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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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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자료} - 우리 조선민족 시단은 다원화 창작으로... 댓글:  조회:2035  추천:0  2018-03-04
연변지역 시문학의 뿌리와 그 현황   장춘식     연변지역의 문학이란 사실상 조선족의 문학이다. 이민시기 “간도”로 불렸던 연변을 중심으로 만주지역에서 이루어진 이주민 문학 전부를 흔히 “연변문학”으로 통칭하기도 한다. 본고에서도 이런 범주에서 논의를 전개하고자 한다.     1. 연변지역 시문학의 뿌리   연변지역 시문학의 뿌리는 어디에 있을까? 당연히 한민족의 문화 전통과 문학유산, 특히 근, 현대 문학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러나 이민지에서 새로운 문학 전통을 쌓으며 상당 정도 변모를 보이기도 한다.   연변지역 시문학의 효시는 아무래도 창가와 항일가요라 할 수 있는데 창가는 주로 개화기 이후 이주민들이 설립한 학교들에서 불린 노래이고 항일가요는 일제강점기 동안 항일유격대와 유격구 항일민중들 속에서 불린 노래들이다. 창가는 주로 문명개화와 관련된 주제가 다수이고 항일가요에는 일제에 대한 투쟁의지를 고양시키려는 의도가 뚜렷이 표현되어 있다. 형식적 측면에서 이 두 유형의 작품들은 기본적으로 자유시의 형태를 띠지만 민요적인 요소도 일부 보인다. 이들 작품은 당대에는 상당히 많이 창작되었겠지만 현재 남아 내려온 텍스트는 별로 많지 않다. 그 밖에도 전통적인 장르인 한시도 상당 정도 창작되었다.   그러나 본고에서는 문단에서 떨어진 이들 시가작품 보다는 이민지 문단에서 창작된 시작품을 주요 연구대상으로 하였다.   문단을 통한 연변지역의 시문학은 당시 발행되던 , , , , , , 등 신문, 잡지들을 통하여 이루어졌다. 그것이 1940년대 초반에 , 등 시집으로 집대성되기도 하였다. 이를 시기별로 나누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시기의 시문학   먼저 시기의 시문학은 의 성격과도 관련되겠지만 계급문학적인 성격이 강하다. 에 게재되었던 시작품으로 현재 전해지고 있는 것은 겨우 9편이다. 3년여에 걸쳐 발행되었던 신문에는 이보다 훨씬 많은 작품들이 게재되었을 것으로 짐작되는데, 겨우 9편의 작품으로 그 전모를 파악하기는 어렵다. 이 작품들은 를 통해 활동했던 우리 시작품의 한 단면을 보여줄 뿐이다.   백악산인(白岳山人)의 「朝鮮心」이 민족주의적인 이념이나 의식을 드러내고 있는 외에 다수의 작품은 계급적 이념이 짙게 드러나는 작품들이다. 가령 초래생(初來生)의 「단오(端午)」나 김근타(金根朵)의 「밤」, C.S.C의 「언니를 그리며」, 남문룡(南文龍)의 「백색테로」 등 작품이 그렇다. 초래생의 《단오(端午)》에서는 단오명절을 맞아서도 아이에게 새 옷은 물론 과자마저 사 먹이지 못하는 병든 어머니의 애탄 사정을 그리면서 “차라리 생명을 땅에 두며/인간의 모든날을 전취하야/우리의 명일(名日)을 만들 때까지” 투쟁하여 혁명을 이루어야 한다는 계급혁명의 이념과 의지를 표현하고 있다. 김근타의 「밤」에서도 사회적약자인 어린애를 빈곤상징의 형상으로 이용하고 있고 또 비슷한 주제를 다루고 있으나 좀 더 구체적이고 상황이 절실하다.   밤은 깊어 집집에 등불은 켜지고 하늘우에 별들도 반짝거리건만 맥없이 늘어진 그는 별조차 보지 못하였다 배고파 잉-잉 밥달라 우는 어린애 세네때 굶주린 어머님에게 어찌 젖이 있으랴 오! 우는 그 애를 어찌 달랠것인가?   곁집에선 저녁연기 끊은지 오라고 뒷산에 부엉새는 깊은밤을 노래하는데 때지난 이때 누구의 집에서 한술밥 얻어오랴 여전히 울고있는 어린애는 말끝마다 밥주-- 한숨짓는 부모의 간장 다 녹여내리나니 긴긴 여름밤 또 어찌나 새워보내랴   1930년 5월 7일 밤에   「밤」의 전문이다. 어린애는 배고파 밥 달라 하는데 어머니는 굶주려 맥없이 늘어져 있다. 게다가 밥 한술 얻어 올 수도 없는 상황이다. 그러니까 이들 두 작품은 못가진자의 빈곤한 삶의 양상을 계급적 시각에서 그리고 있다 하겠다. 빈곤상황의 제시는 계급의식의 표현이나 공산주의, 사회주의 이념의 구현에서 흔히 사용되는 방법이다. 못사는 민중을 의식화시킴으로써 계급혁명을 이루려 하였던 것이 이때 사회주의운동의 기본적인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비록 자료적인 한계 때문에 이 시기 시문학의 전모를 평가할 수는 없으나 현재 남아있는 작품으로만 보면 시기의 시문학은 예술적인 성취도가 높다고 보기 어렵다. 어떤 측면에서 보면 의식과잉, 이념과잉의 문제점들도 노출되고 있다. 그러나 그 시기 열악했던 문화 환경에서 이 정도의 시문학이 이루어졌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으며 특히 일제가 “9.18사변”을 도발하여 중국의 동북 땅을 강점하기 직전에 이루어진 문학이여서 그 이후의 문학과는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는 측면에서 문학사적으로 충분히 의미를 지닌다 할 수 있을 것이다.   (2) 시기의 시문학:   다음, 1930년대 초반에는 주로 를 중심으로 문학작품들이 발표되었는데 현재 자료 유실로 하여 전해진 작품은 단 한편도 없다. 그 모습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는 자료들로 1930년대 중반 용정지역에서 발행된 지의 작품이 있다. 4호까지 낸 지에는 상당수의 시작품이 게재되어 있다. 그러나 다수의 작품들은 “학생시단”의 형태로 발표되었고 강경애, 박계주 등 기성문인들의 시작품도 더러 있지만 전반적으로 작품 수준은 낮은 편이다.   (3) 시기의 시문학:   이민지에서의 본격적인 문학 활동은 를 통해 이루어졌다. 시작품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김조규, 함형수, 박팔양 등 당시 한국문단에서 두각을 드러낸 시인들이 이민해 오면서 이민지에서 성장한 신인들과 더불어 지방색과 이민문학적인 성격이 뚜렷한 시작품들을 창작하였다. 그것을 집대성한 것이 바로 과 이다.   은 1943년(康德九年) 9월에 당시 신경(현재의 장춘)의 제일협화구락부 문화부에서 간행했고 편집인은 박팔양(朴八陽)이다. 그리고 은 그 한 달 후인 1943년 10월에 당시 간도 연길에 있던 예문당(藝文堂)에서 간행했고 편집인은 김조규(金朝奎)였다. 두 편집인의 권위성으로 보나 간행 시간으로 보나 이 두 시집은 현존하는 의 자료보다 훨씬 대표성을 지닌다 하겠다. 따라서 여기서는 이 두 시집에 수록된 작품을 주요 텍스트로 하면서 에 게재된 여타 작품들도 참고하여 논의를 전개하고자 한다.   a. 이민지의 서정   조선족의 문학은 이민문학으로 출발하였다. 조선족의 역사가 이민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러한 이민의 정서가 이민시인들의 시상에서 얼마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이 시기 시작품에는 이민의 정서를 표현한 것들이 많이 있다.   가령 김조규(金朝奎)의 「胡弓」의 경우 이국적인 정서와 이민의 이미지를 동시에 담아내고 있다. 시인은 일차적으로 호궁이라는 중국인을 상징하는 악기를 등장시킴으로써 동북지역 중국인 이주민의 삶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그들과 마찬가지로 이주민인 조선족 이주민의 삶을 호궁이라는 이미지로써 표현한 것이라 해야 맞다. “어머니의 자장노래란다” “일어버린 南方에의 鄕愁란다”라는 두 행의 의미는 오히려 조선인 이미지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래서 “밤새 늣길려느뇨? 胡弓”과 “어두운 늬의 들窓과 함께 영 슬프다.” 라는 마지막 행의 표현은 이주민들이 공유하는 암울한 삶과 슬픈 운명의 이미지가 되는 것이다.   김달진(金達鎭)의 「룡정(龍井)」 또한 이민지의 삶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전략)   黃昏 길거리로 허렁허렁 헤매이는 흰옷자락 그림자는 서른 내가슴에 허렁허렁 떠오르는 조상네의 그림자.   나는 江南 제비새끼처럼 새론 옛故鄕을 찾어 왔거니. 난생 처음으로 馬車도 타 보았다. 胡弓 소리도 들어 보았다. 어디 가서 나혼자라도 빼酒 한잔 마시고 싶고나   작품의 마지막 2연인데 여기서 “새론 옛故鄕”은 아마도 여기가 고구려의 옛 땅이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이점은 3연의 내용과 맞물려 있다. 소위 “호인(胡人)”들 속에서 발견한 “흰옷자락 그림자”를 보며 “조상네의 그림자”를 떠올린 것은 이주해온 이 땅이 전혀 낯설지만은 않으며 따라서 여기가 이주민이 뿌리를 내릴 새로운 고향이 될 수가 있음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점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비록 이민자의 처지는 “서른 내가슴”이라는 표현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불행하고 서럽지만 그 서러움을 “나혼자라도 빼酒 한잔” 마시면서라도 달래면서 살아야 한다는 강한 생존의 의지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민시인들의 정서 속에는 이국땅과 이국인에 대한 편견도 동시에 존재하고 있으며 그런 정서나 편견은 시작품에도 표현된다. 가령 상기 작품의 제2연에서 “한(하얀) 粉이 고루 먹히지않은 살찐 얼굴/당신은 저 넓은 들이 슬프지 않습니가/저 하늘바람이 슬프지 않습니다(가)” 라는 시구에는 이민지 원주민과 이민지의 자연과 기후에 대한 불쾌한 느낌이 표현되고 있는데 비록 이민자로서 그러한 사람과 자연에 적응하기 이전의 주관적인 느낌이기는 하지만 거기에는 일종의 선입견, 즉 “거치른 만주땅” “미련한 만주인”이라는 선입견이 은연중에 드러난 것이다.   유치환(柳致環)의 「哈爾濱道裡公園」도 비슷한 정서를 그리고 있다. 이러한 느낌과 정서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우리는 김북원(金北原)의 「봄을 기다린다」에서 답을 찾을 수가 있다.   (전략)   꼬지깨의 草原이 故鄕의 平原이 되고 高梁의 平原이 벼이삭의 바다가 되는동안 내사 수염과 靑春을 바꾸었고 안해는 새아이의 어머니가 되였다.   잔뼈가 굵어진 故鄕말이뇨 洛東江물을 에워 젖처럼 마시며 아매사 할배사 살엇드란들 그것이야 아스런 옛이약이지.   오붓이 點點한 우중충한 집옹이 五色旗 揭揚臺아래 마을이 봄을 기다린다.   비록 오색기가 만주국의 국기였으니 “五色旗 揭揚臺아래 마을이/봄을 기다린다”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일제 괴뢰국인 만주국 땅에서의 삶이 이제 겨울이 가고 “봄을 기다”리는 희망찬 삶이 되였다고 하였으니 어느 정도 체제 협력적이라는 혐의가 있기도 하지만 여기에는 새로운 삶의 터전을 가꾸고 제2의 고향을 건설하여 대를 이어 살아가려는 민족생존의 의지도 담겨있다. 그러니까 이민지의 자연환경과 기후에 대한 불쾌한 느낌은 다분히 적응의 문제였음을 확인시켜주는 셈이다. 따라서 이제 고향땅에서 쫓겨난 서러움이 조금씩 잊혀져감에 따라 그러한 불쾌감도 조금씩 색이 바래지며 심지어 이민지에서 새로운 삶의 희망을 찾아낼 수가 있었던 것이다.   이는 곧 정체성의 변화를 의미한다. 이제 “잔뼈가 굵어진 故鄕”은 “아스런 옛이약이”가 되었고 화자는 “五色旗 揭揚臺아래 마을”에서 봄을 기다리며 살아야 할 운명이요 처지임을 자인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숙명론적인 체념이 아니라 새로운 정체성의 형성을 확인하는 생존의 의지이다. 윤해영(尹海榮)이 「海蘭江」에서 이민지의 대표적인 강인 해란강을 “寂寞한 江이로다./거룩한 江이로다.” 라고 하면서 자신의 강으로 인식하고 노래하고 있는 것도 이와 같은 차원이다. 이민지의 자연과 좀 더 가까워지고 이제 곧 하나가 되어 감을 뜻하는 것이다.   윤해영은 특별히 그러한 이주민으로서의 정체성 확인에 시적인 관심을 많이 보이고 있다. 앞의 「해란강」에서 화자자신의 현재 삶의 현장을 노래하고 있다면 「오랑캐고개」라는 작품에서는 오랑캐고개를 3단계 역사의 상징적 이미지로 그리고 있다. “二十年前”에 오랑캐고개는 “豆滿江 건너 北間島 이도군 들의/아담찬 한숨의 關門이엇다.”고 했다. 간도이주민들은 대개 두만강을 건넌 후 이 오랑캐고개를 넘어 북간도 땅에 들어섰던 것이다. 그리고 “十年前”, 이 고개는 “밀수군 절믄이들의/恐怖의 關門”이었다고 했다. 그만큼 이주민의 삶이 어려웠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그리고 “오날 이고개엔/五色旗 날부”낀다고 했다. 한숨도 공포도 다 흘러가고 희망의 기쁜 노래만이 넘치는 고개가 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또다시 어용적인 작품의 혐의가 나타난다. 여기서는 그냥 현실에 순응하는 정도가 아니라 괴뢰 만주국의 현재 삶을 어느 정도 찬미하는 의미가 드러난다. 그만큼 만주국의 정치 문화적 담론의 영향이 심각했음을 말해준다 하겠다.   정체성 확인의 욕구는 천청송(千靑松)의 「先驅民」에서 선구민을 통한 역사의 회고로써 표현되기도 한다. 좀 더 궁극적인 확인의 방식이라 할 수가 있다. 특히 5장으로 된 이 작품의 마지막 장인 “墓地”는 너무나도 슬픈 이주민의 운명을 제시하고 있다.   靜穩의 집 무덤은 너무나 寂廖하다 하도 故鄕을 그렷기 넉시나마 南을 向했도다 외로운 밤엔 별빗치 慰撫의 손을 나린다는데 墓標업는 무덤들이 옹기 옹기 정잡(답)계(게) 둘너안젓구나! 눈보라 사나웁든 매듭만흔 歷史를 이얘기 하는거냐.   죽어서 마저 고향이, 고국 땅이 그리워 “넉시나마 남을 향”했다는 표현이야말로 이주민의 슬픈 운명의 상징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墓標업는 무덤들이/옹기 옹기 정답게 둘너안젓구나!”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 화자는 묘지를 또 다른 이주민의 삶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그렇게 보았을 때 이는 곧 이주민의 제2의 고향이 바로 여기, 북간도 땅임을 확인시켜주고 있기도 하다.   함형수의 「歸國」만큼 이주민의 이중적 정체성을 뼈아프게 표현하고 있는 작품도 그리 흔치 않을 것이다. 여기서 귀국은 조선 땅에 돌아왔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화자는 고국의 사람들이 자신이 갔던 곳에 대해 물어보면 어떻게 대답할까 생각하다가 상념은 오히려 “누가 알랴 여기 돌아온것은 한개 덧업는 그림자”이라는 데에 미친다. 이처럼 이제 자신은 더 이상 고국의 사람이 아니라는 인식은 정체성의 분열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먼- 하늘 테서/총과 칼의 수풀을 헤염처/이 손과 이 다리로 모-든 무리를 뭇럿스나/그것은 참으로  하나의 肉體엿도다”라는 표현은 정체성의 분열을 야기시킨 일종의 연옥(煉獄)행과도 같은 체험을 보여준 것이다. 그것은 자신이 갔었던 그곳에서의 체험에 대한 개괄이 되겠는데, 그러나 그러한 살벌한 체험은 이제 삶 자체가 되어버렸다.   나는 거기서 새로운 言語를 배웟고 새로운 行動을 배웟고 새로운 나라(國)와 새로운 世界와 새로운 肉體와를 어덧나니 여기 도라온것은 實로 그의 그림자이로다   “여기 도라온것은 實로 그의 그림자”이라는 표현은 앞의 “누가 알랴 여기 돌아온것은 한개 덧업는 그림자”이라는 표현을 좀 더 강하게 드러낸 것이라 볼 수 있는데 그만큼 화자의 삶은 새로운 정체성을 이루었음을 강조한 것이 된다. 다시 말하면 이제 화자는 고국의 사람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새로운 삶의 현장에 적응된 새로운 정체성의 소유자가 되었다는 의미로 파악되는 것이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이주민으로서의 조선족이 될 것이다.   이민시인들은 이민지의 서정을 통해 이주민으로서의 정체성을 확인하였다. 그리고 그러한 정체성 확인은 향수의 표현에까지 연장되어 이주민의 이중적 정체성을 드러내고 있다. 조선족 문학이 이민문학으로 출발했음을 다시금 확인하는 대목이다. 그리고 이런 상황은 동시에 조선족의 디아스포라적 성격을 잘 보여주기도 한다.   b. 암울한 현실에의 대응   일제강점기 괴뢰 만주국에서 생활했던 조선 이주민에게 있어 현실은 암울했다. 그러나 문제는 그러한 암울한 현실을 느끼고 인식한 대로 표현할 수 없는 일제 괴뢰정부치하라는 정치적 환경이다. 즉 당대의 문학풍토가 현실에 대한 시인들의 느낌이나 인식을 직설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자유를 박탈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 시인들은 그러한 모순된 현실을 어떤 시적인 수단 혹은 방법으로 대응했을까? 먼저 함형수(咸亨洙)의 《비애(悲哀)》라는 작품을 보자.   나는 이 괴로운 地上에서 살기만은 조곰도 希望치는 안는다 어한 달가운 幸福과 快樂이 나를 부고 노치안는다 해도 그러나 나는 저 아득한 한눌을 치어다 볼 마음은 슬퍼지고 외로움으로 눈물이 작고 난다 저 나라에서도 나는  여기서처럼 이러케 孤獨할바   여기서 화자는 천상과 지상을 두개의 세계로 갈라놓고 있다. 그런데 화자는 첫 두 행에서 지상의 괴로운 삶을 조금도 희망치 않는다고 하면서도 천상의 세계에 가기를 두려워한다. 천상의 세계 또한 지상의 세계처럼 고독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감 때문이다. 또한 지상의 세계에서는 아무리 달가운 행복이나 쾌락이 잡고 놓지 않는다 해도 미련은 조금도 없다고 했다. 왜서 그런지를 확대 해석하지 않더라도 이는 현실에 대한 분명한 부정이다.   채정린(蔡禎麟)의 「밤」이나 손소희(孫素熙)의 「어둠속에서」 등 작품은 현실을 암흑으로 인식함으로써 현실을 부정한다. 그러한 현실의 삶에 대한 분노는 동시에 저항의 심리를 동반한다. 그래서 분노는 어둠이나 차가움 등의 부정적인 이미지보다는 한 차원 높다고 할 수 있다. 유치환의 「怒한 山」은 그러한 분노를 울분으로 풀어낸다. 물론 유치환에게 있어 그러한 울분이나 분노는 메아리도 없이 사라지는 부질없는 외침만은 아니다. 강한 생명의 욕구가 내재해있다. 「生命의 書」에서 유치환은 그러한 생명력의 원천이 어디에 있는지를, 그리고 왜 분노하는지를 은근히 내비친다. 현실 부정은 현실 비판과 차이가 있지만 정상적인 언로가 막혀있던 일제강점기에 있어서는 같은 의미로 이해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래서 이 시기 시인들은 용인할 수 없는 현실의 암흑을 부정함으로써 일제의 식민통치에 대한 불만을 표출한 것이라 하겠다.   그러나 이와 같은 상징적인 현실 비판도 자유롭지 못하였다. 그래서 모더니즘은 현실 비판의 또 다른 장치로 작용하였다. 초현실주의로 대표되는 “시현실” 동인의 시가 이에 속한다.   “시현실” 동인의 작품 1은 이수형(李琇馨)과 신동철(申東哲)의 공동작인 「生活의 市街」이다.   밤의 피부 속에는 夜光筮의 神話가 피어난다 밤의 피부속에서 銀河가 發狂한다 發狂하는 銀河엔 白裝甲의 아츰의 呼吸이 亂舞한다 時間업는 時計는 모-든 現象의 生殖術을 구경한다 그럼으로 白裝甲의 이마에는 毒나븨가 안자 永遠한 午前을 遊戱한다 遊戱의 遊戱는 花粉의 倫理도 아닌 白晝의 太陽도 아닌 시커먼 새하얀 그것도 아닌 眞空의 液體 엿으나 液體도 아니엿다 자- 그러면 出發하자 許可된 現實의 眞空의 內臟에서 시커먼 그리고 새하얀 그것도아닌 聖母마리아의 微笑의 市場으로 가자 聖母마리아의 市場엔 白裝甲의 秩序가 市街에서 퍼덕일뿐이엿다   「생활의 시가」의 전문인데, 이 작품을 읽으면서 우리는 일차적으로 이 작품이 당시 조선족문단에서 일반적으로 대할 수 있던 여타의 시작품과는 뚜렷한 구별을 보이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구별을 일단 (1) 현실적인 논리성의 파괴, (2) 사유의 순수한 자동기술성, (3) 이미지의 격리성과 기이성, (4) 신비적, 광란적 수법 등으로 나눠볼 수 있다. 