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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 9월 25일부터 외국인 규정상 입국 가능!
  • [속보]이재명, 지팡이 짚고 묵묵부답…제1야당 대표 첫 영장심사 출석
    크게보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6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며 취재진 질문을 듣고 있다. 2023.09.26.뉴시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26일 구속전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했다. 제1야당 대표가 영장실질심사를 받는 것은 헌정 사상 처음이다. 이 대표는 이날 오전 10시 3분경 서울중앙지법 서관 후문에 도착했다. 당초 예상 도착 시간보다 20분가량 늦은 것. 이 대표는 측근의 부축없이 지팡이를 짚은 채 차량에서 내려 우산까지 직접 들고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포토라인에 선 이 대표는 ‘구속영장실질심사를 받게 됐는데 한마디 해달라’ ‘증거인멸을 교사했다는 혐의에 대해 어떻게 방어 하실건가’ ‘김인섭 씨와 마지막으로 연락한 게 언제냐’ 등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지 않고 법원 안으로 향했다.   크게보기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위증교사 등의 혐의를 받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6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2023.09.26.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26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뉴시스 앞서 이 대표는 이날 오전 8시 30분경 녹색병원에서 나왔을 때도 입장 발표를 하지 않았다. 그는 민주당 정청래, 고민정 최고위원 등 당 지도부와 악수를 한 뒤 지지자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준비된 차량에 올라탔다. 24일간 단식을 했던 이 대표는 건강 상태가 완전히 회복이 되지 않은 듯 지팡이를 짚은 채 한 차례 휘청이기도 했다. 영장심사는 서관 321호 법정에서 오전 10시 7분경부터 유창훈 영장전담 부장판사의 심리로 진행 중이다. 이 대표는 백현동 특혜 개발과 쌍방울 대북송금 의혹 사건으로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배임, 제3자 뇌물) 등의 혐의를 받는다. 구속 영장 발부 여부는 이날 밤이나 이튿날인 27일 새벽에 나올 것으로 보인다.
  • [연변사건] 아빠트 13층서 아찔한 투척...!
    8월 26일 17시경, 훈춘시민 강모는 신안가두 형안주택단지의 모 건물에서 누군가가 고공에서 물건을 던져 여러차례 행인을 칠 뻔한 아찔한 상황이 발생했다고 신고했다. 신고를 접수한 후 신안파출소 민경은 즉시 해당 주택단지의 CCTV를 돌려보았고 그 과정에서 모 아빠트 13층 거주자 요모에게 범죄혐의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 후 그를 파출소로 소환했다.  심문을 거쳐, 요모는 8월 26일 오후 17시경 술을 마신 후 집안일로 기분이 좋지 않아 13층 자택 북쪽 창문으로 4차례에 걸쳐 깡통, 금속제품 등 생활쓰레기가 담긴 포장주머니를 고공에서 던졌다고 사실대로 털어놓았다. 현재, 범죄혐의자 요모는 이미 훈춘시공안국에 의해 법에 따라 형사구류되였으며 사건은 진일보 처리중에 있다. 공안부문 제시: 본 사건의 CCTV 영상에서 요모가 고공에서 던진 물품이 하마트면 행인을 칠 뻔한 아찔한 상황을 볼 수 있었다. 다행히도 당사자에게 큰 피해는 없었다. 만약 피해를 조성했을 경우 엄중한 후과를 초래할 수 있다. 고공에서 물건을 던지는 것은 위험한 행위이다. 광범한 시민들은 고공에서 물건을 던지는 엄중성과 감당해야 할 법률책임을 인식하고 자각적으로 고공에서 물품을 '던지지 말아야 한다'는 의식을 수립해 량호하고 문명한 생활습관을 양성함으로써 경찰과 인민이 통합하고 공동관리함으로써 비극의 발생을 줄여야 한다. 연변라지오TV넷 연변방송APP 출처: 평안연변 편역: 오예화
  • 훈춘경찰, 사천 성도까지 찾아가 범죄용의자 나포?!
    올해 8월, 훈춘시공안국 형사수사대대는 훈춘시민 장녀사로부터, 위챗그룹에서 '허위구매'로 수수료를 벌 수 있다는 광고를 보고 상대방이 보낸 사이트 링크를 통해 '보스종횡(博思纵横)' APP를 다운받았는데 '허위구매'를 하면 현금으로 돌려준다는 리유로 인민페 12만원을 사기당했다는 신고를 접수했다. 신고를 접수한 후, 경찰은 자금흐름, 정보흐름에 대한 세밀한 연구판단을 거쳐 범죄혐의자의 위치를 파악했고 즉시 사천성 성도시로 달려갔다. 밤새 잠복한 끝에 경찰은 범죄혐의자 류모동을 성공적으로 체포함과 아울러 성공적으로 사기당한 일부 자금 5만여원을 장녀사에게 돌려주었다. 현재 범죄혐의자 류모동은 훈춘시공안국에 의해 법에 따라 형사강제조치를 받았으며 사건과 관련된 자금의 일부는 이미 피해자에게 반환되였고 사건은 진일보 조사 처리중이다. 연변라지오TV넷 연변방송APP 출처: 평안연변 편역: 오예화
  • 조선족 추석풍습 | 우리 민족은 어떤 추석풍습을 가지고 있을가?
