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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알고싶다] - 태권도를 알아보다...
2017년 12월 20일 00시 44분  조회:3487  추천:0  작성자: 죽림
 
 
태권도 서적,
그 속엔 무엇이 있을까?
 
 
1950-70년대 태권도 서적 흐름과 특징 탐구
 
 
 
 
 
 
 
 
1945년 해방 이후 무술과 관련된 최초의 문헌은 무엇일까또 최초의 태권도 교본은 누가 언제 저술했을까태권도 학자 김영선은 태권도 관련 서적과 교본은 해방 후 발흥한 현대 맨손 타격무예의 토양과 흐름 속에서 산출된 문화적 소산이기 때문에 초창기 출간된 무예 서적들을 통해 추후 태권도로 편입된 갖가지 맨손무예의 명칭을 알 수 있다1)고 주장한다.
 
 
이런 측면에서 봤을 때 무술 관련 최초의 교본은 무덕관 창설자 황기가 1950년 펴낸 花手道敎本(화수도교본(조선문화교육출판사, 1950)이다. ‘화수도(花手道)’는 당수도와 더불어 태권도라는 명칭을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전인 1950년대 통용되던 명칭이다이 책은 초보자용으로 보급하기 위해 초판 3천부를 인쇄했는데한국전쟁(6.25)이 터져 발간한 지 한 달 만에 공급이 끊겼다이 책은 1958년 唐手道敎本(당수도교본)(계량문화사)으로 수정 증보되었다황기는 왜 화수도라는 명칭을 썼다가 당수도로 바꿨을까황기의 해명을 보자.
 
()’자는 과거의 화랑도의 두자(頭字)를 채택한 것이니 이는 우리나라의 역사적 전통으로 비추어 보드라도 의미심장한 바가 있음은 재언은 불요하니 () ‘()’자는 당수도의 수자를 인용함도 되지마는 수라함은 손을 의미함이요 또 사람을 표현함이요 나가서는 자격 실력이나 물리학적 표현도 되어 어원어감도 대단히 부드러워 넉넉이 사도(斯道)의 대표어로서 채택되어 부끄럼이 없다고 생각된다 () ‘()’자인데 이 자는 고래로부터 전하야 내려온 말이며 이에 대하여는 현명한 세인이 다 주지하는 사실임으로 다언을 피하는 바이다그리하여 삼문자로 합하여 화수도(花手道)’라 칭하게 된 것이다."2)
 
황기는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 당수도(唐手道)’를 단념하지 않았다이러한 마음은 1960년 출간한 당수도교본을 보면 엿볼 수 있다.
 
일반 대중은 당수도라고 하여야 잘 알아듣는 것만은 사실이다그리하여 창설 초기인지라 일반적으로 온당한 인식과 보급을 조속하게 하려면 일반이 잘 알고 있는 명칭을 사용하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기 때문에 (생략우리나라에 적합하고 이상적인 명칭을 마련하여 나아갈 방침인 만큼 당수도라는 이름은 어디까지나 임시적인 명칭에 지나지 않은 것이다.3)
 
이러한 황기의 주장에 대해 노병직은 평가 절하했다황기가 남만주에서 무술을 배웠다고 하지만 실제로 일본 공수도를 답습했다는 것이다.
 
황기가 1950년 발행한 화수도교본과 1958년 발행한 당수도교본그리고 1970년 발행한 수박도대감 등의 책은 후나코시 선생이 저술발행한 책들을 번역표절 개조한 책이다황기는 자칭 남만주에서 십팔기(十八技)를 배웠다고 말하고 있으나 그의 출신 도장과 그에게 십팔기를 가르쳐준 사람은 밝혀지지 않고 있으며그의 지도방법은 중국 십팔기가 아니라 일본 공수도 송도관 류()를 그대로 행해 왔다.4)
 
