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zoglo.net/blog/kim631217sjz 블로그홈 | 로그인
시지기-죽림
<< 5월 2024 >>
   1234
567891011
12131415161718
19202122232425
262728293031 

방문자

조글로카테고리 : 블로그문서카테고리 -> 문학

나의카테고리 : 시인 대학교

현대시 = 비유
2017년 11월 18일 22시 48분  조회:2446  추천:0  작성자: 죽림

현대시와 비유 /박진환

1. 비유란 무엇인가?

어떤 의미에서 비유는 언어가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한 기능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일상적인 언어생활이나 문장에서 많이 쓰이고 있기 때문인데 이는 비유가 모든 언어 속에 편재하고 있는 수사의 한 원리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시 창작에 있어서는 필수적인 것이어서 시 자체라고까지 확대 해석할 수 있는 본질적 기능이자 원리라고 할 수 있다.

언어는 그 소리 값과 의미와 대상을 드러내고 표현하며 지시하는 기능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언어는 한정되어 있는데 반해 나타내고 표현하며 지시하고자 하는 대상 사물은 무한하므로 그 대상 사물을 다 표현할 수가 없게 된다. 
다행히도 언어는 사물과 떨어져 독립하고 있으면서 자유롭게 움직이고 있는데, 이를 언어의 가동성(可動性)이라 한다.
이 가동성은 언어의 유한적 한계성을 극복, 표현의 무한한 가능성을 다 할 수 있게 하는 수단이 된다.

비유나 상징 등이 발생하는 근거가 여기에 있고 동시에 시가 창조되는 발상 차원도 여기에 근거한다. 이러한 배경을 전제로 비유에 대한 해석을 보다 구체적으로 곁들여 보자.

비유는 일단 넓은 의미의 비유와 좁은 의미의 비유로 양분해서 설명될 수 있다.
넓은 의미로는 문체, 수사와 같은 뜻으로 쓰이고 있는바, 즉 독자의 관심과 흥미를 끌고 문장에 변화와 정체를 더하기 위한 수사 형식 일반을 의미한다.

이에 비해 좁은 의미의 비유는 구상적∙회화적 비유 표현 특히 메타포와 같은 뜻으로 쓰인다. 다시 풀어보면 어떤 사물이나 의미를 다른 사물이나 의미에 유추하여 표현하는 직유∙은유∙의인∙제유∙환유∙풍유∙중의법 등을 포괄하게 된다. 
이쯤에서 여러 정의들을 중심으로 다시 해석 해 보기로 하자.

몰튼은 비유를 회화적인 비교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부모의 은혜를 태산이나 바다에 비교하는 것이나 사랑하는 연인을 나의 태양과 나의 마돈나 하는 것이나 사랑의 맛을 꿀 맛 같다고 하는 것은 그것이 비록 사 비유이기는 하나 다 회화적 비교에서 비롯하고 있음을 알게 한다.
특히 로버트바르는 사랑과 장미를 비교하여 좋은 시적 비유를 획득 하고 있다.

어떻든 그것이 회화적 비교이건, 의미적 비교이건 그 성립 조건이나 원리가 비교에 있다는 것은 비유가 두 가지 다른 사물이나 의미의 비교에서 성립된다는 것을 말한다. ㅡ계속

...
 

시인이 무엇인가를 표현하고자 하는 본래의 것을 보다 구체적이고 정확히 표현하기위해서 또 하나의 사물이나 의미, 즉, 관념을 끌어 들였을 때만 가능해 진다.

이것을 두고 흔히 비유의 성립조건에서는 본래의 것을 원관념, 동원된 것을 보조관념이라 하는데 리처즈는 원관념을 본의(本意)라고 하고 보조관념을 유의(有意)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비유를 성립시키는 원리를 중심으로 비유에 접근해 보자.

첫째, 비유에는 두 가지 사물과 두 가지 의미의 비교가 있어야 한다.
흔히 있는 비유지만 ‘무지개는 사닥다리처럼 하늘에 걸려 있고’ 한다든지 ‘구름 땀은 포도송이처럼 가을로 영글고’ 했을 때 무지개와 사닥다리, 땀방울과 포도송이라는 두 사물이 동원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무지개와 땀방울은 원관념 인 본의에 해당되고, 사닥다리와 포도송이는 보조관념인 유의에 해당된다.
곧 비유를 성립시키기 위해서는 두 가지 사물이나 의미, 즉 원관념과 보조 관념이 있어야 함을 알 수 있다.

둘째로, 비유를 성립시키기 위해서는 본의와 유의가 이질적인 것이어야 한다.
앞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무지개와 사닥다리, 땀방울과 포도송이는 서로가 다른 이질적인 사물이다. 그 때문에 무지개는 사닥다리가 아니다.
땀방울은 포도송이가 아니라는 부정이 있어야 성립 된다는 뜻이다.

이를테면 ‘장미 같은 여자’ 했을 때, 장미는 여자가 아니라는 부정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 말은 본의와 유의가 서로 같았을 때는 그것이 비록 어법상 비유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고 할지라도 설득력을 상실한 약한 비유에 불과하게 된다.
그러나 ‘바위같이 강한 남자’ 했을 때는 종류의 차이를 달리 함으로써 이질적인 점에서 설득력이 강한 비유로 적용한다.
엘리엇에 의하면 폭력적 결합이요, 콜리지에 의하면 통합적∙마술적 상상력에 의한 비유다.

셋째는 이와 같이 서로 이질적인 두 사물은 어딘가에 어떤 유사성과 관련성이 있어야 성립된다. 달리 말하면 이질 속의 유사∙관련성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보면 ‘달은 청상의 세운 눈썹이다가/시린 칼날의 은장도로 빛난다.’ 했을 때 달과 눈썹의 관련성은 여성 이미지이면서 시린 칼날의 은장도는 여성의 청결을 지키는 호신용이기 때문에 이미지의 관련성을 갖게 된다.

이상에서 볼 수 있듯이 비유는 원관념과 보조관념이 있어야 하고 이때 원관념과 보조관념은 서로 이질적이어야 하며, 이질성 속의 동질성이라는 유사성이 있어야 성립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곧 비유의 원리가 ➀본의 ➁유의 ➂이질성 ④유사성의 네 가지 조건에 의해서 성립된다는 점을 알 수 있게 한다.
이쯤에서 비유를 종류별로 구체화해 보자. ㅡ계속

...
 

2. 직유의 방법

직유를 흔히 명유라고도 하는데, 이는 하나의 사물, 즉 하나의 관념을 다른 사물, 즉 다른 관념과 직접 비교하는 비유법이다.
그래서 ‘~처럼, ~같이, ~듯이 ~인 양, ~하듯’과 같은 조사를 원관념과 보조관념 사이에 끼워 넣어 성립 시키는 비유의 형식을 위한다.

