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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명] - 서로서로 교류의 장을 열자(2)...
2017년 01월 24일 22시 23분  조회:3914  추천:0  작성자: 죽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中 조선족 자치주, 9억원 들여 새 단장

윤동주, 옌볜서 태어났지만 서울·평양·교토서 주로 활동… 모든 작품 한글로만 표현
유족·관련단체, 공식항의 꺼려 "中서 여러 기념사업 진행… 문제 삼기 곤란한 측면 있다"

 
 1941년 연희전문학교 졸업 당시 윤동주. 그는 그해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발간하려다 실패했다.
 
중국이 중국 옌볜에 있는 시인 윤동주 생가(生家)를 관광지로 개발하며 '중국 조선족 애국 시인'이라고 소개하고 윤동주 시를 중국어로 번역해 홍보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6일 오후 중국 옌볜 조선족자치주 룽징(龍井)시 밍둥촌(明東村)에 있는 윤동주의 생가를 찾은 '세시봉 친구들'의 가수 윤형주(66)씨는 새 단장된 윤동주 생가를 보고 깜짝 놀랐다. 생가에는 그전에 없던 시멘트 벽과 문이 생겼고, 가로 약 4m, 세로 약 2m 크기의 경계석에 '중국 조선족 애국 시인 윤동주 생가'라고 적혀 있었다. 윤동주 생가는 룽징시가 우리 돈 9억여원을 들여 4개월간 공사해 정비했으며 작년 8월 준공식을 열었다. 윤동주의 외숙인 김약연이 세운 명동교회에서부터 윤동주 생가까지의 흙길이 대리석으로 바뀌어 말끔해졌지만, 이 과정에서 명동교회 옆 십자가가 옮겨지고 곳곳에 중국어로 번역한 시비(詩碑)가 세워졌다.

조선족의 국적은 중국이다. 윤동주는 룽징에서 태어났지만 모든 작품을 한글로 썼으며, 대부분의 작품은 그가 평양 숭실중학교에 다니던 시기와 서울 연희전문학교에 다니던 시기, 일본 교토에서 유학 생활을 하던 시기에 썼다. 윤동주의 육촌 동생으로 매년 이곳을 찾는다는 가수 윤형주씨는 "윤동주 시인의 원적은 함경북도 회령이며, 북간도로 이주한 것일 뿐 이민을 간 것은 아니기 때문에 중국 국적의 시인이라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집안 어르신들이 알면 무덤에서 벌떡 일어나실 일"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연세대 사회학과 류석춘 교수는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라는 구절이 있는 윤동주의 시 '별 헤는 밤'에서도 알 수 있듯이 시인은 중국 국적의 소녀들을 '이국 소녀'라고 일컫는 등 자신을 중국인으로 생각한 적이 없다"며 "도리어 한글로만 시를 쓰는 등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확고하게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윤동주 생가 주변 곳곳에는 중국어로 번역된 윤동주의 시비(詩碑)가 놓여 있다. 중국어로 번역돼 돌에 새겨진 윤동주의 시 ‘십자가’. 윤동주가 짓고, 리융이 번역했다고 적혀 있다
 
 윤동주 생가 주변 곳곳에는 중국어로 번역된 윤동주의 시비(詩碑)가 놓여 있다. 중국어로 번역돼 돌에 새겨진 윤동주의 시 ‘십자가’. 윤동주가 짓고, 리융이 번역했다고 적혀 있다. /이미지 기자
윤동주의 생가가 백두산 관광을 가는 관광객들의 필수 관광 코스가 되면서 '중국 조선족 애국 시인'이라고 쓰인 경계석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한국인들도 눈에 띄었다. 한 관광객은 "우리나라의 대표 시인으로 알고 있던 윤동주가 중국 조선족 시인이라고 적혀 있어서 지금까지 알고 있던 게 잘못된 건지 헷갈린다"고 말했다.
 

