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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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양에 태운 상념
2016년 04월 15일 17시 40분  조회:3418  추천:0  작성자: 최균선
                  석양에  태운 상념
 
 
      락조가 비낀 시골의 강언덕에 나홀로 점도록 앉았다. 가을하늘은 씻은듯이 맑고 쌀쌀한 기운이 황혼빛속에서 파르르 떨고있다. 잎새가 지는 백양나무 우둠지에 잠간 걸터앉은 석양은 무척이나 지쳐보인다. 아마도 구만리 하늘길을 쉬지 않고 해종일 달린 탓이리라. 잔광속엔 이미 빛과 열이 거의나 없지만 몽환경같은 색채만은 짙다.
    멀리 정처없이 떠가는 구름에 석양이 령혼을 불어넣기라도하듯 황금빛으로 물들여놓아 그지없이 아름답다. 금빛으로 물든 공기도 흐르는듯 순간마다 기묘한 변화를 가져온다. 영광과 고귀함과 휘황 함을 상징하는 화려한 금빛, 흥분과 희열과 활발한 기분을 시사하는 등색, 활력과 열정과 희망을 상징하는 붉은색, 고귀함과 우아함을 안겨주는 자색…
    그렇듯 다양하고 다채로운 석양빛속에 모든것이 눈부시게 이채를 돋군다. 그러나 그 모든 색조의 바탕색은 누른빛이다. 그런 황금빛은 단풍입처럼 찬빛을 머금고있고 온 대지와 하늘이 그 기이한 색조속에 고요히 숨쉰다.  
    마침내 해는 서산마루에 맥없이 걸터앉아 한껏 얼굴을 붉히며 마치나 다 늙어버 린 로옹처럼 아쉬운 눈길로 대지를 일별한다. 그 눈빛은 더없이 온화하고 정겹지만 슬프도록 무기력하다. 그러나 최후의 축복을 하사하듯 마지막 잔광을 깡그리 끌어올 려 불덩이처럼 이글거리면 금방 솟아오르는 달을 방불케한다. 미구에 담담한 람색 으로 창공을 색칠하면서 장엄하게 조용히 밤세계로 가고있다.
    노을빛에 마음 물들인채 고즈넉이 앉았노라면 황혼은 시나브로, 시나브로 상념을 불러온다. 온통 몽롱한 빛속에서 상념은 끝간데없이 흘러가고 지는해와 락엽과 흘러 간 인생을 안고도는 생각은 끈덕지기도 하다. 맑은 호수에 일렁이는 물결처럼 잔잔 하게 내 기억의 기슭에 와닿아 생명의 과거와 래일을 보듬어본다.
    이 우주속에 천태만상은 서로 통하는데가 있지 않으며 상사한 일면을 시사하지 않는가? 솟아오를 때의 태양은 얼마나 힘차고 장려하며 또 한낮엔 얼마나 휘황한가? 그러나 자기의 빛과 열을 한껏 뿜어낸후에는 예이제 담담해진다. 인간도 생명의 초창기엔 저 태양과 같은 정열의 덩어리로 인생길을 질주한다고 할수 있지 않을가?
    사람은 누구나 제나름의 청춘시절을 가지고있다. 하지만 누구나 조락의 섭리를 외면할수 없다. 훌훌 번져버린 그 하루가 쌓이여 달이 되고 달이 포개여져 엇바뀌는 계절이 되고 봄, 여름, 가을, 겨울이 합류되여 세월의 강을 이루고 달고쓰고 매운것이 배합되여 칠색의 인생만화가 될뿐이다.
    현재란 무어냐?누가 현재를 규정할수 있는가?일초만 지나도 곧 과거로 된다. 미래란 무엇이냐?순간에 과거로 되여질 원형 그대로 다가오는듯 싶다가도 얼핏 스 쳐지나는 오늘이다. 누군가 과거에 대한 회억속에 도취되여 있다면 두번 사는것과 같다고 하더라만 아무리 들척지근한 추억이라도 종이에 싸두었던 때묻은 사탕을 녹이는 맛이 아니날가부냐?
    가버린 세월을 손짓해 부르면 아픈 추억이 먼저 매달려 가슴 허비는데 왜 고집스레 추억을 붙안고 한숨 태워야 할가?그래도 그냥 집착하니 불치의 로년병이 아니냐? 석양을 바라보는 이 로옹의 속절없는 마음에도 지각한 사랑이 끓고있지만 어느 뉘가 알은체나하랴! 살같이 흘러가는 오늘은 이것저것 마뜩지 않고 래일은 또 얼마남지 않아서 아예 체념해버린채 어제에 매달리는 그 허무함이야말로 처절한것 이다.
    흘러가버린 세월의 강기슭에 즐펀히 펼쳐있는 기억의 소택지는 어느 늙은이에게나 다 있으리라. 그리고 본의 아니지만 습관처럼 무시로 빨려들고 있을것이다. 그것에 인생려정이라는 멋진 이름을 붙여놓고 오늘 여유로운 마음으로 거기에 빠져 보는것이 행운인지 비애인지 나는 알수 없다.
