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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녀류시인 - 에밀리 디킨슨
2016년 11월 07일 00시 27분  조회:3602  추천:0  작성자: 죽림

신비에 쌓인 에밀리 디킨슨(EmillyDickinson) 여류시인에 관한 이야기ㅡ.

 

 

에밀리 디킨슨

 

 

If I can...

 

If I can stop one heart

from breaking,

I shall not live in vain. 

If I can ease one life

the aching,

or cool one pain,

or help one fainting robin

onto his nest,

I shall not live in vain.

 

만약 내가

 

만약 내가 아픈 마음 하나 달랠 수 있다면  

나 헛되이 사는 것은 아니리. 

한 생명의 아픔 덜어줄 수 있거나,  

괴로움 하나 달래줄 수 있다면,

기진맥진 지친 울새 한 마리,  

둥지에 다시 넣어 줄 수 있다면  

나 헛되이 사는 것 아니리. 

 

 

 

평생 독신으로 살며 흰옷만 고집한 채 자신의 방에서 칩거하며 은둔생활로 일관한 이 여류시인에 대해 알려진 것이 많지는 않지만....미국 문학에서 차지하는 그녀의 비중은 너무도 크기에 그녀를 빼놓고는 미국 문학을 거론 할 수 조차 없다.

 

평생독신으로 살아간 그녀이지만....

비록 실패한 사랑이지만 그녀에게도 사랑이 있었고 사랑의 실패는 그녀의 시 세계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그녀의 은둔적 생활방식을 고착화 하는데도 큰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된다.

 

대부분이 그렇지만 고난과 시련, 사랑과 이별, 또는 사랑의 실패와 같은 연단을 통해 아름다운 시가 탄생한다.

마치 진주 조개가 수 많은 고통의 산물로 찬란한 빛을 발하는 진주를 만들어 내듯이... 

 

 

 

 

그녀에게도 일생동안 그녀의 감수성 가득한 마음을 차지했던 몇 명의 사람들이 있었고 직접 사랑을 주고 받은 여러건의 애정사가 확인되고 있지만....불행히도 그녀의 사랑은 모두 실패로 끝났다.

 

그녀의 일생동안 그녀만의 시 세계에 영향을 준 것으로 추정되는 사랑으로 몇 가지가 거론이 되고 있는데...가족을 거느린 나이 많은 유부남 목사님을 사랑하기도 하였고, 또 자신의 아버지의 절친한 친구를 사랑하기도 하였고 또 때로는 나중에 자신의 이복 여동생이 된 여인과 사랑을 나눈 레즈비언이 아니었는가 하는 일부의 추측도 있지만.....어쨌거나 이런 예는 평범한 사람으로 납득이 잘 안 가는 부분이기도 하다.

하지만...그녀의 감수성 높은 기질로 볼때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고 본다. ....일반인들과는 다른 섬세한 감각과 감수성, 예술적 감각을 지닌 그녀에게 일반인들이 볼 수 없는 무엇인가를 그들로 부터 끄집어내고 또 그것을 사랑하고 했었다는 것은 틀림이 없다고 하겠다.

 

에밀리 디킨슨은 1830 1210일 매사츄세츠주의 암허스트에서 태어났다엄격한 아버지 에드워드와 정서적인 친근감이 다소 부족했던 어머니와의 사이의 3남매중 둘째 딸로 태어나 조용히 자랐는데... 그녀 어머니의 성격이 디킨슨의 기벽에 영향을 끼쳤다고 볼수 있다.

 

    

디킨슨의 아버지 Edward Dickinson                      어머니  Emily Norcross Dickinson

 

     

오빠 William Austin Dickinson (1829-1895)    여동생 Lavinia Norcross Dickinson (1833-1899)

 

 

1800년대의 매사츄세츠 지역은 청교도 정신에 뿌리를 둔 삶이 근간을 이루었는데 그녀도 아버지의 종교적 관습과 기독교적 전통에 의해 자라났다.

에밀리는 교회와 아버지의 이러한 전통적 종교관과 관습에 도전을 하곤 하였고 그런 반항은 나중에 그녀의 시에서 강하게 작용을 하게된다.

