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문호
http://www.zoglo.net/blog/liwenhao 블로그홈 | 로그인
<< 5월 2024 >>
   1234
567891011
12131415161718
19202122232425
262728293031 

방문자

홈 > 리문호론/언론보도

전체 [ 4 ]

4    현대시의 모호성에 대한 담론 댓글:  조회:671  추천:0  2020-11-24
  한국 겨울호 계간평론게재   현대시의 모호성에 대한 담론                   리문호 (중국 동포시인))   Z님: 오늘은 현대시의 모호성에 관하여 나름 대로의 견해를 말해보려 해요. 모호성도 시 창작에서 하나의 미학 범주에 속하는 것으로 사전적 의미와 해석을 떠나서 그의 넓은 외 연성을 가지고 있지요. 사전에서는 불 명확성, 애매성 다의성으로 규정되지만 문학예술 분야에서는 미학 창조의 영적 경계이기도 합니다. 즉 모호성이 없으면 예술 창작은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본질적으로 모호성의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움직이는, 활동하는 물체는 시간과 공간적으로 모호성, 불확실성을 띤 과정에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라는 존재는  운명의 불확실성 속에 앞날을 예측할 수 없는 모호성을 가지고 살아가지요. 그것은 사람이 사는 세계가 명확하지 않은 모호성을 띠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해 돋이를 볼 때나 일낙을 볼 때 거리로 인한8분 간격의 허상들입니다 밤하늘의 별을 볼 때 몇 억 광년 전의 빛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 별이 아직 그 자리에 있는가 소멸 되였는가는 모르는 일이지요 우리는 그 별의 존재의 허상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감지 능력으로 우리는 세상 물질의 5%밖에 인지할 수 없습니다 그 외에 암 물질이나 다른 물질이 존재를 감지할 수 없는 것입니다. 즉 세상은 엄격이 말해서 하나의 가상의 존재이지요. 이런 주관과 객관의 모호성 속에 예술창조의 영역이 있고 미학이 있는 것입니다. 이 자리에서 시를 토론하는 하는 만큼 아래에 현대시의 모호성에 대하여 말하려 합니다 시각의 형태미를 위주로 하는 화가나 조각가와 달리 시인은 언어의 통감(시각적, 청각적, 미각적, 후각적, 촉감적)을 이용해 영적 미를 창조하지요. 즉 인지를 통해 기억의 무수한 이미지를 축적하고 발상하여 시의 신적(정신적) 의경을 창조합니다. 그의 출발점은 영감이라는 모호성입니다. 왜 이렇게 말하냐 하면 모든 대상이 명확하면 예술미가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노골화, 직설화는 매력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시인과 평론가들은 시를 논 할 때 숨김, 감정과 시어의 절제를 강조합니다. 이런 기법은 시의 감상적 탄력을 더해 주기 때문입니다. 엄격히 말해서 상징, 은유, 암시, 등 기법도 말 하고 저 하는 대상의 모호성을 생동화하는 것입니다. 모호성 속에는 숨은 매력이 있는 것입니다. 물론 유머적으로 풍자적으로 해학적으로 숨기면 시의 취미를 더해 주지요. 한 수의 시에 사상 및 감정 갈등과 전환이 있을 때 그 시의 공감성은 강해 지지요. 시의 모호성 영역은 시간과 공간이 무량으로 존재하고 상상이 활동할 수 있는 광활한 공간으로 풍부한 창조적 발상을 열어줍니다 그러면 모호성의 유형에 대하여 몇 가지 나름대로 짚어 보려 합니다, 시의 모호성에는 형상적 모호성, 함의적 모호성, 언어적 모호성, 난해적 모호성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이 모호성들은 독립적인 것이 아니라 서로 밀접한 연관성이 있고 호상 작용합니다..   형상적 모호성 Z님; 형상적 모호성이란 표현의 거리나 시간과 공간의 거리에서 나타냅니다. 이는 표층시, 혹은 표상시로 이해 되는데 그 뒤에는 있는 배경이 우리의 상상을 유발하게 합니다. 시인의 이미지 초점을 생동화 혹은 허상화하는 기법이라 생각하면 됩니다, 근거리를 허상화하고 원거리를 생동화하게 구사해 주체를 신비화 하는 기법, 원거리를 허상화하여 근 거리를 생동화하는 것으로 배경의 여백을 신비화 하던가 하는 기법으로 시인의 영적 활동의 범위를 자유자재로 발휘되지요. 아래 백석의 시를 예 들어 설명하려고 합니다 백석 시인은 일제 시대 우리 민족의 걸출한 시인으로 농경화 시대가 산업화 시대로 변화하는 시대에 낳은 세태 풍속을 반영한 시인으로 현대시에서 토속시의 처음이자 마지막 걸출한 시인이지요. 그이는 평안도 방언을 시어로 민중의 원형적 형상과 회상, 고백 등 시로 자기를 완성했지요 저는 그의 많은 시들 중에 를 예 들려고 합니다   바다   바닷가에 왔더니 바다와 같이 당신이 생각만 나는구려 바다와 같이 당신을 사랑하고만 싶구려   구붓하고 모래톱을 오르면 당신이 앞선 것만 같구려 당신이 뒤선 것만 같구려   그리고 지중지중 물가를 거닐면 당신이 이야기를 하는 것만 같구려 당신이 이야기를 끊은 것만 같구려   바닷가는 개지꽃에 개지 아니 나오고 고기비늘에 하이얀 햇볕만 쇠리쇠리하여 어쩐지 쓸쓸만 하구려 섧기만 하구려            백석 시집에서   이 시는 한 장의 담백한 수묵화처럼 그려진 시로 형상의 많은 모호성 미학이 들어있습니다. 1 연에서  와 에서 바다와의 연관성을 모호하게 서술하였습니다. 즉 바다의 어느 현상으로 인해 당신을 생각 나게 하는지 사랑하고 싶어 지는지를 시인은 생략. 무시한 공백을 남겨줍니다. 이 공백에 감상자로 하여금 바다에 대한 상상을 넓힐 여지를 남겨줍니다. 연관성의 거리에 바다는 시각, 청각, 이미지거나 시간적 공간에 추억이거나 환상적 의미를 부여합니다. 2연에서 당신이란 화자의 대상이 , 이란 환영적인 정경은 독자로 하여금 이란 대상을 아름다운 모습으로 그려 보게 합니다. 이런 미학적 감수는 모호성에서 나오는 독자의 못입니다 .3연애서 두 번 중복된 를 듣고 끊기는 현상은 파도의 밀물 썰물로 인지 됩니다 그러나 시인은 으로 제시 되였지만 파도소리는 생략해 버려 짐으로서 모호성을 나타냅니다 즉 나머지 공간은 독자의 상상력에 맞긴 것입니다.  4 연에서 시인은 바다 가에 죽은 물고기를 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시인은 죽은 물고기를 진술하지 않고 모호하게 로 생동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시적 화자는 하고 는 상감적인 정서로 결속됩니다. 그렇다면 이 시에서 초점은 죽은 물고기로 중심을 이루는 것입니다. 