예를 들면 ‘꽃처럼 붉은 울음’한다든지, ‘왕방울 같은 눈을 굴리는 황소’ 한다든지, ‘구름에 달 가듯이’ 또는 ‘다정도 병인 양’ 했을 때에서 볼 수 있듯이 연결어를 사이에 끼고 성립되기 때문에 비유의 성격은 분명하고 직접적이나 그 밀도는 빈약하게 마련이다.

이때 직유는 사상을 선명하게 기술하는 목적으로 하는 기술적 직유가 있고, 사상을 선명하게 기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강의 적 직유가 있다.

기술적 직유는 다시 단일 직유와 확충 직유로 나눠지는데, 단일 직유는 간결한 비교를 서술하는 형식을 취한다.

예를 들면 ‘코스모스같이 가는 허리의 소녀’와 같이 단일하고도 간결한 성격을 띠고 있고, 확충적 직유는 직유의 부분, 즉 도입된 보조관념 부분이 길게 확장하고 있는 것을 가리킨다.

예를 들면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에서 볼 수 있듯이 ‘내 누님 같이’의 원관념을 그 이전의 보조관념이 길게 확장되어 있는 비유의 형식이다. 
그리고 강의 적 직유는 두 가지 사상을 기술적으로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뜻을 강조하기 위해서 사용되는 직유다.

특히 이때 속담 적 성격을 띤 말이 많이 동원 되는데, 예를 들면 ‘스크루지 같은 수전노’, ‘백 길처럼 가난한’ 한다든지, ‘개처럼 벌어서’ 등이 그 예이다.

이상에서 볼 수 있듯이 직유는 원관념을 보다 잘 드러내기 위해서 두 사물이나 관념 사이에 ‘~처럼’, ‘~같이’와 같은 조사를 끼워 넣어 직접 비교하는 형식을 취하는데, 이때 두 사물의 상사성과 유사성을 근거로 하여 보다 본의를 구체화하는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이쯤에서 직유의 방식을 시로 실제화해 보자. ㅡ계속

...

 

[실제]
- 배경설정

비유는 가능한 한 직유를 피하고 은유로 쓰고자 한다.
그것은 직유로는 도저히 드러낼 수 없는 이질성 속의 동질성을 찾아 폭력적으로 결합하고자 하는 기법들을 터득하고 있고, 이때의 결구력이 직유보다 확실히 강한 설득력으로 작용하는 체험들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는 반대로 초심자의 경우 은유보다는 직유를 즐겨 동원하는데, 솔직히 말하면 대부분 직유에 의존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느 날 낙엽 길을 걷다 나란히 걸터앉은 벤치에서 사랑을 고백 했다고 치자. 
그때 노오란 은행잎 하나를 주워 그의 책갈피에 끼워주면서 사랑의 증표로 삼자고 했을 때 그녀의 눈에 완연한 서운함이 감돌았다고 치자. 
주머니를 뒤져도 마땅한 증표가 될 만한 것이 없다. 그렇다고 쓰다 만 볼펜을 건 낼 수도 없다. 하는 수 없이 새끼손가락을 내밀어 사랑의 약속으로 걸었다고 치자. 
종종 있는 일이고 더러 사랑의 체험으로 간직하고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날 이후 새끼손가락의 의미는 사뭇 달라진다. 그것은 사랑의 의미나 중량 그리고 약속의 고리를 다이아몬드처럼 끼고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보다 성숙하면 이 사랑의 약속은 이루어지지 않고 추억으로 남게 됐다고 치자. 그래서 
어느 날 그 낙엽 길 벤치에 앉아 옛날을 회상했다고 치자. 무엇인가 가슴에 시려오는 사랑과 추억, 그리움 같은 것과 만났으리라. 
이런 배경을 시로 써 봤다고 치자.

지그시 걸었던
보석처럼 빛나는 약속을
새끼손가락은 끼고 있다.

그리운 날엔 
가슴에 품어
체온을 불어 넣기도 하고
서러운 날엔
한 잎 낙엽처럼
뽑아 던져도 보았지만

그대 더운 숨결로 건네주던
새끼손가락의 추억은
오늘도 진주처럼 반짝인다.

대충 이렇게 썼다고 치자. 이 시는 예외 없이 ‘처럼’, ‘같이’를 동원한 직유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ㅡ계속


...
 

이 시는 일상적 어법의 비유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에 단조로운 비교의 형식 이상을 획득해 내지 못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같이’나 ‘처럼’이 본인이 유의를 이어주는 조사 적 한계의 연결 고리 이상을 해 주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거기다 직유 이상으로 작용하지 못함으로써 사 비유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비유가 시적 비유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시적 직감과 내적 체험이 언어 속에 형상화 될 수 있도록 조사 아닌 상상력을 동원해야 하는데, 이 시에서는 단순한 사물로 사물을 잇는 이음새 역할밖에는 해 주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유사성만 동원됐을 뿐 새로운 이미지를 창출하는 데는 실패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다른 한 편의 시를 대비 했을 때 이해를 도울 것으로 본다.

추억보다 슬픈 사랑을 끼고 있다.
온 몸과 마음으로 매어달린 무게를
새끼손가락은 끼고 있다.

악수론 건넬 수 없는
지극한 사랑을 약속으로 걸고
어미손가락보다 당당한 맨 끝의
짧고 가는 손가락

세끼손가락의 추억과
새끼손가락의 사랑과
새끼손가락의 약속은 아름답다.

보이지 않는 고리 하나를 끼고
늘 보석처럼 빛나는 새끼손가락
사랑과 추억과 약속의 마디가 흰
새끼손가락은
체중보다 무거운 사랑을 가누고 있다.

「새끼손가락」이라는 졸 시의 전문이다.
이 시에서도 ‘추억보다’, ‘어미손가락보다’, ‘체중보다‘에서 볼 수 있듯이 직유를 쓰고 있다.
그러면서도 앞의 시에 비해 단순 비교가 아닌 시적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은 새끼손가락으로 걸었던 사랑의 의미를 계량하는 중량감으로 형상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종연에서는 약속을 보이지 않는 고리로 보석의 의미를 부여하고, 새끼손가락을 단 순한 손가락이 아닌 사랑과 추억으로 마디가 굵은 손가락으로 구상화하고, 여기에 체중보다 무거운 사랑의 중량감을 매달아 줌으로써 단순 비유가 아닌 치환과 병치적 은유의 효과를 얻고 있다. 이 때문에 이 시는 앞의 시가 극복해 주지 못한 단조로움을 벗어날 수 있게 된다.

이는 앞서 지적한 시적 직감과 내적 체험을 결구시킨 상상력을 동원하고 있기 때문인데 직유이건 은유이건 비유를 통해 획득한 이미지는 상상력에 의해 결구된다는 사실을 환기시켜 두고 싶다.
결국 비유가 이미지를 성립시키는 원리이지만 역시 상상력에 의해 보다 구체적 이미지를 창출한다는 점에 관심했으면 한다.

다음은 비유의 대표적 양식인 은유를 제기해 보자. ㅡ계속

3. 은유의 방법

은유는 암유라고도 한다. 또한 원관념과 보조관념 사이에 조사를 끼워 넣지 암ㅎ고 원관념과 보조관념을 동일한 것으로 보는 비유로서 ‘메타퍼’라고 명명한다.

