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张学奎文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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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장학규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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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8월 31일 20시 32분  조회:665  추천:0  작성자: 비전
단편소설

가 장 자 리

장학규



  (왜 아직도 안 오나?)
  란희는 가게밖으로 자꾸 눈길이 간다. 잎이 볼썽 사납게 몽땅 떨어진 벌거숭이 가로수의 나무가지가 간단없이 시선을 가린다.

  가게 앞 거리는 해변까지 쭉 이어졌다. 그래서인지 이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은 대개 바다를 오가는 사람들이다.

  란희는 그 사람들속에서 불쑥 누군가가 가게로 뛰여들기를 고대하고 있다. 남편이다. 아침에 나간 남편이 점심참을 훨씬 넘긴 지금도 돌아오지 않고있다. 요행으로 남편이 무척 기다려지는게 한편으로 신기하기도 했지만 그러나 그녀는 지금 정말로 애타게 남편을 기다리고있다.

  (허참, 세상을 진짜로 오래 살고볼판이네.)
  란희는 자조하듯 머리를 흔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옆에 있어봤자 밥축이나 내는외에 아무런 도움도 안되는 남편이란 인간때문에 반나절 남짓 뇌신경에 바이러스가 감겨든게 억울하기도 했다.

  언제든 한번은 꼭 저 인간과 결판을 내야겠다고 마음 먹은지 오라다. 도무지 남편이라고 믿고 살아줄 방법이 생각나지 않는다. 허우대가 멀쩡한 사내가 언제나 어깨를 옹송그리고 다니는것이 꼴불견이다. 항상 내의를 올려서 시커먼 배꼽이 드러나는것도 밉상이다. 밥상에 아무거나 내키는대로 음식이라고 차려놓아도 좋다궂다 투정없이 왕창 먹어주는것도 많이 게걸스러워 보인다. 욕해도 헤식은 웃음으로 넘어가고 다그쳐도 좀체로 세상 급한줄 모른다.

남편은 계속 자기 멋대로 산다. 도대체 고쳐지지 않는다.

  아무것도 아닌 남편을 란희는 지금 속으로 윽윽 벼르면서도 조바심이 타서 기다리고있다.

  란희네가 인파로 북적이는 이 노른자위에 슈퍼를 낼수 있은것은 순수하게 우연적이였다. 마침 그무렵 거리를 새로 정비하게 되면서 길거리를 파헤치고 건물앞에는 비계를 가설하게 되였다. 량옆의 상가들은 모두 아우성질하고있었다. 너나없이 출타가 새로운 이슈로 부상한 가운데 란희는 가게를 급처분하려는 주인으로부터 시세보다 많이 낮은 가격으로 가게 하나를 양도받을수 있었다. 그리고 분식점을 하자던 계획을 변경하여 전문 한국상품을 판매하는 슈퍼를 개장했다. 불편한 거리를 통해 밥 먹을러 오는 사람이 많지 않을대신 불편한 거리를 어쩔수 없이 지나치거나 살아가면서 이런저런 필수품을 구매할 사람은 꽤나 될거라는 판단이였다.

  란희의 판단은 적중했다. 주변가게들이 잠시 휴업하거나 열정이 떨어진 기회에 아침 저녁으로 줄기차게 영업을 한 덕분에 가게는 거짓말같이 흥성거렸고 2년여후 도로정비가 완전히 끝났을때는 라이벌이 없을 정도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그때로부터 집주인의 심술이 시작되였다. 처음에는 5년이란 계약기한을 취소하고 집세를 20퍼센트 올려야 한다고 강하게 요구했다. 란희는 다투다못해 계약리행을 집행해달라고 법원에 소송장을 냈다. 안경이 코밑까지 굴러떨어질듯한 법원일군은 귀찮다는듯 하품을 연달아 쏟아내며 돌아가서 심리날자를 기다리라고 심드렁하게 말했다. 그리고 꿩 구워 먹은 자리로 다시 소식이 없었다.