전반 시에서 은 어떤 상관물일까요 ? 혹시 죽은 물고기일수도 있습니다. 혹시 사랑하는 대상일 수도 있습니다. 혹시 일제의 시대의 주권을 잃은 조국을 죽은 물고기로 상징했는지도 모릅니다. 이런 모호성 속에 독자는 자기의 상상력을 부여하여 감상하는 것입니다      함의적 모호성;   Z님: 시인은 이미지의 구상화(具象化) 생동화의 조합을 통해 그 뒤의 경심(景深)에 섭리와 철학을 노골화 하려는 것이 아니라 함의적으로 숨겨 놓으려 하지요 이를 저는 함의적 모호성이라 하지요. 그리고 시인의 영적 활동 자체가 이차적인 표현된 시로 나타나기에 모호성을 띠는 것이지요 철학가와 정신 분석학 가는 논술적으로 대상을 말하지만 시인은 이미지 예술 창조를 통해 자기의 철학이나 사상을 암시하지요. 하기에 한 수의 시를 감상하는 것은 감상자의 인지 수평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아래에 이근모 시인의 을 예 들어 말해보려 합니다    허상의 탑 동백꽃 눈밭 아래에 목을 떨구고 있다 목을 맨 동백꽃 사연이 궁금한지 어디선가 동박새 날아와 피 흘린 동백꽃 씨앗을 쫀다.   쪼는 모습 바라보며 내가 나를 부양하는 허공에 아른거리는 탑에는 별도 없고 달도 없다.   무영탑 맨 위에 누군가 뱉어놓은 말씀을 물컹물컹 씹는 바람 우는 소리가 숨어 있다.   그때마다 나는 허공을 본다 흔적 없는 내가 허공에 얹혀 있고 별똥 떨어지는 새벽녘 발가벗은 내가 여명을 부르며 울고 있다.   밤새 사랑한다 속삭이던 바람 날이 새자 떠나고 타오르다 스러지는 관절마다 바람은 허상으로 피웠다가 지고 있었다. 동박새 어디론가 훌훌 떠나고 - - -.                     이근모 제6 시집 에서 이 시는 기원전 427년의 그리스 천재적 철학가 플라톤의 플라토닉 러브 철학을 한국적인 회화 수법으로 그려내고 있지요. 그러면서 시인의 사상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플라토닉 러브란 우리 사전에서 이렇게 정의 합니다 이상주의적이며 관념론적 사랑 남녀간의 관능적-육체적 사랑을 배제한 체 순수한 정신적인 사랑을 이른다   이 시는 이런 철학적 지식이 없이 쉽게 접근 할 수 없는 시이지요. 동백꽃은 겨울 강추위 적설 속에 4개월 몽 알 져 조춘 2월에 피는 꽃으로 그의 강인한 생욕의 열망은 비장하지요. 박동새는 동백꽃의 꿀물을 먹기 좋아하는 참새 과의 새로 이 꽃 저 꽃 날아다니며 동백꽃에 화분을 접해주는 수분 작용을 합니다 .그러나 이 시에서는 박동새가 올 때 동백꽃은 이미 꽃 채로 뭉청 뭉청 떨어 진 뒤지요 하기에 시인은 첫 연에서 사랑을 기다리다 동백꽃 사연과 뒤 늦게 찾아온 박동새의 슬픔을 고 묘사했습니다, 비록 육체적 사랑은 발생하지 않았으나 정신적 사랑의 절절함을 플로토닉 러브란 철학 관념으로 말한 것입니다 혹시 정신적 짝사랑을 암시했는지 모릅니다 두 번 째 연에서는 이런 광경을 관찰한 시적 화자의 심경에 부양된 별도 달도 없는 허공의 탑을 묘사하면서 비교적 암울한 정서를 나타냅니다. 또한 이상이란 허상의 존재임을 피력합니다. 이상적인 것은 현실에 구현하면 이상이 아닙니다. 사랑도 얻게 되면 사랑이 아닙니다. 플로토닉 러브는 허상의 탑입니다 세 번째 연에서 시인은 < 누군가 뱉어놓은 말씀을 물컹물컹 씹는/바람 우는 소리가 숨어 있다.>고 은유 합니다 여기서 누구의 말씀과 말씀을 물컹물컹 씹는 바람 우는 소리가 숨어 있다고 진술하였습니다. 생동한 이미지에 모호화된 함의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은 누구의 말씀 일까요 저의 이해로는 플로톤의 철학입니다. 바람은 눈에 보이지 않는 촉감의 실체로 역시 시각적으로 허상화된 것입니다 네 번째 연에서 이런 전제하에 시적 화자의 허무감을 서술하여 이상적 사랑이 아니라 실존의 사랑을 구애하는 심경을 나타냅니다. 자기가 고 하며 플로토닉 러브에서 벗어나 현실의 사랑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역시 시인의 실존 철학을 보여준 것입니다. 다섯 번째 연에서 하며 이상적인 사랑의 허무감과 공허감을 피력 하였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한 행으로 하는 현실의 아쉬움을 긴 여운으로 남겨 줍니다. 이 시에서 아주 내밀한 이미지 창작으로 철학적 깊이를 모호하게 감춰 놓고 있어 미학의 경지를 펼쳐 줍니다.. 이런 시는 철학적 지식이 없이는 피상적으로 쉽게 그의 함의를 포착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시에는 상징, 은유, 암시 등 많은 시적 장치가 내포되어 층차적 입체감을 주는 시입니다      (3)언어적 모호성 Z님;  다음으로 언어적 모호성에 대하여. 말해 보려 합니다. 인류에게 만약 언어가 없었다면 아직 동물의 군체에 머물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언어는 생산 공구와 함께 인류 발전에 절대적 작용을 하였습니다. 인류 사유의 공구는 언어로서 언어의 정보적 기능, 친교적(사교적)기능, 명령적(감화적)기능, 미적 기능, 정서적 기능에 의하여 인류사회는 발전하였습니다, 특히 언어를 표기하는 문자가 발명되어 지식을 축적하고 전달되면서부터 인류사회의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지요. 문학의  발전도 역시 그러합니다 문자가 없는 시기에 구전해 온 신화, 전설, 전기, 민요, 민가 등 모든 예술도 문자가 있어 오늘에 까지 발전해왔습니다. 문자의 발명은 인간을 지능인으로 발전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언어는 기호성과 자의성 특성이 있는데 혼돈을 초래하지 않기 위해 사전적으로 규범화 개념화 되여 규정되고 있습니다. 시는 언어의 미적 기능을 충분히 이용하는 문학 수단입니다. 때로는 언어의 사전적 의미를 모화하여 시적 장치를 하지요. 즉 기호에 시인의 감정을 부여하여 기호가 살아 숨쉬게 하지요. 아래에 정지용 시인의 유리창을 예 들어 말해보려 합니다.            유리창                정지용   유리에 차고 슬픈 것이 어른거린다. 열없이 붙어 서서 입김을 흐리우니 길들은 양 언 날개를 파다거린다. 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아도 새까만 밤이 밀려나가고 밀려와 부딪히고, 물 먹은 별이, 반짝, 보석처럼 박힌다. 밤에 홀로 유리를 닦는 것은 외로운 황홀한 심사이어니 고운 폐혈관이 찢어진 채로 아아, 너는 산새처럼 날아갔구나   이 시는 정지용 시인이 어린 아들을 잃고 애절한 슬픈 마음을 절제하며 쓴 시로 상징적 회화적 감가적 장치가 들어 있습니다 유리는 투명한 물체로 그 물체의 속성을 모호화하여 외연을 확장하여 상징적으로 새로운 생동한 이미지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유리를 저승과 이승, 심리적 내면과 외면의 장벽 경계로 상징화하여 마음의 정서적인 애상을 차고 슬픈 것으로 감각화 시각화 하였습니다. 