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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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진달래꽃 필때 댓글:  조회:1248  추천:1  2018-11-19
진달래꽃 필때          연변의 산과들에는 진달래가 많다.요지음 서성진 진달래촌의 진달래가 명물로 떠오 르고있다.매년 4월말 화룡시정부에서는 진달래꽃 축제를 여는데 전국각지에서 모인 유람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나도 여러번 다녀왔는데 먹을거리 볼거리 들을거리 등 많은 재미나는 행사들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위챗사진을 보니 룡정아무곳의 진달래도 소문을 내고있는데 비록 축제는 아니라만은 꽃구경에나선 손님들이 아주 많았다.실은 연변의 산과 산에는 진달래가 많이 서식되고있다.하경지가 "산산에 진달래 촌촌에 기념비"라고 한것에서도 알수있는바 진달래는 연변의 특정 식물로서 주화로 지정되여있다.         어려서 우리는 진달래를 천지꽃이라고 불렀다.내가 태여난 소영동쪽에는 성자산(城子山)이 자리잡고 있다.동하국(东夏国)사울이 자리잡았던 곳이다.성자산 북쪽비탈에는 4월하순만되면 붉게 타오르는데 바로 진달래꽃이 만발하였기 때문이다.어릴쩍에 그맘때가 되면 학교에서는 군사야영을 조직하는데 진달래나무 사이에 보배를 감추어넣어 찿기 힘들었던 생각이난다.       1983년도 5.1절 전후였다.연변일중을 다닐때였는데 한어선생님께서 소영에 진달래가 많는가고 물었다.하여 어떤곳에 여하여하하게 많다고 대답올리였더니 날을잡아 같이가 꽃잎을 채집 하자고하였다.그날 나 선생님 그리고 선생님의 어머님 3명이 함께 꽃잎채집하려 산에올랐다.로인께서 말씀하시기를 진달래꽃잎이 관절염에 좋은 약재라고한다.꽃잎을 꿀에 재웠다가 마시면 관절염 치료에 아주 좋다고 하시였다.그날 우리는 많은 꽃잎을 따왔다.      2002년 5.1절 전후였다.우리는 단위친구들끼리 시리봉 등산에 나섰다.근처 지리는 내가 아는지라 앞장에서서 길 안내역을 맡았는데 그날따라 산에는 진달래가 만발하여 보는사람들의 마음을 즐겁게하였다.같이 등산갔던 친구들은 처음보는 아름다운 장면에 너무도 격동되여 와~와~하고 환호를 질었다.나도 너무도 흥분하고 또 땀을 흘리였는지라 웃옷을 벗어 휘둘러대였다.마치 무슨전쟁에서 이긴 장군이나 된것같이 말이다.진달래는 특정상 한두송이가 피여나는것이 아니고 한아름 한아름씩 피여난다.불타오르는듯한 진달래꽃 사이를 뛰여다니다보니 아느새 다리가 나른하고 등골에서는 땀이 흘러내린다.하산하고 마을에 들어서니 몸이 오싹해났다.찬바람을 맞은것이다.          아불싸  나는 찬바람을 맞고  그만 감기에 걸렸다.웬만해서는 감기를 하지않는 체질인데 그해에는 감기로 점적주사까지 맞는 신세를 지고말았다.       2016년 4 월경 나는 행운스럽게 홍색교육프로그램차 강서성 정강산에 오르는 기회를가지게 되였다.때는 두견화가 만발하는 계절이였는데  산마다 선렬들의 피로 물든 두견화가 소복히 피여이었다.우리 진달래와 정강산의 두견화는 모두 같은과에 속하는 식물이다.특정상 우리진달래는 꽃이 먼저피고  후에 잎사귀가 나오는데 두견화는 잎이 먼저나고 후에 꽃이핀다.진달래꽃잎은 더 엷고  더 주름이 많고 색상이 더 화려하다.두견화는 진달래에 비하여 꽃잎이 더 크고  더 두텁고 더 진붉다.          우리 연변에서는 진달래를 주화(州花)로 지정하고 보호하고있다.하여 옛날엔 장마당에 나가면 진달래나무가지를 꺽어서 파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지금은 거의 없는 상태다.연변홍보 그림에도 영상에도 진달래는 주역이다.주화를 우리가 사랑하지 않는다면 누가 관심해줄가.      지난해 봄 우리동창들은 진달래구경을 하게되였다.그무슨 예정된 행사도 아니고 그저 성자산을 지나다가 흥에겨워 이루어진 꽃놀이였다.하긴 오전에는 오이넝쿨을 줄 나무를하고 점심에는 마반산에서 맥주도하고 돌아오던 길이였다.산은 온통 연분홍색으로 물들었고 활짝핀 진달래가 마음껏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우리는 때로는 진달래를 한아름씩 안고 때로는 진달래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면서 기념촬영을 하였다.꽃잎을 하나따서 입에넣고 잘근잘근 씹으니 달고향기로운 기운이 입안에 가득찬다.          도시에서 사는 우리는 계절을 모르고 지나칠때가 많다.위챗에 사람들이  진달래꽃을 올리면 진달래축제인가하고 배꽃을 올리면  리화축제로 알고있다.자연과의 친밀감이 점점멀어지고 없어지고있고 대신 컴퓨터나 위챗으로  절기변화를 마주할때가 많다.어찌보면 우리는 너무도 메마른 생활을 하고있다.손에서 잠시만이라도  일을놓으라.진달래 만발할때 가족단위로 친구모임으로 산으로가라.진달래 꽃놀이도하고 마음도 날려보자.그러노라면 우리는 더욱 많은 행복을  만끽할것이다.
