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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수업 / 알퐁스 도데
2018년 04월 17일 00시 07분  조회:3758  추천:0  작성자: 죽림

마 지 막 수 업

                                       / 알퐁스 도데

 

그날 아침나는 학교에 굉장히 늦고 말았습니다거기다가 아멜 선생님이 말익히기에 대하여 질문에 하겠다고 했는데전혀 공부를 하지 않았습니다그래서 들을 꾸중을 생각하니 몹시 겁이 났습니다문득나는 차라리 학교에 결석하고 이리저리 쏘다닐까 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날씨는 무척 맑고 따뜻하였습니다.숲에서는 개똥지빠귀 울음소리가 들리고제재소 뒤의 리페르 목장에서는 프로이센 병사들이 훈련받는 소리가 들려 왔습니다.이 모든 것은 말익히기보다 더 내 마음을 끌어 당겼습니다.그러나 나는 그런 마음을 누르고 학교를 향해 뛰어갔습니다

면사무소 앞을 지나면서 나무틀로 된 게시판 주변에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지난 2년 동안 패전이니징역이니사령부의 명령이니 하는 나쁜 소식을 알리는 소식은 이곳에 붙여졌습니다

'또 무슨 일이 있었나?' 

나는 뛰면서 그런 생각을 하였습니다

광장을 가로질러 가고 있는데직공과 함께 거기 서서 게시판을 들여다보던 대장장이 바시테르 아저씨가 나를 보고 소리쳤습니다

"얘야그렇게 서두를 것 없다지금 가도 늦지 않아!" 

나는 대장장이 아저씨가 나를 놀리는 줄로 생각하였습니다숨이 차도록 뛰어서 학교의 작은 마당으로 뛰어들어갔습니다보통은 수업이 시작될 즈음 책상 서랍을 여닫는 소리귀를 막고 큰 소리로 책을 읽는 소리좀 조용히 해하고 책상을 두드리는 선생님의 막대기 소리가 한데 뒤섞여 한길까지 들려왔습니다

나는 이런 소란한 틈을 이용해 슬그머니 내 자리에 들어가 앉을 참이었습니다그런데 그 날은 일요일 아침처럼 조용했습니다열려진 창문으로 벌써 제자리에 앉아 있는 친구들과 그  무서운 막대기를 옆구리에 끼고 책상 사이를 왔다갔다하시는 아멜 선생님이 보였습니다.    나는 얼굴이 홍당무처럼 달아오르고 가슴은 얼마나 조마조마하였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아멜 선생님은 나를 보고도 화를 안 내시고 매우 부드러운 소리로 말씀하셨습니다

"프란츠어서 네 자리에 가 앉아라하마터면 너를 빼고 수업을 시작할 뻔했구나." 

나는 재빨리 걸상을 타넘어 내 자리에 앉았습니다나는 마음이 가라앉자 비로소 선생님이  장학사가 수업을 둘러 보는 날이나 상장을 줄 때만 입는 초록색 프록 코트에 가는 주름이    잡힌 가슴 장식을 달고수놓은 검은 비단의 모자를 쓰고 계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더군다나 교실의 분위기가 평소와는 다르게 엄숙한 느낌이 들었습니다더욱 놀라운 것은   늘 비어 있던 교실 안쪽 의자에 마을 사람들이 학생처럼 조용히 앉아 있었습니다삼각 모자를 손에 든 오제 영감옛 면장님우편 배달부그 밖에도 많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한결같이 무언가 슬픈 표정을 하고 있었습니다오제 영감은 너무 낡아 가장자리가 너덜너덜해진 프랑스어 책을 무릎에 펴고 앉아 있었고그 위에는 안경이 올려져 있었지요

내가 이런 모습에 놀라서 두리번거리며 살피는 동안 아멜 선생님은 교단 위로 올라갔습니다그러고는 부드럽고도 엄숙한 목소리로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이것이 여러분과의 마지막 수업입니다알자스와 로렌 지방의 학교에서는 독일어만 가르치라는 명령이 베를린으로부터 내려왔습니다내일 새로운 선생님이 오십니다오늘로  여러분의 프랑스어 수업은 마지막입니다여러분열심히 수업을 들어주기 바랍니다." 

나는 선생님의 짤막한 말에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정신이 없었습니다

'아아죽일 놈들면사무소에 붙은 게 바로 이것이었구나나의 마지막 프랑스어 수업나는 제대로 쓸 줄도 모르는데 이제는 다시 프랑스어를 배울 기회가 없을 것이야!' 

나는 전에 수업을 빼먹고 새집을 찾아다니거나자르 강가에서 얼음을 지치면서 시간을      헛되이 보낸 것이 후회스러웠습니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진절머리가 나고 골치가 지끈지끈 아프게 하던 내 책들성서가 이제는 헤어지기 싫은 친구로 느껴졌습니다그것은 아멜 선생님도 마찬가지였습니다.선생님과 헤어져야 되고 다시는 만날 수 없다고 생각하니 벌을 받던 일이나 막대기로 얻어맞은 일이 모두 잊혀졌습니다

'가엾은 선생님!' 