그리운 침울한 마음으로 열없이 저승을 바라보니 유리엔 입김만 아련하게 서리고 고 동태적 형용으로 심경을 비유화 합니다. 은 지울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란 의미를 모호화하여 오래도록 지우는 동태적 형상으로 밀려나가고 밀려와 부딪치는 시각적 이미지로 묘사하였습니다.그런데 새까만 밤을 지우다 보면 고 하였습니다 즉 마음의 슬픔을 지우고 지워도 잃은 아들은 보석처럼 빛나는 별로 마음에서 떠나지 않는 다는 그리운 심경을 상징적으로 서술 하였습니다.에서 이란 언어의 등장은 매우 모호성을 가진 단어로 부질 없이 아들이 오기를 황홀하게 생각한다는 심경을 피력하여 애절하게 날아 갔다고 합니다 이 시는 언어의 본의를 모호화하여 언어의 미학적 기능을 영적으로 확장한 한국 모더니즘 시의 공인하는 수작이라 생각 됩니다        (4) 난해적 모호성 Z님; 우리는 시를 읽으면서 피상적으로 그 진수를 섭취할 수 없는 난해 시를 접하게 됩니다. 지금 시단에는 현학적이고 요설적(언어유희)인 소통이 안 되는 시가 많이 나오지요. 왜서 일까 많이 고민하게 됩니다. 이런 시의 근원은 시인이 생활하고 있는 인정이 냉담한 사회에서 숨쉬고 있고 시인 자신의 고독한 내면의 자아 의식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잠재 의식이지요. 이는 주관 의식과 객관의 관계에서 소통이 되지 않는 피폐에서 오는 것입니다.. 이런 시는 극히 모호화된 시로 시무달고(詩無達詁)의 시들입니다. 아래에 추상화 화가 피카소의 시를 예 들어 말해 보려 합니다. 피카소는 1935년부터 쉰 넷의 나이에 거이 그림을 그리지 않고 시 쓰기에만 전념하였습니다. 피카소는 시 쓰기를 일시적으로 가져본 취미가 아니라 회화처럼 열정을 부어 생명을 불사른 시인입니다   1938년 7월 2일   방울 방울 강인한 연한 청색이 장밋빛에 비례해서 아몬드 초록빛의 발톱들 사이에서 죽어간다         -피카소 시집에서 발췌한 전문- 이 시는 일기 식으로 쓴 시로 제목은 쓴 날 자로 하였습니다. 아무런 시적 계기와 환경 설정이 없이 쓰였기에 화자의 대상이 아주 추상적 이여서 사족을 찾을 수 없습니다. 방울 방울 형상이 강인한 연한 청색으로 그것도 비례해서 아몬드 초록빛의 발톱들 사이에서 죽어간다고 습니다 혹시 무좀 있는 화자의 발톱을 바라보며 상상했을가 생각해 봅니다.. 아니면 화자의 무료한 나날을 묘사했을 까요. 또 다른 어떤 심리를 묘사했을 까요. 시적 화자의 대상이 무엇인지 저는 모릅니다. 이미지의 파편들과 모호한 언어 재료로 구성된 이시는 시인의 잠재 의식에 그려진 그림으로 난해합니다 피카소의 시는 대부분 산문시로 쓰여졌습니다   1940년 1월 14일   길게 늘어선 침묵이 캐러멜을 빨아먹는 창문의 입술을 겉으로 드러내는 가짜 나무로 그린 하늘의 주름들 사이에 그의 칼끝을 살며시 들이민다. -피카소 시집에서 발췌한 전문,-   극히 짧은 산문시에 내재 율과 이미지 조각들이 내밀하게 들어 있는 시입니다. 관념적인 언어 을 길게 늘어선 물체로 형상화하여 라 서술합니다 화자의 대상 을 생동한 이미지 구사 세 구절을 통해 추상적인 내면의 의미를 모호화 하여 시인의 영적 경계를 가늠하기 어렵게 합니다. 언어는 아름답고. 이미지 묘사도 아름답습니다. 캐러멜은 물엿, 설탕, 우유, 초콜릿에 향료를 넣어 고아서 네모 배기로 만든 사탕인데 무엇을 상징했을 까요.. 또한 창문의 입술, 가짜 나무, 하늘의 주름, 칼끝은 무엇을 은유, 암시하고 있을 까요,. 이는 모두 시인의 내면 세계의 경물들입니다. 이런 경물이 내면의 밖에 표출될 때 난해하고 모호해집니다 피카소는 언어란 재료를 개념에서 해방시켜 그림처럼 자유자재로 배색시켜 그림을 그린 시인이며 한 단어에 많은 뜻을 숨긴 실험적 시인입니다. 그의 잠재 의식 속에는 언어들이 교묘하게 어울려 조형미를 이루고 있습니다. 마치 투명한 언어들이 들어 있는 요지경과 같은 감각을 줍니다 그러나 의미적 내용은 찾기 힘들며 그의 언어로 그린 회화를 보는 듯 하지요. 그의 시 앞에 저는 할말을 잃고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영적 활동에 표현된 문학이니까요. 좋고 그름의 답은 독자에게 있습니다. 1960년대 어느 날 피카소는 친구 로베트토 오테로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의미심장한 말입니다 Z님;  이상 현대시의 모호성에 대한 미숙한 담론을 결속하려 합니다. 순수한 물(H2O)에는 고기가 살지 못 해요, 물고기를 상상으로 비유한다면 물에는 공기, 수초, 미생물, 흙 바닥 등이 있어야 상상이 자유롭게 헤엄치고 자라지요. 이런 제 조건은 세상처럼 흐리고 모호합니다. 시인은 이런 모호성 속에 선지(先知>와 성오(省悟)의 혜안을 밝혀 나름대로 자기의 정의와 철학적 사고로 시를 쓰려 합니다 현대시의 모호성에는 엄청난 상상의 세계를 확장하는 공간이 있습니다. 명확과 불명의 우주적 영역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시인은 그 속에서 각자의 미학과 철학으로 독자적 시 창작을 하여 인류의 정신 보물고에 재부를 축적합니다. 시인은 미지의 세계를 탐구하는선구의 존재입니다. 이것으로 본 담론을 마감합니다   2020,10,12, 서울에서   주; 담론은 대상이 있어야 담론이 되기에 상상 속에 Z님을 설정하여 친근하게 독자에게 다가갈 수 있게 하였다. Z님은 독자를 상징한다    
3    명상시에 대한 담론 댓글:  조회:480  추천:0  2020-08-27
특집 : 한국 7호 계간평론   명상시에 대한 담론                                                                                                    草夢 리문호   Z님; 먼저 명상 시를 말하기 전에 시 현상에 대해 말해보려 해요. 시란 시인의 영감 활동을 언어로 기록해 놓은 것이에요. 여기서 영감이란   시인 자신이 신격화(神格化)되는 감수에 도취되는 것을 말하지요. 시인은 언제나 자기를 모든 사물의 신으로 대변하려는 욕구가 있어요. 그래서 시를 쓸 때 시인은 영(靈)적 영역에 진입하지요 그럼 영감이란 무엇일까요?  영감을 말하기엔 너무 길어 질 것 같아서 간단히 말할게요, 사람에게는 다른 동물과 달리 영혼이 있는 고급 동물이에요. 사람에게 영혼이 왜서 존재하고 어떻게 존재하는지 아직 과학적으로 해명되지 않고 있어요. 다만 680억 개의 신경원(神經元)과 교질 세포로 구성된 뇌조직의 활동에 나타나는 일종 초 물질적인 정신의 주파현상이지요. 