이와 같은 특징을 보여주는 시작품의 경향을 우리는 초현실주의라 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시현실”동인의 초현실주의 작품들로는 이수형(李琇馨)·신동철(申東哲)의 「生活의 市街」, 김북원(金北原)의 「椅子」, 강욱(姜旭)의 「樂譜를 가젓다」, 이수형의 「娼婦의 運命的海洋圖」, 김북원의 「비들기 날으다」, 신동철의 「능금과 飛行機」 등 6편으로 6회에 걸쳐 지에 발표되었고, 동인으로는 이수형, 신동철, 김북원, 강욱 등 4명이 여기에 묶여있다.   물론 유사경향을 보인 S. S. Y, 송석영, 천청송(千靑松), 정야야(鄭野野), 함형수(咸亨洙) 등 5명을 포함해 보아야 총 9명 시인에 12편의 작품이 전부여서, 양적으로는 빈약하다 할 수 있고, 그 중 다수는 조선본토 문단에서 별로 알려지지 않은 시인들이다. 그러나 초현실주의문학에 관한한 문제는 달라진다. 순수문학 중에서도 “정신의 폭발”로 압축되는 이 문예사조가 조선시가에서 하나의 성과로 평가되는 것은 이상 정도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1940년 8월의 만주는 일제의 대륙침략전쟁의 일차적 후방이었고, 따라서 상당수의 문인들이 일제의 강압적, 혹은 포용적 책략에 시달리다 못해 변절하고 투항했던 당시 조선족문단에서 “시현실”동인들이 이런 시대적 상황, 달라진 천지, 대동아공영의 신 풍토에서 눈을 딱 거두고 있는 것은 이변이 아닐 수가 없는 것이다.   “詩現實” 同人集에 묶여 발표된 작품은 아니지만 이수형의 「白卵의 水仙花」, 金北原의 「胎動」, S. S. Y의 「氣焰」, 송석영의 「詩人」, 千靑松의 「愚感錄」, 鄭野野의 「거리의 碑文」, 咸亨洙의 「正午의 모-랄」 등 에 발표된 다른 작품도 비슷한 경향을 보이고 있다. 동인이라는 개념이 가지는 성격으로 보아도 그렇지만 그 주변에 유사한 문학적 경향을 가진 시인들이 비슷한 경향의 작품을 발표했다는 것은 초현실주의 실험이 하나의 유파를 형성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또 하나 흥미있는 것은 이와 같은 초현실주의 성격의 작품들이 발표되기 시작하여 3개월여 만에 “시현실” 동인이라는 그룹이 출현하여 동인특집을 연재한 점이다. 이것은 다시 말하면 를 통한 초현실주의 시작실험이 일정기간 진행되어 오다가 그것이 무르익으면서 동인그룹이 형성되었고 본격적인 동인활동이 이루어졌음을 의미한다. 다른 측면에서 초현실주의 문학유파의 존재를 확인시키는 셈이 된다. 그만큼 문학사적으로 중요한 의의를 띤다 하겠다.   “시현실”동인들의 작품으로 대표되는 초현실주의시의 실험운동은 그 기법 실천이라는 의미에서 뿐만이 아니라 1940년 일제의 발악적인 식민통치라는 최악의 환경에서 우리 이민시인들이 자신의 정서를 문학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장치로서 상당히 효과적이었고 따라서 긍정적이었다 하겠다.   현실을 직시하고 현실의 암울함을 표현하기 위한 시인들의 노력은 끊이지 않았으나 일부 시인들은 결국 현실에 머리를 숙이고 지극히 소수이기는 하나 심지어 체제협력적인 작품도 일부 발표하였다. 이를 인정해야만 조선족 문학의 뿌리를 제대로 파악했다 할 수 있는 것이다.   (4) 사후에야 알려진 시인과 시작품:   광복 이전 연변지역 시문학의 중요한 한 부분으로서 시인 생전에는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가 광복 후에야 그 진가를 드러낸 경우가 있다. 윤동주(尹東柱)와 심연수(沈連洙)가 바로 그 대표적인 시인이다.   윤동주는 널리 알려진 연변 출신 시인이다. 그러나 심연수는 최근에야 발굴되어 아직은 연구가 미진한 편이다. 그러나 두 시인 모두 이민지인 연변에서 성장하면서 감성을 키우고 그러한 체험을 시적 언어로 표현한 시인들이다. 그러나 윤동주는 벌써부터 널리 알려진 시인이고 심연수 또한 최근에 많이 소개된 시인이어서 여기서는 분량 관계로 더 전개하지 않기로 한다.   2. 연변지역 시문학의 현황   1945년 이후의 문학은 사실상 광복 후의 문학이라야 맞다. 현재와 조금 가까운 시기의 문학이라는 의미에서 “현황” 항에서 논의할 뿐이다. 이 시기의 시문학을 정치공명의 시문학과 다원화 시대의 시문학 두 부분으로 나누어 소개한다.   (1) 정치공명의 시문학   오늘의 시문학, 다시 말하면 개혁개방 후 연변의 시문학이 있기까지 광복 후 30여 년간의 과정을 거쳐 왔다. 특이한 것은 이 30년의 문학이 오늘날의 시문학과는 너무나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이 30년의 문학을 문학사가들은 흔히 “정치 공명의 문학”이라 부른다. 문학 창작 전반이 기본적으로 정치적인 사건들과 공산당의 정책에 공명하여 이루어졌던 것이다. 가령 해방이 되자 해방의 환희를 노래하고 토지개혁 시대에는 땅을 나눠가진 기쁨과 이를 가능케 해준 공산당과 정부를 노래하며 사회주의개조를 실시하자 사회주의 제도를 노래했다. 특히 문화대혁명 동안에는 계급투쟁과 개인우상화에 우리 시가 한 몫을 톡톡히 했다.   (2) 다원화 시대의 시문학   a. 개혁개방의 시문학:   1970년대 말, 중국 땅에 개혁개방의 바람이 불면서 연변지역의 시문학은 점차 정치공명의 시대를 탈출하기 시작한다. 상처문학, 반성문학을 거치면서 점차 외래 사조들을 받아들이고 다원화 시대의 시문학을 위한 준비를 서두른다.   이 시기 시문학에서 주목할 부분은 장편서사시 창작의 성행이다. 김성휘의 ������장백산아 이야기하라������(1979), 김철의 ������동틀무렵������(1979), ������샛별전������(1980), 이상각의 ������만무과원 설레인다������(1981), 이욱의 ������풍운기������(1982) 등이 그 대표적인 예가 된다. 이와 더불어 장편서사시와 비슷한 장르라 할 수 있는 서정서사시도 활발히 창작되었다. 김성휘의 「떡갈나무아래에서」(1979), 「소나무 한그루」(1982, ), 「나의 거리」(1985), 김철의 「파랑새」(1979), 김동진의 「거리의 울음소리」(1980), 이삼월의 「아, 전선길」(1984), 조룡남의 「아, 청산골」(1985), 김응준의 「개척자의 노래」(1986) 등이 이에 속한다.   김성휘의 장편서사시 ������장백산아 이야기하라������는 청송이와 영란이라는 두 인물을 중심으로 1930년대 조선족과 한족으로 이루어진 항일유격대의 투쟁 모습을 그리고 있다. 중국식의 표현으로 말하면 항일투쟁의 주제와 민족단결의 주제를 아울러 그려내고 있는 셈이다. 중국 땅에서 조선족의 입지를 다지려는 시인의 의도를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새 중국의 창건을 위해 조선족도 큰 기여를 했음을 입증하고자 한 것이다. 김철의 장편서사시 ������동틀 무렵������, 김성휘의 서정서사시 「소나무 한그루」, 이삼월의 서정서사시 「아, 전선길」 등 작품도 비슷한 주제를 표현하고 있다.   김철의 ������샛별전������은 주인공 샛별이와 장수의 곡절 많은 사랑을 그리고 있다. 전설적인 이야기를 시화한 시인의 의도 또한 뚜렷하다. 고유의 민족성을 재현함으로써 조선족의 후대들에게 민족적인 자긍심을 심어주고 근본이 뭔지를 일깨워 주고자 한 것이다.   결국 이들 기성 시인들은 개혁개방 시대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창작의 분위기를 이용하여 민족성 보전과 중국에서 조선족의 입지 확보를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했던 것이라 할 수 있다.   b. 다원화의 시문학: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연변지역의 시문학은 점차 다원화의 성향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실험의식의 보편화는 다원화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사실 실험의식은 1980년대 초부터 중견 시인 한춘을 필두로 신진 시인들 속에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들이 가장 먼저 받아들인 것이 모더니즘 운동이다. 당시 중견시인이었던 한춘은 기성문단의 강력한 저항에도 불구하고 젊은 시인들의 모더니즘 운동을 이론적으로 지원하여 모더니즘 시문학이 조선족 문단에 자리를 잡는데 중요한 기여를 하였다.   모더니즘 시운동에 이어 중견시인 김파의 입체시 실험, 박화의 주지시 실험, 남영전의 토템시 실험 등이 문단의 이목을 모았다.   도시적 감각과 시적 표현 역시 다원화 시문학의 한 분야가 된다. 개혁개방 이전까지 연변지역 시문학은 기본적으로 농경문화에 기반을 두었다. 개혁개방 후 도시화 속도가 빨라지면서 도시적 감각과 시민문화에 토대한 도시 서정시가 시문학의 한 분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다원화 시문학의 또 다른 특징으로 인문정신의 옹호를 들 수 있다. 문학의 궁극적 목적은 인문정신의 고양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개혁개방 이전의 시작품들은 지나치게 정치적인 사회성에 순응한데서 개인 보다는 집단의 의식을 표현하였다. 이에 대한 반발로 출현한 것이 바로 개인적인 감각과 감성에 대한 옹호이다. 인문정신에 입각한 문학 본연의 사명에 귀환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인문정신의 옹호로 출현한 또 다른 형태는 소수자와 소외층에 대한 관조이다. 이는 연변지역 시문학의 성숙을 보여준 좋은 예가 된다.   조선족 시문학의 현황은 여러 시각에서 분석할 수 있다. 본고에서는 디아스포라 문학의 시각에서 연변 조선족 시문학의 현황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민족성 보전과 고양을 위한 시인들의 노력은 줄곧 끊이지 않았다. 56개 민족이 어울려져 사는 중국 땅에서 민족성 보전은 민족 구성원의 생존의 의미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수많은 시인들이 있지만 대표적인 예로 소재 선택과 주제 설정에서 고유의 민족성에 주목했던 김철의 노력과 전통적인 민요 가락을 자유시에 접목하고자 했던 이상각의 여러 가지 실험들을 들 수 있다.   김철의 경우, 합작화 운동을 주제로 한 「지경돌」(1955)에서 벌써 그러한 안목을 보여 주고 있다. 건국 후 토지개혁에서 분여 받은 땅을 합작화를 위해 다시 내놓음으로써 사회주의 집단화의 길로 가는 농민의 모습을 지경돌 뽑기라는 지극히 민족적인 소재를 통해 보여준 것이다.   「대장간 모루우에서」(1998) 역시 민족성이 뚜렷한 소재이다.   대장간 모루우에서 나는 늘 매를 맞아 사람이 된다 벌겋게 달아오른 나의 정열 뜨거울 때 나는 매를 청한다 맞을 때는 미처 몰라도 맞고나면 내 매값을 안다 그래서 나 내 몸이 식을 때 노상 주르르 눈물을 흘린다   작품의 전문인데, 시련과 역경을 이겨내야만 삶의 진수를 얻을 수 있다는 이치를 표현한 작품이지만 우리 민족의 전통적인 삶에서 소재를 선택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소재 속에서 깊은 삶의 의미를 추출해 낸 것 또한 민족적인 사고방식이라 하겠다.   이상각의 시작품 또한 소재 선택 면에서 민족성 표현에 주목하고 있다. 「꽈리밭에서」(1980), 「토장국」(1981), 「에밀레종」(1989), 「허수아비」(1997) 등 작품의 제목만 보고도 상당 정도 이런 특징을 감지할 수 있다. 그러나 이상각의 시작에서 좀 더 주목할 만한 것은 민족적인 가락을 시작품에 적절히 이용하고 있는 점이다. 가령 「보노라 못잊어 가다 또 한번」(1979)에 그런 특징이 잘 드러난다.   가는 길, 길섶에 물구슬이 돌돌 조약돌도 보석처럼 반짝이는 길 가노라니 우거진 푸른 숲속에 곱게도 피였구나 함박꽃송이   꽃속에, 비이슬에 젖은 꽃잎에 수줍게도 발그무레 물든 노을빛… 방긋이 입을 열고 웃음짓더니 조국이 주는 꽃을 받으라시네   중국을 “조국”이라 하면서도 싯구 속에 흐르는 멜로디는 조선족적이다. 7.5조를 기본으로 하면서 6.5조를 교차적으로 이용하고 있고 특히 음악성이 강한 어휘들을 적절히 배열함으로써 리듬감을 한결 돋우고 있다.   김철과 이상각은 대표적인 예가 될 뿐 개혁개방 후 다수의 조선족 시인들이 민족성 표현에 의식적인 노력을 바치고 있다. 조선족적인 정체성 확인의 한 방식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남영전의 토템시 실험도 비슷한 경우이지만 좀 더 근원적인 측면에서 민족성 표현을 하고자 했다는 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남영전의 대표적인 토템시 작품으로 「곰」(1987), 「신단수」, 「백학」, 「범」 등을 들 수 있는데 신화, 전설 속에서 우리 민족의 전형적인 토템으로 인식된 이들의 이미지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민족의 뿌리를 되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해 주고 있다.   우람한 산악을 끄는 그림자 엉기적 엉기적 엉기적   덩쿨풀 뒤얽힌 어두운 수풀을 지나 물풀 우거진 황량한 수렁창 건너 유구한 세월 엉기엉기 기여나와 쓸쓸한 굴속에 갇혀 살았더라 쓰고 떫은 쑥맛 볼대로 보았고 창자 끊는 마늘맛 씹고 씹었다 별을 눈으로 달을 볼로 이슬을 피로 삼아 련꽃처럼 예쁘장한 웅녀로 변하여 이 세상 정령의 시조모 되였더라   (후략)   남영전의 시 「곰」의 앞부분이다. 작품은 이어서 곰의 끈질긴 생명력을 민족의 그것에 대입시켜 묘사하고 있다. “태고의 전설속에 엉기적/백의의 넋속에 엉기적/요원한 미래속에 엉기적.” 라고 한 마지막 연에서는 끈질긴 민족의 생명력과 의지를 표현하고 있다 하겠다. 이처럼 남영전의 토템시의 가치는 이국땅에 사는 겨레의 의식 속에서 세월 따라 바래져가는 민족의식을 재현하고 일깨워준다는데 있을 것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남영전의 토템시 작품이 소재의 폭이 확장됨에 따라(이라는 책에만 해도 토템시라고 이름을 붙인 작품이 42편이나 수록되어 있다) 어디까지가 토템시인가 라는 의문들이 제기되고 일부 비판의 목소리도 들리고 있다. 그리고 사실 「흙」이나 「물」과 같은 이미지는 필자가 보기에도 토템으로 보기는 어려울 것 같고 일종의 상징물로 이해하는 것이 보다 과학적이지 않을까 하는 판단이다. 어떻든 남영전의 토템시 실험이 민족의 혼을 재현해보고자 한 조선족 시인의 노력임에는 틀림이 없고 또 상당 정도 성공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중견시인 석화의 시리즈는 보다 의식적인 방식으로 이국땅에 정착해 살아가는 민족의 정체성을 확인하고자 한다.   이른봄이면 진달래가 천지꽃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피여나는 곳이다   사래 긴 밭을 갈면 가끔씩 오랜 옛말이 기와조각에 묻어나오고 용드레우물가에 키 높은 버드나무가 늘 푸르다   할아버지는 마을 뒤산에 낮은 언덕으로 누워계시고 해살이 유리창에 반짝이는 교실에서 우리 아이들은 공부가 한창이다   백두산 이마가 높고 두만강 천리를 흘러 내가 지금 자랑스러운 여기가 연변이다   석화의 “연변” 연작시의 머릿시에 해당되는 「천지꽃과 백두산」 전문이다. 조선족의 가장 큰 집거지이자 조선족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연변의 과거와 현재, 미래까지를 한 편의 시작품에 표현했다고 할 수 있는 이 시에는 민족에 대한 자긍심과 애착이 곳곳에서 묻어나온다. 진달래를 “천지꽃”이라 부른다는 제1연의 사연은 연변의 독자성 혹은 특징을 표현하고 있고 제2연의 “오랜 옛말이 기와조각에 묻어나오고”는 이주민의 역사를 암시할 것이다. “용드레우물가”는 용정의 상징이고 조선족 이주민의 연변 정착을 의미한다. “키 높은 버드나무가 늘 푸르다”는 표현은 아직도 조선족은 건재함을 표현한 것이라 하겠다. 제3연에서는 뒷산에 누워계신 할아버지와 교실에서 공부가 한창인 아이들을 대조적으로 표현하여 조선족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상징하고 있다.   모두가 조선족 사회가 해체된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을 때 석화 시인은 오히려 이주민으로서 조선족의 뿌리는 깊으며 미래 또한 어둡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민족 사회의 위기의식이 동시에 내재해 있다고 봐야 한다. 연변을 의식적으로 표현해야 하겠다는 생각 자체가 그러한 위기의식의 소산이기 때문이다.   31편에 달하는 석화의 연작은 이런 식으로 조선족의 끈질긴 생존의지와 독특한 개성을 표현함으로써 가장 조선족적인 시 정신을 보여주고 있다. 디아스포라로서 조선족 시문학의 품위를 높여주는 시작행위로 평가하고 싶다.   그러나 조선족 시문학의 현황은 밝지만은 않다. 이상 소개한 시인들과 시작품은 기성 시인들의 경우가 된다. 문제는 신세대 시인들의 작품들이 아직 신세대로서의 색깔과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이들의 시작 행위가 아직도 뚜렷한 개성과 높은 수준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 점은 수필, 소설의 경우와는 상반된다. 흔히 문학 습작은 대학생 단계에서 시 습작으로 시작한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런 상황은 문단의 진일보 쇠퇴를 예고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3. 연변지역 시문학의 특징   이민기부터 현재까지 연변지역 시문학의 흐름을 대략적으로 살펴보았다.   이민기의 시인들은 이주민의 정체성 문제에 대해 상당히 주목했던 것으로 보여 진다. 이민지의 현실과 이주 및 정착과정의 고난, 정착하고 난 후의 고향 상실감과 짙은 향수 등이 시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것은 바로 이주민으로서, 이민시인으로서 정체성 확인의 한 징표로 이해된다. 단군의 후예로서의 민족적 정체성과 만주국 국민이라는 국민적 정체성을 동시에 지닌 이주민들은 항상 그러한 이중적 정체성 사이에서 고민하고 시달려야 했던 것이다.   우연인지 필연인지는 모르겠으나 광복 후 60년이 지난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연변지역 조선족 시인들은 다원화된 창작 성향과 함께 다시 조선족 공동체의 정체성 문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디아스포라 문학의 운명적인 현실인지도 모른다.   형식적 측면의 경향도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 이민기의 시작품들은 대체적으로 자유시 형태의 사실주의적 표현이 주류를 이루지만 이미지즘, 초현실주의를 비롯한 모더니즘적 실험에도 상당히 주목했다. 그리고 민요시 운동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시조와 신민요 창작 또한 형식적인 측면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다원화 시대의 시작품들 또한 거의 비슷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니까 주제의식의 측면에서나 장르적 측면 혹은 형식적 측면에서나 연변지역 시인들이 지향했던 것은 민족성의 보존이었다고 할 수 있다.    