선생님은 이 마지막 수업을 위하여 정장으로 옷을 입은 것입니다동네 사람들이 교실 뒤쪽에 앉아 있는 이유도 비로소 알 것 같았습니다그 사람들은 40년 동안이나 우리를 가르치는    일에 열심을 다하신 선생님께 감사하고우리에게서 떠나가는 조국에 경의를 표하기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선생님이 갑자기 내 이름을 불렀습니다내가 외울 차례가 되었던 것이었죠저 어려운 말익히기를 큰 소리로 분명하게하나도 틀리지 않고 외울 수 있다면   이 순간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나는 첫마디부터 막혀버려서 부끄럽고 안타까운 마음에 고개를 들지 못하였습니다.  그 자리에 몸만 흔들며 서 있었습니다아멜 선생님은 천천히 말씀하셨습니다

"프란츠나는 너를 야단치지 않겠다이미 충분히 벌은 받은 셈이지……사람들은 이렇게  얘기한단다그까짓것 서두를 것 없어내일 하면 되니까그 결과 지금 보는 대로 이렇게    되는 것이란다교육을 언제나 내일로 미루었던 것이 우리 알자스의 큰 불행이었어지금 프로이센 사람들이 '뭐라고너희들은 프랑스 사람이라고 하면서 프랑스어를 쓰지도 읽지도 못한다 말이야!' 하고 비웃는데도 우리는 할 말이 없어하지만프란츠야우리 모두가 스스로 반성하고 깨달아야 해너희들의 부모님은 교육에 그렇게 열성적이지 못했던 거야돈    몇 푼을 벌기 위하여 너희들이 밭이나 공장에서 일하기를 원했지물론 나 자신도 반성해야 할 것이 있어여러분에게 공부를 시키는 대신 우리 집 뜰에 물을 주라고 하였고여러분이  은어 낚시를 하고 싶다고 하면 수업을 안 했으니까……." 

그리고 아멜 선생님은 프랑스어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습니다프랑스어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고분명하며표현력이 풍부한 말이라는 것그러니까 우리들이 잘 간직하여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왜냐하면 한 민족이 남의 식민지가 된다고 하더라도 자기 말을 잘 지키면 감옥의 열쇠를 쥐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이니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고나서 선생님은 문법책을 들고 읽기 시작하였습니다나는 너무도 쉽게 이해가 되어   놀랐습니다말씀하시는 하나하나가 무척 쉽게 느껴졌습니다나는 지금까지 이처럼 열심히 들은 적이 없었습니다.또 선생님도 차근차근 알아 듣기 쉽게 설명하셨습니다그것은 이 가엾은 선생님이 떠나시기 전에알고 있는 모든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려는 것 같았습니다

말익히기가 끝나자이번에는 쓰기 시간이었습니다아멜 선생님은 모두에게 나누어 줄 글씨본을 특별하게 준비하여 오셨습니다거기에는 '프랑스 알자스프랑스 알자스'라고 쓰여 있었습니다그것들은 우리 책상 위에 매달려교실 가득 나부끼는 작은 깃발처럼 보였습니다

모두들 얼마나 열심인지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을 만큼 조용합니다종이 위에 펜 긁히는 소리만 사그락사그락 들릴 뿐입니다창문을 통해 풍뎅이가 날아 들어왔는데도 누구 한 사람  거기에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제일 나이 어린 아이들도 정성껏 종이 위에 줄을 긋는데    몰두하였습니다

학교 지붕 위에는 비둘기 몇 마리가 '구구구구울고 있습니다나는 그 소리를 들으면서 이런 생각을 하였습니다

'이제 저 비둘기에게도 독일어로 울라고 할지도 몰라!' 

가끔씩 교과서에서 눈을 떼고 고개를 들면 아멜 선생님은 교단 위에서 가만히 서 있었습니다마치 이 작은 학교를 눈에 담기라도 하듯이 모든 것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그도 그럴 것이지난 40년 동안 선생님은 뜰이 바라보이는 이 교실에 늘 있어 왔습니다의자와 책상은 아이들의 엉덩이에 닳아서 반들반들 빛이 나고마당의 호두나무는 크게 자랐으며직접 심으신 홉은 어느 새 창문을 뒤덮고 지붕까지 뻗어 올랐습니다이 모든 것들로부터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이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인가요

2층에서 왔다갔다하며 짐을 꾸리고 있는 여동생의 발소리를 듣는 선생님의 마음은 얼마나   괴로울까요선생님은 내일 떠나서 이 마을과 영원히 이별 합니다그래도 선생님은 끝까지 수업을 계속할 마음을 가지고 계셨던 것입니다