    음력 8월 15일은 우리 나라의 전통명절인 중추절이자 조선족이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민속명절로 우리 말로 '추석'이라고 부릅니다. 우리 민족은 대대로 추석 명절을 전승해오면서 다른 민족과는 다른 독특한 중국조선족 추석풍습을 형성했습니다.같은 추석, 서로 다른 축하방식. 우리 함께 조선족만의 색다른 추석에 대해 알아봅시다.추석풍습—추석빔추석이 되면 날씨가 쌀쌀해지기 시작하는데 여름옷을 정리한 후 새로운 가을옷을 장만하는 것을 '추석빔'이라고 합니다. 조선족 조상들은 추석을 음력설과 마찬가지로 새로운 시간대로 접어드는 중요한 시기로 여겼습니다. 음력설은 새로운 해의 시작을 의미하고 추석은 수확의 계절이 도래하여 새로운 곡식을 먹는 주기에 들어감을 의미합니다.추석풍속—풋바심해 먹기(啃青)풋바심해 먹기는 곡식이 부족한 농가에서 아직 익지 않은 농작물을 수확하여 먹는 것을 가리킵니다. 지난날 곡식이 부족했던 시절에는 매년 년초에 묵은 곡식이 바닥나고 새로운 곡식이 아직 익지 않은 경우가 많았는데 이 시기를 '춘궁기'라고 불렀습니다. 음력 7월에 곡식이 끊기면 '칠궁기'라고 불렀습니다. 춘궁기에는 덜 익은 밀을, 칠궁기에는 덜 익은 벼를 수확했습니다.추석풍속—벌초추석 벌초는 조상 묘지의 황초를 제거하는 풍습으로 '금초(禁草)'라고도 하며 자손이 조상에게 효도하는 한가지 방식입니다. 어느 집 조상의 무덤에 황초가 무성하면 조상에 대한 불경으로 간주됩니다. 조선족이 조상의 산소에 가서 벌초하는 것은 보통 1년에 두번, 즉 봄과 가을에 한번씩 이루어지는데 청명과 추석은 모두 전통적인 성묘 명절입니다. 조선족의 벌초풍습은 대대로 전해져 선산이 있는 집에서는 매년 가을과 가을에 반드시 성묘를 갑니다. 오늘날 화장(火葬)이 보편화되였지만 조선족들이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는 풍습은 여전합니다.추석풍속—송편 먹기"설날에는 새 옷을 입고 추석에는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추석은 각종 과일, 채소와 곡물이 풍부한 계절이라 다양한 제철 음식을 맛볼 수 있습니다. 과거 추석에 가장 많이 먹었던 음식은 송편, 백설기, 찰떡(찹쌀떡), 조밀단자였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이 송편입니다.추석은 조선족의 뚜렷한 민족풍습특징을 간직하고 있으며 다른 민족들과 서로 알아가며 추석을 함께 축하하는 것 또한 점차 새로운 풍습이 되고 있습니다./인민넷
  • 재테크 사기! 그 수법은...?
    최근 연길시 한 주민이 투자 재테크 사기를 당했다. 사기군은 피해자가 모 소프트웨어에서 가상화페를 투자하도록 미끼를 던지고 피해자가 핸드폰으로 사기군이 지정한 은행계좌로 입금하도록 유도하며 마지막에 플랫폼이 해킹당하여 현금을 인출할 수 없다는 핑계를 대면서 사기를 쳤는데 피해금액이 24만원에 달했다. 공안 폭로: 사기군은 소셜미디어에서 피해자를 친구추가하고 '높은 수익 투자항목, 안정적인 수입' 등 명목으로 피해자들이 관심을 가지게 한다. 그리고 피해자에게 링크 혹은 큐알코드를 발송하고 피해자가 허위 투자앱을 다운받도록 유도한다. 다음 피해자가 앱을 다운받은 후 사기군은 먼저 피해자에게 적은 리익을 맛보게 하여 투자를 하면 수익을 얻을 수 있다고 믿게 만든다. 그리고나서 피해자가 부단히 투자강도를 높이게 유도한다. 피해자가 소프트웨어 계좌의 돈을 현금화할 수 없는 것을 발견했을 때 사기군은 '등록 이상' '계좌 동결' '해킹 공격' 등 각종 거짓말로 피해자가 계속해 입금하게 하거나 바로 블랙리스트에 넣어버린다. 경찰 제시: '밑지지 않고 안정적으로 돈을 버는' 투자 재테크 승낙을 쉽게 믿지 말고 자금 거래와 관련된 모든 것은 반드시 경각심을 높여야 한다. 낯선 사람에게 신분증번호, 은행카드번호, 비밀번호, 인증번호 등 개인정보를 제공하지 말아야 한다. 출처가 불분명한 QR코드를 스캔하지 않으며 낯선 사람이 보낸 링크를 클릭하지 말아야 한다. 만약 부주의로 사기를 당하거나 의심스러운 상황이 발생하면 증거를 잘 보류하고 제때에 경찰에 신고해야 한다. 빨리 신고할수록 긴급 정지 및 사기당한 돈의 신속한 동결에 유리하여 재산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다. 연변라지오TV넷 연변방송APP 출처: 연길공안 편역: 김홍화
  • 올해 추석 보름달은 언제 가장 둥글가?
