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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광인 련재작ㅣ중국혁명 속 우리 겨레 혁명가들(관내편) - 80
조글로미디어(ZOGLO) 2020년5월20일 15시16분    조회: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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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과도 원래의 보병과, 정치과, 특과로부터 퇀정위훈련반, 상급간부대(上级干部队), 사호대(司号队), 측량반 등으로 늘어났으며 학생양성방향도 홍군의 중고급 군정간부 양성으로 잡고 홍색수도 서금 위수과업도 맡아나섰다. 학교시설과 규모가 크게 늘어남에 따라 관련 인재들도 많이 수요되였다.
 
홍군학교의 이 같은 현실에서 중앙혁명군사위원회에서는 홍3군단 포병위원회 책임자이고 포병영 영장인 조선인 무정을 홍군학교 포병과 주임으로 소환하여 홍군부대의 포병건설에 힘다할 것을 바랐었다. 지금에 와서 그 소환시간을 정확히 밝히는 자료가 보이지 않지만 류백승이 새로운 교장으로 부임되여 온 1932년초 직후라고 추측할 수 있다.
 
감주진공전이 2월초에 시작되여 33일간이나 걸렸으니 감주진공전이 결속된 다음일 것이다. 최정무가 1932년 봄에 홍군학교에 와서 학습할 때 무정이 있었고 채효건이 1932년 6월, 홍군학교에 갔을 때 무정이 이미 포병과주임을  맡고 있었다니 대체로 1932년 봄이라 보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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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8월 30일, 두번째 엽평 혁명사적지 답사에 이어 양씨사당을 찾으니 옛날에는 서금성내 부자묘 뒤 양씨사당(瑞金城内夫子庙后杨氏祠堂)이라고 하였지만 지금은 서금성내 중심광장 서남켠에 위치한 옛 건축물로 나타났다. 오늘날 도시구역으로 말하면 서금시 중부를 이루는 상호진 상양주민위원회(象湖镇上阳居委会)구내로서 기세가 웅장한 네 채의 거대한 사당이 련이어 일어서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동북으로 자리하고 서남향으로 앉은 양씨사당은 전체 면적만 해도 3056.73평방미터나 되는 나무와 벽돌구조 건물체로 필자 앞에 나타났다. 양씨사당이라고 밝히고 주체사당을 이루는 홍군학교 유적지의 첫채 사당은 중국로농학교 본부로 나타난다. 본부 대문 밖은 높이 2미터나 되는 담장이 일어서고 두 마리의 돌사자가 포진하고 있어 신비하고 엄엄한 기분을 안기지만 대문을 넘어서서 양씨사당으로 다가가면 내리드린 ‘중국로농홍군학교’ 간판과 ‘중국로농홍군학교본부’ 붉은 소개판, 왼쪽 높은 담장의 중국로농홍군학교 소개가 맞아주어 친절한 기분 속에 젖어들게 한다.
 
중국로농홍군학교 본부로 된 양씨사당에 들어서면 숱한 나무기둥을 이루며 일떠선 옛 사당이 펼쳐지며 그 속에서 삼삼오오 모여 마작을 놀거나 트럼프를 치는 로인들이 인상적이다. 그제날의 홍군학교는 오늘날 당지 로인들이 모여 즐기는 오락장소로 되여있었다. 그러면서도 사당의 왼쪽 벽에는 몽타쥬(剪影)를 이룬 홍군학교의 색바랜 이모저모 옛 사진들과 문자설명들이 걸려 있어 여기가 무정과 홍군음악가 최음파 소속 홍군학교임을 알려준다.
 
양씨사당의 두번째 채와 세번째 채는 ‘시성태사”(时省太祠)’ – ‘맹주태사’(孟舟太祠)로 알려지는 홍군학교 정치부 건물과 교무부 건물이지만 입구대문이 굳게 잠겨져 있어 안을 들여다 볼 수 없다. 양씨사당의 네번째 채는 ‘시태종사’(时泰宗祠)로 알려지는 홍군학교 교도부와 구락부 건물로 나타나 마음을 확 끌어당긴다. 지금은 서금시미술가협회, 홍군학교미술관, 서금서원 극본창작기지, 서금 박아(博雅)예술관 등이 공동으로 쓰는 미술관으로 되여있고, 건물내 기둥들과 천정들을 정히 붉은 칠을 하고 수건도 말끔히 하였지만 당년의 홍군학교 교원들의 사무실과 주숙지로 쓰이였음은 엄연한 사실이다.
 
