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시문학 전문지2019년 겨울호에 게재
시에 대한 잡담
(중국동포시인)리문호
잡담은 체계 없이 이것 저것 말하는 것이 잡담이다. 50년 동안 시를 창작하면서 나에게는 약 6000여수의 시작 노트가 있다. 이 시들 중에 시집을 묶고 문학 잡지에 낸 시는 불과 800여수 밖에 되지 않는다. 시 창작은 유쾌한 고행길이며 투신해야 하는 고군분투의 길임을 말하는 것이다. 시를 쓰면서 시 이론에 대하여 깊이 연구한적은 없다. 나는 나름대로 나만의 감각에 의하여 시를 써왔다. 아래에 서술하려는 것들은 시를 쓰면서 약간이나마 터득한 잡담들이다
시와 시의 사명감에 대한 생각
시의 사명이란 무엇인가? 이 명제는 참으로 말하기가 난감하다. 왜냐하면 시는 시인의 마음에 엉켜있는 감정의 응어리, 혹은 그 감정 응어리에 있는 에너지를 흥(兴)에 의하여 발산하는 것이다. 이를 시흥이라고도 한다. 이백은 주흥이 시흥이다. 창간호에 발표된 에서 서술한 바와 같이 시 쓰는 흥취가 없으면 시인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각박해지는 세상에서 감정이 풍부한 시인은 언제나 쓸쓸하고 고독하고 상처를 받는다.. 이근모 시백님께서는 시를 정의 할 때 , 고. 말씀 하셨다. 그러면서 라고 말씀하였다. 바로 이것이 정의 응어리며 아름다움에 대한 발산의 에너지가 된다. 여기서 아픔은 아름다움에 대한 동경으로 생기는 괴로움이며 이 괴로움은 진실성이 있어야 한다고 이해된다 이는 평론가들의 시정의 와는 구분되는 체험적 영감과 즉흥적 영감에서 얻는 투철한 시 정신이다. 시 한 수는 진솔한 정의 응어리여야 한다 굳이 사명감을 논하라면 정신의 아픔과 상처를 보듬어 아름다운 경지를 여는 것이다. 발산이란 감정의 응어리가 불과 같아서 빛과 열을 내어 주위를 밝히고 따뜻하게 하는 작용을 한다. 그 열과 빛은 시인에게 내재한 사상성과 정신력에 있다
그럼 시란 무엇인가? 나는 오래 동안 시 창작에 매달려 오면서 아직 시가 먼지를 모르고 있다. 깊이 생각해 본적도 없다. 누가 쓰라는 압력도 없이 그저 시를 쓰면 즐겁고 좋아서 마음이 내키는 대로 써왔다. 굳이 생각하라면 어떤 사물이 시인의 감각 기능에 의하여 일어나는 흥, 마음의 율동을 적는 것이 시다. 즉 시적 발견에 의한 감동의 움직임과 리듬 있는 율동이다.. 좀더 깊이 말한다면 생활 속에서 마음속에 형성된 형상들과 상상을 리듬 있는 언어로 그린 예술적 형상이다. 즉 움직이는 감동을 형상화한 언어적 표현이다. 시인이 아니래도 누구나 감동이 일어 날수 있겠지만 시인은 그 감동의 리듬을 언어로 그려낼 수 있는 사람이다
시인이 시를 쓸 수 있는 내재적 조건은 풍부한 지식, 풍부한 체험, 풍부한 감정으로 받은 느낌, 즉 흥이다 또한 이 세가지 요소를 통해 예리한 관찰력으로 시인에게 내재한 사상 성을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이에는 일상 언어를 시화하는 연금술이 있어야 한다
나는 시의 사상성을 주장한다. 사상성이란 시인이 사회에 대한, 인간 관계에 대한, 자연과 사물에 대한 시인의 사고이다. 이 사상성은 시인의 인생관, 세계관, 가치관, 철학관에서 나타난다. 또한 아름다운 세상에 대한 동경에서 나타난다. 기실 시인은 아름다운 이상을 예술적으로 발견하고 그를 향해 정진하면서 자기의 시속에 세상을 포용하고 감화하려는 욕망이 있다
시인이 되는 기본 조건
시 창작에서 시인의 가장 기본적인 정감의 핵심은 미(美)에 대한 애심(愛心)이다. 열정적인 사랑이 없는 사람은 시인이 될 수 없다. 생활에 대한 사랑, 인간에 대한 사랑, 자연에 대한 사랑, 미지의 세계에 대한 사랑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사랑은 시 창작의 원동력이 된다. 시 창작의 가장 기본 사상은 미의 창조이다. 시인이 사회의 부조리, 사악한 것과 추악한 사회 현상을 증오하고 분노하고 비판하는 것도 사랑을 위한 것이다
이런 것으로부터 일어나는 자질의 시흥(詩兴)이 시를 쓰게 한다. 사람에게는 여섯 가지 감각 기능이 있다. 모양과 색을 볼 수 있는 시각, 수백 가지 맛을 볼 수 있는 미각, 형태의 부드러움과 거칠음, 온도를 감지할 수 있는 촉감. 보이지도 만지지도 않는 것을 감지할 수 있는 후각. 형태도 없는, 냄새도 없는, 색도 없는 것을 감지할 수 있는 청각, 이런 오관에 의하여 사물의 동태와 시간 차를 감지할 수 있는 예감과 판단이다 시인은 이런 감각기능들의 종합적인 이미지 작용에 의하여 얻은 흥을 시적 언어 감각으로 표현한다
시 창작의 몇 가지 단상
(ㄱ)고독과 명상; 현대인들은 고독하면 공포스런 공허를 느낀다. 그러나 시인의 고독은 명상의 여행을 하기에 고독하지 않다. 체험적인 형상과 미지의 형상에 만유(漫遊)함을 즐겨 한다. 시인은 반드시 눈을 감고 명상하는 것만은 아니다. 몸은 눈에 보이는 사물 속에 있지만 생각은 눈에 보이지 않는 무한이 넓은 시간과 공간에 가있다, 눈으로 관찰하여 생기는 시 발상은 즉흥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시인의 시상은 명상 속에서 대부분 발상한다. 명상 속에는 체험한 기억과 동경에 의해 생기는 성오(惺悟)가 있고 영감이 있고 시적 발견이 있다.