  • 국경절 기간 “복도에 설치된 객실”1박 650원? 네티즌: 상식 벗어나
    최근 한 관광객이 북경의 한 익스프레스 호텔에 의해 인지 수준이 업그레이드 됐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밀페된 창문, 공중 화장실, 1인용 침대... 모두 상식을 벗어난 수준이였다. 공개된 사진에는 에어컨 등이 설치돼 있지만 1인용 침대만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공간이 작고 침대 맞은편에는 널판지로 만든 작은 책상, 그 아래에는 쓰레기통이 놓여 있다. 침대까지 가려면 계단을 내려가야 한다. 예약정보에 따르면 1인실, 6평방메터, 밀페식 창문, 1메터 싱글 침대 1개라고 명시돼 있다. 관광객이 제공한 호텔 정보를 토대로 여러 예약 플랫폼에서 호텔을 검색했다. 실시간 예약 정보에 따르면 이 호텔은 북경 아보로에 위치한 브랜드 체인 호텔이다. 가격은 1m 침대 싱글룸의 경우 평소 최저가는 188원 (1박), 기타 특가룸, 대형침대룸의 경우 약 300원, 국경절 기간 일부 예약 플랫폼에서는 상술 1인실 최고가가 650원 (1박)으로 되여 있었고 기타 특가룸, 대형침대룸의 경우 600여원 정도까지 상향 조절된 상태였다. 가격뿐 아니라 방이 배정된 곳이 계단 복도가 아니냐? 소방 승인을 받았나는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기자가 호텔 브랜드측에 련락했다. 브랜드측 고객서비스에 따르면 해당 호텔은 브랜드 산하 호텔로 1인실 타입이 확실하고 방이 작으며 계단이 실제로 존재하고 전체 6평방메터이다. 예약 플랫폼에 표시된 이미지는 불완전하여 차이가 있어 보인다. 브랜드 전체로는 이같은 객실이 매우 적다. 일반적으로 정상 배치한 객실 종류는 사전에 모두 계획에 따라 배치되고 브랜측의 전문적인 검토와 테스트를 통과했다. 소방 표준 미달일 경우 정상적인 영업이 불가하며 정상적인 입주에는 문제가 없다.  현재 해당 호텔의 공식 홈페이지 객실 가격은 일반적으로 300원 안팎이다. 가격 문제에 대해 고객서비스센터는 다른 류형의 객실 가격에 비해 이 객실은 가격이 훨씬 저렴하고 일부 특정 고객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연변라지오TV넷 연변방송APP 출처: 중국조선어방송넷
  • 간부와 작가, 곧은 정신을 만나다
    연두빛신록이 장백로에 여울지는 계절에 허룡석 선생을 만났다. 긴시간의 대화를 나눴다. 기자로부터 공직자, 작가를 거치며 다시 생활의 진리와 인간다운 모습의 정직한 삶을 추구하는 그의 덕목에 필자는 모름지기 경건함도 생겼다.그는 1951년 2월 룡정시 동성공사(동성용진) 한 농민가정의 외아들로 태여났다. 1979년 12월에 중앙민족학원 민족언어번역학부를 졸업했으며1980년 7월부터 연변일보사 기자, 부주임, 주임, 부총편집으로 사업했다. 1995년 3월부터는 연변인민방송국 국장 그리고 길림성라지오텔레비죤방송예술가협회 리사, 연변라지오텔레비죤방송예술가협회 부회장을 지녔고 1999년 7월부터 다시 연변일보사 사장 총편집, 당위서기를 력임했다. 2002년 연변주제8차당대표대회 위원으로 선거되였고 중국기자협회 리사, 중국소수민족신문연구회 상무부회장, 길림성신문업협회 부회장, 연변기자협회 주석을 맡았다. 그러다 2006년3월부터 연변작가협회 주석, 당조서기와 중국작가협회 회원, 중국작가협회 제6기, 7기 전국위원회 위원을 력임했다.문학작품으로 중편소설‘팔부형이 이사가다’, ‘해후’, ‘잠식’, ‘큐피드의 영탄곡’, ‘달빛도의 락원’, ‘첫수업’ 등과 단편소설 ‘사랑과 령혼’, ‘인분표’, ‘지부서기의 자살’ 등 40편과 기행, 수필, 잡문, 칼럼, 동화 등 100여편 그리고 신문기사집 “창을 열면 진실이 보인다”, 장편기행집 “신비한 아랍땅으로 가다”, 단편소설집 “수의가계”가 있다.1. 꿈은 기자1972년, 21살나던 해였다. 5월 중순 세전이벌 한복판에 자리잡은 생산대에서는 모내기를 먼저 시작하는 이란공사 유채대대에 손잡이 뜨락또르를 보내여 논밭써레 삯일을 해주게 되였다. 며칠째 숨가쁜 밭풍경, 그러던 중 뜨락또르의 동음이 하루는 덜컥 끊어졌다. 한 부속품 나사가 터져나가면서 뜨락또르가 논바닥에 그대로 멈춰버린 것이다. 자체로 수리할 수 없는 고장이라 운전수는 어쩔바를 몰랐다. 한시도 지체없어야 생산대일을 계속 진행할텐데. 안달아난 운전수는 앞뒤로 뛰여다니다가 마을사람들의 귀띔대로 100여리 떨어진 산너머 왕청현중평공사농기계관리소로 향했다. 연길현의 맨 뒷자락에 자리잡은 유채대대는 산을 등지고 왕청현의 경계에 자리잡고 있었다. 이튿날 오후 나사를 얻어가지고 돌아온 운전수가 감격에 들떴다. 서로 다른 현이지만 중평공사농기계관리소 일군들의 봉사태도가 그토록 좋았다는 것이였다. 