그 주파는 진폭과 장단의 특성을 같고 있어요, 시인에게 이런 주파는 음율이 되고 음악이 되지요. 시를 쓰는 것은 바로 이런 내재적 주파를 언어로 기록해 놓은 것이에요 우리는 오감을 통해 객관 사물을 인식하고 인지하지요 또한 이 인지 기능을 통해 이해, 추리 판단하여 뇌에 기억하지요. 이런 과정을 거쳐 기억되지 않은 감각은 잠재의식으로 되지요. 기억이란 이미지 기억, 원리(철학, 론리, 도덕 등)기억, 언어(수자포함) 기억, 시간과 공간. 감정 기억, 등 다방면의 기억인데 이 기억이 바로 지식, 체험이에요 기억적 바탕이 그리고 이 기억으로 다시 객관을 관찰하고 느낌을 얻고 환상, 상상 등 영적 활동을 통해 새로운 것을 발견 창조하지요.  .   문자와 언어는 통감을 통한 체험(직접적인 것과 간접적인 체험)과 갈라 놓을 수 없지요. 예를 든다면 , ,, 하는 단어를 우리가 기억 할 때는 미각적 체험을 통해 부동한 미각 신경 주파로 기억하지요 모든 물체는 고유 주파가 있는데 우리는 미각으로 그의 주파를 감지해 신경원을 자극하면서 기억하지요. 기억 역시 사물의 고유주파를 기억하는 것이에요. , , 하는 것은 시각적 체험을 통해 부동한 시신경 주파로 기억하지요 청각 후각 촉감도 마찬가지 체험이에요, 그런데 체험을 통해 기억한 지식, 혹은 문자와 언어가 풍부할수록 객관에 사물에 대한 관찰과 인지 능력이 강하고 풍부해지며 창조적 상상력이 풍부해지지요. 이를 지능이라 해요, 화가의 사유와 표달 공구는 선, 점, 알료로 원근감, 명암감 기법을 나타내지만 시인은 문자와 언어로 의상, 의경 등 이미지를 나타내요. 하기에 시가 좋으려면 형상사유의 공구인 언어가 풍부해야 해요. 언어는 체험적 기억을 통해 기억되고 시를 쓸 때는 그 기억들이 다시 오관에 작용 되어 완성되지요 특히 시각적 이미지가 주요하게 작용하지요, 예를 들어 현대 시 창작에서는 청각적 이미지를 시각적 이미지로 변형될 경우 , 등 미각, 후각, 촉각 등 감각 기능을 변형시키지요,. 이는 시인의 영적 활동에 의하여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시를 알자면 먼저 문자와 언어에 대하여 약간 말하려 해요, 문자는 최초로 표기나 표적으로부터 발전했어요, 산속을 들어갈 때 길을 잃지 안기 위해 나무에다 기호를 새겨 넣지요, 집에 가축이 몇 마리인가 바람벽이나 나무에 기호를 새겨 넣어요. 만약 양을 기록하려면 양 모양새를 그리고 금을 그어 놓아요. 이런 기호들이 발전하여 상형문자 즉 표의 문자, 표음 문자로 발전했지요. 현대 어떤 시론에서는 언어의 의미를 최소화하여 기호로 사용하자는 의견도 있지만 근원은 바로 여기에 있어요. 우리 민족어는 표의문자 한자어와 우리 고유의 언어 낱말로 구성 되였어요. 그리고 지금은 글로벌 시대라 외래어가 많이 끼여 들고 있어요. 그래서 시어사용에도 많은 혼돈을 일으키지요. 우리 민족에게 가장 통탄스런 일은 1933년 조선언어학회가 을 내면서 고 세운 원칙이 우리의 아름다운 고유어 유산이 상실되기 시작했어요. 만약 낱말이 그대로 계승 보존 되였다면 우리의 시는 더욱 입체적으로 풍부하고 아름다울지 몰라요. 언어 상실로 인해 백석의 시를 보면 어떤 낱말은 이해할 수가 없어요. 언어는 사유의 공구인 만큼 언어가 부족하면 좋은 시를 쓸 수가 없지요   Z님 : 아래 명상시를 말해보려 해요 시인이 시를 쓸 때는 두 가지 경우가 있어요 하나는 에 겨워 쓰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명상에 잠겨 쓰지요. 은 현장감에서 일어나는 정서이고 명상은 정(靜)적 환경에서 일어 나는 정서이지요. 그러나 저는 시를 쓰는 과정은 대부분 예술적 명상사유에서 완성된다고 봅니다 명상사유의 핵심은 영적 활동입니다, 즉 형상사유의 이미지는 기억된 상상 속의 이미지로 자기의 관념을 형상적으로 재현하거나 혹은 현존환경에 존재하지 않는 허구나 허상, 환상, 감각화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내가 방에 앉아서 형상사유를 통해 그 어떤 아름다운 풍경 속에 나를 그려 넣어 누구와 만나 산책하는 모습을 그려 봅니다, 즉 시간적 공간적으로 부동한 기억적 이미지를 연상하여 재 창조해 머리 속에 아름다움을 떠 올리게 합니다. 시인의 상상은 언제나 현실의 미를 초월하지요. 명상 사유는 정(靜)적 환경에서 이루어 집니다, 즉 고적, 고독한 그리고 아늑하고 고요한 환경입니다. 저의 창작 경험으로 보면 명상 시에는 의념( 意念)적 명상, 의상( 意象)적 명상, 의경(意境)적 명상이 있다고 생각해요. 아래에 이 몇 가지 방면으로 명상 시를 말해보려 해요.   Z님:  의념(意念)적 명상이란 시인의 상상이 시간적 공간적 어는 시점에 머물어 기를 모아 염원을 기원하는 시지요. 사랑 시, 상사(相思)시, 축원 시, 송시, 기도 시, 그리고 저항 시, 참여 시, 저주 시, 라 생각하지요. 이런 시는 대방을 자기의 의도로 움직이고 개변시키려는 염원을 가지고 있어요. 특히 참여시는 시인이 같고 있는 사상과 주장으로 객관 사회현상에 대한 격렬한 감정 의식을 시화하고 있어요. 예를 들면 한국의 저항 시인으로 유명한 서은 문병란 시인의 시 에 이런 구절이 있어요< 오늘도 바보가 던지는 계란탄 속에서/ 아직도 민주주의는 보약이다/자유, 자유, 그것은 지랄탄을 이기는 / 민주탄이다, 눈물탄이다! > 이 시는 민주주의를 위해 항쟁하는 참여 시로 격정에 잠긴 시지요 더 설명하지 않아도 진폭이 크고 파장이 짧아 긴박감을 안겨 주는 시 이지요. , 으로 의기가 넘치는 시인이지요, 이런 시는 의념적 명상에 의한 격앙된 정서가 뒷바침한 시라 보아야지요 사랑에 대한 의념적 명상 시는 여름호 6호에 발표된 지향옥 시인의 를 예들 수 있습니다.   태초의 깊은 바다 암흑 속에서 두 팔 벌린 한 아름 기다림   내 님 언제 오시려나 죽도록 아니, 죽을 만큼 사랑하고 싶어   세파의 파도에 온 몸 흔들리면서도 흔들리지 않는 끝 없는 그리움 억겁의 세월 기다림 속 눈물이 굳어지고 슬픔이 굳어져   처절한 아픔의 빛을 품은 오색영롱한 진주 하나가 내속에서 자라고 있습니다                              지향옥 시 전문,(시학과 시) 6호   이 시가 의념 시 속하는 이유는 화자의 내심의 시적 에너지를 진주조개라는 상관물에 집중시켜 사랑에 대한 갈망을 진술 했다는 점입니다. 진주 조개는 속살에 모래알이 끼였을 때 고통스러워 하며 진액을 분비하여 진주를 만듭니다. 그래서 한아름 기다림이 죽을 만큼 그리움으로, 억겁의 세월에 눈물이 굳어지고 슬픔이 굳어지며 오색영롱한 진주가 라고 피력하고 있습니다. 이는 예측하건대 초연의 아픔이나 사랑의 아픔을 체험한 분만이 쓸 수 있습니다 의념 명상시에 은유와 상징법으로 쓴 시를 예 든다면 변리영 시조 시인의 시조 입니다. 