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룡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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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생일파티 (강룡운8)
2007년 02월 28일 21시 53분  조회:2993  추천:103  작성자: 강룡운


생일파티

강룡운


    한 가정에서 그 누구나를 막론하고 어느 한 식구의 생일이 되면 으레 평소보다 조금이라도 색다른 음식을 차려놓고   명절을 맞은듯한 즐거운 기분으로 서로 축하해주고 축복해주는것이 우리 민족의 오래된 미풍량속이다.

어린애가 태여나서 백일이 되면 백일잔치요 한돐이 되면 첫돐생일이라 부모된 사람들이 희망에 부플어 큰 잔치를 베풀기도 하고, 인생 만년에 접어든 로인들에겐 회갑잔치요 칠순잔치라 이름하여 자식된 사람들이 부모님께 효성을 바치는 이벤트가 진행되기도 한다.

내가 어렸을 땐 가정형편이 어려워 생일을 어떻게 쇠였던지 특별한 기억이 따로 없다. 그저 생일이 되면 어머니께서는 생진둥이가 아직은 어린애일지라도 꼭 밥 한그릇 따로 떠주면서 그 속에 삶은 닭알 한알을 묻어주던것이 아마 최대의 배려였던것 같다.

성인이 되여 결혼한후에는 안해가 명심해서 나의 생일을 챙겨주어 집식구들끼리 조용히 기념했었는데 언제부터인가 친척들이 나의 생일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지어는 문화대혁명시절 우리 아버지가 혁명의 대상이 되여 투쟁을 받고 있을 때 우리 집과는 거의 발길을 끊었던 친척들도 나의 생일에 찾아오는것이였다. 그것이 아마 문화대혁명이 끝나고 내가 자치주인민정부 판공실 부주임으로 발탁된 그 후부터였다고 생각된다.

친척들이 모여와 술잔을 기울이며 회포도 나누고 축복해주는것이 사람 사는 모습이며 인지상정이라 생각되여 기분이 별로 나쁘지 않았다. 오는 정 가는 정, 미운 정 고운 정이 얽히고 설키여 더블어 함께 살아가는것이 바로 우리네 인간이 아닌가. 그 당시만해도 내가 주정부판공실 요직에 있다는것이 일부 친인척들에게는 그 어떤 유혹이였을지도 모른다. 한해 이태가 지나면서 친인척들한테서 "인사청탁"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주로는 자식들에게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주고싶어 찾아오는것이 많았다. 가문에서 일어나는 경조사때마다 서로 얼굴을 맞대야하는게 친인척인데 어느날 누가 무슨 부탁을 하여왔다고 하여 갑자기 "나 몰라요"하고 외면할수도 없는것이 또한 친인척 사이의 난감한 립장이라서 나는 진퇴량난의 궁지에 몰리게되는 때가 한두번이 아니였다. 도움을 청했다가 이런 저런 사정으로 하여 도움을 받지 못할 경우 친척들한테서 욕사발이 쏟아져나오기도 했지만 정책에 위배되지 않는 일이면  나는 내나름대로 연줄을 놓아가며 몇몇 친인척집 아이들에게 일자리를 마련해줌으로써 그들의 인생궤적을 달리 해주기도 하였다. 그런데 야속하다고는 말할수 없지만 아이들의 일자리가 해결되고 또 내가 권력과는 좀 거리가 멀다고 할수있는 신문사로 자리를 옮겨가자 나의 생일에 다시 찾아오지 않는 친인척들도 더러 있었다. 이 역시 인간세상 염량세태---사람들이 살아가는 또 하나의 다른 모습이 아니겠는가!

지금은 생일을 쇠는 모습들도 많이 달라졌다. 예전에 친척들 생일축하모임에 참가하면 직접 집으로 찾아갈 때가 많았는데 최근 몇년사이에는 고급식당이나 고급호텔에 초대받아 갈 때가 더 많다. 얼마전에 나는 한 친척집 생일파티에 참가하려 세기호텔 6층 특실에 가보았다. 고급료리로 푸짐하게 두상을 차렸는데 파티가 끝날 무렵 그집 자식들이 두상에 돈 천원이 훨씬 넘어 들었다고 하면서 령수증을 챙겨가는것이 눈에 띄였다. 설마 누가 그걸 갖고가 손님접대용지출이랍시고 령수증 처리를 하는건 아니겠지만…