노병직의 이 같은 지적에 최홍희도 태극평안발색철기 등 일본 가라테 형을 자기의 작품인 양 황기가 속여 왔다5)고 비판한다황기는 1950년대 중반에 이르러 수박도(手搏道)’에 빠졌다. 1956년 무예도보통지를 접하게 되면서 수박도라는 명칭으로 정착하게 된다복사기가 없던 시절 2년에 걸쳐 필사하고 이를 바탕으로 수박도라는 명칭을 제정하게 된 것이다.6)
 
1950년대 중반에는 최석남의 拳法敎本(권법교본)(동서문화사, 1955)과 박철희의 破邪拳法(파사권법)(일문사, 1958) 등 권법(拳法)’7)을 붙인 서적이 출간됐다拳法敎本(권법교본)은 해방 이후 두 번째로 출간된 태권도 관련 서적이다.
 
최석남은 우리 권법이 처음으로 일본으로 수입된 것은 제1차 세계대전 직후 충승인(沖繩人후나고시기친(富名腰·18681957)이라는 자가 왜도(倭都동경에 도항(渡航)하여 처음으로 권법을 주로 동경대학경응대학 학생층에게 보급시킨 것이 그 효시이며 연대로 따지면 불과 30여 년밖에 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또 권법과 공수도를 혼재해 사용하며 화랑도와 권법불교와 권법고려무사와 권법 등 자료를 인용하며 권법의 역사성을 강조했다.
 
이에 대해 태권도 역사가 이경명은 우리는 지은이가 한 권의 권법교본을 내기까지 많은 연구를 하였다는 것을 노력의 흔적을 보며 미뤄 짐작할 수 있었다무엇보다 권법의 기원이 우리 고유의 무예사(武藝史)에 유래하고 있다는 점을 밝히려고 노력하였다교본에서 보이는 황기의 수박도나 최석남의 권법’ 등은 이름이 다르긴 하나 그 뿌리는 하나이다예부터 뿌리내린 한민족 무예의 정신과 기법이 시대에 따라 면면히 전승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8)고 평가했다.
 
 
박철희가 저술한 파사권법
▲ 박철희가 저술한 파사권법
 
 
破邪拳法(파사권법)을 저술한 박철희는 1956년 육군사관학교 교관을 그만 두고 합천 해인사에서 그동안 배운 권법을 중심으로 파사권법을 집필했다. ‘파사권법의 파사는 삿된 것을 깨트리고 바름을 드러낸다는 파사현정(破邪顯正)’에서 따온 것이다박철희는 이 책의 내용과 구성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파사권법의 파사는 삿된 것을 깨트리고 바름을 드러낸다는 파사현정(破邪顯正)’에서 따온 것입니다. ‘활인권법의 활인(活人)은 홍익인간의 뜻으로 다른 사람을 널리 이롭게 하자는 의미입니다. ‘완인권법의 완인(完人)은 인간을 완성하고자 한 뜻에서 붙인 것인데이 명칭들은 권법즉 태권도를 하는 목적이 담겨 있습니다즉 파사권법은 내가 수련한 권법의 이름이라기보다는 무예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저의 이상이 담긴 명칭인 것입니다. ‘파사권법에는 윤병인 선생님이 창안한 기본형 1절 부터 5절의 내용도 수록되어 있습니다제가 개인적으로 정리한 정공형 중 제1형도 포함되어 있죠자세를 고정한 채 뒷손으로 찌르는 걸 해 보자는 뜻에서 형을 만들게 된 것입니다.”9)
 
 
1959년 태권도’ 명칭 붙인 교본 등장
 
태권도라는 이름으로 출판된 최초의 교본은 최홍희가 1959년 펴낸태권도교본(성화문화, 1959)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1955년 부관 남태희와 함께 옥편을 뒤져 태권도를 작명한 지 4년 후 이 책을 펴낸 것이다그런데 최초의 태권도 교본은 최홍희가 태권도교본을 펴내기 한 달 전에 육국사관학교가 교재 형식으로 태권도 교본을 출판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김영선은 두 종의 교본 모두 현대 태권도의 성립 과정에 시초를 장식할 뿐만 아니라 당시의 무예 지식과 기술 체계를 상세히 담고 있다며 다음과 같은 결론을 도출했다.
 