13    {자료} - 우리 조선민족의 시단에 귀한 시인들 있는한... 댓글:  조회:1823  추천:0  2018-03-04
  신-문학살롱 신금철입니다 이번 시간에는 요즘 갓 출판된 중국조선족시화선집을 소개하도록 하겠는데요 아마도 중국조선족시화선집은 우리 문단에서 전무후무한 책이라고 생각되는데요 오늘도 연변시가학회 부회장이며 이번 시화선집의 편집위원의 한분이신 림금산 선생을 모셨습니다.안녕하세요? 림- 네 수고합니다 신-시화선집이라고 하면 문단력사에서는 없었던 일로 생각되는데요 어떻습니까? 상세한 소개부탁드립니다 림-네 그렇습니다. 해방전이나 해방후에도 우리 문단에서는 처음으로 나오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수록된 시인들이 100명을 넘었고 자치주창립으로부터 활약상을 보였던 시인들의우수한 시들과 인기 촬영가들의 촬영작품200여편, 인기 미술가들의 미술작품 30여편 등을 함께묶은 책으로 그 의의가 심원하다고 생각됩니다. 아마도 우리 문단의 큰 희사라고 생각됩니다. 신-그렇다면 처음엔 어떻게 하여 이런 큰 공정을 시작했는지요? 림- 네 지난해초부터 기획에 들어갔는데요 지난해는 연변조선족자치주 창립60돐이 되는 해이지요 그래서 이 기회를 빌어 한번 자치주성립이래의 시선집을 묶으려고 작심했는데요 아예 우리문단사에 없던 새로운 형식으로 출판하기위해서 시에다 그림과 사진을 배합하여 시화선집으로묶자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먼저 연변작가협회 시가창작위윈회를 중심으로 기획하고 반복적인토론을 거쳐 주당위 선전부에 타산을 얘기했는데 적극적인 지지성원을 받게 되였습니다. 그래서 주당위선전부에서 자금도 인입해 주고 물심량면으로 되는 관심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래서 원고와 출판을 다그쳤는데요 결국 책은 올해초에 해빛을 보게 되였습니다. 신-그렇다면 이 선집에 수록된 시들은 어떤 원칙으로 선택했습니까? 림-네 이 선집의 뒤부분엔 연변작가협회 시가창작위원회주임 김영건시인의 편집후기가 있는데요 거기에는 시선택원칙에 대하여 해석했습니다. 편집후기내용-그 시집수록 범위는 중국 전지역 즉 상해, 북경, 청도와 동북삼성 전지역의 시인들을 다 포섭하였습니다. 시를 수록한 편수는 시인의 지명도, 시인의 시창작의 영향력, 그리고작품의 질 등 제방면을 다 고려했는데요 중국작가협회 회원인가, 연변작가협회 시분과에 속하는 회원인가, 시분과가 아니라도 성인시 창작에 질좋은 영향있는 시를 썼는가 , 또 신진이라도시작품이 좋고 영향이 좋다면 싣도록 하였습니다. 편수는 가장 많아 3수로 가장 적어서 1수로하였습니다. 시인의 배렬순서는 ㄱㄴㄷㄹ…순으로 하였습니다. 그리고 책을 더 깔끔하게 하기위하여 시인들 략력은 글자수를 제한하여 책의 뒤부분에 함께 수록하였습니다. 그리고 시의 내용에 따라 사진과 그림은 어떤 시에는 한폭 어떤 시에는 두폭씩 넣어주었습니다. 신-그럼 이번 시화선집의 편집진은 어떤 분들로 구성되였습니까? 림-네 이번 시화선집을 펼쳐보면 총기획에 주당위 상무위원이며 선전부장인 김수호부장이 맡았고 편집위원들로는 시작품에 원로시인 리상각, 한춘, 그리고 시평론에 조예가 있는 평론가들인연변대학 우상렬교수, 김경훈교수, 그리고 우리 시분과의 주임 김영건 부주임 림금산이 맡았고촬영작품편집위원들로는 인기 촬영가,리종걸…등 .미술작품의 편집위원들로는 리춘….등 분들이 맡았습니다. 신-그렇다면 책의 크기와 편폭은 어떻습니까? 림-네 16카이 정장본으로 된 200여페지에 달하는데 180여편의 시작품이 수록되였고 200여편의사진과 30여편의 그림은 모두 칼라로 했고 연변인민출판사에서 출판하고 심수에서 인쇄하였습니다. 신-수록된 시인들의 범위는 어떻게 그었습니까? 림-네 해방전시인들은 빼구요. 원인은 자치주성립기념으로 묶는 책인만큼 또 너무나 두터우면경제여건도 고려되겠기에 …자치주성립후에도 많은 활약상을 보인 시인들에 한해서 선택하였습니다. 그리고 지역적 범위는 무릇 중국에 살고있는 조선족시인들의 작품은 거의 모두 수록하도록 하였습니다. 물론 시분과 회원에 한해서지요 그래서 흑룡강성, 료녕성, 길림성, 연변, 산동성청도지역, 상해, 북경, 란주 등 조선족시인이 계시는 곳은 모두다 그 범위에 넣었습니다. 여기서 작가협회 회원이지만 시분과가 아니고 아동분과라든가 소설분가, 산문분과 뭐 기타 분과일 경우 시작품이 비교적 많고 또 시의 수준이 상대적으로 높은 분들을 선택하여 수록하도록노력하였습니다. 례하면 정호원시인이라고 할때 산문분과이지만 시를 아주 많이 썼고 또 수준급시도 많기에 수록하였고 김철호시인같은 분도 시분과는 아니지만 아동분과지만 성인시의 큰상들도 많이 수상하였고 또 성인시를 잘쓰고 있는 쟁쟁한 시인이기에 수록하였습니다. 김문세시인도 그렇고 …하지만 이런 시인들에 한해서는 수록시가 수자가 적을수밖에 없었습니다. 너무 두꺼우면 안되니깐요. 그리고 시의 편수는 중국작가협회 회원일 경우와 작가협회 주석, 부주석을 담임했던분, 시단의영향력이 컸던 분들의 시는 조금 많이 …제일 많아야 3수, 그 이상은 한사람도 업습니다. 또제일 적어서 1수입니다. 두수 짜리는 주로 시분과 리사들을 중심으로 고려했지요. 다음 신진일 경우 한수씩 넣었는데그것도 아주 싹수가 보이고 시작이 황홀한 분들에 한해서만….그리고 쟝르가 어느것이 위주인가도 고려했습니다. 례하면 량영철이라 하면 좋은 시를 꽤많이 창작했지만 소설이 어디까지나위주이기에 그래도 소설가로 우선이라 생각되였기에 수록하지 못했습니다. 신- 이번에 출판기념식을 아주 굉장히 치른걸로 알고있는데요 출판기념식의 정황을 소개해 주시죠 림-출판기념식은 연변작가협회,연변주문련,연변주신문출판국,연변인민출판사 를 주최단위로 했구요 연변작가협회 시가창작위원회가 주관하였으며 장소는 연변주정무청사 C108회의실에서 거행하였습니다. 2013년1월23일 오후 3시부터 4시20분까지.문화계통의 많은 령도분들, 시인과 문인 등 70여명이참가한 정황에서 또 북경, 할빈, 장춘, 연변 등지의 원로시인들이 대거 출석했고 장백산잡지사장 리여천, 도라지잡지 사장 정경업,미술가협회,촬영가협회 등 단위의 령도분들. 80고령인저명한 시인 김철부부는 직접 이 회의를 위해 북경에서 날아왔고 저명한 시인 남영전선생은 장춘에 뻐스편으로 차가운 북국의 날씨도 마다하고 22일 저녁 6시반에야 연길에 도착.리상각시인님은 병치료중이여서 참석못했지만 축사를 써보내주었으며 조룡남시인은 건강상황이 안좋아 웬간한 모임에는 거의 참석못하셨지만 이번 회의에만은 참석하여 보귀한 발언까지 하셨습니다. 연변인민출판사협회 잡지중심의 리원철주임이 사회를 맡았고 연변작가협회 시가창작위원회 김영건주임이 경과보고를 올렸고 김철시인, 남영전시인, 김학천시인이 축사를 하였습니다. 잡지사 리여천사장, 잡지사 전경업사장,”송화강”잡지사 리호원사장, 우상렬교수, 연변촬영가협회 부주석 리종걸촬영가 등 분들이 축하발언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연변작가협회 시분과 부주임 림금산시인이 각지역에서 보내온 축하메시지와 원로 리상각시인의 축사를 전달하였습니다. 신-공로패 증정도 있었다면서요? 림-네 이번 첫 구상으로부터 편집진을 묶고 각 산재지역에 시원고창탁에 관한 련락을 취하고주당위선전부에 수차 뛰여다니면서 자금문제, 권두언문제 또 촬영가들과 미술가들을 찾아다니면서 수만건의 사진작품과 미술작품을 련계해다 추리고 편집한 시가창작위원회 김영건주임한테공로패를 수상하였습니다. 공로패는 북경에서 오신 저명한 우리 민족 시인 김철선생이 직접 개인의 명의로 북경에서 만들어온것을 증정 증정하였습니다. 신-시화선집 증정도 있었다면서요? 림-네 연변대학도서관과 연변주도서관, 연변대학사범학원에 이번 시화선집을 증정하여 소장하도록 하였습니다. 여기 증정에 연변주문화국 심수옥국장, 연변주출판국 림혜영국장,연변인민출판사 리성권사장 등분이 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연변주당위 선전부 부부장이며 연변작가협회 당조서기인 안국현선생이 격려사를 하였습니다. 신-시낭송도 있었다면서요? 림-네 연변의 이름높은 아나운서들 몇분을 초청해서 이번 시화선집에 수록된 원로시인들의 시들을 당장에서 낭송하여 분위기를 더했습니다.   김철시인의 시 을 오려란아나운서가 낭송하였고 리상각시인의 시 를 서태문아나운서가 낭송하였고 조룡남시인의 시 를 리혜자아나운서가 낭송하였습니다 신- 이번 대형시화선집의 출판은 어떤 현실적 의의가 있다고 봅니까? 림-네 요즘 시가 잘 읽히지 않고 시의 독자층이 점차 줄어들고 있어 시단이 큰 충격을 받고있는 현 시점에서 거액의 돈을 투자(근 10만원)하여 대형시화선집을 출판하고 또 시와 사진의 만남, 시와 그림의 만남, 시화 시낭송의 만남 등형식을 취한것은 시인들의 침체되는 심리와 독자층의 갈앉는 현실을 북돋아주고 정품창작을 고무하고 문화진지를 더욱 활성화시키는 등 여러 방면으로 그 현실적 의의가 크다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시단의 일을 직접 선전부에서 틀어쥐고 출판국에서 중시하고 대형출판기념회까지 가지는거나 자치주60주년기념물로 만든거나 모두 현실적으로 심원한 의의가 있다고 봅니다.   신-그럼 이번 시화선집에 수록된 시들을 몇수 감상하면서 더욱 가까이 시화선집에 다가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감상할 시로는 조룡남시인의 “옥을 파간 자리”입니다. 함께 감상하시죠   옥을 파간 자리   조룡남   내 가슴에는 웅뎅이 하나 그것은 오래전에 옥을 파간 자리 나는 모른다 그 옥이 지금은 누구의 머리를 장식했는지 누구의 목걸이에서 빛뿌리는지   내 가슴에는 웅뎅이 하나 그것은 오래전에 옥을 파간 자리 오랜 세월이 흘러갔건만 오늘도 웅뎅이엔 허연 소금 돋치며 마를줄 모르는 비물이, 눈물(雪水)이 고이여있다   신-참으로 진득진득하고 무겁고 깊이있는 시라고 생각됩니다. 력사의 상흔이 력력한 시라고 느껴지게 되는데요 해설 부탁합니다. 림-네 이 시는 이젠 몇십년전에 쓴 시인데요 시인은 이 시에서 문혁때에 받은 상처, 즉 한창 나이에 대동란에 휩싸여 청춘의 옥같은 마음과 옥같은 나이 즉 젊음과 지혜, 용기, 자존 등을 훼멸받은 그 눈물과 피를 읊었습니다. 참으로 눈물이 없이는 못읽어낼 그런 시입니다. 조룡남시인은 아주 어려서 즉 스무나무살 때 우파로 몰려 훈춘의 어느 농촌에 내려가 갖은 수모와 험악한 로동과 학대를 받은 분입니다. 정신적으로 인격적으로 타매를 받은 상처가 아주 크지요. 진짜 평생을 두고 잊을수가 없는 그런 령적 인간고를 겪어냈습니다. 그 피가 질벅한 인간고를 이 시로 터쳤습니다.하지만 앞장서 지인들을 모독하고 인격을 독살한 어떤 인간들은 그 대가로 높은 자리에도 바라오르고 횡재도 하고 …여기서의 횡재는 정치적으로… 시구를 살펴본다면 나는 모른다 그 옥이 지금은/누구의 머리를 장식했는지/누구의 목걸이에서 빛뿌리는지 또 시인의 아픔을 시구로 본다면 오랜 세월이 흘러갔건만/오늘도 웅뎅이엔 허연 소금 돋치며/마를줄모르는 비물이, 눈물(雪水)이 고이여있다 여기서 허연 소금은 아픔의 크기와 깊이를 말하고 눈물은 눈이 녹은 물이라는 뜻으로 세월의 눈비를 말함과 동시에 인간의 눈에서 맘에서 흐르는 눈물을 말한다 그런데 우리는 이 시가 단순 조시인 개인의 상처만 말한것이 아니라 전반 그 시대에 억울함을 당하면서도 피진하게 살아온 전반 피해자들을 대변한것이란데 그 의의가 더 크다. 숱한 사람들이 그 세월에 옥같이 소중한걸 잃어버린것이다. 이는 다시 보충해 줄래도 줄수없는 것이다. 왜? 청춘이 값이 얼마인가? 젊음을 나이로 근을 뜰수가 있을가?    신-다음은 역시 이번 시화선집에 수록된 녀류시인 박명순 시인의 시 “깡통의 꿈”을 함께 감상하고 해설을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깡통의 꿈 박명순     하늘을 바라보며 노을을 꿈꾸던 시절도 있었다 몸안의것 다 내주고 이리저리 상처 많이 입었다 펑 뚫린 구멍사이로 흐르는 붉은 피물 괴물의 입속에 흐르는 타액처럼 징글스럽다 혈관구석에 찌그러져 내버려진채 밤새도록 길을 헤매인다 태양을 향해 날고 날아 지구우의 위성이 되기도 했다 하늘의 별이 되여 까만 하늘에 보석을 수놓았다 별밭에 흘러들어 은하수로 추앙받는 몸이기도 하였다 언젠가 한순간에 다 주고 버려진 몸 오고가는 발길에 채워 벌려진 입에 우주의 바람이 들락거리며 주인행세를 한다.   신-참 현대적수법을 잘 도입하여 쓴것같은데요 깡통의 꿈을 통하여 인간의 깨여진 꿈을 쓴것같군요맞습니까?   림-해설:네 맞습니다. 톨졸임은 처음엔 아주 소중하지요 그안엔 먹음직스런 좋은 내용물이 담겼으깐 하지만 일단 몸안의 것을 다 내준다음엔 이리저리 상처만 받죠 시구에서 살펴본다면 괴물의 입속에 흐르는 타액처럼 징글스럽다/혈관구석에 찌그러져 내버려진채 밤새도록 길을 헤매인다/-버려질때의 묘사 태양을 향해 날고 날아 지구우의 위성이 되기도 했다-걷어차면 날아오르는걸 형상화 하늘의 별이 되여 까만 하늘에 보석을 수놓았다/별밭에 흘러들어 은하수로 추앙받는 몸이기도 하였다--깡통도 때론 여기저기 장식같은데도 쓰이고 더러 추앙받을 때도 있긴 조금씩 있었죠 언젠가 한순간에 다 주고 버려진 몸 오고가는 발길에 채워 벌려진 입에 우주의 바람이 들락거리며 주인행세를 한다.   깡통의 꿈은 결국 파멸되였다…나중엔 바람이 들락거리며 주인행세를 한다. 시인은 깡통의 버려짐을 통해 한 귀중한 인간이 속세의 더러운 추태극에 의하여 점차 버려지고 죽어가는 –정신적으로 죽어가는 그 참상을 시화했다. 결국 요즘 세상의 더러운 구석을 질타하고 비판하고 있죠 신-다음은 역시 이번 시화선집에 수록된 여류시인 허련화씨의 시 “가을산”을 함께 감상하겠습니다.     가을산 허련화     가을산은 언제든지 벗는다 못벗는건 나다   산은 벗어도 당당하고 나는 입고있어도 춥기만 하다.   신-아주 짧지만 깔끔하고 모두 네줄밖에 안되지만 뭔가 깊은 뜻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림-해설: 네 허련화는 연변대학 대학원을 졸업하고 서울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따고 지금 곤명인가 성도 즉 서남대학이든가 그쪽에서 교편을 잡고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는데요 이 시는 도문시 일광산에서 쓴건데 역시 일광산에서 등산갔다가 당장에서 읊었다. 그때 나도 현장에 있었는데 … 시인은 정제된 짧은 시에서 당시 개방되지 못하고 많은 면에서 거의 값속에 든것같이 살아오던 중국인의 삶이 안타깝게 생각하고 빨리 훌훌 그런 전통적이고 봉건적이고 너무나 갑갑할 정도로 고갈된정치적인 사유관념을 털어버릴것 바라는 마음을 썼다. 목적은 바로 이거다. 그러면서 자기자신을 포함한 아직도 벗는걸 즉 의식의 대개방을 두려워하고 송구해하고 부끄러워하는 많은 사람들을 책망한다. 여기서의 벗는다는건 곧 그때 당시 아주 간절히 수요되였던 의식의 개방-즉 사상해방. 당에서도 가일층 사상을 해방하라 하라 하라 수차 수십차 강조했는데 그게 잘 안되던 때 바로 그 걸 쳤다. 헌데 묘하게도 가을이 훌훌 이파리를 다 벗어버리는 걸로 즉 대자연의 섭리로 인간의 의식의 개방을 잘 호소했다. 또 거기다가 자기도 살짝 끼워넣음으로서 시가 더욱 가까이 다가오게 만들어졌고 작품이 딱소리 나게 성공했다. 신-네 참 심오한 내용에 또 시작수법 또한 묘하군요 다음은 이미 작고한 시인입니다만 이번 시화선집에 수로된 허흥식 시인 의 시 “달빛 언어”를 함께 감상하고 그 해설을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달빛 풀어 허흥식   달빛 풀어 써갈긴 시 귀뚜라미 울음 같아   청산은 귀를 닫고 록수는 조을어서   돌각담에 버려둔채 어줍게 외면했소   꿈나라 다녀와서 동창을 열어보니   익은 고추타래처럼 처마밑에 시 몇줄이 사색을 꼬면서 빨간 불 켰구려.   신-참 아름답게 씌여진 시라는 느낌이 듭니다. 어떻습니까? 림- 허흥식시인은 한때는 “농민시인”이라는 이름으로 전반 시단을 들썽하게 한 분인데요 태양향에서오래동안 농사일을 하면서 청년시절부터 시농사도 함께 지었는데요 나중에는 룡정시문화관에 근무하면서 시도 많이 썼고 저와도 아주 가깝게 지낸 시인입니다. 사람이 참 어질고 고정하고 정말 법이 없어도 살 그런 덕성이 많은 사람입니다. 이 시는 허흥식시인이 시창작을 하던 과정을 시화했습니다. 즉 시를 썼는데 거기서 귀뚜라미 소리 밖에 나지 않는것 같아 팽개쳐 뒀댔는데 어느날 처마밑을 보니깐 처마밑에 달아맨 고추타래에 바로 내가 찾는 시가 있구나 하는 즉 고추타래에서 빨간 불켠 시를 찾았다는 …헌데 이 시는 앞부분에서 시를버리는 장면도 아주 아름답게 썼습니다. 전반 시가 아주 미의 덩어리입니다.   신-다음은 김파시인이 쓴 시 “돌의 음악”을 함께 감상하고 해설을 듣겠습니다.     돌의 음악 김파   돌을 두드리면 소리가 난다 돌은 부서진 소리가 뭉쳐진 덩어리이다   바이올린의 선률도 피아노의 절주도 돌의 부서진 소리 채쳐 빚어서 발효시킨 술이다   그래서 마시면 취한다   림-해설: 이 시는 지난 시간에도 례를 들었댔는데요 소리 노래 즉 시 그것은 갖은 예술적인 탁마가공을 해야 독자들을 취하도록 만들고 또 그래서 시가 성공할수있다는. 즉 시창작의 간고성과 시언어가공의 힘겨움을 시화… 신-네 이번 시화선집의 권두언은 자치주당위 상무위원인 김수호부장이 썼다고 들었는데요 그렇다면 그 권두언은 어떤 내용으로 씌여졌습니까? 림-네 이번 “중국조선족시화선집”의 권두언에는 이렇게 씌여져 있습니다.   연변조선족자치주 창립 60돐 기념시화(诗画)선집의 출판은 중국에 살고있는 우리 민족 시단의 일대 성황이며 아울러 중국조선족시인들의 대희사이다. 이 시화선집의  출판은 60년래 우리 시단의또 한차례의 총 점검이며 총 결산이다. 중국조선족은 일제치하와 국민당통치하에서 피를 흘려 이 땅을 해방하는데 크나큰 희생을 냈으며, 이 나라를 건설하는데 마멸할수없는 공헌을 하였고 황무지를 개간하여 이 땅을 걸구는데 많은피땀을 쏟았다. 아울러 중국땅에 조선민족의 문화와 예술을 꽃피우는데도 마멸할수없는 공헌을 세웠으며 우리민족 시문학을 시작하고 발전시키고 풍만한 성과를 쌓아올리는데도 중요한 역할을 하여왔다 60년래 우리 시단은 다른 문학쟝르와 함께 자체의 시 리론과 시 창작을 넓고 깊이있게 진행하여눈에 띄이는 성과를 올렸다 이 시화선집에는 다년래 중국땅에서 떳떳이 민족자치를 향수하면서 우리 언어로 알찬 시들을 창작해낸 그 성과들을 집대성한 볼만한 시들이 수록되였다. 또 우리는 이에 광범한 중국조선족시인들한테 뜨거운 감사의 인사를 올리는 바이다. 이 시화선집에는 로시인과 중견시인 청년시인들의 시 200수와 그에 알맞는 그림과 사진들이300여폭 수록될것이며 시를 감상하는데 더욱 좋은 효과를 거둘것이다. 우리는 이번 시화선집의 출판을 통하여 앞으로의 시창작을 더욱 활성화시키고 민족문화를 발전시켜 문화강국을 건설하는데 어느정도 힘과 지혜, 령감을 제공하려 하고있다. 우리 시인들이 앞으로도 계속 정진한다면 우리 시의 미래는 더욱 밝을것이다. 신-그렇지요 시를 사랑하는 우리 민족이 있는한, 또 이런 고차원의 문화를 창작하기 위해 로심초사하시는 우리 시단의 귀한 시인들이 아직도 충분한 활약상을 보이고 있는한 우리시의 앞날과 우리 민족의 앞날은 기필코 더욱 눈부실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느덧 약속된 시간이 다 되였는데요 오늘은 림금산시인과 함께 우리 문단사에 처음으로 출판된 “중국조선족시화선집”에 대해서 알아보는 뜻깊은 시간을 가졌습니다.림선생님, 오늘도 수고많았습니다. 림-네 수고하셨습니다. 신-그럼 이것으로 오늘 문학살롱프로 여기서 마침니다 이 시간 프로편집에 김철운이였습니다.        
