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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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딸과 립스틱
2020년 08월 10일 13시 22분  조회:525  추천:0  작성자: 하얀 진주
엄마와 딸과 립스틱
김영분
 
원래 나는 립스틱을 많이 갖고 있지 않았다. 고작해야 두 세개였다. 안방 화장대에 두개 세워놓고 나들이 가방에 하나 넣고 다녔다. 나들이 가방이라 해봐야 한번 들었다 하면  2,3년을 꾸준히 메고 다니는 메인가방이였다. 사무실 갈 때나 친구들 만날 때나 심지어 동네 잔치집에 갈 때도 바꿔 메지 않았다. 그러니 립스틱도 그 가방 속에 고히 누워 나를 잘 따라다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지고 있는 립스틱을 꽁무니가 나올 때까지 바르려면 무척 힘들었다. 발라도 발라도 그 자리에 빨간 쫑대가 자꾸 솟아 올라왔다. 가방 바꿔 멜 즈음에는 지겨워서 그리고 시간이 너무 오래 지나 류통기한이 걱정되기도 하여 시원섭섭한 마음을 달래며 아무 곳에나 버렸다. 그리고 또 새로 하나 장만해서 오래오래 들고 다녔다.

헌데 우리 딸애가 중학생이 되면서 립스틱 풍년을 맞았다.
댄스학원을 다니는 딸애가 화장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딸애는 일주일 내내 학교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몸을 격하게 뒤흔드는 걸로 푸는지 몇 해 째 꾸준히 다니고 있다. 춤치인 나를 생각하면 티비에서나 볼 수 있는 춤들을 어떻게 내 딸이 저리 현란하게 추고 있는지 허벅지를 꼬집어 그 진가를 가리고 싶은 생각이 불쑥불쑥 들기도 했다.
청도의 12월은 송년회의 거대한 무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풍에 우리 딸애도 12월내내 토요일이 네 번만 있어서 다행이지 아니면 열번도 넘게 공연하러 다닐 번했다. 우리 딸애가 다니는 댄스학원 원장이 안면이 넓어서 꽤나 뜨르르한 단체 송년회에는 모두 초대를 받아 하이라이트로 춤 공연을 하고 있다.

그 덕에 딸애는 12월의 토요일만 되면 립스틱을 짙게 바르고 공연복을 할랑하게 차려 입고 겉에는 두터운 롱패딩을 얼추 걸치고 완연히 연예인인양 이 모임 저 모임의 송년회장에서 걸그룹의 한 멤버가 되여 춤사위를 선보인다. 어떤 날에는 두 타임을 출 때도 있었다.

그래서 우스개로 너 연예인처럼 바쁘구나 하면서 농을 치면 앳된 얼굴에는 간만에 어른처럼 화장을 해서 흥분한 것인지 웃음이 찰랑거린다. 그 와중에 빨간 입술을 오물거리면서 립스틱을 한번 슬쩍 덧바르는 것도 잊지 않는다.

나와는 전혀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는 딸애가 부러울 때가 많다. 내가 초중을 다닐 때는 뻐꾸기도 왔다가 울고 갈 만큼 화장이라고는 할 줄도 모르고 생각도 못할 일이였다. 소같이 벌어서 쥐같이 써야 했던 부모의 살림살이 만큼이나 마음이 곤궁했던 시절에는 반반한 옷이라도 한벌 있으면 정말 한학기 내내 입고 다녀야 할 지경이였다. 멋이 무엇인지 모르고 자란 그 때, 옷매무시나 화장보다는 잘 먹고 잘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더 절절했다. 그 소박한 품성이 사회생활을 하고 결혼 후까지 이어졌다. 녀학생으로 살 때나 녀인으로 살 때나 곁눈질 한번 하지 않고 목표만을 뚫어지게 쳐다보면서 앞으로 달릴 줄 알았지 멋부릴 줄 모르고 화장이 뒤전인 것은 둔한 호수가 좀처럼 잠에서 깨지 못하 듯 파문이 일지 않았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그 무드없는 몸뚱이가 아이를 둘 키우면서 옆으로  신나게 퍼져 십년 째 살 빼기에만 맹세를 거듭하였다. 뚱뚱해진 몸에 멋을 부리려니 정말 호박에 금을 그어 수박이 되려는 속셈 같았다. 멋도 없이 싱겁기만 했다. 화장도 잘 할 줄 몰라 연하게 비비크림 바르는 데까지만 하였다. 찐하게 분장하여 주위 사람 놀래우는 일은 별로 내키지 않았다.
초중을 다니고 있는 딸애는 댄스공연을 시작하면서 립스틱에 눈길을 돌렸다. 처음에는 립스틱으로 시작된 화장품 사재기가 이젠 제법 규모를 갖췄다. 기초화장품으로 부터 비비크림, 아이새도까지 여러개 갖췄다. 공연은 1년 중 12월에 네번 하고 나면 거의 찾는 연회자리가 없는데도 딸애의 화장품 사재기는 끝이 날 줄 몰랐다.