메타 퍼의 mete는 초월 및 벗어남의 뜻이고, phor는 이동한다는 뜻이다.
이로써 보면 메타퍼는 어떤 사물관념, 의미나 감정이 다른 사물이나 의미로 옮겨진다.
전자의 것이 후자의 것으로 유사성이 없더라도 결합될 수 있는 폭력적 결합이 가능하게 되고, 폭력적 결합에 의해 창조적 관련을 창출하게 된다.
이를 보다 극명히 하기 위해 몇몇 은유에 대한 견해를 제시해 본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은유란 어떤 사물에 다른 사물의 이름을 부여하는 것으로 그 전이는 속(屬)에서 종(種)으로, 종에서 속으로 혹은 종으로 또는 유추를 토대로 하여 이루어진다고 그의「시학」에서 말하고 있다.

또 G. 휠라이트의 지론에 의하면 은유는 어떤 한 가지 세상과 심상 또는 상징이 이와 다른 심상, 상징 등을 함축 내포함으로써 그 의미를 명료화하는 복합 확장을 꾀하는 응축된 언어 관계로 제시하고 있다.
이때 원관념은 생략되고 보조관념만을 내세우게 되는데, 이 때문에 은유는 더러 상징과 같은 역할을 하게 된다.

우리나라의 최창호(崔昌鎬)는 메타 퍼와 직유의 차이를 비유의 효과적인 차이로 보면서 시밀 리가 축약된 것이 메타 퍼이고, 그와 반대로 메타 퍼가 부연된 것이 시밀리라고 말 할 수 있다고 전제한다.
시밀리가 두 사물을 직접 비교해서 설명하고 있는데 비해, 메타 퍼는 두 사물 중 하나를 다른 것과 순간적으로 동일시하거나 한 사물을 통해서 말하고자 하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결국 최창호의 지론은 은유가 원관념과 보조관념을 동일한 것으로 보는 비유의 형식임을 말해준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든다면 직유가 ‘놋날 같은 비’라고 했을 때, 은유는 ‘놋날의 비’로, 또 직유가 ‘파도 같은 군중’ 했을 때, 은유는 ‘군중의 파도’로 원관념과 보조 관념 사이에 끼워 넣었던 ‘같은’이란 조사를 생략한다. 
따라서 은유는 직유가 생략된 형태, 즉 원관념과 보조관념을 동일시하는 비유의 형식이다. 
이때 은유는 조사가 생략됨으로써 언어는 축약되고 의미는 강조되는 의미의 함축 및 확충이란 시적 효과를 배가 시킨다.

이상에서 볼 수 있듯이 메타퍼는 현시대를 대표하는 표현 양식이면서 동시에 일종의 광범위한 언어 현상으로서 원래는 구상적 사물을 가리키는 언어가 추상적∙사유적으로 사용 되었을 때 메타퍼가 되는데 이 때문에 전이적 언어는 모두 메타퍼라 할 수 있다. ㅡ계속

...
 

오늘 날 시를 흔히 메타언어라고 하는바, 이 때의 메타언어는 시적 은유를 의미하는 것으로써, 특히 기교를 사용한 메타퍼를 말한다.
이러한 견해는 뉴크리티시즘에서 시를 만드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은유를 보는 데서 비롯한 것이다.
그러나 메타퍼는 교묘하게 사용하면 묘사를 살리고 감명을 깊게 하지만 자칫 남용하게 되면 일종의 컨시트가 되어 거꾸로 묘사를 해칠 우려가 있다는 점에도 관심해야 한다.

메타퍼의 종류는 주로 리처즈가 주지와 매체로 보는 이분법을 적용하나 브룩스와 같은 신비평가들이 매체가 주지를 단순한 형식으로 나타내는 설명적 메타퍼는 가치가 없는 것으로, 양자의 유기적 결함에서 생기는 기능적 메타퍼를 가치 있는 것으로 규정한다.

어떻든 메타퍼를 현대시를 성립시키는 가장 생명력 있는 언어의 원리를 보는 것도 이 때문인데, 달리 말하면 시는 본질 적으로 은유적 속성을 지녔다는 뜻이 된다.
이를 시에 실제화 했을 때 메타퍼에 대한 이해는 보다 쉬워지리라 본다.

[실제]
- 배경설정

두 여인이 퇴근길의 공원에서 만나기로 했다고 치자. 
불행히도 남자 족에서 먼저와 기다려 주기를 기대 했으나, 몇 분 늦게 도착한 여성 쪽에서 약속한 30분이 지나도록 상대가 와 주지 않았다고 치자. 
몇 번이나 서성이며 시계를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 보다 그만 화가 나서 견딜 수 없다고 치자. ‘오기만 해 봐라. 용서하지 않을 테다.’하고 몇 번이나 다짐하면서 기다렸으나 1시간이 지나도록 나타나지 않는다. 내심 겁이 덜컥 날 것이다. 
‘행여 변심한 게 아닐까?’ ‘아냐, 교통사고라도 난 개 아닐까?’, ‘설마 회사에서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니겠지.’ 하며 여러 가지 생각을 하다 시계를 들여다보니 약속한 시간에서 1시간이 훨씬 넘어섰다. 
그만 포기 상태가 될 수밖에 없다. 눈물이 글썽한 눈에 나뭇가지 사이에 걸려 있는 초승달이 들어온다. 
부글부글 끓던 심시가 갑자기 외로움으로 뒤 바뀌면서 쓸쓸히 돌아설 수밖에 없다고 치자. 
차를 타고 갈 기분이 나지 않는다. 
톡톡 하이힐 소리를 내며 골목으로 접어드는데 뒤를 돌아보니 초승달이 따라오다 멈춰 선다.
이런 체험은 한 번쯤 해 봤던 것들로써 이런 배경을 일기로 쓰듯 시로 썼다고 치자. ㅡ계속

...
 

기다림은 
곱게 내려 간 上弦의 눈썹

기다리다 지친 분노는
치켜 뜬 下弦의 눈썹

사랑은 만월이었으나
은장도로 베어다 창에 건
초승달과 그믐 달.

이렇게 썼다고 치자. 이 시에서 1연의 기다림은 곱게 내려 깐 초승 달 같은 눈썹으로 전이되고, 2연에서는 기다리다 지친 분노로 감정이 전이 되면서 눈썹을 치켜 뜬 그믐달로 이동된다.
3연에서는 다시 그리움이 사랑으로 이동되면서 감정의 전이에 다라 만월이 되는데, 삭이지 못한 화가 그만 은장도를 꺼낸다. 
그리고 끝내는 은장도로 만월을 베어다 창에 건 초승달과 그믐달로 옮겨지는데 이는 사랑의 감정을 눈썹으로 전이시켜 비유를 성립시킨 것으로 보아진다. 즉 관념을 사 물로 대체시킨 병치 은유라 할 수 있다.