김씨라는 분은 성부지 명부지였음에도 규격에 맞는 나사를 찾으며 일군 몇사람까지 동원해 자기일처럼 수리해줬다. 그러고는 쉼없이 기계를 돌리느라면 또 고장날 수 있으니 하나는 여남으로 쓰라면서 나사 두개를 더 쥐여주더란다. 돈을 치르려 하자 “농민형제들 일이면 우리들 일이지!”하면서 기여코 운전수를 밀어냈단다.그때 마치 무슨 령감의 불꽃이라도 점화되는 기분을 느꼈는지 어린 허룡석은 정황들을 까근히 물어보고나서 원고를 작성해 연변일보사에 부쳐보냈다. 그는 저도 모르게 뉴스에 대한 애착을 느꼈던게다. 감동사실을 반영한다고만 생각했을 뿐 그것이 정말로 신문에 실릴줄이야. ‘나사 두개’라는 제목의 기사에는 그의 이름 석자가 번듯이 활자로 찍혀나왔다. 흥분에 휩싸여 심장이 튀여나올 것만 같았던 그 순간, 꿈은 그렇게 가슴 깊은 곳에서 순간적으로 피여나왔다. 꿈은 어쩌면 애써 찾는 것이기도 하지만 ‘아차’하고 발견되는 우연이기도 하다. 당사자를 안 만나고 썼던 기사인지라 확인차 그들을 찾아갔더니 기계관리소에서는 대단히 기쁘게 맞아주었다. 그 시기 대대나 생산대 집체는 물론 절반 이상 사원가정들에서도 모두 자원적으로 당보를 주문해봤기에 신문에 실렸다하면은 그야말로 폭발적인 뉴스였다. 특수시기 정치운동때문에 별로 배우지도 못하고 중학교를 졸업했다는 허울을 쓰고 고향에 돌아온지 몇해 되였어도 토끼꼬리만한 지식으로 장차 뭘 할지 아리송해 세상 돌아가는대로 휘둘리기만 하던 이 아이는 결국 인생행로를 찾은 셈이였다. 흥취에도 부합되니 얼마나 복받은 일인가. 그후부터 굶주린 날새가 먹이찾아 다닌다고 그는 여유만 나면 보도감을 찾아 분산된 대대마을을 헤집고 다녔다. 신문에 실린 원고도 눈에 띄게 많아졌다. 그는 일보사란 대체 얼만큼 엄엄한 곳이고 기자란 얼마나 멋있는 사람들인지 보고싶어 하루 한번씩만 통하는 뻐스에 올라 30리 떨어진 연길을 무작정 향하기도 했고, ‘생산대로동책임제’ 관련기사가 중요원고로 취급돼 담당편집의 단평이 함께 발표됐을 때에는 대대의 ‘작은 영웅’으로 떠오르기도 했다. 그리고 공사에 명망높은 전국로력모범 김시룡, 전국모주석저작학습표병 황순옥, 전국 3.8홍기수 리옥금 등 선진인물들을 쓴 원고는 더욱 큰 중시를 받았다.그러다 1973년에는 대대공청단총지서기와 골간통신원으로 활약하면서 행운스럽게 연변일보사 골간통신원강습반에 추천돼 학습기회를 가지며 더 많은 신문원리를 터득했다. 두달가량의 견습은 앞으로 어떻게 해서든 기자로 될 다짐을 하게 했다. 그러면서 그는 입당과 동시에 대대당지부서기로 발탁됐다. 그 기간 허룡석은 각 생산대 지식청년 적극분자대오를 정리정돈하고 발전성 있는 청년들에게 의식적으로 공청단이나 민병간부 혹은 부녀간부 생산대간부 책임을 떠맡겨 그들이 실천 속에서 자기장점을 발휘할 기회를 마련해줬고 한해 지식청년 6명을 입당시키는 전례를 창조하기도 했다.그러나 공사간부는 대대사람들의 위촌에 떠밀려 한 것이지 그의 꿈이 아니였다.대학추천을 받을 수 있는 마지막 년령, 25주세 되던 해, 그는 10년 전 홍위병대표로 북경에 가 주숙했던 중앙민족학원 도서관을 떠올리면서 대학꿈을 꼭 실현할 것이라 결심했다. 공사 ‘철밥통’을 가질 수 있음에도 지식이 운명을 개변한다는 도리를 그는 깨달았으리. 대대와 어머니의 반대에도 그는 연변일보사 박하림 주임을 찾아나서면서까지 스스로에게 기회를 창조했다. 하늘도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어릴적부터 분석력과 순발력이 뛰여난 고집스런 청년 허룡석은 1976년 마침내 오매불망 그리던 중앙민족대학꿈을 이뤘다.졸업 후에는 다시 연변일보사에 돌아왔으며 3년간의 기자, 8년간의 부주임, 주임을 거쳤다. 박하림 부총편이 퇴임하게 되자 그는 주당위 비준을 거쳐 부총편집, 사장을 맡았다. 한편 조직의 배려로 ‘인민일보’, ‘농민일보’ 전국편집기자 훈련반에도 참가했고 한국의 ‘중앙일보’,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에 견학하며 관계를 돈독히 했으며 조선정부 기관지 ‘민주조선사’와도 제휴관계를 맺으며 친분을 유지했다. 또한 유일한 소수민족대표 5명으로 구성된 중국신문대표단에 참가해 민족언론를 홍보했다. 다년간의 노력 하에 연변일보사와 그는 성신문학회 선진과 모범으로 선출되기도 했다…2. 세개의 25년그에게는 우연과 필연이 겹쳐진 세개의 25년이 있다. 20살에 남에게 떠밀려 덩덩히 연변인민방송국 아나운서 시험을 쳤다가 락방되고 25년 후에 연변인민방송국 국장이 된 것. 23살에 연변일보사 전주 통신원강습반에 조선족 4명 중 한명으로 뽑혔다가 25년 후에 연변일보사 사장, 총편집으로 된 것. 31살에 첫 단편소설 ‘사랑과 령혼’을 연변문예에 발표했다가 25년 후에 연변작가협회 주석, 당조서기로 된 것.1995년, 그는 연변인민방송국 국장을 맡게 되였다. 