  집주인은 더욱 기세가 올랐다. 셔터를 새로 달아야 한다면서 사람 여럿을 데리고 와서 출입문을 며칠씩이나 봉해버렸다. 경찰에 신고하니 이번에는 근사하게 생긴 경관이 끄나불인듯한 사복차림의 젊은 친구 하나를 끌고 왔다. 계약서를 보고 신분증을 확인하고 현장을 사진 찍은다음 돌아가더니 역시 가타부타 뒤말이 없었다.

  결국 집주인의 일방적인 리그에 란희네는 꼬리를 내리지 않을수 없었다. 요구대로 집세를 20펴센트 올린다는 새 계약서에 서명했다. 승리자의 웃음을 게바른 집주인의 몰골이 밤마다 떠올라 잠을 잃기가 십상이였다. 시도때도 없이 한밤중에 일어나 흰 종이에 검은 글씨, 그리고 빨간 지장이 찍혀진 계약서를 보면서 저게 정말 구속력을 가지고나 있는것인지 그저 의구심을 버릴수 없었다.

  아닌게 아니라 집주인의 속셈은 그게 아니였다. 속아지 비뚠 넘은 주둥이도 비뚤고 행실도 비뚠다고 기어코 란희네를 쫓아낼 궁리였다. 행적도 없던 양아치들의 소란도 그무렵부터 성화를 부렸고 챙이 큰 모자를 쓴 사람들도 그후부터 뻔질나게 들락거렸다.

  그제는 공상국 사람들이 들이닥쳤다. 한꺼번에 다섯명씩이나 몰려들어오더니 인사수작도 없이 무작정 선반우의 물건들을 마구 뒤적거렸다. 물건을 들고 대충 들여다보는듯 하더니 그대로 바로 바닥으로 던져버리기 시작했다. 직원들이 놀라 구석쪽으로 몰려가 엉켜섰고 손님들은 좋은 구경거리를 만난듯 우야 몰려들었다. 그중 번대머리를 한 작달막한 사내가 가장 기고만장했다. 개잡은 포수처럼 으시대며 물건을 그저 던지는게 아니라 아예 메치고있었다.

  "이게 무슨 짓거리예요?"
  란희가 충격속에서 깨여나 죽기내기로 앞을 막고 나섰을때는 매장안은 이미 아수라장이 되여버린지 한참이였다.

  "이건 깡패짓보다 더한 강도짓입니다. 고발할거예요. "
  그 말에 번대머리 난쟁이가 머리를 돌려 노려보더니 문득 발을 들어 바닥의 물건을 콱 내리밟았다. 그건 마침 신라면이였다. 면덩이가 발밑에 밟혀서 찌찍찍 소리내는게 귀청에 아프게 들려왔다.

  "어디든 고발해봐. 외국식품은 중국문으로 된 설명문이 있어야 한다구. 국가규정이야. 여봐 쑈왕, 이 집에 벌금 때리고 영업허가서 몰수해!"
공상국 사람들은 들어올때처럼 우르르 몰려나갔다.

  대충 시나리오는 직감적으로도 얼마간 잡혀왔다. 아웃사이더들이 흔히 당하는 조난이였다. 거기에 토를 달아서는 절대로 답이 있을수 없다. 인저리타임이 필요한 시점이였다.

  란희는 바로 남편을 호출했다. 이런 대목에 남편을 캐스팅해봤자 제대로 될 일이 만무하겠지만 그래도 머리에 떠오르는 사람은 남편이 유일했다. 언제나 그랬듯이 란희의 속이 삶아지고 다시 구워져서 배배 탈때에야 남편은 시뻘겋게 충혈된 눈을 하고 비칠비칠 돌아왔다.

  "방법 없지. 돈 써야지."
  남편이 돌아와서 한 말이 단 이 한마디였다.

  그리고 이틀씩이나 갑자르다가 겨우 오늘 아침 란희한테서 돈을 받아 나갔다. 뭐 친구의 사돈이 잘아는 한족친구가 공상국 사람들과 친하다고 하면서 술 한잔 잘 내면 될거라고 했다. 그렇게 나간 남편이 하루종일 전화 한통도 없다.

