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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1월 20일 21시 38분  조회:3989  추천:0  작성자: 죽림

유명인사들의 명언과 격언 모음 집 – 79

*   여성문화론
       
    오늘 여성 문화가 가장 혼동하고 있는 점이 남녀동등이라는 개념이다. 이 혼
  동의 시작은 그 개념의 출발점인 민주주의 이론과 마르크시즘에도  문제가 있
  다. 한마디로 남녀동등이란 서구의 합리주의적 사고일 뿐  동양 철학의 근본인
  사람과  사람 사이의 융화와 공존,  행복의 논리에서  나온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서 서구의 「남녀동등」이란 하나의 법철학적 원칙론에서  나온 것이지 남
  과 여가 화합해서 함께 사는 것이  인간 사회라는  동양 철학이나 윤리의 근본
  사상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합리주의적 여성 해방이 가장 뿌리 깊은 곳이 사회주의 사회다. 사회주의는
  여성을 남성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에 주안점을 둔다. 첫째, 여성은 남성과의
  경제적 예속 관계를 깨기 위해 남녀 모두를 국가의 월급쟁이로 만든다. 사유재
  산을 깨고 남녀 모두를 국가의 공동경제의 일원으로 받아들인다. 둘째, 여성의
  출산과 양육의 고통을 덜어 주기 위해 산부인과의  탁아소를 일반화한다. 이렇
  게 하면  남녀가 공히 동등한  인격체로서 서로의 사랑만이  서로를 묶어 주는
  공평한 사회가 되리라고 믿었다. 그러나 모순은  곧 드러나고 만다.  나라에서
  같은  월급쟁이로 받아들인 남녀라 할지라도 여자가 능한 작업이 있고 남자가
  능한  분야가 있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 결과는 당원이나  관리
  직, 즉 세도깨나 부리는 직책은 모두 남성이 휩쓸었다. 관리에 불공정이 있어
  서가 아니라 공정성의 결과였다. 여성은 집안에서  남녀동등을 얻은 대신(그것
  도 전통적인 아내의 남편 섬김을 포기한 일도 없었고)  국가 관료체계 속에서
  엄연한 부하의 위치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엊그제 북한 여성의 인터뷰에서
  「가장 이상적인 남편감이 어떤 사람이냐?」는 물음에 「가장 당성이 확실한
  남성이야요!」하던 여대생의 모습이 생각나는가? 이 이해할 수 없는 대답은 당
  성이 확실한 당원이 잘먹고 잘사는 데 가장 적격이기 때문이다. 다음, 여성의
  출산과 양육의 수고로움을 덜어 준다는 탁아소 정책은 여성의 모성애를 모르는
  소치다. 소련의 여성들 사이에선 일은 일대로 하고 남편 섬기고 아이들 기르느
  라고 일만 두 배로 늘었다는 불평이 심각하다고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남녀동등은 여성의 자본 예속 현상을 야기시킨다. 남녀
  가 노력만 하면  돈을 벌 수 있다는 자본주의적 미덕, 그 자유 경쟁의  추진력
  은, 마르크시스트들의 욕설로 말하면,  「모든 여성을 창녀화시켰다」「사랑이
  없는 결혼은 매음행위다」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의 여성이 「당성이 확고한 남
  성을 선호」한다면 남한의 여성은 「자본이  확실한 남성」을 은연중 선호하게
  된다. 이런 현상은 비단 오늘뿐만이 아니라 항상 있어  온 추세다.  그러나 오
  늘날은 돈 못버는 남편은 바보이고 복부인의 눈에는 남편의  벌이나 하는 짓이
  전부 우습게 보인다. 가정에서도 경제 사정이 좋으면  부부 사이가 원만하다가
  도 조금 기울게 되면 이혼이니 손찌검이니 난리가 난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더욱 슬픈 것은 남녀가 사랑과 화해의 관계에서  경쟁
  관계로 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미덕은 남녀 사이의 미덕을
  좀 먹고 누가 더 많이 버느냐의 관계로 전환시켰다. 남자가 더 많이 받고 여자
  가 덜 버는 관계를 개선하자는 것이 오늘 노동운동의 한 이슈다. 그것은 그 문
  제의 정당성, 비정당성은 차치하고라도 여성이 남성을 경쟁 상대로 보고 있다
  는 직접적인 증거다. 전통적인 여성이 집안의 화해를 돕고 자녀의 양육과 나라
  의 앞날을 가꾸어 나가는 데 기여해 왔다면, 오늘의 여성은 집안을  일으키고
  남보다  더 잘되고 더 많이 버는 것이 자신의 행복을 좌우한다고 믿게 하는 기
  현상을 유발시킨다. 행복은 반드시 돈과 정비례하지는 않는다는 공식을 잊고..
   
