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리광인 련재작ㅣ중국혁명 속 우리 겨레 혁명가들(관내편) - 94
조글로미디어(ZOGLO) 2020년7월14일 09시34분    조회:317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1934년 봄 춘경순회공연
 
1
 
1934년 3월초 최음파가 의무음악교원으로 활동하는 람삼단은 쏘베트극단으로 개편된 후 중앙쏘베트극단의 이름으로 중앙혁명근거지내 흥국현과 회창현의 매갱, 서강, 락강, 장부, 주란부, 회창, 답강, 무양(梅坑-西江-洛江-庄埠-朱蓝埠-会昌-踏冈-武阳) 등지를 돌면서 춘경순회공연 길에 올랐다. 《홍색중화》보는 쏘베트극단의 이 거동에 대해 높이 평가하면서 즉각 뉴스를 내보냈다.
 
쏘베트극단(즉 이전의 람삼단)은 최근 몇개월 중앙기관소재지에 머물면서 군중들과 그리 접촉하지 않았다. 지금 그들은 해방되였다... 특히 어제(7일) 새로운 활보극, 연극 등을 많이 준비해 각지 춘경운동과 ‘3.8’공연에 나섰다.  
 
뉴스가 일컫는 '해방되였다'는 초롱에 갇힌 새처럼 한때 서금과 그 일대에서만 활동하던 문예단체가 다시 근거지 각지로 진출하게 되였음을 말해준다. 이는 구추백의 과단하고 신속한 사업작풍과 문예가 대중을 위해 복무해야 한다는 문예방향의 실제 체현으로 된다. 홍군부대로, 홍군병원으로, 농촌으로의 순회공연이 바로 그러하다. 최음파는 이 춘경순회공연의 음악교원이고 문예일군이였다.
 
춘경순회공연의 첫 공연지는 후일 홍군장정 출발의 첫 산으로 불리우는 운석산에 위치한 매갱촌, 오늘의 서금시 운석산향 매갱촌이고 그 다음 공연지가 서금 서부, 회창 북부의 서강이다. 1934년 5월 1일자 《홍색중화》보는 서강을 중앙혁명근거지의 한개 현을 이룬 서강현으로 적고 있지만 오늘의 서강은 서강진으로서 서금, 우도, 회창 3개 현을 이어주는 교통요지로 되고 있다.
 
중앙쏘베트극단은 리백소가 이끄는 로농극사 본사 산하 극단이다. 중앙쏘베트극단은 3개 현 교통요지로 되여있는 서강에서 5일간 머무르면서 4회의 밤공연을 성공적으로 펼치였다. 로농극사와 극단의 작곡가인 최음파는 악대지휘와 바이올린 반주, 독주로 누구보다 바삐 돌아쳐야 했다. 그러면서도 서강에서 공연한 연극프로가 매갱에서의 첫 공연보다 훨씬 낫다고 하니 최음파는 기분이 둥둥 뜨는 것 같았다. 더우기 춘경운동을 표현한 <춘경운동가> 등 노래와 무용, 연극 종목들이 관중으로 나선 로농대중의 환영과 호평을 받으니 더구나 그러하다.
 
<춘경운동가>의 가사는 이러하다.
춘경운동 전쟁을 도운다
동지들아 모두다 떨쳐나서자
두할의 수확으로
5만섬의 황무지 없애자
5만섬의 면화를 심어가자
 
흥국현위 선전부에서 편집한 《쏘베트구역 가곡집》에 <춘경운동가>가 실려있다. 그러나 이 가곡집은 <국제가> 외 다른 노래들은 모두가 작사자와 작곡자가 밝혀지지 않아 가사와 곡이 그대로 나타나도 누구의 작사이고 작곡인가를 알 수 없다. 최음파가 그번 1934년 봄 춘경순회공연에 참가한 데서 십중팔구는 최음파의 작곡이 아니면 편곡이겠지만 그렇다고 찍어말하기 어려워 안타깝기만 하다.
 
2
 
《쏘베트구역 가곡집》에는 그번 춘경순회공연에서 널리 불리여진 <올해 춘경> 노래도 실리였다. 4분의 2박자에 3절로 된 가사를 보기로 하자. 
 