태권도는 육군사관학교 정규 교과과정으로 채택되어 1959년 9생도 교재용으로 최초의 태권도 교본이 편찬되었다이어 한달 후 최홍희에 의해 하드커버 양장으로 된 태권도 교본이 출간되었다 (육군사관학교에서 교재 형식으로 태권도 교본이 출간되었다는 것은 태권도부와 태권도 교육과정이 그만큼 활성화되었음을 입증하는 증거로 볼 수 있다 (육군사관학교 교본은 전반적으로 공수도 의존도가 높아 보였지만 자유대련을 중시하는 단급 심사방식에서는 공수도와 차별화된 경향으로 판단된다.10)
 
 
육군사관학교가 편찬한 태권도 교본(왼쪽)과 최홍희가 펴낸 태권도 교본. 사진=김영선
▲ 육군사관학교가 편찬한 태권도 교본(왼쪽)과 최홍희가 펴낸 태권도 교본. 사진=김영선
 
 
육군사관학교 태권도 교본은 저자명이 없어 누가 저술했는지 알 수 없다이에 대해 김영선은 교본의 집필진은 유종렬 지도교수와 현종명엄운규박해만 등 청도관 사범들도 추정되었고 이들은 남태희와 더불어 최홍희의 태권도 교본 편찬에도 참여한 사실을 알 수 있다며 최홍희 교본은 육사 교본에 비해 내용 면에서 훨씬 충실도가 높다태권도 기술 체계으 구성과 분류가 세부적으로 명시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많은 사진과 해설을 싣고 있는 반면 육사 교본은 간략한 그림과 해설에 그치고 있다고 평했다.11)
 
이쯤에서 최홍희가 태권도교본을 펴내던 1959년 당시의 상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당시 최홍희는 대한체육회와 동등한 무도회를 별도로 창립하기 위한 계획을 추진하던 중 대한체육회에 가입하는 방법을 택했다유도회검도회와 함께 무도회를 창립하려 했으나 두 단체가 대한체육회에 가입하는 바람에 태권도만으로는 무도회를 만들 수가 없게 된 것이다. 1959년 9자신의 집으로 지도관 윤쾌병송무관 노병직창무관 이남석무덕관 황기 등 태권도 모체관(母體館·기간도장)의 관장을 초청한 최홍희는 대한체육회에 가입하는 단체명 통일을 위한 간담회를 주재했다그 자리에서 공수도와 당수도를 고집하는 것에 못마땅해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들이 좋아하는 공수당수는 일본말로 가라테인데이 좌석에서 가라테를 고집해야 할 사람은 바로 나요나는 일제시대 가라테를 배웠으며 (우리가 해방되었고 또 우리 민족무도를 만들자는 뜻에서 가라테를 버리자는 것인데 해방 후에 배운 당신들이 무엇 때문에 가라테를 고집하는 거요하고 언성을 높였더니 모두들 아무 반박도 못하고 그러면 태권도로 합시다” 하고 동의했다.12)
 
이 책에 대해 허인욱은 최홍희가 펴낸 태권도교본을 보면, ‘수도와 수도에 의한 단련과 손목에 의한 단련’ 항목 편에 두 사람이 마주서서 전진후퇴를 하며 수도와 수도를안손목과 안손목바깥손목과 바깥손목을 부딪치는 훈련방법이 기재되어 있는데이 훈련방법들은 가라테에서는 보기 힘든 훈련방법으로 중앙기독교청년회(YMCA) 권법부를 창설한 윤병인의 무예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13)고 평했다허인욱의 생각처럼 최홍희가 윤병인에게 무술을 배웠을 수도 있다하지만 윤병인을 가리켜 상당한 무예의 경지에 올라 있다고 하는 등 윤병인을 과대 평가하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다.
 
