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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들은 누구의 "얼굴"을 그려봤는가...
2018년 04월 06일 23시 03분  조회:3510  추천:0  작성자: 죽림
 


얼굴


동그라미 그리려다 무심코 그린 얼굴

 내마음 따라 피여나던 하얀 그때 꿈을

  풀잎에 연 이슬처럼 빛나던 눈동자    

동그랗게 동그랗게 맴돌다 가는 얼굴

 

동그라미 그리려다 무심코 그린 얼굴

   무지개따라 올라갔던 오색빛 하늘아래 

 구름속에 나비처럼 날으던 지난날   

동그랗게 동그랗게 맴돌다 가는 얼굴

 

 
==================덤으로 더...


 가곡“얼굴(신귀복 작곡)”이야기 

 

 

두 교사가 5분만에 만들어낸 즉흥곡

윤연선 ‘고아/얼굴’ 1975년 지구레코드사

 

얼굴’의 빅히트로 작곡가 신귀복도 학내외의 유명인사가 되었다.

사실 그는 한국 중고등학교 음악교육계의...

작사가 심봉섭도 ‘얼굴'의 진짜 주인공과 사랑의 결실을 맺었다.

주인공은 덕수 중학교 교장을 역임했던 김말순씨....

 

 

동그라미 그리려다 무심코 그린얼굴,

내마음 따라 올라갔던 하이얀 그때 꿈을,

풀잎에연 이슬처럼 빛나던 눈동자,

동그랗게 동그랗게 맴돌다 가는 얼굴,

 

 

동그라미 그리려다 무심코 그린 얼굴

무지개 따라 올라갔던 오색 빛

하늘아래 구름속에 나비처럼 나르던 지난날,

동그랗게 동그랗게 맴돌다 가는 얼굴,

 

 

작사자 심봉석(1941년생)충남 공주출생 서울사대 생물과 출신의 시인

작곡자 신귀복(1937년생)경기도 안성출생, 작곡자이며 교육학자,

경희대학교 음악대학과 동 대학원 졸업 후

중,고교에서 교사로 근무하며 후학을 양성 했다.

 

주요작품으로는

<얼굴><산 새알 물새알><말하기 좋다고><사랑의 언덕><넝쿨타령>등이 있다.

 

 

가곡“얼굴(신귀복 작곡)”이야기 

 

<얼굴>은 사춘기 소녀가 풋사랑 소년의 모습을 생각하는 노래 같다.

소녀 취향의 로맨티시즘과 수줍고 풋풋한 사랑의 감정이 표출돼 있다.

 

그러나 실상은 소녀도 아니고 사춘기는 오래 전에 안녕을 고한 두 청년 교사가

즉흥적으로 나름의 구원의 여인상을 머릿속에서 상상하며 만들었다.

 

때는 1967년 어느 날,

두 사람은 서울 동도공고에서 교편을 잡고 있었는데 이 학교 교무실이 “얼굴”의 요람이다.

아침에 교무회의가 열리고 있었는데 교장님의 말씀이 몹시 지루하게 느껴졌다.

지리함에 지친 생물교사 심봉석(沈奉錫)이 먼저 소근대며 말했다.

“교장 얘기 따분한데 서로 애인 생각하면서 노래하나 지웁시다.

제목은 ‘얼굴’이 어떻습니까?” “좋죠,

심교사가 가사를 짓고 나는 곡을 지어서 나중에 연결하면 좋겠군요”

음악교사 신귀복(申貴福)도 대 찬성이었다.

두 사람은 열심히 메모지에 작업을 시작했다.

드디어 조회가 끝 난후 두 교사와 동료교사 10여명이 음악실로 갔다.

악보에 심교사의 가사를 써 놓고 피아노를 쳤다.

대부분의 교사들은 썩 좋다고 칭찬했고

어떤교사는 “맹물(생물)교사가 무슨 가사를 쓰느냐”며 농도 걸었다.

심교사는 좀더 멋진 노래를 만들고 싶어서 보름 동안을

소공동 모 음악다방에 매일 퇴근 후 두 시간씩 앉아 다듬었다.

1절 마지막 구절의 ‘맴돌다’를 ‘맴돌곤 하는 얼굴’로 바꾸면서

멋을 부리는데 만 일주일 간 고심했다.

 

 

신귀복 교사는 작곡 후 “누구의 얼굴을 그리며 작곡했느냐”는

추궁을 부인과 친지들로부터 귀찮을 정도로 많이 당했다.