달리 말하면 원관념과 그리움과 사랑이 전이에 따라 곱게 내려 깐 다소곳한 표상의 눈썹으로, 분노의 감정으로 치켜 뜬 하현의 세운 눈썹으로 자리바꿈을 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순종과 분노의 대립 감정이라는 사랑의 속성을 초승달과 그믐달의 이미지로 전이시키고 있는 것이 그것이다.

결국 이 시는 잘 되고 못 된 것을 차지하고 사랑과 사랑에 따른 애증을 눈썹이란 별개의 사물로 이동시킴으로써 은유를 성립시켜 주고 있다는 데 습작의 의미가 있다.
이 시 보다 철저한 메타퍼로 재구성했을 때 실제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

길 들이다 
잘 못 세운 눈썹

짝 잃은 외로움으로 건 
귀걸이

돌아선 등 가려주는
목걸이

시린 칼 날로 가슴에 품은
은장도

졸시 「초승달」의 전문이다. 이 시는 사랑이나 그리움의 감정까지도 배제한 채 여성의 속성을 달에 비유, 철저히 객관적 상관물만을 동원하고 있다. 그 때문에 의미나 감정의 개입을 통제하고 다만 이미지로 대체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달에 눈썹. 귀걸이. 목걸이. 여성의 원형상징이고 보면, 이 시는 거꾸로 여성의 속성을 달에 비유, 메타화 했다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이상에서 볼 수 있듯이 메타퍼는 랭거의 지적처럼 시의 원리이자 가장 생명력 있는 언어의 원리가 된다는 점에 동의 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현대시의 드러냄을 대표하는 양식으로 비유를 꼽고 있는데, 비유 중에서도 은유는 시를 광채 있게 하는 표현 양식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ㅡ계속

...
 

4. 치환 은유와 병치 은유

은유의 현대적 구조는 치환 은유(置換隱喩)와 병치 은유(竝置隱喩)로 대표되고 있다. 치환의 뜻은 바꾸어 자리바꿈을 의미하고 병치는 나란히 놓는다는 병렬적 진열을 의미한다.

이를 구체적으로 해석하면 치환은 원래의 의미를 다른 사물의 의미로 바꾸는 일종의 자리바꿈의 은유라 할 수 있다.
이에 비해 병치은유는 사물이나 의미네 관련 없이 서로 별개의 독립성을 지닌 사물이나 존재를 동원, 대립과 갈등으로 팽팽한 김장을 유지하면서 나란히 자리하게 한 비유의 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때문에 치환 은유가 의미의 이동을 성립 조건으로 한다면 병치은유는 관련이나 연관을 배제한 대립 갈등의 이질적인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사물이나 존재의 진열 형식을 취한다고 할 수 있다.

일종의 충격적이고도 폭력적 결합에 의해 성립된 비유의 형식인데 비유를 형성하는 두 관념은 그 뜻이 이질적이면서 팽팽한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치환 은유는 이런 원리를 성립의 원리로 동원하고 있고, 병치은유는 서로 상관성이 배제된 비동일성의 사물이나 존재로 병치시킴으로써 상호 거부, 대립, 갈등을 유발, 폭력적 결합이 아니고는 비유를 성립시킬 수 없게 된다.

예를 들어 두 사랑하는 남녀가 한 번 만나서 사랑에 골인했다면 이 때의 사랑은 싱겁기 그지없다. 그러나 한쪽이 끌면 한쪽이 달아나거나 반대로 한쪽이 달아나면 한쪽이 끌어당기는, 끌고 당기는 팽팽한 긴장이 유지될 때의 사랑은 사랑의 감정을 고조시키고 성취욕 또한 강하게 작용한다.
그래서 한 번에 골인한 사랑은 쉬이 권태나 대립. 갈등을 초래할 위험이 있으나 후자의 경우는 일단 골인하게 되면 견고한 고리가 걸어져 풀어지지 않는다.

이 비유를 다시 시에 대입하면 전자 적 의미는 직유에 가깝고 후자적 경우는 은유의 양식에 가깝게 된다.
맥스 블랙머가 비유를 상호 작용으로 풀이했던 것도 따지고 보면 이런 김장과 대립의 병치성과 원래의 의미를 다른 사물의 의미로 이동. 전이시키는 치환 은유의 특성을 지적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를 정리 했을 때 치환은유와 병치은유의 본태는 드러날 것으로 본다.
치환 은유는 원관념과 보조관념 상호간에 어떤 유사성을 토대로 하여 그 의미를 전환시키는 것으로써 일종의 잘 알려진 것과 덜 알려진 것의 종합을 통한 의미의 이동이라고 할 수 있다.

이때 외형상의 것만이 아니라 내적이고도 전신적이며 정서적 전이를 통한 동일성을 결합의 원리로 한다는 점을 추가해야 한다. ㅡ계속

...
 

병치 은유는 치환은유가 한 사물이 다른 사물로 이동하는 자리바꿈이 아니라 두 사물을 그냥 대조적으로 진열. 배치해 놓는 형식이다.

유사성이나 동일성이 아닌 비유사적이고 비동일성인 각기 다른 독자적 존재나 사물의 폭력적 배열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일종의 이질적인 것의 폭력적 결합이라고 할 수 있다.

이상에서 볼 수 있듯이 치환 은유와 병치 은유는 다른 사물과 사물간의 동질성을 획득하려는 측면과 오히려 상호 이질성의 충돌을 폭력적으로 결구시키는 충격적 결합을 시의 미학으로 수용하려는 상반된 방식을 원리로 하고 있다.

이쯤에서 시를 제시했을 때 치환 은유와 병치 은유에 대한 보다 극명한 이해에 접근할 것으로 본다.

[실제]

▶ 치환 은유

은행나무는
지가 무슨 은행이라고 
황금 주머닐 
주렁주렁 매달고 있다가

거지같은 바람이 
손만 내 밀어도
황금 지폐를 
한 묶음씩 쥐어준다.

졸시「은행잎∙1」의 전문이다. 은행(銀杏)과 은행(銀行)은 동음의 이다. 그래서 편에 해당된다.
그러나 은행잎이 황금 빛깔을 하고 있다고 하는 점에서 보면 황금의 본적지인 뱅크로서의 은행과는 산호 맥락 적 관계를 갖게 된다.
낙엽을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로 보는 것이나, 낙엽을 ‘액면 없는 수표’로 보는 것은 다 그런 맥락에서 발상한 것이다.
또 낙엽의 황금 빛깔을 빌어 빛깔의 동질성인 황금으로 보면서‘ 중량 없는 황금’으로 해석하는 것도 같은 맥락의 것이다.

