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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윤동주 시 한수 공부하기] - 한난계
2018년 06월 29일 00시 06분  조회:3468  추천:0  작성자: 죽림

한난계(寒暖計)                  

                                                  윤동주

 

 

 

싸늘한 대리석 기둥에 모가지를 비틀어 맨 한난계,

문득 들여다 볼 수 있는 운명한 오척육촌(五尺六寸)의 허리 가는 수은주,

마음은 유리관보다 맑소이다.

 

 

혈관이 단조로워 신경질인 여론동물(與論動物),

가끔 분수(噴水)같은 냉(冷)침을 억지로 삼키기에

정력을 낭비합니다.

 

 

령하(零下)로 손가락질 할 수돌네 방처럼 치운 겨울보다

해바라기 만발한 팔월(八月) 교정이 이상(理想) 곱소이다.

피끓을 그날이ㅡ

 

 

어제는 막 소낙비가 퍼붓더니 오늘은 좋은 날씨올시다.

동저고리 바람에 언덕으로, 숲으로 하시구려ㅡ


이렇게 가만 가만 혼자서 귓속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나는 또 내가 모르는 사이에ㅡ

 

 

나는 아마도 진실한 세기의 계절을 따라

하늘만 보이는 울타리 안을 뛰쳐,

력사 같은 포지션을 지켜야 봅니다. <1937.7.1>

 

 


=============================

광복절, 윤동주의 시를 읽다
[변방의 사색] 윤동주의 <별 헤는 밤>
 

 
 
 
 
 
 
 
 
 
 
 
 
 
1. 

일본에서 태어나 열네 살 때 조선으로 건너온 아버지는 광복절에는 일본에서 돌아온 친구들과 하루 종일 술을 드시며 노셨다. 한 해도 거르지 않으셨다. 불콰해진 얼굴로 일본 노래도 부르고, 때로 목소리 높여 싸우기도 하셨다. 

내 할아버지는 해방을 얼마 앞두고 가족들을 먼저 보내고 가산을 정리해서 뒤늦게 나오시다 미군 폭격으로 현해탄에서 돌아가셨다. 그래서 우리는 할아버지 무덤이 없다. 열네 살 나이에 할머니를 도와 졸지에 가장 노릇을 해야 했던 아버지는 서툰 한국말로 구두닦이에 날품팔이에 기약 없는 노동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 나뭇짐 가득 쌓인 지게를 받쳐 두고 부산으로 향하는 경부선 철로를 바라보며 눈물바람을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한다.

광복절 아침에 서가에서 윤동주 시집을 꺼내어든다. 스물여덟 젊은 나이에 광복을 불과 6개월 앞두고 옥사한 윤동주. 그의 대표작인 <서시>나 <별 헤는 밤>은 한국인들에게'시란 이런 것이다'라고 생각하는데 중요한 계기를 준, 한국어로 형상화된 가장 아름다운 한 정신의 풍경화임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꼭 학교 교육의 덕택만은 아닐 것이다. 그의 짧은 생애의 모든 기간이 일제 강점기에 걸쳐 있다는 사실, 그 순결한 넋이 극한에 다다른 제국주의자들의 광기에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마음 아프다.

한 번도 손들어보지 못한 나를 
손들어 표할 하늘도 없는 나를
어디에 내 한 몸 둘 하늘이 있어 
나를 부르는 것이오

일을 마치고 내 죽는 날 아침에는 
서럽지도 않은 가랑잎이 떨어질 텐데……. ― <무서운 시간> 중에서


꼭 그렇게 자신이 죽을 것을 예감하고 있는 느낌마저 든다. 그러나 그가 이런 비애만으로 시를 쓴 것은 당연히 아니다. 이번에 읽어보니, 그가 스무 살 전후로 가톨릭 잡지에 발표했다는 그의 동시가 참 좋다. 어린아이 같은 순정한 마음이 느껴진다. 이것 또한 시인의 마음이다.

가을 지난 마당은 하이얀 종이 
참새들이 글씨를 공부하지요

째액째액 입으로 받아 읽으며 
두 발로는 글씨를 연습하지요

하루 종일 글씨를 공부하여도 
짹자 한 자밖에는 더 못 쓰는 걸 ― <참새>


웃음도 나오고 마음이 훈훈해진다. 타작과 탈곡 마당에 쫑쫑대는 참새들을 바라보는 소년 윤동주가 눈에 보이는 것 같다. 비록 엄격한 기독교적 분위기였으나, 이런 엄혹한 시절에도 이런 소년의 마음이 가능했던 것도 그가 북간도 명동촌 한인 자치부락이라는 자유의 공기에서 자라났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가능한 것이었으리라. 하지만 그 무렵 남긴 시에는 이런 것도 있다. 