이런 추궁은 심교사도 매일반, 후에 결혼한 부인에게서 곤욕을 치렀다고 한다.

심 교사는 이렇게 해명한다.

“양정고교를 매일 우리 집 앞을 지나가던 동그란 얼굴의 여학생이 있었지요.

말도 한 번 건넨 일이 없고 이름도 모르는 소녀였으나 매일 만났으므로

통통한 얼굴의 여학생이 인상에 남았나 봅니다.”

억지로 <얼굴>의 모델을 찾으라면

그 여학생의 이미지를 닮은 허구의 여인이 모델이라는 설명이다.

 

그때 신교사는 KBS라디오의

‘노래고개 세고개’프로의 심사위원으로 있었는데

담당 프로듀서에게 <얼굴>악보를 보여 주었다.

그 노래가 방송을 타고 전국에 소개되자 여학생의 펜 레터가 쇄도했다.

악보를 보내달라는 요청으로 3개월간 무려 8,000매를 복사해서 우송했다.

일본의 한 교포는 청와대로 폊지를 보내 악보를 요청했다.

 

 

1937년생인 신교사의 고향은 경기도 안성군 안성읍 구포동 184의 2,

안성초등학교 바로 옆집이다. 고속버스터미널에서 한참 걸어

깨끗한 거리에 서 있는 학교를 끼고 왼쪽으로 돌아

뒤쪽에 붙은 몇 채의 작은 집 틈에 그의 생가가 있다.

지금은 학교와 그의 생가 사이가 담으로 막혀 있는데 그가 어릴 땐 담이 없었다.

“집 마당을 지나면 곧장 학교 운동장이 되었지요. 30초면 등교를 했으니까요”

학교는 그의 놀이터이기도 했다. 학교는 지대가 좀 높은데 그의 생가와 학교사이엔

축대가 없이 언덕에 호박을 심어 경계를 삼고 그리로 올라서 학교를 갔다.

학교 수업이 끝나도 그는 계속 남아서 놀고 오르간도 혼자 쳐 보았다.

매일 혼자 아무렇게나 두들겨 보며 신기해했고 점점 흥미를 느꼈다.

교과서에서 배운 노래도 혼자 흉내 내어 쳐보고했다.

매일 연습을 하는데 나중에 음악을 아는 담임교사의 눈에 띄어

그에게 악보 읽기 등의 기초이론을 지도 받았다.

그의 생가는 지금 방이 5개되는 ‘ㄷ’자형의 낡은 기와집으로

여러 가구가 옹기종기 산다. 본래는‘ㅡ’자형의 마당이 너른 집이었다.

그는 이글의 취재를 위해 여름 휴가 중 하루를 틈을 내 고향집을 함께 가 주었다.

주인은 없고 10세가량의 소녀 혼자 집을 지키고 마당에서는

고추가 햇볕을 받아 검붉게 말려지고 있었다.

신교사는 어린 시절 어머니가 말리던 고추를 상상했는지

한참동안 말없이 그것들을 바라보았다.

 

 

카톨릭 집안에서 자란 그는 초등학교 졸업 후

천주교 학교인 안법중고교에 진학해서 밴드부에 들어가 트럼펫을 불었다.

그는 생가를 나와서 중고교 시절에 살았다는 큰 양옥집에 들러 다시 회상에 잠긴다.

그리고 얼마를 걷다가 문득 발을 멈췄다.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밴드 연습소리 때문이다.

그는 소리를 따라 홀리듯 끌려갔다. 그가 간곳은 안법중고교, 그의 모교이다.

그는 바로 이 학교 밴드부에서 활약했다. 방학인데도 학교에 나와서

나무 그늘에서 연습하고 있는 후배를 보며 그는 혼자 미소를 지었다.

교무실에 들어가니 동기동창이라는 이윤희 교사가 반갑게 손을 내민다.

그는 “이 친구 별명이 이름을 거꾸로 한 ‘복귀신’이었는데 방과 후엔 혼자 남아서

트럼펫을 불고 연습한 성실하고 고지식하고 꼼꼼한 성격이었습니다.”하고

신교사의 지난날을 들려준다. 두 사람은 가끔 만나는 것 같이 보인다.

최근의 안부를 묻고 두 사람은 학교를 나와 대폿집으로 발길을 옮겼다.

유명한 ‘안성 막걸리’를 마시며 회포를 밤새 풀자면서...