(ㄴ), 시를 쓰는 것은 자아 도취의 현상이다. 시인은 시를 쓸 때 자아 도취에 몰입하게 된다
주위환경에 대한 감지 능력은 살아지고 시의 정서에 자동적으로 정신력을 투입한다. 시를 쓰는 것은 미적 향수이기 때문이다.
(ㄷ), 감정 호르몬에 대한 생각; 나는 시를 쓰는 것은 감정 호르몬의 분비라고 말한 적 있다. 시를 쓰게 되면 가슴에서 짜릿한 쾌감을 느낀다. 나는 이를 감정 호르몬이라고 말한다. 이를 제6 감각 기능이 아닌가도 생각해본다. 이런 감각으로 쓴 시는 대부분 좋은 시로 평가된다. 무엇 때문에 이런 감각이 일어나는가 하는 것은 응당 심리학적으로 생물학 적으로 연구해 봐야 할 일이다. 시 쓰기가 괴로우면 시인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시를 쓰는 것은 일종 쾌감의 반응이다
(ㄹ),한 수의 시를 쓰는 것은 대단한 정신력의 소모이다. 그 원인은 몰입되어 쓰고 쾌감이 극도로 달하기 때문이다 어떤 대상을 위해 쓰는, 특히 사랑을 위해 쓰는 시, 분노와 증오를 위해 쓰는 시, 그리고 자아 도취에 쓰는 시 모두 그러하다. 이는 정의 응어리를 풀어 놓는 과정이다. 다 쓴 후에는 마음이 후련해지는 느낌이 생긴다. 시인은 이런 묘미가 있기에 시를 쓴다
(ㅁ)시작노트에 대한 생각; 지금 시를 지향하는 젊은 일대들은 대 부분 시작 노트 없이 직접 스마트 폰 이나 컴퓨터에서 시를 쓰고 있다. 이는 극히 잘 못된 창작 습관이다. 시 창작에서 자기의 사유의 궤적을 지워 버리는 나쁜 습관이다.. 한 수의 시가 완성되기까지 많은 수개가 필요하다. 시작 노트에서 수개한다면 수개한 사유의 흔적을 살려 재 발견하고 시를 완성에로 이끌 수 있다
(ㅂ), 지금은 기계문명의 시대다. 인터넷방송, 스마트 폰, 컴퓨터, 등이 우리 생활에 깊이 침투되어 일상화 되였다, 우리 시는 영상 시, 낭송 시로 제작되어 이 기계문명 속에 들어가 많은 독자와 만나야 한다. 전자 시집도 나 오긴 했지만 책에도 낭송 음성이 나오게끔 기술 혁신을 해야 한다고 본다. 매 장을 번지어 활자와 음성이 나 오게끔 한다면 책의 대 혁명이 될 것이다. 기계에도 문자가 나 오지만 시력을 피곤하게 하기 때문이다
(ㅅ)시인은 정치가가 아니다. 시인이 정치에 뛰어 들면 다시 시인이 아니다. 시인은 정치가들 보다 더 높은 위치에 있는 미적 세계의 창조자이다. 소설가나 시인이 정치에 들어가 정치자본을 축적하려 한다면 필을 꺾어야 한다. 정치의 속성은 권력으로 사람을 다스리는 것이다. 그러나 시인은 미를 창조하여 대중과 공유하고 감화하여 아름다운 세상으로 함께 가는 것이다. 시인은 정치를 논할 수 있지만 언제나 시의 서술 대상에 불과하다. 시인은 인류 발전의 선두에 선 사람이며 아름다운 세상을 지향하는 장인이며 투사이다
(4)시인은 이상주의자이다
시인은 아름다운 정신 세계와 정감 경지의 추구자 이며 창조자이다. 시인은 자기의 정신으로 시 세계를 열어 세상을 포용하려는 욕망이 있다. 그래서 시집을 출간해서 많은 독자들이 읽게 한다. 돈을 벌려고 시를 쓰던가 시 학습 반을 꾸려 돈 벌려 하는 것은 자질의 문제이다. 완성된 시인은 도량이 넓고 배포가 크며 너그러운 품성의 소유자이다. 사회적 보상을 바라지 않는 사람이다. 독자들이 애독해주면 그것만으로 최대의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다. 시인이 바라는 것 이것보다 또 다른 무엇이 있겠는가.