  사실 란희도 인젠 모가 다 갈리여 더이상 정 맞을 자리도 없다. 벌써 오래전부터 내릴대로 내려 더이상 내릴 꼬리도 없다. 돈 내라면 돈 내고 술 사라면 술 사는 컨셉에 많이 익숙해졌다. 양심에 털난 인간들과 마주하기 싫어 남편을 내세우는데 불과했다.

  그런데 그 남편이 여직 돌아오지 않고있다. 난생 처음 꽤 큰 돈을 쥐여주었다. 전에도 잔돈을 주어 밖으로 내보내면 처리하라는 일은 처리하지 않고 술을 먹는 경우가 더 많았었다. 그런데 이번은 그게 아니였다. 액수도 많았지만 그보다 발등에 떨어진 불을 당장 꺼야했다.

  (이 인간 오늘 오지만 않아봐라. 정갱이 분질러놓던지 일을 낼테야.)
  란희는 도적이 개꾸짖듯 속으로 벼르고 또 별렸다. 남편이 당장 유기질 비료로 화한다해도 아까울게 없었다. 섭섭할것 같지도 않았다. 그러나 돈은 정말 걱정되였다. 남편이 그 돈을 어떤 엉뚱한 넘들과 술 하면서 다 써버리면 큰 일이다. 돌이켜보면 이 일년은 바람 잘 날이 거의 없어 고추가루 몇 주먹 판것 같지 않았다.

  늦겨울 해가 어둑해질 무렵 문이 벌컥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출입문을 등지고 물건을 정리하던 란희는 그 자세 그대로 꽥 소리 질렀다.

  "뭐 하느라고 이제 왔어? 엉? 지금 한가하게 풍월 읊을때에요. 에쿠에쿠, 당신도 남편이라구 믿구 사는 내가 어리석지."
  그래도 대답이 없다. 남편은 항상 그 식이 장식이다. 언변이 없어서가 아니라 아예 그녀와 말 섞기를 거절하는 타입이다.

  "왜 말이 없어요? 한번 핑계라도 대야 하는게 아니예요."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란희는 어떤 심상치 않은 예감이 들어 본능적으로 몸을 돌렸다.

  들어온 사람은 남편이 아니였다. 출입문에는 남편 대신 웬 작달막한 청년이 부자연스레 서있었다. 많이 야윈 몸매였지만 근육질은 탄탄해보였고 특별히 눈길이 사냥개처럼 예리하고 날카로웠다. 아래우 옷은 누가 던진걸 아무렇게나 주어입은듯 매치가 안되는 차림새였다. 오래동안 먼 거리를 허우허우 떠돌아온 모습이였다. 피기 없는 얼굴에는 지치고 허기진 흔적이 사뭇 무겁게 찍혀있었다.

  란희는 괜스레 두 손을 비비면서 잘 안되는 중국말을 버벅였다.

  "이거 미안합니다. 난 애 아버지인가 해서요. "

  그러나 손님은 그때까지도 입을 열듯말듯 서성거렸다. 주위 환경에 적응되지 않는듯 두리번거리는양이 무척 의심스러웠다. 앞에 선 란희를 바라보기보다 문밖을 더 의식하고있는 모양이였다.

  "배 고파요. 돈 10원만 주세요."
뜻밖에도 청년은 또렷한 조선말로 중얼거렸다. 란희 앞으로 내민 손은 바싹 말라 가죽만 남았고 먼지와 때로 얼룩져있었다.

  "조선족이네요?"
  아마도 슈퍼창문에 스티커로 써붙인 조선글을 보고 찾아들어온 모양이였다. 란희는 똑마치 자기 일처럼 생각되여 가슴이 찡해났다.

  "배 고파요. 밥 한그릇 사먹게 돈 10원만 주세요. "
손님은 인정에 앞서 허기진 배가 더 급한듯 같은 말을 다시 곱씹었다.