 

 

안법고교 재학시절 군청의 의뢰로 작곡가 이흥렬이 <안성의 노래>를 작곡한 일이 있다.

작곡 후의 멜로디는 안법고교 밴드부가 시연을 했다. 이 학교 밴드부는 KBS주최 전국관악

경연대회에서 여러 번 우승을 한 밴드의 명문이다. 학생들은 힘껏 연주를 하고 제법 잘

했다고 자신에 차 있었는데 이흥렬은 박자가 안 맞는다고 노래를 불렀다.

노래는 과연 학생들이 냈던 소리와는 달리 절묘했다.

신교사는 그에 감동을 받고

“나도 저런 훌륭한 작곡가가 되어 좋은 곡을 많이 만들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경희대 작곡과에 진학했고 졸업 후 공군에 입대해 군악대에서 트럼펫을 불었다.

그는 밴드부에서 악보 읽기를 배우고 다른 악기도 조금씩 배운 것이 작곡의 밑거름이 됐다고 믿는다.

군 제대 후 그는 동도공고, 금옥여고를 거쳐 경희대 강사, 강원대 강사를 거쳐

1984년 서울시 교육위원회 장학사로 부임했다가 학교로 복귀,

서울강서구 소재 공진중학교장이다(1998년 당시)

 

 

그의 첫 작곡은 1966년<말하기 좋다하고> 노랫말은 송강(松江) 정철(鄭撤)의 시조이다.

작곡을 해야겠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으면서도 뜻대로 좋은 악상이 떠오르지 않아

고민하던 어느 날 그는 낮잠을 자고 있었다.

꿈에 홍난파가 나타나 왜 작곡을 않고 게으름을 피우느냐고 꾸짖었다.

“능력이 없습니다.”하고 그가 대답했다. “능력이 없으면 내가 곡을 줄테니까 따라해”

그러면서 난파는 “미미라...”하는 음계를 불러 주었다. 신교사는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는

스스로 놀라서 잠을 깼는데 입 속으로 그는 중얼중얼 멜로디를 부르고 있었다.

그는 곧장 일어나 종이에 적었다. 그리고 평소 좋아하던 시조 <말하기 좋다하고>를 가사로 적어 넣었다.

 

말하기 좋다하고 남의 말을 말을 것이

내가 남의 말 하면 남도 내 말 하는 것이

말로서 말 많으니 말 말을까 하노라

 

이 가사는 말 조심하라는 교훈적인 시조로 펴소 그의 좌우명이다.

이 곡도 KBS합창단을 통해 방송으로 소개됐다.

 

 

<얼굴>은 그의 두 번째 작곡이자 대표곡이다.

1983년까지 김성태편 교과서에 수록됐고

TV드라마의 배경 음악으로 사용돼 대중적으로 애창되기에 이르렀다.

특히 여고생들의 애창곡이다. 멜로디가 쉽고 콧노래로 부르기도 쉽다.

그가 작곡 후 처음 고향에 갔을 때는 친지들이 플래카드를 써들고 환영을 했다.

 

1960년대 말과 1970년대 초에 선풍적인 인기를 누렸던 <얼굴>에는 에피소드가 많다.

‘자신이 작사 작곡 했다’는 가짜가 수없이 나타나 직접 그들을 만난 일도 있다.

‘관악구 모학교 학생들은 우리학교 교감이 작사ㆍ작곡 둘다 했다’며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심ㆍ신 두 사람은 당시 동도공고 교사가 증인이라며 일축했다

음식점에서 어느날 신교사가 친구와 식사를 하는데 종업원이 <얼굴>을 흥얼거렸다.

그 친구는 종업원을 불러 “그 노래 누가 만든지 아느냐”고 물었다.

그리고 “이 분이 바로 작곡가”라고 소개 하니까

그 여자는 “아저씨 웃기시네요”하면서 가려고 했다.

“정말 이 아저씨란 말야”하니까

“작곡가가 누구건 알바 아sP요”하면서 계속 노래를 불렀다.

어느날엔 신교사가 덕소에 가는데 검문소에서 신분증이 없어 저지를 당했다.

그는 궁여지책으로 <얼굴>작곡가라고 소개했다. 그러자 헌병은 어떤 노래냐고 물었다.

그는 노래를 불렀더니 그 노래 잘 안다며 통과시켜주었다.