 
최홍희 저술활동과 가라테와의 연관성 논란
 
 
최홍희가 지은 태권도지침.
▲ 최홍희가 지은 태권도지침.
1960년대에 들어서자 본격적으로 태권도 교본류의 책들이 출간됐다최홍희는 1965년 외국에서 영문판 태권도 책과 1966년 태권도지침을 펴냈다특히 태권도지침이 출간됨으로써 태권도와 가라테의 기술과 철학이 서로 다른 무도라는 것이 점차 인식되기 시작했다며 이렇게 의미 부여를 했다.
 
 
태권도를 가라테로부터 완전 분리시키고둘째 가라테를 태권도로 속여 돈벌이하는 사이비의 정체를 폭로하고셋째 일본 기술을 사수하겠다는 비애국적인 무도인들로 하여금 부득이 태권도 기술로 전환하지 않고서는 못 배기도록 하고넷째 코리언이 일본 가라테를 가르쳐준다 해서 나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엉터리로 가르치는 바람에 민족의 망신을 자아내는 가짜 사범들까지도 이 책을 보고 정확한 가라테를 보급하라는 데 그 목적이 있었다.14)
 
하지만 197080년대 최홍희를 따르며 국제태권도연맹(ITF) 소속 사범으로 활동한 림원섭은 이렇게 반박한다.
 
최 총재의 회고록 태권도와 나라는 책 안에는 최 총재의 태권도 동작 사진이 15개 있다그중 중복된 동작 사진은 5개가 있어 실상은 10개의 동작 사진이 있는데, 5개 동작은 태권도 동작이 아니다가라테 동작을 하고 있는 것이다특히 옆차기는 가라테 동작과 똑같다최 총재는 평소 수천 개의 태권도 동작이 있다고 하면서 자기 회고록에 15개 동작그것도 중복된 동작이 5개인데이는 사람을 교묘히 우롱하는 처사이다.15)
 
당시 최홍희는 태권도의 개념과 정의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을까태권도지침내용을 보자.
 
태권도란 무엇인가이는 수세기동안 동양의 여러 나라에서 숭상해 오던 무술로오늘날 우리나라에 의해 완전한 무도로서의 체계와 면모를 갖추었다그러나 각국마다 자기 나라의 특징에 맞는 이름을 붙이고 있으니중국에서는 군따오’ 혹은 천파’, 일본에서는 가라데’ 혹은 겜뽀’, 말레이시아에서는 실나라고 각각 호칭한다그런데 우리나라에서 부르는 태권도는 글자 그대로 태()는 발로 뛴다찬다밟는다라는 뜻이요()은 주먹을 의미하며()는 길 혹은 무도의 방법을 의미한다따라서 태권도는 몸에 아무런 무기도 호구도 갖지 않고 발로 뛰고 차고 밟고 피하고손 또는 주먹으로 찌르고 때리고 뚫고 막고 하는 기술에다 정신수양을 겸한 무도이다.”16)
 
최홍희는 이 책에서 20개 형()을 태권도 고유의 것이라고 소개하고가라테의 소림류 및 소령류와 함께 자신의 아호(雅號)를 딴 창헌류를 기술했다창헌류는 각 형()의 이름이나 동작의 수(), 연무선에 역사적 인물들의 이름이나 호()를 따서 지칭한 것으로 하늘과 땅을 뜻한 천지 단군성조를 뜻한 단군’ 안창호 선생의 아호를 딴 도산’ 원효대사를 뜻한 원효’ 조선조 성리학 학자 이이의 아호를 딴 율곡’ 안중군 의사를 뜻한 중근’ 성리학 대학자 이황의 아호를 딴 퇴계’ 삼국통일의 원동력이 된 화랑도를 뜻한 화랑’ 이순신 장군을 뜻한 충무’ 광개토왕을 뜻한 ’ 고려 말 충신 정몽주의 아호를 딴 ’ 백제의 명장 계백장군을 뜻한 ’ 김유신 장군을 뜻한 ’ 김덕령 장군의 시호를 딴 ’ 을지문덕을 뜻한 ’ 33인의 민족대표를 뜻한 ’ 최영 장군의 이름을 딴 ’ 독립운동가 조만식 선생의 호를 딴 ’ 세종대왕을 의미한 ’ 단일민족을 뜻한 ’ 등 20개이다.
 