  "아, 이 정신 봐. "
  란희는 부랴부랴 주머니를 뒤졌다. 거짓말같이 10원짜리 대신 20원짜리 한장이 겨우 들어있었다. 청년은 어줍게 내미는 그 돈을 덥석 잡아쥐더니 허리 굽혀 인사 올리기 바쁘게 문밖으로 나섰다.

  "잠간만."
  저 사람을 절대로 저렇게 보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려염집에서 정조비 세우겠다는 욕심은 없었다. 란희도 한때 정말 어렵게 살았었다. 그래서 가난이 창문으로 들어오면 행복은 대문으로 도망간다는 도리를 잘 알고있었다. 란희는 지금도 눈보라가 윙윙 휘몰아치는 겨울날 밤에 젖먹이 딸애를 둘쳐엎고 빚군들을 피해 정든 고향을 떠나던 옛일이 눈에 선하다. 아마도 남편에 대한 원망은 그때문에 더한지도 모른다.

  청년은 갑자기 몸을 홱 돌렸다. 날카로운 눈에는 경계의 빛이 선했다. 어느새 주먹이 불끈 쥐여져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순간이였다. 청년은 불시에 머리에 손을 얹으며 휘청거렸다. 란희는 얼른 다가가 청년의 팔목을 잡았다.

  "얼른 들어가요. 추운데 객지에 나와 고생 얼마 많겠어요."
  청년은 만사를 포기한듯 순순히 끌려왔다. 란희는 매대앞으로 걸상을 갖다놓고 청년을 주저앉혔다. 연후 급히 식품선반쪽으로 달려가 신라면 세봉지를 가져왔다. 허기를 가장 빨리 달래주는것이 라면이다. 란희네도 시간이 없거나 식사시간이 늦어졌을때면 라면을 끓여먹군 했었다.

  라면을 끓이는 그 짧은 시간에도 청년은 잠이 흠뻑 들었던 모양이였다. 란희가 가볍게 소리쳐 부르니 불에 덴듯 몸을 그대로 훌쩍 솟구쳐 일어서는데 례사로운 동작이 아니였다. 당장 란희의 목을 부러뜨릴듯 세모눈을 하고 쏘아보았다. 다음 순간 구수한 라면 냄새를 맡았는지 다시 맥없이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식어요. 어서 먹어요."
  란희는 속이 섬뜩해왔다. 문뜩 이 사람이 그저 단순히 배고픈 사람만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좁은 가슴에 하많은 사연을 깊게 품고있는 사람이 분명했다. 그 사연은 함부로 다쳐서는 안되는것이였다. 란희는 더이상 청년과 말을 주고 받을 필요가 없다는것을 심심히 느꼈다.

  세봉지의 신라면이 눈 한번 깜짝할 사이에 청년의 배속에 들어가버렸다. 게눈 감춘다는 말이 실감으로 다가왔다.

  "정말 고맙습니다. "
  청년은 오래간만에 입을 열었다. 허리를 굽혀 큰 인사를 올리더니 다시 문밖으로 나갔다. 아까보다 발걸음이 많이 가벼웠다.

  란희는 더는 만류하지 않았다. 자칫 감정의 덧에 걸려 큰 사고를 저지를번 했다는 안도와 더불어 어쩌면 자신이 대목마다 주견을 잃고 한없이 약해지는지 그저 얄밉기만 했다.

  (좀 독해져야 하는데!)
  란희는 아무래도 오늘과 같은 결과가 나올줄 알았더라면 당초에 집주인과 대판 싸웠어야 하는거라고 매일매일 후회하고있다. 그러나 후회란것은 아무리 일찍해도 이미 늦은것이다. 그뿐 아니라 후회할 일도 매일매일 생겨나고있었다. 공상국 사람들과도 그랬다. 물건들을 막 바닥에 내팽개칠때부터 대들어서 야단했어야 했다. 설명서가 없으면 함부로 남의 물건을 바닥에 던지고 발로 짓밟을수 있는건가? 법은 법대로 집행하면 되지 않는가. 그런데 그때 왜 참았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다혈질인 자기가 너무 쉽게 포기란것을 하는거 같았다. 아니, 어쩌면 자신의 몸속에 대세에 고스란히 순응하는 유전인자가 깊숙히 자리를 틀고있는지 모른다.