쓰기 시간 다음에는 역사 시간이었습니다그런 다음 꼬마들은 목소리를 맞추어 발음 연습을 했습니다

교실 뒤에는 오제 영감이 안경을 걸친 채 교과서를 양손에 들고 우리들과 함께 한 자 한 자  더듬거리며 읽고 있었습니다.그 분도 매우 열심히 읽느라 목소리가 감동으로 떨렸습니다.   그리고 읽는 모습이 너무도 우스꽝스러워 우리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몰랐습니다나는 이 마지막 수업을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입니다그 때교회의 큰 시계가 정오를 알렸습니다이어서 기도를 알리는 삼종이 울렸습니다아침 6정오저녁 6시 세 차례에 걸쳐   기도시간을 알리기 위해 울리는 성당의 종소리입니다그와 동시에 훈련에서 돌아오는 프로이센 병사들의 나팔 소리가 창문 밑에서 울려 퍼졌습니다

아멜 선생님은 얼굴이 파래져서 의자에서 벌떡 일어섰습니다지금까지 선생님이 이렇게    크게 보인 적이 없었습니다

"여러분!" 

선생님이 말했습니다

"여러분…… 나는…… 나는……." 

그러나 그 무엇이 선생님의 목을 막히게 하여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선생님은 칠판 쪽으로 돌아서더니분필을 집어들고는 온 힘을 다해 되도록 큰 글씨를 썼습니다

프랑스 만세!』 

그리고 벽에 머리를 기댄 채 움직이지 않고 우리에게 손짓으로 말했습니다

"이것으로 끝입니다……모두 돌아가세요."

 

 






============================덤으로 더...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마지막 수업(프랑스어La Dernière Classe)은 프랑스의 작가 알퐁스 도데의 단편 소설이다.
알퐁스 도데의 월요이야기(Contes du lundi)에 수록되어 있다.

줄거리[편집]

프랑스 알자스 지방에 살던 소년 프란츠는 공부보다는 뛰어 놀기를 좋아하는 아이이다. 오늘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학교에 갔으나 교실에는 무거운 분위기가 흘렀다. 또한 동네의 어른들 역시 교실에 앉아 있었다. 프랑스어 선생님인 아멜 선생님은 장학사가 학교를 방문할 때나 입던 정장을 입고 교단에 서있었다. 아멜 선생님은 "베를린에서 명령이 내려왔습니다. 독일에 귀속된 알자스-로렌 지방의 모든 학교에서는 프랑스어 수업이 아닌 독일어 수업을 하라고 말입니다." 라는 말을 한다. 곧 이 수업이 마지막 수업이라는 것이다. 프란츠는 마음 깊이 자신이 프랑스어를 소홀히 배운 것을 반성한다. 그러나 아멜 선생님은 프란츠에게 "너는 이미 네 마음 속으로 너를 반성하고 있을 것이다. 그걸로 만족하단다."라는 말로 프란츠를 위로한다. 수업이 끝나는 시간인 12시에 저 건너 교회탑에서 시간을 알리는 종이 치고 프로이센 군의 소리가 들리자 아멜 선생님은 말을 잇지 못한다. 이어서 아멜 선생님은 교실 칠판에 Vive La France!(프랑스 만세!)라고 쓰며 이야기는 끝이 난다.

영향[편집]

알퐁스 도데의 《월요이야기》 수록 글 중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다. 프랑스-프로이센 전쟁(보불전쟁) 이후 빼앗긴 알자스로렌에 남아 있던 프랑스인들의 서러움.





==========================덤으로 더 더...


<마지막 수업>의 작자 알퐁스 도데는 큰 직물 공장을 경영하는 집 아들로 태어났다. 그런데 공장이 두 차례나 불이 나서 그가 6세 때 파산하고 말았다. 도데는 리옹 중학교의 급비생으로 들어갔으나 집이 가난하여 교과서도 살 수가 없었다. 그래도 열심히 공부하여 학교 성적이 좋았다. 그러나 집안이 뿔뿔이 흩어져야 했다. 도데는 학교를 중도에 퇴학하고, 아버지 친구의 도움으로 시골 중학교의 대리 교사가 되었다. 대리 교사라야 학생들 자습실을 맡은 선생이었다.

17세가 된 어느 날, 기어이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한 귀족집 아들인 학생이 마구 대들자 도데는 정신없이 그 학생을 때려 운동장으로 끌어내어 내동댕이친 것이다. 이것이 문제가 되어 교장으로부터 학교를 그만두라는 말을 들었다. 절망한 그는 한밤중에 체육관으로 가 목을 매려 하였다. 마침 그때 철학 교사인 신부의 구원을 받았다.