최홍희는 창헌류의 특징에 대해 가볍고 무거운 동작그리고 빠르고 느린 동작을 혼합함으로써 몸이 가벼운 사람도 무거운 동작을 할 수 있는 반면 몸이 무거운 사람도 가벼운 동작을 할 수 있도록 하면서 족기(足技)를 광범위하게 사용했다고 설명한다그러나 태권도계의 평가는 이와 좀 다르다최홍희가 일본 유학시절 배운 가라테를 변형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이경명은 최홍희와 가라테의 연관성에 대해 이렇게 해석한다.
 
후나고시 기찐(船越義珍, 1868-1957)과 최홍희(1918-2002)는 사도(斯道)의 대가로서 아버지라 불린다앞의 사람은 오끼나와 출신이고 뒤의 사람은 출생지가 이북이다. ‘공수’ 이름의 후나고시 기찐의 첫 저작은공수도교범(1935)이고 태권도’ 이름의 최홍희의 첫 저작은태권도교본(1959)이다. 20년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하지만 그 명칭은 공수는 1922년에 일본에 소개되면서 당수(唐手)에서 공수태권도는 1955년에 청도관 고문회를 통해 태권이라는 이름이 채택된 것이다. ‘태권의 아이디어는 태껸에서 변형한 이름이다최홍희는 그 절묘한 착상을 통해 오늘날 태권도라는 명칭이 세계화 되었다그의 무도의 출발은 일본 가라데에 뿌리를 두고 있다. 2단의 가라테 보유자라고 알려져 있으나 실은 가라테 3급이 전부라고 한다어쩌면 최홍희는 후나고시 기찐의 영향을 많이 받은 듯하다책의 이름에서 교범(敎範)’을 교본(敎本)’이라 하고 당수 등 ()’에서 ()’으로 바꾸는 재주를 보였다공수라는 빈손보다는 밟을 ’+주먹 ’ 조합은 절묘한 것으로 역동적이다.” 17)
 
 
태권도 교본류 7-80년대 연이어 출간
 
태수도(跆手道)가 통용되던 1960년대 중반이교윤은백만인의 태수도교본(토픽출판사, 1965)을 펴냈다이 책이 나온 1965년 8월 5일에 대한태수도협회는 최홍희의 주도로 대한태권도협회로 개명했다지은이는 책의 서문에서 태수도에 대해 이 무도는 과학적으로 연구·검토하여 체계화시켜 놓은 것이다다시 말하면 강유음양호흡의 원리에 근본을 두고 적수공권(赤手空拳·맨손맨주먹)으로 호신과 함께 적을 막는 공방자재(自在)의 윤리적 교훈을 바탕으로 삼는 무도라고 설명했다.
 
태권도 창시주라 자처한 이원국18)은 좀 뒤늦게 태권도교범(진수당, 1968)을 펴냈다지은이는 이 책에서 해방 전인 1944년 한국 최초로 당수도 청도관이라는 간판을 걸고 한국 태권도의 보급에 투신했다고 주장한다또 이원국은 자신의 저서 태권도교본에서 청도관을 개관해 무술을 가르친 이유에 대해 가라테를 배우던 당시 오끼나와의 실정과 비교하여 무기가 없는 우리 한국이야말로 적수공권19)의 이 무도가 극히 긴요함을 절실히 느끼고 깨달은 바가 있어 보급했다권법 비슷한 것이 신라의 화랑도들에 의해 애중되고 필수무예로 상당한 성황을 보다가 그 후 조선 말엽에 와서 족기(足技)로만 구성된 태껸이 전해져 왔으나 그것마저 일제 때 자취를 감추었다20)고 밝혔다이 같은 말은 가라테를 일본 무술이 아닌 오끼나와 토착무술로 인식한 것으로 읽힌다.
 
