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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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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최기자/ 소설가 허련순
2021년 05월 03일 22시 00분  조회:1383  추천:0  작성자: 죽림
<코트>라는 이름으로
죽음을 살아낸 시인
(ZOGLO) 2021년4월16일 
 
- 시인 최기자선생님을 만나다
 
허련순
 
그때는 그랬다. 기회만 있으면 최기자선생님을 졸졸 따라 다녔다. 문학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작가가 되고 싶었던 철없던 시절이였다. 고중을 졸업하고 귀향하여 신풍촌에 내려왔던 1972년 그해,  나는 대대 문예선전대에서 문자창작을 전담하시는 최기자선생님을 알게 되였다. 당시 그가 창작한 노래“공사벌에 풍년이 왔네”,“풍년 모를 어서 내세”가 연변인민방송국 매주일가로 불리워지면서 전 주 농민들의 애창가곡으로 되였다. 그 이후로 선생님은 신풍대대의 전설적인 인물이  되였다.
 
 

시인 최기자

작가지망생이였던 내가 글쓰는 사람을 마주한 것은 최기자선생님이 처음이였으니 그가 최초의 나의 문학선생이였던 셈이다. 그리고 최기자선생님과 합작으로  재담 <시어머니> 와 <쌍둥이>를  연변문예에 발표하게 되였는데  이는  거의 기적이였다.  당시 나의 상황으로 볼 때 혼자의 힘으로 작품을 내기에는 너무 미숙했기 때문이다. 두 작품 모두  선생님께서 혼자 쓰다싶이 하고 나는 고작 아이디어 몇개 보탠것 뿐인데 선생님은 워낙 스케일이 크고 통이 크신 분이라 아낌없이 옆자리를  내여준 것이다.
 
신풍이란 곳은 선생님과 나에게 최초로 문학의 열정을 발원하고 유지시켜준 문학의 메카였다.  우리는 사제관계로 몇년을  신풍에 있다가 1976년  대학을 가면서 헤여졌고  그후 선생님은 시와 수필을 쓰시고 나는 소설을 쓰면서  서로 다른 길을 가게 되였고 다른 공간에서 자신의 문학창작에  열중하면서 같은 시간을 많이 공유하지  못했다. 많은 세월을 한번도 잊은 적은 없지만  잊은 듯이  살아왔다.  늦었지만 이렇게나마 선생님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할 수 있게 되여  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는 누구인가.
 
선생님은 1947년에 연길에서 태여나 1966년 연변제1고중을 졸업하고 지식청년으로 연집공사에 하향하여 이삼년간 농사일을 하다가 24세에 신풍촌 박씨 총각과 결혼하였다. 이미 칠십이 넘었지만 여전히 소녀처럼 순수하고 흥이 많고  뜨거우신 분이다. 시도 잘 쓰지만 수필이나 소품 등 연극쪽에도 일가견이 있다. 그런데다 노래도 잘하고 춤도 잘추고  북이나 새장구도 잘 친다. 그리고 주패나 화투 마작도 잘 놀고 지어 낚시도 잘한다. 낚시시합에서 남자들을 젖히고 일등을 하여  상을  받은 적도 있다. 술도 잘 마시고 돈도 잘써 한량 같지만 비리를 보면 참지 못하고 어려운 사람을 보면 베풀 줄 아는 문단의 의리파 왕 언니다.  
 
갓 태여난 아기를 업고 문학쎄미나에 다녔던 열혈 문학녀성이였고 아이 둘을 낳은 후에  대학공부를 한 배짱있는 에너지 메이커였다. 나는 가끔씩 선생님께서 조선시대에 태여났더라면 황진이 못지 않은 절세가인이 되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군 했다. 물론 그러고도 남았을 것이다. 
 
늘 밝고 유쾌하셔서 가슴이 파랗게 멍들고 구들장처럼 새까맣게 타들어갔던 힘든 시간이 있었으리라고 상상하는 사람은 드물다. 마흔다섯의 젊은 나이에 선생님은 너무 갑작스럽게 남편을 잃었다. 아프다며 걸어서 병원에 들어갔던 남편이 이틀만에 죽음으로 돌아왔다. 미처 손써볼 새도 없이 무방비상태에서 너무  맥없이 무력하게 죽음을 떠안게 된 것이다. 영원처럼 살것 같았는데 죽음이 이렇게 시시하게 도래할 줄을 미처 몰랐다. 그야말로 <참을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 참담할 뿐이였다. 
 