무수한 작은 별들 가슴에 담았어도 가슴이 울컥하는 별 하나 기다린다 언젠간 심연을 뚫고 북광처럼 오겠지                       변리영 시조 전문   6호에 조명된 벼리영 시조 시들이 말해주다 싶이 시조는 정형시로 율격은 변화하지 않았지만 내용과 풍격은 고전적 전통 시와는 다른 많은 변화의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시무달고(詩無達詁)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를 모호성이라 하는데 모호성은 예술적 층차를 풍부하게 해줍니다. 즉 시는 도달할 수 없다는 경계가 있다는 말입니다. 또는 한 수의 시에 여러 가지 해석이 나온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 시에서 별은 무슨 의념을 제시 할까요? 또 북광은 무엇을 의념 했을 까요 ? 시인은 가슴이 울컥하는 별 하나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것도 북광처럼, 이 기다림은 사랑일까요 아니면 심중의 어떤 염원일까요. 읽는 독자의 이해와 감성에 따라 의미가 다를 수 있습니다. 더 해석하면 시를 읽는 흥취를 저하할 뿐입니다 이런 시는 읽는 묘미와 여운이 있습니다 이런 시는 이 아니라 명상으로 이뤄집니다 모든 시는 시인의 정신력의 표현입니다. 즉 영적 표현입니다. 의념시는 의념력 명상에 의하여 표현됩니다. 시인은 자기의 가치관과 사상으로 세상을 개변하려 할 때 이런 의념 시를 쓰게 됩니다 여기에서 시인의 심리 건강이 중요 하지요. 분노,, 슬픔, 저주를 표현하면 마음이 후련하고 상쾌하지요. 하지만 시인의 염원과 현실은 언제나 큰 차이가 있습니다. 만약 과도한 염원에 집착한다면 조급성을 느낀다면 오히려 시인의 심신 건강에 해롭습니다. 우울증. 정신 분열증에 걸릴 수있으며 심지어 자해할 수 있습니다 이런 시인들이 적지 않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의념이란 기공사 들이 많이 수련하는데 주화입마(走火入魔)란 말이 있습니다. 하기에 의념 명상시는 시인의 심리 상태가 중요합니다. 염원이란 꼭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는 걸 감내해야 합니다   Z님: 의상(意象)적 명상이란 이미지 명상과 같은 말이에요. 의상이라면 시론에서 흔히 말하는 심상과 일맥상통합니다. 명상을 통하여 정경( 情景)을 떠 올리는 형상 사유를 말하지요. 의상적 명상은 역시 정적인 환경에서 마음의 기억들을 그림으로 구상(具象)화하는 창조과정입니다, 의상은 시 창작에서 구사의 핵심이며 시 창작과정의 주요 원소로 시 창작에서 형상사유의 시종에 융합 되여 있습니다, 의상적 명상은 비유식 명상, 상징적 명상, 통감적 명상(오관의 감각적 의상), 교체적 명상 겹영식(叠映) 명상(두 그림이나 몇 개의 그림을 겹치는) , 시공적 명상, 복사식 명상 등 여러 가지 명상을 통해 시의 형상을 풍부하고 다양하게 해줍니다, 이런 의상을 시인은 동태적 의상, 즉 움직이는 의상으로 만들면 더 생동한 시가 됩니다, 그래서 좋은 명상시는 정경속에 움직이는 미적인 형상을 시인의 생활에서 독특한 감수, 발견을 인입(引入)합니다. 즉 나비, 꿀벌, 잠자리, 사슴, 낙타 등등을 등장시켜 시인의 감정을 대변합니다, 그리고 그대, 님, 녀신, 시신( 詩神)등을 정경 속에 인입 시켜 시의 동태적 미를 더해줍니다. 아름다운 정경속에 우아한 녀신이 단풍 길에서 드레스를 끌고 천천히 걸어가는 화면을 시화해 넣으면 시의 정취가 아늑하고 독자가 읽어 감상하면 자기가 그 속에 있는 것처럼 미적 감화가 깊어질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술로서의 의상 창조입니다, 의상 명상의 주요 특점은 의념명상과는 반대로 기의 응어리를 풀어 안개처럼 사라지게 하여 그 자리에 미적 정경을 드러내게 하는 것입니다.        6호에 게재된 시조들은 시정이 진한 시로 현대 시조의 감정적 확장을 잘 표현한 시들입니다. 여기에 두수를 예 들어 의상적 명상을 말해보려 합니다   살포시 뜨는 달빛 연초록 녹음 밝아 앵두 알 여문 골에 감꽃도 따라 피어 봄 처녀 갑순이 댕기 우물가를 맴돈다   버들잎 봄바람에 풀피리 서성일 때 방앗간 물레방아 초승달을 굴린다 임이여, 짧은 이 한밤 사랑도 굴려주오   애달픈 가슴 안에 깃든 적막 고이 씻어 교교한 달빛 끌어 임 가슴에 안겨주리 사랑아 봄날이 간다 너와 나의 봄까지도        -이근모 전문,(2019봄호)   이 시는 분명 명상에 의하여 쓰여진 대표적 시입니다. 의상시의 여러 가지 기법이 포괄된 영적 명상으로 시의 입체 성, 풍부 성을 더해주어 춘사비곡의 심상을 생동하게 안겨줍니다 체험적 기억속의 이미지를 재 창조하여 춘사비곡의 정경을 토로하여 독자들에게 감화를 일으킵니다 과 의 연대성, 와 의 거리와 시간적 이미지, 와 겹영, 과 의 시각적 이미지를 청각적 이미지로의 전환, 다시 청각적 이미지를 시각적 이미지로 전환하는 교체적 기법, 에 굴러가는 을 연상하여 사랑도 굴려 달라고 합니다. 그리고 시간적 명상 , , 이런 시간의 거리적 명상은 애절함을 더해줍니다. 한 수의 시에 명구가 있게 되면 그 시의 미감을 우아하게 해줍니다. 이 시에서 창조적 이미지는 는 명구로 이 두 구절이 없다면 이 시는 일반화된 시로 되였을 것입니다. 의상적 명상은 마음의 응어리를 풀어 맘의 미감을 형상하는 것입니다, 란 구절은 충분히 명상시의 효과 성을 말해줍니다 한 수의 시조가 이토록 풍부한 시정을 담기는 시인의 경계가 영적 세계에 도달 했음을 말합니다 다음으로 시조 한 수를 더 예 들겠습니다   고독이 밀물되어 창턱을 넘어서면 시린 듯 뽀얀 달빛 방안 가득 끌어들여 적막에 월광을 풀어 썰물 되어 떠갈까   가을밤 갈대숲에 은빛 파도 출렁인다 귀뚜리 구애소리 향기로 파고 들면 이명에 뒤척이는 밤 달빛 한 점 훔친다            -정택명, 전문 (2019겨울호)- 이 시조 역시 이미지를 조밀하게 겹영 시킨 명상 시로 오로지 명상에 의하여 쓰여진 시입니다. 시제가 말해주다 싶이 강렬한 호기심을 끌어 들이는 시입니다. 고독을 밀물로 시각적 이미지화하여 동태적 형상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달빛을 공간적 방안에 가득 끌어들여 적막이란 화자의 심경을 월광에 실어 썰물로 내 보냅니다. 그러면 갈대밭에 시인의 심경이 은빛 파도로 출렁이고 귀뚜리 구애소리 향기로 파고듭니다. 정경 묘사가 입체적 풍부 성을 나타냅니다. 위에 열거한 3수의 시조는 시조가 현대시로 발전한 척도를 짚어 볼 수 있는 수작이라 생각됩니다   Z님, 다음엔 의경적 명상 시에 대해 말해 볼까 합니다. 의경은 한국에서 말하는 심경을 말합니다. 의경(意境)은 의상에 비해 더 광범한 내용을 갖고 있습니다, 의상도 의경의 한 부분일 뿐입니다 의경은 정이형신(情,理,形,神) 의 엄청난 의미가 있는데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신(神)입니다 즉 한 수의 시에 영(靈)l적 경계와 공백을 확장하는 것입니다  신(神)은 시인이나 독자를 무한한 상상의 공간으로 넓혀 주는 작용을 합니다. 