이 책의 부록에는 팔괘 1장부터 8장까지와 대한태권도협회 제정한 유단자 형()이 수록되어 있다당시 고려의 품새선은 ‘|’ , 15품수였던 것이 지금의 고려는 품새선은 선비 ’ 자 품수는 30개로 구성되어 있다
 
양진방은 이 책에 대해 이 시기에 나온 책 중 태권도의 원리 등을 구체적으로 다뤄 잘 만든 책 중에 하나라며 가치를 부여했다하지만 강원식은 이원국은 해방 전 일본 유학생 시절 가라테를 배운 사람이기 때문에 정통 태권도인이라고 볼 수 없다며 평가 절하했다안근아는 이원국은 태권도 근대사에서 태권도의 가라테 기원설과 전통성을 주장하는 학자들 사이에 가장 핵심적인 논의 대상이다그가 현재의 태권도와 관련이 있는지 없는지 또는 그가 설립했던 도장(청도관)이 태권도장이었는지가라테 도장이었는지를 판가름하는 것은 태권도 역사를 정립하는 데 주요 사안일 수 있다21)고 밝혔다.
 
대한태권도협회가 1972년 발간한 태권도교본 품세편
▲ 대한태권도협회가 1972년 발간한 태권도교본 품세편
1970년대에도 태권도 교본 잇따라 출간됐다특이한 것은 개인 이외에 대한태권도협회와 세계태권도연맹이 공인 교본을 간행했다는 것이다대한태권도협회는 1972년 최초로 공인 교본 성격의 태권도 교본 품세편(1972)을 펴냈다발행인은 김운용 회장이고 엮은이는 기술심의회 이종우 초대 의장이다이종우는 만 권의 책을 읽기보다 한 권의 책을 만들기란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며 공인 교본을 펴내기까지의 고충을 토로했다.
 
 
책에 수록된 내용은 태권도 정의을 비롯해 태권도의 발생과 형성태권도에 필요한 역학적 풀이예의규범지도상의 유의점수련과정표도복 띠 매는 법과 접는 법 등이다이 책은 품세편에 맞게 유급자용 팔괘와 고려에서 일여에 이르는 유단자 품새와 부록 형식으로 태극 품새 등 모두 25개의 품새를 수록했다대한태권도협회는 1968년 품세제정위원회를 구성하여 팔괘와 고려부터 한수일여 등 17개 품세를 만들었다이어 1972년 학교교과 과정에 삽입할 품새 태극을 1장부터 8장까지 제정하여 보급했다.
 
이경명은 이 책에 대해 교본은 1972년 대한태권도협회에서 처음 펴낸 데 이어 삼일서적(펴낸이 김영채)에서 다시 펴낸다간기(刊記책을 펴낸 때와 곳)면에 1975년 4월 처음’ 펴냄, 1992년 11월 이어 펴냄으로 표기하고 있다판쇄 표시가 처음이 아니기에 신판’(new edition)이라 밝혀야 옳다삼일서적에서 처음으로 펴냄이라는 표기는 독자로 하여금 자칫 오해를 자아낼 수 있다이 교본의 오리지날(original)은 1972년도 판()이라는 것을 분명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22)고 지적했다.
태권도 교본 품세편은 1975년 제2회 세계태권도선수권 기간에 세계태권도연맹이 Taekwondo (Poomse)(Shin JIn Gak) 영문판으로 번역하여 펴냈다이는 김운용이 국기원과 세계태권도연맹 수장(首將)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2007년 세계태권도연맹은 두 번째로 영어로 The Book of Teaching &Learning Taekwondo(Jungdam Media)에서 간행했다.
 