12    {자료} - 우리 조선민족의 문학의 희망적 사항은... 댓글:  조회:1617  추천:0  2018-03-04
중국조선족 시 문학 시어 어휘특징에 대한 고찰 석화     1. 들어가는 말   시의 언어구조, 곧 통어구조와 의미구조의 분석은 비언어학적 방법으로 분석되고 논의되는 것보다는 언어학적방법으로 분석되고 논의될 때에 시 작품이 나타내는 의미와 그 시 작품에 함축되어 있는 시인의 정신과 태도가 더욱 명시적으로 드러날 수 있을 것이다. 시는 언어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시를 포함한 어떠한 현상에 대해서도 과학적인 접근방법은 가능하다. 시가언어로 표현되어 있고 언어를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것이 언어학이므로 언어학은 시를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시를 언어학적 방법으로 분석하는 데에 있어서는 언어의 특질, 언어의 구성요소, 언어의 구조 그리고 언어의 여러 가지 문법적 규칙 등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다. 일반적으로 시의 연구에 응용될 수 있는 언어학적 접근방법에는1) 음운론적 방법, 2) 형식론적 방법, 3) 통어론적 방법, 4) 어휘론적 방법, 5) 의미론적 방법 등이 있다. 시에 대한 상기 언어학적 분석 방법들은 시의 종류나 내용에 따라서 각기 개별적으로 적용될 수도 있고 또 두 가지 이상의 접근방법이 통합적으로 적용될 수도 있다. 예컨대 운율이 중시된 시들의 경우에는 음운론적 분석방법이나 형식론적 분석방법이 적용됨으로써 시의 의미가 보다 더 잘 파악될 수 있으며 사상이 중시된 시들에 있어서는 통어론적 분석방법, 의미론적 분석방법 등이 사용됨으로써 그 시의 의미가 보다 더 잘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그런데 시의 가장 기본적인 언어학적 분석 대상은 어휘이다. 그러므로 시에 대한 분석에서 먼저 그 어휘들을 고찰하고 분석하여 그 특징을 밝히는 것이 시 작품을 분석하는 여러 가지 작업 가운데서의 첫 번째 작업이라고 할 수있다. 본고는 중국조선족 시 문학에 나타나고 있는 시어 어휘를 분석, 고찰하여 그 특징을 찾아보려 한다. 이 연구를위하여 《20세기 중국조선족문학선집․시선집》(권철 등 편, 연변인민출판사 1999년 9월 출간)을 텍스트로 선정하였다. 한 세기 남짓 진행되어온 중국조선족문학의 총결산이라고 볼 수 있는 이 문학선집의 제2권으로 된 《시선집》에는 20세기 초반부터 중국에서 작품 활동을 하여온 시인 97명의 시 작품 310수가 수록되어 있다. 우리문학 즉 한민족문학의 한 구성부분으로 되고 있는 중국조선족문학은 《8․15》광복과 중화인민공화국 창건 이후비로소 자체적인 특수성을 가지고 발전하게 되었다. 하여 본고는 이 《시선집》을 주요 텍스트로 선정하면서 이시선집에 실린 시 작품 중에서 1945년 광복 이후에 창작된 시 작품의 어휘들을 주요 연구대상으로 한다.     2. 시어 어휘에 대한 고찰   문학은 언어로 이루어지며 어휘는 가장 기본적인 표현수단이다. 문학의 여러 가지 속성과 특징들은 모두 문학언어―즉 시와 소설 등에 씌어지는 어휘로 구축된다. 시작품에 대한 분석에서도 먼저 시어 어휘에 대한 객관적인 분석에서부터 출발하여 그 언어구조를 연구하고 그다음 시인의 정신이나 의도에 접근하여 시 작품의 의미를 밝혀내는 데 이르러야 한다. 아래에 중국조선족 시 문학의 각 시기 대표적인 시인들의 시 작품을 분석, 고찰해 본다.   2.1 리욱 시인의 경우 중국조선족문학의 개척자이며 원로시인인 리욱 시인은 1907년 러시아 고려촌에서 출생하여 1910년 화룡현 로과향에 이주하였다. 시인은 1924년 시 《생명의 예물》을 《간도일보》에 발표하면서 문단에 나와 선후로 《인생보》, 《조선일보》 기자로 일하였다. 1941년 「간도예문협회」, 「동라문인동맹」 성원으로 있었으며 1948년 동북군정대학을 나와 1951년부터 연변대학교에서 후학을 가르치며 시를 썼다. 시집 《북두성》, 《북륜의 서정》,《고향사람들》, 《장백산아》, 《연변의 노래》, 《리욱 시선집》, 장편서사시 《풍운기》 등 많은 시집과 많은학술저술들을 펴냈다. 1984년 타계하였는데 그 후 후학들은 조선족 시인으로 중국 땅에 세운 첫 시비로 그가 처음 중국에 들어온 지역인 두만강기슭 호곡령 위에 그의 시비를 세웠다. 본 《시선집》에는 《생명의 예물》 등 그의 시 7편이 실려 있다. 이 시편들 속에는 시인이 어린시절 한학을 공부하였던 흔적으로 많은 한자어들이 시어 어휘로 씌어져 있다. 다른 시인의 작품에서는 많이 보이지 않는 한자 어휘들을 골라보면 다음과 같은 어휘들이 눈에 뜨인다.   한자어: ◎ 2자구: 거류(巨流), 창천(蒼天), 암심(岩心), 섬어(譫語), 안공(眼孔), 요광(遙光), 남천(南天), 만재(滿載), 운치(韻致), 북천(北天), 천문(天文), 만상(萬象), ◎ 3자구: 백공작(白孔雀), 산호림(珊瑚林), 장미원(薔薇園), 계명성(啓明星), ◎ 4자구: 부망건곤(敷網乾坤)   그리고 지금 《한국국어사전》에서 찾을 수 없는 어휘들이 씌어져 있는데 그 어휘들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 등가슴, 까무러진, 오르라, 바꾸매로, 되나부다.   다음 중국사회변화에 따라 새롭게 만들어진 신조어들이 보인다. ◎ 야학실(夜學室)―농촌 야학교의 교실 ◎ 공량차(貢糧車)―나라에 세금으로 바치는 양식을 실어 나르는 수레 ◎ 염초담배―토종담배   2.2 설인 시인의 경우 설인 시인(본명 李成徽)은 1921년 연길에서 출생하여 1943년 일본조도전대학 통신학부를 졸업하고 1951년부터 퇴임할 때까지 줄곧 연변대학교에서 후학을 가르치면서 시를 써온 시인이다. 특히 최근 그의 40년대 초반의시첩이 발견되면서 광복 전 암흑기에 창작한 《寒夜에》, 《消息》 등 50여 수의 시 작품이 다시 햇빛을 보게 되어 우리 문학사에 귀중한 재부를 얹어주었다. 그는 《봄은 어디에》, 《해란강의 두견》, 《설인 소시집》, 《설인 시선집》 시집과 《문심조룡선주》 등 많은 저작을 썼다. 설인의 시 작품에 나타나는 어휘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한자어: ◎ 2자구: 한야(寒夜), 기한(飢寒), 영롱(玲瓏), 신화(神話), 습성(習性), 운무(雲霧), 행전(行前), 웅자(雄姿), 정기(精氣), 정교(精巧), 통합(統合), 웅비(雄飛) ◎ 3자구: 순례자(巡禮者), ◎ 4자구: 엄동설한(嚴冬雪寒), 호태왕비(好太王碑)   새로운 어휘가 단어결합으로 보인다. ◎ 은실머리―흰머리 ◎ 채수염―긴수염 ◎ 뾰족모자―일본군전투모   방언의 사용 ◎ 모대기다―《모질음을 쓰다》의 뜻을 가진 함경도 사투리이다.   2.3 김성휘 시인의 경우 김성휘 시인은 1933년 중국 길림성 용정시 백금향 방천동에서 태어나 1954년 심양외국어학원을 졸업하고 연길에 돌아와 1990년 타계할 때까지 줄곧 문학계와 출판계에 종사하면서 많은 시를 써온 중국조선족 대표 시인이다.그는 《나리꽃 피었네》, 《들국화》, 《금잔디》 등 서정시집과 장편서사시 《장백산아 이야기하라》, 《사랑은 무엇이길래》를 썼다. 김성휘 시인의 시어 어휘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한자어: ◎ 2자구: 보모(保姆), 심방(心房), 맥박(脈搏), 처자(妻子), 선심(善心), 오류(誤謬), 음향(音響), 존엄(尊嚴), 하천(河川), 혼백(魂魄), 문패(門牌), 무성(茂盛), 풍상(風箱), 존엄(尊嚴), 기량(技倆), 잔설(殘雪), ◎ 3자구: 벽계수(碧溪水), 황무지(荒蕪地), 천리마(千里馬), 황금탑(黃金塔), ◎ 4자구: 일망무제(一望無際), 몽매무지(蒙昧無知).   방언: ◎ 강대―숲속에 선 채로 말라죽은 나무   부사: ◎ 찬히―> 찬찬히의 준말처럼 쓰이는 말 ◎ 다문―> 다만 ◎ 매, 매양―> 每, 每樣   단어결합: ◎ 눈물인연 ◎ 골백번 ◎ 연해연줄   품사변형: ◎ 깨끗하라―형용사의 동사화 ◎ 동글해진―형용사의 동사화   2.4 김문회 시인의 경우 김문회 시인은 1939년 중국 화룡현 합신촌에서 출생하여 1961년 동북사범대학 수학학부를 중퇴하고 다년간 교사로 근무하면서 시를 썼으며 그후 화룡시문화국 창작실에서 전직창작원으로 있었다. 시인은 《해란강문학상》,《윤동주문학상》 등 다수의 국내외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이 시선집에는 《나는 매돌인가》 등 5수의 시 작품이수록되어 있다. 그의 시 작품에 씌어진 시어 어휘를 살펴본다.   한자어: ◎ 2자구: 청신(淸新), 사멸(死滅), 포괄(包括), 만년(萬年), 참신(斬新), 전설(傳說), 희롱(戱弄), ◎ 3자구: 동학반(童學班),   방언: ◎ 딩구는―> 뒹구는 ◎ 죄꼬만―> 자그마한 ◎ 어간(於間)―> 사이   품사변형: ◎ 청신을 낳고―형용사의 명사화 ◎ 덩어리쳐―명사의 동사화   2.5 허흥식 시인의 경우 허흥식 시인은 1942년 중국 화룡시 두도진에서 출생하여 1994년 용정시문화국 창작실 창작원이 되기 전까지줄곧 농촌에서 생활하면서 시를 써온 《농민시인》이다. 1997년 불의의 사고로 사망한 후 유고 시집으로 《용두레우물》이 간행되었다. 본 시선집에는 《두만강 옛 나루터에서》, 《우리는 촌놈이다》, 《누님》 등 세 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그가 사용한 시어 어휘들에는 한자어휘가 거의 없고 시골농군들의 진한 흙냄새가 풍기는 토속적인 어휘들이 작품 속에 그대로 들어 있어 특이하다.   방언: ◎ 망탕―> 마구, 함부로 ◎ 게죽―> 개죽, 개먹이 ◎ 갑삭이다―> 가볍게 흔들리다 ◎ 가쯘히―> 가지런히   2.6 남영전 시인의 경우 남영전 시인은 1948년 중국 길림성 통화지구에서 출생하여 길림성작가연수학원을 졸업하였다. 현재 계간 《장백산》의 사장 겸 주간으로 있으며 시집 《산혼》, 《뻐꾹새》, 《남영전 시선집》 등 다수 출간하였다. 남영전 시인은 중국의 일부 소수민족 시인들처럼 먼저 한문으로 시를 쓴 다음 다시 본 민족 언어로 번역하여 옮겨 적는다. 즉 남영전 시인의 경우 먼저 한문으로 시를 쓴 다음 다시 우리말로 번역하여 발표한다는 말이다. 따라서 그의 시작품의 시어 어휘가 거의 한자어 어휘 그대로 씌어지고 있는 것이 특이하다. 본 시선집에는 《달》 외 4수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그 가운데서 일부 한자어 어휘들을 살펴보기로 한다.   한자어: ◎ 2자구: 원활(圓滑), 온유(溫柔), 향연(饗宴), 예시(豫示), 암시(暗示), 계시(啓示), 혼탁(混濁), 몽롱(朦朧), 연주(演奏), 합환(合歡), 무연(無緣), 광막(廣漠), 환기(喚起), 직포(織布), 창천(蒼天), 층암(層巖), 오연(傲然), 빙설(氷雪), 갈망(渴望), 생육(生育), 명명(明明), 생령(生靈), 독균(毒菌), 망망(茫茫), 광활(廣闊), 창성(昌盛), ◎ 4자구: 심산유곡(深山幽谷), 백의숙녀(白衣淑女), 심산밀림(深山密林), 만경창파(萬頃蒼波), 무변광대(無邊廣大).   2.7 리임원 시인의 경우 리임원 시인은 1958년 중국 연길에서 출생하여 연변대학교 사범학원을 졸업하고 1981년 《연변일보》사에 입사한 후 농촌부 취재기자, 문화부 편집, 정치부 주임을 거쳐 현재 편집판공실주임(편집국장)으로 일하면서 시를쓴 중견 시인이다. 《바보들의 사랑이야기》 등 여러 권의 시집을 간행하였으며 《두만강여울소리시인상》, 《지용시문학상》 등 다수의 국내외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본 시선집에는 《풀잎․1》 등 5수의 시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그런데 그의 시 작품의 시어 어휘들을 살펴보면방언과 생경한 한자어 어휘들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굳이 찾아본다면 아래와 같은 정도이다.   한자어: ◎ 1. 석양(夕陽)―《풀잎․1》    2. 언어(言語), 신선(新鮮), 모습(模襲), 대답(對答), 백일홍(百日紅), 수정(水晶), 순수(純粹), 교수(敎授),국장(局長), 직함(職銜), 계선(界線), 위로(慰勞), ―《꽃의 언어》    3. 동해(東海), 비취색(翡翠色), 청청(淸淸), 식솔(食率) ―《동해바다》    4. 정확(正確), 장소(場所), 흔적(痕迹), 십자가(十字架), 인생(人生), 파종(播種), 천정(天頂) ―《새벽을위하여》    5. 오열(嗚咽), 시작(始作), 농부(農夫), 타령(打令), 연습(練習), 인생(人生), 자진(自盡), 석양(夕陽), 섭리(攝理) ―《바람에 길을 물어…》     3. 나가는 말   중국조선족 시 문학의 각 시기별의 대표시인들의 작품에 대한 상기 분석과 고찰에서 나타나듯이 중국조선족 시문학의 어휘구조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특수성들이 보인다. 첫째, 시어 어휘에서 한자어 어휘가 대량으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한자어휘는 2자구, 3자구의 명사이며 일부 4자구의 단어결합형태와 4자성어 형태로 나타난다. 이런 한자어휘들은 현대 한국 시 문학작품에서는 거의 찾아 볼 수 없는 고어 또는 현재 중국 사회상황의 변화에 따라서 시기별로 산생되는 새 어휘들이 단어결합을이루어 시어 어휘로 사용된 것이다. 이와 같은 새롭게 생겨나는 신조어들은 작품 속에서 시어 어휘의 음운, 의미,색채 등에 미묘한 특색을 보여주기도 한다. 둘째, 함경도와 평안도 등 북부지역의 방언들이 시어 어휘로 사용되어 시 작품에 지역적인 독특한 어감을 가미하여 준다. 연변지역에서 함경도 등 북부지역의 일부 사투리가 《조선말사전》의 편찬과 함께 표준어로 구분되어들어오고 북한 즉 조선의 문화어가 보급되면서 시어 어휘에도 자연스럽게 나타나게 된 것이다. 셋째, 일부분 작품에서 보이는 것이지만 부사의 사용 중에 생활한어에서 그대로 차용하는 것, 지방방언에서 습관화 되는 것 등이 시어 어휘에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넷째, 시어 어휘에서 독특한 품사변형이 보이고 있다. 그것은 명사의 동사화, 형용사의 동사화, 동사의 명사화,형용사의 명사화, 명사의 형용사화, 동사의 형용사화, 부사의 형용사화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는데 대부분이한어 어휘 사용의 영향을 받아 비롯된 것들이다. 이런 몇 가지 어휘특성들은 중국조선족 시 문학의 독특한 상황에서 생겨난 특수현상이다. 그것은 중국조선족 시문학이 40년대 말부터 지역적으로 한국과 조선의 한반도와 단절된 상황 속에서 형성되었으며 중국이라는 사회,생활환경의 제약에서 벗어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또한 중국조선족이 중국어 즉 한어생활권 안에서 우리말을 사용하는 이중 언어생활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빚어지는 결과이다. 그러나 90년대 이후 한국문학의 수용과함께 한국 시 문학에 대한 접촉이 점차 증가되면서 중국조선족 시 문학의 시어 어휘들에도 많은 변화가 나타나고있다. 그것은 바로 이질적인 면이 점차 축소되고 동질적인 면이 나날이 증대되는 현상으로 보인다. 이러한 경향은 특히 나젊은 신진시인들의 작품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것은 우리의 문학의 희망적 사항으로 되는 것이다.     2002년 가을 한국 배재대학교 인터나쇼날하우스 105호  
11    [별의별] - 37년 = "돼지형 주택" 댓글:  조회:5424  추천:0  2018-03-04
37년동안 손수 지은                  돼지를 닮은 전원주택     해외 네티즌들의 감탄을 자아내는 위 건물은 집이면서 동시에 금속 조각품이다.   멕시코 출신 조각가 로베르토 부르노(Robert Bruno)가 미국 텍사스 러벅에 세운 것인데, 1973년부터 처음 짓기 시작했다. 홈페이지에 완성되었다는 설명이 없으니 건물은 여전히 건설 중이라고 봐야 하겠다.  예술가는 그간 100톤이 넘는 철을 붙이고 자르고 용접하고 다듬었다. 애초에는 단층 건물을 계획했었지만 갈수록 꿈이 커졌다.  절벽 끝에 서 있는 건물은 거대한 돼지를 닮았다. 주변의 자연 풍경과 철로 만든 건물은 묘하게 어울린다. 돼지 집은 한 예술가가 평생을 바쳐 만들고 있는 역작이다.  자료:ruwhitejaguar.livejournal.com                 고수이름 | 전원지기 홈페이지 | http://cafe.daum.net/pok0025 소  개 | 귀농 귀촌 전문 사이트/패시브하우스 건축/전원주택
10    [별의별] - 호랑이 셀가... 곰이 셀가... 댓글:  조회:4907  추천:0  2018-03-04