어느 땐가 한번은 아들놈들한테서 걸려온 "어머니의 생신을 축하합니다"하는 전화를 내가 받은적이 있었다. 그애들은 나더러 "오늘은 엄마한테 맛있는 음식을 사드리고 두분 모두 즐겁게 잘 보내세요."라고 부탁하는것이였다. 그날 저녁 나는 안해와 같이 분위기 괜찮은 식당으로 찾아갔다. 거기서 나는 안해가 즐기는 료리 몇가지를 청해놓고 단촐하지만 둘이서 와인잔을 부딪치며 오붓한 분위기를 만들고 있는데 그 곁방 특실에서는 대규모 생일파티가 성황리에 거행되고 있었다. 처음에는 조용히 진행되던것이 술이 몇 순배가 지나가는가 싶더니 너도 나도 뒤질세라 자리를 차고 일어나 "국장님의 생신을 진심으로 축합니다"라는 소리가 이어졌고 나중에는 술기운이 솟구쳐 올라와 흥분상태에 진입하는듯 싶더니 문화대혁명때 귀에 익은 "영원히 건강하옵소서"하는  목소리가 울려퍼지고 마지막에는 "만수건강하옵소서"하는 축원의 환성까지 터져나오는것이였다. 물론 농담조로 하는 "홍색 유머"들이겠지만 이렇게 함부로 "영원히 건강하옵소서"와 "만수무강하옵소서"를 란발하고도 무사태평한 세상이 되였으니 이 얼마나 살기 좋은 세상인가. 그날 국장님의 생일파티는 1차로 끝이 나지 아니하고 2차로 이어지는듯 싶었다. 다들 술이 거나해서 떠들썩하며 식당문을 나서면서 서로 주고받는 얘기들을 들으면 3차 4차까지 이어질지도 모를 일이였다.

그날 저녁 국장님의 생일파티 령수증은 누가 갖고가서 어떻게 처리했는지는 궁금하지도 않다. 후에 나는 어느 신문에서 그 국장님이 또 승진했다는 소식을 보면서 그 양반이 진짜 <영원히 건강>해야 할 큰 인물이 아닌가 하고 부질없는 생각도 해보았다. 만약 그 양반이 좀 더 무거운 중책을 걸머지게 된다면 혹시 만방에 인덕을 베플어 <만수무강>해야할 큰 재목이 아닌지 누가 알겠는가? 공산당원 선진성교육이 여러차례 거듭되고 있으니 예전에 그런식으로 공금을 갉아먹던 사람들도 인제는 크게 각성하고 그 고약한 나쁜 버릇들을 언녕 다 고쳤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여기까지 쓰고보니 나는 내가 자치주 기관에서 근무할 때 겪었던 영원히 잊을수 없는  이야기 하나를 꼭  글로 남겨야 하겠다.

어느날 퇴근할 무렵이였다, 우리 자치주의 주요책임자의 한분이시였던 어르신이 퇴근길에 나의 사무실에 들리시여 래일은 개인사정이 좀 있어서 집무실에 나오지 못할것 같으니 딱 하루만 결근하겠다는것이였다. 종래로 이런 경우가 없었는데 뭔가 좀 이상한데가 있는것 같았다. 이튿날 출근한후 나는 그 어르신께서 승용차를 타고 외출하지 않았다는 보고를 받았고 또 이틀전에 그의 두 아드님이 항공편으로 연길에 도착했다는 정보도 입수하게 되였다. 그리하여 나는 추론과 추측을 거듭하며 혹시 이 어르신이 남몰래 회갑잔치를 치르는게 아닌가 하고 의심하게 되였다. 그래서 나는 능청스럽게 모든것을 다 알고 있기나 한것처럼 그 분의 집에 전화를 걸었다. 마침 생각대로 그분이 아니고 부인이 전화를 받았다

"녜, 안녕하십니까! 그런데 오늘 행사는 몇시에 시작하기로했습니까?"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무작정 이렇게 물었다.

"아, 녜! 난 또 누구라구… 열시에 시작하기로했습니다."

그 부인은 내가 이미 모든걸 다 알고있다고 믿었던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곧이곧대로 알려주는것이였다.

열시가 넘어서 나는 판공실부주임과 함께 그분의 댁으로 찾아갔다. 아니나다를가 두 어르신께서는 이미 회갑상을 받고 계셨다. 그 시절에는 벌써 회갑잔치를 차리기만 하면 몇백명 하객이 줄지어 문전성시를 이루고 하루사이에 몇만원 수입을 올렸다는 사례도 있었지만 이날 회갑잔치의 주인공은 자기의 부하일군들로부터 옛동료들에 이르기까지 그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은채 자택의 비좁은 방안에서 그저 친인척들끼리만 모여앉아 조촐하게 회갑잔치를 치루고 있었던것이다. 우리가 좀 달리 생각해보자. 만약 이 어르신이 이렇게 하지않았다면 하객이 그저 몇백 명뿐이였겠는가?…

아무리 세월이 변하고 시대가 달라진다고해도 이렇게 시종일관 입당할 때의 약속을 맘속 깊이 굳건히 지키면서 아름다운 황혼을 불태우고 빛내이는 공산당원들이 있다. 그런데 지금은 이런 공산당원들이 점점 적어지는게 못내 아쉽다.


2007년 제3기 장백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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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 1 ]

1   작성자 : 김범송
날자:2007-03-09 12:32:46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그 지도자'같은 분들이 점점 적어지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고, 대신 '만수무강' 축원받는 '국장님'들이 많아지고 있는 현실에 비애를 느낍니다. 향후 좋은 글 많이 부탁드립니다. 김범송 배상(서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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