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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광인 련재작ㅣ중국혁명 속 우리 겨레 혁명가들(관내편) - 86
조글로미디어(ZOGLO) 2020년6월15일 14시19분    조회: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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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로농극사로 보는 엄중한 투쟁은 1932년 7월과 8월 소집된 제1차 회의와 제2차 회의에서 벌써 판을 치고 있었다. 주요한 표현은 극사의 이름문제인데 ‘프로’(普罗), ‘로동자’, ‘8.1’, ‘룩셈부르그’(卢森堡), ‘로농’ 등 이름을 둘러싸고 서로간 쟁론이 심하였다. 최음파도 이 쟁론 속에 뛰여들었다. 쟁론은 원래 생동활발한 문예일군들 사이 토론으로서 정상적이라지만 ‘좌’경 지도자들이 보는 시각은 판이하게 다르다. ‘좌’경 지도자들은 정치적 의의를 중시하지 않고 이름만을 추구하는 '예술화'라면서 '로농'이란 부름은 로농군중의 의식을 모호하게 하는 표현으로서 '뜨로쯔끼주의'의 경향이라고 생떼를 쓴다.
 
로농극사 설립을 위한 제2차 주비위원회 회의에서 대만 출신의 채효건이 로농극사의 규약초안을 작성하도록 위임하였다. 그런데 채효건이 작성한 ‘초안’은 너무도 간략적이여서 상해에서 중앙혁명근거지로 온 녀성 공청단원 서소용(徐素容)이 다시 맡아 나섰다. 서소용은 상해시절 문예신문사에 참가한 젊은이고 소공중앙국의 사업일군이라지만 아직 근거지 정치리론면에 익숙치 않아 그가 작성한 규약초안에서 일부 제기법이 준확하지 못하거나 명랑하지 못한 결함이 보이였다. 하지만 중앙혁명근거지 ‘좌’경 지도자의 한사람이고 중공소공중앙국 서기라는 고작림(顾作霖)의 눈에는 그게 아니다. 결정되지도 않은 규약초안을 가지고 횡설수설하면서 이른바 '엄숙한 비판'과 '잔혹한 투쟁'을 들이댄다.
 
최음파는 잘 리해되지 않았다. 상해에서 온 애숭이 공청단원이고 소공중앙국의 한 사업일군인 서소용을 두고 그의 상급어른이라는 소공중앙국 서기가 수정하고 이끌어주지는 못할망정 무조건 비판하고 무조건 투쟁하려 하니 리해될 리가 없다. 중앙혁명근거지에 와서 최음파가 보고 겪게 되는 첫 ‘좌’경 로선의 살판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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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3일, 중공소공중앙국은 로농극사 주비사업에 나선 당원과 공청단원 확대회의를 부르고 ‘극사규약 초안’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기 시작하였다. 극사주비위원회 책임자인 장애평과 ‘극사규약 초안’ 작성자 서소용, 지지자들인 종위검(钟维剑), 류통옥(刘通玉) 등 네 사람은 공개적인 비판(左莱, 梁化群. 苏区红色戏剧史话. 文化艺术出版社, 1987年5月出版, 第40页)을 받았다. 회의에서는 ‘규약초안’을 한없는 높이에 올리며 '죄명'을 들씌웠다.
 
이른바 그 '죄명'의 하나가 연극운동이 “총적 사회주의혁명 과업의 일환”이라는 제기법은 현계단 민족혁명전쟁의 성격을 왜곡했다는 어마어마한 죄명이였다. 다른 하나는 초안에 연극운동을 “사회주의의 경제토대우에 건설”하여야 한다는 대목이 있다고 하여 당면 중국의 반봉건사회의 경제관계를 부인한다, 반혁명 뜨로쯔끼취소파의 역설이라는 죄명을 들씌웠다. 쏘베트구역 문화건설의 성과를 부정하오, 뜨로쯔끼 ‘문예천재’의 반동리론을 선양하오 등등도 그러하다. 총체적 결론에 이르러서는 “로농극사의 규약초안은 반혁명 뜨로쯔끼주의”이고, “반혁명 뜨로쯔끼주의 정강식(政纲式) 역할”(1932년 10월 출판된 《당의 건설》 제5기에서)이란 엄청난 모자를 씌워버린다.
 