이런 맥락성에서 보면 황금 이파리를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은행잎은 마치 황금 주머니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 황금 주머니는 바람에 나부껴 떨어지기 마련인데 이를 ‘거지같은 바람이/ 손만 내밀어도/ 황금 지폐를/ 한 묶음씩 지어준다.’ 고 상상력을 개입시킨 것이다.
그 때문에 본의는 은행잎을 그리려 한 것인데 그 결과는 엉뚱하게도 은행으로 둔갑하고 또 은행잎이 황금주머니로 둔갑하는 의미의 이동을 감행했던 것이다. 곧 치환 은유에 대한 원관념이 전혀 새로운 관념으로 이동되는 비유의 형식을 취하게 된다. ㅡ 계속

...

 

▶병치 은유

사랑하는 나의 하나님 당신은 
늙은 비애다.
푸줏간에 걸린 커다란 살점이다.
시인 릴케가 만난
슬라브 여자의 마음에 갈앉은
놋쇠항아리다.

이 시는 김춘수(金春洙)님의 시「나의 하나님」의 일부다.
이 시에서는 원관념인 비애가 ‘커다란 살점’과 ‘놋쇠 항아리’로 제시되고 있다.
관념으로도 사물로도 또는 존재로도 동일성에 잇댈 근거를 제공 해 주지 않고 있다. 도대체가 하나님의 비애와 살점, 놋쇠 항아리는 철저한 비 동일성의 것으로서 유사성이나 연관성을 찾아볼 수 가 없기 때문이다,

독자들은 여기서 매우 충격적인 당혹감을 느길 것이고, 이 당돌한 병치에 대한 심한 의문을 제기할 것이다.
도대체가 “무슨 놈의 소린지 일 수 없다”며 불평이나 푸념을 하게 마련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병치형식의 폭력적 결합 뒤에는 우리를 놀라게 할 만한 결합의 원리가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을 때 비로소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이다.

굳이 풀어본다면 ‘하나님의 늙은 비애’란 것은 슬픔의 극대화를 위한 묘한 착상이다.
달리 말하면 슬픔을 극대화 해 놓고 그 슬픔의 원인이 무엇인가를 제공했을 때 확산 될 효과를 미리 계산 했다는 뜻이다.
어떻든 비애가 늙어 쪼그라들 만큼의 슬픔이었다면 그 원인을 해명해야 이 시는 해석될 수 있다.
그런데 살점이나 놋쇠 항아리는 이를 풀어 주는 데 도운이 되는 사물들이 아니다. 되레 엉뚱하기 그지없다.

그렇다면 이렇게 풀어보자.
하나님의 슬픔이 살점 때문이라는데, 어째서 살점이 비애의 원인인가? 현대를 물신 시대라고 한다. 달리 말하면 모든 가치 척도가 물질로 척도 된다는 뜻이다.
이 말은 물질이 정신에 대응된다는 점에서 정신적 가치 기준이 상실되고, 그와 대응되는 육체 중심의 관능주위가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는 비유적 진술이 된다.
육체는 힘을 비유하고 관능은 쾌락을 비유한다.
이렇게 보면 현대는 힘에 의한 폭력, 쾌락에 의한 관능주의가 세상을 지배한다는 이치가 성립된다. 또 육체는 기실 정신에 대응시키면 살덩어리나 비곗덩어리에 불과하다.
이로 인한 육체 ∙관능주의는 슬픔이 아닐 수 없게 된다. 일종의 정신이 소멸된 데 따른 슬픔이다.
이 육욕주의를 푸줏간에 걸린 살점으로 메타화, 비애와 병치시켰던 것으로 해석하면 하나님의 비애의 1차적 원인은 규명된다. ㅡ계속


...
 

두 번째 비애는 ‘놋쇠항아리’ 때문인데 어째서 놋쇠항아리가 비애의 원인이 될 수 있는가?
놋쇠는 청동으로 금(金)의 원형이다.
금 이전에는 청동이 최고의 값어치를 지녔던 귀금속이었던 것이었다는 뜻이다.
이 점에서 청동, 즉 놋쇠항아리는 금에 대유된 비유의 사물이다. 현대를 물신 시대라 하는 것은 그 가치 척도가 금으로 측정된다는 것을 말해준다. 
금, 곧 황금이 모든 물질의 가치 척도가 된다는 뜻이다.

이는 놋쇠와 황금이 본질적으로는 다르나 원형인 놋쇠가 청동기 시대의 최고치라는 점에서 또 황금이 현대의 최고치라는 점에서 등가물이 된다.
이러한 이치는 배금주의∙황금만능주의가 세상을 지배하고 있어 정신적 진단으로는 분명 비극이 아닐 수 없고, 이 비극은 곧 비애의 원인 제공이 되거나 간접적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게 된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할 때는 물욕이나 육욕보다는 정신 지상주의를 계산했던 게 분명한데 세상 돌아가는 꼴은 이와 반대로 정신을 버리고 물욕∙육욕이 난무하니 이것이 비애가 아니겠는가.

이러한 과학적 진술을 김춘수는 하나님과 살점, 놋쇠항아리를 병치시킴으로써 철저히 은폐했던 것이다.
앞서 비유를 은폐적 형식이라고 말했던 점에 동감할 것으로 본다.
이쯤에서 치환 은유와 병치 은유에 대한 이해에 접근했을 것으로 본다.

다음은 비유의 또 다른 형식인 의인법을 제시해 보자. ㅡ 계속


5. 의인법

의인법은 직유∙∙은유와 더불어 가장 오래된 비유법의 하나로서 활유(活喩)라고도 한다.
일반적으로 인간 이외의 사물이나 추상 개념에 인격적 요소를 부여해서 표현하는 수사법으로써 은유의 특별한 형식이라 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조명해 보면 먼저 인간 이상인 신 또는 영적(靈的) 존재를 인격화 하는 것에서 발생, 그 다음으로는 비인간적인 존재, 무생물∙추상 개념을 인격화 하는 것으로 발달 해 왔다.
전자는 의인관(擬人觀)에 해당하며 종교적 의식의 소산이고, 후자는 비의식의 소산이다.

분류별로는 첫째, 불완전 의인법
둘째, 완전 의인법 
셋째, 추상개념의 의인화 등으로 구별할 수 있다.

첫 번째의 불완전 의인법은 의인화 방법이 철저하지 못한 것으로 그 인격성은 단지 연상에 의해 시사된 정도이며, 인격적 이미지가 전체로써 투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둘째, 완전 의인법은 대상의 인격이 전체적으로 선명하게 나타나 있으며 특히 신화적 배경을 갖고 표현된 해∙달∙별∙바람 등의 의인화가 그것이다.
‘산이 병풍을 치고 날 가두 네’ 라든지, ‘아침 태양이 강물에 얼굴을 씻고 있다’ 등은 그 예로써 완전 의인법이다.

셋째, 추상개념의 의인법은 진리∙사랑∙희망∙이상 등이 의인화된 것으로써 ‘희망의 손짓’, ‘역사의 눈’ 등이 그 예인데 특수한 은유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러한 분류는 웰렉과 워렌에 의하면 이분법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의인법은 대체로 신비적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의 상상력을 요구하는데, 이 태도는 외계의 생명 없는 인간의 감정을 투영하기도 하고, 자연을 정령화(精靈化)하거나 자연에 인간과 같은 생명을 부여하기도 한다.
이와는 반대로 생명이 있는 것을 비정령화 (非精靈化)하고 혹은 비인간화하기도 한다. 
이와 같이 모든 비유적 표현은 주관적 극치와 객관적 극치라는 두 극단 사이에 모두 망라되는 것으로 보인다고 피력한 것이 된다.