춘경시절이 왔다
아버지 형님 밭으로 가네
올해 춘경 빨리여
힘을 합쳐 적을 때려부시세
 
영용한 홍군 전선에서
적들을 여지없이 쓰러눕히네
올해 춘경 요긴하니
홍군밭뙈기 먼저 붙히세
 
촌마다 둼무지 만들어
비료 100근 더 내세나
올해 춘경 힘다해
수확고 두할로 늘이세
 
<올해 춘경>도 작사, 작곡자를 알 수 없다. 이 노래의 작곡이나 편곡 둘중 하나는 최음파의 노력이 깃들어있음은 자명한 일이다. 서강의 군중들이 춘경운동의 노래와 춤을 보다 좋아하면서 칭찬을 아끼지 않으니 최음파는 기분이 둥둥 뜨지 않을 수 없었다.
 
서강 순회공연 프로들을 보면 자체로 준비한 춘경운동 필수종목 외 모두가 군중생활의 실제자료에 따라 극단의 집체 창작과 연구를 거쳐 이루어졌다. 이 집체창작 속에는 조선인 최음파도 들어있었으니 그들 극단 주요일군들은 원유의 토대 우에서 서강의 실제와 어울리는 종목을 무대에 올릴 수 있었다. 군중들은 당연히 즐겨보면서 “홍군가속을 우대하는 종목들은 잘 꾸미였다. 춘경가도 너무 듣기가 좋다. 배웠으면 좋겠다”고 말하였다.
 
최음파를 망라한 중앙쏘베트극단 배우들은 시간만 있으면 <춘경운동가> 노래보급에 여념 없었다. 이렇게 하나가 열을 배워주고 열이 백을 배워주니 서강의 군중들은 너나없이 <춘경운동가>를 부를 줄 알았다. 하기에 중공흥국현위선전부에서 일찍 1958년 11월에 <국제가>까지 수집한 34수의 가곡으로 <쏘베트구역 가곡>집을 펴낼 때 류재영(刘才英)이라는 녀성은 혼자서 <춘경운동가> 등 7수의 노래를 불렀다. 흥국현 문화관에서 류재영이 부른 노래를 기보하니 최음파 관련 <춘경운동가> 등 당년의 노래들이 다시 해빛을 보게 되였다.
 
서강에서의 순회공연이 한창일 때 공연장은 번마다 당지의 남녀로소들로 초만원이였다. 사람들은 밤이면 여기저기서 홰불을 들고 모여들었으며 어린이들은 어른들이 앉을 걸상을 들고 나섰다. 가장 멀리로는 15리, 20리길 밖에서 모여들었다. 그들은 공연시간을 어길가봐 공연 전에 북과 징을 울리고 장날같은 때는 대낮에 공연할 것 등을 건의하기까지 하였다.
 
3
 
대낮에 공연하던 그날은 어딜 보나 명절기분으로 넘치였다. 이 때의 공연을 두고 중앙쏘베트극단 책임자인 리백소는 과려(戈丽)라는 필명으로 《홍색중화》보에 <쏘베트극단 춘경순회공연기사(纪事)>란 한편의 글을 실었다.
 
매번 극단 공연시 언제나 비빌틈 하나 없었다. 늙은이, 어린이, 남자, 녀자 모두가 밤이면 홰불을 들고 어린 것이 어른의 걸상을 들고 끼리끼리 모여들었다. 가장 먼 사람은 15리나 20리 길이 되였다. 그들은 우리가 들썽하지 않을가봐 또 늦어서 다 보지 못할가봐 우리더러 공연 전에 북과 징을 울려달라고 제의하였다. 또 “낮에도 공연하는 것이 좋다”고 하여 우리는 그들의 요구를 완전히 받아들이였다. 장날이면 낮에도 공연하였다. 장날에 공연할 때면 전야의 소로길에는 새옷을 갈아입은 한패 또 한패의 부녀들이 나타났고 어떤 부녀들은 길다란 꽃신까지 받쳐신었다. 녀자애들은 붉은 댕기를 곱게 드리웠다. 아이를 안은 사람, 지팽이를 든 사람 그야말로 흥성흥성하였다. 여보게들, 중앙서 온 문명대극을 보러 갑세. 볼 만하다이!
 
