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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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딴 짓을 하려고 할 때
2021년 12월 09일 12시 30분  조회:269  추천:0  작성자: 하얀 진주

수필
마음이 딴 짓을 하려고 할 때
김영분

나는 내가 왜 려행을 좋아하는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냥 살다보면 하고 있는 일이 어려움에 마주쳤다거나 아이들이 학교에서 사고를 쳐서 불리워다닌다거나 풀리지 않는 수학문제를 마주한 것처럼 갑갑할 때가 있다. 그럴때면 무작정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생각이 구름떼처럼 몰려온다는 것만 알고 있다. 이것이 려행의 동기라고 하면 동기가 되겠다.

밥벌이를 위주로 할 나이에도,아이들이 아장아장 걸어다니며 소란을 피워  성가스러울 때도, 속상하거나 우울하면 려행이 생각났다. 나는 이를 일컬어 딴 짓을 하고 싶어진다고 말하고 싶다.
려행을 가서는 풍경을 감상하기 보다는 떠나왔다는 그 자체에 설레인다. 낯선 거리에서 초면인 사람들과의 짧은 대화,작은 친절에 깃드는 감사의 마음,주름이 가득한 노파의 얼굴에서 뿜어져나오는 평온한 웃음 등을 보면 마음에 연고를 바른 듯 치유가 된다. 가이드는 물론 호텔이나 음식점에서도 나만을 위한 서비스를 해주니 내 마음대로 할 수가 있어서 신난다.새롭고 신선한 것도 많아 눈과 귀가 쉴 틈이 없어  좋았다.

다행히 려행이 끝나갈 즈음이면 집을 떠난 불편함이 슬슬 몰려온다. 그러면서 설레이던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고 귀찮고 지루하게 느껴지던 일상생활이 간절히 그리워진다. 밥벌이 외 딴 짓은 아무래도 잠시만 설레이는 듯 하다. 아무렴 그래도 내 집이 제일이구나 하는 생각이 한가슴 가득 고여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빨라진다. 그 덕분에 다시 힘차게 늘 있던 그 곳에서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할 수 있어서 참 좋았다.

언제부터 려행을 좋아했는지도 잘 모르겠다.
굳이 따져보면 예니곱살 때, 외가집으로 가자하는 엄마의 그 말 한마디부터였는지도 모르겠다. 외가집으로 간다고 하면 괜스레 신이 났다.특히 집에서 혼이 났다거나 꾸중을 들어 속상할 때면 따뜻한 외할머니 품이 너무 그리워 당장 달려가고 싶었다.
어수선한 우리 집 분위기보다는 외가집은 난로를 피운 움막집처럼 화기애애했다. 외할머니는 셋째이모와 함께 살고 있었는데 어린 손님이 제일 큰 손님이라고 생각했는지 코흘리개였지만 내가 가면 극진히도 대해주셨다.

외할머니는 바삭한 누룽지도 따끈하게 구워주고 겨울이면 춥지말라고 뽀송뽀송한 새 내복도 한벌 해입혔다. 오래 숨겨두었던 사탕을 내 손안에 쏙 쥐여주는 건 한번도 빼놓지 않았고 잠을 잘 때는 항상 나를 옆자리에 눕혔다. 터실터실한 손으로 등을 쓱쓱 문질러주기도 하고 내 머리를 슥슥 쓰다듬어 주기도 하셨다. 그러면 집에서 받았던 서러움은 봄 눈처럼 녹아버렸다.
이모는 자신의 딸은 제쳐놓고 항상 나에게 질문이 많았다. 무엇을 먹고 싶으냐,앞집에 친구찾아 가서 놀을래,소매점에 같이 갈가 하는 등 어쩜 내가 오매불망 그리던 소원들을 잘도 물어봐주셨다. 나는 질문을 잘 하는 이모가 참 좋았다.나의 의사를 정중히 물어보면 내가 아주 중요한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여린 심장이 탄탄해지는 것 같았다.

그럴때면 분명히 온 세상은 나 하나의 것이였다. 모든 사람은 나를 에워싸고 움직이고 있다. 살뜰한 보살핌을 받고 맛나는 음식을 먹을 수 있고 무엇보다도 이모네 집에 놀러 가면 내 의견을 어필 할 수 있고 또 존중까지 받게 되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움크렸던 마음의 손수건을 탁탁 펴는 시간들이였다.