일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이른바 '엄숙한 비판'은 '잔혹한 투쟁'으로 승급하더니 10월에 이르러 중공소공중앙국은 장애평에게 '서면엄중경고'를 내리고 12월 12일에는 장애평과 위홍지에게 조직적 처분을 내리였다. 이 처분에 따라 장애평은 당에 남기고 1년 고찰(留党察看一年)하는 처분을, 위공지(危拱之)는 당적을 해임하는 처분을, ‘규약초안’ 작성자 서소용은 단적 해임 처분을 받았다. (1932년 11월 출판된《당의 건설》 제6기에서) 최음파는 공개적으로 앞에서 말도 못하고 지켜보아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했다.
 
그러고 보면 중앙로농극사 설립 전후에 벌어진 엄중한 투쟁은 왕명 ‘좌’경 로선인 '잔혹한 투쟁', '무정한 타격'이 근거지 연극령역에서의 악렬한 반영으로서 동지들간 인식문제와 사업상의 결함을 정치문제, 립장문제로 '상강상선(上岗上线)'하면서 동지들을 타격하였음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중앙혁명근거지의 문예운동에 헌신하고저 홍군대오에서, 상해에서, 복건 남부인 장주에서, 쏘련에서 달려온 최음파 등 한패 또 한패의 문예일군들로 말하면 청천벽력과도 같았다. 희망을 안고, 미래를 안고 달려온 그들에게는 너무나도 잔혹한 현실이기만 하다. 이 같은 잔혹한 현실은 1932년을 넘어 1933년에도 이어졌으니 간부문제에서의 잔혹한 투쟁에서만 해도 주비위원회 책임자를 포괄한 선후 로농극사의 5임 사장중 장애평, 예지협(倪志侠), 홍수(洪水) 등 세 사장이 임기내에 정도부동한 타격과 피해를 입어야 하였다(강서문예사료 3, 내부자료, 1988년 8월 제1판, 제42페이지).
 
 
1933년 이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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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하반기 중앙로농극사는 ‘좌’경 지도사상으로 인한 소공중앙국 서기 고작림 등의 '엄숙한 비판'과 '잔혹한 투쟁'으로 큰 피해를 입었지만 공산당원 최음파 등 견정한 혁명가, 문예일군들로 인해 주눅이 들지는 않았다. 1933년초 이후 중앙로농극사는 새로운 발전의 시기를 맞이하였다.
 
이 해 1933년 3월 4일 중앙로농극사는 80여명이 참가한 전체 사원대회를 소집하였다(1933년 3월 9일부 《홍색중화》보 제4면). 회의에서는 지난 시기의 사업을 검사, 총화하면서 앞으로의 사업을 연구하였으며 연극의 내용과 형식 등 문제에 대하여 깊이있는 토론을 벌이였다. 연극사업에 대한 지도를 강화하고 조직기구를 건전히 하고저 회의에서는 편심위원회와 편심위원회 산하 연출, 무대, 음악, 무용 등 부서를 설립하기로 하였다.
 
로농극사 주력의 한사람인 최음파는 당연히 음악부서에 속하겠지만 작곡가이고 음악지도이고 지휘가인 데서 극사의 연출, 무대, 음악, 무용 등에 모두 참녜하여야 하였다. 회의는 또 로농극사는 앞으로 본사의 사업을 잘 하는 외 각지 구락부들과의 련계를 강화하면서 제반 중앙혁명근거지의 연극운동을 추진하며 로농대중의 예술을 창조하기로 하였다.
 