10    터전농사 댓글:  조회:1646  추천:0  2018-11-18
 터    전   농   사         촌에 가보면 다 알듯이 집집의 울안에는 터전이있다.동네 마다 좀씩 구별이있으나 대체적으로 여름 한철 채소나 풋강냉이 심어먹을만큼한 밭이라고 보면된다.우리 마반촌의 터전은 다른동네에 비하여 조금 큰편이다.          해마다 봄이오면 밭갈이하고 씨앗넣고 채소묘를 옮기고 여름이면 풀을뽑고 가지 고추 도마도등 터전 채소뜯어 먹는 재미 또한 못해본 사람은 알수없다. 가을이면 수확의 계절이라 강냉이 감자 호박 포도 하여간 영글어간 농산품은 다 거두어들이는 계절이다. 그러고나면 온 일년 터전농사는 끝이나고 또 내년을 계획하는 계울이되는 것이다. 춘종하경추확동장(春种夏耕秋收冬藏)이라 하듯이 농사라는것은 매년 똑같이 절기에 따라 반복하며 년륜을 그리고 인간을 번식시켜주는 든든한 더팀목이된다.            터전농사하면 나도 어느정도 경력이있다.어려서는 부모님들하는 농사를 지켜보았다면 지금은 손수 소매를 걷어올리고 참전(参战)하는 판국으로 변한것이다. 하긴 친구들과 형제들의 손을 많이 빌기도 하지만 말이다. 봄이되면 먼저 고안하는것이 무얼 심는가 하는것이다.          매년 똑  같이 심는것이 있으니 바로 고추 가지 도마도등이다. 추가로 떡호박 수박 집미나리 고수풀같은것도 있으나 매년 심는것은 아니고 그해그해의 심경(心境)에따른 결정이라하겠다.일전에도 이야기했지만 농부는 초봄부터 고안하는것이 바로 무엇을 심는가 하는것이다. 전업 농부로 말할때 선종(选种)은 경제리익과  집적관계되는 중요한 결정이기 때때문이다. 나같은 업여농군에게는 비록 경제리익 같은것은 존재하지 않지만 선종은 집사람과 친구들의 좋은평가여부를 결정받는 중요한 사안이다.          4월초순 하면 밭갈이를 해야한다.비록 밭면적이 적지만 그렇다고 삽으로 번지기는 버거운정도다.초시에는 동네분들의 손을 빌어 소로 밭갈이하였지만 지금은 밭을 붙이는 친구가 있어 기계로 하는 편이다.마을 사람들은 나보고 손바닥만한 밭에 무슨 기계냐하지만 지금은 기계로해야 땅이부드럽고 깊이번질수있다.ㅎㅎ       5월초순이면 채소묘를 옮기는 계절이다.헌데 금년에 대형사고를 친것이다.보통 시가지사람들은 계절앞에서 달리는편이다.옷입는것만 보아도 알수있다.봄인데 반소매를 입고 여름인데 가죽장화를 신고 가을인데 치마를 입는 등 시간앞에 달리는 현상이 많다.그 영향을 받아 금년에는 5월1일날 고추묘를 옮기였다. 헌데 5월3일날 난데없는 폭설이 내리고만것이다.아불사 금년고추농사 망했어.        너무 일찍 옮긴것도 탓이거니와 때아닌때 폭설이내린것 또한 방법이 없는 일이다.눈이 내린 이틀뒤 마반촌에 가보았더니 이게뭐냐.고추묘가 하나도 얼어죽지않고 새파란잎사귀를 자랑하며 하늬바람에 하느작이고 있었다.오 하나님이 보호해준거로다.글쎄 부지런한 사람한테 찬물 끼얹을수야 없겠지.이때 무언가 털이난 동물이 나의앞을 쉬익하고 지나가버렸다.저건 뭐지며칠 지나 둘째형님이 전화를 해왔다.동네집어른이 기르던 토끼가 뛰쳐나왔는데 고추묘를 갈아먹었다는것이다.이게 웬 날벼락인가.폭설을 이기여냈다고 좋아했더니 난데없는 토끼한테 체면들다니.             이튿날 아침일찍나는 차를몰고 고추묘상황 파악에 나섰다.집에 도착해보니 난데없는 동네어른 대여섯명이 우리터전에서 토끼붙잡기가 한창이다.물고를 낚끄는 그물망태기까지 동원되여 한참만에야 토끼두마이를 모두 붙잡을수 있었다. 이놈의 토끼새끼야.내 채소묘 내놓아. 한동네 사는 형님분이 하는말이 묘를다시 옮겨야한다고 한다.풀을 먹지못한 토끼가 고추묘의 잎사귀를 절단한것이다.      하여 5월하순경 둘째형님내외분이 동네분들이 주는 고추묘를 가져다 다 다시옮기였다.농사경력 16년만에 처음으로 있은 대형사건이였다.헌데재옹실마안지비복(塞翁失马焉知非福)이라더니 금년 고추농사가 얼마나 잘되였는지 그리고 맛은 얼마나 좋던지ㅋㅋ        터전을  가꾸다보면 재미있는 일도 많다.심지도 않은 과일이나 채소를 수확할때도 종종 있다.금년에 심지도 않은땅에 상추가 얼마나 잘나왔는지 .온여름 상추를 잘먹었다.어느해에는 또 난데없는 해바라기가 가득 올라왔다.심지도 않은땅에 앵두 살구 포도가 자라는 행운을 받기도 했다.그러니 마음가짐만 잘가지면 일이잘된다는 말이상기되기도 했다.심은 채소가 안올라왔다고 심술도 나더라만은 안심은 땅에 예상밖의 수확을 거둘때도 있나니 투정부리지 말고 열심히 하노라면 얻는것이많다.        8월초순부터 강냉이 계절이다.갓 여물기시작한 강내이를 따다가 쇠가마니에 넣고 거기다 감자 호박 고추 된장을 넣고 찌면 그맛이 얼마나좋은지 모른다.시내 사는사람들은 그맛이 뭔지 알기가 힘들다.터전을 가꾸면서 새록새록 터득하는것이 있으니 록색식품의 원래맛이란 이런거였구나 하는것이다.        아침에 일어나 밭에 나가 이슬 먹음은 오이 도마도 한입 떼여먹어보시라.상큼하고  신선한 그맛은 이루형언하기 힘들다.슈퍼에서 사온 채소는 형태만 이쁘다뿐이지 채소가 소유한 원맛은 기본상 잃어버린상태다.        