리백소가 《홍색중화》보에 실은 기사이다. 이 기사로부터 우리는 그 시절 최음파 소속 중앙쏘베트극단의 춘경현지공연이 얼마나 들끓었는가를 헤아릴 수 있다. 근거지 농촌사람들이 그토록 중앙쏘베트극단의 공연을 열망한 것은 그들이 공연한 종목들이 군중들의 실생활과 정서, 요구를 군중들이 즐기는 형식으로 잘 반영한 것과 갈라놓을 수 없다.  <춘경운동가> 등 노래와 춤들이 그러하고 《게으른 아줌마 춘경에 게으르다》, 《족발녀인 생산로동에 적극 참가하다》, 《부농로파 민며느리를 학대하다》, 《글 모르는 해로움》, 《간상배 부농 쏘베트경제를 해치다》, 《그들 꼬임에 들다》 등 연극과 활보극(活报)들이 그러했다.
 
종목마다 너무도 생동하고 교양가치가 컸다. 연극과 활보극이 끝난 후에도 관중들은 “더, 더” 소리치기가 일쑤였다. 극단의 동지들은 새로운 즉흥표편으로 관중의 요구에 만족을 주어야 했다. 공연이 끝난 뒤에도 관중들은 헤여질 념을 안하고 술상에 모여앉지 않으면 차집이나 음식점에 모여앉아 간식을 하거나 차를 마시였다. 그러다가도 극단의 배우들이 지날 때면 연극분장과 연극효과가 일품이라며 엄지를 내들었다.
 
서강에서의 공연은 말 그대로 진짜 대성황을 이루었다. 1934년 5월 1일자 《홍색중화》보 4면에 실린 <순회극단통신ㅡ중앙쏘베트극단 최근 서강에서의 성과>가 이 대성황을 잘 알리고 있다. 《홍색중화》보 기사에 따르면 중앙쏘베트극단의 공연을 본 부녀들은 이렇게 말하였다.
 
춘경운동에 우리 부녀들이 적극적으로 참가해야 한다. 아들애는 탁아소에 맡기면 된다. 게으른 부녀들은 극에서 나오는 것처럼 저마다 춘경에 떨쳐 나서야 한다.
 
서강현의 기관간부들은 이렇게 말하였다.
 
이번 극단의 공연은 우리의 사업에 매우 큰 도움으로 되고 있다. 
 
4
 
근거지 부녀들과 기관간부들의 호평은 공연의 성공을 말해주고도 남음이 있다. 중앙쏘베트극단의 공연 성과에 고무된 군중들은 서강에도 극단을 세울 것을 서강현정부에 요구하면서 고구마 등 10여개 담(担,한개 담은 100근임)을 모아 극단에 보내왔다. 군중들은 극단의 공연 부족에 대해서도 묵과하지 않았다. 그들은 극단의 표현이 선동성이 비교적 약하고 그다지 뜨겁지 않으며 연극의 내용에서 해설이 제대로 따르지 못하여 어떤 사람들은 잘 리해하지 못한다고 비평하기도 하였다. 최음파는 극단의 동지들과 함께 군중의 비평을 귀담아들으며 당지 군중생활의 신선한 자료들로 노래와 극본의 편곡을 보다 충실히 하기에 최선을 다하였다.
 