 

디킨슨가는 암허스트의 유명한 가문이었다사실 디킨슨의 할아버지인 Samuel Fowler Dickinson은 암허스트 대학 설립자중 하나였고 그녀 아버지 Edward Dickinson은  변호사이면서 재단의 회계담당자였다.

그녀 아버지는 역시 매사츄세츠 주 상원과 하원그리고 매사추세츠 법원의 고위직으로 근무를 하였는데 디킨슨은 그녀의 부친과는 다르게 세속의 인기를 쫓거나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꺼려했다.

 

디킨슨은 아버지의 종교생활과는 맞지않았는데 그녀 아버지는 행여 신앙에서 벗어나려 할지도 모르는 그녀의 의지를 꺾기위해 그녀가 읽은 책들을 검사하기도 하였다.

 

유명 정치인의 딸이었기 때문에 디킨슨은 암허스트 대학에 출석해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대학 졸업후 그녀는 현재 Mount Holyoke 대학이 들어선 South Hadley 여자 신학교로 옮겼고 그 에서 감수성 깊은 소녀시절을 보내게 된다. 그 당시 그녀를 알던 사람들에 의하면 그녀의 눈은 사랑스런 적갈색으로 따스하고 부드러운 눈빛을 가졌고 머리카락은 길게 따아서 말았으며...깨끗한 피부와 고른 치아를 가진 소녀였다고 묘사하고 있다.

 

 

그녀는 친구들에게 기품있는 태도로 대부분 즐거움을 주었지만조금은 수줍어하고 조용한 성격에 남 앞에 나서는 것을 싫어했다.

대학생활은 성공적이었지만... 디킨슨은 1848년, 단지 1년간의 신학교 생활을 마친후 그녀가 은둔생활을 시작한 암허스트로 되돌아왔다.

 

그녀는 결혼하지 않았지만...그녀는 자신이 선택한 소수의 사람들하고만 특별한 관계를 가져왔다디킨슨이 하얀색 드레스 옷만 입고 그녀가 선택한 특별한 몇 사람들과 그녀 자신만의 사적 공간에서 교류하게 된것은 바로 그녀가 신학교를 그만두고 돌아온 이후 부터이다모든 방문객 만나기를 거절하면서 디킨슨은 좀처럼 아버지의 집에서 나가려고 하지를 않았다디킨슨의 생애동안 그녀는 눈 치료를 위해 필라델피아로 한번워싱턴으로 한번그리고 보스톤에 몇번 여행한 것 외에는 여행을 하지 않았다.

 

디킨슨은 시를 쓰기 시작한 20대 초반에 가끔 그녀의 고향을 떠나 세상구경을 하곤 했지만 그 마저도 드문 일이었다다행히 이 시기에 디킨슨은 그녀의 생애에 영적 동반자와 안내자 역할을 한 두명의 아주 중요한 남자를 만나게 되는데 한 명은 목사인 Charles Wadsworth이고, 또 다른 한 명은  지방신문사 편집장인 Thomas Wentworth Higginson 이다.

이 두 명이 디킨슨에게 끼친 영향은 디킨슨에게 지대한 영향을 준 Samuel Bowles 이나 J.G. Holland  못지않다.

 

Charles Wadsworth 목사(1814~1882)

 

1855년, 그녀가 25살때 만난 41살의 Charles Wadsworth 목사(1814~1882)는 그녀의 시적 세계와 그녀 일생에 아주 강력한 영향을 끼쳤다.

그녀는 필라델피아 여행중 그 곳의 장로교 목사였던 Charles Wadsworth를 만났는데 그는 그녀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친구가 되었다그는  로만틱한 대상으로도 디킨슨의 출구역할을 했는데 그의 전통적인 칼비니즘적 행동양식이 그녀의 논리적인 추론에 유익한 촉매작용을 했기 때문이다디킨슨과 마찬가지로 그 당시 Charles Wadsworth는 독신이었는데 디킨슨이 시를 썼을때 믿고 보여줄 수 있는 로만틱한 사랑의 대상이기도 했다

그는 디킨슨이 그녀의 시에서 언급한 바 있듯이 설교에 있어서도 균형감각을 가진 사람이었다.