남편과 함께

남편이 그에게 남겨준 유산은 스물여섯에 청상과부가 된 시어머니와 아직 어섯눈도 뜨지 못한 어린 두 자식이였다. 거짓말 같은 이 갑작스러운 죽음을 그는 감히 믿을 수 없었고 현실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하여  남편이 입었던 <코트>를 지금도 옷장의 깊은 곳에 보관함으로서 그의 존재를 잊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코트 한자락으로 남편의 췌취를 느끼고저 한 것인지, 아니면 그렇게 해서라도 남편의 죽음을 부정하고 싶었던 것인지 모를 일이다. 
 
죽음의 미학에 대한 역설
 
인간에게 피할 수 없는 근원적 공포는 바로 죽음이다. 죽음의 부정을 쓴 아니스트 베커의 주장에 따르면 ‘인생의 의미’라는 가치는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인간이 만들어낸 자의식에 불과하다. 그것은 혼신을 다해 다른 사람이 되려는 욕망을 가지게 한다. 이는 살아남기 위한 뇌의 꼼수가 아니면 자아기만일지 모른다.      
 
선생님이 그랬다. 불행하고 슬펐던 자신의 삶을 시에 의존한 채 자신은 완벽한 타인이 되여 자신을 닮은 슬픈 시들을 태연하게 바라보군 하였다. 시가 오히려 그의 진실이였고 그는 그저 시의 피조물일 뿐이였다. 그렇게 함으로써 간신히 길게 휘여진 자신의 시간들을 빠져나올 수 있었고 비로소 숨을 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고보면 자기 자신을 리해하기 위해 다른 타자를 지어낸다는 행위가 전혀 이상하거나 모순되여 보이지 않는다. 
 
선생님은 가을에 마른 꽃에서 씨를 받듯 슬픔을 시로 담아내면서 빛을  얻어냈다고 말한다. 그에게 시가 있은 것은 다행이였다. 그의 시는  죽음 역시 하나의 생명현상이고 생명의 또 다른 이름으로 불리워지는 삶의 과정일 뿐이라는 어떤 역설로 읽힌다. 그리하여 죽음은 한낮의 그림자처럼 늘 그의 삶과 동행하고 그의  삶과  밀착되여 함께 자고 함께 깨여나군 하였다. 죽음과 삶이 한 공간에서 함께 공존한 셈이다. 
 
바로 시 <잠자는 코트>는 죽음이란 삶의 한가운데 있다는 역설로서 인간의 실존을 증명해낸 철두철미한 죽음의 미학이다.   
 
차마 티없이 말끔히 버릴수 없어/ 남몰래 살려둔 주인 잃은 코트/ 님의 코트/옷궤 깊은 곳에서/ 이십여년을 자고 있습니다./ 너무 쉽게 췌취가 날아 날것 같아 /무시로 깨워보고 싶지만/ 함부로 건드릴수 없는 코트/ 잠자는 코트는 나를 깨여나라 하고/ 깨여있는 나는 이십여년을 자고있습니다./ 
 
잠자는 코트가 살아있는 자를 깨여나라 하고 깨여있는 자가 오히려 자고 있었으니 코트가 산자인지 살아있는 사람이 죽은 것인지, 산자와 죽은자의 구별이 없다.  인간의 존재조건인 고독과 죽음의 문제, 삶의 본질에 대한 신랄한 풍자이며 소스라치는 역설이다. 이 시는 시인이 자신의 삶으로 시란 무엇인지를 보여준 대표적 작품이다. 
 

 시어머니(왼쪽)와 친정엄마를 모시고~

선생님은 남편의 이야기를 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항상 밝고 씩씩하던 분의 이런 모습에 저으기 놀랬다. 울컥하면서도 한편 낯설고 당황했다. 잊을 만큼 긴 시간이 지났는데도 무엇이 여전히 선생님을 이리 서럽게 하는 것일가. 당해보지 못한 사람이  그 마음을 어찌 알랴만  짐작으로 류추해 보았다. 남편이 없다는 사실 때문에서가 아니라 세월이 지날수록 다시 돌아올 수 없는 남편의 그 뜨겁던  온기를 다시 만질 수도 느낄 수도 없다는 사실이 안타깝고 허무했을 것이고  남편의 죽음으로 바뀌여버린  자신의  외롭고 괴로웠던  그 지난 삶이 너무 억울하고 한스러웠을 것이다.  이 먹먹하고 아릿한 낯선 감정에 망설이다가 나도 그예 고개를 숙이며 눈물을 훔쳤다. 너무 고생하셨구나, 그런 말이 목구멍으로 꾸역꾸역 올라왔지만 토설하지 않고 꾹꾹 내리 눌렀다. 오래될수록 잊을 수 없는 이런 슬픔이야말로 문학을 하고 있는 우리가 영원히 간직해야 할 슬픔일 것 같았다.   
  
