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zoglo.net/blog/kim631217sjz 블로그홈 | 로그인
시지기-죽림
<< 4월 2024 >>
 123456
78910111213
14151617181920
21222324252627
282930    

방문자

조글로카테고리 : 블로그문서카테고리 -> 문학

나의카테고리 : 시인 대학교

"가짜 詩"와 "진짜 詩"...
2017년 11월 03일 01시 36분  조회:4480  추천:0  작성자: 죽림


인공지능이 쓴 시

 

봇포엣(botpoet.com)이란 웹사이트를 아시는지. 이 사이트는 방문자에게 ‘시인이 쓴 시’와 ‘인공지능 장착 봇(bot)이 쓴 시’를 차례로 보여주며 방문자가 일명 ‘튜링 테스트(Turing test)’를 수행하게 한다. 튜링 테스트는 컴퓨터가 스스로 사고하는지 여부를 측정하기 위해 영국 수학자 앨런 튜링(Alan Turing)이 1950년대에 제안한 실험. 참여자는 커튼으로 가려져 보이지 않는 상대방과 텔레그래프로 채팅, 커튼 뒤 존재가 사람인지 컴퓨터인지 구분한다. 이때 양자를 쉬 구분하지 못하면 컴퓨터가 스스로 사고하는 걸로, 혹은 인간 지능에 근접한 걸로 본다. 편리하다. 하지만 과학적으로 엄밀한 방법은 아니다.

 

파블로 네루다의 시를 ‘봇’ 작품으로 오판하다

봇포엣에 접속, 튜링 테스트에 참여해본 적이 있다. 대부분 정답을 맞혔지만 늘 그런 건 아니었다. 어떤 시는 사람이 쓴 건데 봇이 쓴 걸로 착각했고, 봇이 쓴 시를 두고 사람 작품이라고 판단하기도 했다. 파블로 네루다[1]가 쓴 시를 봇 작품이라고 잘못 말했을 땐 시인에게 괜히 미안하기도 했다. 시가 영문으로 작성된 탓에 단어 선택이나 문장 배치 등이 자아내는 어감을 면밀하게 포착하기 어려웠고, 그 결과 시인의 시적 파괴와 봇의 엉뚱함을 구별하지 못한 게 오판의 원인이었다.

인공지능이 시나 소설을 쓰고, 영화 시나리오를 완성하며, 신문 기사를 작성하고, 그림이나 작곡에 도전하는 건 신기한 SF적 상상이 아니라 일상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현재의 발전 속도를 고려하면 인공지능이 시인∙소설가∙화가∙작곡가의 밥그릇을 (심각한 수준에서!) 위협하고, 더 나아가 의사∙변호사∙대학교수∙건축가∙프로그래머의 일자리를 빼앗아갈 날도 멀지 않았다.

사실 컴퓨터가 시를 쓰는 건 더 이상 뉴스가 아니다. 인공지능이 시나 소설을 쓰고, 영화 시나리오를 완성하며, 신문 기사를 작성하고, 그림이나 작곡에 도전하는 건 신기한 SF적 상상이 아니라 일상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현재의 발전 속도를 고려하면 인공지능이 시인·소설가·화가·작곡가의 밥그릇을 (심각한 수준에서!) 위협하고, 더 나아가 의사·변호사·대학교수·건축가·프로그래머의 일자리를 빼앗아갈 날도 멀지 않았다.

시를 쓰는 인공지능

‘4차 산업혁명’으로 불리는 오늘날의 변화가 단순히 경제·경영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사회·문화 전반에 걸친 인간의 삶이나 존재 자체에 대한 변화를 추동(推動)하고 있다, 는 주장은 조금도 과장이 아니다. ‘인간은 필요 없다’(원제 ‘Human Need Not Apply’)란 책을 쓴 제리 카플란(Jerry Kaplan) 미국 스탠퍼드대 법정보학센터 교수는 인공지능이 몰고 온 노동 시장의 파괴와 불평등 심화에 대해 고민하며 “그런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새로운 경제 체계를 준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때 고민과 주장의 시점은 ‘미래’가 아니라 ‘현재’다.