 

Charles Wadsworth의 종교적 신념과 추론은 에머슨의 난해한 가정과 초월주의자의 작품과 대비하여 디킨슨이 쉽게 받아들이도록 하였고 더욱 예리하게 만들었다가장 중요한 것은 나중에 디킨슨이 필라델피아에서 다른 지역으로 이주한 그를... 그것도 결혼해 가정을 꾸린 Charles Wadsworth 목사를 아주 사랑했었다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는 점이다. 많은 평론가들은 Wadsworth가 그녀가 쓴 수 많은 사랑에 관한 시의 중심이 되고 있다고 믿고 있다.

 

Thomas Wentworth Higginson (1823 ? 1911)

 

그녀가 상당한 시를 처박아두고 있을 때 그녀는 1862 4 15일 발간된 작자미상의 출판물에서 누군가를 조언자로 발견을 하게 되는데 그는 Thomas Wentworth Higginson으로 저명한 문인이었다.그녀는 그에게 4편의 시를 동봉해 평가와 조언을 구하는 편지를 보냈다. 

 

Thomas Wentworth Higginson은 디킨슨에게 시집을 내는 것을 반대하는 충고를 했지만 그는 그 녀의 시에서 독창성을 발견하고 그녀의 남은 생의 개인교사가 되어 주었다. 그 것은 그녀의 시집출판 반대를 결정한 1862년 이후 부터이며 그 결과로 그녀의 생애에서 겨우 7편만의 시가 생전에 공개되었다. 그렇게 미루어둔 시는 그녀의 사후까지 기다려야 했다.

 

디킨슨은 시를 계속 썼지만 남북전쟁이 발발하면서 그녀는 정서적으로 많은 혼동을 겪게 된다.

전쟁의 직접적인 결과는 그녀의 시에도 많은 변화를 주는데 이 시기에 800여편의 시가 쓰여졌고 그녀 일생중 가장 왕성한 창작활동의 결과를 낳기도 하였다.  

그녀가 전쟁을 시의 소재로 삼지는 않았지만 전쟁 관련 시제는 그녀의 창작활동에 긴밀하게 작용을 하였다.

 

가장 큰 스트레스를 받은 해는 치료차 유럽에 있던 에밀리의 친구인 Samuel Bowles, 그리고 샌프란시스코 갈보리 교회 목사로 새로 부임해 간 Charles Wadsworth,  그리고 연방군 장교로 전쟁에 참여하고 있던 T.W. Higginson을 위협하는 사건이 일어난 1862년 이었다.

 

디킨슨은 지속적인 눈병이 있었는데 그녀의 눈병은 1864, 1865년에 그녀를 매사츄세츠주의 캠브릿지에 몇 달이나 치료차 머물도록 했다.

그녀는 되돌아 온후 1860년대 말까지 다른 곳으로 여행을 하지 않았으며 그녀 가족의 영역안에서만 줄곳 머물었다.

 

그 이후 디킨슨의 삶은 몇년이란 세월 안에 여러 죽음을 경험하면서 비탄에 잠겨 지내게 된다. 1874년에는 아버지가, 1878년에는  Samuel Bowles 그리고 1881 J.G. Holland가, 1882년에는 그녀의 어머니와 Charles Wadsworth 그리고 1883년에는 그녀의 조카인 Gilbert이 죽음을 맞이하면서 이다.

이 수년간에 디킨슨의 주요 친구들과 영향을 끼친 인물들이 타계하고 그녀의 시는 더욱 더 죽음에 대해 강박관념이 심해지게 된다.

 

1884 6 14디킨슨의 강박과 시적 사색은 그녀가 치명적인 병환에 처음으로 시달리면서 종말을 고하게 된다1885년 내내 디킨슨은 그녀가 평생동안 살았던 그녀 가족의 집안 침대에서 누워지냈다그리고 1886 5 15일 그녀는 55세를 일기로 마지막 숨을 거두었다. 

그 순간 세계는 가장 재능이 많고 통찰력이 있던 시인 하나를 잃었다. 

 

 

그녀가 고독한 삶을 살았던 결과로 그녀는 그녀의 집필에 영향을 끼친 동시대의 다른 시인들 보다  더 예리한

그녀만의 언어에 충실할 수 있었다디킨슨의 시는 독창적이고 혁신적이었는데 종종 성경이나 고전적인 신화,

그리고 암시나 참고로  세익스피어를 끌어들이기도 했다.