9월에 들어서면 포도가 한창이다.새파랗던 포도가 점점 짙은갈색으로 변해가면 익어간다는 신호다.10여년전 큰형님이 심어놓은 포도가 이젠 넝쿨져 그늘도 만들어주고 열매도 가져다준다.새콤달콤한 야생포도 많은가람들이 즐긴다.요지음 안해는 수확하지않은 얼군포도를 좋아한다.포도 넝쿨에 그대로 방치한 포도가 마르고 얼고를 반복하면서 당분이쌓여 그맛이 신선한포도와는 또다른 별맛이라고 한다.          하나 발견한것이 있는데 바로 까치가 포도를 좋아한다는 것이다.지난해 수확한 포도를 정자에 널어 말이는데 글쎄 까치란놈이 접어들줄이야.녀석들은 맛나는 포도를 먹으려고 한무리 한무리씩 정자에 날아들었다.애초에는 까치를 좇다가 새각해보니 그녀석들도 좋은일하는 놈들이라 방치했다. 저놈들이 포도를먹고 배설하면 어느곳엔가 또 포도씨가 싹트고 자라서  새로운 포도숲을 이루게할것이다.다람쥐는 앵두를 좋아한다.우리집에 자란 몇그루의 앵두나무는 다람쥐의 배설물에서 자라난것들이다.허니 자연의 섭리란 얼마나위대한것인가.나도 좋고 너도 좋고 다같이 어울려사는 공생(共生)의 자연인것이다.        터전농사 하면서 얻은것이 너무도 많았다.형제들 사이 사돈사이 동창사이 친구사이  동네분들사이가 친밀해졌고 돈독하여졌다.아무리 한도시에 살아도 몇달간씩 못보는 형제도 많다.허나 우리 형제는 주일마다 만나는건 기본이다.사돈 어르신도 봄 가을로 만나뵙는다.자식들이 부모님모시고 놀러온다.           친구 동사자 동창들의 모임도 곳 잘가지는데 이모든것이 나의 터전농사와 관련된다.시내에서 보다 농촌의 신선한 공기 무공해먹거리  이런것이 조합되여 마반촌으로 모이게한다.     혼자가 아닌 여럿의 모임이 즐겁고 행복하다.
9    장구경 댓글:  조회:1283  추천:0  2018-11-11
  장   구   경      장마당에는 항상 사람이 분빈다.혹여 사람이 분비는 곳에 장을 앉혀서일지도 모른다. 장에는 음식이 많다. 장구경중의 가장 쏠쏠한 재미가 맛나는 음식을 골라먹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내 인생에 처음 가본 장마당은 연길 동방홍극장 맞은편에 있었던 동시장이다.아마70년대 초라고 생각되는데 엄마손잡고 들어간곳이 동시장이다.지금 생각하여보면 장터 다합하여야 200_300평방좌우되는 공터와 주위에 다닥다닥붙어있는 구멍가게다.             그때는 장도 마음대로 볼수없었다. 소경영이라 정책에 위배되는 행위였고 사실 장에내다 팔만한 물건도 별로없었기 때문이다.장에 내놓은 물품은 대게 초담배 닭알 싸래기 채소정도다.촌에서 사갈품목은 대체로 신발 비누 수건따위다.              한데 장에가면 얻어먹을것이 있는데 바로 기름튀김(油条)과 콩물이다.그맛이 얼마나 좋던지 기름이 부족하던 그시기에 별미중의 별미였다. 얼마나 맛있었으면 위위(魏巍) 의 보고문학"누가가장 사랑스러운 사람인가"중에도 "당신이 따뜻한 콩물한컵마실때 책가방을 둘러메고 학교로 갈때  조용히 책상에 마주앉아 하루의사무를 시작할때"라는 문구가 나왔겠는가.              당시가격으로 그름튀기 하나에 7전 콩물 한사발에 3전인것으로 기억된다. 80년대 장춘에서 대학다닐 당시에도 그 가격이였으니 옛날물가는 상당히 온정적이였다. 따뜻한 콩물에 기름튀기를 손으로 끊어 물구었다가 입에 넣을때 아 그고소함 달짝찌근함 부드러움은 당장 행복으로 변하여 얼굴이 붉게 상기되고 입가엔 유족함을 자랑하는 기름끼가 번들거린다.       나는 장보기 장구경을 좋아한다. 특히 재래식 장마당은 슈퍼마켓이거나 백화점에서는 느끼볼수없는 특이한 생활맛을 체험할수있다.여컨대 물건을 파는사람들의 어투라던가 몸가짐 또한 흥정하는 재미 모든것이 흥미롭다.           오늘 아침에는 마반산에 다녀왔다.실은 금년에 자그마한 땅에 콩을심었는데 여유가없어 별로 신경쓰지도 못했고 그저 방치한 상태였다. 결국은 둘째형님이 풀도 뽑고 가을까지도 도와주어 근심은 덜게되였다.오늘은 탈곡할 예정이였는데 가보니 형님이 정선까 다해놓은바람에 결국엔 그대로돌아오게 되였다.                집터밭에서 수확한 강냉이가 차에 있었는지라 우리는 조양천에가서 가공할려고 차를 타고 떠났다..근데 20여근밖에 안된다고 세집이나 가서밀해보았는데 모두거절당하고 말았다.하긴 몇백근씩 가공할려고온 손님도 많은판에 누가 작은 일감을  받자하겠는가?  간날이 장날이라고 오늘은 토요일 큰장아라고한다. 하여 우리는 장구경을 하기로 하였다.         조양천 장마당은 대체로   "E"자령으로 되여있었다.별도로 시장이 건설되여있는것이 아니고 골목길 량쪽에서 고기 채소 량식 과일 백화류  옷가지 먹거리등 다양한 상품을 벌려놓고 팔고 있었다.          원래 길량편에 상가들이 촘촘하게 앉아있는지라 결국에는 상가(商家)장사군과 이동장사군(대체로 차를 운전하여 큰장을 찿아다니며 물건을 파는 이동장사군) 주변 농촌에서 잡동사니를 들고온 사람들 혼합체가 팔려는측을 이루고 시내가정주부 길손 주변농촌에서 필요한 물건을 사려고온 사람혼합체가 사려는측을  이루고있었다. 