    사실상 남녀동등이나 기회 균등이 남녀를 경쟁 관계로 이끌 때 조건이 불리한
  것은 여성 쪽이다. 그것은 여성이 남성에  비해 지적 능력이 얕다거나 일의 능
  률이  저조해서라기보다는 오늘의 사회, 역시 남성 중심적 사회의 터전이기 때
  문이다. 활동적이어야 하고 다방면에 신경을 써야 하는 사회생활의 능륙의 척
  도에 여성은 아무래도 뒤떨어진다. 올림픽 경기에서도  여성 운동과 남성 운동
  이 구별되듯이  여성의 활동성은 남성과 같은 기준에서 살필 성질의 것이 아니
  다. 구별을 차별로 인식하고 여성의 열등한 면에 일부러 눈감은 채무조건 남녀
  동등에의  경쟁관계만 고집한다면 그 결과는 여성의  좌절감만을 낳을 뿐이다.
  그 이유는 경쟁이라는 자체나 남녀동등을 주장한다는 주장의  목소리부터가 남
  성적이다. 여성이 남성적 사회에서 남성적 목소리를 흉내내며 남성과의 자유
  경쟁을 부르짖을 때 여성은 여성 특유의 장점을 처음부터 포기하고 덤비는 꼴
  이 된다.  여성은 주장보다 설득에 강하고 합리적 발상보다 정서적이며, 외적
  인 경쟁의 결과보다 사랑을 통한 승리에 오히려  능력이 뛰어나다.  그것은 여
  성의 전통 문화가 여성에게 키워 준 장점이다. 남존여비적 전통 사회의 잔재를
  깡그리 부수고 오늘을 새로 시작하기보다는 나의 타고난 능력이나 장점을 살리
  고 오늘의 개혁에 임하는 것이 오히려 경쟁할 줄 아는 태도다.
   
    오늘의 여성주의자들의  목소리는 지난날 남성들의 목소리를 흉내내고 있다.
  즉, 주장과 운동과 투쟁으로 여성해방이  이루어진다는 논리, 그 논리벽부터가
  남성적인 것이다. 여성은 앎의 신이었다. 소피아도 미네르바도 여성이었다. 거
  기에 로고스, 즉 논리만이 남성이다.  앎은 로고스처럼 노가리 까고 밖으로 드
  러나는 게 아니라 드러남이 없이 땅과 하늘을 창조하고 가꾸어 가는 힘이었다.
  동양의 노장 사상의  뿌리는 바로 앎의 이런 여성성의 극치를 철학화한 것이라
  고 볼 수 있다. 부드러움이 강한 것을 이긴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이  모든
  것을 하는 것이 된다 등등.... 이제부터 여성은 스스로가 가진 만물 양생의 주
  인의 위치를 회복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남녀동등이란 오늘의 사회에서  스스로가 스스로의 삶의 양식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모두가 동등하다는 뜻이어야 옳다.  그것은 사회적 개념이기 이전에 철
  학적, 윤리적, 심미적 개념이어야 한다. 철학적, 일반적 사고에서 구체적,  개
  별적 사고로 넘어올 때 차별의 눈이 필요하다. 차별이란 위아래만  있는 게 아
  니라 앞, 옆, 여기저기에 있다. 남녀차별이 위아래와 같은 계급적 차등의 개념
  이 아닐 때 오늘에도 적용될 수 있는  민주원리가  될 것이다.  유교에서 말한
  「남녀유별」은 주역의 음양설의 적용이다.  즉, 차별은 만물 생성이 기본원칙
  이다. 남녀가 화합해야 아이가 생기듯이 남녀는 유별해야 하는 것이 동서의 도
  덕인데 이것이 대부분 우등과 열등, 위아래의 차등 개념으로 전락한 것이 사실
  이다.  그러나 남녀가 동등하다고 해서 여기저기,  앞 옆의 개념까지 혼동하게
  된다면  그것은 인간의 삶의 관념화, 피상화를 부채질하고 고독과 실의,  권태
  와 불만만 커질 것이다.  남자나 여자가 똑같고 나와 네가 똑같다면 이 세상은
  지겨워서 어떻게 살겠는가 마음에  당기는 게 있으려면 우선 여기와 저기가 있
  어야 한다. 여기에서 보면 저게 좋아  보이고 저기에서  보면 이게 좋아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모두 여기 있으면 좋은 것도 싫어진다. 남녀유별은 여자와 남
  자, 남편과 아내의 사랑을 위해  가장 중요한 원칙이며 그 도덕률이다. 사회적
  의미의 남녀동등의 남녀유별과 혼동되어서는 안 되는 소이가 여기에 있다.
  - 민용태
 
* 지금껏 그래 왔듯이 설익은 서양 문화 이론으로 우리 문화를 이해하려고 한다면
  우리 문화와 서양 문화의 그 다름만큼 우리는 또 실망하고 말 것이다. 희랍 문화,
  로마 문명, 인도나 중국의 문화에 비해 우리  문화는 형편없이 왜소하다. 그렇게
  크고  웅대한 것이 우리 예술을 보는 눈이라면 우리 문화는 첫걸음부터 낙방 대열에
  서게 된다. 황금을 흙덩이처럼  떼어 붙인 서양 황제들의 거실 모습과 신라의 왕
  관을 황금의 양으로 계산하려 든다면 우리 것은 얼마나 보잘것없는 것이랴! 작
  은 것은 작은 것이 갖고 있는 예술성이 있고 빈약한 것은 빈약한 것이 갖고
  있는 애잔함의 미학이 있다. 유방이 큰 여자를 찾기로 한다면 차라리 젖소와
  사는 게 낫다. 그러나 그 젖소가 우리의  사랑을 이끌지 못함은 그것이 예술도
  문화도 삶도 아니라는 사실 때문이다. - 민용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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