“당신은 문학의 길로 정진하시오."
도데는 신부의 이 말을 새기면서 마침내 일류 문학자가 된 것이다.

알퐁스 도데
알퐁스 도데

...
 

...그의 건강은 가난과 그리고 결국은 그의 목숨을 앗아간 성병에 서서히 침식당하고 있었다. 도데는 1861년에서 1862년으로 넘어가는 겨울을 알제리에서 보냈다. 이 여행에서 얻은 성과 가운데 하나가 〈사자 사냥꾼 샤파탱 Chapatin le tueur de lions〉(1863)으로, 이 소설의 주인공인 사자 사냥꾼은 도데의 미래의 주인공 타르타랭의 첫번째 스케치라고 할 수 있다.

도데가 처음으로 쓴 희곡 〈마지막 우상 La Dernière Idole〉은 1862년에 파리의 오데옹 극장에서 초연되었고 커다란 반향을 얻었다. 〈방앗간 소식 Lettres de mon moulin〉(1869)에서 그는 1862년말 코르시카에서 보낸 겨울을 회상하고 있다. 1863~65년(모르니 공작이 죽을 때까지)에 겪은 풍부한 사회생활은 그가 〈르 나바브 Le Nabab〉(1877)에서 무자비하게 분석한 자료를 그에게 제공해주었다.

1867년 1월에 그는 재능있는 작가인 쥘리아 알라르와 결혼했는데, 그는 그녀를 깊이 사랑했고, 그녀는 그의 이후 작품에 큰 도움을 주었다. 그들은 레옹과 뤼시앵이라는 두 아들과 에드메라는 딸 하나를 낳았다.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은 그의 2번째 단편집 〈월요일 이야기 Les Contes du lundi〉(1873)를 보아도 알 수 있듯이, 그의 글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 전쟁 때 도데는 군에 입대했지만, 1871년 파리 코뮌의 공포정치 때 파리를 탈출했다.

그의 〈타라스콩의 타르타랭이 겪은 놀라운 모험 Les Aventures prodigieuses de Tartarin de Tarascon〉(1872)은 별로 호평을 받지 못했지만, 모험을 좋아하는 이 소설의 주인공은 천진함과 허풍스러움을 풍자한 인물로서 유명하다. 〈아를의 여인 L'Arlésienne〉이라는 희곡도 역시 실패했으나 1885년에 재공연되었을 때는 박수갈채를 받았다. 그의 다음 소설인 〈동생 프로몽과 형 리슬레르〉는 아카데미 프랑세즈 상을 받고 성공을 거두었으며, 그후 몇 년 동안(적대적인 비평이 전혀 없지는 않았음) 그는 부귀와 명성을 누렸다.

말년에 도데는 성병이 척수까지 번져 심한 고통을 겪었다.

〈고통 La Doulou〉(1931년까지 출판되지 않았음)은 고통을 연구함으로써 완화하려는 노력을 보여준다. 그는 감탄할 만한 자제심으로 온갖 종류의 책을 써서 파리의 문단과 음악계를 계속 즐겁게 해주었다. 그는 젊은 작가들(예를 들면 마르셀 프루스트)의 친절한 후원자였다. 1895년에 그는 런던과 베네치아를 방문했다. 그리고 2년 뒤에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덤으로 더 더 더...


 

...평생을 매독에 시달려 17세 때 걸린 매독이 39세에 척수 매독으로 진행극심한 통증에 시달렸다통증만이 아니었다척수신경 손상으로 다리의 감각 기능이 없어진 탓에 몸의 균형 잡기가 힘들어져 걸핏하면 비틀거렸고 걸을 때는 남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그래도 남프랑스의 시인 미스트라르를 비롯하여 플로베르졸라, E.공쿠르투르게네프 등과 친교를 맺었으며아내 쥘리의 내조로 행복한 57년의 생애를 파리에서 보냈다.

 

당시 매독의 '첨단 치료제'는 수은이었다.[4] 오랫동안 수은 치료를 받았던 도데는 수은중독에도 시달렸다통증을 견딜 수 없었던 도데는 모르핀까지 맞았다.주사를 맞을 때마다 구역질로 고생했지만모르핀을 맞아야 그나마 통증을 잊고 잠시라도 잠을 잘 수 있었다.

 

사망하기 얼마 전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인생을 너무 많이 사랑한 나머지 하느님이 내게 벌을 주신 거야."



...
...1867
년에 쥴리아 아라드와 결혼했는데 그의 부인도 문학적 재능이 있었다고 한다.

 

1883년 도데는 자신이 아카데미 회원이 될 가능성이 없다고 쓴 기자와 결투를 벌였고 자신의 부인에 대한 안좋은 기사를 쓴 기자와도 결투를 신청할 정도였다고 한다말년에는 건강이 악화되어 약을 잘못 쓴 탓에 불면증에 시달리다가 18976월에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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