그리고 많은 구경군들이 그 사이사이 오가며 북새통을 이룬다. 대개 큰장에는 평일장에서는 볼수없는 옷 신발 백화류가많이 들어온다.              계절에따라 품목도 많이 바뀌는 편이다.때가 12시를 넘어가는지라 배도 고프고 목도마른다.아 이래서 농촌공량군들이 시내에 올라왔다는 식당에 들려 한끼 먹고 가는가보다. 고기삶는 냄새 기름튀우기 냄새 각종 면식을 쪄내는냄새 가 코를 자극하고 목구멍을 방아찟게한다.         길옆에는 다양한 품종의 면식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만두나 뽀즈(包子)를 찌는 시루가 사람키보다 더높게 쌓여있는데 마치 그무슨 결쟁이라도 하듯이 주인장어른의 솜씨를 자랑이라도 하는듯하다...  우리는 고소한 기름냄새가나는 작은면식(面食)집으로   들어갔다.         집안에서는 중년의 녀성두명이 만두와 뽀즈를 빗고있었다. 안쪽으로 더 들어가니 한명의 중년남성이 꽈배기를 만들고 년로한 할머니한분이 손님들에게 봉사하고 있었다.              우리는 두화(豆花)두그릇 유자고(油炸糕) 두개를 시키였다...팥소를넣은 유자고는 고소하고 두화는 매끌매끌하고 맵싸름한것이 일품이였다.비록 집안꾸밈새가 너무 호졸하고 어두웠지만 음식맛과는 전혀 상관없었다.        맛나는 유자고를  먹으면서 보노라니 중년의 남성이 꽈배기를 뽑는 솜씨 또한 너무도 현란하다.떡반죽을 칼로 큼직히 베내서 판대기에놓은 다음 두손으로골고루 눌러준다. 칼로 한오리 란오리 오려내고    반죽 한쪽끝을 원손으로 눌러주고 오른손으로 새끼꼬듯이 비벼서밀어준다.다음 웬손으로 두끝을잡고 오른손으로 살짝 당기며 비틀어주니 꽈배기의 모양새가 금시나온다.아 월래 이렇게만드는거였구만. 항항출장원(行行出状元)이러더니 아마 이런건가 보다.        배도 부르겠다 우린 여기저기 다니며 장에나온 농산품이며  백화류들을 구경하였다.이때 장마당 한쪽에서 돼지고기한근에 6원이란 사구려소리가 스피커로 들려온다.내머리속에서는 불현뜻 룡정로두구에서 돼지전염병이 돈다던말이 생각났다.이난시판에도 누가 돼지고기를 사먹는가보다.값은 평소절반정도다.그래도 어느정도 상식이있는 소비자라면 요지음은 돼지고기를 절제하는것이 도리일것이라고 생각한다.           좀 더가니두부집이 보인다.우리는 두부두모와 만두네개를 샀다.두부와만두에서는 뜨더운김이 모락모락 떠오른다.장마당 한쪽끝에서는 통배추 감자를 팔고있었다.배추통이 얼마나 큰지 두포기가 한아름이다.        처음보는것은 장작을 트럭에 싣고 파는 장면이다. 소나무를 전기톱으로 일매지게 잘아서 차에 실었는데 그솜씨가 너무도 수준급이다.옛날 «꽃파는 처녀»중에 장작과 물을 파는 장면을 보고 어리둥절하였는데 실생활중에 참으로 존재하고 있었다.돈만 된다면 못내다 팔것이 있겠는가. ㅎㅎㅎ        오늘은 옥수수 가공못한 대신 덤으로 조양천장구경을 실컷 하게되였다.
8    음악 댓글:  조회:1085  추천:0  2018-11-08
음    악        올세는 사회가 너무도 빨리 변하고 있다.단 노래듣는 기계를 놓고봐도 그렇다.한40년전에는 벤도록음기 하나만 갖추어도 대단한 인기였다.처음으로 벤도록음기에 자기목소리를 록음하고 그소리들을때황당하기도하고 우습기도하던 그모습을 잊을수가 없다.        20여년전 젊은 음악팬들은 손바닥만한 가세트록음기를 허리에 차고다니며 노래감상을 했다.나도 그것이 부러워 광주로 일보려가는 친구에게 부탁하여 한대 구매했다.일본소니표였는데 한800원정도였다.몸체는 작으나 수화기를 귀에넣고 듣는것으로 되여있기에 립체음이 상당하였다.           때로는 오르쪽귀에서 또 때로는 웬쪽귀에서 쿵쿵당당 노래소리가 너무도 이쁘게 전달되여왔다.그러다가한10여년전에는 mp3이라는것이 류행되였다.완전히 획기적인 혁명이였다.몸체는 완전히 줄어들어 가스라이타만큼 한데 젊은이들이 목에 걸고다니며 음아감상하였다.       특히 출근족들은 차를타거나 걷거나할때에도 mp3를 곧잘 리용하는것이였다.나도 그것이 부럽드라만은 안해 아들에게는 다있어도 나한테는 차려지지않았다.           지능 핸드폰이등장하면서 음악감상은 더욱 쉽게되고 또 마음대로 음악을 선택하고 주고받을수있게 되였다.그러니 인젠 누구보고 사달라고나 부탁하지않고도 얼마든지 음악감상할수있다.헌데 문제는 마음가짐이다.사무가 너무힘든것도 아닌데 음악감상이 너무로출되는것도 아닌데 별로 수화기를 귀에꼽아본적이 없다.아마 아직까지는  여유가없나보다.누가 추천하는 노래를 감상하노라면 맘도 즐거워지고 황홀해지는 기분이다.          위챗팬에는 음악애호가들도 많다.아침에 노래선곡하여주이가 있냐면 어떤이는 오전출근시간대에도 노래를 내보낸다.다 아름다운 소행이고 고마운 사람들이다.노래는 우리를 즐겁게하기도하고 슬프게하기도 한다.하지만 음악애호가는 필경 생활을 사랑하고 생활에서 에네지를 얻는 사람들이다.        