  실지 번대머리 난쟁이가 사람들을 이끌고 왔을 때 란희는 이건 례사 검사가 아니라 자신을 직접 과녁으로 삼은것이란것을 육감적으로 느꼈다. 뒤간에 든건 상전인데 하인이 똥구녕에 힘을 준다고 번대머리 난쟁이가 지랄 용천하는데는 집주인의 사주가 있는게 분명했다. 그런데도 란희는 막무가내로 체념만 하고있잖은가?

  (정말 당하기만 해야 하는가.)
  어느새 거리에는 가로등이 켜지고 아파트에도 하나둘씩 전등이 켜지기 시작했다. 아직 너무 어두운 편은 아니지만 저녁 식사 시간이 점차 다가오면서 거리에는 행인들이 뜸해졌고 대신 오가는 차량들로 북적였다.

  아무래도 남편이 공상국 사람들을 모실대신 어느 어중이떠중이와 더불어 생일잔치를 베푸는게 틀림없을것 같았다. 더위 먹은 사람처럼 팽창한다 하면 바로 정신을 잃어버리는 남편이다. 이렇게 한없이 기다리는건 무리였다. 닭 잡아먹고 오리발 내밀기전에 불러와야 했다. 란희가 핸드폰을 꺼내 버튼을 누르는데 슈퍼문이 조용히 열리면서 누군가 민첩하게 들어섰다.

  나간지 한시간도 채 안되는 아까 그 청년이였다. 누르끼한 얼굴은 여전히 무표정했다. 그러나 눈길에는 살기가 다분했다.

  란희는 청년이 다시 돌아온 리유를 묻지 않았다. 청년의 고집스러운 눈길이 무엇인가를 암시하고있었다. 속이 철렁 하고 내려앉았다. 어렸을적 배운 동곽선생이 불현듯 떠올랐다. 란희는 기척없이 뒤로 크게 몇걸음 물러섰다.

  청년은 문을 등지고 주춤 멈춰선채 란희를 쳐다보았다. 두 사람 사이에 깊은 침묵이 흘렀다. 게다가 슈퍼안의 전등도 켜지 않아 분위기가 한결 무겁고 침침했다. 주저하는듯 손을 주머니에 넣었다 꺼냈다하던 청년이 한참만에 가벼운 목소리로 물어왔다.

"위해에 가려는데 차비가 없어요. 한 100원 빌릴 수 없습니까? "

  란희는 잠시 침묵을 지켰다. 대뇌는 빨리 돈을 주어 청년을 내보내라고 지시했지만 가슴은 너무 서둘러서는 안된다고 충고하고있었다. 청년이 호주머니에서 손을 꺼내는 틈을 타 슬쩍 훔쳐보니 거기에 쇠붙이 같은것이 들어있는지 딱딱하게 보였다.

  계산대는 출입문쪽으로 있었다. 그리고 돈은 카운터안의 서랍에 있었다. 청년이 한눈에도 들여다볼수 있는 위치였다.

  "거기 계산대안의 서랍에 있으니 절로 꺼내세요. 저는 전등을 켜고 물건들 좀 정리해야겠네요. "
란희는 대수롭지 않다는듯 가볍게 말하면서 자연스럽게 벽쪽으로 다가가 스위치를 눌렀다. 전기가 들어오면서 삽시간에 집안이 환하게 밝아왔다. 란희는 자기가 이렇게 침착하리라고는 스스로도 생각지 못했다.

청년은 여전히 주저하는 눈빛이였다. 미동도 하지 않은채 황당한듯 믿어지지 않는 눈으로 란희를 지켜보고 있었다.

"한가지 청이 더 있습니다. 사실 저는 어디 가서 잘데도 없습니다. 오늘 하루밤만 여기서 신세지면 안될까요?"

