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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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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새
2007년 06월 29일 05시 54분  조회:2973  추천:73  작성자: 김혁


. 수필 .
 

겨울새 

(1993년 연변일보 "해란강"문학상 수상작)



김 혁


  두 번째 눈이 내리던 날, 그러니까 11월 초순께의 일이었다.
  신문사 이웃부인 사회교육부의 동료인 A선생이 아침나절에 나를 불렀다. 20년간 기자행업에 몸 담근 연장자인데다가 원체 성정미가 도고한지라 돋보여 평소에는 요긴한 말 외에는 구구한 면담도 없이 여태껏 지내 온 선배였다. 나는 약간 어줍은 기색이 되어 그의 뒤를 따랐다.
  <<이게 뭔가 좀 보라구.>>
  A선생이 악동같이 장난기 묻은 웃음을 지으며 조금조금 사무실 서랍을 잡아 당겼다. 서랍 속의 실체를 일별하는 순간, 나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경아성이 튕겨 나갔다.
  <<아니, 이거 새가 아닙니까?>>
  새였다.
  빨간 부리, 비취색 깃을 가진 새였다. 얼핏 보기에는 미니완구로 착각이 들 만큼 작은 새 한 마리였다. 할딱이는 흰 가슴, 자주 깜박이는 작은 눈은 그 역시 하나의 소중한 생명임을 말해주는 상 싶었다.


  <<꺅!>> 홀연 새가 되알진 소리로 우짖었다. 그렇게 높은 소리는 아니었지만 조용한 사무실, 스팀속의 출렁이는 물소리와 서걱서걱 글 쓰는 소리만이 단조로운 음향의 그라프를 긋는 사무실에서, 이색적인 그 모난 우짖음이 주는 공명성은 컸다. 하여 주춤 놀라기 까지 한 나였다.
  A선생은 출근길에 길가에서 주어 온 <<유랑민>>이라고 새의 출처를 밝혔다. 빙설에 박제된 콘크리트 숲에서 추위와 소음에 떨고 있는 가여운 생명을 보고 그저 지나칠 수 없어 큼직한 외투호주머니에 신주 모시듯 하여 왔다는 것이었다. 한편 집집마다 굳게 창을 봉한 이 혹한에 어디서 어떻게 날아온 새인지 로를 일이라며 의뭉스런 낯빛을 지었다.
  <<무슨 새죠? 이 새의 이름말입니다.>>
  <<글쎄? <예조리>같기도 하고>>
  모두가 자연을 멀리한 책상물림들이어서 새의 이름을 감별하기 어려워했다.
  <<파랑새라 해두지. 생긴 모양에 쫓아서...>>
  A선생과 함께 제 나름대로  새의 이름 짓기 작업에 뇌 즙을 짜던 나의 노리로 저도 모르게 시인들이 즐겨 구사할 그런 조합이 획을 그었다.
  <<겨울새라 하면 어떨까요? 겨울새>>
  <<겨울새? 거참 시적인 이름인데. 겨울에 얻은 새니까 하기야 겨울새가 옳지>>
  A선생은 즐거워하고 있었다. 여직 돌의 표피처럼 딱딱한 얼굴을 고수하고 있던 A선생
이 그렇듯 즐겁게 홍소를 터뜨리는 모습을 나는 처음 보았다.
  신문과 편지를 조달해 주는 통신원 여자애가 새를 보고 귀여워 어쩔 바를 몰라 했다.
  우체국으로 갔다 돌아오는 길에 집에 들려 좁쌀까지 한 줌 넣고 왔다.
  나는 좁쌀알을 손바닥위에 펴놓고 새의 부리 앞에 내밀었다. 새는 조금 멈칫거리다가 머리를 주억거리며 쪼아 먹기 시작했다. 작으나 억센 부리가 손바닥에 닿을 때마다 잠자리의 날개 짓처럼 미세한 감각의 파장이 일신에 뻗쳐왔다. 나는 간지러운 나머지 키득키득 웃고 말았다. 피부에서 가슴으로 뻗치는 아릿하면서도 무거운 그 감동은 가슴 속에 침전되어 있던 인간의 원초적인 박애의 감정을 환기시켜 주는 듯 했다. 한 작은 생령에 대한 연민의 감정이 만부해 오름을 억제할 길 없어 했다.