우리민족은 너무나도 음악을 좋아한다.새장구나 북만있어도 노래판을 벌릴수있고 춤을출수있다.노래가사에는 우리민족의 수난의 력사 근대개발기의 빛나는 력사  청년남녀들의 사랑의 창가 너무도 많은내역을 담고있다.             우리는 음악을 통해  마음의 피로도 풀고 아름다운 미래도 그려보고 삶을더욱사랑하게된다.방금 화고친구가 하얀나비를 선곡하여 위챗에 올렸는데 참좋은 노래다.   음 생각을 말아요 지나간 일들은 음 그리워 말아요 떠나간 님인데 꽃잎은 시들어요 슬퍼하지 말아요 때가 되면 다시 필걸 서러워 말아요 음 어디로 갔을까 길 잃은 나그네는 음 어디로 갈까요 님 찾는 하얀 나비 꽃잎은 시들어요 슬퍼하지 말아요 때가 되면 다시 필걸 서러워 말아요 꽃잎은 시들어요 슬퍼하지 말아요 때가 되면 다시 필걸 서러워 말아요  
7    자리 차지하기 댓글:  조회:1040  추천:0  2018-11-08
자리 차지하기         우리는 힘든시기를 거쳐온 세대다.그무슨 대약진이거나 60년대 대기근을 거쳐온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기운옷을 입었고 별로 고기도먹기힘들었던 그런시기를 거쳐왔다.지금 애들은 언제 그런시절도 있었느냐고 갸우뚱거릴것이다.아직 나라적으로는 빈곤해탈임무를 완성못하였지만 그래도대부분 젊은새대들은 가난이 무었인지 모르고 자랐다.        물질이 부족하던 시절에는 무엇하나라도 더 집에끄집어와야 제것으로 만들수있었고 새끼들을 먹여살릴수 있었다.헌데 그것이 고질로 저리잡고 대물림보배로 후손들에게 물려가고 있는것이다.             일전에 나는 전국성적인 계통강습반에 참가하게되였다.하루 세끼식사는 학교축에서 부페식으로 공급하고 있었는데  질적으로보나 량적으로보나 아주 훌륭한 식사였다.학원이140여명이라 웬만한 식당이 아니면 받아들이기 힘든것 또한 사실이였다.만약 천천이  띄염띄염 학원이 식당에 들어온다면 아무문제될것 없지만 하학하자 바람으로 우르륵 모여드니 붐비는것 또한 어쩔수없는 사실이였다.          학원 신분을 본다면 아무리 낮아도 과(科)급은 갈것인데 개중에 소질이라할가 아니면 본성이라할가 개명치 못한사람도 적지않았다.대여섯명이 분공작전하는데 첫보로 문건 주머니를 든사람이 먼저 들어가 자리를 잡는다.다음보조로 또 한명은 과일을 분담하고 또다른 한명은 분식(粉食)을 담당한다.이렇게 분공이 세밀하다.하여 혼자서 음식을 다담고 자리를 찿으려니 벌써 빈자라가 없다.물론 사람이 다 앉아서가 아니고 문건가방이 자리를  다차지하였기때문이다.세상에 이런한심한 인간들이라고야.이런 생활에 적응된 자기들끼이는 률(律)도 잘통한다.                사람도 없는 좌석을 찿아가지고도 옆사람에게 사냥하게 미소짓으며 차지한사람이 있냐고 묻는다.누가 그런자리에 앉았다가는 큰일이 일어난다.우선 자기들 패거리끼리 이건 우리 자리라고 선언하고 다음순서로는 눈알을 구울리며 안된다고 가로 막는다.한주일 동안 강습반에 다니며 나는 한번도 문건가방을 들고다닌적이 없다.별로 잃어질것도 없거나와 들고다니기도 불편하고 또한 숙소까지들고가 공부할것도 없기 때문이다.       아.원래 이런판국이였구나.문건가방을 자리차지하기 도구(道具)로 사용하는 판국이였다.그러니 나처럼 빈손으로 다니는 학원찬구들은 쟁반에 음식을 가득담고도 앉을자리를 찿지못해 이구석저구석을 찿아다니기가 일반이였다. 왜서 이렇게 해가며 밥을 먹어야 하는가.쟁반에담은 음식은 가요(佳肴)요 자리차지한 인간도 간부인데 먼저 자리 차지해가면서 까지 이한끼를 먹겠다는 심사가 도무지 리해되지 않는다.            얼마전 중경공공뻐스기사와 녀고객간의 분쟁으로하여 15명의 무고한 고객이 목숨잃은 끔찍한 사건이 발생하였다.몇발짝 더 걷기가 싫다고 트집을거는 몰식한고객때문에 다른고객들이 목숨을 잃었다.언제인가 신문에 기사가 실리였는데 유럽에 려행간 중국손님들이 아침식사때 국내에서 하던관습대로자리차지하기 차에서 먹을 과일을주머니에담기 정심에 먹을 닭알을 홈채기에넣기 하다가 시당관리원들의 훈계를 당하고 나라망신했다는 기사를 본적이 생각났다.           다들 이렇게하고 살지말자.그래도 단위에서는 과장자리라도 하나하고 어느정도 대학교육도받은 사람일것이고 몸에걸친것 또한 반반한사람들   이런소행에 나는 도무지 리해가가지 않는다.저런 사람들이 교육한 자식이면  그 대물림으로 어디가나 손해보면 안된다는식으로 또한 잔꾀를 부릴것이 번연하다.혹자는 그것이 무슨 대단한 일이라고 야단치냐할지 모르지만  우리는 그것을 막아야한다.나쁜 DNA는 유전시키지 말아야한다.너무도 자사자리한 그런사람들 소행으로 우리사회가 얼마나 병들어가는지를 심사숙고해야한다.남을 좀 챙겨주자.그래야 자기도 얻고 기분도 좋고 사회도 문명해질것이다.어디까지나 내가 먼저 내가좋은것 차지할려면 어느때인가 당신보다 더험한인간에게 욕볼것이다.  한사람 한사람 모두 작으나 문명한 행위를할때 우리사회는 더 조화롭고 아름답게 변모해갈것이다.