 2010년 겨울, 중국 옌볜 조선족자치주 룽징(龍井)시 밍둥촌(明東村)에 있는 윤동주 생가에는 ‘윤동주 고향집’이라는 팻말만 덩그러니 서 있었다. 생가 앞 터와 진입로는 포장되지 않은 흙바닥이었다(사진 위). 룽징시는 작년 8월 준공식을 열고 윤동주 생가를 관광지로 개발했다. 시멘트로 된 담벼락과 문이 생겼고, 경계석엔 ‘중국 조선족 애국시인 윤동주 생가’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사진 아래)
 
 2010년 겨울, 중국 옌볜 조선족자치주 룽징(龍井)시 밍둥촌(明東村)에 있는 윤동주 생가에는 ‘윤동주 고향집’이라는 팻말만 덩그러니 서 있었다. 생가 앞 터와 진입로는 포장되지 않은 흙바닥이었다(사진 위). 룽징시는 작년 8월 준공식을 열고 윤동주 생가를 관광지로 개발했다. 시멘트로 된 담벼락과 문이 생겼고, 경계석엔 ‘중국 조선족 애국시인 윤동주 생가’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사진 아래). /전주기전대학 제공, 이미지 기자
 
중국이 그간 방치돼 있던 윤동주 시인의 생가를 복원하고 조선족으로 홍보하는 것은 윤 시인을 중국 소수민족의 시인으로 중국 역사에 편입시키고, 그와 관련된 관광지 개발로 관광 수입을 증대시키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새로운 형태의 동북공정이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국내의 윤동주 유족이나 관련 단체는 이를 공식적으로 항의하기를 꺼리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유족은 "지난 10여년간 윤 시인의 생가를 왕래해왔지만 중국 조선족이라고 명칭을 붙인 건 처음 봤다"면서도 "윤동주에 대한 여러 가지 기념사업이 중국에서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중국 정부의 입장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윤동주선양회 최태식(54) 회장은 "지금 생가가 있는 지역이 중국 영토이기 때문에 중국 정부에 이의를 제기하기는 힘든 상황"이라며 "조선족들이 윤동주 시인을 알리기 위해 좋은 일을 하겠다고 하다가 생긴 문제이기 때문에 문제 삼기 곤란한 면도 있다"고 말했다. 중국 조선족들의 입장도 이와 비슷하다. 옌볜대학교의 한 교수는 "위대한 시인은 국경을 넘어서 존재하고, 윤동주가 더 많이 알려지기 위해서는 대한민국의 시인인 동시에 중국 조선족의 시인이라고 하는 게 더 좋지 않으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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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중국조선족애국시인》으로 명분이 섰다

 

중국조선족애국시인 윤동주유작 발행식.

중공연변조선족자치주당위 선전부에서는 2012년 8월 27일 선전부판공실에서 《중국조선족애국시인》 윤동주의 유작 번역작품발행의식을 열고 각급 선전부문에서 이를 계기로 진일보로 윤동주의 조국을 사랑하고 민족을 사랑하며 고향을 사랑하는 정신을 깊이 학습하고 널리 선전하여 연변을 보다 빨리, 좋게 건설하는데 기여할것을 호소하였다.

연변조선족자치주 창립 60돐을 맞으면서 연변인민출판사와 북경출판사에서는 련합으로 윤동주의 유작 번역작품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 없기를(仰望天空毫无愧恨)》(리영 역)을 헌례작품으로 출판하였다.윤동주는 연변이 낳은 저명한 저항시인이며 민족시인인 동시에 세계적인 시인이다. 일제강점기 룡정 명동촌에서 태여나 17세부터 시를 발표하여 짧디짧은 28년간 세계의 자유와 평화를 갈망하고 저항적이고 정열적이며 책임감높은 령혼의 시편들과 우리 민족 언어에 대한 무한한 사랑으로 일관된 불후의 시작을 펴내 민족의 걸출한 시인으로 각인되였다.