세계는 허(虛)와 실(實), 무(無)와 유(有)의 공간으로 우리의 정신에 무한한 미적 공간, 혹은 상상의 공간을 넓혀 줍니다, 그리고 허가 실이 될 수 있고 실이 허가 될 수 있고 무가 유로 될 수 있고 유가 무로 될 수 있는 변화의 공간이 있습니다, 여기에 시의(诗意)가 존재합니다,   그리고 시인과 독자를 끌어들이는 무한한 미적 시공이 존재합니다, 시인의 심령과 풍부한 상상력은 이런 시공을 만유 ( 慢遊) 하는 것입니다, 이는 심광신의(心旷神怡)의 정서를 창조하여 시인 자신과 독자를 감화하는 드넓은 여백을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중국 현대시론에서 시의 의경은 파괴되고 무시 되였다 하지만 저는 그 이론에 이의를 가지고 있습니다. 한 수의 영적 공간이 없다면 시로서의 의미가 상실된다고 봅니다. 시 본래의 의미는 비 물질적인 영혼 활동으로 정신의 주파를 기록한 것이며 또한 그 주파를 독자에게 전하는 것입니다. 정신 활동이란 두뇌에 기록된 기억들의 재 결합 재 창조입니다 이로 인해 미적 경계를 전달하는 것입니다 아래에 시를 예들어 말하려 합니다   광활함이 그려놓은 악보 위를 건반처럼 걷는다 펼쳐 놓은 숨은 뜻을 찾고 싶어 왔는가 두려움에 찬 마음으로 의심을 품었다   새소리 물소리 영 들을 수 없었고 기댈 그늘 한 점 없어서 가슴 밑에 품어 안은 눈물 몇 조각 끌어내 음표로 건다   절망처럼 다스리지 못 할 것 같던 모래 언덕을 토닥여 길을 내어줄 때마다 허공으로 뻗어 나간 멜로디를 붙잡고   발 닿던 곳마다 일어나는 흙먼지가 허물고 지나간 자리마다 각각의 음계를 그리게 했다   부서지고 버려질 듯한 흔들림이 경고를 보내면 투혼으로 반짝이게 한 눈빛은 실크로드에 뜨는 해가 지휘하는 환상곡이었다 분명       곽구비 전문,6호   이 시는 사막을 건반처럼 환유하여 명상한 시로 삭막한 사막을 멜로디가 흐르는 청각적 이미지가 농후하게 안겨줍니다. 시인은 명상 속에서 사막을 걸어 가는 발자국을 건반을 걷는 것처럼 묘사하여 음악이 발생하는 의경을 창조합니다 .결국 이 건반은 시인 마음의 건반으로 고 피력합니다. 했다던가 이라던가 무한이 넓은 의경을 안겨줍니다 아래에 인체를 사막으로 환유해 쓴 시를 예 들려 합니다   내가 보는 그의 누드는 불과 사막 이였다 시선이 우미로운 곡선 따라 휘여 뻗으며 부드럽게 눕혀지는 황홀한 사막, 나는 낙타 타고 솜털을 즈려 밟으며 갈 때 ‘ 환열에 대한 갈망으로 불볕 탄다 연지 빛 동경, 살결에 반짝거리고 보랏빛 환상, 신기루로 떠오르는 포근포근한 황금빛이 깔려있는 사막에 시선의 깊은 흔적이 안보이게 찍힌다 그의 굴곡은 너무나 멀고 아득하다 오아시스를 찾아가는 …              리문호 전문, 시집   이 시는 역시 명상에 의하여 얻은 영감을 시화하였습니다. 세상 만물 속에 가장 아름다운 것은 인체로 대자연이 만들어낸 정화입니다. 인체 미는 회화, 촬영, 조각 등 예술 분야에서 숭상의 대상이기도 합니다. 녀신이 온 몸의 긴장된 살을 풀고 누워 있는 모습은 흡사 사막의 후미진 곡선과 능선이 만연되어 아득히 뻗어 있는 것 같습니다 환열과 갈망에 찬 시선은 불볕에 타며 포근포근한 그 위를 걸어갑니다 그러나 은밀한 오아시로 갈려면 너무나 아득하게 먼 여정입니다 이는 예술과 성에 대한 암시적 묘사이기도 합니다 이 시는 사막과 누드를 겹영하여 시적 미학의 의경을 나타낸 시입니다 아래 의경적 명상의 극치가 담긴 이근모 시백님의 을 예듭니다   늦가을 소슬한 바람 국화 꽃잎 흔들어 올려놓은 자리에 그대 저만큼 내 누이처럼 웃고 있습니다   아홉 번 서리 맞아야 비로소 향기를 품는 다는 국화 진실은 오직 서리에 있어 찬서리 무서리로 익을대로 익은 연정이 샛노란 꽃대궁에서 그대는 아직도 그리움으로 서 있습니다   맞으소서 그 차가운 서리 아플수록 더욱 진실을 안다는 슬픈 고독의 향기를 안고 오늘도 나는 그 어느 어귀에 서서 그대를 서리 풍성한 꽃잎으로 맞이 합니다   별빛 내리는 가을과 겨울의 사잇길 아직은 덜 익은 나의 연정 서리로 달궈 그대에게 바칩니다   서리속 황국화로 웃고 있는 그대 꽃잎, 잎새 마다마다 달빛이 내려 동국 꽃초롱 서리서리 꽃무뉘 피어 납니다                            -이근모 전문     이근모 시백님의 이 시는 낭송 시로 제작되어 널리 애송되고 애청하는 시입니다. 시의 미학을 극치로 반영한 시로 시선( 詩仙)만이 쓸 수 있는 의경 명상시 입니다. 일반 인들은 꽃의 모양과 색상에 취해 표상적으로 꽃을 감상하지요. 그러나 이근모 시백님은 꽃의 음운(音韻), 신운(神韻)을 영적으로 감지하여 그 맛의 깊이를 길어 올리고 있습니다. 이 시는 국화, 그대, 나란 3요소의 정의 흐름을 합리하고 굴곡적으로 형상화 시켜 애절한 연모의 정서를 우리에게 감명적으로 안겨 줍니다. 이근모 시백님의 시를 많은 독자들이 애송하는 원인은 영적 경계가 형상화되어 친근하게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즉 새로운 우리가 도달하지 못한 시의 의경을 제시해 주기 때문이지요.이를 우리는 미적 향수라고 합니다.    Z님 이상 명상 시에 대하여 생각 나는 대로 말했어요. 총적으로 시인에 있어 명상이란 영감을 얻는 것이에요. 어떤 초학 시인들은 의식으로 시를 쓰지요, 이 말의 뜻은 시를 쓸 때 이 구절은 무슨 의미고 저 구절은 무슨 의미고 하며 도식적으로 쓰지 말라는 말입니다, 사물과 환경에 대한 의식을 영감화로 승화해야 좋은 시를 쓸 수 있어요. 즉 영감으로 써야 한다는 말입니다. 시인이 영감을 시로 써 놓고 자기도 자기 시를 해석하지 못 할 때가 있어요. 예를 들어 이상의 가 바로 그런 시지요. 백년이 되어 와도 해석하는 평론가가 없어요 이런 시는 와 정서 시라 보면 됩니다. 즉 일제 시대의 거리를 정서화한 시로 정서 시는 뜻이 없어요.그저 정서로 느끼면 되지요.  영을 미신으로 생각하는 분들이 많아요. 그러나 영적 사유는 사람의 정신 활동이에요.또한 영은 신체를 떠나 존재하지 않아요. 존재 한다면 시를 책으로 냈을 적에 문자로 기록되거나 남기지요. 시를 쓴 다는 건 자기를 우아하게 신격화하는 일이에요. 사람마다 뇌 주파를 발산해요. 시인의 뇌 주파는 운률이 되고 노래가 되지요. 그래서 시인과 만나면 자연히 편안하고 친근해 지지요.        명상 시에 대한 잡담은 근근히 저의 생각을 정리했을 다름이에요. 아직 이론화 되지 않은 저의 잡담이라 생각하면 되요. 혹시 오도되지 않을까 두렵네요. 시를 쓰려면 시론에서 배우지 말고 시를 많이 탐독하며 배워요. 그리고 시평을 읽어 배워요. 시론은 너무 방대해서 갈피를 잡기 힘들어요. 시론은 시인의 영과 개성을 포박하고 있어요. 그래서 잘 못 들게 되면 자기의 개성을 말살해요. 시인은 어떤 구속도 받지 않고 자유 비상해야 합니다. 제 멋에 시를 써야 합니다 감사합니다    2020,6,8 서울에서                                                 한국 가을호에 게재 