료녕신문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118
  • 낡은 교육제도 개혁 민족언어문자로 교수 중국조선민족의 최고학부 연변대학 창설 ‘8.15’ 해방은 연변 조선민족 앞에 일제침략자에게 빼앗겼던 자기의 말과 글로써 교육을 발전시킬 광활한 전망을 펼쳐 주었다. 예로부터 자식공부를 위해서는 소까지 팔아 뒤를 대준다는 우리 민족이였다. 일제한테 글과 말을 ...
  • 2020-07-30
  • 춘경순회공연 가운데서 최음파 소속 중앙쏘베트극단은 이르는 곳마다 공연을 앞세우면서 군중사업을 드세게 내밀었다. 그럴 때면 최음파는 동지들과 함께 당지 교육부문과 레닌소학교, 구락부 등 지방 문화사업, 홍군가속의 춘경생산을 도와 나섰다. 또 지나는 구와 향의 레닌소학교와 소선대 모임장소들에서 군중들에게 춘...
  • 2020-07-14
  • 1934년 봄 춘경순회공연   1   1934년 3월초 최음파가 의무음악교원으로 활동하는 람삼단은 쏘베트극단으로 개편된 후 중앙쏘베트극단의 이름으로 중앙혁명근거지내 흥국현과 회창현의 매갱, 서강, 락강, 장부, 주란부, 회창, 답강, 무양(梅坑-西江-洛江-庄埠-朱蓝埠-会昌-踏冈-武阳) 등지를 돌면서 춘경순회공연...
  • 2020-07-14
  • 2 필자는 중국 홍군대오에서 활동한 양림, 무정 등 우리 겨레 홍군장병들의 빛나는 발자취를 따라 지난 수년간 여름방학 시간을 타서 강서 남창과 서금, 홍군장정 발자취 련속 답사길에 올라 보았다. 강서 남창을 거쳐 서금으로 간 것은 2009년 7월 10일이였다. 쌍둥이 큰 딸애 설이가 동행하였다. 남창에서 오전 8시반 경...
  • 2020-07-14
  • 그런 신분의 오수권이지만 어인 영문인지 쏘베트 제2차 대회의 노래를 쏘베트 제1차 대회의 노래로 착각한 회고 차이를 보이면서 최음파에 짙은 흥미와 연구시각을 가진 우리를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 사실 오수권외 최음파를 두고 30년대 초반과 중반 중앙혁명근거지 그 시절 최음파와 같이 활동하였던 홍군장령들이나 문...
  • 2020-07-14
  • 김하수로인이 들려준 무정장군 이야기  편집/기자: [ 김정함 ] 원고래원: [ ] 발표시간: [ 2016-08-08 15:11:44 ]   특별기고ㅡ겨레홍군 장정 발자취 따라 (20)   김하수(무정장군의 8촌 동생)  리옥순 부부. 2015년 9월 9일 현지촬영   1   대련하면 선참 아름다운 해변도시라는 깊은 인상...
  • 2020-07-13
  • 2 1933년 8월초의 어느 날, 홍군학교 훈련장에서 제6기생 개학식을 가지였다. 홍군학교 정치부 주임과 부교장이 환영사를 드리면서 신입생들이 군사정치학습에 힘써 새로운 노력으로 제국주의국민당의 제5차 ‘포위토벌’을 철저히 분쇄하는 혁명전쟁에 나설 것을 희망하였다. 이날 밤, 최음파 소속 로농극사의 ...
  • 2020-07-09
  • 이것이 최음파 소속 로농극사 8.1문예공연이라면 로농극사 소속 람삼극단은 8.1를 계기로 소속 교원과 학생들로 30여명 중앙람삼극단공연대를 무어 1933년 봄과 여름 사이 여러 홍군부대를 찾아 전방순회공연길에 올랐다.  선후 3개월에 걸치는 전방위문공연은 리백소가 친히 이끌었다. 람삼단의 의무교원이기도 한 홍...
  • 2020-07-09
  • 그중 한 꼬마배우가 모주석께 몇개 절목을 보여드리자고 제의하였다. 이 제의는 뜨거운 호응을 받아 아름드리 룡나무 아래서 즉석공연이 치러졌다. 주석의 경위원은 깔기 좋은 돌 하나를 옮겨다가 모택동주석이 앉아서 보도록 하였다. 소문이 퍼지자 주변 여기저기에서 당지 군중들이 몰려와 즉석공연지를 달구었다. 기획외...
  • 2020-06-15
  • 이 같은 노력을 거쳐 1934년에 이르러 로농극사 분사와 지사기구는 중앙혁명근거지 각지에 우후죽순처럼 조직되여 자못 활기를 띠였다. 《홍색중화》보 제83기에 따르면 1933년 5월 설립된 흥국, 박생, 우도, 정주 등 7개 분사에 소속된 사원은 1100여명에 달하였다. 1933년 5월 19일과 20일, 모택동주석이 서금 무양에서 ...