그 시기 그는 한국의 주요방송사들인 KBS, MBC, SBS등 중앙급, 지방급 방송사들과도 허물없이 래왕했다. KBS홀의 프라이즈시상대에도 올라보았고 대통령 좌편에 자리잡고 앉아 대통령의 즉흥적인 제의로 발언도 했다. 그는 방송국의 중층간부초빙제, 직원초빙제, 장려처분제도보완 등 획기적인 개혁으로 특수공헌자 명예를 받기도 했다. 또한 경제가 어려운 형편에도 조건을 창조하여 력사상 처음으로 생방송을 제때에 올리면서 전례없는 방송효과를 이룩하기도 했다.“개혁이 물결치는 시절이였어요. 개혁이란 정확히 하면 혁신이지만 방법론이 틀리면 재앙이지요”허룡석은 1999년에 연변일보사 사장, 총편집, 당위서기로 발령이 내렸다. 그 시기 정부의 부축으로 살아가야 할 연변의 신문출판, 문학예술은 부유한 남쪽동네의 개혁을 따라한답시고 장장 9년 동안이나 시장에 떠밀렸다. 로임을 주지 못하면서부터 상황은 완전히 뒤죽박죽이 되였다. 다년간 월급을 제대로 받지 못하면서도 조직을 믿고 울분을 조용히 삭혀오던 편집기자들, 나중에는 퇴직인원들도 동원돼 이들은 조직이란 ‘보뚝’을 터뜨리고 프랑카드를 들고 주당위 청사앞에가 ‘먹고 살게 해줍시사!’, ‘민족정책을 제대로 관철집행하라!’며 불만을 호소했다. 이는 전국소수민족 당기관보 중 유일한 청원이며, 결국 두차례에 거친 대규모청원으로써 현실을 마구 떠난 시장화는 막을 내리게 되였다. 그렇게 록록치 않은 마지막 7년을 사장, 주필로 헐떡인 선생은 이 어려운 환경에서도 주 지도자들을 찾아 뛰여다니면서 연길시 가장 번화한 중심지역에 연변일보사 12층 건물옆에 19층 건물을 일으키기에 필사의 노력을 들였다. 여기에는 그를 중심으로 한 많은 이들의 로고가 있겠다…“문제의 근원은 나한테 있지 않지만 어쨌든 청원사건이 나의 임직기간에 두번이나 발생했으니 책임을 회피해서는 안되지요” 불운마저 달갑게 받아들이는 한 공직자의 바른 자세가 돋보이는 대목이다.우리는 굳이 삶의 우연과 필연을 따져 그것에 빠져 크게 아파하거나 크게 기뻐할 필요가 없다. 그것이 서로 뒤엉킨 것이 바로 인생이기에. 신은 아마 세개의 25년 그리프를 사전에 정해놓고 그 틀에서 벗어날가봐 그를 아픔을 겪게 하면서도 신비하고도 종잡을 수 없는 필연을 만들어놓았는지도 모른다.3. 작가, 그 무거운 이름에 대하여간부란 양성되는 것이지만 작가란 발견되는 것인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뒤늦게 창작에 참여했어도 선생은 분명 작가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스스로는 작가가 아니라고 말하는 선생을 보면서 필자는 다시 한번 ‘작가’라는 이름의 무게에 대해 생각해봤다. 지금은 여기저기 작가가 용솟음치는 시대다. 모두가 작가이면서 대부분 작가가 아닌 시대다. 글로동자와 작가는 엄연히 다른 개념이다. 작가의 창작활동은 쉽게 말하는 것처럼 그런 손쉬운 일이 아니라 제 살을 뜯어먹고 제 피를 빨아먹고 제 뼈를 갉아먹는 괴로운 로동이다.2006년, 연변작가협회 주석, 당조서기를 력임한 선생의 창작활동은 그때로부터 수필과 소설을 대량으로 써내면서 활기를 보였다. 그는 한편으로는 작가들 무리에서 개성과 자존심 강한 작가들을 ‘상대’하며 맡겨진 직무를 성실히 리행해야 했고 한편으로는 자신의 풍격대로 창작에도 매진해야 했다.이미 방송국시절부터 그는 원칙없는 풍기를 바로잡는 곧은 국장으로 알려져있었다. 곧은 성격 그리고 덕목있는 됨됨이와 해학적인 유머로 그는 작가들의 어떤 ‘모욕’도 다 리해하고 이겨내면서 비바람 잘 새없는 작가협회 ‘두목’노릇을 착실히 전개해나갔다. 어떤 이들의 ‘개떡’같은 말도 ‘호떡’같이 들어줄 아량을 키웠고 ‘각설이’같은 ‘환자’도 ‘갑순이’로 보아줄 너그러움도 생겨났던 것이다.“생각해보면 작가란 군체가 없다면 사회와 민족, 력사에 책임지는 민족문화와 인류문화의 한구석은 크게 구멍뚤릴 것입니다. 아무리 모지름을 써도 큰 돈 못벌고 권력 없는 작가들, 더우기 모어로 창작하는 소수민족 작가들은 ‘불쌍한’ 군체이지요. 그러면서도 이들은 민족문화의 번영을 위해 개인 득실을 따지지 않는 귀중한 군체이지요”라고 말하는 선생은 ‘괴짜’같은 작가들 덕분에 무딘 필이나마 들고 다시 문학이란 ‘량산’에 오를 수 있었단다.또한 고정된 문학사업자금이 조달되지 않은 형편에서 체면을 무릅쓰고 해마다 여기저기에서 자금을 인입해들이고 연변작가협회 50주년 경축행사를 성대히 벌였고 대사기와 번역작품을 출판하고 각종 세미나 등 문학행사를 개최했다. 거기에 ‘연변작가협회문학상’, ‘김학철문학상’, ‘화림신인문학상’등 여러 종류의 문학상응모 및 시상식을 제때 펼치고 산하 창작위원회들의 문학활동을 경제적으로 부축하며 젊은 작가들을 양성했다. 