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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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이 쉽지 않다
2020년 08월 10일 13시 19분  조회:862  추천:0  작성자: 하얀 진주
 엄마의 년세가 점점 많아지면서 걸핏하면 “늙은이 노릇 쉽지 않다”라든지 “늙으면 죽어야 돼” 라고 넉두리를 한다.자식으로서 이런 말을 듣기가 가장 거북하고 심기가 불편했다. 그래서 꼭 꼬집듯 맞받아친다.
”엄마두 참, 이 좋은 세월에 왜 자꾸 그런 말을 해요?”

그러거나 말거나 엄마의 넉두리는 깊어지는 주름만큼 점점 더 깊이 내 귀를 파고 들어왔다.
엄마는 젊어서부터 한시도 가많이 있지 못할 만큼 부지런하였다. 난 어렸을 때부터 엄마가 어디 편히 앉아있는 걸 보지 못했다. 초가삼간 뒤 널직한 밭에는 계절에 맞춰 여러가지 채소와 과일을 심어 만풍년을 거두었고 오리며 닭이며 돼지며 마당개며 돈냥 되는 짐승은 거의 키우다싶이 했다. 앞마당에 돌덩이로 허술하게 걸어놓은 벌떡가마에는 여름이면 옥수수와 감자 등 맛난 먹거리들이 푹 익히는 줄도 모르고 탱글탱글한 얼굴들을 자랑하면서 땀을 뻘뻘 흘렸다.

이 모든 것은 엄마의 쉬지 않는 손길을 거쳐 활기를 띠고 윤기가 흐를 수 있었다. 부지런한 엄마 덕분에 어렸을 적 나는 마음껏 뛰여놀 수 있었고 원없이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내가 또래에 비해 튼튼하게 자랄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라고 믿는다.
그 시기 엄마의 눈빛은 형형하였다. 삶에 대한 의욕으로 터전을 영위하는 발걸음에 바람이 일 정도였다. 자식들을 따뜻하게 입히고 배불리 먹이기 위해  연약한 몸을 쉴 새 없이 움직였다. 곤궁한 살림을 조금이나마 더 윤택하게 꾸려나가기 위해 모진 힘을 쏟았다.

하지만 가녀린 손으로 간난신고의 핸들을 아무리 돌려봤자 아버지의 협조가 이루어지지 않으니 성질만 거칠어졌다. 살림살이는 뒤뚱이는 펭귄처럼 찬 바다를 떠나지 못하고 배불리 먹는 데에만 그쳤다.
담배골초였던 아버지가 폐암으로 먼저 하늘나라로 떠나가자 엄마는 한평생 고생한 사람도 골골거리며 버티는데 뭐가 그리 급해 길을 떠났냐고 눈물을 훔치며 무거운 한숨을 지으셨다.

세월 이기는 장수가 없다고 고생을 함지로 지고 장거리를 달렸던 엄마는 기력이 약해져 병원신세를 여러번 졌었다. 그래도 마음만은 하늘의 별도 따올 것 같은지 할 수 있는 모든 일에 여전히 힘을 아끼지 않았다.
좀 편히 쉬라는 자식들의 말은  항상 귀전으로 흘려보냈다. 두팔을 걷어부치고 우리 집 아이 둘을 다 키워주셨고 살림을 도맡았다. 한국으로 잠간 놀러 간 사이에도 틈틈이 알바를 뛰러 다니면서 용돈벌이를 하였다. 자식들이 각자 살림을 차리고 먹고 사는 데 별 문제 없어도 늘 휴지 한톨이라도 보태주지 못해서 안달복달이였다.

그러는 사이 이젠 좀 쉬라는 엄마를 향한 나의 잔소리는 늘어가고 하고 싶은 일은 많지만 힘이 약해진 엄마는 내키지 않은대로 골방으로 물러앉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러면서 자주 하는 말이 생겼다. 늙으면 죽어야지 늙으면 쓸 데가 없다는지 하시면서 허전한 마음을 내비쳤다.
그러면서도 할 수 있는 일은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놓치려 하지 않았다. 큰 일은 힘이 부쳐 이젠 엄두를 못내니 언제부터인가 소소한 일상에서 일할 기회를 찾는게 보였다.빈 병과 헌 박스 따위를 모으기에 손을 댄 것도 그 무렵이였다. . 늦게야 눈치를 채고 격하게 반대를 했지만 나의 눈을 피해 살금살금 베란다구석에 모으는 것이였다.
그거 팔아서 몇푼 안된다고 집만 어지른다고 말을 해도 막무가내였다. 한푼두푼이 모여 큰 돈이 되지 너희들은 너무 랑비가 많다고 도리여 설교를 늘어놓았다.

년세가 많으니 먼 채소시장에 다니지 말고 가까운 마트에 다니라 해도 고집을 꺾지 않으셨다. 그래도 큰 시장에 가야 채소가 풍부하고 가격도 착하다는 것이였다. 당연히 많이 산 채소는 보관을 오래 하다보면 시들어서 버리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이런 사소한 문제로 의견 차이가 많아 엄마와 나는 서로 자기 주장을 내세우며 다투기도 하고 토라지기도 하였다. 다투면 영낙없이 늙은이 무용론이 등장했다. 늙으면 죽어야 된다는 말은 비수처럼 나의 마음을 찔렀다. 그 말을 하지 않으면 좋겠건만 병약해지고 서러움이 많아져서인지 엄마는 섭섭한 마음이 들기만 하면 늙은이 무용론으로 나를 옴짝달싹 못하게 만들었다.
   
늙고 기운이 빠져 왜소해진 엄마는 왕년의 어글어글다던 눈빛을 잃었다. 광야를 달리던 승냥이가 숲을 잃은 듯 자신의 무기력함을 언짢게 여기셨다. 이제는 무엇을 해야 남에게 도움이 되는지 모르는 엄마는 여러가지 질병으로 몸이 힘든 것보다 자식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고 부담이 된다는 자체를 용서할 수 없는 듯 했다. 
  
아둔한 딸은 꽤나 오랜 시간이 흐르고 엄마 속을 어지간히 긁어 놓고서야 엄마가 왜 그토록 바삐 살고 싶어 했는지를 알아차렸다. 늙은이 무용론이 나에게 죽도록 듣기 싫은 말이였다면 엄마는 내가 편히 쉬라고 하는 말이 받아들이기 힘들게 섭섭함으로 들렸을 게 틀림없다. 평생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것을 행복으로 간주해 온 분이 갑자기 그 행복의 원천인 섬김의 권력을 통째로 빼앗겼으니 그 마음은 오죽했을가.
  
종종 페품수거 할아버지들에게 집에 모아둔 폐품을 팔 때면 허리를 쭉 펴고 목소리도 쩌렁쩌렁해지는 엄마를 발견한다. 아침에 시장에 간다는 말을 하고 문을 나설 때면 다시 바지가랭이에서 삶에 대한 의욕의 바람이 이는 것 같았다.
그 때,엄마의 눈빛은 다시 빛을 뿌린다.
편히 쉬게 하고 싶은 효도의 마음에 엄마를 오해하고 힘들게 했던 나 자신을 성찰해본다.  누구나 다 자신의 의지대로 살고 싶어 한다.몸은 늙어도 마음은 파랗게 젊었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자신의 판단으로 꺼꾸로 된 효도를 할 것이 아니라 부모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진정한 내면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오래 오래 자식들을 위해 무엇인가를 해줄 수 있게 엄마에게 아주 작은 부탁이라도 자주 건네야겠다.

엄마의 형형한 눈빛이 오래오래 우리와 함께 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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