시인은 자기만의 신앙과 를 가진 사람이다 예서 말하는 는 종교적 의미를 떠난 시인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믿음과 이상이다. 여기서 집고 가야 할 것은 모든 종교는 개인의 교리로부터 시작했다는 점이고 그 교리를 따르는 군 체가 있어 종교가 형성 되였다는 점이다. 시인은 자신의 를 시로 표현한다. 도연명의 이상세계인 도화원이 바로 그 실례다. 그래서 시인은 애독자가 있으면 성취감을 느끼고 이로서 만족한다. 이런 믿음과 가 없는 시인은 한평생 시를 써도 천 편의 시를 써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 말은 한편의 시에 언제나 사상성이 담겨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5)시에 대한 고뇌
나는 시를 쓰면서 시가 왜 이 지경이 되였는가 많은 고민을 한다. 시가 왜 사회의 변두리에 물러났는가도 슬프게 생각한다. 시인으로 당연한 고민이며 비애이다. 사회적 발전의 충격적인 요소로 인해 인간의 정신세계를 물질과 상품 그리고 기계문명이 점령하고 있는 객관적 주요 원인도 있겠지만 시 정신의 쇠약도 홀시할 수 없는 원인이다.
나는 서울에서 모 문학단체의 옥류동 전철역 광장의 시화전에 참가한적 있다. 60여명의 시인들만 두루 보고 있을 뿐 많은 사람들이 지나가도 발길을 멈추고 보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전철에서 오르고 내리는 사람들더러 맘대로 가져가 보라고 시집과 시 문학지를 광장에 진열해 놓았지만 집어 가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한 누추한 옷 차림의 노숙자가 몇 권 집어 겨드랑이에 끼고 가져 가길래 보시려고 가져가는 물었더니 베개 삼으면 좋을 같아 가져간다 하였다.
나는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에 들리 군 한다. 시집들이 있는 책장은 스산하다. 나만 이 책 저 책 뒤져 볼뿐이다. 동대문 시장이나 동묘 시장에 구 서적을 사러 드문드문 가군 한다. 길거리에 나와 널려있는 산더미 같은 책 더미를 뒤지곤 한다. 시집들도 많이 있다. 한국 학술정보 출판사 최종준 사장님께서 출판한 나의 시집 은 서점으로 들어 가지 않고 각 대학교와 중학, 고등학교 도서실로 들어 갔다니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중국의 저명한 시인 강효삼 시인과 술좌석에서 들은 서글픈 이야기가 있다. 강효삼 시인께서 시집을 출간한 후 팔아 달라고 서점에 가져 주었다 한다. 몇 달 후 서점을 찾아가 몇 권이 팔렸나 물어보니 딱 한 권이 팔렸다 한다. 그것도 칠월에 개털 모자 쓴 사람이 사 갔다 한다. 우리는 그 말을 듣고 한바탕 웃었었지만 우리의 웃음은 얼마나 서글픈가,
시는 사치품으로 될 수 없고 감정 또한 포장하여 상품으로 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는 현실과 많이 떨어져서 허구적인, 초현실적인, 추상적인, 정감 배제적인, 외 골로 흘러가는 혼탁한 물이 되였음을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6)시의 존재 가치에 대한 생각
시는 사치품이 아니다. 사치품이 아닌 것은 상품이 될 수 없다.. 그러나 가치로 논할 수 없는 정신의 양식 이여야 한다 .이것이 바로 시의 존재 가치다. 양식이라면 우선 영양 가치가 있어야 하고 씹기 좋아야 하고 맛이 있어야 하고. 향기가 있어야 하고 구미를 돋 구는 여러 가지 색갈이 있어야 하고 오염이 없어야 한다. 신선해야 한다 심신 건강에 이로워야 한다
이에 비해 우리의 시는 너무 외진 길을 걷고 있다. 외진 길이 주류가 되였다. 시인들끼리 읽는 시가 시인마저 읽기 싫어하는 시가 되였다. 난해시 때문이다. 나는 이런 시를 염오(厭汚)할 염시(厭詩)로 규정한다. 귀신이나 읽고 송장이나 읽으라는 시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시며 쓴 시인마저 해석할 수 없는 시이다. 해석하라면 괴변밖에 되지 않는 시다. 이런 시를 써놓고 독자만 탓한다. 수준이 나리다 거니, 이해력이 부족한 저 지능 이라거니, 이런 시를 써 놓고 자기 혼자만 시인인 것처럼 다른 사람의 시는 시가 아닌 것처럼 유아 독존인 것처럼. 이런 시단의 저질적인 추태는 꼴 사나운 것이 많다.
한국시의 비애는 민족성의 상실에 있다. 아무리 서구의 우수한 창작 이론이라 해도 민족 문화와 민족의 감정정서에 녹아야 한다. 가장 민족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 서구 시론에 대한 맹종이 시의 고립을 초래한다. 실험 시는 언제 까지나 개인의 것이지 사회화에 기여하지 못한다.