또 의인법을 감정적 오류(感情的 誤謬)라고도 하고 감정이입(感情移入)이라고 일컫기도 하는데, 감정적 오류는 감정이 없는 무생물을 마치 감정이 있는 것처럼 인식하는데서 오는 오류라고 보아 그렇게 말하고 감정이입은 한 예술작품을 대할 때 그것과 우리 자신을 동일시하는 것을 뜻한다.
즉 감정 없는 예술 작품이나 자연의 대상 때문에 결과적으로 의인화의 경향을 띨 수밖에 없게 된다. ㅡ 계속


...
 

이와 같이 의인법은 여러 유형으로 분류할 수도 있는데, 어쨌건 사물이나 사람이 아닌 생물에 사람과 같은 성질을 부여해서 표현하는 일종의 은유로 본다면 틀림없을 것이다.
그래서 인간 이상인 존재, 즉 신이나 절대 존재에 적용했을 때는 종교적 의미를 갖게 되고, 인간이하의 대상 사물에 적용 했을 때는 예술적 표현이 된다.
이러한 의인법은 오늘날의 현대시에서도 예외 없이 즐겨 사용하고 있는 표현기교라 할 수 있는데, 이를 시로 실제화해 보자.

[실제]

▶배경 설정

여름이 지날 무렵, 가을 산을 올랐다가 잠시 산허리에 앉아 시는데 마침 멀리 호반의 정경이 눈에 들어왔다고 치자.
들락거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고 하자.
그런가 하면 산자락은 마치 호반에 허리가 잠긴 것처럼 보이고 또 호면에 얼비쳐 얼굴을 드리운 것처럼 보였다고 하면 이미 의인화가 성립되는 것이다. 
여기에 상상력이 동원 되면서 마치 남녀의 교접 성으로 보였다고 치자.
이때 시상이 떠올랐고 다음과 같이 생각하고 썼다고 치자.

산은 두 가랑이를 벌리고 
거인처럼 누워있다.

허연 허벅지를 드러낸 호반이
두 팔로 허리를 휘감고 있었다.

한 때의 교접으로 드러낸 등을
숲은 가려주지 못했다.

체위가 바뀐 채 하체를 드러낸
산의 발기를
얼굴을 비춰보던 하늘이
난처해하며 외면하고 있었다. 
발상의 배경을 정리해 이런 시를 썼다고 치자.
산과 호수가 남녀로 비교적 분명하게 의인화되어 있다. 일종의 완전 의인법을 동원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ㅡ계속

...
 

1연에서 산은 두 가랑이를 버린 거인으로, 
2연에서 호반은 허벅지를 드러낸 여인으로 의인화되어 있고, 
3연에서는 남녀의 교접으로 구체화 되고 있다.
그리고 종연에서는 이를 지켜보던 하늘까지 의인화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비교적 대상의 인격이 전체적으로 선명히 드러나고 있는데 적절히 의인법을 구사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여기서 유사한 배경, 유사한 발상으로 의인법에 의탁한 다른 한 편의 시를 대조해 보자.

산은 몇 조각
구름을 베고 누워
두 가랑이를 벌리고 있었다.

물 묻은 치맛자락을 끌며
무시로 호반이 들락거리고 있었다.

운우의 장대비가 그친 뒤
허옇게 드러낸 등을 숲은 가려주지 못했다.

그 밑에
허리 째 잠긴 하체가
체위가 바뀐 채 깔려 있었다.

젖혀진 치마폭 사이로
잉태한 하늘이 언뜻언뜻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이 시는 「호반」의 전문이다. 앞의 시와 별로 차이가 없으나 다소의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 그것은 앞의 시가 그냥 거인으로 의인화된 것에 비해 뒤의 시는 구름을 베고 누운 것으로 구체화되었다. 
앞의 2연이 허연 허벅지를 드러낸 여인으로 의인화 되었다면, 뒤의 시는 치맛자락을 끈 여인으로 여인의 이미지를 더 구체화하고 있다.
또 앞의 시가 7연에서 남녀의 교접으로 산과 호반을 의인화한 것에 비해 뒤의 시는 운우로 교접을 간접화하고 있고, 종연에서는 앞의 시가 교접의 현장을 하늘에 들키는 의인화로 현장성을 강조한 것에 비해 뒤의 시는 운우를 교접으로 얼비친 하늘을 잉태의 형식으로 의인화하고 있다.

어떻든 두 시가 다 같이 의인법을 즐겨 차용하고 있는 점에서 같은 맥락을 갖고 있으나 다만 표현의 차이를 드러내고 있을 뿐이다. ㅡ계속

...

 

이상에서 볼 수 있듯이 생명이 없는 사물을 사람이 아닌 생물에 사람과 같은 성질을 부여함으로써 성립되는 의인화는 달리 생명을 생명이 없는 사물로 만들어 표현하는 은유가 있는데, 그 때문에 의인법과는 반대의 성격을 갖는다.
이를 결정법(結晶法)이라고도 하는데 시를 통해 이해에 접근 해 보자.

무슨 말을 하여
피를 돌게 하랴
돌의 생애를 살아 있게 하랴
말만이 아니라
혼까지 들어가
돌 속의 침묵
금이 되리라.

이렇게 썼다고 치자. 이때의 은유는 외계의 생명 없는 사물에 인간의 감정을 투영하기도 하고, 자연을 정령화 하거나 자연에 생면을 부여하는 것과는 달리 생명이 있는 것을 비 정령화 및 비인간화하는 경우에 해당된다.
달리 말하면 사물 자체로 환원되는 존재의 즉자화(卽自火)라고 할 수 있다.
실존을 초월, 사물 자체의 존재로 환원되는 비인간화, 비 생명화가 그것이다.

이상으로 현대시와 비유에 대하여 대략 설명이 됐을 것으로 본다.

 

현대시와 상징

1. 상징이란 무엇인가?

비유가 현대시를 성립시키는 구성의 원리라면 상징은 비유로써 표현할 수 없는 것을 표현하는 현대시의 대표적 표현 기교라 할 수 있다.
사전적 해석을 빌면 어떤 감각적 대상이 다른 대상을 표시하거나 본래의 고유한 의미 외에 비 본래의 의미를 표현하는 수사법으로 정의하고 있다.
이를 줄여 말하면 ‘다른 의미로 표현하는 그 무엇’이 되겠는데, 구체화하면 본래 표현하고자 한 본의를 다른 무엇을 빌어다 표현하고자 한 유의다. 이때 유의는 일종의 사인, 즉 표적이나 징표가 된다. ㅡ 계속


...
 