6    낙엽이 우수수 떨어질때 댓글:  조회:904  추천:0  2018-11-07
                                                     낙엽이 우수수 떨어질때          늦가을이다.그리고 초동삼이다.지난밤 내린 비는 늦가을의 마지막 온기를 말끔이 가셔내고 동장군의 왕림을 선고했다.가을아 저리비켜하고 말이다.        절기가 이렇게 바뀌고있고 하는일도 년말이 다가옴으로하여 무척버거워지고있다. 시간이란 종래로 누굴기다려주지도 또 먼저가는밥도 없다.그렇게 랭철하고 또한규칙적이다.2018년은 어언 저물어가고 있다.서둘러 못다한 일들은 마무리를 짓어야하고 또 다가오는 한해를 기획하여야한다.맨날 시간에 쫓기여 사는듯한모양새다.            지난해 우리동창들은 송구영신 모임을 가졌다.모임의 의미는 시간이 흘러도 흐트러지지말고 정신을 도사려 인생을 가꾸어가고 또한 침구들지간의 우의를 돈독히 지켜나가자는 바램이라 하겠다.       오후에는 도문을 가야한다.친구의 아들이 결혼식을 올리는데 하루 먼저와서 외지에서온 동창들 접대를맏아달라는 부탁을 받았기때문이다.세월이 류수라고 어언 우리자식들이 결혼할때가 되였다.인간이란 이렇게 한세대 한새대 대를 잇어가고 번창하여지는가 보다.         어떤이는 가을을 탄다고 했다.가을의 정취에 빠져 또 취하여  황홀한정신생활에 파뭇쳐있다는 소리다.엊저녁에는 대남자 6명이 매캐한 담대연기가 자옥한 술집에 고래고래 소리지르며 손짓몸짓해가며 인새을 담론하고 세상을 주름잡았다.ㅎㅎㅎ        아침에 일어나니 목은 마르고 배도 촐촐하다.
5    가을 댓글:  조회:978  추천:0  2018-11-07
                                                 가     을             가을이 왔다.산에도 들에도 가을이 왔다.하늘은 더욱더  높고 푸르다.시원한 가을바람에 머리칼이 날리고 농부들 얼굴마다에 행복이 넘쳐난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에게 계절의 변화란 종종 날씨의변화에 끝나는 편이다.꽃이피면 봄이요  푸른단장하니 여름이요 황금빛을 띠니 가을이라 눈내리니 겨울이다.허나 농부에게 있어 계절은 자연의 변화뿐만 아니라 내심의 희망과 기대 기쁨과 슬품이 동반된다 .           이른봄 대지에 아직 흰눈이남아있는 이때 농부는 한해의 농경기획을 짜고있고 또 한해의 삶을 고안하고있다.자식의 교육은 어떻게하고 한해 가정건강은 어떻게 지키며 논에는 무슨품종을 파종하고 밭에는 모두 무얼심어야는지 등 여느 큰회사의 사장님못지않은 방대한 방안을 고심하고있는것이다.             자연과 더불어 자연을 지킴과 동시에 자연에서 얻고 자연에 돌려주는 순환생산에 종사하는것이다.남의것은 엿보지도 탐내지도 않고 오로지 자신의 노력과 지혜로 삶을 영위해나가는 순수한 농부의 마음이다.            가을이란 항상 사람들에게 수확의 기쁨을안겨주는 계절이다.올해 강냉이노사도 잘되였다.우리부부는 주말을리용하여 뜨락에 심은 강내이를 거두었다.언제도 그랬다싶이 둘째형님의 손이 많이간 농산물이다.자주 촌에가기도 시간적으로 여유도없는지라 우리는 통강냉이를 주머니에 넣어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우리가 사는 동네는 원래 인평촌집거지였는데  한육칠년전에 부동산개발의 힘을입어 도시로 탈바꿈하였다.하다보니 사람은 시내사람이나 몸에배긴 습관 머리에 박힌 사유는 여전히 농군인 얼뜨기 도시사람이 적지않다.한60을 넘긴 한족부부가 이웃에살고 있는데 매년 육칠만근의 강냉이를 거둔다고 한다.대단한 사람들이다.           가을이란 이렇게 거두어들이는 계절이다.매년 매년 적던많던 좋던 굿던 원하던 싫던 거두어들이는것이다.인생도 다 그런것이 아닐까.매일 매일 일하고 정성들이고 그다음 무엇을 얻고 또 계획하고 반복하며 성숙되고 살아가는것이다.농부는 가을의 수학을 맛본다면 도시인은 맘속에 기대치가 현실화되는 기쁨을맛보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것이다.            자연의 가을은 알룩딸룩하고 오색찬연하고 향기롭다.우리가 공을 들이고 땀을 뿌리였기때문에  아마 금년의 가을이 더아름다운가 보다.오후에는 조양천에가서 강냉이를 가공해올 예정이다.