누나의 얼굴은 
해바라기 얼굴
해가 금방 뜨자 
일터에 간다

해바라기 얼굴은 
누나의 얼굴
얼굴이 숙어들어 
집으로 온다 ― <해바라기>


나중에 민중가요로도 작곡된 동시다. 그 당대의 노동현실이 인상적으로 음각되어 있다. 깊은 울림이 있다. 산업화와 착취를 바라보는 한 순결한 정신이 그려낸 인상화이다. 소년 시절, 그의 제일의 벗이었던 문익환 목사가 그러하였듯 윤동주가 해방 이후에 살아남았더라면 또한 우리 민족사의 큰 정신이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2. 

▲ <별 헤는 밤>(윤동주 지음, 민음사 펴냄). ⓒ민음사
1938년경, 윤동주는 연희전문에 입학하면서 처음으로 타향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반자치의 자유를 누리던 북간도에서 이제 식민지 현실의 중심으로 진입한 것이다. 이 시점으로부터 연희전문을 졸업하고 일본 유학길에 올랐다가 1년여 만에 사상범으로 체포되는 시점까지의 4년여 동안 그는 그의 대표작으로 평가되는 이십여 편의 시들을 남기게 된다.

세상으로부터 돌아오듯이 이제 내 좁은 방에 돌아와 불을 끄옵니다. 불을 켜두는 것은 너무나 피로롭은 일이옵니다. 그것은 낮의 연장이옵기에―

이제 창을 열어 공기를 바꾸어 들여야 할 텐데 밖을 가만히 내다보아야 방안과 같이 어두워 꼭 세상 같은데 비를 맞고 오던 길이 그대로 비속에 젖어 있사옵니다. 

하루의 울분을 씻을 바 없어 가만히 눈을 감으면 마음 속으로 흐르는 소리, 이제 思想이 능금처럼 저절로 익어 가옵니다. - <돌아와 오는 밤>
 

자취하던 대학생 시절, 나는 이 시를 참 좋아했다. 맨 마지막 구절의 둔사(遁辭)같은, '사상이 능금처럼 저절로 익어간다'는 구절이 이 탁월한 시를 망쳐버린 것만 같아 그냥 칼로 도려내고만 싶었다. 사상이 능금처럼 익든 말든 그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내 맘은 그랬다.

나 또한 타향에서 홀로 지내던 때였다. 알 수 없는 우울과 슬픔을 안고 살아가던 때, 어쨌든 내겐 이 시가 내 온몸으로 다가왔다. 피로한 하루어치의 삶에 지쳐 내 방에 들어와 털썩 무너지듯 주저앉을 때에도, 세상 돌아가는 꼬락서니에 울분을 씻을 길이 없을 때에도. 긴 비가 오는 날, 비속으로 젖어가는 세상을 보면서 이렇게 세상이 스르르 잠들어 가라앉아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세상의 죄로부터 피해있을 곳은 없었다. 다만, 땀 흘려 노동하는 삶이라면 나를 지켜줄 수 있을 것 같았고, 죄짓는 삶일지언정 그렇게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마 윤동주도 그러했으리라. 

빨리 
봄이 오면
죄를 짓고 
눈이
밝어 

이브가 해산하는 수고를 다하면 
무화과 잎사귀로 부끄런 데를 가리고
나는 이마에 땀을 흘려야겠다. ― <또 태초의 아침> 중에서


3. 

윤동주는 내성의 시인만은 아니었다. 그의 우울과 좌절은 단순한 포즈만은 아니었다. 이를테면 이런 시가 있다. 

영하로 손가락질할 수돌네 방처럼 치운 겨울보다 
해바라기 만발할 팔월 교정이 이상(理想) 곺소이다.
피끓을 그날이― 

어제는 막 소낙비가 퍼붓더니 오늘은 좋은 날세올시다. 
동저고리 바람에 언덕으로, 숲으로 하시구려―
이렇게 가만가만 혼자서 귓속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나는 또 내가 모르는 사이에― 
나는 아마도 진실한 세기의 계절을 따라―
하늘만 보이는 울타리 안을 뛰쳐, 
역사 같은 포지션을 지켜야 봅니다. <한난계(寒暖計)>


한난계는 온도계를 말한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진실한 세기의 계절을 따라', 그리고 '하늘만 보이는 울타리 안을 뛰쳐' 나아가 피 끓을 그날에는 목 놓아 외치고 싶었던 것이 그에게도 있었던 것이다. 

하긴, 윤동주가 끝내 일제의 감옥에서 살아났더라도 그의 그다음 삶은 또한 어찌 되었을지, 장담할 수 없다. 그가 해방 공간에 숨기어진 흉포한 발톱을 피해 갈 수 있었을 것인지도 장담할 수 없다. 