다툼이 많던 우리 집에서는 느껴보지 못한 푸근함을 어린 나는 느꼈다. 집이 싫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어수선하게 다가왔다. 엄마나 아버지는 무뚝뚝하고 작은 일도 잘 다투셨다. 다투면 불똥이 나한테 튕길 때도 있었다. 괜스레 욕도 먹고 끼니를 허겁지겁 먹어야 할 때도 있었다. 나의 기분 같은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나의 말에 별로 귀를 기울여주지도 않았고 나는 어른들의 얼굴색을 많이 살펴야 했다.

시험을 잘 봐서 또래들보다 등수가 월등히 높아도 집안에서는 당연하다는 듯 잘했다는 칭찬을 들어보지 못했다.그래도 집이 내 뒤심이라고 느끼게 해준 것은 38절이나 가족모임이 있는 날에는 의외로 우리 아이가 이래봐도 공부 하나는 잘한다는 부모님의 목소리가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를 압도적으로 가로질렀기 때문이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때는 분명히 우리 엄마 아버지의 어깨에 힘이 실리고 얼굴에 행복이 쓰여져 있었다. 그럴때마다 부모님의 사랑을 확인 할 수가 있어 엉성하던 허리가 쭉 펴졌다.몸도 마음도 같이 크는 시간들이였다.

이때문인지 외가집이 아무리 좋다하여도 일주일이 지나고 열흘이 지나면 거짓말처럼 사무치게 집생각이 났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나는 역정을 내시며 빨리 밥을 먹으라는 부모의 꾸지람마저 그리워났다.
내가 어른이 되고 나서야 부모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였다. 늙은 부모보다 내 자식이 더 사랑스럽고 내 고통보다 자식의 아픔이 더 걱정되는 것이 부모마음이였다. 표현을 하지 않았다 하여 사랑하지 않았다는 말이 아니였다.

다만 가족에 대한 사랑을 마음속에 무겁게 담아두고 표현에 서투른 어른들도 많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그 부모의 자식이 아니랄가봐 나도 무뚝뚝하다면 상을 받을 수 있을만큼 표현에 서툰 사람으로 부모옆에 서있었다. 뒤늦게 이를 알아차린 덕분에 지금은 때로는 수줍고 어색하게 때로는 괜한 짜증을 섞으며 조금씩 엄마에게 사랑표현을 할 수가 있었다.
아마도 내가 려행을 좋아하는 것은 어릴 때 그 외가집의 분위기가 그리워서인지도 모르겠다.

내 가정을 이루고 사회의 일원으로 경제활동을 하면서 어렵고 답답한 시간들이 분명 있었다. 이를 달래고자 할 때마다 딴 짓이라도 하려고 둘러보면 영낙없이 려행이 생각났다. 다른 사람들을 위한 시간들을 많이 보내다가 나를 찾아나서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외가집으로의 려행이 엉성하던 나의 작은 나무를 크게 자라도록 힘을 보태준 것은 확실하다. 집에서는 몸이 많이 자랐고 외가집에서는 마음이 많이 자란 것 같았다. 허나 엄마가 있었기에 외가집이 있었으므로 종당에는 모두 내 부모가 나를 이리 성장하게 한 것이라고 본다.몸은 정직해서 외가집에는 항상 고맙고 따뜻한 마음만을 간직하고 있으나 내 부모에게는 피와 살을 나누며 충성을 다 하고 있다.

언제까지 려행을 즐겨 찾아 떠날 지도 나는 잘 모르겠다.
려행을 떠올리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번잡한 일상을 헤치고 나 자신이 또렷이 나에게로 걸어 온다는 것만 알고 있다. 세상은 고민으로 가득하지만 한편 그것을 풀어나가는 일로도 가득 차 있다. 려행을 하면 물속에 물감이 퍼지 듯 새로운 힘이 몸 안에 골고루 퍼진다.

어려서는 외할머니를 찾아떠났고 어른이 되서는 자신을 응원하고 지키고자 하는 나를 찾으러 떠난다.상처가 생기면 연고를 찾아 바르듯이 앞으로도 나의 려행은 계속 이어질 듯 싶다.

장백산2021.6기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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