 

 

신교사는 <얼굴>이 후에 <산새알 물새알> 박목월 시 등의 가곡과 교가 62곡,

기악곡<목관5중주> <클라리넷협주곡> <교향곡 1, 2> 등을 작곡해

2매의 독집 디스크를 출반했다.

그는 처음으로 사랑을 주제로 하는 가곡<내 사랑아>를 발표했다.

가사는 여류 김성옥 씨의 시, 시인이 가사를 주면서 한번 작곡해 보라고 해서 작곡을 했다가

KBS FM에서 위촉이 와서 1987년 9월 15일 KBS FM특집 프로에서 소개했다.

그는 방송 전에 어느 모임에서 직접 이 노래를 불러 봤는데 반응이 좋았다고 한다.

방송에서 초연한 연주가는 메조소프라노 정영자 씨, 작사자는 “시보다 곡이 더 좋다”며

만족해한다고, 멜로디는 맑고 깨끗한 서정이 넘친다, 곱고도 부드럽다.

신교사는 매년 신곡을 발표해 1997년에는 한국 음악 저작권협회에 등록한 곡만 64곡이다.

최근작으로는 <내 사랑아>, <사랑의 언덕>, <덕수궁>, <서울정도 600년 기념>,

 <바다> 등이 있다.

그는 작곡가협회 부회장, 동요 동인회 회장, 한국관악협회 부회장,

대한민국군악동우회 회장, 음협 이사 등을 맡고 있다.

 

 

한편 작사자 심봉석 씨는 상봉교역(相奉交易)이라는

조그마한 의류 수출업체를 경영하고 있다.

남녀 재킷 등 캐주얼웨어 전문이다.

그는 충남 공주군 탄천면 인양리 516번지에서 1941년에 태어났다.

서울사대 생물학과를 졸업하고 여러 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얼굴>작사 당시는 동도공고에 근무하며 미혼이었으나

그 후 서울사대 동기동창인 김말순 씨와 결혼했다.

학교 교단을 완전히 떠난 것은 1984년부터로 이 때 사업을 시작한 것

 

둥글넓적한 호인형의 심봉석 씨는 <얼굴>얘기에 이르자 꿈꾸는 표정을 지었다.

 

시인이 아니면서 지은 노랫말이 히트했던 지난날의 순수한 감정으로 돌아간 표정이다.

“<얼굴>의 노랫말을 쓴 제 얼굴을 보자는 여성 팬들의 편지가 전국에서 쇄도해서

몇 년 전까지도 큰 곤욕을 치렀어요. 지금도 술집이나 다방에 다른 사람과 함께 가서

그들이 종업원들에게 이 분이 <얼굴>작사자라고 소개하면

종업원들이나 친구들이 불러 보라고 합니다. 그래서 못하는 대로 <얼굴>을 부르기도 하지요”

신촌의 어느 술집 여주인은 <얼굴>의 열렬한 팬이어서 지금도 술값을 안 받는다고 웃음을 짓는다.

사업차 외국에 가면 교포들이 모인 자리에서 노래 부르라는 청을 받고 <얼굴>을 불렀다가

앙코르까지 받아 몇 번씩이나 부르곤 했다고 작사의 희비(喜悲)를 털어 놓는다.

 

그는 첫 작사인 <얼굴>의 히트에 자신과 용기를 얻어

<돌잔치>,<제비>등 몇 편의 가사를 지었다.

신교사가 곡을 붙인 <얼굴><돌잔치>는 고교 교과서에 <제비>,<얼굴>은

 중학교 교과서에 수록돼있다.

 

신귀복 교사와 심봉석 교사는

1968년에 서로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가게 됐으나

지금껏 1년에 서너번은  만나며 우정을 이어가고 있다.

그 우정은 <얼굴>로 해서 더욱 깊어진 것이다.

두 사람 모두 둥근 얼굴 늘 미소짓는 얼굴이 비슷한 인상이다.

아마도 서로 상대이 얼굴에 대한 인상을 무심코 <얼굴>속에 그려 본게 아닐지...

 

한편 대중가요로 편곡돼 불리기도 한 <얼굴>은

그래서 대중가요로 아는 이도 있지만 대중가요는

결코 아니라고 두 사람은 이구동성으로 강조한다. 끝

 

 

주1. 이글은 1998년 이향숙 님이 지으신 가곡의 고향을 옮겨온 글입니다.

 

주2. 가곡“얼굴”의 고향은 서울 마포 염리동 대원군 별장이었던

<아소정>지에 있는 <동도공고>는 2004. 9. 21자로

서울디자인고등학교로 교명이 변경 되었습니다.