윤동주생가확건공사준공식에 참가한 원 국가민족사무위원회 리덕수주임(오른쪽)과 윤동주유가족.

윤동주는 일본에서도 아시아의 평화와 화해의 상징으로 부상하였다. 1995년 일본 도시샤대학 아마데와교정에 윤동주시인시비가 처음 세워진 뒤를 이어 교또의 조형예술대학교정에서도 윤동주시비제막식을 성대히 치르는 등 윤동주를 기리는 행사가 이어졌다.교또조형예술대학 교정은 윤동주시인이 일본 도시샤대학 류학시절 주숙했던 아빠트가 있는 곳으로서 윤동주시인이 그곳에서 창작의 불꽃을 지폈던 마지막 보금자리였다. 시인은 그곳에서 조선글로 시를 썼다는 리유로 독립운동에 참여하였다는 루명을 쓰고 1943년 10월 일본경찰에 체포되여 1945년 2월에 일본 후꾸오까 교도소에서 옥사했다.

한국에서는 또 윤동주의 시와 사적자료를 대학입시시제에 올려 한때 윤동주를 모르면 대학입학이 어려울 정도로 민족시인을 부활시켰다. 한국에서 윤동주의 시를 사랑하고 윤동주를 우상하는 사람들이 날로 늘어나 중한수교후로 윤동주의 생가를 찾는 관광객들이 한해에 수만명에 이르렀다.

윤동주생가 건설관리사업에 직접적인 지지와 지원을 보내준 룡정시 당위와 정부 관원들 유가족과 함께.

윤동주시인은 연변에서 태여났고 연변에서 자랐으며 연변에서 공부하고 연변에서 시를 쓴 우리 조선족시인이다. 연변에서는 지난 80년대 중반으로부터 윤동주에 대한 연구와 발굴 사업을 진척해왔고 학술계와 민간단체, 조선족학교들에서 각종 문학제, 문학상, 포럼, 백일장을 전개하면서 윤동주의 문학정신을 기리였다.

중국조선족중학생잡지사에서는 올해로 13회째 《윤동주문학상》시상식을 치르면서 윤동주의 녀동생부부를 오스트랄리아로부터 모셔오군 하였다. 《윤동주문학상운영위원회》고문을 맡고있는 윤동주 매형 오형범씨는 몇달전 안해를 저세상에 보내고 한국에 있는 따님 오인경녀사와 함께 이번 《중국조선족애국시인 윤동주유작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 없기를>발행식》에 모처럼 동참하여 윤동주의 고향에서 윤동주의 시의 정신을 계속 이어가고 발양해나아갈것을 간곡히 부탁하였다.

 
이마에 손을 얹고 기다리는 어머니가 계시던 윤동주의 생가.

룡정시 당위와 정부에서는 변강문화를 대대적으로 번영발전시키는 대환경속에서 민속문화를 발굴하고 발전시키며 관광문화산업을 대폭 춰세우기 위하여 북경삼한만방과학기술발전유한회사와 손잡고 윤동주생가를 확건하는 공사를 벌려 28일 준공식을 가졌다.

전국정협 상무위원이며 원 중앙통전부 부부장, 원 국가민족사무위원회 주임 리덕수는 이 준공식에 참여하여 《중국조선족애국시인 윤동주생가》라는 제자를 써주셨다. 연변주인대상무위원회 부주임 리득룡, 연변주정협 부주석 조룡 등은 윤동주의 유작과 생가는 귀중한 문화유산과 정신적재부이며 훌륭한 인문자원과 문화력량으로서 이에 대한 발굴, 보존, 관리 사업은 중화민족문화보물고를 풍부히 하는 훌륭한 사업이라 한결같이 긍정하였다.

