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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집
2018년 04월 08일 22시 39분  조회:255  추천:0  작성자: 연이
꿈의 집
 
권연이
 
 
며칠 전, 집 한 채를 팔았다. 남편은 이제 집을 사고 팔고 하는데 아주 익숙해 있었다. 웬만한 부동산 직원보다 더 잘 알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남편이 어느날인가 이런 말을 하는 거였다.
“여보, 우리도 아이가 둘에 장모님님까지 하면 식구가 적지 않는데…지금 살고 있는 집이 좀 작은 거 같지 않아? 당신 항상 마당이 있고 문 열면 땅을 밟을 수 있는 그런 집에서 살고 싶어 하지 않았어? 마당에 상추도 심고 고추도 몇 포기 심고 포도도 심어 놓고 말이야. 애들이 언제든 나가 놀고 싶으면 문 열고 마음껏 뛰어 놀 수 있는 그런 집 말이야. 우리도 그런 집을 한 번 장만 해볼까?”
남편의 말에 나는 깜짝 놀랐다. 마당이 있고 문을 열면 땅을 밟을 수 있다니! 이건 내가 항상 노래처럼 입에 달고 있었던 꿈의 내 집이 아닌가.
남편을 만났을 때 남편은 이미 두 칸 방이 있는 82평짜리 아파트를 갖고 있었다. 우리는 그 집에서 결혼을 하였고 거기에서 우리의 첫 애가 태어났다. 그 때만 해도 젊은 나이에 자기 소유의 아파트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드물었다. 하기에 얼마나 자부심을 가졌고 소중하게 챙겼는지 모른다. 그 집에서 우리는 새로운 닌생을 시작하였다. 몇 년 사이 우리는 열심히 노력하여 대출을 다 갚고 또 새로 지은 아파트 하나를 더 장만하게 되었다. 물론 대출을 갚느라 여간 힘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나름 통통 뛰여 오르는 집값에 힘이 났다.
우리가 살고 있던 집은 몇 년 사이에 82평에서 110평 그리고 140평으로 커졌다. 하지만 웬지 무언가가 허전하고 마음을 붙이지 못하고 둥둥 떠 있는 느낌이었다. 이런 느낌은 남편도 마찬가지인것 같았다.
생각해보면 어릴 때 살 던 집이랑 비교를 해 보면 지금은 정말 갑부나 다름 없는데 왜 마음만은 항상 텅 빈 것처럼 해도해도 채워지지 않고 무언가가 그냥 부족한 거 같고 무언가가 그리운것 같았다.
사실 그 때 내가 살았던 집은 참 초라하였다. 열살쯤 되었을 때 우리 식구가 새 집으로 이사한다고해서 무척이나 들떴는데 정작 이사를 하고 보니 재대로 된 창문 하나 없는 그런 집이었다. 그런 집에서 우리 식구는 살림을 시작하였다. 집은 보잘 것 없었지만 그래도 하학하고 나면 내 방이 있는 새 집으로 빨리 가야지 하는 마음에 설레였고 해가 지기 시작하면 텃밭에서 딴 오이에 싱싱한 상추만으로 떼우는 저녁이지만 식구들이 마당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하루 이야기 하며 웃고 떠들고 같이 할 수 있었기 때문에 항상 그 시간이 기다려졌다. 저녁을 먹고 나면 아버지는 뒷짐 짓고 동네 마실도리를 나가시고 엄마도 부랴부랴 설겆이 해놓고 동네 아낙네들과 모여앉아 이 집 저 집 이야기하며 웃고 떠든다. 우리는 벌써 또래 친구들이랑 아지트에 모여 이야기도 하고 삼삼오오 모여 동네 구석구석 쓸고 다니기도 하였다. 맛있는 반찬이 생기면 옆 집 아지매도 부르고 뒷 집 삼촌도 불러서 나눠 먹기도 하였다. 물론 우리도 동네 친구들 집에서 얻어 먹기도 많이 했다. 그 땐 목에 집 열쇄를 걸고 다니는 시내 친구들이 정말 부러웠다. 그런 걸 한 번 해 보고 싶었지만 우리 집은 일년 내내 언제 한 번 문을 채울 일이 거의 없었다. 간혹 엄마가 어디 나가면 옆 집에 대고 큰 소리로 “진영엄마, 나 잠간 나갔다 올 테이까 우리 집 좀 봐주이소.”하고는 나가 버린다. 엄마는 그렇게 볼 일 다 보고 한 낮이나 밖에서 돌아 다녀도 집 걱정은 하지 않는 것 같았다. 뒷 집 젊은 아지매도 어디 나갈 일이 생기면 어린 애를 데리고 와서 “걸이 엄마, 우리 애 좀 잠간 봐조요. 나갔다오게”하면 엄마도 “응, 알아데이, 두고 가.”하고시우너하게 대답하고 그랬다. 그러다 누구 집 큰 잔치가 생기면 온 동네가 떠들썩했다. 이 집 사발 빌리고 저 집 접시 빌리고 또 누구 집 숟가락 빌리고 하면서 잔치를 치루었다. 동네 사람들은 남 집 잔치지만 당연 자기 일처럼 생각해주고 챙겨 주고 했다. 참 사람 냄새가 찐하게 났던 동네다. 내가 사는 집은 좀 초라했지만 그런 속에 우리 집이 있었다.
지금은 사는 집이 제아무리 크다고 해도 내 집 식구외에는 편안하게 와서 앉아 놀다갈 사람도 없고 일보러 집을 나설 때면 열쇄로 문을 두겹 세겹 채우지 않고서야 누가 감히 마음 놓고 나가는가. 그 뿐인가! 누가 문 앞에서 문을 두드려도 감히 열어주지도 못한다. 동네 나가면 누가 누구인지도 모르겠고 몇 층에 사냐고 물어 봐도 솔직히 선뜻 대답을 못한다. 아이들에게도 낯선 사람은 무조건 경계해야 한다고 타이르고 집이 어디냐고 물으면 절대로 알려주지 못하도록 타이른다. 모든 사람들이 예민하고 날카로운 고양이처럼 서로가 서로를 경계하면서 마음의 문을 꼭 닫고 살아가고 있다. 그렇지! 마음의 문을 꼭 닫고 살다보니 우리의 마음은 점점 허기가 지고 채우지지가 않아 외롭고 허전하기만 한는 것이 아닐까? 그러니 사람의 정이 고픈데 아무리 고래 같은 집에 산다고 해도 아무리 멋있는 별장에 산다고 해도 혼자라는 외로움, 정이 말라버린 우리의 마음은 쉽게 달래지지가 않는다.  
그렇다. 아마도 내가 원했던 것도 더 별장 같은 집이 아니었던지도 모른다.  나와 나의 남편이 원하는 건 작더라도 내 사랑하는 가족이 살을 비비며 온기를 느낄 수 있고 또 앞 집 옆 집 사람 냄새가 나는 이웃이 있는 그런 동네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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