그녀 대부분의 시는 제목이 없고  오랜 식료품 리스트 같은 종이조각에 쓰여진 것이다그녀의 시집이 발간

되었을때만 해도 출판자는 그녀의 시를 친구자연사랑그리고 죽음이라는 명제로 그룹화해서 발간을 하였다.

 

디킨슨은 결혼하지 않았지만 그녀의 많은 분량에 걸친 사랑에 관한 시를 포함한  그녀의 애정사, 그녀가 사랑

했을지도 모르는사람에 대한 연구는 계속되어 쌓이고 있다.

 

 

 

 

 

 

 

 

그녀의 소녀시절의 사랑그녀가 "나의 주인이시여!" 라고 표시한 Master 서한의 당사자그리고 그녀와 Otis 판사와의 관계는 이런 논란의 주된 근간이 되고 있다.

 

디킨슨의 학창시절 그리고 청소년시기에 여러명의 주목할 만한 남자친구가 있었는데  아버지 사무실의 법률학도 벤자민 뉴우튼(Benjamin Newton), 암허스트 대학생인 헨리바건 엠몬스(Henry Vaughn Emmons) 그리고 남동생 오스틴의 사형이며 암허스트 대 동창인 죠지 고울드(George Gould)이다

 

디킨슨 연구 전기작가는 1850년대에 디킨슨의 숨은 연인이었고 잠시 청혼했던 구혼자로 Gould를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최근의 학설은 이를 새로 조명하고 있다그녀의 친한 여자친구나중에 이복동생이 된 Susan Huntington Gilbert, 그리고 서로 친구였던  Catherine Scott Turner Anthon 등이 디킨슨 전기 작가에게 관심을 받고있는데....

이런 친구관계는 19세기의 전형적인 친구관계였던가 아니면 성적인 관계로 까지 이어졌던 더 긴밀한 관계였는지 작가 사이에 논란이 되고 있다.

 

그녀의 사후 발견된 작품중  Master라고 표현한 세장의 편지 원고는 호기심을 자극하는데....어디로그 편지를 발송하려고 했는지를  입증시켜줄 아무런 증거도 없다.

가장 창작활동이 왕성한 시절에 쓰여진 이 편지들은 수취인에 대한 변함없는 애정을 보여주고 있는데 첫 번째 것은 1858년 봄에나의 사랑하는 Master(주인님)에게.../ 제가 병이 날 것 같아요... 라고 시작이 되고 있고...

두번째 것은 1861년 초에  제가 그 것을 어겼어요...라고 쓰여져 있으며, 세번째 편지는 1861년 여름에...Master....그대가 총 맞은 새를 보신다면...이라고 시작이 되고 있다.

 
디킨슨이 30세 경에 쓴 이 Master 편지는 실제 원고에 불과하지만 그녀의 여동생 Lavinia는 그녀가 5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뒤 그 편지를 발견하게 된다디킨슨의 집 서재에서 2000여편의 미발표 시와 함께 그 편지는 보관되어 있다가 발견되었다.

 

디킨슨의 전기작가 故 Richard Sewall은 그 편지를 평범하지 않은 아주 인간적인 서한으로 단숨에 숨이 막히고 놀랄만한 것들이라고 말하고 있다그는 그 것들이 <그녀 삶의 결정적 순간>을 우리에게 보여준다고 믿는다

그녀가 이제 막 위기를 통과하고 있는 -  디킨슨이 사랑에 빠져 겪는 위기를 ...  디킨슨은 그렇게 사랑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편지는 뉴 잉글랜드 외곽에 사는 유부남과의 사랑에 빠진 것을 암시한다여러해 동안  학자들은 그녀가  Master라고 부를만한 여러명의 남자 대상을 찾았다제일 일반적인 것이 Charles Wadsworth 목사였고 그리고 Springfield 신문의 편집장인 Samuel Bowles 였다.

디킨슨의 몇 편의 시를 실어준 신문은 Samuel Bowles의 신문이었다그녀의 생애에서 오직 한번 발행된...그 서한이 디킨슨의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어휘력에 대한 주목할 만한 예가 되고 있는 가운데 그 서한들은 문학적 영향에 관한 연구와 누가 수취인 이었는지에 대한 동시 관심사로 계속 연구가 시도되고 있다.