호랑이 VS 곰... 털 앞에 무릎 꿇은 호랑이 2018.03.03.  자동요약   SNS 공유하기   음성 기사 듣기   인쇄하기 새창열림 글씨크기 조절하기   [서울신문 TV] Mritunjay Tiwary / animal rescue india youtube - 호랑이 VS 곰 호랑이와 곰이 싸우면 과연 누가 이길까? 누구나 한 번쯤은 생각해봤을 법한 상상이다. 최근 인도의 한 국립공원에서 호랑이와 곰이 맞붙어 싸우는 영상이 포착됐다. 2일(현지시간) 영국 데일리메일은 인도 마하라슈트라 주 타도바국립공원에서 촬영된 호랑이와 곰의 결투 영상을 소개했다. 어미곰과 새끼 곰이 나타났을 때, 물웅덩이에서는 호랑이 한 마리가 몸을 식히고 있었다. 이 호랑이의 이름은 맷카수르(Matkasur)로 타도바국립공원의 관수 구역에서 활동하는 수컷 호랑이다. 자신의 영역에 불청객들이 나타나자 맷카수르는 즉시 곰에게 달려가 공격을 감행했다. 하지만 어미곰의 반격도 만만치 않았다. 호랑이의 공격이 거셌지만 전신이 털로 덮혀 있는 곰의 몸을 호랑이가 제대로 물 수 없었던 것이다. 결국 계속된 공격으로 인해 힘이 빠진 호랑이가 어미곰에게 도리어 엉덩이를 물리는 수모를 당한 뒤에야 줄행랑치고 만다. 한편 곰의 앞 발 힘은 호랑이의 무는 힘보다 더 센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진·영상팀 ================= 곰에게 싸움 걸었다가 ‘大굴욕’ 당한 호랑이… (ZOGLO) 2018년3월6일 ‘백수(百獸)의 제왕’ 호랑이가 곰에게 싸움을 걸었다가 굴욕을 당하는 생생한 장면이 포착됐다.     2일(현지시간) 영국 데일리메일에 따르면, 최근 인도 마하라슈트라 주(州) 타도바 국립공원에서 수컷 호랑이와 암컷 느림보곰이 혈투를 벌이는 장면이 포착됐다.    국립공원 관람객들이 촬영한 영상에는 국립공원 물웅덩이 인근에서 호랑이와 곰이 맞붙는 모습이 담겼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싸움은 호랑이가 먼저 걸었다. 물웅덩이에서 몸을 식히고 있던 호랑이는 어미 곰과 새끼 곰이 나타나자 자신의 영역을 침범당한 것에 분노한 듯 어미 곰에게 달려들었다.     아기 곰을 데리고 있던 어미 곰은 이빨을 드러내며 맹렬하게 맞섰다. 호랑이가 앞발을 휘두르고 목덜미를 물며 곰을 제압하려 했지만, 곰은 이를 뿌리치며 반격했다. 곰은 기진맥진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끝없이 호랑이에게 맞섰고, 이내 전세가 역전되더니 호랑이가 뒷걸음을 치다 달아난다.       데일리메일에 따르면, 전문가들은 호랑이가 곰의 긴 털 때문에 제대로 곰을 제압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영상을 본 현지 야생동물 보호 재단 측은 “곰을 구한 건 다름 아닌 곰의 긴 털”이라고 말했다.     ///동아닷컴 ===============   '새끼 앞에서 엄마는 무서울게 없다'...                       엄마곰, 호랑이와 결투  2018.03.05.  SNS 공유하기   음성 기사 듣기   인쇄하기 새창열림 글씨크기 조절하기     최근 인도 서부 마하라슈트라 주 타도바 국립공원에서 수컷 호랑이와 암컷 흑곰의 결투 장면이 포착됐습니다. 어미 곰과 새끼 곰이 자신의 영역에 나타나자 호랑이는 불청객의 출현이 달갑지 않은지 즉시 곰에게 달려가 거센 공격을 퍼붓는데요. 하지만, 새끼 곰을 지키기 위한 어미 곰의 반격 또한 만만치 않았습니다. 둘의 맹렬한 싸움이 15분 넘게 계속되면서 호랑이의 힘이 빠지고 공격이 느슨해지자 그 틈을 탄 어미 곰의 발차기 공격이 시작됐는데요. 앞발과 뒷발을 이용한 연속 발차기에 이어 강한 뒷발차기 한방에 호랑이는 '백수의 제왕'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줄행랑을 치고 말았습니다. ///
9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최후의 한마리", 남의 일이 아니다... 댓글:  조회:5369  추천:0  2018-03-04
[와우! 과학] 최후의 한마리...        멸종 앞둔 수컷 북부흰코뿔소 2018.03.04.  자동요약   SNS 공유하기   음성 기사 듣기   인쇄하기 새창열림 글씨크기 조절하기   [서울신문 나우뉴스] 코뿔소 수단의 최근 사진 이제는 전세계에 단 한마리 남아있는 수컷 코뿔소의 최후가 현실로 다가왔다. 최근 미국 CNN 등 해외언론은 케냐 울페제타 자연보호구역에 사는 코뿔소 '수단'이 중병에 걸려 멸종위기에 놓였다고 보도했다. 자연이 인류에게 던지는 엄중한 경고를 보여주는 이 코뿔소는 '북부흰코뿔소'(northern white rhinos)로 현재 지구상에 단 3마리 남아있다. 그나마 나머지 2마리는 모두 암컷으로 수단이 낳은 새끼들이다. 결과적으로 북부흰코뿔소 '가문'을 이어갈 책임은 오롯이 수단의 몫인 셈이다. 이같은 사실 때문에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은 북부흰코뿔소를 '멸종 위급' 동물로 지정하고 유도만능줄기세포(iPSc)와 시험관 시술 기술 등 첨단 기술로 무장한 생물학자들을 투입해 종 보존에 나섰다. 케냐 정부 역시 수단을 보호하기 위해 24시간 경비를 강화하고 수의사를 대기시키는 등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북부흰코뿔소의 개체를 늘리기 위한 다양한 시도는 현재까지 모두 실패로 돌아가 사실상 멸종이 현실화됐다. 북부흰코뿔소의 기대수명은 40~50세 정도로 올해 45세인 수단은 생식능력도 크게 떨어진 상태. 다니엘 슈나이더 박사가 촬영해 트위터에 공개한 사진 IUCN 측은 "현재 수단의 오른쪽 다리에 감염이 심각한 상태"라면서 "지금은 조금씩 먹이를 먹고 걸어다니는 수준이지만 고통이 계속된다면 안락사를 고려할 가능성도 있다"고 밝혔다.   북부흰코뿔소의 멸종위기는 물론 인간 탓이다. 무분별한 개발로 인한 서식지 훼손과 밀렵으로 종이 급감한 것. 특히 코뿔소의 뿔은 중간상인을 거쳐 중국과 베트남등으로 밀매되는데 특별한 약효가 있다는 소문 때문에 고가에 거래된다.           지난해 11월 미국의 생물학자인 다니엘 슈나이더 박사가 케냐를 방문한 뒤 SNS에 올린 수단의 사진은 큰 반향을 일으켰다. 슈나이더는 “멸종이 어떤 모습인지 알고 싶다면 지구상에 마지막으로 남은 이 수컷 북부흰코뿔소를 보면 된다”고 적었다. ///박종익 기자 ==================   흑백 논리로 갈리지않는 회색이 나의 색이다. 회색 동물의 대명사인 코뿔소. 그중  북부흰코뿔소의 뉴스를 전달한다.     산엄한 케냐 군인들의 경계태세는 누구를 위한 것일까? 바로 단한마리 남은 수컷  을 지키기 위해서이다.   코뿔소 수단   북부흰코뿔소는 전세계에 1마리만 남아 있다. 수컷은 '수단'이란 이름으로 올해 46살이며 수단이 죽으면 지구상 북부흰코뿔소는 멸종된다.   이제는 전세계에 단 한마리 남아있는 수컷 코뿔소의 최후가 현실로 다가왔다.   최근 미국 언론 CNN은 케냐 울페제타 자연보호구역에 사는 코뿔소 '수단'이 중병에 걸려 멸종위기에 놓였다고 보도했다. 북부흰코뿔소의 멸종위기는 물론 인간 탓이다. 무분별한 개발로 인한 서식지 훼손과 밀렵으로 종이 급감한 것. 특히 코뿔소의 뿔은 중간상인을 거쳐 중국과 베트남등으로 밀매되는데 특별한 약효가 있다는 소문 때문에 고가에 거래된다.         자연이 인류에게 던지는 엄중한 경고를 보여주는 이 코뿔소는 '북부흰코뿔소'(northern white rhinos)로 현재 지구상에 단 3마리 남아있다. 그나마 나머지 2마리는 모두 암컷으로 수단이 낳은 새끼들이다. 결과적으로 북부흰코뿔소 '가문'을 이어갈 책임은 오롯이 수단의 몫인 셈이다.   케냐 정부는 수단을 다른 두 암컷인 '파투'와 그의 딸 '나진'과 인공수정을 통해 새끼를 낳게 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북부흰코뿔소 / 북부사각입술코뿔소(Ceratotherium simum cottoni) Northern White Rhino   위급(CR), IUCN 3.1   생물 분류 계: 동물계 문: 척삭동물문 강: 포유강 목: 말목 과: 코뿔소과 속: 흰코뿔소속 종: 흰코뿔소 아종: 북부흰코뿔소 학명  Ceratotherium simum cottoni   아프리카 동중부 주황색 지역 야생상태에서 멸종 위기에 처한 것으로 여겨진다. 북부흰코뿔소 또는 북부사각입술코뿔소(Ceratotherium simum cottoni)는 흰코뿔소의 두 아종 중 하나이다. 이전엔 사하라 이남 동부, 중부 아프리카 여러 나라에서 발견되었으나 현재는 이 아종은 초원과 사바나 삼림지대를 무리지어 떠돌아 다닌다. 대표적으로 2014년 12월 미국 샌디에이고 동물원에 살던 수컷 앙갈리푸가, 2015년 7월 체코 드부르 크랄로베 동물원에 살던 암켓 나비레가, 같은 해 11월 역시 미국 샌디에이고 동물원에 살던 암컷 놀라가 차례로 숨짐에 따라 겨우 3마리 밖에 남지 않았으며, 이들 3마리는 모두 케냐 올페제타 보호구역에 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같은 사실 때문에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은 북부흰코뿔소를 '멸종 위급' 동물로 지정하고 유도만능줄기세포(iPSc)와 시험관 시술 기술 등 첨단 기술로 무장한 생물학자들을 투입해 종 보존에 나섰다.      케냐 정부 역시 수단을 보호하기 위해 24시간 경비를 강화하고 수의사를 대기시키는 등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북부흰코뿔소의 개체를 늘리기 위한 다양한 시도는 현재까지 모두 실패로 돌아가 사실상 멸종이 현실화됐다. 북부흰코뿔소의 기대수명은 40~50세 정도로 올해 45세인 수단은 생식능력도 크게 떨어진 상태.   다니엘 슈나이더 박사가 촬영해 트위터에 공개한 사진   IUCN 측은 "현재 수단의 오른쪽 다리에 감염이 심각한 상태"라면서 "지금은 조금씩 먹이를 먹고 걸어다니는 수준이지만 고통이 계속된다면 안락사를 고려할 가능성도 있다"고 밝혔다.   지난해 11월 미국의 생물학자인 다니엘 슈나이더 박사가 케냐를 방문한 뒤 SNS에 올린 수단의 사진은 큰 반향을 일으켰다. 슈나이더는 “멸종이 어떤 모습인지 알고 싶다면 지구상에 마지막으로 남은 이 수컷 북부흰코뿔소를 보면 된다”고 적었다.     수단을 다른 두 암컷인 '파투'와 그의 딸 '나진'과 인공수정이 실패하면서 아직 2만여 마리가 남아있는 남부흰코뿔소종의 대리모를 통해 낳는 방법이 시도되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 샌디에이고 사파리 공원에서는 멸종세포 냉동 동물원에 보관된 북부흰코뿔소 12마리의 세포와 남부흰코뿔소의 모든 게놈을 분석해, 북부흰코뿔소의 배아와 난모세포를 만드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출처] 멸종 앞둔 단 한마리 수컷 북부흰코뿔소 을 아시나요?|작성자 끄적기자   ////////////////////////////////   (나이로비 AP=연합뉴스) 지구의 마지막 남은 수컷 북부흰코뿔소 '수단'이 지난해 3월 케냐 라이키피아 카운티 올페제타 자연보호구역을 거닐고 있다. 관계자들은 1일(현지시간) 올해 45세인 '수단'의 건강이 악화되고 있다며 "미래가 밝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케냐 정부는 생존해 있는 두 마리의 암컷 북부흰코뿔소를 통해 후손을 이으려 애쓰고 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현재 북부흰코뿔소의 사촌인 남부흰코뿔소를 이용해 후손을 이어가는 방법도 추진되고 있으나 이것마저 실패하고 '수단'이 숨지면 이 종은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된다. ///ymarshal ====================== ● 귀여운 아기 ‘코뿔소’       얼마 전 가디언에 흰코뿔소 기사가 실렸지요. 세상에 단 하나, 이 생물종(種)으로서는 유일하게 생존해 있는 수컷 북부흰코뿔소.    이 코뿔소의 이름은 ‘수단(Sudan)’이라고 합니다. 케냐의 사바나 지대, 라이키피아 주의 올페제타 보호구역에 살고 있는 이 코뿔소의 표정은 보는 이들의 마음까지 서글퍼지게 합니다. 전 세계에 단 5마리만 남아 있고, 올페제타에는 수단과 함께 암컷 두 마리가 남아 있습니다. 세계에 수컷은 오직 수단뿐이고요. 번식에 성공하지 못할 경우 이 종은 영원히 사라지게 됩니다.   1900년대에 아프리카와 아시아에는 코뿔소 50만 마리 정도가 살았습니다. 그 숫자는 1970년대에 7만마리로 줄어들었습니다. 이 정도 숫자가 되면 멸종위기에 인접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하는군요.    At home with the world‘s last male northern white rhinoceros   2011년, 코뿔소의 한 종류인 서부검은코뿔소가 완전히 멸종했습니다. 500만년 동안 지구의 초원을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녔던 한 생물종이 이 행성에서 사라진 겁니다.    코뿔소를 살리기 위한 노력이 없었던 것도 아닙니다. 지금 현재 세계 곳곳의 보호구역에 2만9000마리 정도의 코뿔소가 살아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 중 몇몇 종은 서부검은코뿔소의 뒤를 따르게 될 것 같습니다. 현재로선 가장 유력한 ‘멸종 후보’가 바로 북부흰코뿔소인 것이죠.  코뿔소를 멸종 위기로 몰아간 것은 인간들입니다. 환경파괴로 서식지가 줄어든 것 외에도, 사람들의 밀렵이라는 직접적인 위협요인이 그들을 절멸로 내몰고 있습니다.    코뿔소의 종류와 생태에 대해 좀더 알아보시려면- 코뿔소는 말이었다!   뿔과 밀렵 뿔을 채취하기 위한 밀렵이 코뿔소를 절멸의 위기로 몰아가고 있다. 뿔은 오래 전부터 약용 및 조각의 재료로 진귀하게 여겨져 왔다. 사람들은 뿔의 분말이 해열·최음제(催淫劑)로 효능이 있다고 믿어 왔으며 고대 중국 등에서는 뿔을 재료로 하여 아름답게 조각을 한 술잔 등이 사용되었다.  코뿔소는 희소동물의 수출입을 규제한 워싱턴조약에서 대상종(對象種)으로 규정되었다. 저 설명을 꼼꼼히 읽다 보면, 코뿔소님들이 얼마나 많이 오해를 사 왔는지, 얼마나 극심한 고초의 세월을 겪어오셨는지를 알 수 있다.    다시 북부흰코뿔소 이야기로 돌아가서.    이들은 생김새에서 검은코뿔소와는 확연히 구별됩니다. 북부흰코뿔소는 아프리카 중부의 콩고민주공화국(DR콩고)과 중앙아프리카공화국, 그리고 수단에 주로 살아왔습니다. 하필이면 세 나라 모두 극심한 정정 불안과 내전을 겪은 나라들입니다. 제대로 보호시스템이 작동됐을 리 없지요.    일례로 DR콩고의 가람바 국립공원에 살던 북부흰코뿔소의 경우, 1960년대에 개체 수가 2000마리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1984년에는 15마리만 남았습니다. 그러다가 아예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밀렵꾼들에 의해 모두 목숨을 잃었습니다.    (사진이 다소 끔찍하기 때문에 여기 올려놓지는 않습니다만, 소셜미디어에서 널리 유통됐던 ‘밀렵당한 코뿔소’의 사진이 있었지요. 산 채로, 코 부분을 도륙당한 코뿔소의 모습. 처참하기 그지없었습니다. 그 거대한 생명체가 겪어야 했던 고통은 얼마나 컸을까요.)    가디언에 따르면 코뿔소의 뿔은 kg 당 7만5000달러(약 8000만원)에 팔려가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경우, 2014년 한 해에만 코뿔소 1215마리가 밀렵꾼에게 희생됐습니다. 갈수록 사정이 나아져야 하는데 밀렵꾼들은 오히려 요즘 더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2007년 밀렵꾼에게 죽은 코뿔소는 13마리 뿐이었는데 몇년 새 저렇게 밀렵 건수가 늘어난 겁니다.    못된 인간들 때문에 북부흰코뿔소는 급기야 세계에 5마리 밖에 남지 않게 됐습니다. 그 중 세 마리가 올페제타 보호구역에 살고 있고요. 두 마리 암컷의 이름은 파투(Fatu)와 나진(Najin)입니다.  수단은 체코의 동물원에서 구경거리로 살아왔습니다. 그러다가 2009년 번식을 위해 올페제타로 옮겨온 것이랍니다. 몸무게 1.2톤, 올해 42살인 수단은 코뿔소로서는 늙은 편입니다. 코뿔소는 대략 40~50년을 살거든요.    케냐 측에서는 어떻게든 수단이 새끼를 가질 수 있게 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습니다. 300헥타르의 보호구역에서 사는 수단에게는 밀렵을 막기 위해 24시간 무장 경호원이 붙어 있습니다. 관광객들이 너무 많이 찾아와서 귀찮게 하는 걸 막기 위해서이기도 하고요. 이들 외에 검은코뿔소 106마리가 살고 있는 올페제타는 아프리카에선 가장 큰 코뿔소 보호구역입니다. 당국은 수단과 파투, 나진의 인공수정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멸종시킨 것은 코뿔소만은 아니죠.    코뿔소나 동물은 아니지만, 비슷한 처지가 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접한 적이 있습니다. 자신이 쓰던 언어가 사라지는 것을 겪는 사람들 말입니다. 지구상에는 6000개가 넘는 언어들이 있습니다. 세계화와 자본주의화가 지구의 모든 곳을 뚫고들어가면서 사라지는 것은 생물종만이 아닙니다. 전통문화들이 사라지고, 언어들도 죽습니다. 