    다만 내청춘의 비탈길엔 비바람도 무지 사나웠다는 기억만 생생하다. 지긋지긋한 소택지에서 꿈처럼 벗어났을때는 세월의 강은 멀리도 흘러가버렸다. 가슴을 치며 아쉬워해도 놓쳐버린 파랑새였고 소잃고 외양간 고치기였다. 그러나 소잃고도 외양간을 고칠수 있다면 일종의 기회일수도 있다는 생각을 그때는 할줄도 몰랐다. 그만큼 내 청춘은 광란의 10년 세월속에 허무하게 무너져버렸다. 자격미달이여서 그 잘난 《반란의 쾌감》도 맛보지도 못하고 무료하게 보냈던것이다.
    그 세월에 무료하게 보냈다는것은 정히 할 일이 없었다는것을 의미한다. 손이 발이 되도록 밭갈고 등허리 휘도록  김매고 제초기 밀고…육신은 노그라질 지경이 였지만 그러나 정신은 공허하기 짝이 없었다. 정신과 육체의 분리, 육체의 피로보다도 정신적인 무료가 얼마나 괴로운일인가는 아무나 체험하는게 아니다.
    속세의 번거로움을 잊고 깊은 절의 법당에서 정좌하고 념주를 세는 로승의 념불은 무료함이 아니며 산허리에 나앉아 볼을 타는 호랑이의 울부짖음도 무료가 아니다. 무료함은 개구쟁이 손에 날개를 잘리고 맴도는 잠자리의 몸부림이며 꼭지가 떨어진 뒤웅박이 시들어가는 그 참기어려운 기다림이다. 그리고 찌륵찌륵 전기소리가 시끄럽 던 5급 라지오에서 무슨 말을 가려듣노라 귀를 강구는것이다.
    그런 암담한 나날에 존재의 리유가 있었다면 숙명에의 굴종이고 가망없는 기다림이였다. 비록 래일이 내게는 아무 글자도 쓰지 않은 송금통지단 같았고 가망 없는 빈 계약서에 불과했지만 기다려야 하는 외에 다른 리유가 있을수 없었다.
    오는듯 싶다가도 곧 스쳐지나는 래일과 곧 굳어져버리는 과거는 동전의 앞뒤면처럼 도안이 다를뿐 그 실질은 같다. 오늘 저문인생의 언덕에서 동전의 량면을 뒤집 어 볼때 하루하루가 조급해지고 가장 요긴하고 가장 실제적이라고 생각되는 까닭도 이에 있지 않을지?
    누군가 시간을 수도물에 비유하였다. 물은 흘러나와 하수도로 빠져버리지만 흐르는 그 사이에 쌀씻어 밥짓고 빨래하고 때를 씻으면 물은 결코 헛되이 흐르는것이 아니다. 그래서 흘러가버리면 그만인 물과 같은 이 하루에서만 영원을 잡아쥐고 세기 를 헤아리며 무료함을 찢어버리고 관습을 부시자. 권태를 죽이자.
    묵은 옛날 돌아보지 말려면 기억을 무찔러버려라. 이 하루도 잘살지 못하면서도 래일에 턱걸이 하지말아야 하겠다. 암담했던 그 세월이 절망적이였던것은 결국은 마음의 자세문제였지 결코 세월탓은 아니다. 그런 살풍경속에서도 빛나게 살았던 사람들이 있었으니까.
    경험선생은 언제나 지각한다. 그리고 강의내용도 잃어버린것에 대한 총화이지 앞으로의 계시가 아니다. 그래서 실패한 교훈은 뼈저린것이요 다시 찾을길없는 아쉬 움 그 자체일뿐이다. 그저 여기저기 삽질만 하다가 물한방울 보지 못한 우물파기같은 인생만큼 더 싱거운 삶이 있을가? 나야말로 과연 인생의 터밭에 땀만 쏟으며 빈호밀질만 한게 아닌지…
    그래도 살아왔고 살아가는 내 목숨이다. 래일은 바로 오늘의 연장선이고 오늘은 과거의 지속일진대 슬픈 어제였든 휘황한 어제였든 나에게도 무언가 쌓아준것이 있다고 자아를 위안해 본다. 그리고 자신을 밀어본다.
     그냥 걸어라. 재난의 소택지를 헤쳐나와 밤길을 걸은 사람만이 누구보다 먼저 밝아오는 서광을 맞을수 있다는것을 잊지 않으면 너는 이제 앞에 놓인 어떠한 길이든 걸어갈수 있다. 날은 저믈고 갈길은 멀지 않지만 오늘 많이 걸으라. 몹시 지쳤더라도 그냥 걸으라. 혹 래일 네가 더 걸을수 없을지 누가 알랴!
    가장 중요한것은 오늘이다. 원숭이는 옥수수를 딸 때 앞에것이 제일 좋은것은 앞에 있겠거니 하면서 하나 따고는 버리고 또 따고는 버린다. 그러나 나중엔 빈손이 된다. 돌아보아 너저분하게 널린 옥수수이삭들은 이미 버린것이다. 원숭이는 그것을 줏는다는것은 영원히 무의미한 짓이라고 생각한것이리라
     …석양은 혼자 얼굴 붉히고 내상념은 피빛으로 물든다. 마침내 낮과 밤의 날개가 살며시 나를 덮어버린다. 모든것이 모호해지다가 밤속에 묻혀버린다. 나는 낮의 광명과 밤의 암흑을 절감한다. 시간의 촉박함과 생명의 유한을 느낀다. 이렇게 막연한 시각엔 나는 이미 내가 아니다. 나와 풀과 나무와 흐르는 저녁구름과 바람은 모두 우주공간속에 무상하다…
              
 
 
                                             2005 년 7 월 21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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