 

가족들과 친구였던 신문사 편집장이자 발행인 이었던 Samuel Bowles, 암허스트 토박이 과학자이며 교육자였던 William Smith Clark, 디킨슨이 필라델피아에서 설교를 듣던 Charles Wadsworth, 그뿐 아니라 George Gould  Susan Dickinson 등 장황한 사람들이 그 Master의 주인공으로 거론되고 있다.

 

이렇듯 디킨슨에 대한 많은 것들은 이렇게 비밀에 쌓여 있으며아직 대상이 누구였는지 밝혀지지 않고 있다.

Master가 누구인지를 확인하는 그 시대의 명쾌한 증거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시인의 사생활 공개는 여기서 멈춘 채로 남아있을 것이다.

 

Otis Phillips 경 (1812-1884)

 

 

초로(初老)의 길에서 디킨슨은 그녀 아버지의 친구였던 Otis경과  사랑을 나누게 되는데... 

디킨슨의 말년, Otis Phillips 경과의 로망스는 디킨슨 뿐만 아니라 그녀의 가족과도 연결이 되어 있다.경과 그의 아내 엘리자벳은 디킨슨 부친인 에드워드 디킨슨 가족과 보수적 정치성을 함께 나눈 가장 친숙한 이웃이었다.

1859년, 경은 매사츄세츠 대법원 대법관으로 임명되어 봉직하였다그와 디킨슨과의 관계는 Otis 판사의 아내인 엘리자벳이 세상을 떠난후 발전되었다.

 

에밀리 디킨슨의 친필 원고

 

Otis 경과 관련하여 그 당시 쓰여진 15편의 친필 원고가 겨우 남아있는데 그들은 모두 습작 또는 단편적인 형태의 것들이다일부구절은 경과 디킨슨의 결혼을 암시하는 것처럼 보인다은둔시인이 매사츄세츠주의 Salem에 있는 경의 집에 이주하기를 동의했는가 라는 것은  경의 건강이 쇠약해 졌기에 의문의 여지가 있다경은 1884년 디킨슨에 2년 앞서 세상을 떠났다.

 

 

Hope is the Thing with Feathers

Hope is the Thing with Feathers
That perches in the seol
And sings the tune without the words
And never stops at all

And sweetest in the gale is heard;
And sore must be the storm
That could abash the little bird
That kept so many warm.

I've heard it in the chilliest land
And on the strangest sea;

Yet, never, in extremity, 
It asked a crumb of me!

 

 

희망은 날개 달린 것


희망은 날개 달린 것
영혼 가운데 앉아
가사 없는 노래 부르네
그치지 않는 그 노래

모진 바람 불 때 제일 감미로워라
많은 사람 따뜻이 감싸준 
그 작은 새 당황케 할 수 있다면 
참으로 매서운 폭풍이리 

나는 가장 추운 땅에서도
가장 낯선 바다에서도 그 노래 들었네
하지만 아무리 절박해도 그것은
내게 먹이를 달라 하지 않았네

 

 

 

디킨슨 개인사의 실체가 무엇이었든 그녀의 시는 죽음자연그리고 영적인 것을 불러일으키면서도 연상시키는 그런 언어들로 인간관계의 복잡성과 열정을 탐구하고 있다  

디킨슨은 암허스트에 있는 그녀의 아버지 저택을 맴돌던 실연당한 독신 여성이었지만 그녀의 시의 이면에 있는 열정은 시에 나오는 신이나 수퍼맨 또는 가공 인물이건 간에 상당한 영감을 가진 것들이었음이 분명하다.

 

디킨슨의 사랑도 평범한 끌림과 연심(戀心)...그리고 실패로 상당히 평범하였다는 증거를 보여준다.

하지만 디킨슨은 그 것들을 아름다운 시로 승화시켰고 영적인 희열과 행복을 추구하려고 하였다.  

 

 

That Love Is All There Is 

That Love Is all there is, 
Is all we know of Love; 
It is enough, the freight should be 
Proportioned to the groove. 