그리고 낯설기 시는 응당 일상의 습관된 감각에서 새로운 발견으로 신선 감을 주어야 하고 영혼에 불꽃을 튀겨 주어야 한다. 낯설기 시도 비록 낯설기는 하나 합리성이 있고 깊은 내용을 담아야 한다. 낯설기를 잘 못 이해하여 난해 시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다. 언어의 폭력 조합, 이치에 맞지 않은 이미지의 조합, 등 어설프고 애매한 내용이 없는 시가 많다
시는 난해하게 쓴다고 깊이가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알기 쉽게 쓰면서 극치에 도달하는 시가 시인이 도달해야 할 목표이다. 이런 시만이 독자들과 공명을 일으킬 수 있고 애독 될 수 있으며 미적 향수를 길게 남길 수 있다
시무달고(詩無達詁)란 말이 있다. 함의가 깊은 한 수의 시에 독자의 이해와 성향, 감수가 다름에 따라 여러 가지 해석이 나올 수 있다. 그러나 해석이 가능하니 난해 시는 아니다. 해석할 수 없는 시가 난해 시이다
시의 시대성은 시의 생명이다. 시대성이 없고 시대의 숨결이 없으면 살아 있는 시라 말할 수 없다. 이른바 초현실주의 추상주의 시들은 살아 있는 생명이 있다고 말해도 될 것인가. 고대의 시들이 지금까지 애독되는 것은 그 때의 숨결과 시정이 살아 있기 때문이다. 즉 그 시대의 시간성과 공간성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난해 시는 난해로서 무의미 시가 되고 난해로서 개성을 잃은 일반화 시로 된다고 생각한다. 이해 할 수 있는 시는 이해로서 개성과 풍격이 수립된다. 문제는 신춘문예에 당선된 시를 보아도 난해시가 한국 시의 주류를 이루어 다른 유파의 시는 숨쉴 기회가 없다는 말이다 한가지 의문되는 것은 난해시가 얼마나 심오한 주지와 철학이 담겨 있기에 난해한가 말이다. 들여다 보면 깊은 우물에 있는 것은 그저 물뿐이다. 양파를 아무리 까 봐야 속엔 양파뿐이다..너무 자기를 고명한 시인으로 자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시란 주관적 심상이나 심경의 표현이다. 시인은 언제까지나 자기의 개성적 시풍을 견지해야 한다. 함부로 어떤 시류에 휘말리어 자기의 개성을 잃지 않아야 한다. 많은 초보 시인들이 맹목적으로 난해시나 잠재 의식의 시에 뛰어 들어 자기의 개성을 말살하고 있다. 이 또한 시의 비애이다. 나는 초학자와 시를 담론할 때 항상 어떤 시 유파에 종속하지 말고 자기만의 개성으로 자기만의 시를 쓰고 누가 쓸 수 없는 시를 쓰라고 강조한다. 나만의 생활에서 나만의 시적 발견만이 나만의 시를 쓸 수 있는 조건이다. 자기 나름대로 쓰면 개성이 수립된다
(7) 시인의 자질에 대한 생각
물질 문명과 기계 문명이 발전하여 정신의 영지를 점령하면서 가장 담화(淡化) 하여 가는 것은 전통적 도덕 관념과 인성이다. 이 것은 독자들이 시를 외면하는 주요 원인이기도 하다. 퇴계 이황 선생의 성리학의 기본인 수치지심, 측은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으로 7정을 억제하는 4단7정의 원리이다. 또한 유교에서 말하는 인(仁), 의(儀), 예(禮), 지(智), 신(信)이다, 그리고 에서는 온(溫, 온화하고 유연한 것), 량(良 선량하고 인자한 것 ), 공(恭 성근하고 공경한 것), 검(儉,검소하고 근로한 것), 양(讓 겸손하고 사양하는 것) 이라고 하였다. 이것이 바로 많은 시인들이 말하는 선비 정신이라 생각된다.
이런 도덕관념과 인성의 담화(淡化)는 상품화된 물질 자극에서 충족을 찾고 있다, 심지어 인성도 상품화 되여 가고 있다. 정신 향락보다 물질 향락과 사치품 자극을 중시하는 오늘날에 시가 변두리로 물러 남이 현실화 되였다. 이런 현실 속에서 시인은 많이 고독해지고 쓸쓸해 졌다. 독자층을 잃어 외로워졌다. 그러나 시가 없는 인간사회는 없을 것이다. 시인의 정신력과 사상성만이 좋은 시를 쓸 수 있는 조건이다
이런 사회환경 속에서 시의 출로를 고민해야 하며 시적 정신을 고양해야 한다고 본다. 시가 망하지 않고 염오스럽지 않고 애송시로 살아 남으려면 시인은 대중적 시의 방향을 제시하고 현실적인 진정성 있는 시를 고민해야 한다 가짜 감정의 시를 쓰지 말아야 한다
(8) 한국 시의 희망
시적 정신의 고양은 침체 상태의 시단을 타개하기 위한 노력이다. 나는 한국에 체류하고 있으면서 절실히 체험하고 있다. 문학 단체의 출간식이나 활동에 참가해도 서로 살아 있다고 얼굴을 비치는 친목회란 생각이 든다. 시가 대중 속에 들어가지 못하고 시인만 시를 보고 혹은 시인마저 시를 보지 않는 정황이다. 이는 시가 초현실주의 추상주의 허공에 떠있는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와중에 나는 재한동포문인협회에 오셔서 시학 강의를 하시는 이근모 시인님의 강의를 듣게 되였다. 이근모 시인님의 강의는 무미건조한 시론 강의가 아니라 체험적인 경험적인 시 이론 이여서 내용이 풍부하고 생동하였다. 이근모 시인님의 특강을 들으면서 한국의 민족적 시 정신은 아직 살아 있다는 강렬한 감동을 받았다. 한국에서 시 강의를 몇 번 들었지만 그때의 인상이 가장 깊다. 그 때로부터 알게 되여 전화나 위첸으로 많이 연락하면서 이근모시인님께서 보내온 시집 5권을 받았다
2004년에 문단에 등단하여 10여권의 시집과 시 이론을 펼쳤다는 것은, 또한 시를 보면서 느낀 따뜻한 시심이 대중 속에 들어가 시 향을 풍긴다는 것은 치열한 시 정신이 없다면 불가능하다. 이근모 시인님은 국가 유공자의 자제로 강렬한 애국심을 가지고 다년간 공직에 충실히 임하면서 축적한 천부적인 시심이 폭발된 것이다.
