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룡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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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양말
2013년 09월 04일 19시 54분  조회:1964  추천:2  작성자: 강룡운
수필
빨간 양말

강룡운


 
빨간 양말이란 말만 들으면 아마 어린 아기들이 신는 쬐꼬맣고 앙증맞은 예쁜 양말이 먼저 떠오를것이다. 아기엄마가 임신 10개월의 천신만고끝에 이제 곧 태여날 아기에게 신기려고 일찌감치 마련해두었다가 아기가 걸음마를 타기 시작하면 신겨주는 빨간 양말, 그런 빨간 양말이 얼마나 신통하고 이뻐보이는가. 그런데 사람이 늙으면 어린애가 된다더니 내 나이 저그만치 일흔셋이 되여 금년에 나도 난생처음 빨간 양말을 신어보게 되였다.

지난 섣달 그믐날밤, 음력설고정프로인 CCTV음력설야회를 보고있다가 천지를 진감하는 요란한 폭죽소리속에 계사년의 도래를 알리는 새해의 종소리가 울려퍼지자 안해는 미리 준비해두었던 새해선물을 나에게 건네주었다. 궁금해서 펼쳐 보았더니 뜻밖에도 빨간 양말이였다.

“여보, 올해는 당신의 본명년(本命年)이니 이 빨간 양말을 신고 액운을 막아내면서 작년처럼 쓰러져 병원에 실려가는 일이 없도록 하세요. 금년부터는 우리 둘 다 툭툭 털고 일어납시다. 제발 더는 앓지 말고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그저 지금처럼 이렇게 오래오래 살아갑시다.”

작년에 우리 부부가 북경에 있는 큰아들 집에 가있을 때 두사람이 동시에 입원치료를 받는 악몽 같은 불상사가 발생하였는데 올해부터는 그런 “악몽”을 다시 꾸지 말고 43년전 백년가약을 맺으며 꼭 잡았던 두손을 더욱 굳게 마주잡고 계속 이대로 남은 여생을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아가자는 안해의 간절한 소망이였다.

빨간 양말을 보자 내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전혀 없었던건 아니였지만 난 그래도 안해의 청을 액면그대로 고스란히 받아들이기로 마음을 굳혔다. 그리고는 날마다 오전이면 이 빨간 양말을 신고 로간부탁구협회 활동실로 탁구 치러 다녔다.
하루는 올해 금방 정년퇴직하고 탁구 치러 온 한 한족간부가 어느새 내가 신은 빨간 양말을 보고 나에게 물었다.
“사장님, 금년이 본명년인가요?”
그렇다고 대답했더니 “아, 그럼 금년에 일흔셋, 저하고는 띠동갑이네요. 지금은 조선족들도 우리 한족들처럼 이런 습관을 따르는군요.”

그 친구의 말처럼 한족들은 년세가 지긋한 부모님의 본명년이 되면 자식들이 부모님께 빨간 속옷, 빨간 양말, 빨간 허리띠, 빨간 옷 등을 사드려 그해에 들이닥칠지 모를 액운을 미연에 막아내고 탈없이 무병장수하기를 기원하는  풍속습관을 가지고있다.

안해도 오래동안 한족들과 어울려 살면서 한족들의 이런 습관을 받아들이고 그 효험을 기대해보기로 작심한 모양이다. 허다한 습관은 그 어떤 믿음에서 기인된다. 다들 좋다고 하면 그것을 믿게 되고 그러면 믿음이 생겨난다. 아울러 그 믿음이 효험이 있을수도 있다는것이 일반 대중들의 심리이다. 심리학이나 의학분야의 전문용어를 빌어 말하면 플라시보효과(Placebo effect), 자기암시효과 혹은 가짜약효과이다. 즉 실제로 아무 효과없는것을 맹신하는것으로 그 어떤 효과를 기대한다는 뜻이다. 이를테면 수면제를 장기복용하는 수면장애환자에게 수면제라고 속이고 모양과 색상이 똑 같은 비타민제를 복용시키면 수면효과를 볼수 있다고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람의 병도 몸에 드는 병이자 마음에서 나는 병인 경우가 많으므로 좋다는걸 믿으면 마음이 불안하지 않아 평온을 찾을수 있고 마음이 편안하면 건강도 그만큼 좋아질수 있다.

지금은 안해의 건강이 많이 좋지 않은 상황이다. 43년전 스물네살 꽃나이에 나에게 시집올 때는 퍼그나 매력적이고 건강한 모습이였다. 헌데 나한테 시집 와서 나때문에 풍파도 많이 겪고 고생도 많이 하면서 건강이 갈수록 나빠졌다. 때문에 나에겐 안해의 소망이 담긴 빨간 양말을 거부하고 진정어린 청을 들어주지 않을 아무런 리유도 없다.

내 나이 서른이 다되여 안해를 만나 결혼할 때는 온 나라가 온통 열병을 앓고있던 “문화대혁명”시기였는데 사람들이 거의다 제정신이 아니였다. 나의 아버지가 “혁명”의 대상이 되여 감금되고 투쟁을 받게 되자 딸가진 집들에서는  “흑오류(黑五类)”의 자식인 나를 외면하였다. 감히 나에게 시집오려는 처녀는 더욱 찾아보기 힘들었다. 금쪽 같은 아들녀석이 대학을 졸업하고도 이런 비참한 처경에 몰린것을 알게 된 아버지는 갇혀있으면서도 이게 다 못난 애비탓이라고 자책하시면서 몹시 가슴 아파하셨다고 한다. 하지만 하늘의 뜻이라고나 할가. 내가 이처럼 난처한 궁지에 처해있을 때 혜성처럼 내앞에 나타나 천사마냥 나와 백년해로를 약속한 처녀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나의 안해이다.

