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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무정장군》

《무정장군》프롤로그
2018년 04월 11일 17시 30분  조회:1264  추천:0  작성자: 리함
프롤로그
 
               
    1905년.
    력서로 보는 1905년은 새해 첫날을 일요일로 시작하는 평년해라지만 우리 겨레로 보는 1905년은 평년이 아닌 비운의 한해로, 망국의 시작해로 알려진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의 조선 격변기 시대가 이를 잘 알려준다.
 
    19세기 말엽의 조선은 제국주의 렬강들의 패권다툼의 한 마당이였다. 풍전등화와도 같은 암담한 나라현실에다 오랜 기간의 쇄국정치로 나라안이 혼란스럽더니 1894년 조선에서는 동학농민운동이 화산처럼 폭발하였다. 동학 교주 최시형이 “인간이 곧 하늘(人乃天)”이라며 현세에 그런 세상을 만들자고 웨치니 헐벗고 굶주리던 나라백성들이 구름처럼 모여든다. 록두장군 전봉준을 선봉으로 학정과 외세를 반대하는 격렬한 싸움이 벌어진다. 
 
    그 시절의 기울어져가는 조선정부는 동학농민운동을 진압할 힘마저 따르지 못하여 이웃 청나라에 구원병을 요청하기에 이른다. 호시탐탐 조선을 노리던 일본은 이때가 기회라고 저들 군대를 바다건너 조선에 파병한다. 기세드높던 동학농민운동은 피비린 탄압으로 력사무대에서 사라지지만 조선정부의 철병요구를 무시한 일본은 청나라와의 주도권 쟁탈로 1894년 7월 25일에 선전포고도 없이 청군을 공격하기에 이른다.
 
조선반도에서의 력사상 청일전쟁의 폭발, 청나라 군대는 대패하고 일본은 승승장구로 중국 료동반도 지배권을 거머쥔다. 프랑스, 독일을 부추킨 로씨야의 압력으로 일본은 료동반도를 반환해야 했지만 로씨야는 눈에 든 가시로 부상하였다. 대원군의 대항마로 떠오른 친청파 민비가 이번에는 친로파로 등장하면서 일본 배척정책을 실시하자 로씨야를 어찌할수 없는 일본공사는 로씨야를 몰아내는 방책으로 1895년 8월 20일, 경복궁에 란입하여 주권국가의 명성황후 민비를 시해하고 불태워 버리기를 서슴치 않는다. 고종황제는 로씨야 공사관으로 피신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일제놈들이 저지른, 지금으로부터 120년 전의 일이다. 
 
로씨야 세력에 의해 고종황제는 로씨야 관내에 친로정부를 수립하고 일단은 친일파를 몰아내지만 조선을 손아귀에 넣으려는 일본의 야망은 사그러지지가 않는다. 1904년 1월 26일, 일본은 중국 료동반도 려순항에 정박한 로씨야함대를 기습공격하면서 로씨야와  로일전쟁을 벌리고 중국의 려순과 봉천을 함락하면서 불패를 뽐내던 로씨야함대를 격파한다. 
 
일본은 이에 만족하지 않는다. 일본은 이듬해 1905년 2월 22일에 일찍 조선의 령토라고 인정했던 독도(独岛)를 강제적으로 병합하고 다케시마(竹岛)로 명명하더니 1905년 11월에는 이또 히로부미(이등박문)을 특명전권대사로 조선에 파견하고 11월 17일, 고종과 조정의 대신들을 강압하여 을사늑약(乙巳勒約)을 체결하면서 조선의 외교권을 박탈해 버린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온 나라, 온 백성들은 하늘을 우러르며 통곡한다. 장지연선생이 11월 20일자 “황성신문”에 실은 “시일야방성대곡”, 신채호가 “대한매일신보”에 실은 “시일야우방성대록”이 그러하지 않던가. 11월 30일, 비분에 잠긴 고종의 시종무관장 민영환을 비롯한 여러 애국지사들이 을사보호조약의 늑결을 개탄하며 자결하니 더욱 그러하다.  
 
온 삼천리강산에 비운이 차고넘친다. 1905년은 그야말로 불운의 한해로 비운의 한해로 자리매김한다. 그 비운을 미리 알기라도 하듯 1905년 11월을 두달 앞두고 황룡포를 입고 찍었다는 고종황제의 사진얼굴에도 비운의 그림자가 비껴있다. 오죽하면 1905년 9월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이 파견한 아시아 순방 외교사절단의 일원으로 조선을 방문한 루스벨트 대통령의 딸 앨리스(1884~1980)가 고종황제한테서 사진을 건네받고 훗날 그날의 사진을 두고 “황제다운 존재감은 거의 없었고, 애처롭고 둔감한 모습”이였다고 회고하기까지 하였을까.  
 
이같은 비운의 해ㅡ1905년에 겨레의 위인 한분이 서울에서도 멀고 먼 조선반도 최북단쪽 바다가ㅡ함경북도 경성군에서 태여났으니 그 위인은 절세의 무정장군. 온 나라 비운의 해에 태여나 비운의 기운이 서린걸까, 인간세상에 왕림하여 장장 백년 ㅡ한세기의 력사언덕을 넘어서도록 이땅의 우리 겨레사회는 위인의 본명을 모르고 고향을 모르고 가족관계를 모르고 지나왔으니 무정은 비운의 운명을 안고 이 세상에 왕림했음이 옳은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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