막노동과 날품팔이로 가족들을 먹여 살리던 우리 아버지는 해방 후 조선 땅 밀양에서 살아남고자 우익에 줄을 섰다. 청년단원이 되어 좌익을 소탕하는 일에도 참여했다. 그리고 전쟁이 났다. 그러나 징병은 피해야 했다. 여동생과 어머니를 보살필 사람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징병을 피할 수 있다는 기대만으로 밤을 틈타 부산까지 걸어가 군수공장에 겨우 일자리를 얻었다. 거기서 끔찍한 노역에 시달리다 사고를 겪었고, 작은 장애를 얻었다. 윤동주처럼 죽지는 않았지만, 살아남은 우리 아버지에게는 윤동주가 그리워했던 '역사 같은 포지션'은 없었다. 오직 살아남기 위한 노동, 노동, 빵장수와 날품팔이, 드난살이였을 따름이다. 그래서 아버지는 자주 술을 드시고 회한에 젖어 우셨다. 아버지의 광복과 그 이후의 나날을 생각하면 나도 슬프다.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영원히 슬플 것이오 - <팔복> 


예수의 산상수훈에 대한 날카로운 도발이다. 그러나 그에게 이 독신(瀆神)의 외침은 이 슬픈 역사에 대한 자신의 눈물이며, 방관하는 신에 대한 절절한 항의에 다름 아닐 것이다. 우리 아버지가 먹고살기 위해 이렇게 떠돌 때에도, 죽을 줄 알면서도 역사의 제단에 제 몸을 바친 이들이 있었다.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
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목아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흘러나는 피를
어두워져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 <십자가> 중에서


1942년 연희전문 문과를 졸업한 윤동주는 그 해 일본으로 건너가 릿쿄대학(立敎大學) 영문과에 입학했다가 가을에는 도지샤대학(同志社大學) 영문과로 전학한다. 수시로 경찰이 하숙방을 뒤지고 끽하면 잡아 가두고, 고문하던 시절이다. 모두가 숨죽였고, 굶주림을 껴안고 살아야 하던 시절이었다.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여지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을 수 없었던 시절이었다. 그는 구체적인 행동의 물증이 없더라도 조선인들을 탄압하는 데에 흔히 사용되었던 '사상불온'이라는 죄목으로 체포되었고, 조국 광복을 불과 6개월여 앞두고 옥사했다. 그는 스스로 십자가를 지지는 않았지만, 어쩌면 그의 죽음이 또한 그 시대의 십자가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윤동주도, 그리고 우리 아버지도 모두 불행했다. 불행한 시대에 살았던 이들이 치러야 했던 역사의 죗값이었다. 

4. 

지조 높은 개는 
밤을 새워 어둠을 짖는다.

어둠을 짖는 개는 
나를 쫓는 것일 게다.

가자 가자 
쫓기우는 사람처럼 가자.
백골 몰래 
아름다운 또 다른 고향에 가자 - <또 다른 고향> 중에서


어둠을 짖는 개의 울음소리에 쫓기우는 양심. 이 양심은 지금 이 땅에 남아 있는가.

윤동주가 죽고 난 뒤, 66년의 역사란 또한 백골 같은 나날들이었다. 광복절인 오늘도 어디에선가는 성조기와 이승만과 박정희의 초상을 들고 검은색 라이방을 쓴 한 무리의 인간들이 운집해 있을 것이다. 정리해고 당한 노동자들을 위로하고 연대하기 위해 부산까지 내려간 이들을 뒤쫓아가 후려치고 멱살을 쥐던 깡패 같은 인간들, 그들의 완력과 우격다짐들이 진실과 양심을 주장(朱杖)질 했던 66년이었다. 

윤동주의 시들은 또한 자기의 안과 밖에 존재하는 어둠과 대결하려 했던 한 순결한 영혼의 기록으로 남았다. 그리하여 그가 그렸던 맑고 깊은 서정은 이 캄캄한 시절에도 별처럼 빛난다. 수십 년의 세월을 격한 지금에도, 그리고 앞으로도 시대의 어둠을 슬퍼하는, 그리고 순수를 그리워하는 모든 이들의 시심(詩心) 속에 남을 것이다. 고마운 일이다. 윤동주가 그 숨 막히는 시대에도 홀로 노트에 시를 끼적여 남겨주었다는 사실이.

소년 윤동주, 역사의 격랑에 올라타지 않았더라면, 결국 이 마음으로 살았을 아름다운 소년. 그의 사랑하는 순이, 황홀한 소년의 마음을 생각하며 도무지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는..., ...들의 패악질로 도배된 오늘, 광복절을 넘어간다. 

여기저기서 단풍잎 같은 슬픈 가을이 뚝뚝 떨어진다. 단풍잎 떨어져나온 자리마다 봄을 마련해 놓고 나뭇가지 위에 하늘이 펼쳐 있다. 가만히 하늘을 들여다보려면 눈썹에 파란 물감이 묻어난다. 다시 손바닥을 들여다본다. 손금에는 맑은 강물이 흐르고, 맑은 강물이 흐르고, 강물 속에는 사랑처럼 슬픈 얼굴 ― 아름다운 순이의 얼굴이 어린다. 소년은 황홀히 눈을 감아본다. 그래도 맑은 강물은 흘러 사랑처럼 슬픈 얼굴 ― 아름다운 순이의 얼굴은 어린다. - <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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