이근모 시인님께서 발행하시는 를 받아보고 한국시의 방향은 민족정신과 민족 감정을 바탕에 두어야 한다는 느낌을 절실히 느꼈다. 그리고 발행하고 집필하시는 선생님들의 시 정신이 이 방향을 잡고 있어야 함을 느꼈다. 에 발표된 시들을 보면 한국 시단에서도 주목해야 할 청출어람의 시들로서 신선 감, 차분한 민족 정서로 깔린 감동이 있는 시들이다. 이는 한국시의 맥박을 알고 치유하는 편집자가 시 정신을 고양하여 이끌어 가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한국 시인들의 시를 내는 것 만으로 지면이 부족하지만 지면에는 중국 동포 시인들의 시가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한다. 이에 감사하는 마음이다. 어떤 한국의 평론가와 시인은 중국동포의 시를 3류 시라고 비난한 적 있는데 반해 편집자와 발행인의 도량과 배포를 따뜻하게 느낀다. 한 민족의 뿌리엔 경력이 다름에 따라 여러 기지 화초가 자란다. 이를 포용하여 민족의 시단을 가꾸어 나간다는 것은 모국에 계시는 편집인들의 포용 정신과 배려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근모 시인님의 시를 읽고 비록 그 깊이에 들어 가지는 못 했지만 감사하는 마음으로 중국조선족의 가장 큰 사이트 조글로에 헌시를 발표하였다
그대의 시 세계를 산책하며
- 중국동포문인의 스승이시며 친구인
존경하는 이근모 시백님께 삼가 올림
나는 이 나라 파란 하늘을
그대의 들꽃에 포개여 풍기는 시 향 속을 산책합니다
나는 이 나라 산천의 숨결을 담아
그대께서 그린 수묵화 속을 조용히 걸어갑니다
그대의 시행 속에 이 나라 밤하늘의 별이 흐르고
아침 햇살이 이슬을 꿰여 비추는 눈부신 앞날이 있습니다
그대의 눈빛이 스쳐 지나가는 곳엔
아름다운 풍경들이 그림으로 그려져 번지고
고독한 나뭇가지에 앉은 들새들이
정겹게 지저귀는 사랑의 노래가 있습니다
사랑을 품고 가슴을 두근거리며
움직이는 필 끝에 억새풀처럼 일어 나는 시
이 나라 강산에 서정의 물결로 굽이치고
언제나 축복의 꽃 보라를 내려 날립니다
나는 겨울 강 얼음아래 흐르는
그대 마음의 울림 소리를 듣습니다
봄을 부르는 정갈한 흐름소리
해동의 봄물소리가 푸르게 굽이쳐가는 강산을 봅니다
나의 산책은 끝없는 언제 길
그대의 시행을 따라 물결치는 시정 속을 걸어갑니다
2019,1,,9 서울에서,이근모 시백님게서 보내주신 시집을 읽으며
이 헌시는 이근모 시인의 시 정신에 대한 나의 경의의 표시이다. 앞으로도 대중에 친근히 다가가는 많은 좋은 시가 나오리라 믿어 마지 않는다.
(9)나의 시학 사상에 대한 괴변
나는 누구보다도 더 많이 인생의 가치에 대하여 탐구하고 생활을 열렬히 사랑하며 추구해 온 사람이다 그것은 내가 소방대에 의무 병으로 복역하던 청춘 시절에 3층에서 추락하여 6개월 간 입원 치료하면서 죽음에서 기여 나온 제2차의 생명을 가진 2등 잔폐 군인이다. 나는 입원하는 동안 내가 불구자가 되여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하면 시를 쓰리라고 다짐하며 많이 고민하였다. 다행이 불굴의 정신으로 일어 서게 되였다. 중국 조선족의 저명한 시인 리상각 선생님께서는 나의 첫 시집을 받아 보고 이란 명제로 수필을 써서 나의 시 정신을 고무하였다. 그렇다. 나는 죽음에서 살려고 안간힘을 쓰며 기어 나오는 치열한 시 정신으로 시를 써 왔다..드디어 2007년 한 해에 한 명의 시인만 선정 되는 최고의 정지용 문학상을 받게 되였다.