같은 이유로 ‘시 쓰는 봇’ 역시 이제 그리 신기하지 않다. 나도 당신도 이미 알고 있다. 인공지능은 시를, 그것도 엄청난 속도로 쓸 수 있단 사실을. 시인 한 사람이 한 편의 시를 쓰기 위해 멀리 여행을 떠나고 술을 마시고 실연을 당하고 불면의 날을 지새는 동안 인공지능은 모르긴 해도 100만 편쯤의 시를 뚝딱 완성해낼 것이다. 그중 10만 편 정도는 사람이 쓴 시와 구별되지 않을 테고 1000편은 뛰어난 시인의 작품이라고 해도 믿길 만한 수준일 게 분명하다. 10편 정돈 ‘걸작’으로 명명해도 될 정도 아닐까? 이세돌과 커제가 하루 한두 판의 대국을 소화하는 동안 알파고가 수십, 수백 판의 대국에도 끄떡없었던 것처럼 생산성 측면에서 인간은 이미 인공지능의 비교 대상이 아니다. 설령 그게 시를 쓰는 일이라 해도.

 

시를 시일 수 있게 해주는 건 시인의 삶과 생각

그런데 말이다. 시를 쓴 주체가 사람인지 컴퓨터인지 구별하기 어렵다 해서 컴퓨터가 쓴 글을 시라고 불러도 되는 걸까? 예를 들어 앞서 예로 든 ‘100만 편의 시를 쓴 인공지능’ 작품 중 다음과 같은 내용이 포함돼 있다고 하자(사실 이건 윤동주의 시이지만 봇이 그 비슷한 내용의 시를 썼다고 가정해보잔 얘기다)


 

그런데 시를 쓴 주체가 사람이 아니라 봇이란 사실을 알고 있다면 어떻게 될까? 그때도 봇이 부끄러워하고 괴로워한 걸 상상할까? 그럴 리 없다. 봇에겐 삶이나 감정이 없기 때문이다. 봇은 내면의 서정을 토해내려 활자를 이용하는 게 아니라 학습된 알고리즘에 따라 단어를 이리저리 무심하게 배치할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윤동주의 시를 닮은 위의 것은 교묘하게 배치된 단어의 조합일 뿐 시는 아니다.

단어의 조합

따지고 보면 봇포엣의 튜링 테스트 역시 알고리즘 속 시뮬레이션 기능을 점검하는 하는 과정에 불과하다. 봇의 시적 상상이나 서정적 능력을 측정하는 건 아니란 얘기다. 사람들이 윤동주와 네루다의 시를 읽고 감동하는 건 그저 그들이 선택한 단어와 문장의 조합이 훌륭해서가 아니다. 그들이 만든 시적 문장과 그들의 삶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알고 느끼며 배우고 싶기 때문이다. 봇이 쓴 시가 튜링 테스트를 통과한다 해도 진정한 의미에서의 시는 될 수 없는 이유 역시 거기에 있다.

 

온갖 봇’들의 홍수에서 정신 차리고 살아남기

정보를 단순히 취합해 기사를 만들어내는 알고리즘에서 비판적 저널리즘 정신을 기대할 수 없듯, 몇몇 단어 조합으로 ‘시 비슷한 글’을 만들어내는 봇에서 시인 정신을 바라는 건 난센스다. 그것들은 시뮬레이션일 뿐 실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자, 이제 칼럼 서두에서 번역했던 시의 원문을 읽어볼 차례다. 신중하게 생각해보기 바란다. 이걸 쓴 건 사람일까, 인공지능일까?