가정배경이 여의치 않다는 딱 한가지 리유때문에 178센치메터 훤칠한 대학생도  탐탁치 않게 여기는 부모님의 거센 반대도 아랑곳하지 않고 고집스레 기어코 나를 선택한것도 나의 안해였고 그 어느 집에서나 딸을 시집보낼 때 어김없이 다 마련해주는 첫날이불도 안해줘서 낡은 이불에 새 이불겉감과 이불안을 얻어서 씌워가지고 시집 온것도 나의 안해였으며 결혼 첫날 큰상을 받을 때 꽃너울을 쓰면서 입어야 할 하얀 한복도 마련해주지 않아 삼촌댁이 시집올 때 입었던 첫날옷을 빌려입고 시집 온것도 나의 안해였다. “혁명”이란 이름아래 “정치가 제일”이랍시고 모든걸 압도하던 그 시절에 투쟁대상으로 몰린 사돈어른이 얼마나 마음에 걸리고 마뜩잖았으면 귀한 딸자식을 그렇게 시집보냈겠는가!

그뿐이 아니였다. 설상가상으로 갓 장가를 간 신랑이 결혼해서 불과 한달만에 “5.16반혁명분자”라는 죄명으로 구속되여 심사를 받게 되였으니 그 충격이야말로 백주에 악몽이요,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였다. 며칠후 공안인원들이 들이닥쳐 가택수색을 하였다. 그들은 내가 대학을 졸업하면서 집으로 가져온 서적들과 노트들을 낱낱이 뒤적여 “죄증”을 찾아내려고 설쳐댔다. 뒤늦게 소식을 듣고 달려온 장모님이 신랑이고 시집이고 다 집어치우고 집으로 돌아가자고 막무가내로 안해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허지만 어디서 그런 용기와 힘이 솟아났는지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내곁을 지켜주었다. 그때로부터 나는 장장 8년동안 “반혁명”루명을 쓰고 살았다. 그 길고 험악한 세월에 한결같이 나를 믿어준 사람이 오직 안해뿐이였다.

당시 나는 로동개조를 하다가 갑작스레 허리를 다치게 되였다. 그때 마침 안해가 첫아이를 임신하였는데 나는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고 넉달씩 두번이나 꼼짝도 못하고 누워있었다. 그때 안해는 예산출산일이 눈앞에 다가와 반달 밖에 남지 않았는데도 만삭의 몸으로 온 동네에 하나밖에 없는 수도물에 가서 물동이로 물을 길어다가 나에게 밥을 지어주었다. 그때 다쳤던 허리가 10년이 지난 1981년에 다시  척추원판탈출증으로 재발하였다. 그리하여 다리근육이 위축되고 하지마비가 와서  제대로 걸을수조차 없었다. 나는 부득불 북경대학병원에 입원하여 척추수술을 받았는데 다른 사람이 대소변을 받아내야 하였다. 그때도 불철주야 나의 곁을 지켜준 사람이 나의 안해였다.

긴병에 효자가 없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안해는 지금까지 다섯번이나 뇌졸중으로 쓰러졌던 나의 건강을 회복시켜주기 위해 일편단심으로 나의 간병을 도맡았다.  그리고 당뇨병으로 6년동안이나 식단조절을 해야 하는 나에게 끼니마다 건강식을 챙겨준 사람도 안해였다. 내가 지금 뛰여다니며 탁구를 칠수 있는것은 모두 안해의 덕분이다.

이처럼 안해는 나와 결혼해서 지금껏 다사다난하고 고달픈 인생을 살아왔다. 하지만 아직도 매사에서 나를 살뜰하게 보살핀다. 본명년이 돌아오자 새삼스럽게 나에게 빨간 양말을 선물한것만 보아도 그렇다. 여기에는 나와 함께 더 오래 살자는 간곡한 소망이 깃들어있다. 머리가 허연 늙은이가 주책없이 빨간 양말을 신고다닌다고 사람들이 비웃을지도 모르지만 소뿔도 제각각이라고 내가 좋고 안해가 흡족해 하면 그만이 아닌가.

모든것이 다 생각하기나름이다. 그래서 나는 안해의 그 갸륵한 마음에 보답하고저 열심히 빨간 양말을 신고 다닌다.
진정한 사랑은 받는것보다 주는것이라고 했다. 나는 안해와 결혼해서 43년이란 긴긴 세월을 함께 살아왔지만 준것이 적고 받은것이 많다. 이제 여생은 안해한테 주면서 베풀면서 살고싶다. 안해의 손이 되고 안해의 발이 되여 안해에게 기쁨을 보태주고 아픔을 덜수 있는 일이라면 소갈데 말갈데를 가리지 않으리라.
 
(2013년 4월 28일 연길에서)
[2013년 <연변문학> 제9호 제172--176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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