3월 4일 회의결정에 따라 로농극사는 《홍색중화》보에 한편의 ‘계시’를 실으면서 “본사 편심위원회는 이미 사업을 시작하였다. 극본 편저와 가곡, 랑송극시 등 외에도 각지 구락부의 현유 극본과 가곡을 심사하여 좋고 나쁨을 가르도록 하며 취사(取舍)를 결정한다”고 선포하였다. 한편 사가부를 책임자로 하는 편심위원회는 각지의 많은 우수한 극본과 연창자료를 심의하고 편집하여 판트리트로 출판하면서 홍군부대와 지방구락부, 선전대들에 추천하였다(左莱, 梁化群. 苏区红色戏剧史话. 文化艺术出版社, 1987年5月出版, 第44-45页).
 
1933년초 이후 로농극사와 근거지 문예사업을 번영시키기 위한 중요한 조치들이였다. 지금 볼 수 있는, 국내외를 통해 수집해들인 그 시절 극본 거의가 모두 로농극사 편심위원회에서 편집, 인쇄하여 후세에 남긴 귀중한 사료로 알려진다. 가곡 등의 심사와 편집은 당연히 최음파의 몫이였다.
 
중앙로농극사의 번영발전과 활발한 공연, 극사 편심위원회와 각지 구락부와의 폭넓은 련계는 중앙혁명근거지의 홍색연극운동을 새로운 고조에로 이끌어갔다. 이 가운데서 로농극사는 근거지 연극활동을 지도하는 중심으로 떠올랐다. 홍군부대와 지방의 여러 구락부와 선전대들에서는 극사 설립을 분분히 요구하여 나섰다. 이런 동풍을 타고 홍색수도 서금의 로농극사는 로농극사 본사로 발전하면서 각지에 로농극사의 분사와 지사를 두게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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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농극사 본사의 지도를 받는 분사와 지사를 보면 중앙혁명근거지의 강서, 복건 등 여러 성들에 분사를 설치하였다. 1933년 5월 20일부 《홍색중화》보를 보면 각지 분사와 지사 소식이 잘 알려진다(左莱, 梁化群. 苏区红色戏剧史话. 文化艺术出版社, 1987年5月出版, 第46页).
 
로농극사는 로농대중의 예술을 창조하고 쏘베트구역 프로 연극운동을 발전시키기 위하여 각지에 자기의 조직을 적극 확대하면서 당지 구락부와 로농군중들이 분사를 조직하도록 이끌었다. 지금 이미 설립된 곳으로는 정주(汀州), 엽평(叶坪), 홍군학교(红校), 박생(博生), 흥국(兴国)과 강서군구 등이다. 회원은 약 600~700명에 이른다. 분사는 본사의 직접적인 지도하에서 각지 만회를 조직하면서 쏘베트구역 프로 연극운동의 간부를 양성한다. 더우기 정치적 선전고동을 맡으면서 활동의 전도구를 잘 운용하는 것으로 우리의 정치영향을 넓혀간다.
 
중앙혁명근거지 각지 분사상황을 잘 알려주는 한편의 기사이다. 1933년 8월 13일부 《홍성보》도 제3면에 실은 <동방군정치부의 문화예술면의 돌격(东方军政治部在文化艺术上的突击)>이란 한편의 기사에서 로농극사 분사의 맹렬한 발전을 알려준다.
 
동방군정치부는 단기내에 ‘화선사’ 사원을 발전시키자는 구호를 내놓았다. 도합 600~700명의 사원을 발전시키였다. 특별히 제1분사의 최근 무대에서의 건설은 실로 사람들을 놀래는 성과를 거두었다. 본사에서 공연하는 극본들은 그들이 모두 배워냈다. 제2분사는 개선후 날따라 늘어가는 기세를 보인다(左莱, 梁化群. 苏区红色戏剧史话. 文化艺术出版社, 1987年5月出版, 第46页).
 
이로부터 우리는 근거지 홍군부대와 지방들에서의 홍색연극의 발전상황을 잘 헤아릴 수가 있다. 이밖에 여러 자료종합으로 보면 로농극사는 또 우도(雩都), 상요(上饶), 석성(石城), 갈원(葛源) 등 현과 홍군병원에도 분사를 조직하여 근거지내 연극운동이 넓은 범위에서 보다 발전하도록 전력을 다하였다. 료녕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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