연변밖의 창작위원회들을 순방하기도 하고 회원들간에 모순과 갈등이 생기면 ‘재판관’을 자처했으며 중국작가협회에 우수작품을 추천하고 관계를 돈독히 하는 공작들을 차근차근 진행해나갔다.이에 중국작가협회 당조서기를 력임했던 김병화는 “소수민족 문학은 중국주류문학의중요한 구성부분이지요. 작가협회사업은 자기로서의 개성과 특성이 있으니 당정기관과 언론계의 작법을 그대로 옮겨와서는 안되지요”며 선생의 공작태도를 긍정했다.선생은 결코 ‘문학도 모르는 주석’이 아니였다. 그는 륙속 ‘아리랑’, ‘연변문예’, ‘은하수’ 등에 소설을 위주로 수필, 동화, 칼럼 등 100여편을 발표하며 작가의 립지를 다졌다. 주석으로 온 후 선생은 주석이라는 베일을 과감히 벗어버리고 저잣거리의 광대가 되여 보통 작가들은 말하기 힘든, 말하기 저어하는 사회적비리를 서슴없이 파헤쳤다. 그는 관청사회 부조리와 사회적문제에 누구보다도 예리한 시각으로 치렬한 문제의식과 사회의식을 담아내며 어두운 삶의 그늘에 촛불같은 그런 글을 써온 작가이다. 그의 소설들에는 속악스러운 경쟁론리만 강조되는 복잡한 현실 속에서 부패한 현실문제를 변혁하려는 굳건한 의지가 끊임없이 반영되고 있다. 중편소설 ‘해후’와 ‘팔부형이 이사가다’ 등이 모두 이러한 소재이며 수필 인생3부곡 ‘인생은 널뛰기’, ‘인생은 뽈차기’, ‘인생은 소용돌이’; 잡문 ‘낯가죽은 엷으면 좋느리라’, ‘아첨쟁이의 속마음’; 단편소설 ‘장기들의 반란’ 등도 모두가 훌륭한 문제작들이다.문학작품의 내재적 령혼에는 시종 하나의 정신이 관통되여 있는데 그것이 바로 작가가 마음 속으로부터 부르고 싶은 ‘노래’이다. 이렇게 비춰볼 때 선생은 문학창작에 량심을 걸었다. 그는 승화된 문학언어로 자기의 량심을 써냈고 민족적량심, 력사적량심을 밝힌 것이다. 이는 그가 보도매체 지도일군 그리고 크고 작은 부문, 높고 낮은 간부들과 자주 접촉하며 변화무쌍한 관청사회를 몸소 겪은 까닭에서일게다. 그 소재들이 알알이 글감으로 될 수 있다는 것을 그는 문단에 발을 들여놔서야 새삼 깨달았다. 모래 속에 묻혀있던 진주를 작협에서 발견한 셈이다. 농축된 원액같이 그것들의 무게와 속울음을 각혈하듯선생은 퇴임 13년에도 치렬하게 글을 토해내고 있다…4. 인간 허룡석평범한 농촌부녀였던 어머니는 선생이 공사간부로 된 것에 만족하며 어서 빨리 결혼해 손주를 안겨주기를 원했다. 그때 그는 수천명 귀향, 하향청년들을 거느리는 공청단서기로 있었기에 따르는 처녀들도 한둘 아니였다. 하지만 더 배워야겠다는 욕심에 ‘철밥통’ 직업도 포기하고 부모의 마음도 모르는척 하면서 기어코 대학에 갔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로서 불효를 저지른 것은 아닌지 후에도 선생은 마음에 걸렸다.한 로인은 태여나서부터 자주 앓는 애들에게는 이름을 천하게 지어야 명이 길다면서 선생에게 ‘매지’라는 이름도 지어주었단다. 젖이 안나는 어머니는 그를 안고 동네를 돌며 동냥젖을 먹였다. 어머니의 못말리는 정성에 맘씨 고운 마을 어머니들은 그를 불쌍히 여겨 젖을 물려줬다. 그러다 렴치없이 계속 이럴 수는 없다고 생각한 어머니는 그가 좀 춰서자 암죽을 끓여먹였다. 사탕이 귀하던 때에 어머니는 어데가서 사탕가루를 얻었는지 암죽에 꼭꼭 사탕가루를 섞어주었다. 마구 거부하던 어린 피덩이를 보며 어머니는 온돌바닥을 치며 울다가도 다시 일어나 암죽을 끓였다. ‘천인젖’을 먹던 입은 어느새 암죽에 습관되였는지 잘도 받아먹었다. 어머니 열손가락은 이미 불에 데고데여 감각을 모르는 살만 두텁게 들어앉았다. ‘비천한’ 농민으로서 부모들은 그에게 우월한 사회환경과 재부를 안겨주진 못해도 그들은 평생의 정력과 심혈로 선생을 키웠다.대학 졸업 후, 담임 리용식 선생은 ‘학교에 남으라’는 놀라운 기회를 창조해주셨다. 이에 선생은 한동안이나 "그래도 발전하자면 여러모로 조건이 훌륭한 북경에 남아야 한다. 작은 늪에서는 큰 고기가 자랄 수 없다. 드넓은 바다가 나의 수영장이다...” 또 “그러면 효도는? 고작 출세를 위해 평생을 자식 위해 아글타글하신 부모 가슴에 피눈물 고이게 할 것인가? 효성이 지극하면 북두칠성도 굽어본다 했다. 개구리가 되였다고 올챙이때를 잊지 말아라...”의 사상투쟁 컸다도 한다. 그는 출세와 효도, 량심을 모두 지킬 수 없는 현실에서 도덕적선택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의 장래보다도 우선 량심있는 인간이 되고 싶었고 은혜를 아는 자식이 되고 싶었다. 마침내 귀향을 택한 그는 80세 어머니가 돌아간 후 골회를 아버지 산소곁에 모셨다가 32년 후 소하룡 합수목에서 두분을 띄워보냈다. 못난 나무가 선산을 지키고 못난 자식이 부모곁을 지킨다. 효도를 위하여 기어코 ‘못난이’를 자처한 선생의 바른 마음이야말로 인간의 도덕이고 량심의 선언인 것이다.뜨거운 것일수록 덤덤하게 조용히 으깨는 법이다. 