1. 상징이란 무엇인가?

브룩스와 워렌은 공저 「시의 이해」에서 상징을 표적으로 재기하고 있는데, 그 지론에 의하면 상징은 원관념이 생략된 은유다.
‘소녀들의 장미 동산에 있는 여왕 장미’하면 은유지만, 시인이 단순히 그가 취급하는 사랑의 성질을 암시하기 위해 장미를 기리 킬 뿐 비유적인 틀을 지시하지 않는다면, 그는 장미를 상징으로 바꾼 것이다.

우리는 비유적인 전화(轉化)를 강조할 때 은유라는 말을 쓴다. 예컨대 ‘소는 장미다’라고 하면 장미의 특질은 소녀에게 전환된다.
그러나 다른 어떤 것을 대신하는 것으로서의 대상이나 행동을 생각할 때 우리는 상징이란 말을 쓰는 것이다. 그러므로 상징은 의미를 지적하는 사인인 것이라고 진술하고 있다.

상징을 사인으로 본 것은 언어적 해석에서도 가능하다.
상징은 그리스어인 ‘심발레인(symballein)'에서 온 것인데 동사는 ;함께 던지다. 비교하다’라는 뜻이고, 명사는 ‘표시’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여기에서 표시는 표적, 즉 사인의 다른 표현이 된다.
좀 더 알기 쉽게 이야기 식으로 풀면 이러하다.

중국 육조 때 진후주는 정사를 외면하고 방탕한 생활을 일삼았기 때문에 백성은 도탄에 빠지고 국운은 날로 기울어 갔다.
반면에 수나라 양견을 세력을 확장, 중국 전역을 통일 하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이런 처지를 잘 알고 있던 진후주의 딸 낙창공주의 남편 서덕언은 국운이 얼마 남아 있지 않았음을 알고 대책을 세우고자 아내에게 “만약 서로 헤어지게 되면 ‘서로 정표를 지니고 있다가 정월 보름날에 시장에 나가 팔도록 합시다.’ 그러면 그것을 사 가는 편에 소식을 전할 수 있지 않겠소.” 하며 거울을 반으로 쪼개 그 반쪽을 아내 낙창공주에게 건넸다.

이 이야기는 거울로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는 사인이 되는데, 이 때 거울은 반쪽으로서는 의미가 없고 반드시 두 쪽이 결합됨으로써 약속은 이행되고 성취된다. 
이와같은 상징이란 어떤 진술이나 이미지가 한쪽으로는 의미가 없고 다른 한쪽, 즉 보조관념으로 대체해 버린 나타나지 않는 원관념과의 결합에 의해 성립됨을 고사를 통해 알 수 있게 한다.
이 이야기는 상징을 성립시키는 조건으로 본의와 유의가 있어야 함을 말해 주는데, 은유와 다른 점은 비유를 구성하는 네 가지 요소, 즉 본의 ∙유의 ∙유사성∙이질성 중 오직 유의만이 밖으로 드러나고 다른 세 요소는 모두 안으로 숨어버리는데 있다.
여기에서 상징과 상징되어지는 것과의 관계는 어떠한 것이냐는 의문이 제기되는데, 이때 언어의 상징적 속성이 제시된다. ㅡ 계속


...
 

리처즈는 언어를 무엇인가의 다른 것으로 대신하여 자기 이외의 사물을 가리키는 기호로서 의도적이며 체계적인 상징으로 보고 있다.
그런가하면 심리학자인 에리히 프롬은 언어 자체를 관례적 상징이라고 말하고, 웰렉과 워렌도 은유가 여러 차례 되풀이되어 관례화하면 원관념이 쓰여 지지 않고 상징이 된다는 요지를 피력하고 있다.

여기에서 언어 자체를 상징으로 보는 것은 언어가 자신 아닌 다른 어떤 관념을 암시하는 경우를 일컫는 것이다.
그 때문에 단지 유사성이나 이질성 속의 동질성을 드러내는 은유적 한계를 벗어나 신비∙초월∙추상성을 띠게 된다.
이 신비∙초월∙추상은 다 같이 형이상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데, 상징(象徵)에서의 상자는 지상적이고도 가시적인 표상이 아니라 재천성상(在天成象), 즉 하늘에서 이루어진 상으로 초월적 세계 표상이란 의미로 「주역」에서는 해석한다.
이는 곧 지상적인 것이 아닌 천상적인 것으로서 초월적 표상으로 해석된다.
이 때문에 상징은 가시적인 것이라기보다는 내면적인 것. 물리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정신적인 것으로 드러내는 표상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 점에서 보면 상징은 단순한 물체를 다른 물체의 대용으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추상적인 사상과 가정을 표현하기 위하여 구체적인 영상(영상)을 사용하는 것이 된다.
일찍이 말라르메가 상징주의를 정의 하면서 하나의 사물로 하여금 점차적으로 어떤 기분을 드러내도록 하는 예술 이와는 반대로 어떤 사물을 선정해서 그것으로부터 ‘영혼의 상태’를 끌어내는 예술로 규정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왜냐하면 앞의 추상적 사상이나 감정이나 영혼의 상태는 다름 아닌 초월적∙비가시적 세계로 본의에 해당되고 이를 표현하기 위해 구체적 영상을 사용한다는 영상은 유의에 해당된다.
상징주의를 초월적 상징주의로 명명하는 것은 바로 이 초월적 상징주의를 두고 하는 말이다.
물론 초월적 상징주의는 불완전한 현실세계에 대응되는 이상향에의 심벌로 사용된 것이지만 이상 세계가 초월의 세계이고 보면 역시 상징에 해당됨도 사실이다. ㅡ계속

...
 

시인들을 흔히 예언자∙선견자∙계시자 등으로 부르는 것도 따지고 보면 현실계의 물체∙들의 배우나 그것들 너머에 존대하는 이상계에 숨겨져 있는 중요한 것들을 볼 수 있는 능력을 부여받고 있다는 뜻에서 명명된 것들이다.
W.M 울반에 의하면 상징을 성립시키는 네 원칙을 제시하고 있는데 이를 중심으로 상징은 해석될 수 있다.

첫째. 모든 상징은 무엇인가를 지시한다.
둘째. 모든 상징은 2중의 지시를 갖는다.
셋째. 모든 상징은 진실과 허구를 포함한다.
넷째. 모든 상징은 2중의 적절성이 있어야 한다.

여기에서 
첫째는 상징이 비록 본의를 감추고 있으나 무엇인가를 드러내 보인다는 것으로서 일종의 암시성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고,

둘째는 이 암시적 드러냄이 하나는 감춘 지체로서의 본의에 의해, 다른 하나는 감춤을 드러내기 위해 동원한 유의에 의해 드러내냄으로써 2중의 지시가 될 수 있다.