2    조선족 시단의 일가(노을) 김광명 댓글:  조회:277  추천:0  2019-07-21
만평 조선족시단의 일가   关键词:   发布人:문운룡  发布时间:2018-09-06 13:16   -시인 리문호 작시의 고행                                                           (심양) 김광명   시인 리문호는 신작 “민들레”(료녕신문 2018. 7. 27)에서 “물어보고 싶네/ 나도 행복이 있었냐고/ 허비는 꿀벌 한 마리가/ 내 추억이네”라고 감개하고 있다. 칠순의 시인 리문호는 “나도 행복이 있었냐고” 창천과 인생에 조용히, 그러나 진지하게 묻고는 “허비는 꿀벌 한 마리가/ 내 추억이네”하고 스스로 그것도 “허비는 꿀벌”로 자신의 꿈 많고 고달픈 한생을 비유해 명시하고 있다.   꿀벌은 근면과 감미의 상징이기도 하다. 그것도 “허비는 꿀벌”로 그 감미로움에 근면만이 아닌 신고가 형상화되여 그 꿀벌의 감미를 탐구하여 끝없이 “허비는” 고행에서 흘러넘치는 시상과 의경은 무한으로 독자의 감지와 심미에 따라 한계가 없을 것이다.   필자는 바로 그 “허지는 꿀벌”의 허빈다는 형상적 표현에서 시인의 작시의 고행을 련상하게 된다. 시인 리문호는 자신의 작시의 고행을 지용제문학상 수상소감에서 형상적이고 해학적인 언어표현으로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다.   “시를 운명으로 받아들여” “시와 ‘악연’을 맺어” “고행길에 고혈을 쏟아부으며” “때론 고민과 공허, 심지어 절망이 뒤따랐으나” “시심이란 ‘악마’가 심령에 깃들면 축출은 불가능하”여 “몇번의 정신적 탈피를 인고”하고 “시심도 신진대사”시키며 “나만의 시를 쓸 수 있는 시를 쓰는 시세계를 개척”하여 “시적 완성의 경지”의 달성은 “장기적 고달픈 려정”이지만 “시심이 가려워나면 아픔을 가해” “피가 나더라도” 작시를 집념했기에 자신의 “시집은 나의 혈흔이라 말”하고 있다.   시인은 바로 그 지용제문학상 시상식(2007년)에서 “심양에서 연길을 기차로 하루 밤 사이의 길을 나는 40년을 걸어왔습니다”라고 하였으니 오늘까지 그는 50여 성상의 시작의 “고행길에서 고혈을 쏟아부으며” 시집 5권을 출간했고 오늘도 “시심이 가리워나” 피나는 작시의 행보를 멈추지 않고 있다.   시인 리문호는 학창시절부터 뿌쉬낀, 레르몬또브, 하이네, 박팔양, 조기천, 천세봉 등의 많은 서책들을 탐독하며 문학에 뜻을 키웠으나 고3에 “문혁”으로 대학의 길이 막혔다. “홍위병”들이 앞다퉈 북경을 갔으나 그는 오매에도 그리던 연대를 먼저 찾았으니 그때 그의 심정은 오죽하였으랴. 하지만 그는 문학의 뜻을 굽히지 않고 한 소방대원의 이름으로 《연변문예》에 시 “야영의 길에서”(1970년)를 발표하여 시단에 데뷔했다.   지난 세기 80년대, 그가 한동안 시단에서 잠적한 데는 당시 현란한 시세계를 종잡을 수 없었던 것과 무관하지는 않으나 그보다 그는 제대하여 무선기재공장에 전근하면서 소방대 성급모범이 되였던 그 자세 그대로 공장의 당지부서기로, 기술전문의 공장장으로 거듭나면서 기술혁신으로 몸소 신제품을 개발했으니 그야말로 그는 그 어디에서나 자존과 자강의 뚝심을 꺾지 않고 그의 골기와 재질을 과시했다. 이가 바로 그가 시인이기 전에 한 인간으로서 표현된 그의 근성이자 개성이였다.   1992년 리문호는 한국에서 편벽하고 황페한 공동묘지에 자리한 닭장을 지키는 고독과 적막을 독서로 향수하며 인생과 문학을 재인식하여 쓴 시가 한국 KBS응모에 입선되였다. 그는 바로 그 수상을 계기로 들끓던 창작욕이 활화산처럼 분출되였다. 시인이 귀국하여 쓴 시 “영등포의 밤거리”가 평론가 김경훈교수의 평을 안으며 시단의 이목을 끌었고 그의 시집 《달밤의 기타소리》, 《징검다리》, 《팔공산 단풍잎》(한국)의 출간을 뒤이어 2007년에 그는 드디여 조선족시단의 정상인 연변작가협회에서 주최한 “지용제문학상” 수상식에 등단하였다.   그번 “지용제문학상” 평심을 맡은 김호웅교수는 평선결과에서 리문호시인은 “조선족 산재지구인 심양에서 우리 민족의 현실과 미래에 대한 깊은 우환의식을 가지고 심오한 시적 탐구를 했다는 점과 언중유골(言中有骨)의 유모러스한 시풍을 확립해 우리 시단에서 일가(一家)를 이루었다”고 정중히 선고하였다.   상기한 바와 같이 시인 리문호는 민족운명에 대한 “깊은 우환의식”과 “심오한 시적 탐구”란 공성 외에 “언중유골의 유모러스한” 독자적인 “시풍을 확립”함으로써 “우리 시단에서 일가를 이루었다”는 평정과 론단을 받았다. “일가”란 우선 “가”적인 인정에서 그만의 특유의 “일”적인 개성을 의미하는 바 개성이 없는 작가, 시인은 명작을 창출할 수 없다는 것은 공인된 사실이다. “언중유골”도 시인의 자질과 개성에서 비롯된 것으로 골기가 없으면 “언중유골”도 불가한 것임이 분명하다. “유모러스” 또한 사물과 현상에 대한 달관된 인식이 없으면 해학적인 유모러스의 표현도 담론할 수 없을 것이다. 모두어 말해 시인 리문호의 언중유골의 유모러스한 시풍의 확립은 그가 우리 시단에서 일가를 이룬 남다른 개성이며 시적 생명이며 가치일 것이다.   하문에 시인의 골기와 유모를 지폭 제한으로 따로 그의 시에서 례들지 않고 상술한 그의 수상소감을 돌이켜 보기로 한다. 소감의 맺는 말에 시를 “민족의 혼불”이라 제시하고 있다. 바로 그 “혼불”이라 이름한 시를 민족의 혼과 그를 조명하는 홰불로 표현하여 작시의 긍지에서 류출되는 기개와 골기를 감지하게 되고 시의 “악마”와 “악연”을 맺아 “시심의 신진대사”를 시키는 형상적이고도 해학적인 언어표현에서 그의 유모를 감미하게 된다.   한번은 회식 중 한담에서 리문호가 시인들에게는 “시적 사유의 호르몬이 따로 있다”고 하여 좌중의 폭소를 터쳤다. 하지만 필자는 그의 자유분방의 사고에 시인적 기질 외에 그가 시인들의 유전자 기인에까지 탐구하는 사색의 심도에 놀랐다. 하여 필자는 리문호가 체구는 비록 크지 않으나 통이 커서 자주 상해, 한국, 일본을 나들면서도 성차지 않아 “의자에 날개 달고” 달나라의 “련인”을 추적하여 비천하기도 한다고 했다.   시인 리문호는 자신의 시작의 고행길에서 피타는 노력으로 우리 시단의 정상에 올라 “일가”를 이루었을 뿐만 아니라 그가 《료녕조선족시선집》을 자처하여 편집하고 출판비용을 마련하며 발간식까지 깔끔히 치러 우리 료녕조선족시단에 길이 남을 기념비적 대사를 이룩하여 호평을 받고 있다.   리문호의 시평은 그의 지용제문학상 당선작 《자야의 골목길》에 게재된 시인 석화(연변작가협회 부주석, 평심위원)의 평 “삶의 질곡의 깊은 계곡에서 길어올리는 따뜻한 시심-리문호시인의 시세계 산책”이란 권위적 시평을 추천하며 필자는 시평보다 작가론적 시각으로 시인 리문호의 작시의 고행과 성과에 치중했음을 밝히며 본문의 종지부를 찍는다. 