언젠가는 자식들을 불러 그들이 보는 앞에서 남편의 <잠자는 코트>를 태우겠다고 선생님은 선언처럼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이제 남편을 옷장에서 영영 떠나보내려고 준비하는 것 같기도 하고 오히려 이미 떠나가신 남편의 존재를 자식들에게 더욱 각인시켜 영영 붙잡고 있고 싶어하는 것 같기도 하였다. 죽음이란 결국 쉽게 놓을 수도 없고 잡을 수도 없는 우리의 영원한 아쉬움인 것을 선생님을 통하여 나는 더 깊이 절감하였다.  
 
기다림의 미학에 대한 역설 
 
그의 시는 늘 무언가 기다리고 있는듯 아련하다. 그리고 목마름의 갈증과 겨불내나는 안타까움이 있다. 대체 그의 시는 무엇을 기다리며 무엇을 기다려내려고 하는 것일가? 일찍 잃어버린 사랑과 그로하여 채워지지 않는 영원한 결핍이 채워지기를 기다리는 것일가? 아니면 또다른 사랑이 환수 되기를 기다리는 것일가? 기다림이란 인간 삶의 영원한 본질이다. 세상의 인연을 다 놓으면 기다리는 일도 하지 않게 된다. 삶이란 그렇게 무엇인가 기다리는 일이다. 시간이 지나면 아픔도 잊혀지겠지, 그리고 래일이면 오늘보다 형편이 더 나아지고 행복해지겠지, 그런 기다림으로  우리는 힘들어도 래일을 기다린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미래라고 희망이라고 생각하는 그것들을 기다리고 있는 동안 우리는 결국 매일매일 지나가는 시간속에서 삶과 멀어진다. 그래서 우리의 인생을  살만하니 죽는다고 애달파한다. 삶 자체가 이처럼 기만적이다. 이 대체 불가능한 기다림이야말로 세월을 거슬릴 수 없는 인간의 운명에 대한 역설이다. 이런 역설 때문에 선생님의 <기다림의 아름다움>은 보는 사람들을 숙연해지게 한다. 그의 <기다림의 아름다움>이야말로 상처받은 삶에서 나온 깊은 성찰 이며  사랑받고 싶고 위로받고 싶고 녀성이고 싶은 선생님의 강렬한 의지와 소원이 아닐가 싶다.
 


2019년  '시향만리'문학상 본상 수상

그의 시에는 남편을 잃은 젊은 녀인의 외로운 기다림이 있는가 하면 손녀를 업고 가마솥뚜껑을 안고 졸면서 며느리를 기다리는 시어머니의 기다림이 있고 기저귀를 바꿔주기를 기다리는 친정어머니의 기다림이 있다. 그리고 죽은자의 코트가 기다리고 있다. 기막힌 일이다. 도대체 죽어서도 기다려야 하는 이들의 기다림은 무엇일가? 영원한 결핍이라고 하면 어떨가? 결핍이란 죽을 때까지 채워지지 않는 욕망이다. 영원히 채워지지 않는 것을 기다릴 수 밖에 없는 우리의 인생은 역설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인간의 문학은 반복되고 그속에서  인간의 력사는  살아남는 것이다. 
 
그래서 우직하게 다시 기다림이란 무엇인지 묻고 싶어진다. 니체의 말을 빈다면 가만히 있는 것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열매를 기다리는 사람은 씨앗을 심는 것이고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사람은 문을 두드리는 것이라고 한다. 즉 기다림이란 다가오지 않는 것에 다가가기 위한 노력이다. 선생님께서 강가에서 낚시대를 드리우고 있는 것은 고기를 낚기 위해서만이 아니였다. 확실하다고 믿어오던 것들이 확실치 않는 불안한 존재였음을 알고나서  선생님은 내적인 문을 열어보고 싶었을 것이다. 그렇게 그는 서서히 자신으로 다가가고 있었을 것이다. 결국 기다린다는 것은  자아에 의해 왜곡되고 굴절된 자신의 내면을  살펴보는 시간이며 자신의 상처를 다독이는 시간이고  새로운 자신을  찾아떠나는  시간임을 선생님은 시로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다. 
  
 자유로움의 미학과 역설
 
플라톤이 지향했던 자유는 각자가 자기 삶의 주인이 되는 <적극적 자유>이다. 즉 타인의 가치에 휘말리지  않고 스스로의 가치를 말할 수 있을 때 인간은  능동적일 수 있고 자유롭다.  선생님은 그렇게 사신다. 그래서 자유로운 사람이다. 그의 주장은 기존의 세계에 존재하는 제도나 틀에 묶여있지 않고 스스로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것이다. 그의 시적 경향은 순수한 전통시도 아니요 절대적인 현대시도 아니다. 그는 <전통안에 현대가 있고 현대안에 전통이> 있는 자신만의 독특한 시세계를 구축했다.
 