연변대학 박사생 도사 김호웅 교수님께서는 < 조선족의 산재지구인 심양에서 우리민족의 현실과 미래에 대한 깊은 우환의식을 가지고 심오한 시적 탐구를 했다는 점과 언중유골(言中有骨)의 유머스러한 시풍을 확립해 우리 시단에서 일가(一家)를 이루었다는 점이 높이 평가되어 결국 리문호와 그의 시집이 수상의 영예를 지니게 되었다.> 라고 평가하셨다.이 평가는 나의 시 창작에서 이룩한 가장 큰 영예 자본이며 고무이다.
시 창작에서 일가(一家)를 이루었다는 평가는 정말 쉽지 안은 노력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나는 시의 해학성, 취미성, 우화성, 풍자성, 유머성 동화성을 통해 사회의 밑바닥을 관찰하며 민초의 아픔을 노래한 시가 많다, 그리고 우환 의식을 가지고 민족의 정체성과 자연, 인성을 노래한 시도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한다. 나의 시는 기본상 지금의 시 조류의 변두리에 밀려난 농후한 인문학적인 사실주의 혹은 비판적 사실주의 시들이다, 즉 서정시 서사시들이다,
비록 서사시라 하지만 현실을 사진처럼 복사한 것이 아니라 나의 사상성에 의하여 새로 형상화된 시다. 서사시도 응당 형상사유 즉 예술 가공을 거쳐야 한다. 나의 시는 거개가 사회와 현실의 밑바닥에서 줏은 시로 진정성을 중시한 시이다. 아래 지면 제한으로 시를 옴 기지 않고 제목을 몇 개 예 들어 말해 보려 한다.
1,,, 장강의 섬 양중시에서 자라곰탕을 먹으며 시상이 떠 올라 쓴 시이다.
첫 구절 , 엄청난 풍자와 야유이다 , , 그러나 우리게는 쌓아 놓은 뼈와 가시 너머로 백 년이 흘러 야윈 후대들이 손가락을 빨며 우리를 질책하고 있다 이 시는 무한경쟁과 탐욕으로 고갈되어 가는 자원을 우려한 생태시로 중국 조선족 명시선집에 들어가고 고등학교 교재에 들어간 시이기도 하다
2, 은 상해에서 지하철 입구의 걸인을 보고 시인과 겹영하여 쓴 시이다.황금이 깔린 상해에서 깡통을 흔들며 동전은 구걸하는 걸뱅이, 나는 그의 눈빛에서 시인인 나를 본다. 인정이 상품화에 의하여 삭막해 가는 도시에서 나라는 시인은 무엇인가? 나 역시 걸뱅이다. 마음을 쇠줄에 매여 달고 정을 동냥하러 다니는 시인이다. 이 역시 언중유골의 시이다
은 정지용 문학상 시집의 표제 시이기도 하다. 한국에서도 시화전으로 나간 시이다. 마천루들이 황금몽에 잠꼬대 하는 밤, 시인은 꿈이 없어 꿈으로 가지 못하고 쓸쓸히 한적한 골목길을 걷는다. 그래도 마음은 따뜻하여 하루 종일 매연을 먹고 혼곤히 잠든 꽃들의 잠을 깨우지 말자고 가만히 걷는다. 이는 선비 정신의 구현이다. 도시는 인정이 사라지고 아름다운 동화는 사라지고 금전 지상주와 물질지상주의로 인해 순정도 사라졌다 .시인은 순정을 부르며 골목길을 걷는데 밤은 깊어간다
3, 는 황당한 사회 현상을 신랄하게 비판한 시이다. 억만 부호의 아버지가 죽었다 돈만 벌다가 인성은 마비 되여 울 줄을 모른다. 그래서 구인광고를 낸다 울어 돋을 벌겠다고 많은 사람들이 구직하러 온다. 각종 짐승의 울음소리를 면접하여 선택하고 장례 날에는 크게 울라고 진수성찬을 잘 먹이고 장사 행렬이 나간다. 이 시를 쓴 후 이년이 지나 항주에서 장례식에 500위안(한화 10억에 가까운 돈)을 들려 장사를 치렀다는 신문을 보았다.
4, 는 상해에 진출한 힉력 없는 연변 처녀가 저임금으로 일하면서 다시 공부해야겠다고 떠난 실제 사실을 서사화한 시이다, 여기에 중심 내용은 는 속담으로 전개 된다, 황금 가죽을 쓴 영화배우나 고위급 자제는 황금 털이 날 거고 교수 자제는 은 가죽을 썼으니 은 털이 날 거고 대학 졸업생은 동 가죽을 썼으니 구리 털이 날 거고 너는 농민의 자제니 망토 가죽을 써 풀 털이 날 거고 나 같은 시인은 종이 가죽을 썼으니 돈도 안 되는 글 털이 날거라 대화한다. 그 후 처녀는 공부하러 떠나 다시 보지 못하고 지금은 무슨 가죽을 쓰고 다닐까 궁금해 한다, 전반 시의 흐름은 유머적이고 풍자적 이여서 아무데도 발표 못하고 조글로 나의 서재에 묵어 있지만 클릭수가 1300명이 된다 환영 받는 시다
5, 는 몇 개의 형상을 겹쳐 상해 봉재 공장에서 일하는 처녀가 처음으로 상해의 번화한 남경로를 구경하는 장면을 대조적으로 시화한 시다. 박꽃 같은 배꼽들이 지나가고 백옥 같은 종다리, 하이힐이 지나가고 백화점에서 나온 핸드빽들이 지나가고 하는데 눈이 모자라 두리번거리는 초라한 의상의 처녀, 배는 고프고 브라질 고기 점에서는 고기 굽는 냄새가 풍기지만 들어가지 못하고 꼬작꼬작 구겨둔 돈 4원을 꺼내 강냉이를 하나 사 들고 꼭꼭 달게 씹으며 구경한다. 이는 상해란 젊은이들의 천당에서 벌어지는 얼마나 대조적인 광경인가
저명한 석화 시인은 이 시를 시적 기교가 무시 되였지만 찡하게 눈물 나는 시라고 하였다.