점차 댄스 학원 갈 때도 립스틱을 바르고 다녔다. 토요일 댄스학원을 가기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나 화장품을 즐비하게 늘여놓고 꼼꼼히 바르고 찍는다. 부모 눈을 피해 은밀히 하던 화장은 이젠 수면우로 피여오른 련꽃처럼 자연스럽다. 립스틱으로 곱게 마무리 하고 나서 두 입술을 아래우로 탁탁 털고는 아주 뿌듯하게 웃어보이곤 하였다. 공연을 위한 화장인지 화장을 하고 싶어 댄스를 배우는지 야릇하게 웃고 있는 딸애의 그 심보가 궁금할 지경이였다.

그러는 딸애를 나는 저지하고 싶지 않았다. 초중 3학년의 힘들고 팍팍한 공부 압력을 자기만의 방법으로 푸는 것 같아서 내키지 않았지만 눈 감아주기로 했다. 멋 부리는 것도 하루 아침에 되는 일이 아니라는 걸 나는 꽤나 긴 세월 몸소 체험했다. 공부에 매진할 시기이지만 그와 동시에 연한 화장에서 느끼는 소소한 설레임을 보뚝 막 듯 막아나서기 싫었다. 딸애가 정말 아름답게 청춘을 색칠할 수 있기를 바랐다. 나의 청춘은 색바래고 수수한 흑백사진이였다면 딸애의 청춘은 풍성하고 알록달록한 채색사진이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튼튼한 뿌리와 흐느적 거리는 가지가 골고루 자라날 수 있는 그런 청춘이기를 바랐다. 그리고 련습되고 훈련된 설레이는 마음을 품고 앞으로의 생활을 쭉 밀고 나가기를 바랬다.

살아오면서 늘 마음이 무겁고 허전했던 것 같았다. 나는 딸애의 야금야금 화장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그 원인을 조금 알았다. 지치고 지루한 공부시간 외에 서툰 화장을 끝내고 나름 뽀얀 얼굴을 들여다보면서 만족해하고 행복해하는 딸애의 마음에는 자신을 사랑하고 주위 사람들도 사랑하는 느낌이 감출 수 없는 기침소리처럼 새여나왔다.
 작은 화장으로도 설레이는 그 마음, 설레인다는 것은 바로 마음이 자주 움직인다는 것이다. 나는 잠자는 호수를 잠에서 깨워 파문을 일구고 싶었다. 덩달아 화장을 진지하게 마주하기 시작하였다.

나의 어린 시절과 청춘은 너무 곤궁했던 나머지 태양을 따르는 해바라기 같은 따뜻한 마음이 생기지 않았었다. 살뜰하고 아기자기한 시간들이 련습되지 않아  주위가 늘 한산하게 비춰졌다. 시큰둥하고 궁상맞게 청춘을 걸어오면서 마음에 울타리를 치고 빗장을 질렀다. 어질게만 살았다는 것은 행복하게 살았다는 뜻이 아니였다. 특히 멋 부리기는 녀자의 전용물로서 자신을 사랑하고 나아가서 이 세상을 사랑하는 태도라는 것을 알았다.

아름답기 위한 길에 나도 뒤늦게나마 발 벗고 나섰다. 몸무게를 줄이려 열심히 운동을 하기도 하고 식단도 야채와 과일의 비중을 늘렸다.피부관리도 게을리하지 않은 결과 흘러간 청춘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예전보다 얼굴이 많이 환해졌다. 립스틱 바르는 회수도 많아졌다. 그러고보니 립스틱도 어느새 바구니 속 매일 모으는 달걀처럼 많아졌다. 딸애가 쓰다가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꽤 괜찮은 립스틱들을 나에게 슬쩍 윙크를 하면서 양도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늘어난 립스틱이 어느날 아침 문뜩 보니 일여덟개는 족히 되여 화장품 테이블우에 오밀조밀 수줍게 서서 주인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덕분에 나도 컬러를 골라가며 다채롭게 입술을 발라볼 수 있게 되였다.
    
립스틱을 짙게 바른 날은 왠지 신이 났다. 발걸음도 사뿐해졌다. 뻣뻣하던 근육들도 와인 한잔 걸치고 실없이 웃어대는 얼굴표정처럼 푸근하게 풀어졌다.
 
립스틱은 이제 문을 나서면 주머니에 꼭 넣고 다녀야 하는 필수품이 되였다.그거 하나면 마음이 괜히 든든해졌다. 친구를 만나러 가는 도중에도, 회사에서 잠간 화장실을 다녀온 사이에도, 운전을 하고 있는 차안에서도 나는 이젠 립스틱을 가끔 바른다. 그리고 자신에게 만족하는 우리 딸애처럼 흡족하게 거울을 보면서 웃어본다.
창밖의 풍경도 흐뭇하게 바라본다. 바람도 락엽도 가을편지로 보인다.
밋밋하고 슴슴한 날은 이젠 다 지난 것 같다. 그런 날에는 립스틱으로 붉게 발라줄거니까.
설레이는 이 기분,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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