선생도 마치 슬픔이나 사랑이나 열정이나 모두를 덤덤함 속에 치렬하게 녹여내는 듯싶었다. 한생 한사람만 사랑한 그에게 아내 김순선은 평생의 동지이기도 했다. 아내는 선생이 방송국과 일보사 간부를 전전하던 성장길에서 ‘거금’을 빌려주면서까지 곁에서 지지해준 사람이다. 생물학적각도에서 죽음은 그저 먼저 죽고 후에 죽고하는 것뿐인데 후에 가는 사람은 먼저 간 사람의 슬픔마저 짊어지고 살아내야 하니 더 슬픈 법이다.작년 춘삼월에 세상 뜬 아내는 근 20년간 신화서점 총경리, 당조서기로 중공중앙선전부와 국가신문출판총서에서 발급한 전국도서발행 최고영예상, 성 출판집단 우수경영관리일군 등 수많은 명예를 따냈으며 사업수요로 6년간의 연장근무 중 심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은 탓에 2009년부터 난치질환인 파키슨병에 걸렸다. 그런 아내를 선생은 장장 14 년 동안 손발이 되여주며 살뜰히 보살폈다.선생은 남편으로써 아내를 향한 작은 부름에도 무한한 존경과 사랑을 담았다. 선생은 행사가 있어 나갔다가다도 저녁회식이 있을 때면 “우리집 ‘당의 딸’이 기다리니 나는 들어가야 하오”라며 급급히 돌아와 아내의 저녁식사를 챙겼다. 파키슨으로 고통을 겪던 중 2019년에는 부주의로 넘어져 척추 12마디를 수술하며 만신창이 된 아내를 그는 한시도 떨어지지 않으며 간호원으로 나섰다. 코로나방역통제로 시국이 가장 어려웠던 시기 선생은 휠체어를 밀고 여러층을 오르내리며 검진을 받게 했고 밤이면 침대사이에 방수포를 펴고 쪽잠을 잤다. 그후 아내는 기본상 바깥세상과 동떨어져 집안에서도 걸어다니는 시간보다 누워있는 시간이 더 많다보니 오장륙부마저 하나둘 병들었고 페에 염증이 생겨 기침이 나고 가래가 끓고 숨이 올라오지 않아했다. 체중도 35키로까지 줄었다. 아득바득 생의 끈을 놓지 않으려 대성통곡하다가도 다시 힘을 내주는 아내를 보며 선생은 가슴이 찢어졌다. 선생은 아내가 민감한 마음에 조금이라도 거리감을 느껴 서글퍼할가봐 마스크도 고무장갑도 없이 오로지 변함없는 사랑과 책임으로 14년 동안 아내를 간호했다. 백년가약을 맺던 호시절의 첫마음을 결코 잊지 않은 선생은 그 언약을 평생으로써 지켜냈던 것이다…...“아직 쓰고 있는 글들도 있고 못 발표된 원고들도 있고…”언제 발표될지도 모르는 원고들이지만 아직 글쓰기를 놓지 않았다는 선생에게 정녕 글이란 혼자 쓰는 것이며 스스로 펼치는 환희거나 목마름임을 느꼈다.헤여질 무렵, 선생은 나의 손을 잡으며 따뜻이 웃고 있었다. 누군들 부딪치고 치우치며 살지 않는가. 그러나 자신을 찾아오는 불운에 원망보다는 감사, 곧은 마음으로 대처한 선생에 필자는 되려 진통으로 밤을 새웠다…/류설화 기자
  • [길림성 날씨] 26일-27일 비 소식! 28일부터 기온 떨어져
    이번주 일기예보 이번주(9월 25일-10월 1일) 길림성 평균기온은  14.0℃ 안팎으로 평년보다 조금 높겠다. 길림성 평균강수량은 6.0밀리메터 좌우로 평년보다 조금 적겠다. 25일 중동부 대부분 지역에는 적은 비가 내리겠고 27일 중동부에 적은 비가 내리겠으며 29일-30일 중북부에는 중등 정도의 비가 내리겠고 기타 지역에는 적은비가 내리겠다. 이번주 기온의 단계변화가 뚜렷하겠는데 25일-27일 기온이 오르다가 28일부터 떨어지겠다. 이밖에 25일-26일 중서부에는 4~5급의 서남풍이 불겠고 순간풍력은 6급에 달하겠으며 27일 중서부에는 5급 좌우의 편서풍이 불겠고 순간풍력은 6급 혹은 그 이상에 달하겠다. 25일-28일 강수상황 25일 오후부터 26일 낮까지 길림성은 구름이 많겠고 장춘, 사평, 길림 부분적 지역에는 소나기가 내리겠다. 26일 밤부터 27일 낮까지 길림성은 구름이 많겠고 이따끔 흐리겠으며 장춘 동부, 사평 동부, 료원, 길림, 통화, 백산, 연변, 장백산보호구에는 소나기 혹은 천둥 번개를 동반한 소나기가 내리겠고 장춘 서부, 사평 서부의 부분적 지역에는 소나기가 내리겠다. 27일 밤부터 28일 낮까지 길림성은 구름이 많다가 개이겠으며 백산 동남부, 연변 남부의 부분적 지역에는 소나기가 내리겠다.  25일-27일 기온추세 이 기간 길림성 기온은 지속적으로 비교적 높겠고 대부분 지역의 낮 최고기온은 23, 24℃ 좌우를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25일-27일 길림성 야간 최저기온은 전기에 높고 후반에 낮겠으며 25일 밤부터 26일 밤까지 대부분 지역의 최저기온은 13, 14℃겠다. 27일 밤 각지의 최저기온은 10℃ 및 그 아래로 떨어지겠고 낮과 밤 기온차이는 부단히 커지겠으니 아침 저녁으로 옷을 적당히 더 챙겨입길 바란다. 향후 7일 일기예보 연변라지오TV넷 연변방송APP 출처: 길림성기상국 편역: 김홍화
  • 연길 한 녀성, 이런 수법으로 38만원+500여만원 사기쳐...