이 세상에는 사랑뿐 

이 세상에 사랑 밖에 없다는 것, 
사랑에 대해 우리가 아는 것은 그 것뿐,

그러면 충분하지, 사랑의 무게는 골고루 
고랑에 나누어져야 하겠지. 

 

 

 

이복 동생 Susan Huntington Gilbert Dickinson (1830-1913)

 

1882 9,  Amherst 대학의 천문학자인 David Todd의 활달한 성격의 와이프인 Mabel 여사는 디킨슨과 그녀의 여동생 Lavinia 를 위한 피아노 연주회에 초대 되었는데, 그 때 이복 자매인 Susan Dickinson으로 부터 불평을 듣게 되는데... "그들 누구도 도덕성을 소유하지 않았다.  내가 어느날 화실로 들어섰는데 디킨슨이 어느 남자의 팔에 안겨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라고 못 마땅한 표정으로 말하는 것을 들었던 것이다.

(Susan은 앞서 말했지만 일부 전기 작가로 부터 디킨슨과 동성애 관계가 아니었나 의심받고 있기도하다.)

 

그 사람은 앞서 말한 Judge Otis 경이라고 항간에 많이 추정이 되고 있는데 그는 그녀 아버지 세대의 홀아비로 그녀에게 그의 말년에 청혼 했으나 정중하게 거절당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것도 모르시나요?  그녀는 수줍지만 단호하게 썼다내가 거절하고 허락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당신이 더 행복하지 않을런지요라고...

사랑은 나누었지만 결혼은 거부한 것은 감성이 깊은 디킨슨의 성격상 육적인 관계보다도 정신적, 영적인 것이 앞선 사랑이었고 또 명문가인 디킨슨가의 지역사회에서의 평판과 관련이 있을 듯하다.

 

디킨슨이 그녀의 생활공간 안에서 만든 개념은 우리에게 매우 낯설고 Judge Otis 경 과의 초로의 사랑은 디킨슨의 대중적인 지식에 결코 한 부분도 될 수 없었다.  디킨슨이 치매가 들때 까지도 기다릴 수 밖에 없었던 평범하고 로만틱한 관계에서 오는 기쁨과 경험으로의 발견은  너무도 멀고 멀어 무거운 돌처럼 가라 앉을 수 밖에 없었다.

 

 

디킨슨이 평소에 입었던 하얀 드레스

 

 

에밀리 디킨슨은 2층 자기 방 창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며 소위 <불신에 대한 황홀한 찬양>을 기반으로 독특한 시를 썼다. 월트 휘트먼과 함께 미국 시의 양대 창시자로 꼽히는 디킨슨은 휘트먼이 자신의 이름을 알리려고 수 많은 사진을 찍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겨우 열여섯 살에 떠돌이 사진사가 찍은 은판 사진이 한 장 남아 있을 뿐이다.

 

I died for beauty

 

I died for beauty, but was scarce
Adjusted in the tomb,
When one who died for truth was lain
In an adjoining room. 

He questioned softly why I failed?
"For beauty," I replied.
"And I for truth - the two are one;
We brethren are," he said. 

And so, as kinsmen met a-night,
We talked between the rooms,
Until the moss had reached our lips,
And covered up our names.

 

 

아름다움을 위해 나는 죽었다네

 

아름다움을 위해 나는 죽었지- 그런데 무덤에

적응이 되자마자, 진실을 위해 죽은 사람이

바로 옆 방에 눕혀졌지-

 

그는 내게 '왜 이곳에 왔냐?'고 속삭이며 물었지

"아름다움을 위해", 나는 대답했지-

"나는 진실을 위해서- 그들은 한 몸이니-

우리는 형제로군" 그가 말했지-

 

그래서, 우리는 가까운 친척처럼 밤에 만나-

무덤의 방을 사이에 두고 이야기를 나누었지-

이끼가 번성하여 우리의 입술에 닿을 때까지-

그래서 우리의 이름을 덮어버릴 때까지-

 

 

MARCH

 

Dear March, come in!

How glad I am!

I looked for you before.

Put down your hat -

You must have walked -

How out of breath you are!

Dear March, how are you?

And the rest?

Did you leave Nature well?

Oh, March, come right upstairs with me.