학교주소는 서울특별시 마포구 서강로 44번지

(구 주소는 마포구 염리동 150번지)이며

참고하십시오.

 

[출처: 가곡의 고향/한국문원/1998년 이향숙저]

 

// 道軒 이경우 옮김

 
 
 
 
 
 
 

가곡

/얼굴


심봉석 작사
신귀복 작곡 

 

1절
동그라미 그리려다 무심코 그린 얼굴
내 마음 따라 피어나던 하-얀 그때 꿈을
풀잎에 연 이슬처럼 빛나던 눈동자
동그랗게 동그랗게 맴돌다 가는 얼굴

2절
동그라미 그리려다 무심코 그린 얼굴
무지개 따라 올라갔던 오색빛 하늘나래
그름 속에 나비처럼 나르던 지난날
동그랗게 동그랗게 맴돌다 가는 얼굴

 



=======================

우리 3천만의 국민가곡이라고 해야 할 이 노래는 
1967년 동도공고 재직시의 동료교사였던 심봉석 생물교사가 노랫말을 
쓰고 申선생이 작곡한 선생의 대표작으로, 이제는 신귀복 선생이 음악 
회에서 관례화되어 선생님의 피아노 반주에 맞추어 노래부르며 피날레 
를 장식하는 고정 레파토리가 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한때 장르에 대한 논의가 있었습니다. 
이 곡은 처음에 예그린악단의 서구장이 녹음하였고 뒤이어 소프라노 
허순자가 녹음하였는데 1975년 어느날 가수 윤연선이 찾아와 데몬스 
트레이션은 클래식풍으로 깔끔하게 노래하였는데 정작 출시음반은 
대중가요풍으로 불러 일반대중의 큰 인기를 끌자 다른 가수들도 덩달 
아 따라 불러 가요곡으로 알려져 클라식한 음악회에서는 성악가들이 
레파토리로는 기피하는 경향마저 있었습니다. 
  
작곡자 신귀복선생은 처음부터 전혀 그럴 생각이 아니었습니다.  
전주교대에서 가르치던 천길량선생이 이곡을 가르치는 강의실을 이 
학교의 학장이 보고 대학의 강단에서 어찌 대중가요를 가르치느냐고 
힐난하였습니다. 이러한 논의에 신귀복선생은 이렇게 설명하였습니다. 
노래가 되는 단음계는 3가지로 나누어 지는데 

(1) 대중가요가 되는 자연 단음계는 #나 b 기호를 쓰지 않고 작곡하며 
(2) 서정가곡이 되는 화성 단음계는 #이나 b 기호를 이용하여 작곡하며 
(3) 또 한가지 예술가곡이 되는 가락 단음계에서는 올릴 때에는 #를, 
    내릴 때에는 b을 붙여 작곡하므로 이곡의 악보를 보면 이론상으로 
    엄연한 가곡입니다. 

그런데 申선생은 여기에다 참으로 중요한 한가지를 덧붙였습니다.  
어떤 장르의 노래를 막론하고 모든 노래가  
미성년 어린이가 노래 부르면 동요가 되고  
일반 성년 어른들이 노래부르면 가곡이 되고 
전공한 전문직업 성악가가 부르면 예술가곡이 되고 
대중가요 가수가 부르면 대중가요가 되는 것이 전부이므로 
우리가 생활하는 가운데 노래를 불러 심금을 울리고 정서에 짜릿한 
카탈시스를 맛보며 마음에 위로와 치유를 느끼며 이를 즐기는 것이 
요체일 것입니다. 이것이 이른바 생활가곡의 대두입니다. 

申선생은 1937년 1월 4일 경기도 안성군 구포동에서 태어났습니다. 
선생이 사회를 보거나 담화중에 비상한 기억력으로 음악가들의 생년 
월일과 출생지의 번지까지 줄줄이 외우는데는 정말 탄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마음먹고 아무리 신귀복 선생님처럼 숭내내 볼려도 아는게 
없으니 그저는 어림도 없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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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77 [그것이 알고싶다] - 중국 영화 황제 김염과 제주도 2021-05-08 0 1958
3076 [별의별] - 국경과 농부 2021-05-07 0 1942
3075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고구마혁명", 남의 일이 아니다. 2021-04-28 0 1857
3074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문화유산모으기", 남의 일이 아니다. 2021-04-28 0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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