  • [날씨] 이번 주 연변 기온 높아... 두차례 비소식!
  • 중국체육대표단, 10월 8일 조선 방문
  • 신청 필요없어! 오늘부터 첫 주택대출 금리 자동 인하
    중국인민은행과 국가금융감독관리총국이 발표한 통지에 따르면 은행은 9월 25일부터 첫번째 주택에 대한 상업성 개인주택대출 금리를 인하하게 된다. 주택담보대출 금리 조정이 초읽기에 들어가면서 은행의 준비작업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조작은 편리한지 알아보자.첫 주택대출 금리, 은행에서 신청 필요없이 자동 조정 이번의 조정 범위는 첫번째 주택대출, 첫번째 주택을 처분하고 주택 재구매시 신청한 대출, 공적금 조합 대출의 상업성 개인주택대출이다. 현재 많은 은행들이 일반적인 문제에 대한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시행 규칙을 발표했다. 일반적으로 조정은 첫번째 주택과 두번째 주택으로 나뉜다. 첫번째 주택대출 금리 조정에 대해 개인은 별도의 신청이 필요없고 은행이 자률적으로 일괄 조정을 한다. 현재 많은 은행들이 모바일 뱅킹에서 ‘주택대출 금리 조정’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동시에 고객에게 지원조회서비스를 제공하고 처리절차를 간소화한다. 례를 들어 공상은행 모바일뱅킹 첫 화면에서 ‘금리조정’모듈을 볼 수 있고 클릭하면 해당 개인주택대출의 조정 적격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조건에 맞는 첫 대출의 경우 개인은 은행에 금리인하를 신청할 필요가 없고 은행이 9월 25일 자률적으로 일괄 조정해 결과를 본인에게 문자로 알리고 이날부터 새로운 금리가 적용된다.공상은행 외에도 농업은행은 9월 15일부터 모바일 은행, 대출 취급점, 영업점, ‘중국농업은행 미니은행’ 및 기타 채널에서 첫 번째 주택대출 금리 조정 관련 조회 서비스를 시작했다. 중국은행 모바일뱅킹은 개인주택대출의 대출금액, 원금잔액, 현재 집행금리, 금리계산방법, 최초 주택대출 여부 등 정보를 조회할 수 있는 ‘주택대출금리 조정’기능을 출시했다. 중소은행들도 국유은행을 참고하여 시행 규칙을 제정하고 발표하고 있다.‘첫 주택 처분하고 재구매한 주택’ 대출 금리 조정 9월 신청 접수여러 은행이 발표한 세부 규칙에 따르면 ‘첫 주택 처분하고 재구매한 주택’ 대출의 경우 대출자는 은행에 자진 신청해야 한다.대출 당시 첫 주택이 아니였지만 지금은 이미 해당 도시의 첫 주택 정책에 부합되는 가구, 즉 ‘첫 주택 처분하고 재구매한 주택’의 대출 금리 신청에 대해 많은 은행들은 각지의 상황이 다른 원인으로 도시마다 두번째 주택 승인이 복잡하고 다양해 은행 시스템에서 직접 식별할 수 없기때문에 대출자가 첫 주택 대출 관련 증명자료를 은행에 제공해야 한다고 밝혔다. 대출자는 9월 25일부터 은행에 신청서를 제출하고 증빙자료를 제공할 수 있다. 신청서를 접수한 후 은행은 조정 신청서를 하나씩 수동으로 검토하고 10월 25일 심사에서 통과되면 일괄 조정한다. 10월 25일까지의 집중 신청 기간을 놓치면 그후에도 신청할 수 있는지에 대해 많은 국유은행은 그 후에도 가능하다고 표했다.전국 평균 조정폭 약 80bp많은 사람들의 관심사인 조정폭에 대해 현재로서는 각 은행의 조정 규칙은 기본적으로 동일하다. 주택담보대출의 조정범위는 주로 기존 대출의 발급 시기, 발급 당시 소재 도시 첫 주택담보대출 금리 정책 하한선, 발급 당시 전국 첫 주택담보대출 금리 정책 하한선에 따라 결정된다. 전국적으로 조정된 평균 폭은 약 80bp이다. 래원: 인민넷-조문판(편집: 김홍화)
  • 명확! 월급 앞당겨 지급한다!
    국경절 련휴가 곧 시작되는데 이번달말 이런 사람들의 수입에 큰 변동이 있을 수 있다. 매달 로임 지급일이 1일-6일인 사람들 주의하자! 10월 월급은 앞당겨 지급될 수 있다. 만약 이런 조작이 어떤 상황인지 묻는다면 그것은 바로 우리 일하는 로동자의 로임지급에 관한 규정에서 알아볼 수 있다. 이 규정은 새로운 규정이 아니라 2004년 1월 1일부터 지금까지 시행되고 있는 규정이다. <로임지급 잠정규정> 제7조항: ● 로임은 용인단위와 로동자가 약속한 날자에 반드시 지급되여야 한다. ● 휴가나 휴일의 경우 가장 가까운 근무일에 미리 지급해야 한다. ● 로임은 매달 최소 한번 지불해야 하고 주, 일, 시간 로임제를 시행시 주, 일, 시간 단위로 지급해야 한다. 많은 용인단위는 매달 5일 전에 로임을 지급하는데 그렇게 되면 국경절 련휴에 많은 사람들은 10월 로임을 미리 지급받을 수 있게 된다. 연변라지오TV넷 연변방송APP 출처: 인민넷 조문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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