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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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병
2021년 08월 24일 16시 36분  조회:256  추천:0  작성자: 하얀 진주
수필
마음의 병
김영분
 
몇년전,우리 엄마가 당뇨로 인해 입원을 한 적이 있었다.
같은 병실을 쓰고 있는 옆침대 할머니는 뇨독증이라 투석을 위해 입원을 했는 모양이다. 아마도 유복한 가정에서 생활을 했는지 얼굴도 맑고 피부도 매끈한 편이였다. 병간호를 하는 할아버지는 어느 촌에서 간부를 하는 듯했다.우리가 사는 도시는 촌에서 간부를 맡아하는 정도면 어마어마한 권력과 재산이 있었다.

할아버지의 저력을 보여주는 듯 촌민들이 자주 들락날락하면서 할머니 병문안을 다녀갔다. 할아버지는 약간 부푼 배에 항상 셔츠를 깨끗하게 받쳐입고 있었다. 병문안을 찾아온 촌민들의 구김살있고 허트러진 모습에 비하면 로부부의 행색은 소위 촌에서 몇 안되는 출세한 차림이였다.
 
첫 며칠은 큰 아들로 돼 보이는 남자가 매일 밥을 날라왔다.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지 헬멧을  항상 옆구리에 차고 들어섰다. 얼굴에 선하고 어진 웃음을 피우며 비닐봉지에 물만두와  빵,그리고 볶음요리 등을 부지런히 날라왔다.
할머니는 병실에 들어서는 아들을 볼 때마다 아픈 것도 잊고 환한 웃음을 지으려고 애쓰는 반면 할아버지는 언제나 덤덤하다못해 싫증을 내는 눈치였다. 아들은 사근사근하게 엄마의 병세를 묻고 이불을 여며주면서도 아버지의 심기가 불편해질가봐 전전긍긍하는 것이 한눈에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허술한 작업복 차림을 한 남자는 점심과 저녁이면 어김없이 음식과 일상용품을 가득 거머쥐고 병실에 나타났다. 돌아갈 때는 두 어깨가 항상 축 늘어졌다.

며칠이 지나고 투석을 여러번 하더니 할머니의 병세도 많이 호전이 되여 누르꾸레하던 얼굴에 화색이 좀 돌아온 듯했다. 기운을 조금 차렸는지 가느다란 목소리로 시간만 나면 할어버지를 책망했다.
당신이 정말 문제라고,아들이 변압기공장에서 일하는 것이 무엇이 불만이냐고,공부를 잘할 수도 못할 수도 있는데, 아이들마다 자기의 좋아하는 일이 있는데 올 때마다 눈치 주고 구박주어 어쩌자는 건가.출세한 자식만 자식이냐며 엄청 화난 표정으로 나무랐다. 병석에 누워서 기력이 빠졌지만 남편에 대한 불만은 목구멍까지 가득 차오른 듯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할아버지는 당장 철을 녹여 바늘로 만들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운 듯 한숨을 풀풀 내쉬였다. 내가 어디가 못나서 저런 아들을 둬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두덜댔다. 돈이면 돈, 관계면 관계 다 틀어쥐고 있는데 자신이 조금만 잘하면 명품대학도 갈 수 있고 학력을 거머쥐고 집에 돌아오면  뜨르르한 공관서에 일자리도 마련해줄 수 있는데 지금 하고 다니는 꼴이 저게 무엇이냐고 할아버지가 더 못마땅해 했다. 동네사람 보기 창피하다고 연신 푸념을 늘어놓았다.
둬번 로부부의 대화를 엿듣고 나서야  밥 나르는 남자에 대한 할아버지의 태도를 알아차렸다. 두 부자간의 처지가 참으로  안타깝게 여겨졌다.

능력있는 아버지의 원망과 그 기대에 못미쳐 갈팡질팡하는 아들의 고통이 삐걱이는 치륜처럼 아프게 신음하고 있었다.
며칠 후, 엄마의 주치의를 만나 상담을 끝내고 병실에 돌아오니 희한한 광경이 벌어졌다. 글쎄 흰 와이셔츠 차림의 보지 못했던 웬 젊은 남자가 왜소한 할머니의 병상에 같이 바싹 누워서 혼곤히 잠을 자고 있었던 것이다. 먼길을 달려왔는지 머리는 기름기가 약간 번지였고 검은 테두리를 하고 있는 안경이 침대 옆의 테이블에 비스듬이 놓여져있었다. 피뜩 봐서는 꽤 학식이 있고 체면있는 차림새였다. 짐작컨데 작은 아들로 보였다. 보호자 침대가 없는 상황이라 환자의 병상에 비집고 쪽잠이 든 것이 분명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할아버지가 량손 가득히 먹거리들을 사들고 병실에 들어섰다.간만에 얼굴에 띄는 웃음에 힘이 실렸고 눈길이 부드러워져 있었다.