  • 2020-06-15
  • 2   중앙로농극사로 보는 엄중한 투쟁은 1932년 7월과 8월 소집된 제1차 회의와 제2차 회의에서 벌써 판을 치고 있었다. 주요한 표현은 극사의 이름문제인데 ‘프로’(普罗), ‘로동자’, ‘8.1’, ‘룩셈부르그’(卢森堡), ‘로농’ 등 이름을 둘러싸고 서로간 쟁...
  • 2020-06-15
  • 4   기름은 아예 보기도 어려웠다. 식량이 떨어질 때는 야채를 캐서 때워야 하였다. 등불기름도 없어 철사로 엮은 그물에 소나무가지를 얹혀놓고 태웠다. 이런 등불을 ‘소나무등불’(松光)이라고 하는데 밤에 책을 볼 때 소나무등불을 리용하였다.   학교에서 쓰는 교재도 자체로 해결해야 한다. 등사...
  • 2020-06-15
  • 며칠이고 밖으로 돌다가는 동지들과 더불어 잠간 리화촌 집에 들러 새벽밥을 해먹고는 새벽속으로 사라졌다는 박동근, 리초향은 아버지 리남붕한테서 박동근 관련 이야기를 자주 들으면서 알게 되였다. 박동근 렬사의 유일한 녀동생 박영화의 두 아들인 리남붕, 리철붕 가족사진. 앞줄 좌1이 리남붕 선생 부인 김정숙, 좌2...
  • 2020-06-02
  • 글자수: 3474자 열독시간: 약 13분   엽검영 교장은 학교 구락부가 조직하는 문예만회에서 누구에게 뒤지지 않고 손수 허다한 혁명가곡을 부를 뿐만 아니라 하모니카를 곧잘 불렀다. 홍군학교의 정치부주임 하장공(何长工)은 피리능수였다. 두 사람이 늘 단짝이 되여 하모니카를 부르고 피리를 불면서 성수나게 노래를...
  • 2020-05-29
  • 그 나날 《홍색중화》보 제36기, 43기, 45기에 따르면 로농극사는 홍군학교 제3기 졸업생들 외에도 전방으로 나가는 신편 보충사ㅡ홍군학교간부대 정치반 졸업생들 환송공연, 국민당 19로군 봉기전사들을 위한 신편극 공연, 광주봉기 기념대회에서의 연극 《광주폭동》 등 공연을 수차 가졌다.   중앙혁명근거지 문예...
  • 2020-05-29
  • 망국노 ‘개간민’이였던 조선인 농민 땅의 주인 되여 중국 력사상 처음 소수민족 신분으로 정치권리 가져 두차례의 군중공작회의 “중국 신민주주의혁명의 근본문제는 농민문제였고 농민문제의 핵심은 토지문제였습니다. 1946년 5월, 중공중앙은 〈토지문제에 관한 지시〉를 내려 토지정책을 조정하며 전면...
  • 2020-05-28
  • 그날 해질녘에 적들은 적장 학강대장 등10여명 살상자를 내고 끝내 물러섰다. 우리측에서는 군중들까지 김수원, 림하춘 부친 등 3명의 희생과 수명의 부상자를 냈을 뿐이였다.     우복동전투가 벌어졌던 우복동 4중촌. 오늘의 화룡시 남평진 고산촌의 한 마을. (2019년 9월 17일 현지촬영) 1 1933년 3월, 화룡현...
  • 2020-05-25
  • 제12편 홍군음악가 최음파   1. 로농극사 총사 2. 엽검영 교장 3. 람삼단 의무교원 4. 사나운 회오리 5. 1933년 이해 6. 연극 "전투의 여름" 7. 8.1기념활동 8. 홍군학교 교내공연들     로농극사 총사   1   홍군학교 로농극사는 8.1극단이 장정 정주에 머무를 때 중앙쏘베트구역 중앙국 서기이...
  • 2020-05-22
  • 이런 활동 가운데서 신문잡지 선전을 보면 쏘베트구역 반제총동맹은 1932년 8월 1일에 《반제전선(反帝战线)》이란 8절지 인쇄본 신문을 꾸리고 매기 4개 면(주.中央苏区革命文化史料汇编. 江西人民出版社 1994年版, 第400页)으로 하였다. 1933년 7월에는 서금 교외에서 쏘베트구역어모구국대표대회(苏区御侮救国代表会议)...
  • 2020-05-20
  • 학과도 원래의 보병과, 정치과, 특과로부터 퇀정위훈련반, 상급간부대(上级干部队), 사호대(司号队), 측량반 등으로 늘어났으며 학생양성방향도 홍군의 중고급 군정간부 양성으로 잡고 홍색수도 서금 위수과업도 맡아나섰다. 학교시설과 규모가 크게 늘어남에 따라 관련 인재들도 많이 수요되였다.   홍군학교의 이 같...
  • 2020-05-20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