I have so much to tell

 

 

3 

 

사랑하는 3월님, 어서 들어 오세요

 오셔서 얼마나 기쁜지요!

일전에 한참 찾았거든요.

모자는 내려 놓으시지요 -

아마 걸어오셨나보군요 -

그렇게 숨이 차신걸 보니.

사랑하는 3월님잘 지내셨나요?

다른 분들은요?

'자연'은 잘 두고 오셨나요?

,3월님저하고 바로 이층으로 가요.

말씀드릴게 얼마나 많은지요.

 

 

 

 

 

왜 그녀가 그토록 평생을 흰 옷만을 고집했는지.....

 

아마도 사랑의 대상에 대한 그녀만의 순결과 사랑의 표현방식은 아니었을까....

 

물론 세월에 따라 실연을 당하고 그 결과로 대상이 바뀌어 갔지만....

 

그녀 가슴을 채우던 사랑을 향한 하얀 열정이었으리라.

 

 

 

하얀 흰 옷을 입은채 오늘도 가슴 속으로 난 창을 서성이는 누군가가 있다면 -

 

그런 사랑을 가진 사람이라면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리라.....

 

 

 

언제나 그리움의 파편으로 가슴에 난 구멍을 메꾸고 있을 하얀 영혼을 가진 누군가가 있다면 -

 

그들이 몹시도 그리워지는 조용한 이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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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6 내 둘레에 둥근 원이 있다... 2017-02-19 1 2609
455 "동주에게 편지를 보내고싶다..." 2017-02-08 0 2377
454 달문 여는데 보름 걸리고, 달문 닫는데 보름 걸리다... 2017-02-08 0 2427
453 하늘도 해를 팔다... 2017-02-04 0 2312
452 청산별곡 2017-02-02 0 2562
451 2017년 <<신춘문예>>당선작 시모음 2017-01-02 0 3956
450 백거이(白居易) 시를 재다시 음미해보다... 2016-12-31 0 6205
449 중국 古詩 10 2016-12-25 0 2785
448 "술타령" 시인 문학소년소녀들에게 꿈의 날개를... 2016-12-12 0 2355
447 [명시감상] - 자유 2016-12-05 0 2745
446 3 = 30 = 2 = 6 = 15 = 1 = 두줄 2016-11-28 0 2461
445 시인, 시, 그리고 번역... 2016-11-27 1 3162
444 [명시감상] - 황무지 2016-11-27 0 2949
443 詩에 독자들이 밑줄을 긋도록 써라... 2016-11-26 0 2700
442 "150 000 000" 2016-11-26 0 2737
441 테트 휴즈 시모음 2016-11-26 0 2561
440 미국 시인 - 알렌 긴즈버그 2016-11-26 0 2919
439 이육사 시 중문(中文)으로 읽다... 2016-11-15 0 2659
438 타고르 詩를 보다... 2016-11-14 0 2990
437 남미주 아르헨티나 문학 거장 - 보르헤스 2016-11-07 0 2402
436 미국 녀류시인 - 에밀리 디킨슨 2016-11-07 0 3602
435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사랑할 날 얼마나 남았을가... 2016-11-06 0 4073
434 해외 시산책 2016-11-06 0 2523
433 미라보 다리 아래 강물은 지금도 흐르고... 2016-11-06 0 2687
432 아름다운 세계 명시속에 흠뻑 빠져나볼가... 2016-11-06 0 3564
431 프랑스 상징파 시인 랭보 시 다시 새기다... 2016-11-05 0 3083
430 "세계는 소리와 맹위와 불로 가득 차고"... 2016-11-01 0 2400
429 "내 여자의 육체, 나는 네 경이로움을 통해 살아가리"... 2016-11-01 0 2706
428 장편 서사시 <<백두산>> / 조기천 2016-11-01 0 3879
427 미국 "생태주의" 방랑시인 - 게리 스나이더 2016-10-28 0 3935
426 아랍 "망명시인", 령혼의 나팔수 - 니자르 카바니 2016-10-28 0 2441
425 타이타닉호는 침몰되지 않았다... 2016-10-20 0 2217
424 바람만이 그 답을 알고 있다네 / 천국의 문을 두드려요 2016-10-19 0 3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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