국기원은 1987년 국기태권도교본(삼훈출판사)을 펴냈다이 책은 2000년 재판 1쇄 및 2002년 증보판을 오성출판사가 발행했다국기원장 김운용은 발간사에서 국기 태권도는 한민족 고유의 무도로 우리의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이다태권도의 정신적 본질은 인격의 순화를 통한 참된 윤리관의 배양에 있다따라서 이미 제정된 태권도인의 예의규범은 우리 태권도인의 행동지침이며 생활철학인 것이다고 말했다.
 
이 책은 태권도 역사태권도 정신철학태권도의 과학적 기초태권도의 지도태권도의 기본동작태권도의 품새태권도 겨루기태권도 시범태권도 경기개요태권도 선수훈련상해예방과 처치와 부록으로 심사규정대한태권도협회 예의규범 등 모두 11장으로 구성되어 있다태권도 찬가(한규인 작사강영화 작곡)를 비롯해 태권도 기본동작과 품새의 이론을 세부적으로 다뤘다.
 
이 책은 18년이 지난 2005년 수개월의 연구 과정을 거쳐 한글과 영문 혼용으로 수정해 발간했다Taekwondo Textbook 태권도교본이 바로 그 것이다. 당시 국기원 연구부장 이종관은 "기존 교본은 품새 형태에 대한 설명은 있었지만 동작의 기준을 명확히 정하지 않아 가르치는 지도자마다 조금씩 동작이 다르게 나타났다"면서 "새 교본은 동작의 시작점과 끝점을 명시함으로써 기준을 통일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각주]
1)김영선(2014). 국기원 태권도연구 제5권 제2최초의 태권도 교본에 관한 연구. 2.
2)黃琦(1949). 花手道敎本朝鮮文化敎育出版社. 3738.
3)황기(1960). 앞의 책 27.
4)노병직이 2000년 11월 송무관 제자 강원식에서 보낸 편지의 일부 내용.
5)최홍희(1998). 태권도와 나 2. 도서출판 다움. 62.
6)허인욱(2008), 앞의 책. 68.
7)이종우는 권법에 대해 조선연무관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유도부와 권법부를 만들었다그때부터 권법부에서 가라테를 배웠다권법이 바로 일본 가라테이다일본말로 부르면 국민감정도 있고 하니까 권법이라고 부른 것이다고 했다신동아. 2002년 4월호 참조.
8)무카스. 2010. 9. 15. 최석남의 권법교본, 5년 만에 빛을 보다.
9)무카스. 2010. 1. 28. 원로들의 이야기 박철희 편(5).
10)김영선(2014). 앞 논문. 21-22.
11)김영선(2014). 앞의 논문. 15-21.
12)최홍희(2005). 태권도와 나. 도서출판 길모금. 171.
13)허인욱(2008). 관을 중심으로 살펴본 태권도 형성사. 한국학술정보(주). 36.
14)최홍희(1998). 태권도와 나2. 도서출판 다움. 69.
15)태권도신문. 1998년 10월 기고.
16)최홍희(1966). 앞의 책. 14.
17)한국무예신문. 2011년
18)이원국은 1907년 충북 영동의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났다영동에서 소학교를 졸업한 뒤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 중앙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대학시절 권투부에서 활동하던 그는 우연한 기회에 가라테에 심취해 일본 가라테의 본관인 송도관(松濤館)에 입문해 후나코시 기찐((船越義珍)에게 가라테를 배워 5년 만에 4단을 부여받았다그 후 귀국해 청도관을 창설했다미국에서 여생을 보내다가 2003년 97세로 타계했다.
19)맨손과 맨주먹이란 뜻으로곧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음을 의미한다.
20)이원국(1968). 태권도교본. 진수당. 34.
21)안근아 ‧ 이재봉‧ 안용규태권도와 이원국체육스포츠인물사. 21세기교육사.
21)안근아 ‧ 이재봉‧ 안용규태권도와 이원국체육스포츠인물사. 21세기교육사.
22)무카스. 2010. 11. 5. 대태협 최초의 공인 태권도교본(품새편펴내다.
 
 
 
 
<태권저널 - 서성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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