수십년간 윤동주를 기리고 그의 시의 정신을 고양하기 위해 물심량면의 기여를 해온 해내외 인사와 민간단체, 문학조직 성원들은 윤동주기념사업에 대한 정부적차원의 지지와 지원이 있음으로 하여 앞으로 본격적인 발전을 거듭하리라 기대해보았다.

 

 

[동포세계신문=편집국]

한국의 언론매체가 연변 용정 명동촌에 위치한 윤동주 생가 표지석에 ‘중국조선족애국시인’으로 표기되어 있는 것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지난해 2016년 10월 10일자 중앙일보는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 윤동주의 중국 생가에 표지석에 조선족이라는 표현이 있어 몇 년 째 논란이 되고 있다”, “'조선족'이라는 표현으로 볼 때, 윤동주 시인을 한국인이 아닌 중국인으로 본 것과 다름없다.”고 지적하면서 “지금이라도 '조선족'이라는 표현이 버젓이 적힌 윤동주 시인의 생가 표지석을 바꿀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고 보도하였다.
 중앙일보는 “일본 검찰이 공개한 윤동주에 대한 재판 기록들을 봐도 윤동주 시인의 본적은 함경북도로 한국인임이 분명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윤동주의 가족이 일본의 폭압을 피해 북간도로 피난을 갔지만 국적이 바뀐 적은 없다.” “윤동주 시인이 '별 헤는 밤'에서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이라고 썼다. 중국에서 흔히 쓰는 이름을 '이국적'이라고 표현했다. 중국인이 아니라는 명백한 증거다.”라고 주장했다. 
 윤동주 시인이 조선족으로 표기된 시점은 2012년 중국 길림성에서 윤동주 생가를 관광지로 개발하면서부터로 보고 있다.
“2014년 중국은 윤동주 생가를 ‘국가급 관광지’로 결정한 바 있다. 이는 관광 수입 증대의 목적뿐 아니라 중국이 조선족들이 한국 사회로 흡수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방법일 가능성이 높다. 즉, 조선족의 정서적 이탈을 막기 위해 윤동주를 조선족 시인으로 만들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라고 중앙일보는 분석했다. 
 또한 이용자가 20억 명이 넘는 중국 대표 포털 사이트 바이두 역시 윤동주 시인의 국적이 중국, 민족은 조선족이라고 적혀있어 논란이 됐다고 전했다. 
  전남일보 이건상 기획취재본부장은 10월 6일 칼럼에서 “조선족은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하면서 중국 국적을 부여받은 한민족 계열의 소수민족이다. 1910~30년대 만주에 거주한 사람들과는 애시당초 다르다. 1909년 청ㆍ일 간도협약에 '도문강 이북의 간도지역 내 한국민 거주를 승인한다'고 돼 있다. 간도 거주 한국민은 청의 보호(통제)를 받지만, 그 나라 백성은 아니었다.”면서 “윤동주는 간도에 거주한 한국민이지, 중국 국적 조선족은 결코 아니다. '중국 거주 한국민 윤동주 시인 생가'로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윤동주 시인은 연변 용정을 중심으로 조선족 문인들 사이에서도 민족시인으로 추앙받고 있어 윤동주 생가의 중국조선족애국시인 표기가 고쳐질 지가 주목된다. 
 

 


'중국 조선족 애국시인' 으로 변한  윤동주 生家 비석엔…
韩 . 伟大诗人莫名奇妙变“中国诗人”
中 조선족 자치주, 9억원 들여 새 단장
윤동주, 옌볜서 태어났지만 서울·평양·교토서 주로 활동… 모든 작품 한글로만 표현
유족·관련단체, 공식항의 꺼려 "中서 여러 기념사업 진행… 문제 삼기 곤란한 측면 있다"





  ▲1941년 연희전문학교 졸업 당시 윤동주. 그는 그해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발간하려다 실패했다.
▲1941年从延禧专门学校毕业时的诗人尹东柱。
 