란희는 말문이 막혀버렸다. 란희로서는 아무렇게도 대답할수 없는 요구였다. 안된다고 거절하면 란희는 이 집에서 다시 나갈수 없게 될것이다. 그렇다고 허락할수도 없다. 청년이 란희를 고스란히 내보낼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 청년과 슈퍼에서 하루밤을 자야 한다는 말이 된다. 저도 모르게 온 몸에 소름이 끼쳤다. 드디여 올것이 온셈이다.

다시 침묵이 흘렀다. 청년은 고집스레 출입문을 등진채 한발짝도 움직이지 않았고 란희는 란희대로 쉽사리 움직일수 없었다. 그 어떤 불필요한 움직임도 엄청난 결과를 몰아온다는것을 란희는 잘 알고 있었다.

"하루밤이면 됩니다. "
"한마디 물어봅시다. 왜 하필이면 여기죠?"
"이곳에 아는 사람이라고는 한사람도 없습니다."
"그래서 아는 사람이 봉이 되여야 하는겁니까?"

란희는 저도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졌다. 마음 깊은 곳에서 다시 한번 왜 어째서 무엇때문에 기를 죽이며 살아야 하냐고 물어왔다. 그 물음은 충격파가 큰것이여서 란희의 자그마한 몸체가 도무지 억제할수 없는것이였다. 잠간이였지만 란희는 자기가 히스테리가 들린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미처 아차할새도 없이 분수처럼 터져나간것이다.

청년은 눈이 휘둥그래진채 머뭇거렸다. 손이 뒤통수로 올라갔고 눈길이 느슨하게 풀려지기 시작했다. 한동안 머리를 긁적이던 청년이 싱거운듯 카운터에 기댔다. 가까이에 있는 허락한 돈도 꺼낼념을 않고 무엇인가 깊은 생각에 잠겨있는 모습이였다.

란희는 운신의 폭이 넓어졌다. 아까 청년이 먹다남은 라면국물을 화장실에 들고가 버려도 청년은 별다른 행동이 없었다. 잠간이지만 란희는 화장실 문을 안으로 잠그고 110에 구조를 요청할가고 생각해보았다. 안되는건 아닐것 같았다. 청년이 화장실 문을 부시는 시간이면 얼마든지 경찰이 달려올수 있을것이였다. 그러나 왠지 란희는 그대로 돌아나와 다시 비자루를 찾아들고 바닥 청소를 시작했다. 경계심을 늦춘 청년에게 발작할 기미를 줄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위험이 다시 다가올때 화장실로 피해도 넉넉하다는 자신이 생겼다.

"이러면 어떨가요? 제가 200원 드릴게요. 3~40원이면 괜찮은 려관에 들수 있어요. 차비 100원을 쓴다해도 60여원이 남으니 그 돈으로 며칠은 대수 넘길수 있잖아요. "

란희는 오른손에 비자루를 단단히 잡은채로 청년에게 다시 말을 걸었다. 돈액수는 의식적으로 적게 말했다. 많은 돈을 주겠다고 먼저 말하면 그녀가 겁을 집어먹었다고 의례 짐작할거 같았다. 사실 그랬지만 최저로 청년이 분에 넘친 요구를 못하도록 미리 막아야 했다. 청년은 고민에 빠진듯 눈쌀을 찌프리고 아무 말도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여기서 하루밤 주무세요. 저는 집에 가 자구요. "
아차 했지만 순간 어떻게 그런 말이 나갔는지 스스로도 알수 없었다. 조심조심한다는게 어느결에 마음의 탕개가 풀어진 모양이였다.

청년은 갑자기 제정신이 돌아온듯 카운터에서 몸을 일으켰다. 날카로운 눈매에서 다시 한번 살기가 번쩍이는것이 보였다. 란희는 비자루를 쥔 손에 힘을 주면서 천천히 뒤걸음쳤다. 그사이 총각의 몸도 카운터를 떠나 한걸음 앞으로 나와있었다. 총각이 한걸음만 더 앞으로 내디디면 란희는 냉큼 몸을 돌려 화장실로 뛰여들어갈 생각이였다.

바로 이때 슈퍼문이 활짝 열리며 남편이 세 친구와 더불어 왁짝 고아대며 들어왔다. 술냄새가 진동했다.