4    새시대 댓글:  조회:1084  추천:2  2018-11-07
                                                                                                         새   시   대 1.우리는 새시대에 살고있다. 멀리말고 20세기70년대 말에만 해도 우리는20세기말까지 4개현대화를 실현한다는 벅찬 리상을가지고 일하고 공부하였다.현대화에대한 구체적 개념은 거의없고 다만 우리생활이 더욱 편리하여지고  질이향상되고 농부들은 고된 로동에서 해방되고 로동자들은 더욱 현대화된 직장에서 일하고 아마 리정도 리해하고 있었다.그때는 외국과의 거래가 기본상에서 단절된 상태라 보고들은것도 거의없었다. 2.허나 교육은 잘되여가고 있었다.4가지현대화 실현을 위하여 우리는 과학지식을 장악해야한다는것이다.지금 보아도 자신의 분투목표와 나라의 발전계획이 잘맞아떨진 교육이라고 생각한다.지금 애들보고 왜 공부하냐고 물으면 대개는 부모님이 시켜서 또는 대학가기 위해서라고 말한다.그때 외국어 공부가 갓열풍을 일으키고 있었는바 조선학교들은 일매지게 일어를 배웠고 한족학교에서는 영어 혹은 로어를 배웠다.외국어를 습득하여 외국 과학기술서적을 탐독하고 외국선진기술을 배운다는것이다. 세월은 40년을 지났다.우리는 그때상상도 못해던 일을 하고있고 또 온갖현대화 시스템으로된 사회에서 살고있다.옛날에 누가 외국갔다와서 견문을 이야기하면 귀가솔깃하여 흥미진진 들었건만 지금은 외국나들이가 많아서 웬만한 이야기는 그저 지나치고있다. 3.제한되여있는 힘을모아 큰일을 해나간다는것이 우리 사회주의국가의 우점이다.나라가 강해야 백성이 잘산다.더많은 실례를 들지않아도 우리 사회가 얼마나 살기 편리하고 안정되였는가 다들알고있다.대학다닐 때 차표를사지 못해 안달하하던일 일본에 전화란통한다고 반나절씩 기다리던일 손편지쓰던일 모두가 다시 돌아올수없는 예말이되옜다.그만큼 사회는 빠른속도로 발전하고있다. 4.닭알의 노란자리에 맞먹는 최첨단과학기술은 우리나라가 아직도 처져있는 상황이지만 그격차가 줄어드는것 또한 사실이다.지금 사회일상에서 운영되고있는 은행 상업 교통 통신 정보등 여러업무처리는 우리가 그 어느나라에도 비할만한 높은 차원의 현대화시스템을 운영하고있다.일본은 발전한 나라지만 현금과 카드사용률이 아직도 높다.한국은 전자산업이 발전된 나라지만 기득권 리익계층이 손해본다는 리유로 좋은아이디어가 현실화되지 못하는 실례가 높다. 5.아무리 편리한 사회라도배워야 사회에적응하고 그시스탬을 리용할수있다.오래동안 카드 계좌 차표구매 등엄무는 안해가맡아온터라 사실 나는 모르는것이 많다.가정단위로 려행갈때면 안해와 아들이 모든것을 설계하고 예약하고 결재하니 나는 잘따라만더니면 된다.단위에서는 령도라고 젊은 친구들이 이것저것 거들어주니 사실 나절로해본 일들이 많지않았다.결국에는 소경이된것이다.이좋은 시설들을 마음대로 다루지 못하고 남의 도움을 바란다는 현실이 나를 무색하게 만들었다.오늘 서안을 출장가는데 안해는 공항 가서 어떻게 비행기표를 자동판매기에가서 찍어내는가를 구구히 설명해주었다.마치 어린아이을 내보내는 심정이다.하긴 한번도 해보지못했으니 말이다. 6.누구의 도움없이 인터넷결재도하고 항공권도 구매하고 은행업무도 볼줄알아야한다.괜히 겉으로는 아는것처럼해도 속은 텅비여있는 실속없는 사람으로 전락하면안된다.지금 무슨 세월인데 지갑차고 줄을서서 차표끊고  항공매표소에가서 구구히 설명들어가며 항공권끊는단 말인가. 비행기가 서안상공까지 왔다고 안내방송한다.서둘러 내려야한다.  
3    단오절(端午节) 댓글:  조회:1149  추천:0  2018-10-01
         음력5월5일은 단오절이다.일명 한식일(寒食日)이라고도 한다.그유래에 대하여서는 여러가지 설(说)이 있는데 구구히 설명하지않아도 다안다.다만 단오로하여 이루어지는 우리주변의 민속행사와 음식 그리고 명절이 우리에게 알려주고자하는 의미에 대하여 이야기해보기로 하자.                 " 오월이라 단오명절 봄바람은 불어불어 "어릴때 종종들어오던 조선노래다.마을에선 느티나무에 그네를 매고 젊은녀인들은 하늘로 날아오른다.젊고 힘이나 쓴다는 남자들은 모래밭에서 씨름판이 한창이다.널뛰기도 성수나는데 높이솟아 오를수록 마을 여기저기가 한눈에 들어온다.혹여 이몽룡이라도 모습을 보일지 모늘노릇이다.               중국에서는 단오날 룡주( 龙舟)경기치르는 풍속이 있다.  힘을합쳐 노를 젓어 어느팀이먼저 종점에 도착하냐를 비교하는 운동이다. 또중즈(粽子)를 먹는습관이 있는가하면 교자을 해먹는 동네도있다.  허나 조선에서는 쑥떡을 해먹는 풍속이 있다.우리같이 연변에는 같은동네살아도민족에 따라 서로다른 풍속을 유지해가고 있다.               옛날 우리 외할머님이 계실때는 단오날에 쑥을 뜯어다가 떡쌀을  찌는가마에  같이넣었는데 햇쑥의 청신한 향기가 집안 여기저기에 그득하여 맘마저 즐겁게하였다.쑥으로 만든찰떡의 특점상 색상이 이쁘다.파아란 자연의 풀색 거기에 노란콩고물을 찍어 먹으면 마치 자연의 향이 몽땅 내입으로 들어오는 느낌이다. 그맘 때면 같이하는 떡이 있었으니 바로 졸뱅이 떡이다.평소에 밭에일할때면 손등을 긁던 얄미운 졸뱅이가 향기나는 떡으로 변신할때 우리 민족의 지혜에 다시 한번 감탄하게된다.             요지음은 시대의 변화와 더불어 간편하고 실리를 따져가는 형식의 단오절이 있으니 바로 인터넷에서 서로 문안하고  쑥사진을 올리는등 자연과는 거리가먼 명절방식이다.젊은축들 사이에는 통하지만 선조들이 명절을 만들고 절기(季节)를 만든 지혜와 숙고(熟考)에 비하면 차이가 크다.자연의 섭리를 어느정도 알고 지켜야 우리도 건강하게 살수있다.               조금 부지런한 사람들은 단오날 해뜨기전에 들에나가 햇쑥을 꺽어다 문틀위에 걸어놓는다.뜻인즉 쑥의 향기가 병과 액을 막고 집안의건강을 지켜준다는 말이다.얼마나 지혜로운 처사인가.나도 이십여년을 계속 그렇게 해왔다.과학적으로도 충분히 근거가 있는 이야기지만 다만 하나 가정의 건강을 지키겠다고 새벽길에 나선 남편 그것만으로도 안해는 남편이 기특할뿐이다.감사할 뿐이다.          단오에 말린쑥으로 향보( 香包)를 만든다던가 베개속을 한다던가하는 관습도 전해오고 있다.잠이잘오지않는 사람에게는 귀신같은 효과를 선물하는 쑥베개다. 담배군들은 말린담배사이에 쑥을넣어 뜸을 띄우는데 그맛이 꿀맛이라고한다. 단오는 명절이다.운동 음식 풍속등으로 다양한 꾸밈새로 단장한 중요한 명절이다. 위로는 조상을 잊지말고 가로로는 가정을 보살피고 종으로는 사회에 보답해나가는 참다운 일군으로되자는 마음새다.