 

이건 ‘특이점(singularity)’ 개념의 주창자로 유명한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Ray Kurzweil)이 만든 알고리즘 ‘사이버네틱 포엣(Cybernetic Poet)’의 작품이다. 난 처음 이 시를 읽고 ‘사람 작품’이라고 착각했다. 긴가민가했지만 마지막 구절(‘passed their dreams’)에서 깜빡 속고 말았다. 오래된 친구들이 전하는 꿈, 이라니. 세상에, 속을 만하지 않은가.

 

 


[1] Pablo Neruda(1904~1973). 칠레 시인으로 1971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1570
번호 제목 날자 추천 조회
1570 사투리는 향토인의 살과 피이자 호흡이다... 2022-06-08 0 1462
1569 나는 어떻게 조선족이 되었나 / 남영전 2021-12-20 0 1088
1568 [문단소식]- 훈춘 김동진시인 "풍경소리" 울리다... 2021-09-07 0 1055
1567 [시공부사전] - 담시(譚詩)? 2021-05-29 0 1375
1566 하이퍼시 명언 21 / 최흔 2021-05-25 0 1368
1565 하이퍼시 명언 20 / 최흔 2021-05-25 0 1333
1564 하이퍼시 명언 19 / 최흔 2021-05-25 0 1344
1563 하이퍼시 명언 18 / 최흔 2021-05-25 0 1345
1562 하이퍼시 명언 17 / 최흔 2021-05-25 0 1254
1561 하이퍼시 명언 16 / 최흔 2021-05-25 0 1233
1560 하이퍼시 명언 15 / 최흔 2021-05-25 0 1301
1559 하이퍼시 명언 14 / 최흔 2021-05-25 0 1202
1558 하이퍼시 명언 13 / 최흔 2021-05-25 0 1285
1557 하이퍼시 명언 12 / 최흔 2021-05-25 0 1376
1556 하이퍼시 명언 11 / 최흔 2021-05-25 0 1268
1555 하이퍼시 명언 10 / 최흔 2021-05-25 0 1332
1554 하이퍼시 명언 9 / 최흔 2021-05-25 0 1417
1553 하이퍼시 명언 8 / 최흔 2021-05-25 0 1298
1552 하이퍼시 명언 7 / 최흔 2021-05-25 0 1192
1551 하이퍼시 명언 6 / 최흔 2021-05-25 0 1287
1550 하이퍼시 명언 5 / 최흔 2021-05-25 0 1318
1549 하이퍼시 명언 4 / 최흔 2021-05-25 0 1277
1548 하이퍼시 명언 3 / 최흔 2021-05-25 0 1354
1547 하이퍼시 명언 2 / 최흔 2021-05-25 0 1418
1546 하이퍼시 명언 1 / 최흔 2021-05-25 0 1387
1545 토템시에 대한 탐구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 김룡운 2021-05-24 0 1219
1544 토템과 민족문화 / 현춘산 2021-05-24 0 1208
1543 남영전 토템시의 상징이미지/ 현춘산 2021-05-24 0 1500
1542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시인평화", 남의 일이 아니다. 2021-05-10 0 1482
1541 시인 최기자/ 소설가 허련순 2021-05-03 0 1383
1540 조선족 시단과 시인들...6 2021-03-02 0 1379
1539 조선족 시단과 시인들...5 2021-03-02 0 1505
1538 조선족 시단과 시인들...4 2021-03-02 0 1330
1537 조선족 시단과 시인들...3 2021-03-02 0 1559
1536 조선족 시단과 시인들...2 2021-03-02 0 1650
1535 조선족 시단과 시인들...1 2021-02-19 0 1626
1534 [시공부] - 투르게네프 산문시 2021-01-18 0 1790
1533 [시공부] - 김기림 시인 2021-01-18 0 2041
1532 [타산지석] - 늘 "이기리"... 꼭 "이기리"... 2020-12-28 0 2066
1531 토템시/ 범= 남영전, 해설= 현춘산(8) 2020-10-10 0 1961
‹처음  이전 1 2 3 4 5 6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