  점심, A선생이 맥주 집으로 가서 한잔 하는 것이 어떠냐고 제의해 왔다. 나는 흔쾌히 따라 나섰다.
  우리는 삶은 조개를 안주로 맥주를 흠뻑 마셨다. 비닐 컵에 담긴 0,5킬로 생맥주를 대번에 굽 냈고 쇠돈을 조개껍질의 틈바구니에 박아 넣어 벌컥 젖히고는 그 속에 솔 곳이 담겨진 붉은 살을 걸 탐스레 후벼먹었다. 경쟁이 강요되는 요즘세월, 긴장한 호흡만이 흐르던 일상 중에 서로 가려왔던 생경한 탈을 벗기듯 딱! 딱! 신나게 조개껍질을 벗겼다. 그리고 많은 말을 하였다.
  요즘 풍미되고 있는 애견 열(熱)이며, 맥주의 안주 챙기기며, 힘들게 읽고 있는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의 세계>>며, 베스트셀러 <<맨해튼의 중국 여인>>이며, 상품시대 방황하는 문인들의 현황이며...에 대해.
  작은 새의 출현은 여유 없던 우리들의 사이에 그 어떤 공명을 유발시켰으며  그 새를 화제로 하여 우리는 서로 갑문을 터치고 추호의 가감도 없는 세계에서 구애됨이 없는 면담을 나눌 수 있었다.
  그날로부터 새를 돌보는 일은 우리들의 따분한 일상에 신선한 활력을 주입하는 일과로 되어 버렸다.
  손목 시큰하고 어깻죽지 뻐근하게 글을 쓰다가도 A선생의 사무실로 찾아 들어가서는 그 무슨 진귀품이라도 감상하듯 새를 구경하곤 했다 .먹이도 때때로 주고 보온병 덮개에 물을 담아 먹이기도 했다. 퇴근 시에는 스팀과 제일 가까운 서랍 속에 넣어두고는 호흡에 영향이라도 줄까봐 서랍을 빠끔 열어놓고 가기도 했다.
  동 시장 부근에 가면 새 초롱을 파는 전문매장이 있다고 열심히 알려주는 동료가 있는가 하면 <<속이 썰썰한데 고 놈 잡아 술안주나 할까>>고 롱을 걸어오는 시럽 쟁이 동료도 있었다. 모여 선 사람바자 속에서 새는 꺅! 꺅! 사뭇 즐겁게도 우짖었다. 빙설로 박제된 계절이지만 새는 인위로나마 따뜻한 봄내음을 주조해 주는 상 싶었다.


  그렇게 닷새가 지났다. 꼭 닷새밖에 안 되었다. 신선한 맥락으로 이 며칠을 지내오던 우리들의 가슴 가슴에 새로운 충격이 밀착해 왔다.
  새가 죽었던 것이다. 새가 죽었다. 낡은 책상서랍의 뒤 부분에 구멍하나가 뚫려있었는데 그 구멍으로 날아 내린 새가 차가운 콘크리트바닥에서 한 밤을 지새우다 얼어 죽었던 것이다.
  <<언녕 집으로 가져가야 하는 건데...>>
  <<고눔 소파나 책상위에 앉았더라면 이런 변골 치르지 않았을 것을>>
  A선생이 추연한 눈빛이 되어 말했다. 혹여 살아날 수 있을까 새를 털모자에 싸서 스팀위에 올려놓아도 허사였다. 눈을 꼭 감고 미동도 하지 않고 있는 새는 하나의 잘 만들어진 박제품을 방불케 하였다. 죽음 역시 아름다울 때가 있고나하고 나는 처음으로 생각해 보았다.
  <<얼른 던져 버립시다요.>>
   새의 죽음에 지지름을 당하고 있는 마음을 느껴 나는 앙상해진 표정으로 말했다. 허전한 감이 한가슴 가득 밀물처럼 밀려들어왔다.
  그러나 A선생은 새를 버리지 않았다. 새를 창턱에 놓인 화분통의 꽃을 떠내고 그 밑에 묻었다. 그 무슨 대장(大葬)이라도 치르듯 묵연한 몸가짐을 지켜보노라니 홀연 어느 문예지에서 읽었던 시 한수가 환청같이 들려오는 것이었다.
 
  새의 음향이/나의 동공에 안기어/싱싱한 꽃 피우면/
  나의 마음은/레몬 빛 단 즙에 취하여/꿈을 꾼다./
  꿈속에 아리송하게 보이는/ 봄 언덕 봄 다리를 지난 나는
  열매 맺힌 새의 이름을/앞산더기 밭고랑에 뿌렸다. 

  새는 죽었다.
  겨울새는 죽었다.
  하지만 겨울새가 묻혀있는 화분통의 선인구(仙人球 )는 여느 때보다도  왕성하게 자라났다. 물기를 머금은 동근 초록빛 몸체는 새의 파란 깃을 방불케 했고 몸체의 융기점마다 돋친 가시는 새의 부리를 방불케 했다.
  그 선인구를 볼 때마다 새를 생각하곤 한다. 겨울새를 생각하곤 한다.
  살아가기가 너무 힘이 부친 요즘의 엄동에, 우리 사무원들의 메마른 인정세계에 윤활한 우짖음을 뿌려주고 간 새, 계절을 앞질러 준 한 마리의 겨울새를...


  이제 정녕 봄이 오면 새의 심성이 담겨있는 꽃은 더 예쁘게 더 싱싱하게 자라오를 것이고 온갖 철새는 무양하게 떼 지어 찾아 올 것이고 그때에 우리는 화려하게 물드는 지상의 계절 한  켠 에서,  초록의의 향연 속을 거닐며 짧으나마 우리에게 봄 양기를 만끽하게 해준 한 마리의 영물- 겨울새를 다시 그려보게 될 것이다.
 

"연변일보" 1993년

☞ 김혁 문학블로그: http://blog.naver.com/khk66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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