홍군학교 교도부와 구락부 바로 오른쪽 옆칸이 2층으로 된 홍군학교 교장들 사무실과 교직원 숙사였음이 더욱 그러하다. 여기의 칸칸마다 민가를 이루어 시골마을을 련상시키지만 2층으로 이어진 나무계단을 밟으며 아래 우를 오르내리노라면 홍군학교 교원들, 그 속에 섞인 조선인 무정과 최음파의 숨결소리가 들리는듯 싶고 어디에선가 막 달려나올 것만 같다.
 
3
 
이곳 서금 양씨사당 관련자료에 따르면, 양씨사당은 명 만력무신(明万历戊申) 년간인 1608년에 양씨들간의 화목과 우애를 위해 지어진 옛 건축으로서 네채의 건축물 실내와 천정 모두가 아름드리 나무기둥들과 견고한 나무들로 정제하게 지어져 400여년이 지난 오늘도 이그러짐 하나없이 세인들 앞에 위풍당당히 나타난다.
 
양씨사당 앞은 또 수양버들 늘어진 길고 널다란 늪이다. 1998년 그 시절의 서금현인민정부는 이곳의 양씨사당을 ‘중국로농홍군학교본부유적지’(中国工农红军学校总部旧址)로 정식 비준하였고 그 이듬해 1999년에는 본부를 이루는 사당부터 나머지 세채의 사당을 홍군학교 정치부, 교도부,  교무부와 구락부로 차례로 붉은 패쪽을 걸어 보호조치를 대였다.
 
오랜 력사를 자랑하는 양씨사당은 이들 양씨종족을 위해 봉사하던 데로부터 일약 승화하여 민족을 위해 봉사하는 궤도에로 들어섰다. 홍군학교란 이 홍색력사는 옛 양씨사당에 새로운 생기와 생존의 기회를 가져다 주면서 필자한테 펼쳐져 크나큰 위안을 주었다.
 
양씨사당은 혁명의 대가정이였고 홍군학교는 혁명의 대가정이였다. 이 대가정의 일원으로 된 무정은 온몸에 샘솟는 힘을 느끼였다. 그 힘이 포병과를 잘 이끌도록 한껏 밀어주었다.
 
무정이 홍군학교로 오니 홍군학교가 자리잡은 고풍스런 옛 건물을 양씨사당이라고 한다. 바깥사람들은 홍군학교를 떠올릴 때면 서금성내 부자묘 뒤 양씨사당이라고 친절히 부른다. 네채로 이어진 건물들에 홍군학교 본부요, 정치부요, 교도부요, 교무부(훈련부라고도 함)와 구락부요 하면서 차례로 붉은 간판을 다니 제법 정규적인 군사학교다워 보인다.
 
무정은 매일 팽이돌듯 긴장히 돌아치나 그럴듯한 홍군학교를 보면 신나기만 한다. 신나는 것은 정치, 군사적으로 보는 홍군학교만이 아니다. 홍군학교 훈련부에는 조선인 문화교원 최음파와 홍군비행사로 불리우는 조선인 군사교관 진덕근이 있어 별스레 기분이 둥둥 뜬다. 홍3군단에 있을 때면 조선사람들을 보기가 하늘의 별따기더니 홍군학교에 와서는 매일 최음파와 진덕근과 어울려 돌아간다. 무정은 중국혁명과 조선혁명을 하나로 이어보면서 조선혁명문제를 진지하게 사고하기 시작하였다.
 