1    (단평) 희망으로 승화된 허무의식 댓글:  조회:349  추천:0  2018-04-06
  희망으로 승화된 허무 의식 (단평) - 리문호 시인의 “겨울, 무설의 들을 바라보며"(외2수)를 읽고                                                              (상지) 강효삼   최근 "압록강"에 실린 심양의 로시인 리문호씨의 시 3수를 읽었다. 이번에 시인이 발표한 시 3수는 시인의 이전 창작방법과는 조금은 달리 자신의 내면에 깊이 간직했던 삶의 고뇌를 진솔하게 털어놓았기 때문에 전반 시들의 밑바닥에 깔린 감정색채가 좀은 어둡고 지어 쓸쓸한 기분까지 갖게 한다. 리시인도 이제 나이 지긋해지면서 삶의 비감에 잠겨든 것인가? 시인의 생활환경을 보면 심양을 떠나 상해라 서울이라 하면서 현대문명이 뜨르르한 대도시들을 돌며 살고 있기에 시 또한 도시의식을 바탕으로 하여 더욱 밝고 명랑해질 것인데 어찌하여 더 깊은 허무와 애수에 빠져드는 것인가? 날이 갈수록 삶의 깊이를 더 인지하기 때문일가?   한사람의 인생관과 가치관에 따라 같은 풍경이지만 그 풍경을 바라보는 시각과 감수가 달라지게 된다. 어떤 사람은 자연의 객관적 법칙임으로 대수롭지 않게 바라볼 쓸쓸한 겨울들판이지만 시인의 안광은 다르다. 쓸쓸한 곳일수록 시인이 있다고 하였다. 그것은 모든 것이 풍요로운 사회에서도 시인의 가슴은 늘 비여있어 괴로워하기 때문일가. 그리하여 시인의 감수속에는 더 욱더 눈앞에 펼쳐지는 겨울의 풍경이 /알자들은 다 어디로 걷어간지 모르게 걷어가고/속이 텅빈 나의 자화상처럼/메마른 웃음기는 검불이 되여 찬바람에 날리고/주름진 검버즘이 따닥따닥 붙어있다./로 보였을 것이다. (겨울,무설의 들판을 바라보며)   인간은 숙명적으로 고독한 존재다. 그가 아무리 대단한 권력을 쥐고 휘둘러도 돈이 아무리 많아도 안긴의 존재는 외로운 섬과 같기에 나이 들수록 고독한 마음을 떨쳐버릴수 없다. 시인은 더욱 그러하다. 그래서 어느 시인은 “시인은 기쁨이나 행복에 대한 감격을 노래할 수 있지만 인간의 서러움이나 고독을 드러내는 일이야말로 우리의 실존에 더 접근하는 육성의 노래가 될 것이다.”라고 한것인가. 인간의 삶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 보면 비극이다. 때문에 한 문학평론가는 “우리의 삶이 천국처럼 진실만으로 선만으로 그리고 아름다움만으로 이루어진다면 시는 없어도 될 것이다. 그러나 삶이 그렇지 못하므로 인간은 언제나 시로써 해야 할 말을 하고 해야 될 일을 남긴다.”고 했다.   그래서 시인이 아닌 다른 이들과 달리 무설의 들판을 바라보면서 시인은 한술 더 떠서 /나는 세월이 걷어간 허전한 마음으로/계절이 가는 들에 허수아비처럼 우두커니 남아/의미를 잃고 의미없이/젖은 눈시울로 무엇을 다시 기다리고 있다/고까지 한 것이다. 하면 그 눈시울 젖는 기다림은 무엇일가?   시는 시인자신의 내면의 기록이다. 시인이란 자신의 사상과 감정을 보다 쉽게 보다 힘있게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획득할 수 있는 사람으로 누가 머라 해도 자신의 사상, 자신의 신념을 시에 담아야 하는 데는 자신이 아팠던 것, 고뇌했던 것을 가장 진실하게 써야 가치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문학의 가치를 리문호 시인은 누구보다 잘 알고있는 것이다. 나는 이전에도 그러했지만 리문호의 이번 시들에 가식이나 감춤이 없이 자신의 허무와 애수를 그대로 들어낸 점에 주목하고 싶다. 진실은 아름다운 것이며 진실은 매혹적인 것이다. 때문에 리문호의 시들에는 고독을 달래주는 련민의 정이 진실하게 그리고 면면하게 흐르고 있어 시인과 함께 거친 풍경을 공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허무와 애수를 진실하게 드러만 내고 더 이상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그 자리에 물러앉았더라면 시인의 시는 그저 내면에 잠재된 고독을 털어놓은 것 밖에 다른 의미는 갖지 못했을 것이다. 시인은 만민의 대표라고도 한다. 그만큼 많은 이들의 사상감정을 시로써 대변하는 데는 그 누구보다도 가장 평범하고 소박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대변해주어야 한다. 그런 맥락에서 시는 개성적이여야 하면서도 또한 개성에 대한 도피다. 그것은 개인적인 한 시인의 체험이 자신의 체험에서 벗어나 보다 많은 사람이 가슴에 느낄 수 있는 큰 개성을 담도록 해야 비로소 시가 획득해야 할 보편적 가치를 획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여 이런 의미에서 시인의 고독은 결코 시인 그 자신의 개인적인 고독이 아니라 한시대룰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고독이요 고뇌일 수 있다.   주지하다 싶이 오늘 중국조선족이 처한 사회민족적 환경을 면밀히 들여다보면 그 휘황한 리면에 많은 문제점들이 내포되여 있음을 감안하게 된다. 출국이나 대도시 진출로 가난하던 우리들의 흘쭉하던 돈지갑은 조금 불룩해졌는지 몰라도 우리는 지금 일찍 이 땅에서 겪어본 적 없는 격변기의 진통을 겪고있다. 우리들의 어떤 위기는 너무 심각하여 지어 이 땅에서 장차 우리 조선족이 지속적으로 생존발전 할 수 있겠는가 하는 의문조차 가지게 한다. 그리하여 민족의 현실과 장래를 걱정하고 고뇌하는 마음가짐은 “겨울날, 무설의 들판을 바라보는”시인의 심정과 조금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할 때 리문호 시인의 시는 시로써 표현된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의 공통한 감정색채가 아닐가.   그러나 인간의 고독은 비록 숙명적이기는 하나 고독하다는 것은 아직 소망이 남아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때문에 시인의 고독은 자기만의 고독이 아니요 우리 모두의 고독이며 족히 극복할 수 있는 고독이여서 비록 시의 여기저기에 허무와 애수의 그림자가 짙게 비껴있기는 하나 그것들은 결코 절망에 깊이 젖은 넋두리가 아니라 희망을 갈구하는 극복의 의지다. 그리하여 시인은 “텅빈 들에 텅빈 시를 써넣지만/오는 봄엔 이 시들이 퇴비가 되고/다시 꽃술의 꿀물이 되기를 바라는(춘정), 더 나아가서/내 마음은 본시 애수가 질벅한 숲이지만/살고저 일광의 숲으로 된 것이다(숲), 그리고/풀벌레가 잎을 야금야금 갉아먹는 소리/ 아프지만 내가 산다는 것은 느긋하다/곤츙들의 애잔한 울음에 괴롭지만/그것은 나만이 품을 수 있는 음악/이제는 열정이 단풍드는 가을이다/스산과 함께 찾아온 은둔/나의 숲에 마른 풀들이 스치는 소리가 들린다/흐린 눈빛으로 멀리 바라본다/지평선에 물든 락조는 아름답다./ 라고 종당엔 희망을 내비친다. 이는 어쩌면 허무와 애수를 딛고 희망을 갈구하는 시인의 은은하면서도 그러나 강렬한 모대김의 표현이라고도 할수 있지 않을가.   그러고보면 결국 리문호 시인은 무설의 쓸쓸한 겨울들판에 서서 고독을 감내하며 슬퍼하는 시인이 아니라 허무한 속에서도 보다 밝은 래일을 지향하는 명랑한 시인임을 새삼스럽게 감지하게 된다.   시인에게는 정년이 없다. 문호 시인은 료녕뿐 아니라 중국조선족시단에서 명망이 높은 시인으로 지금껏 개성적이면서도 실감나는 좋은 시들을 많이 창작하여 모범을 보이였다. 이제 심양이란 대도시에서 보다 더 큰 도시인 상해는 물론 멀리 서울에까지 장기간 체류하면서 많은 것을 보고 듣는 가운데 세상에 대한 안목도 넓어지고 인생에 대한 리해도 깊어진 리시인께서 더욱 알찬 명작이 나올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된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