나의 자그마한 소망이다.

(2013년 봄 연길에서)

[2013년 <장백산>제4호 제116-119페지]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24
번호 제목 날자 추천 조회
24 후회막급 2014-10-14 2 2296
23 뙤창문이 있는 집에서 살았으면 2014-10-04 7 2493
22 수필다운 수필을 한편만이라도 2014-09-24 2 1825
21 "로인네트워크" 례찬 2014-04-26 3 2136
20 경외심과 요행심리 2013-12-19 1 1757
19 무궁화련정 2013-12-06 8 2775
18 빨간 양말 2013-09-04 2 1963
17 백양나무꽃씨 2013-07-23 3 2401
16 어머니의 사월초파일 2012-06-06 7 2590
15 특효약광고 2012-05-22 2 2471
14 황혼의 붉은 노을 2009-12-04 70 3502
13 손녀의 미니홈페지 2009-08-26 92 3076
12 자식농사 하나 둘 셋 2008-04-26 153 3336
11 마작과 도박(강룡운) 2008-02-24 142 3442
10 례식장의 이채로운 풍경 (강룡운11) 2007-09-20 139 3217
9 전단과 약품광고 (강룡운10) 2007-05-24 123 2912
8 [수필] 얼음낚시 하는 사람들 (강룡운9) 2007-03-09 130 3477
7 [수필] 생일파티 (강룡운8) 2007-02-28 103 2992
6 40년전 "나의 장정" 2007-02-21 100 3357
5 대학으로 가는 길 2007-02-21 101 2887
‹처음  이전 1 2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