 
반제총동맹 집행위원
 
상기 '홍군학교 포병과 주임'에서 무정의 홍군생애에서 우리가 모르는 두가지 사실의 하나가 무정이 중앙쏘베트구역 반제총동맹 25명 대회주석단 성원의 일원이라는 것을 스치고 지난 바 있다. 이는 중앙쏘베트구역 반제총동맹 관련 연구자료들에서 상세히 펼쳐지는데 그 기본 연구자료는 채효건의 회고록중 "쏘베트구역 반제동맹"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관련 연구자료들을 헤아리면 1932년 6월 23일, 중앙혁명근거지 서금성내 한 옛 사당에서 ‘쏘베트구역반제총동맹’ 제1차 대표대회가 열리였다. 쏘베트구역반제총동맹을 ‘반제옹쏘총동맹’ (反帝拥苏总同盟)이라고도 한다. 출석한 대표 300여명은 근거지내 각 지구 반제동맹 대표들과 홍군대표, 조선대표, 대만대표 그리고 전국총공회쏘베트구역집행국, 소선대쏘베트구역총대부, 혁명호조회쏘베트구역총회 등 군중단체 책임자들도 참가하여 성황을 이루었다.
 
쏘베트구역반제총동맹 제1차 대표대회는 중공쏘베트구역중앙국에서 직접 조직하고 지도한 회의로서 중국공산당이 지도하는 중앙혁명근거지 군중단체의 하나로 소집되였다. 대회는 쏘련공산당 수령 쓰딸린(斯大林), 몰로또브(莫洛托夫), 국제공산당 수령 지미뜨로브(季米托洛夫), 독일공산당 수령 트르만(特尔曼), 일본공산당 수령 가다야마 센 (片山潜), 문학가 고리끼(高尔基) 등 수령 위인들과 모택동, 주은래, 항영 등을 대회명예주석단으로 추대하고 등영초, 장애평(소선대쏘베트구역총대부 대표), 장화(张华,홍군학교 반제동맹 대표), 무정(조선 대표), 시홍광(施紅光, 施至善, 대만 대표), 채효건(대만 대표) 등 25명을 대회주석단 성원으로 추대하였다.
 
회의는 2일간 열리였는데 중요일정은 세가지였다.
 
첫째, 중공쏘베트구역중앙국 서기 주은래가 ‘목전 국제정세와 쏘베트구역 반제운동과업’ (目前国际形势和苏区反帝运动的任务)보고를 한다. 둘째, ‘반제투쟁강령’을 토론, 통과한다. 셋째, 쏘베트구역 반제총동맹 지도기구를 선출한다.
 
회의 선출 결과 등영초, 장애평, 장화, 채효건, 시홍광, 무정 등 35명이 반제총동맹 집행위원으로 선출되였다. 반제총동맹 집행위원회 제1차 회의에서는 또 채효건을 총동맹 주임으로 장화를 조직부장으로, 장애평을 선전부장으로 선출하였다. 반제총동맹 제1차 대표대회 소집의 주요목적은 중앙혁명근거지내에서 반제운동의 고조를 일으켜 근거지군중을 널리 발동하며 홍군대오를 확충하기 위한 데 있었다. 그 뒤 중공쏘베트구역중앙국은 국민당군대의 련속되는 ‘포위토벌’에 대비하여 당의 긴급과업결의를 지으면서 “100만의 철의 홍군을 창조하여 제국주의국민당군대와 작전하자”를 첫번째 과업 (주. 외외풍비(巍巍丰碑), 중앙문헌출판사, 2003년 5월 출판, 제228페이지)으로 내세웠는데 반제총동맹은 당의 이 중심과업으로 나아가는 데서의 하나의 힘있는 절차였다. 조선인 무정은 이 중심과업을 집행하는 반제총동맹이란 근거지 군중단체의 주요성원의 하나였다. 쏘베트구역반제총동맹은 중앙급 군중단체로서 산하에 서금, 호남, 강서 등지에 성급 성맹(省盟)을 두기도 하였다.
 
쏘베트구역반제총동맹 제1차 대회로부터 그후 1934년 10월 홍군장정에 이르는 2년 4개월간 반제총동맹은 중앙혁명근거지에서 많고 많은 일들을 벌이였다. 조선사람인 무정은 홍군학교 포병과 주임 사업과 결부하여 반제총동맹 사업을 혁명사업의 하나의 과업으로 간주하고 심혈을 다하였다. 주로 선전방면인데 홍군확대(扩红)와 밭나누기검사(查田)운동에 배합하면서 ‘세계반제대동맹’ 집행위원회의 호소에 향응하여 파쑈반대사업과 쏘련옹호사업을 활발히 벌이는 것이였다.

료녕신문 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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