저명한 문학 평론가 김룡운 선생님께서는 최근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의 란 시를 보고는 얼마간 긍정해주는 분이 계셔 다행이다..특히 나는 한국에서 서사적 시가 존재할 여지가 없는 줄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근모 시백님을 만나고 소통하고부터 나의 시의 존재 가치에 신심을 얻게 되였다. 나의 서정시와 란 창작 담을 에 내어 준데 이어 과.를 내어 주어 커다란 고무를 받고 있다 이근모 시백님께서는 나에게 고 말씀하셨다 은 나에게 과분한 칭호이기는 하나 우리는 서로 시백으로 존중하며 소통하고 있으며 뜻을 모으고 있다
사실주의 서사시는 결코 현실을 그대로 글에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시인의 풍자적, 해학적, 우화적, 동화적 상상력에 의해 예술 가공을 거쳐 시인의 사상을 부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만 사랑 받는 시로 될 수 있다. 나는 나의 시학사상을 시로 아래와 같이 정리하였다
나의 시
나의 시는 다만
그리움의 봉분 위에 자란 풀꽃일 뿐,
설사 가시 털이 돋아 있다 하더라도
악의 없이 부드러운 사랑일 뿐,
나의 시는 다만
잔잔한 가짐으로 무엇을 찾아 헤매는 미풍일 뿐,
설사 물안개가 끼였다 하더라도
열망하나 지니고 방황하는 추구일 뿐,
나의 시는 다만
산간계곡을 새여 흐르는 실 계수일 뿐,
설사 눈물이라 하더라도
모든 생명의 찬가를 부르는 축복일 뿐,
나의 시여,
커피에 우유보다 향기롭지 않아도
손가락에 침 발라 돈 헤는 소리보다 감미롭지 않아도
네온 등 불빛에 소외 되여 미지를 떠돌아도 –
나의 시는 다만
청향 한 점 풍기려는 풀꽃일 뿐,
꿈 한 자락 지닌 미풍일 뿐,
세상으로 흘러가고 푼 맑은 벽계수일 뿐 …
2009,11,10일 초고
2010, 1, 10일 수개
(10) 중국시의 기본 이론
나에게는 소장하여 보는 한시를 편역한 책이 몇 권 있다. 한국의 손종섭 선생님께서 편역한 와 북한에서 편역한 이 있다. 한국의 고시는 중국의 고시와 한 맥락을 갖고 있어 시의 이론도 같은 맥락이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은 현대에 와서 서구의 시힉 사조를 받아 들려 많이 변화하였다.. 서구의 어떤 이론은 근대에 나온 이론에 비해 중국에서는 몇 천 년을 통해 나온 이론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아래에 중국 고시의 기본 이론을 말해볼 가 한다
중국에서는 벌써 천년 전에 시 창작에서 의상(意象)과 의경(意境)이란 단어가 등장했다 세계 시 문학 이론에서 광범하게 사용되고 있는 중국의 이론이다, 의상은 역시 마음의 관념을 그림으로 구상(具象)화하는 것이다, 형상사유와 비슷하다, 의상은 시 창작에서 구사의 핵심이며 시 창작과정의 주요 원소로 시 창작에서 형상사유의 시종에 융합 되여 있다, 의상에는 비유식 의상, 상징적 의상, 통감성 의상(오관의 감각적 의상), 교체적 의상, 겹영식(叠映)의상(두 그림이나 몇 개의 그림을 겹치는) , 시공적 의상, 복사식 의상 등 여러 가지 창작 방법이 있다, 이런 의상을 시인은 동태적 의상, 즉 움직이는 의상으로 만들면 더 생동한 시가 된다, 미적인 의상은 시인의 생활에서 독특한 감수, 발견과 영감 표현으로 이루는 서구의 잠재의식이나 초현실주의 와는 다른 창작 방법이다, 이 의상에 비해 의경은 더 광범하고 심도 있는 이론을 포괄하고 있다, 의상은 정(情)과 경(景)이 서로 작용하여 일어나는 시적 현상이라면 의경은 정(情), 이(理), 형(形), 신(神), 의 작용으로 사람으로 하여금 연상과 상상의 최고 예술 경계로 이르게 한다, 시 창작에서 의상은 단일한 현상이라면 의경은 광범한 범주의 경계(境界) 이다, 이른바 서구의 이미지 이론도 중국 의경의 창작 이론에 비하면 역사가 짧다 하야겠다
여기서 집고 넘어 갈 것은 상징적 의상은 서구의 상징주의 창작 방법과 다른 개념이다, 서구의 상징주의 창작법은 기존을 해체하고 파괴하여 암시만 주어야 한다는 창작 이론이다, 그래서 시는 이해할 수 없는 난해 시로 된다, 우리가 말하는 상징적 의상 창조란 심도와 광범한 암시성을 가진 의상으로 독자의 연상과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서구의 반이성적인 허무주의 와는 다른 것이다
시 창작에서 은유라는 말을 많이 쓴다 은유는 내가 쓰려는 대상을 다른 대상에 숨겨서 표현하는 비유법이다, 상상은 종래로 보지 못했거나 경험하지 못한 것을 생각한다는 말이다, 연상은 하나의 사물이나 관념이 다른 사물이나 관념을 불러 일으키는 창작 방법이다
일체 예술은 미를 창조하여 사람들의 심미를 만족시키고 감동을 자아내게 하는 것이다.. 18세기 불란서의 위대한 조각가 로딩은 라고 말한 것처럼 예술이 감동을 주지 못하면 미적 창조가 없다는 말이다. 감동의 핵심은 예술의 미적 창조이다.중국 시 이론에서도 미를 강조하고 있다
시의 미를 창조하는 데는 위에서 말한 것처럼 의상과 의경이 있다. 한국에서 말하는 으른바 심상, 심경이다. 한국은 서구의 해체 파괴 등 문학 이론을 받아들여 서술도 각기 다르다. 그러나 시의 대국인 중국의 이론은 몇 천 년의 이론을 계승 발전하여 비교적 완전한 이론체계를 수립하였다.