특히 태평양·인도양의 섬나라나 아프리카, 미주 지역 미개발지역의 소수민족 언어들은 세계화의 파상공세 속에 나날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그게 왜 나인지, 그리고 왜 내가 그런 사람이 된 건지 나는 몰라요. 분명히 말하지만, 마음이 아파요. 정말 마음이 아파요.”   에 실린 글입니다. 마지막 ‘에야크 언어’ 사용자였던 마리 스미스 존스의 말이라고 합니다. 북부흰코뿔소 수단의 서글픈 표정을 보며, 이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어쩌면 수단과 나진, 파투도 우리에게 이렇게 말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고요.   “그게 왜 우리인지, 그리고 왜 우리가 이런 처지가 된 건지 우리는 몰라요. 분명히 말하지만, 마음이 아파요. 정말 마음이 아파요.”         지구상 마지막 수컷 ‘흰색 코뿔소’ 위독…멸종 위기 [앵커] 전 세계 단 3마리 밖에 남지 않은 희귀종인 ‘북부 흰코뿔소’가 멸종될 위기에 놓였습니다. 단 한마리 뿐인 수컷이 고령의 질환으로 위독하기 때문입니다. 방주희 PD가 전해드립니다. [리포터] 키 183cm, 몸무게는 2천 200kg, 스트레스를 잘 견디는 성격. 지난해 인기 데이팅 앱 ‘틴더’에 등록된 북부 흰코뿔소 ‘수단’의 프로필입니다. 북부 흰코뿔소의 멸종을 막기 위해 진행한 번식 기금 마련 캠페인으로 전 세계적으로 큰 화제를 모은 바 있습니다. 이 캠페인의 기한은 10년이었지만 수단의 건강에 적신호가 켜지며 캠페인이 조기 종료될 우려도 커지고 있습니다. 수단의 나이가 많아 노화에 따른 감염이 잇따라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수단은 고령의 나이로 고통받고 있어요. 수단의 나이는 45살입니다. 사람으로 치면 100살이 넘은 것이죠.” 수단의 위독으로 북부 흰코뿔소가 곧 멸종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북부 흰코뿔소는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수십 마리가 생존했지만 밀렵 등으로 지금은 수단과 암컷 두마리 등 단 세 마리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보호단체 측은 종족 보존을 위해 체외 수정 등 다양한 재생산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고 미국 CNN방송은 전했습니다. 연합뉴스TV 방주희입니다. ================== 북부흰코뿔소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북부흰코뿔소 2014년 12월 16일 샌디에이고 동물원에서 숨진 수컷 북부흰코뿔소 앙갈리푸 보전 상태 위급(CR), IUCN 3.1[1] 생물 분류 계: 동물계 문: 척삭동물문 강: 포유강 목: 말목 과: 코뿔소과 속: 흰코뿔소속 종: 흰코뿔소 아종: 북부흰코뿔소 학명 Ceratotherium simum cottoni Lydekker, 1908 아프리카 동중부 주황색 지역 북부흰코뿔소 또는 북부사각입술코뿔소(Ceratotherium simum cottoni)는 흰코뿔소의 두 아종 중 하나이다. 이전엔 사하라 이남 동부, 중부 아프리카 여러 나라에서 발견되었으나 현재는 야생상태에서 멸종 위기에 처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 아종은 초원과 사바나 삼림지대를 무리지어 떠돌아 다닌다. 대표적으로 2014년 12월 미국 샌디에이고 동물원에 살던 수컷 앙갈리푸가, 2015년 7월 체코 드부르 크랄로베 동물원에 살던 암켓 나비레가, 같은 해 11월 역시 미국 샌디에이고 동물원에 살던 암컷 놀라가 차례로 숨짐에 따라 겨우 3마리 밖에 남지 않았으며, 이들 3마리는 모두 케냐 올페제타 보호구역에 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2018년 3월 4일에는 마지막 수컷 한마리가 남아있는 것으로 멸종을 앞두고 있다. 개체[편집] 북부흰코뿔소는 전세계에 1마리만 남아 있다. 수컷은 '수단'이란 이름으로 올해 46살이며 수단이 죽으면 지구상 북부흰코뿔소는 멸종된다.[2] 케냐 정부는 수단을 다른 두 암컷인 '파투'와 그의 딸 '나진'과 인공수정을 통해 새끼를 낳게 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대신 아직 2만여 마리가 남아있는 남부흰코뿔소종의 대리모를 통해 낳는 방법이 시도되고 있다. 북부흰코뿔소의 정액과 난자를 체외수정하여 남부흰코뿔소의 자궁에 착상시키는 것이다.[2] 또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 샌디에이고 사파리 공원에서는 멸종세포 냉동 동물원에 보관된 북부흰코뿔소 12마리의 세포와 남부흰코뿔소의 모든 게놈을 분석해, 북부흰코뿔소의 배아와 난모세포를 만드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2] ==================== 흰코뿔소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흰코뿔소 서울대공원에 있는 흰코뿔소 보전 상태 준위협(NT), IUCN 3.1[1] 생물 분류 계: 동물계 문: 척삭동물문 강: 포유강 목: 말목 과: 코뿔소과 속: 흰코뿔소속 (Ceratotherium) Gray, 1867 종: 흰코뿔소 (C. simum) 학명 Ceratotherium simum Burchell, 1817 아종 본문 참조   주황색은 북부 아종의 서식지 흰코뿔소(Ceratotherium simum)는 코뿔소과에 속하는 5종의 코뿔소 중 하나이며, 코끼리에 이어서 가장 큰 육상동물이다. 검은코뿔소보다 몸집이더 크다. 몸높이 1.85m, 몸무게 3.6t이나 된다. 뿔은 2개로 앞뿔의 가장 큰 기록은 166 cm 정도이다. 10마리 전후로 무리를 지어 생활하며, 풀을 주식으로 하고 있다. 아프리카의 초원에 분포하며 서식수도 많고 멸종의 염려가 가장 작은 코뿔소로 코뿔소 중에서는 가장 상태가 양호한 편이지만, 북부 아종은 얼마남지 않아 심각한 멸종위기에 놓여있다. 풀을 뜯어먹기 위한 넓은 입과 코뿔소 중에서 가장 사회성이 강하다는 것이 잘 알려져 있다. 아종[편집] 남부흰코뿔소 (Ceratotherium simum simum) 북부흰코뿔소 (Ceratotherium simum cottoni)   【화천=뉴시스】한윤식 기자 = 강원 화천군 중.동부전선 민통선 내에서 멸종위기 1급 산양들이 떼를 지어 먹이를 찾는 모습이 3일 발견됐다. 이들 산양은 먹이를 주면 4~5마리에서 많게는 20여 마리가 무리를 지어 나타나고 있다. 2018.03.04. (사진=독자 제공)   ===================== 지구상에서 하루 평균 130여종의 생물이 사라지고 있는 것으로 추정됐다. 유엔환경계획(UNEP)은 9일 무분별한 개발로 인한 서식지 파괴, 남획, 환경오염 등의 변화 때문에 이 추세라면 수년 안에 3만1500종의 동·식물이 멸종할 것이라고 밝혔다.  UNEP가 인용한 세계자연보전모니터링센터(WCMC) 자료에 따르면 1970~95년 사이에 민물고기는 45% 감소했고 바닷물고기는 30% 줄었다. 또 조류 100종, 포유류 88종, 무척추동물 320종, 식물 380종이 지난 400년 동안 멸종한 것으로 나타났다. UNEP는 “현재의 멸종 속도는 정상치보다 100~200배 빠르다”고 지적했다.  ‘가장 빨리 사라져가는 종(種)’은 검은코뿔소다. 검은코뿔소는 20세기 초반만 해도 아프리카 북부 수단에서 서부 나이지리아까지 널리 분포했지만, 밀렵으로 인해 최근 30년간 약 3만마리가 줄었고 현재는 케냐와 짐바브웨 등지에서만 찾아볼 수 있다.  ‘지구온난화로 가장 고통받는 종’으로는 현재 2만마리가 남은 북극곰이 꼽혔다.  UNEP에 따르면 한국은 작년 국토 1만㎢당 야생동물 종수가 95종으로, 세계 155개국 가운데 131위에 그칠 만큼 ‘종 다양성 극빈국’이다.   
8    [새동네]-김치찌개, 부대찌개, 평양냉면으로 "통일" 먼저 하기 댓글:  조회:4113  추천:0  2018-03-04
[중앙일보]  2018.03.04 기자 정용수 기자 SNS 공유 및 댓글 SNS 클릭 수   북한 응원단 머물렀던 인제스피디움 윤재연 사장 인터뷰  지난달 강원 평창과 강릉에서 열린 겨울올림픽(2월9~25일)에 250여명의 북한 응원단이 방한했다. 2003년 대구 여름유니버시아드 대회 이후 15년 만에 방한한 북한 응원단은 강원 인제의 스피디움에 머물며 거의 매일 경기장까지 왕복 2시간이 넘는 ‘원정응원’을 펼쳤다. 응원단은 경기장을 찾는 시간 이외에는 숙소에 머물며 응원연습과 개인 시간을 보냈다. 이들은 지난달 21일 숙소 종업원(180여명)들을 위해 공연도 했다. 일종의 사례였다. 응원단이 19박 20일 동안 묶었던 인제스피디움에서의 숙소생활은 어땠을까. 파인애플을 좋아하고, 한 번도 북한 여성들의 민낯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윤재연(52) 인제 스피디움 사장으로부터 경기장 바깥의 북한 응원단 생활을 들어봤다.              질의 :인제 스피디움이 숙소로 선정된 배경은 뭔가. 응답 :“정부에서 몇 군데 후보지를 정한 것으로 알고 있다. 건물이 완공(2014년 개장)된 지 얼마 안 됐고, 숙소가 민가와 떨어져 있어 보안에 유리했던 것 같다. 일부에선 크루즈 선을 숙소로 사용한다거나, 강릉시에서 무상으로 숙소를 제공하겠다고 했다. 남북 관계자들이 (1월 25일) 시설을 둘러보고 최적지로 꼽았다. 막판까지 선정되지 않을까 봐 가슴 졸였다”    북한 응원단이 묵었던 강원 인제스피디움 전경. 응원단은 오른쪽 콘도에서 생활했다. [사진 인제스피디움]    질의 :북한 응원단이 묵으면 다른 영업을 못할 텐데.   응답 :“아버지(윤세영 태영그룹 회장)가 강원도민 회장을 지내셨다. 강원도가 삼수 끝에 2011년 7월 6일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올림픽을 유치할 때 현장에 계셨다. 올림픽을 유치하는데, 작은 힘을 보냈는데, 마지막까지 유종의 미를 거뒀으면 하는 개인적인 생각이 있었다. 숙소로 최종 결정됐을 때 아버지가 ‘혹시 사고가 발생하면 모두 너 책임이다. 네가 현장에 가서 챙겨라’고 하셨다. 25일 동안 사업장에 머물며 먹거리부터 이부자리까지 불편함을 찾아다녔다.”    윤재연 블루원 사장. 정용수 기자    윤 사장은 북한 응원단이 머문 동안 하루 4시간도 못 잤다고 했다. 윤 사장은 월ㆍ화요일은 여의도 본사에서 근무하고 수ㆍ목ㆍ금요일은 경북 경주와 상주, 경기 용인, 인제를 교대로 찾는다. 통상 한 달에 사나흘씩 각 업장을 머무는데 지난달엔 인제 업장에 올인했다고 한다. 정부는 인제 스피디움이 보유한 호텔(154실)과 콘도(114실)를 통째로 임차해 사용했다. 하지만 임차료는 영업비밀이라며 공개하지 않았다.       질의 :북한응원단에 대한 느낌은. 응답 :“응원단 여성들 모두가 165㎝ 이상이었다. 얼굴도 뽀얗더라. 한국 여성들이 입는 옷을 입히면 전혀 북한 여성이라고 구분을 못 했을 거다. 방에서는 개별로 연습하는 시간 외에는 전혀 밖으로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각기 다른 기관이나 학교에서 선발한 탓인지 처음엔 서로가 좀 서먹서먹해 하는 느낌이었다. 식당으로, 버스로 이동할 땐 항상 2열로 움직였다. 하물며 부페식인 식사를 가지러 갈 때에도 줄지어 다녔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 손을 잡고 다니고, 재잘거리기도 하는 모습을 보면서 북이나 남이나 다를 게 없다고 생각했다.”    7일 오후 강원도 인제군 인제 스피디움에 도착한 북한 응원단이 통일부가 준비한 만찬에 참석하려고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질의 :가장 신경 쓴 부분은 뭔가. 응답 :“나도 해외 출장을 더러 다니지만 20일간 집을 떠나 생활한다는 게 쉽지 않다. 먹거리에 가장 많은 신경을 썼다. 사실 북한을 한 번도 가보질 못했다. 북한 음식에 대한 정보도 없었다. 정보가 부족했는데 북측 사람들이 뭘 해달라는 요구도 없었다. 그들의 취향을 찾는데 어려움이 컸다. 다른 업장에서 요리사 등 에이스 60명을 차출해 끼니마다 뭘 좋아하는지 파악하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북한 응원단이 지난달 8일 오전 숙소인 강원도 인제스피디움에서 운동복과 운동화를 신고 조깅을 하고 있다. [뉴스1]    질의 :뭘 좋아하던가. 응답 :“끼니마다 메뉴를 달리했다. 그런데 의외로 디저트로 내놓은 파인애플이 히트였다. 순식간에 없어지더라. 아이스크림과 초콜릿도 즐겼다. 단맛을 좋아하는 영락없는 20대 초반의 여성들이었다. 스무살인 내 딸 생각이 나더라. 식사 중에선 김치말이 국수나 김치찌개, 부대찌개와 같은 걸 좋아하더라. 해산물 요리도 즐겨 먹는 메뉴였다. 손님 대접한답시고 스테이크를 내놨는데 거의 손을 안 대더라. 고기의 질감을 느낄 수 있도록 약간 덜 익혀(미디엄 웰던) 육즙이나 핏기가 있었는데 거북스러웠던 모양이다”    질의 :인상적인 부분은. 응답 :“250여명의 북한 응원단의 민낯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밤늦게 경기가 끝나고 새벽 1시에 숙소에 와서 밥 먹고, 5시 조금 넘어 식사하고 떠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도 모든 사람이 완벽하게 화장을 하고 나타났다. 피곤할 만도할 텐데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애쓰는 것 같더라. 객지에 나와서 부족한 게 많았을 텐데 한 번도 뭘 요구하지 않았다. 타월이나 세탁물들을 내놓으면 세탁해 주겠다고 했는데도 남녀를 불문하고 모두 개인적으로 해결한 것 같다. 물품을 아껴서 사용하는 모습은 나도 배워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응원단은 콘도를 숙소로 방마다 4~6명씩 사용했다. 스피디움 측은 응원단 도착 전에 방마다 인원수대로 타월을 비치했다. 타월과 샴푸, 린스 등 여성들이 많이 소모하는 품목은 복도 양쪽 끝에 별도로 쌓아 두고 마음껏 사용하라는 안내문도 붙였는데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샴푸라는 말이 낯설까 봐 탈북자에게 북한말을 문의해 ‘머리 세제’라고 써놓기도 했다.       질의 :종업원들도 북한 사람들을 처음 접할 텐데 문화 차이로 인한 문제는 없었나. 응답 :“응원단이 오기 전에 김영수 서강대 교수를 초빙해 전 종업원을 대상으로 북한 주민들을 대하는 방법을 교육받았다. 우리는 서비스업이다 보니 손님들이 편히 계시다가 가도록 해야 한다. 정치적인 얘기를 삼가도록 했다.”    질의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응답 :“북한 사람들이 자존심이 세다고들 한다. 그런데 하루는 북한 대표가 찾아와 감사의 표시를 하겠다며 종업원들을 위해 공연을 해주겠다고 했다. 뜻밖이었다. 그리고 고마웠다. 그래서 우리도 스피디움의 자동차 써킷을 이용하도록 권했지만, 일정상 어렵다고 하더라. 이번을 기회로 남북 간 간극이 좁혀졌으며 좋겠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인제스피디움에 안 와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오는 사람 없도록 하겠다는 생각인데 북측에서도 다시 찾아왔으면 좋겠다. 남보다 더 빠르게 미래(통일)를 준비하고 볼 기회였다”    DA 300   ☞윤재연 사장은= 이화여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스위스와 미국에서 호텔경영학을 공부했다. 신라호텔에서 호텔리어 생활을 2년 하다 태영그룹의 호텔, 리조트 부문인 블루원의 사장을 맡고 있다. 자동차 써킷과 숙소가 있는 인제 스피디움은 블루원의 사업장이다.     ///정용수 기자 [출처: 중앙일보] [단독] "北응원단 생얼로 안 다녀, 스테이크는 손 안 대더라"
7    [동네방네] - 독립운동가 문사 송몽규는 죽지 않았다... 댓글:  조회:2624  추천:0  2018-03-04
독립운동가 송몽규         '독립운동으로 퇴학' 日 교토대 학적기록 발견 최광희  2018.03.01.  SNS 공유하기   음성 기사 듣기   인쇄하기 새창열림 글씨크기 조절하기     2년 전 개봉한 영화 '동주'를 통해 재조명된 독립운동가 송몽규의 일본 유학 시절 독립운동을 하다가 퇴학당한 내용 등이 담긴 학적 기록을 'YTN 특별기획, 열도의 독립운동가들' 취재진이 단독 입수했습니다. 일본 교토대학교 문서관은 연희전문학교가 보낸 추천서와 송몽규의 자필 입학 서류, 일본 경찰에 붙잡힌 뒤의 퇴학 처분서 등을 광복 이후 처음으로 발견해 YTN에 공개했습니다. 연희전문을 졸업하고 1942년 교토제국대학교 사학과로 유학을 떠난 송몽규은 조선인 유학생들을 모아놓고 독립 의식을 고취했다는 이유로 이듬해 7월 사촌인 윤동주과 함께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체포됐습니다. 징역 2년형을 선고 받은 송몽규은 후쿠오카 감옥에 수감됐다가 해방을 불과 다섯 달 앞둔 1945년 3월, 스물 일곱의 나이로 옥사했습니다.
