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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백산》문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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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경: 그녀와 ‘일기일회一期一会’(수필)
2019년 07월 08일 14시 28분  조회:379  추천:0  작성자: 문학닷컴
그녀와 ‘일기일회一期一会’
 
나경
 
 
 
2년 전에 있었던 일이지만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그 날 나는 나보다 열살 이상인 그녀와 남한산성에서 ‘데이트’했다. 
 
데이트의 사전의미는 ‘이성과의 만남 또는 그 약속’이라고 한다. 그것이 남녀간의 사랑이나 교제를 위한 수단의 일종인데 두 녀자가 만난 것을 데이트라고 하는 데는 그럴 만한 리유가 있는 것이다. 
 
나와 그녀의 만남은 마치 첫눈에 반해서 사랑에 빠진 남녀 같았다. 아침나절에 정자 휴식터에서 초면으로 만나서 건강과 요가에 대해 이야기했고 점심에는 남한산성에 있는 ‘산성민속집’에서 함께 묵밥과 청국장을 나눠먹고 오후에는 산성 북문에서 남문까지 재밌게 소담하면서 걸었다. 
 
그 때 심선암 환자인 그녀는 암수술 한 지 1년 8개월, 항암치료를 받지 않고 건강식과 명상, 적당한 건강단련으로 어려운 고비를 잘 넘기고 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었다. 시부모와 어른들을 모시고 40여년간 오로지 가족만을 위해 살아온 그녀는 자신의 혀 밑에 암이 자라고 있는 것을 알았을 때, 자식들에게 부담을 주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가족을 속이고 2년을 버텨냈다고 한다. 
 
마지막에 자식들이 알고 병원에 강제 입원시켰을 때는 이미 암 3기였다. 뼈를 깎는듯한 아픔과 죽음의 고비를 넘어온 그녀는 지나온 이야기를 남의 일을 말하듯이 담담히 이야기하였는데 그 자신이 그걸 밝히지 않으면 누구도 그가 암환자인지 알아챌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그녀가 우아한 옷차림에 조금은 가날퍼보였으나 너무도 락관적이고 밝은 얼굴로 사람을 대하고 인생에 대해 달관적이였기 때문이였으리라. 그녀는 자기가 하도 건강하고 병에 걸려본 적 없이 일 밖에 모르고 있으니까 하느님이 쉬라고 병에 걸리게 한 것 같다고 했다. 병원에서 퇴원한 후부터 그는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먹고 싶은 것을 먹고 가고 싶은 곳에 가서 인생을 즐기고 있다고 했다. 
 
나는 지금까지 주위에서 암환자들이 항암치료를 받고 머리가 싹 빠지고 몇년 고생하다가 저세상으로 가버리는 것을 너무 많이 봐왔던 탓인지 몰라도 암환자인 그녀의 인생 태도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아주 절망적인 암병에 걸렸어도 이렇게 사는 법도 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감동도 줄 수 있구나. 나는 그녀가 참으로 우아해보이고 위대해보이기까지 했다. 나는 그 날 점심을 각자 돈 내고 먹으면 편하다고 그렇게 하자고 했지만 그녀는 오늘은 처음이니까 반드시 자기가 사야 한다고 우기는 바람에 한끼 잘 얻어먹고 말았다. 
 
그 후 얼마간 지나서 나는 그녀를 따라 서울 성동구에 있는 ‘길상사’에 갔다. 나는 이번에는 내가 밥을 사야지 하고 따라갔는데 웬걸 점심 때가 되니 절에서 무료로 점심을 주는 게 아닌가. 그 덕에 나는 난생처음 절의 음식을 먹어보게 되였고 길상사가 법정스님의 ‘무소유’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였다. 길상사가 지어진 후에도 나는 여러번 서울에 다녀왔건만 그런 곳이 있는지조차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를 통해서 길상사를 알게 되고 길상사에 법정스님의 유골이 묻힌 곳을 찾아보았고 길상사에서 법정스님의 화상과 생전의 유물을 전시한 곳을 돌아보고 깊은 감동을 받았다. 내가 <무소유>라는 글이 우리 학생들의 교재에 본문으로 수록되여있어서 특히 인상이 깊다고 했더니 그녀는 자기도 법정스님의 책을 좋아한다고 하면서 나에게 책 한권을 선물하겠다고 했다. 
 
길상사에 갔다 온 그 날 나는 그녀한테서 《일기일회一期一会》라는 법정스님의 법문집을 선물로 받고는 귀국 날자가 박두해서 그녀와 더 만날 시간을  갖지 못했다. 
 
일기일회는 ‘지금 이 순간은 생애 단 한번의 시간이며 지금 이 만남은 생애 단 한번의 인연’을 뜻하는 말이라고 한다. 그녀는 나에게 선물한 책 뒤페지에 다음과 같이 썼다. 
 
“좋은 인연이 되여 감사해요. 하고 싶은 일 맘껏 하면서 현재 지금 행복하세요. 건강이 최고랍니다.”
 
나는 귀국한 후 383페지 되는 《일기일회》를 거의 단숨에 읽다 싶이 다 읽었다. 마음에 와닿는 글들이라서 읽을수록 좋아졌다. 그 책에 대해 젊은 친구와 이야기하다가 기회가 생겨 법정스님의 《무소유》 수필집을 빌려볼 수 있게 되였다. 다 읽고 심금을 울리는 글귀들이라 책을 복사해두고 보기로 한 건 그 뒤일이다.
 
 그 후 그녀는 성남시 분당의 번화한 도회지를 떠나 아늑한 숲이 가깝고 공기 좋은 곳으로 이사갔다. 그 곳에서도 그는 매일 피아노를 치고 좋아하는 책을 읽고 붓글씨를 쓰기도 하고 단련을 적당히 하면서 건강을 회복한다고 했다. 
 
전화를 통해 그녀의 소식을 들을 때마다 전화 저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들으며 빨리 건강을 회복하기를 간절히 기도하였다. 그 때마다 직접 달려가서 만나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매번 여건이 안돼서 만날 수 없었다. 
 
법정스님은 “모든 것이 일기일회입니다. 모든 순간은 생애 단 한번의 시간이며 모든 만남은 생애 단 한번의 인연입니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무수한 ‘단 한번의 인연’으로 이루어지는 인생에 한평생 잊을 수 없는 인연, 더우기 세상에서 가장 순수하고 우아하고 아름다운 ‘데이트’처럼 느껴지게 하는 ‘인연’이 몇번이나 있을 수 있을가…
 
인터넷과 스마트폰으로 세계가 지구촌이 된 오늘날 ‘일기일회’는 우리들에게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다. 우리의 생애에 한번 밖에 없는 매 순간을 어떻게 보내고 있으며 위챗을 통해 매일 이루어지는 만남들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해보게 한다.
 
그녀와의 우연한 것 같았지만 운명적이였다고 할 수 있는 ‘데이트’ 덕분에 나는 건강하게 살아있는 하루하루를 더욱 감사하게 생각하게 되였고 이런 저런 불평이 얼마나 가소로운 일인지를 돌이켜보게 되였고 새삼스레 자신의 인생을 성찰하게 되였다.
 
글을 쓰는 이 순간도 내 머리 속에는 70을 넘은 리경자 녀사가 암병을 이겨내고 씩씩하게 삶을 즐기고 있는 환한 모습이 한폭의 그림처럼 선명하게 떠오르고 있다.
 
그 때 우리의 황홀했던 ‘데이트’의 불꽃이 계속 타올라 한번, 두번, 수많은 ‘일기일회’의 만남의 궤적을 이어갈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출처:<장백산>2019 제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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