로인은 나와 엄마를 향해 연신 작은 아들이 왔다고 작은 목소리로 그리고 손짓으로 전하고 있었다.잠자고 있는 작은 아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면서 알리지 못해 안달이 난 듯 싶었다. 묻지도 않았는데 지금 상해에서 대기업에 취직 중이라고 뿌듯하게 말했다.
한참을 설레발을 치고 있는데 인기척에 잠을 깬 작은 아들이 부시시 침대에서 일어났다. 단잠을 잤는지 입을 다시며 기지개를 쭉 펴는 것이였다. 사위를 둘러보더니 눈음 슴벅이며 정신을 가다듬었다. 우리 쪽과 간단한 목례가 오가고 그들 셋은 둘러앉아 오손도손 얘기를 나누었다.

할아버지는 연신 귤이며 바나나를 작은 아들에게 먹으라고 권했다. 금방 잠을 자고 일어나서 입맛이 없어 못 먹겠다고 왼고개를 트는 작은 아들은 상관하지도 않고 권유는 연신 이어졌다. 신기한 것은 권하면 권할수록 작은 아들의 인상은 더 구겨지고 왼고개를 타는 회수도 더 많아졌다. 할아버지의 얼굴은 락담했다가  웃다가를 반복했다.쓸쓸한 기색을 보이며 쓰거운 입을 다시기도 했다.

작은 아들은 외지에서 간병하러 온 사람답게 이튿날 총총히 떠나갔다.그래도 할아버지는 서운한 기색을 숨기며 연신 걱정말고 일보러 가라고 등을 떠밀었다.
그리고 다음날 헬멧의 아들은 여전히 음식꾸러미를 들고 병실에 나타났고 할아버지도 변함없이 흐린 얼굴을 선보였다.
세월이 여러 해 흐른 오늘날도 헬멧을 끼고 하루도 거르지 않고 밥을 나르는 아들과 출세하여 병간호을 온 사이에도 병상을 비비고 잘 만큼 인정받고 사랑받는 아들을 둔 할아버지의 모습이 웬지 뇌리를 오래 스친다.
우리는 출세하거나 사업에서 크게 성공해야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이러한 생각은 무엇이나 잘해야 인정을 받을 수 있다는 밑바탕이 깔려 있어서 그런 것이다. 뒤쳐지거나 다른 사람보다 못하다는 생각이 들면 불안하고 가치가 작게 평가되여 자신이 한없이 작게 느껴진다. 자신의 감수보다는 다른 사람의 시선을 더 의식해서 생겨난 마음의 병이다.

자식을 키우고 있는 부모에게 있어서 이 또한 편견이라면 아주 오만한 편견이 되겠다. 이런 생각으로 자식을 키우면 그 자식 또한 이런 생각을 되물림 받고 자신의 자식에게도 같은 잣대를 들이밀게 된다.
있는 그대로를 받아주고 사랑하는 것, 아이들이 마음놓고 부모 앞에 자신의 진실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때 부모와 자식은 하나가 될 수 있다. 그래야 나다운 사람으로 세상을 마주할 수 있고 당당히 기죽지 않고 살아간다.

뒤쳐지는 자식이 안타까워 사랑이라는 이름을 걸고 아이들을 닥달하고 혼내고 심지어 위협을 서슴지 않는 부모들이 많다. 아이들은 부모를 선택 할 수 없는 바 어려서는 부모 곁을 떠날 능력이 없어 고스란히 그 횡포들을 받아안아야 한다.
어린 시절 내내 길게 이어지는 부모의 일방적이고 강압적인 태도는 아이가 어른이 되여서도 이름 모를 분노와 고통을 안고 살아갈 수 있다.타협적이고 소심한 성격을 가진 그들은 남에게 잘 베풀고 인정받으려고 무척 노력하면서 살아가는 어른으로 거듭난다.
      
하루만에 급히 떠나가는 작은 아들의 뒤모습을 통해 할아버지가 큰 아들에 대한 무언가를 많이 느낀다면 참 좋았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연변문학 2021년7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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