2    추석 댓글:  조회:883  추천:0  2018-10-01
        추석이 다가왔다.산소를 가야한다.부모님이 돌아가신지 33년이 된다.어쩌면 두분은 같은해에 돌아가시였을가.너무도 금술이 좋아서일가 아니면 자식들한테 부담을주지말자고였을가.자식들이 효도를하려고 해도 기다려주지 않았다.                우리는 부모님의 산소를 소영에 모시였다.이국땅에 들어오시여 가장많은 시간을보낸곳이 바로 소영이였다.우리형재들은 양지바른 언덕에 부모님을 모시였다.85년도 까지만도 그곳에 별로 묘가 없었지만 지금은 많이 들어있다.동네 분들이 다수고 시내에서와 산을쓴집들도 있다.하니 별로 적적하진 않을것이다.더우기 부모님산 아래편에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님의 산소가 모셔져있어 종종 마실다닐것이라 믿고있다.아버님은 남쪽나라 경상북도 월성군 산내면 갑산1리 출신이다.형제 자매8자식중 일곱번째로1921년생이고  어려서 이름은 무식이였다.그세월 다그렇다싶이 생활난으로하여 살기좋다는 만주로 떠났으니 그때 나이가 18세였다.산전 수전다겪다가 1947년도 흑룡강성 학강에서 해방군에 입대하였다.               어머님은 함경북도 회령출신인데 형제는 오랍누이로 간출하다.아버지 김재능 어머니 박생금의 딸로 1925년도 출생하였다.동생 한분있었는데 신체가 건강하지 못하다.어머님이60세로 돌아갔고 외삼촌도 60환갑생일쇠고  몇년안가서 돌아갔다.        지금 우리는 산소를가면 두곳에서 각각 아버지 어머니와 외삼촌산에 제를 지낸다.목노아 울며 지내던 재사는 지나가고 우리식으로 가져간 제물을 올리고 절하고 술을붓고 인사를올린다.산을 썼기에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아니면 얼마나 적적할가.               추석의 의미는 고인을 추모하고 부모님의 은덕을 되새기고 자신의 맏은바 사업을 잘완수하고 자식을 올바르게 교양하겠다는것을 부모님께 보고하고 또 실천에옮기는것이라고 생각한다.이것은 또한 후대들에대한 요구이자 바람이다.         우리는 또 한번의 추석을 맞이한다. 아침저녁으로 쌀쌀한 요지음 부모님 잘 지내세요. 추석에 올라가 인사드리겠습니다.
1    백일홍 댓글:  조회:842  추천:1  2018-10-01
        개화기(花期)가 백일간다고하여 지어진 이름 백일홍 어디서나 쉽게 만날수있는 꽃이다. 비록 화사한 꽃은 아니지만 자기만의 미를 한껏자랑하는 국민의 꽃이다.        나는 시골이 좋다.하여 시골을 자주다닌다.시골사람들은 아주 소박하다.말투도 마음씀이도 모두소박하다.하지만 마음속 깊은곳에 는 생활을 사랑하고 고향을 사랑하며 미(美)를 숭상하는 뜨거운 정열이 은은한 숫불처럼 타오르고있다.이것이 결국은 우리민족의 독특한 이미지라고 나는 믿는다.                 2 년전의 일이다.같은직장에 다니는 친구와같이 마반산에 가게되였다. 때는 7월이라 날씨가 매우 더웠다.마을 어구에 들어선 친구가 얼굴에 웃음을 띄우며 하는말 "동네가 깨끗하네".그렇다.마을 포장길은 너무도 깨끗하고 길가에 심어놓은 꽃들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비록 마을 경제발전은 빠르지 못하나 거리환경은 그 어느마을에도 짝지지않았다.              이모든것은 마을 여러분들의 노력의 결실이다.이 거리를 다니노라면 종종 마을의 중장년 노인들이 거리를 쓸고 꽃밭의 풀을뽑는 장면을보게된다.비록 경제적으로 여유가 많지는 않으나 생활을 사랑하고 고향을   사랑하며 미를 숭상하는 마음은 그누구에게도 짝지지않는것이다.하기에 젊은이들이 떠나간 마을이지만 항상 훗훗한 인품으로 깨끗한 환경으로 손님을 맞이할수있는것이다.그꽃중에는 백일홍이 소복히 피여있었다.                금년 봄의 일이다.우리집울타리에 누군가 백일홍을 옮겨놓았다.어리벙벙하여 마을 큰길을 살펴보았다.아 글쎄 모든 길가에 일매지게  꽃이 옮겨졌다.분명 마을분들이 힘을합쳐 꽃을 심은것이다.마을 미화에 합심한것이다.              요지음은 모든 백일홍이 다 피였다.품목도 여러가진데 진붉은색 분홍색 저마다 한껏피여났다.마을분들의 선량한 마음을 담아서일가  부지런한 정성을 받아서일가 너무도 싱싱하게 아름답게 피였다.백일홍 나는 너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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