6    [쉼터] - 우주를 나는 사람들... 댓글:  조회:1823  추천:0  2018-03-04
중국 우주비행사들의 작품, 우주에서 찍은 셀카 공개 [ 2018년 03월 02일 ]     [최고의 셀카] 2003년 10월 15일 9시, 우주비행사 양리웨이(楊利偉)가 탑승한 선저우(神舟) 5호 비행선이 우주로 진입했다. 중국은 세계에서 3번째로 인류를 우주로 보낸 국가가 되었다. 양리웨이는 우주비행 당일 저녁 셀카를 촬영하며 중국 우주비행사 최초의 ‘우주 셀카’ 사진을 남겼다. (촬영/양리웨이) 우주에서 톈산(天山, 천산)산을 바라보면 어떤 모습일까? 중국인이 우주에서 최초로 촬영한 사진은 무엇일까? 위 세트에는 중국인이 우주에서 최초로 촬영한 셀카 사진과 중국 우주비행사들이 지구를 내려다보는 시각으로 찍은 다수의 대작, 우주비행사들이 하는 일과 그들의 생활을 담고 있는 사진이 담겨 있다. 이 사진들은 우주비행사들의 독특한 시각을 통해 중국 우주비행의 기술발전에 대한 기록을 담아내고 있다. 또한 중국 국민들은 하늘을 날고 싶은 꿈과 끊임없이 연구하는 정신을 실현하기 위해 중국 우주사업과 우주정신을 찬양하며 희망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중국 우주비행사들이 촬영한 사진을 통해 우주 공간의 신비함을 느껴보도록 하자. 인민망 [지구, 잘자요] 여성 우주비행사 류양(劉洋)이 톈궁(天宮) 1호 선실에 있는 슬리핑백으로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다. 우주비행사들은 누워서 자지 않고 우주선 벽에 붙어있는 ‘주머니’ 형태의 침낭에 서서 잠을 청한다. 이는 잠을 자면서 다른 곳으로의 이동을 방지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사진 제공: 징하이펑(景海鵬), 류왕(劉旺), 류양] [삼인행(三人行)] 선저우(神舟) 9호와 톈궁(天宮) 1호의 비행 임무를 맡은 3명의 우주비행사들이 톈궁 1호 선실에서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사진 제공: 징하이펑(景海鵬), 류왕(劉旺), 류양(劉洋)] [우주에서의 다이어트] 류양(劉洋)이 톈궁(天宮) 1호 선실에서 ‘우주 체중계’로 체중을 쟀다. 우주비행을 하는 우주비행사들은 근육이 쇠퇴하는 등의 이유로 체중이 일반적으로 모두 감소한다. [사진 제공: 징하이펑(景海鵬), 류왕(劉旺), 류양] [우주 황페이훙(黃飛鴻, 황비홍)] 류왕(劉旺)이 톈궁(天宮) 1호 선실에서 ‘중국 무술’을 선보이고 있다. 이는 우주비행사들이 신체단련을 하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한다. [사진 제공: 징하이펑(景海鵬), 류왕, 류양(劉洋)] [나는 한 마리의 물고기] 선저우(神舟) 9호 비행 임무 중 징하이펑(景海鵬)이 톈궁(天宮) 1호 선실을 한 마리의 물고기처럼 배회하고 있다. [우주 선생님] 선저우(神舟) 10호 비행 임무 중 우주비행사 왕야핑(王亞平)이 톈궁(天宮) 1호 선실에서 중국 최초의 ‘우주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은 물의 표면장력 작용에 의해 물방울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촬영한 것이다. [사진 제공: 녜하이성(聶海勝), 장샤오광(張曉光), 왕야핑] [하늘을 나는 말] 우주비행사 천둥(陳冬)이 비교적 넓은 톈궁(天宮) 2호 선실에서 신나는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있다. 선저우(神舟) 11호 비행 임무를 수행하는 징하이펑(景海鵬)과 천둥은 모두 말띠로 사람들에게 ‘하늘을 나는 말’라고 불렸다. [촬영: 징하이펑] 사랑해요, 중국] 징하이펑(景海鵬)이 톈궁(天宮) 2호 선실에서 오성홍기를 선보이고 있다. [촬영: 천둥(陳冬)] [지구와 달] 2003년 10월 양리웨이(楊利偉)는 선저우(神舟) 5호 유인우주선을 타고 지구로 돌아오는 길에 100장 정도의 사진을 촬영했다. (촬영: 양리웨이) [우주의 날개] 선저우(神舟) 5호 우주선 선실에서 태양광 날개와 지구를 함께 촬영한 사진이다. [촬영: 양리웨이(楊利偉)] [멀리 보이는 우리 집] 페이쥔룽(費俊龍)이 선저우(神舟) 6호 우주선 선실에서 임무를 수행하며 촬영한 바단지린(巴丹吉林)사막의 모습이다. 바단지린사막은 중국 네이멍구(內蒙古, 내몽고) 지역에 위치하고 있으며 선저우 6호는 네이멍구에서 우주로 발사됐다. (촬영: 페이쥔룽) [중국 북부 지역에 핀 진주] 선저우(神舟) 9호 우주선 비행 임무를 수행하던 우주비행사들이 중국 네이멍구(內蒙古, 내몽고) 지역을 촬영했다. 사진 속 호수는 바옌나오얼(巴彥淖爾)시에 위치한 담수호인 우량쑤하이(烏梁素海)호이다. 우량쑤하이호는 황량한 사막 지역에 위치한 보기 드문 초원호수이자 같은 위도상에서 가장 큰 습지이기도 하다. [사진 제공: 징하이펑(景海鵬), 류왕(劉旺), 류양(劉洋)] [하늘 궁전에서 바라본 고향] [촬영: 징하이펑(景海鵬), 천둥(陳冬)]
5    <고난> 시모음 댓글:  조회:2260  추천:0  2018-03-04
   + 넘어져 본 사람은  넘어져 본 사람은 안다.  넘어져서 무릎에  빨갛게 피 맺혀 본 사람은 안다.  땅에는 돌이 박혀 있다고  마음에도 돌이 박혀 있다고  그 박힌 돌이 넘어지게 한다고.  그러나 넘어져 본 사람은 안다.  넘어져서 가슴에  푸른 멍이 들어 본 사람은 안다.  땅에 박힌 돌부리  가슴에 박힌 돌부리를  붙잡고 일어서야 한다고.  그 박힌 돌부리가 나를 일어서게 한다고.  (이준관·시인, 1949-)  + 풀포기의 노래  물줄기 마르는 날까지 폭포여,  나를 내리쳐라  너의 매를 종일 맞겠다  일어설 여유도 없이 아프다  말할 겨를도 없이 내려 꽂혀라,  거기에 짓눌리는 울음으로  울음으로만 대답하겠다  이 바위 틈에 뿌리내려  너를 본 것이  나를 영영 눈뜰 수 없게 하여도,  그대로 푸른 멍이 되어도 좋다  너의 몸은 얼마나 또 아플 것이냐  (나희덕·시인, 1966-)  + 바람 부는 날의 풀  바람 부는 날  들에 나가 보아라  풀들이  억센 바람에도  쓰러지지 않는 것을 보아라  풀들이  바람 속에서  넘어지지 않는 것은  서로가 서로의 손을  굳게 잡아주기 때문이다  쓰러질 만하면  곁의 풀이 곁의 풀을  넘어질 만하면  곁의 풀이 또 곁의 풀을  잡아주고 일으켜주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 이보다 아름다운 모습이 어디 있으랴  이것이다  우리가 사는 것도  우리가 사랑하고 또 사랑하는 것도  바람 부는 날 들에 나가 보아라  풀들이 왜 넘어지지 않고 사는가를 보아라  (윤수천·시인, 1942-)  + 바닥에 대하여  바닥까지 가본 사람들은 말한다  결국 바닥은 보이지 않는다고  바닥은 보이지 않지만  그냥 바닥까지 걸어가는 것이라고  바닥까지 걸어가야만  다시 돌아올 수 있다고  바닥을 딛고  굳세게 일어선 사람들도 말한다  더 이상 바닥에 발이 닿지 않는다고  발이 닿지 않아도  그냥 바닥을 딛고 일어서는 것이라고  바닥의 바닥까지 갔다가  돌아온 사람들도 말한다  더 이상 바닥은 없다고  바닥은 없기 때문에 있는 것이라고  보이지 않기 때문에 보이는 것이라고  그냥 딛고 일어서는 것이라고.  (정호승·시인, 1950-)  + 만나는 사람마다  오가는 발걸음  만나는 사람마다 표정이 어둡다  나는 그들에게 용기를 주는 밝은 시를 쓰고 싶다   불황의 바람은  뿌리 내리고 서 있는 나무에게는  피해갈 수 없는 고통이지만  흔들리는 것은 잔가지일 뿐  뿌리는 견딜 수 있는 것이라고   태풍도 지나가면  잔잔한 고요가 찾아오는 것이라고  만나는 사람마다 위로해주고 싶다  내 자신에게도 속삭여주고 싶다  (유승배·시인)  + 맑은 날의 얼굴  그만한 고통도 경험해 보지 않고  어떻게 하늘나라를 기웃거릴 수 있겠냐구?  그만한 절망도 경험해 보지 않고, 누구에게  영원히 살게 해 달라고 청할 수 있겠냐구?  벼랑 끝에 서 있는 무섭고 외로운 시간 없이  어떻게 사랑의 진정을 알아낼 수 있겠냐구?  말이나 글로는 갈 수 없는 먼 길의 끝의 평화,  네 간절하고 가난한 믿음이 우리를 울린다.  오늘은 날씨가 맑고 따뜻하다  하늘을 보니 네 얼굴이 넓게 떠 있다  웃고 있는 얼굴이 몇 개로 보인다.  너 같이 착하고 맑은 하늘에  네 얼굴 자꾸 넓게 퍼진다.  눈부신 천 개의 색깔, 네 얼굴에 퍼진다.  (마종기·시인, 1939-)  + 험난함이 내 삶의 거름이 되어  기쁨이라는 것은  언제나 잠시뿐  돌아서고 나면  험난한 구비가 다시 펼쳐져 있을 이 인생의 길  삶이 막막함으로 다가와  주체할 수 없어 울적할 때  세상의 중심에서 밀려나  구석에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  자신의 존재가  한낱  가랑잎처럼 힘없이 팔랑거릴 때  그러나  그런 때일수록  나는 더욱 소망한다  그것들이 내 삶의 거름이 되어  화사한 꽃밭을 일구어낼 수 있기를  나중에  알찬 열매만 맺을 수만 있다면  지금 당장  꽃이 아니라고 슬퍼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류시화·시인, 1958-)  + 축복  고통이 바뀌면  축복이 된다기에  그 축복 받으려고  내가 평생이 되었습니다  얼마나 나는 삶을 지고 왔을까요?  절망을 씹다 뱉고  희망을 폈다 접는  그것이 고통이었습니다  그 고통 누가 외면할 수 있을까요?  외면할 수 없는 삶  그게 바로 축복이었습니다  (천양희·시인, 1942-)  + 오래 고통받는 사람은  오래 고통받는 사람은 알 것이다  지는 해의 힘없는 햇빛 한 가닥에도  날카로운 풀잎이 땅에 처지는 것을  그 살에 묻히는 소리 없는 괴로움을  제 입술로 핥아주는 가녀린 풀잎  오래 고통받는 사람은 알 것이다  그토록 피해 다녔던 치욕이 뻑뻑한,  뻑뻑한 사랑이었음을  소리 없이 돌아온 부끄러운 이들의 손을 잡고  맞대인 이마에서 이는 따스한 불,  오래 고통받는 이여  네 가슴의 얼마간을  나는 덥힐 수 있으리라  (이성복·시인, 1952-)  + 들풀  방금  손수레가  지나간 자리  바퀴에 밟힌 들풀이  파득파득  구겨진 잎을 편다.  (권영상·아동문학가, 1953-)  + 이까짓 바람쯤이야  단단한 씨앗문  머리로 밀고 나올 때  고 작은  새싹은 참 아팠겠다.  딱딱한 달걀껍질  부리로 깨고 나올 때  고 작은  병아린 참 힘들었겠다.  그런데 뭐  그런데 뭐  이까짓 꽃샘바람쯤이야.  바람 속 꽃눈이  이를 악문다.  (오은영·아동문학가, 1959-)  + 동거  진주가 보석으로서 이름값을 하는 것은 조개라는 숨은 배경이 있  었기 때문이다.  모나고 보잘것없는, 고통의 씨앗인, 어쩌면 원수 같은 모래 한 알  을 내뱉지 못하고 기어이 몸속 손님으로 받아들인 조개의  저 아름다운 동거!  제 피와 살점을 뜯어 먹여 마침내는 완벽한 진주로 키워내고야 마  는 조개의  저 지독한 사랑이여!  그러므로 조개는 진주의 밥이요 집이요 아내요 어머니요 모든 것  이다. 이름 없는 조개는 이름 있는 진주의 진짜 이름이다. 상처 난 조  개만이 진주를 품을 수 있다. 진주의 중심엔 언제나 조개의 고통이  스며 있다.  (김선태·시인, 1960-)         2018년 심양세박원국제문화 채색등불 축제, 동북지역에서 가장 큰 규모로 펼쳐져...                       