청년은 흠칫 놀라면서 옆으로 피해섰다. 어느새 오른손이 다시 주머니에 깊숙히 들어가있었다. 그런줄도 모르고 남편은 휘청이면서 청년과 란희 사이에 끼여들어섰다.

"이 사람 누구야?"

청년의 매서운 눈길이 다시 한번 란희의 얼굴에 꽂혔다.

"손님이예요."
란희의 차분한 대답에 청년은 눈이 데꾼해졌다. 청년은 망연자실한채 조심스레 몸을 돌리더니 바로 미꾸라지처럼 남편이 들어오면서 미처 닫지 않은 출입문을 빠져나갔다.

란희는 어디서 그런 용기가 생겼는지 한달음에 달려가 카운터 너머로 손을 뻗쳐 100원짜리 지폐 한장을 서랍에서 꺼내 뒤따라 나갔다.

청년은 어느새 한달음에 거리를 가로질러나가고있었다. 금방까지도 침착하고 당당하던 모습은 가뭇 사라지고 허둥지둥 앞만 바라고 잰걸음을 놓고있었다.

"여보세요."
란희도 두려움없이 거리를 건너갔다. 청년은 뒤에 다른 사람이 따라나오지 않은것을 눈치챈 모양으로 걸음을 멈추고 돌아섰다.

"아까 물건 사자던 돈이예요. 가져가세요. "

슈퍼밖으로 남편과 남편의 친구들이 나와서 영문을 모르겠다는듯 이쪽을 바라보고있었다. 그러던말던 란희는 얼굴이 하얗게 질린 청년앞으로 다가가 돈을 청년의 손에 쥐여주었다. 모름지기 청년의 손은 가늘게 떨고있었다. 그러나 청년은 돈을 내치지는 않았다. 돈이 든 손으로 주먹을 하더니 한결 점잖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돌아서는 청년의 입에서 억 하는 흐느낌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야수의 울부짖음에 다름아니였다.

란희는 청년이 멀리 사라질때까지 그 자리에 꼼짝않고 서있었다. 남편과 남편의 친구들도 웬 영문인지 모른채 슈퍼밖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란희는 남편이 늦은 리유를 거의 알것 같았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가 밖에서 아니 새란 법은 없을것이다. 이제는 남편이 나가서 공상국 사람들을 수습했냐가 별로 관심거리가 아니였다. 어쩌면 해결하고 란희더러 한번 보라고 시위할러 온지도 모른다. 아니면 이런저런 구차한 변명을 하려고 친구들을 대동하고 왔을지도 알바없다. 아무튼 이젠 그게 대수롭지 않다. 왜 거기에 집착했던지 자신도 알바 없었다. 애초부터 누군가를 믿는다는 자체부터 잘못된 일인지도 모른다.

  남편네들은 아무래도 밤새워 술놀이를 할 잡도리인거 같았다. 아무렴 그것도 괜찮겠다싶었다. 마시겠다면 마시게 하고 먹겠다면 먹도록 해주자. 그게 그들이 사는 재미인데야 어쩐단 말인가. 고작 그 정도가 락이고 삶의 의미인데 만족주면서 지나보내자. 앞으로 난제는 스스로 해결하는것이 숙명이라고 생각하니 마음도 한결 갈아앉고 넓어졌다.

  란희는 천천히 거리를 되돌아 걸어왔다. 아무렴 지옥같은 저런 남편하고도 여직껏 이겨내면서 살아왔을라니 세상에 못 넘어갈 일이 어디 또 있을가싶었다.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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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제목 날자 추천 조회
11 살어리민박 2014-08-31 0 846
10 석노인의 전설 2014-08-31 0 7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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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겨울변주곡 2014-08-31 0 662
7 사거리 2014-08-31 0 10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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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노오란 동그라미 2014-08-31 0 652
4 네모칸 하늘 2014-08-31 0 724
3 갈대의 뿌리는 얼마나 깊을가 2014-08-31 0 641
2 가장자리 2014-08-31 0 665
1 129번 2014-08-31 0 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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