 그는 한곳에 머물고자 하지 않는다.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그냥 지나가고 싶어한다. 그런 자유로움이 그의 시와 수필을 만들어냈다. 그래서 그의 시는 다른 사람들의 시와 다르다. 운명을 다 삭여낸, 먹걸리나 잘 삭은 감주처럼 달콤새콤하고 소름끼치는 소스라침이 있다. 그리고  바람의 냄새가 난다. 그는 새처럼 멀리 날고 싶어한다. 그래서 그는 가벼워지고 싶어한다. 거치장스러운 포장이나 장식따위에 관심이 없다. 그의 시는 녀성의 삶 자체다. <고독은 페경이 없다>  <가을이 갱년기를 앓다>  <어머니에게 기저귀를 갈아드립니다.> 등 시들이 대표적이다. 이것이 그가 추구하는 자유로움의 미학이다.
 


세상이 아무리 심란하더라도 부평초처럼 떠도는 자신에게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신보다 더 심란한 일은 있을 수 없다. 그는 자신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하여 끊임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천기를 루설하듯 시로 수필로 끊임없이 발설해왔다. 거치장스러운 외피는 스스로 실격되고  들리지 않는 침묵의  단단한 설득력이  삶의 처소를 뚫고 불쑥 튀여나오듯 독자들을 강하게 휘여잡는다. 그는 죽음과 존재 사이의 무한한 심연의 바닥을 박박  긁어내여  자신의 삶을 증명해왔다.  
 
모든 삶엔 상처가 있고 아쉬움이 있고 한계가 있고, 남에게 드러내고 싶지 않은 치부도 있다. 완전하지 않은 자기 삶을 드러내는 순간, 남들로부터 동정의 대상이 되거나 최악의 경우 가십거리가 될 수 있음을 잘 알고 있기에 그래서 선생님은 슬픈 내색 없이 그렇게 유쾌하게 사시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슬픔 뒤에 숨지 않았다.  시인은  자신의 삶과 오롯이 대면하는 순간을 겪고 난 이후, 작품의 여기저기서  자신의 아픔을 감추지 않고 보여주었다. 어두웠던 삶의 기억을 회피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대면한 그의 글쓰기에는 삶의 무게와 깊이를 담은 진심이 있다.  그리고 살갗을 후벼파는 예리함과  떨림이 있고 소름이 돋는 감동이 있다.
그동안 선생님은 시집 <아침에 머리카락을 줏는 녀자>, <고독은 페경이 없다>, 수필집 < 기다림의 아름다움> 등 작품집을 출간하였으며 연변일보해란강문학상, 연변 “두만강여울소리” 시탐구회 우수상 4차, 연변 “시향만리”문학상, 전국가요콩쿠르상, 한국 대성약품주식회사 “대성상” 등을 수상하였으며 중국조선어문잡지사에서 “공로패”, 연변단풍수필회에서 “감사패”를 받았다. 선생님께서는 연변대학을 졸업하고 연길시5중에서 근무하다가 중국조선어문잡지사에 전근한 뒤 부주필, 편십으로 일하셨으며 퇴직후 연변대학 조선어한국학 학원에서 10년간 초빙교수로 한국어 강의를 하였다.
 
혼자의 힘으로 아들딸을 대학생으로 반듯하게 키웠고 남편 없이 시어머니를 9년이나 모셨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자기손으로 시어머니의 염을 다 하였고  손수 명정의 글을 써 올렸다. 무슨 힘으로 이런 일들을 할 수 있었을가? 듣는 사람이 가슴이 떨렸다. 아들 하나만 믿고 청춘과부로 의절하고 외롭게 사시다 그 아들마저 앞세우고  살아있는 것을 죄스럽게 생각하며 고독하게 사시다가 이제 사랑하는 아들을 만나려 가는 시어머니를 곱게 보내드리고 싶었다고 했다. 그리고 같은 녀인으로서 같은 삶을 살아온 시어머니의 삶을 리해하고 싶었고 그래서 자신의 손으로 모든 것을 직접 해드리고 싶었다.  그저 그뿐이라고 하였다. 
 
무슨 말을 더 하랴. 선생님은 젊어서도 그랬지만 나이를 드셔도 여전히 사랑이 넘치는 향기로운 녀인이였다. 잡생각으로 마음이 흔들릴 때면 시를 쓰는 것이야말로 자기 자신으로 돌아오는 일이라며 다잡군 한다고 하였다. 그 말이 유효하는 시간 동안 선생님은 시쓰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 살아 온 날들로  살아갈 날들에게 꾸준히 새로운 질문을 해갈 것이며 선생님의 무늬를 닮은 시를 한수 한수 적어갈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선생님에게 봄날 같은 따뜻한 사랑이 찾아오기를 빌면서 이 글을 맺는다.  
 
                             2021. 2. 3  (연길에서)
글 <도라지>2021년 2호/사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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