셋째, 진실과 허구는 짐짓 드러내고자 하는 것은 본의로서 이는 진실이 허구가 되는 셈이다. 고로 상징은 이 둘을 다 포함하는 것이 된다. 끝으로

넷째, 2중의 적절성은 본의와 유의가 비록 진실과 허구로 제시되기는 하나 상징이 이를 둘 다 포함한다는 점에서 보면 안과 밖, 즉 본의와 유의가 꼭 맞아 떨어져야 한다는 조건으로서 추상 사상이나 감정의 영상화가 조화롭게 결구되어야 한다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는 것이 된다.

조금만 사려 깊게 읽어 본 독자라면 이쯤에서 상징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개념을 파악했을 것으로 본다.
그러나 이러한 개념 설정은 상징주의에 대한 조명에서 보면 극히 측면적이고도 원칙적인 것의 일부에 불과하게 된다.

우선 기초적 이해를 돕기 위해 은유와 상징을 시의 실제를 통해 비교해 보기로 하자.
ㅡ 계속

...

 

2. 상징과 비유의 차이

은유의 속성과 상징은 분명히 그 본질을 달리하면서도 또 동질적 속성을 많이 지니고 있는 점에서 본다면 유사관계를 설정하고 있다. 
그래서 독자들은 가끔 이 둘을 구별하기 힘들다고 실토하기도 한다.
또 앞서 은유에서 지적한 바 있듯이 어떤 한 가지 사상∙심상 또는 상징이 이와 다른 심상∙상징 등을 함축 내포함으로써 그 의미의 명료, 복합 확장을 꾀하는 응축된 언어로 은유를 해석한 것에서 메타퍼는 마치 상징과 같다는 뜻을 지니게 된다.

또 메타퍼나 심벌이 다 같이 본의나 유의를 성립의 기본조건으로 하고 있고, 여기서 유사성, 비유사성을 동원하여 기본요소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보면 은유와 상징을 역시 그 한계나 개념 설정을 모호하게 한다. 
그러나 시를 제시, 실제를 빌어 조명했을 때 훨씬 쉽게 이해 될 것으로 본다.

그의 머리는 최상의 순금이며
그의 머리는 텁수룩하고 까마귀처럼 검구나.

이 시는 밀턴의 「실락원」에서 노래된 구약 중 「아가(雅歌)」로서 비유와 상징을 비교하기 위해 즐겨 동원되는 시다.
이 시에서 ‘머리는 순금’이라 했을 때는 은유를 성립시키고 있고, 그런가 하면 다음 행인 ‘머리는 까마귀처럼’에서는 직유를 사용하고 있다.
1행은 왕관을 쓴 머리이고, 2행은 왕관을 쓰지 않은 더부룩한 머리의 형상 그대로를 진술하고 있다,
2행은 비유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으나 1행은 머리를 순금으로 표현하여 왕관을 쓴 왕의 머리를 암시하고 있다.

이 점에서 상징적 요소가 깔려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상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독자는 당황하게 된다. 자세히 보면 왕관은 순금으로 되어있고, 또 이를 머리에 쓰고 있기 때문에 왕의 머리를 유사 사물인 순금으로 비유한 그 이상의 뜻은 없게 된다.
적어도 상징이 성립 되려면 순금이 왕관 이상의 그 무엇을 내포하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 시에서 순금은 이런 징표가 되어주지 못하고 있는데, 그것은 순금의 머리가 다만, 왕관을 진술하기 위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왕관과 본질적으로 관련이 있는 유사 사물인 순금은 본의와 유의를 결합 시키고 있는 것 외엔 다른 뜻이 있지 않기 때문에 상징이 성립되지 않는다.
이 점에서 이 시는 은유와 직유를 동원한 비유가 된다. 그러나 다음 시에 오면 상황은 달라진다. ㅡ계속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1570
번호 제목 날자 추천 조회
1570 사투리는 향토인의 살과 피이자 호흡이다... 2022-06-08 0 1462
1569 나는 어떻게 조선족이 되었나 / 남영전 2021-12-20 0 1088
1568 [문단소식]- 훈춘 김동진시인 "풍경소리" 울리다... 2021-09-07 0 1055
1567 [시공부사전] - 담시(譚詩)? 2021-05-29 0 1377
1566 하이퍼시 명언 21 / 최흔 2021-05-25 0 1371
1565 하이퍼시 명언 20 / 최흔 2021-05-25 0 1333
1564 하이퍼시 명언 19 / 최흔 2021-05-25 0 1345
1563 하이퍼시 명언 18 / 최흔 2021-05-25 0 1348
1562 하이퍼시 명언 17 / 최흔 2021-05-25 0 1256
1561 하이퍼시 명언 16 / 최흔 2021-05-25 0 1235
1560 하이퍼시 명언 15 / 최흔 2021-05-25 0 1302
1559 하이퍼시 명언 14 / 최흔 2021-05-25 0 1202
1558 하이퍼시 명언 13 / 최흔 2021-05-25 0 1286
1557 하이퍼시 명언 12 / 최흔 2021-05-25 0 1378
1556 하이퍼시 명언 11 / 최흔 2021-05-25 0 1269
1555 하이퍼시 명언 10 / 최흔 2021-05-25 0 1333
1554 하이퍼시 명언 9 / 최흔 2021-05-25 0 1417
1553 하이퍼시 명언 8 / 최흔 2021-05-25 0 1298
1552 하이퍼시 명언 7 / 최흔 2021-05-25 0 1192
1551 하이퍼시 명언 6 / 최흔 2021-05-25 0 1289
1550 하이퍼시 명언 5 / 최흔 2021-05-25 0 1319
1549 하이퍼시 명언 4 / 최흔 2021-05-25 0 1277
1548 하이퍼시 명언 3 / 최흔 2021-05-25 0 1356
1547 하이퍼시 명언 2 / 최흔 2021-05-25 0 1419
1546 하이퍼시 명언 1 / 최흔 2021-05-25 0 1388
1545 토템시에 대한 탐구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 김룡운 2021-05-24 0 1219
1544 토템과 민족문화 / 현춘산 2021-05-24 0 1209
1543 남영전 토템시의 상징이미지/ 현춘산 2021-05-24 0 1502
1542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시인평화", 남의 일이 아니다. 2021-05-10 0 1484
1541 시인 최기자/ 소설가 허련순 2021-05-03 0 1384
1540 조선족 시단과 시인들...6 2021-03-02 0 1379
1539 조선족 시단과 시인들...5 2021-03-02 0 1505
1538 조선족 시단과 시인들...4 2021-03-02 0 1330
1537 조선족 시단과 시인들...3 2021-03-02 0 1560
1536 조선족 시단과 시인들...2 2021-03-02 0 1650
1535 조선족 시단과 시인들...1 2021-02-19 0 1626
1534 [시공부] - 투르게네프 산문시 2021-01-18 0 1792
1533 [시공부] - 김기림 시인 2021-01-18 0 2044
1532 [타산지석] - 늘 "이기리"... 꼭 "이기리"... 2020-12-28 0 2067
1531 토템시/ 범= 남영전, 해설= 현춘산(8) 2020-10-10 0 1961
‹처음  이전 1 2 3 4 5 6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