중국이 중국 옌볜에 있는 시인 윤동주 생가(生家)를 관광지로 개발하며 '중국 조선족 애국 시인'이라고 소개하고 윤동주 시를 중국어로 번역해 홍보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经证实,韩国诗人尹东柱竟然在中国被介绍为“中国朝鲜族爱国诗人”。

지난 6일 오후 중국 옌볜 조선족자치주 룽징(龍井)시 밍둥촌(明東村)에 있는 윤동주의 생가를 찾은 '세시봉 친구들'의 가수 윤형주(66)씨는 새 단장된 윤동주 생가를 보고 깜짝 놀랐다. 생가에는 그전에 없던 시멘트 벽과 문이 생겼고, 가로 약 4m, 세로 약 2m 크기의 경계석에 '중국 조선족 애국 시인 윤동주 생가'라고 적혀 있었다.                                        本月6日下午,知名歌手尹亨柱来到位于中国延边朝鲜族自治州龙井市明东村的尹东柱故居,看到重修的故居后大吃一惊。这里出现了原来没有的水泥墙和门,长约4米、宽约2米的界石上写着“中国朝鲜族爱国诗人尹东柱故居”。
 

 
윤동주 생가는 룽징시가 우리 돈 9억여원을 들여 4개월간 공사해 정비했으며 작년 8월 준공식을 열었다. 윤동주의 외숙인 김약연이 세운 명동교회에서부터 윤동주 생가까지의 흙길이 대리석으로 바뀌어 말끔해졌지만, 이 과정에서 명동교회 옆 십자가가 옮겨지고 곳곳에 중국어로 번역한 시비(詩碑)가 세워졌다.
龙井市投资9亿多韩元对尹东柱故居进行翻修,工程进行了四个月,去年8月举行了竣工仪式。尹东柱的舅舅金跃渊成立的明东书塾通往尹东柱故居的土路被铺上大理石,看上去干净整洁,但明东书塾旁的十字架被搬走,而且到处都是翻译成中文的诗碑。
 

조선족의 국적은 중국이다. 윤동주는 룽징에서 태어났지만 모든 작품을 한글로 썼으며, 대부분의 작품은 그가 평양 숭실중학교에 다니던 시기와 서울 연희전문학교에 다니던 시기, 일본 교토에서 유학 생활을 하던 시기에 썼다. 윤동주의 육촌 동생으로 매년 이곳을 찾는다는 가수 윤형주씨는 "윤동주 시인의 원적은 함경북도 회령이며, 북간도로 이주한 것일 뿐 이민을 간 것은 아니기 때문에 중국 국적의 시인이라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집안 어르신들이 알면 무덤에서 벌떡 일어나실 일"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朝鲜族的国籍是中国。尹东柱虽然出生在龙井,但他所有作品都是用韩文写的,而且大部分作品都是在他就读于平壤崇实初中、首尔延禧专门学校以及在日本京都留学时创作的。歌手尹亨柱是尹东柱的堂弟,每年都会来到这里。他说:“诗人尹东柱的原籍是咸镜北道会宁,他只是移居到北间岛,而不是移民,说他是中国诗人纯属无稽之谈。” 尹亨柱叹了一口气说:“如果长辈们知道,会气得从坟墓里跳出来。
 

  
연세대 사회학과 류석춘 교수는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라는 구절이 있는 윤동주의 시 '별 헤는 밤'에서도 알 수 있듯이 시인은 중국 국적의 소녀들을 '이국 소녀'라고 일컫는 등 자신을 중국인으로 생각한 적이 없다"며 "도리어 한글로만 시를 쓰는 등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확고하게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延世大学社会系教授柳锡春表示:“正如尹东柱作品《数星星的夜晚》中的诗句‘佩、镜、玉这些异国少女们的名字’,诗人将中国籍少女称为‘异国少女’,并不认为自己是中国人。而且他只用韩文写诗,作为韩国人的认同感极其坚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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