4    <탐욕> 시모음 댓글:  조회:3544  추천:0  2018-03-04
+ 사자와 사람  배부른 사자는  사냥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은 먹이를 쌓아 놓고도  투망을 던진다  아직 굶주려 죽은 사자는  지상에 없다  그러나  가장 많이 아사한 동물은  인간이다  사자는  제 몫만 챙기면  나누어 갖도록 두지만  사람은  곳간을 만들어  먹이를 가두기 때문이다  (임보·시인, 1940-)  + 마음  마음 바르게 서면  세상이 다 보인다  빨아서 풀먹인 모시 적삼같이  사물이 싱그럽다  마음이 욕망으로 일그러졌을 때  진실은 눈멀고  해와 달이 없는 벌판  세상은 캄캄해질 것이다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픈 욕망  무간지옥이 따로 있는가  권세와 명리와 재물을 좇는 자  세상은 그래서 피비린내가 난다  (박경리·소설가, 1926-2008)  + 인생이란     남기려고 하지 말 것  인생은  남기려 한다고 해서  남겨지는 게 아니다  남기려고 하면 오히려  그 남기려는 것 때문에  일그러진 욕망이 된다  인생이란 그저  사는 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정말 아니다  (윤수천·시인, 1942-)  + 밭 한 뙈기  사람들은 참 아무 것도 모른다.  밭 한 뙈기  논 한 뙈기  그걸 모두  '내' 거라고 말한다.  이 세상  온 우주 모든 것이  한 사람의  '내' 것은 없다.  하느님도  '내' 거라고 하지 않으신다.  이 세상  모든 것은  모두의 것이다.  아기 종달새의 것도 되고  아기 까마귀의 것도 되고  다람쥐의 것도 되고  한 마리 메뚜기의 것도 되고  밭 한 뙈기  돌멩이 하나라도  그건 '내' 것이 아니다.  온 세상 모두의 것이다.   (권정생·아동문학가, 1937-2007)  + 장작불 타다  시골장터  제 몸 태우고 있는  장작불 바라보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갈길 바빠도  순박한 눈빛 속 끼여 있는 것은  내 가슴 속 나뭇가지 꺾어   툭툭 던져 넣고 있기 때문이다  탐욕의 통나무  허연 재만 남고   그 재, 바람에 날려 흩어지듯  인생도 그렇게 태우고 가는 것이리라  태워라  불꽃 위에 자신을 던져라  가볍게, 말갛게 살고 싶거들랑  뿌리 깊은 욕망 뽑아 태워라  (손희락·시인))  + 화엄사에 오르다  얼만큼 버려야 저 산처럼 조용할까  얼만큼 멀어져야 저 들처럼 편안해질까  여기까지 오면서도 떨쳐 버리지 못한 욕망  가파르게 흐르는 물에다 떠내려보내도  다 떨쳐내지 못한 뜻 이골 저골에서  흘러내리는 물처럼 끝없이 쏟아져 내린다  한 걸음 한 걸음 오르면서  삶의 때묻은 발자국을 지우려  먼 산을 보며 오른다  이 길을 다 걸어 오르면 마음은  전나무처럼 곧게 뻗어 오를까  이 길 다 걸어 오르면 마음은  풀처럼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게 될까  그래서 화엄사를 볼 수 있게 될까  (김윤현·시인, 1955-)  + 나무들을 보라  나무들을 보라  뜨겁다고 불평 불만인 세상 속에서  따뜻함을 위해서 내미는 손  욕심이 과하다 싶거나  티끌이 섞였다 싶으면  장마 속에서 말쑥하게 씻어내는  삶의 현명함을 보라  이물질의 생각들이 손금 사이로  파고들었다는 생각이 들면  미련 없이 손을 잘라내고  추위에 알몸을 맡기고  고통을 감수하는 숭고한 삶을 보라  (한상숙·시인)  + 나무는  사람은 겨울이 오면 옷을 자꾸 껴입는데  나무는 옷을 한 겹씩 자꾸 벗어 내립니다  다 벗고 더 넓고 높은 하늘을 얻어 입고 섰습니다.  (정완영·시인)  + 나 늙어 산골에 살면   나 늙어 산골에 살면  이슬처럼 맑은 마음으로  살고 싶습니다.  아무런 욕심 없이…….  비록, 가진 건 없으나.  사랑하는 이와 함께  나눠주고 받고 싶습니다.  도란도란 얘길 주고받으며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  아름다운 산골에서  행복한 마음은  언제나 따스한 햇살처럼  온기를 느끼기에 충분하겠지요?  (강해산·시인)  + 비울수록 채워지는 향기  일상의 무게를 가늠하며 산다는 건  아직도 욕심이 존재하고 있음이다.  욕망의 늪은 끝을 보이기 싫어하지만  작은 입자를 하나씩 덜어내는 일은  결코 잃음이 아니다.  비우는 일은 곧 채우는 일이다.  꽃 진 자리에 꽃대가 서고  물 나간 자리만큼 넓어지듯  비워지는 자리마다  행복의 향기가 들어와 앉는다.  삶은 이렇듯 날마다  조금씩 잃고 조금씩 비우는 일이다.  덜어낸 만큼 성숙해지고  모자라는 그 자리 채울 때마다  인생의 향기가 넘쳐난다.  (김숙자·시인)  + 빈 그릇  차랑차랑한 이슬을  동글동글 그대로 한번 담아보고 싶다.  산뜻한 무지개, 그리고  비 그친 뒤의 저 푸른 하늘을  차곡차곡  가슴이 넘치도록  한번 담아보고 싶다.  맑은 새소리  밝은 햇살  …………  …………  그런데  그런데  네가 앉은 그 곳에도  내가 섰는 이 곳에도  흩날리는 먼지.  뿌연 먼지.  나는 오늘도 그릇을 닦는다.  작은 나래 파닥거려  그릇을 닦는다.  담을 것만을 담고 싶은  내 바램의 빈 그릇  나는 오늘도 그릇을 닦는다.  (이무일·아동문학가)    =========================덤으로 더... 고은 시인의 입장이 실린 영국 가디언 2일자 기사(가디언 캡처)  성추행 논란에 휩싸인 고은 시인(85)이 외신에 "부인과 나 자신에 부끄러운 짓은 하지 않았다"고 입장을 밝혔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지난 2일 '시인 고은 성추행 폭로 뒤 한국 교과서에서 지워지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고은 시인이 영국 출판사인 블루댁스 북스의 고 시인 담당자인 닐 애슬리(Neil Astley)씨를 통해 성명을 보내왔고 이 글에서 성추행 주장을 부정했다고 전했다.  고 시인은 "나는 최근 의혹에서 내 이름이 거론된 데 대해 유감이며, 나는 이미 내 행동이 초래했을지 모를 의도하지 않은 (피해자들의) 고통에 대해 뉘우쳤다"면서도 "하지만 나는 몇몇 개인이 제기한 상습적인 비행(habitual misconduct) 비난은 단호하게(flatly) 부인한다"고 덧붙였다.  이어 "지금 나는 시간이 지나 한국에서 진실이 밝혀지고 논란이 잠재워지기를 기다릴 것"이라면서 "하지만 사실과 맥락을 잘 알 수 없는 외국의 친구들에게는 부인과 나 자신에 부끄러운 어떤 짓도 하지 않았음을 밝힌다"고 했다.  "지금 내가 이 순간 말할 수 있는 것은 한 인간으로서 그리고 시인으로서 지닌 명예와 함께 내 글쓰기가 계속될 것이라고 믿는다"는 말도 덧붙였다. 애슬리 씨는 "고 시인이 종양 치료를 위해 병원에 지난달 입원했고 지금 회복 중이지만 수술과 그에게 가해진 공적 비난의 결과 쇠약해진 상태"라고 가디언에 전했다.    고은 시인은 지난달 성추행 논란이 불거지자 한 일간지에 간략히 입장을 밝힌 후 그외 국내 언론과는 접촉을 피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이번에 자신의 첫 공식입장을 외신을 통해 밝힌 것이다.  고은 시인의 성추행 논란 후 서울시는 고은 시인의 서재를 본떠 만든 '만인의 방' 철거 결정을 내렸고 교육부 등에서는 교과서에 실린 그의 시들을 삭제하는 방안도 논의하고 있다. ///(서울=뉴스1) / 권영미 기자 ungaungae ================================== "바지 지퍼 열고...   장병호 2018.03.05.  자동요약   SNS 공유하기   인쇄하기 새창열림 글씨크기 조절하기   5일 블로그 통해 2008년 성추행 고발 "'격려 차원'이란 고은 변명에 경악해" 성추행에 대한 진정한 사과 요구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시인 고은이 자신의 성추행 의혹을 외신을 통해 부인한 가운데 또 다른 성추행 폭로가 나왔다. 시인 박진성은 5일 자신의 블로그에 ‘고En 시인의 추행에 대해 증언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그는 “저는 추악한 성범죄 현장의 목격자이자 방관자”라며 “지난날의 제 자신을 반성하고 증언한다”며 글을 시작했다. 박진성 시인에 따르면 고은 시인의 성추행은 2008년 4월 C대학교에서 주최한 강연회 이후에 벌어졌다. 박진성 시인은 “당시 H대학의 문예창작과 교수 K로부터 이 자리에 참석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면서 “고En(고은)을 만날 수 있는데다 뒤풀이도 있다고 들어 전날 밤잠을 설칠 정도로 설레고 떨렸다”고 말했다. 강연의 감동은 뒤풀이 자리에서 사라졌다. 박진성 시인은 “오후 5시께 술기운에 취해서였는지 원래 그런 사람이었는지 고En 시인이 참석자 중 옆자리에 앉은 한 여성의 손을 만지기 시작했고 팔을 만지고 허벅지를 만졌다”며 “당시 20대였던 여성은 고En 옆자리에 앉았다는 이유 만으로 그런 ‘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박진성 시인은 K교수에게 “안 말리고 뭐하는 것이냐”라고 말했지만 K교수는 “가만히 있으라”고 답했다. 박진성 시인은 “K교수에게 밉보일가 두려웠고 문단의 대선배 고En 시인에게 밉보일까 두려웠다”고 털어놨다. 또한 “고은 시인이 여성 3명 앞에서 지퍼를 열고 자신의 성기를 꺼내 흔든 뒤 자리에 다시 앉아 ‘너희들 이런 용기 있어?’라고 말했다”고 폭로했다. 박진성 시인은 “2018년 ‘30년 전 격려 차원에서 그랬다’는 고En 시인의 변명을 보고 또 한 번 경악했다”며 “‘부끄러울 일 안 했다, 집필을 계속하겠다’는 고En 시인의 입장 표명을 보고 다시 참담함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그의 추행과 희롱을 보고 겪은 시인만 적게 잡아 수백 명이 넘는다”며 “문단 사람들이 다 아는 사실을 왜 노(老) 시인은 부정하는 것인가”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또한 박진성 시인은 “고En 시인에 대한 증언은 정말 수도 없이 많다”며 “그는 이 세계의 왕이자 불가침의 영역이자 신성 그 자체였다”고 말했다. 그는 “고En 시인의 진정한 사과를 바라며 이를 묵살하지 말기를 바란다”며 “저 역시 방관자로서 석고대죄하는 심정으로 (이 글을) 쓴다”고 끝맺었다. 고은 시인은 지난해 12월 시인 최영미가 인문교양 계간지 황해문화를 통해 발표한 시 ‘괴물’이 뒤늦게 주목을 받으며 성추행 의혹에 휘말렸다. 고은 시인은 현재까지 국내에서 공식적인 입장 표명을 하지 않고 있다. 대신 지난 2일 영국 일간지 가디언에 보낸 성명서를 통해 의혹을 부인했다. 그러나 최영미 시인이 곧바로 “제가 괴물에 대해 매체를 통해 한 말과 글은 사실”이라고 반박하는 등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장병호 기자
3    [별의별] - "돼지화가" 댓글:  조회:2766  추천:0  2018-03-04
  안녕하세요 에이비펫 입니다 :)   여기 동물계의 피카소라고 불리는 이 돼지 친구가 있습니다.   이 친구에게는  어떤 특별한 이야기가 있을까요?   바로 확인하시죠!   2016년 5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동물 보호소에서 귀여운 아기 돼지 태어났습니다.  작고 귀여운 아기 돼지는 생후 4주가 되었을 때 도살장에 끌려갈뻔했지만, 운이 좋게 지금의 주인 조앤 페르슨(Joanne Lefson)에 의해 도살장에서 구조가 되었습니다. 출처 : 이미지출처[Daily Mirror] 조앤은 아기돼지가 심심해하지 않게 장난감을 주게 되었고 그중에 하나가 붓과 물감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운명이었을까요? 아기돼지는 그림에 엄청난 재능을 보여주었습니다. 출처 : 이미지출처[Metro] 조앤은 이 돼지가 어쩌면 피카소를 능가할지도 모를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음을 눈치를 챘고 적극적인 지원과 이름도 피그카소(Pigcasso)라는 새 이름을 붙여 주었습니다. 출처 : 이미지출처[Twitter] 우리가 일반적으로 돼지는 더러운 동물이라고 생각하지만, 돼지는 지적인 자극을 좋아하는 영리한 동물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돼지 화가는 전 세계에 피그카소가 유일한 돼지라고 합니다. 여기서 피그카소가 그린 그림이 궁금하시지 않으신가요? 바로 보시죠! 출처 : 이미지출처[pixabay] 돼지 친구가 그린 작품이라고 믿기 어렵지 않으신가요? 출처 : 이미지출처[Pigcasso - Shopify] 빨강, 노랑, 파랑, 검정의 다양한 색을 조화롭게 쓰는 걸 보니 정말 천재적인 재능이 있는 것 같네요. 출처 : 이미지출처[Pigcasso - Shopify] 전체적인 작품을 보니깐 피카소의 큐비즘 보다는 잭슨 폴락의 액션 페인팅처럼 보이지 않으신가요? 출처 : 이미지출처[Pigcasso - Shopify] 피그카소의 작품을 보니 정말 돼지가 그린 작품이라고 믿기 어렵지 않으신가요?! 정말 천재적인 화가라고 할 수 있겠네요. 출처 : 이미지출처[DOGO News] '피그카소'는 입에 붓을 물고 열정적으로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그림을 그릴 때 항상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어 더 많은 사람들한테 사랑을 받는다고 합니다. 출처 : 이미지출처[Happy Tails Magazine] 최근에 이러한 많은 사랑을 받아 피그카소는 정식적으로 전시회도 갖게 되면서 정식 작가로 데뷔를 했습니다.  그리고 피그카소의 그림을 본 독일의 미술품 수집가는 '컬러풀한 팝아트를 보는 것 같아요. 환상적입니다' 라며 그림을 구매하기도 했답니다. 출처 : 이미지출처[South African Art Times] 현재 전시되고 있는 피그카소의 작품은 무려 280~2000달러(한화 31만 원~220만 원) 정도에 팔린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특별한 전시회는 남아프리카 케이프타운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출처 : 이미지출처[Facebook]   유일한 돼지 화가 '피그카소'   정말 부러울 정도로 엄청난 재능을 가지고 있지 않나요?!   앞으로도 멋진 작품 보여주었으면 좋겠네요!
2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호랑이들아, 맘껏 뛰여 놀아라.... 댓글:  조회:4337  추천:0  2018-03-04
백두대간에서 뛰노는                        '숲속 호랑이'...              입력 2018.03.03.  SNS 공유하기   음성 기사 듣기   인쇄하기 새창열림 글씨크기 조절하기     [앵커] 동물원에 가면 호랑이는 늘 우리에 가둬져 있죠. 이제는 숲에서 자유롭게 노는 호랑이를 볼 수 있습니다. 경북 봉화에서 처음으로 풀어놓고 키운다는데 저희가 먼저 가봤습니다. 윤두열 기자입니다. [기자] 우리에 갇혀 있던 호랑이 2마리가 우리 밖으로 성큼 발을 내딛습니다. 지금까지 갇혀있던 우리와는 비교할 수 없이 넓은 공간이 펼쳐집니다. 아직은 두려운지 다시 우리로 돌아가려하다 문이 닫힌 것을 알고 발길을 돌립니다. 지난해 6월 서울동물원에서 경북봉화에 있는 백두대간수목원으로 온 13살 암컷 한청이와 7살 수컷 우리입니다. 석 달 전만 해도 보기만 하면 으르렁 거리기 바빴는데 적응훈련 끝에 이제는 꽤 친해졌습니다. 한청이와 우리는 앞으로 축구장 7개 만한 4만8000㎡의 숲에서 살게 됩니다. 수목원에 먼저 온 17살 두만이는 이번 방사에서는 제외됐습니다. [민경록/국립백두대간수목원 : 수컷 2마리 이상이 될 경우엔 돌발상황이나 전투, 투쟁이 발생할 확률이 높기 때문에…] 하루 두끼만 먹고 일주일에 하루는 굶는 다이어트도 병행합니다. 숲에서 호랑이를 키우는 것은 국제적 멸종위기종인 백두산 호랑이의 종 보존을 위해서 입니다. 최대한 자연에 가까운 환경에서 차츰 개체수를 늘리고 생태 연구도 병행할 계획입니다. 5월쯤이면 관람객들도 숲에서 뛰어노는 호랑이를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사파리차를 타고 접근할 수는 없고 4층 높이로 만든 전망대에 올라 호랑이를 만나게 됩니다. (국립백두대간수목원)
1    [타산지석] - 혼자 놀줄 알아라... 댓글:  조회:4264  추천:0  2018-03-04
혼자 놀 줄 모르면         귀촌해도 스트레스  2018.03.04.  SNS 공유하기   음성 기사 듣기   인쇄하기 새창열림 글씨크기 조절하기   ━ 김성주의 귀농귀촌이야기(15)   트렌드 코리아 2018은 올해 가장 주목해야 할 키워드로 '워라밸'을 꼽았다. [중앙포토]   요즈음 유행하는 단어 중에 ‘워라밸’이 있다. 일(Work)과 생활(Life)의 밸런스(Balance)를 맞추자는 뜻으로 앞 자를 따왔다.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춘다는 것은 일상에서 일만 하지 않고 자기 시간을 가지라는 것이다. 여가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또 하나가 ‘소확행’이다.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것으로 저녁 퇴근 후에 맛있는 안주에 더 맛있는 맥주 한잔이라든가, 가지고 싶은 물건을 구매한다든가, 하고 싶은 취미를 하란 말이다. 소소하지만 확실하게 나만의 행복을 챙긴다는 의미가 있다. 남에게 보여주는 과시형 쇼핑이나 취미 따위는 필요 없다. ‘효리네 민박’이나 ‘삼시세끼’라는 프로그램 때문일까. 여행을 가더라도 현지에서 ‘한 달 살기’가 유행한다. 제주도에 한 달 살기, 베트남에서 한 달 살기, 멀리 스페인으로 날아가 순례길을 걸으며 한 달 살기를 해 봤다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그곳에 가서 정착을 못 하니 한 달만이라도 살며 행복한 삶을 경험해 보겠다는 것이다. 어쩌면 귀농·귀촌을 결심한 이도 이러한 워라밸, 소확행, 한 달 살기처럼 나의 행복을 위해서 시작했으리라. 일에 치여 죽을까 봐, 거친 조직 생활에서 나는 뭘까 고민하다가, 각박한 도시생활에서 아름다운 전원생활을 꿈꾸다가 시작했을 것이다. 그래서 누구도 귀농·귀촌한 뒤에도 매일 매출을 계산하고 손익을 보고 한숨 쉬며 살 것이라 꿈꾸지는 않았을 것이다. 귀농·귀촌의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특히 여가만큼은 쉽지 않다. 여가라는 의미는 일하는 시간 외에 내가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시간이자, 노동이 아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말한다. 주말을 이용하여 내가 취미 삼아 목공 기술로 의자를 만든다면 여가다. 생계를 위하여 주말에도 목수가 되어 의자를 만든다면 그것은 일이 된다. 농부로서 늘 해야 하는 딸기 수확은 일이지만, 농장을 찾아오는 손님이 딸기를 수확하는 건 농업을 체험하는 레저이자 재미있는 여가가 된다. 일과 여가의 차이는 같은 딸기를 따더라도 나타난다. 귀농한 농부에게는 여가가 쉽지 않다. 소일거리로 농사를 짓는다 하더라도 생계를 위한 일이니 늘 신경을 써야 한다. 내 시간을 가지기가 어렵다. 농작물이 주말이라고 성장을 멈추지 않으니 말이다. 가축을 키우는 목축인은 때가 되면 반드시 물과 사료를 주어야 한다. 마실을 가거나 교육을 수강하기도 쉽지 않다. 농부는 그래서 가을 수확이 끝난 겨울에 몰아서 여행을 가거나 휴식한다. 김제 금모래 마당 농장을 운영하는 조성천 씨는 지난 1월부터 책 쓰기에 빠져있다. 평소 취미가 SNS여서 블로그와 페이스북을 쓰면서 사진을 찍는다. 농장의 일과 나의 일상을 찍고 쓴 글을 모아 책을 집필하기로 한 것이다. 혼자 하면 중도에 그만둘까 봐 주변의 여러 농부를 모아서 함께 책을 쓰고 있다. 일이 아니라 여가로서 책을 쓰고 있다. 직장에서 은퇴해 귀촌한 이들 중 농사를 짓지 않는 사람들은 여가라는 것이 조금 난감하다. 이미 일을 떠났으니 모든 시간이 여가에 해당하는데 딱히 할 일이 없는 것이다. 양평으로 귀촌한 A 씨는 원 없이 쳐보겠다는 골프를 매일 6개월 치고 나니 정말 원이 없어져서 그만두었다. 전국 일주를 해보겠다고 캠핑카를 구매했지만, 그것도 1년 만에 시들해져서 집 마당에 주차해 놓았다. 차 안에서 자는데, 역시 불편해서 콘도나 펜션을 더 자주 이용한다. 놀던 사람이 잘 논다는 말도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놀아 본적이 없으니 놀아도 불편하다. 귀촌인에게는 도시에서 농촌으로 이전한 순간부터 여가가 시작된다. 그러니 여가 계획을 수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먹고 자고 빨래하고 청소하는 생활의 시간을 제외하면 모두 여가다. 이 긴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내려면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내가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먼저 파악하고 조금씩 실천하면서 만족도를 높이는 것이 좋다. 귀촌의 삶의 질이란 여가 만족도와 직결한다. 스트레스를 피하려고 귀촌하였다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 스트레스를 받을 수는 없지 않은가.   여가 시간을 보면 10년 전보다 같거나 오히려 줄어든 추세다.[출처 한국문화관광연구원 2016 국민여가활동조사]   2016년에 문화체육관광부가 조사한 국민 여가활동 조사에 의하면 한국인 평일 여가는 평균 3.1시간이고 휴일 여가는 5시간이며, 여가에 지불하는 비용은 월평균 13만6000원으로 나타났다. 2014년보다 오히려 줄어든 것이다.   주 여가활동 1순위는 TV시청으로, 46.4%를 차지했다. [출처 한국문화관광연구원 2016 국민여가활동조사]   여가 활동 중에는 TV 시청이 46.4%로 압도적이다. TV 앞에 앉아 있는 게 여가인지는 모르겠으나, 사람들이 저녁이면 TV를 본단다. 2위는 인터넷 게임이다. 따로 개발한 취미가 없는 사람은 TV와 인터넷으로 시간을 보내는 거다.   여가활동 동반자 1순위는 '혼자서(59.8%)'다. 가족과 함께(29.7%)가 그 뒤를 이었다.[출처 한국문화관광연구원 2016 국민여가활동조사]   놀라운 것은 여가를 누구와 즐기느냐는 것인데, 혼자서 즐기는 사람이 59.8%다. 가족(29.7%)과 친구(8.8%), 동호회 회원(1%)과 함께 즐기는 여가는 몹시 적다. 이 부분은 혼자 놀기 좋아하는 사람이 많은 것이 아니라 같이 놀아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가족여행은 자녀가 중2병에 걸리는 순간 끝났다고 봐야 한다. 수험생이 되면 더더욱 그렇다. 고령화 시대에 함께 여가를 즐길 사람이 적어지니 혼자서 즐길 훈련을 해야 한다. 더구나 문화와 예술, 레저 인프라가 도시보다 훨씬 적은 농어촌에서는 지역에서 즐길 거리를 찾는 탐색작업도 해야 한다. 평일과 주말의 경계가 모호하므로 꾸준히 즐길 수 있는 나만의 행복 거리를 만들어야 한다. 농촌의 노인을 보면 다들 부지런하다. 자세히 보면 무언가 끊임없이 만들어 내고 만들어 먹고 누군가를 만난다. 백수가 과로사한다더니 부지런하게 돌아다닌다. 자연을 벗 삼는다더니 친구 삼아 잘 즐긴다. 역시 최고로 고려해야 할 것은 행복이다. 어떻게 하면 내가 행복해질 수 있을까를 주변에서 찾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키우는 밭작물이며 내가 먹이를 주는 누렁이와 꿀꿀이가 나의 취미이자 여가이자 행복이다. 나만의 시간을 갖고자 선택한 귀농·귀촌 생활은, 남들에게는 돈을 들여 일부러 찾는 여가이자 장소다. 그러니 나만의 행복을 짓는 생활을 만들어야 한다. 워라밸이니 소확행이니 한 달 살이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귀농·귀촌 생활 자체임을 알고 그 안에서 행복을 찾자. ///김성주 슬로우빌리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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