1, 意象은 한국의 심상(이미지)와도 비슷하다. 그 뜻인 즉 시창작에서 정(情)과 경(景)이 융합을 이루어 예술적 형상을 창조한다. 경물만 묘사하고 정이 없으면 시의 미가 나타나지 안는다. 정을 표달하려 하지만 경물이 없으면 정을 의탁할 매체가 없어 진다 의상은 형상사유에 일관적으로 관통되는 작시 방법이다.
2, 의경(意境)은 의상에 비해 더 광범한 내용을 갖고 있다, 의상도 의경의 한 부분일 뿐이다 의경은 정이형신(情,理,形,神) 의 엄청난 의미가 있다.
ㄱ, 정(情)은 의경의 제 방면에 무르녹아 배여 있어야 한다. 정이란 사람의 감정 심리활동이면서도 모든 사물에도 있다고 보아야 한다. 시인의 입장으로 말이다, 단풍잎이 빨갛게 빛을 내는 것은 정이 있기 때문이다. 꽃이 아름답고 향기로운 건 좋은 유전자를 받아 들이기 위한 택우의 유혹이다, 심지어 자갈이나 돌도 천만년의 정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
ㄴ, 이(理)는 우주의 모든 사물의 합리적인 이치를 말하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철학적, 논리적, 심리적, 법률적, 도덕적, 정치적, 경제적 합리관계가 있다. 사람과 자연의 관계, 자연과 자연의 관계도 합리적 관계가 있어야 존재할 수 있다. 오염과 생태 파괴는 이런 합리적인 관계를 파괴하는 것이다.
ㄷ,형(形)은 모양과 생김을 말하는데 시 창작에서는 언어로 그린 그림을 말한다 즉 이미지 창조, 혹은 회화를 말한다 시는 언어로 그린 그림으로 시각적 청각적 미를 더해준다
ㄹ,신(神)은 시인이나 독자를 무한한 상상의 공간으로 넓혀 주는 작용을 한다. 세계는 허(虛)와 실(實), 무(無)와 유(有)의 공간으로 우리의 정신에 무한한 미적 공간, 혹은 상상의 공간을 넓혀 준다, 그리고 허가 실이 될 수 있고 실이 허가 될 수 있고 무가 유로 될 수 있고 유가 무로 될 수 있는 변증법적 공간이 있다, 여기에 시의(诗意)가 존재한다,
그리고 무한한 시공이 존재한다, 과거, 현재, 미래, 등은 시간의 공간이다, 시인의 심령과 풍부한 상상력은 이런 시공을 만유하는 것이다, 이를 심광신의(心旷神怡)의 정서를 창조하여 시인 자신과 독자를 감동으로 공명시키는 것이다
중국에는 시정화의(詩情畵意)란 말이 있다. 시는 정이 있어야 하고 그림에는 의경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를 현대 시론으로 개변시켜 말한다면 시인이 언어로 그린 심상에는 정이 있어야 하고 심경이 있어야 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이상 나의 시 창작 체험에 근거하여 얻은 시에 대한 잡담을 늘어 놓았다. 시인은 선식견(先知見) 이 있는 제 6 감각 기능이 있는 사람이다. 시인의 대화상대는 우주 만물이며 세간이다. 그의 존재 가치는 사회와 사회의 성원들과 결합 할 때 존재한다. 시인은 자기의 정감이 다른 사람에게 감명을 일으킬 때 가장 큰 행복을 느낀다. 그러면서 아무런 사회적 보상을 받지 못하는 고상한 사람들이다. 시인들은 대개가 가난하지만 행복지수가 가장 높은 사람이다. 시인이 되였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시인은 막걸리 한잔에도 세계의 정을 껴안는 낙천파 사람이다. 기죽지 말자. 세상에 시인이 없는 날은 세상이 망하는 날이다
2019,9,18 서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