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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와 윤석중
2018년 07월 18일 23시 34분  조회:3771  추천:0  작성자: 죽림
 
시대 현대
출생 1911년 5월 25일
사망 2003년
경력 새싹회 회장
유형 인물
직업, 이름 아동문학가 - 윤석중
대표작 『윤석중동요집』, 『잃어버린 댕기』, 『어깨동무』, 『굴렁쇠』
성별
분야 문학/현대문학
본관 파평

요약 1911∼2003. 아동문학가.

개설

아명 노마, 호 석동(石童). 1911년 5월 25일 서울 중구 수표동 13번지에서 윤덕병과 조덕희의 여덟째로 태어났으나 형제들이 일찍 죽어 독자로 살았다. 1921년교동보통학교에 입학하고 1925년양정고등보통학교 입학했다가, 1929년 광주학생의거가 발발하자 자퇴하였다. 1939년 『조선일보』 장학생으로 뽑혀서 일본 조치(上智)대학 신문학과에 유학하여 1941년 졸업하였다. 박용실과의 슬하에 3남 1녀를 두었다.

생애

1923년 보통학교에 재학하던 중 심재영, 설정식 등과 소년문예단체 꽃밭사를 결성하고 동인지 『꽃밭』을 발간했으며, 1924년소용수, 이원수, 이성홍, 신고송, 서덕출, 최순애, 이정구, 윤복진, 최경화 등과 글벗사를 만들어 동인지 『굴렁쇠』를 발간하며 일찍부터 소년문예운동을 일으켰다. 그는 1933년 『어린이』 주간, 1934년 『소년주간』 주간, 1945년 『주간 소학생』 주간, 1955년 『조선일보』 편집 고문 등을 거치면서 동요의 창작과 보급에 일생을 바쳐 ‘한국 동요의 아버지’로 불린다.

활동사항

그는 13세의 나이로 『신소년』에 동요 「봄」이 입산되고, 192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동화극 「올빼미의 눈」이 선외가작으로 뽑힌 다음, 같은 해 『어린이』에 동요 「오뚝이」가 입선되었으며, 1926년 「조선물산장려가」가 당선되면서 천재소년예술가로 불렸다.

그는 작품의 소재를 어린이들의 일상과 자연에서 찾았다. 그의 동요 세계는 4·4조나 7·5조의 형태에 반복과 대구를 사용하던 초기의 정형동요에서 시적 동요로 나아갔고, 낙천주의적 정서를 기반으로 어린이들의 밝고 긍정적인 장면을 포착하여 형상화한 특징을 보였다.

그는 1956년 1월 3일조풍연, 피천득, 어효선, 홍웅선 등과 새싹회를 창립하여 어린이문화운동에 앞장섰다. 그는 1957년 소파상을 제정하고, 1961년 장한 어머니상 제정했으며, 1964년 마해송의 문학 세계를 기리는 해송문학상을 제정하였다. 1967년 한국문인협회 아동문학분과 위원장을 맡았고, 1969년에는 전국 30여 개 초등학교의 교가를 지어주었다. 그는 1974년 방송용어심의위원장과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고문, 1977년 『새싹문학』과 『한글나라』 주간을 지냈다. 그는 1978년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 1979년 방송윤리위원장, 1981년부터 1984년까지 초대 방송위원장, 1986년 대한민국 예술원 원로회원, 1997년 마해송문학비건립위원장 등을 역임하는 등, 다방면에 걸쳐 혁혁한 공적을 세우고 2003년 대전 국립현충원 국가사회봉헌자묘역에 안장되었다.

2005년부터 새싹회에서 그의 문학적 업적을 기리는 윤석중문학상을 제정하여 시상하고 있다.

주요 작품집으로 동요집 『윤석중동요집』(1932), 『잃어버린 댕기』(1933), 『어깨동무』(1940), 『새벽달』(1943), 『초생달』(1946), 『굴렁쇠』(1948), 『아침까치』(1950), 『윤석중 동요 100곡』(1954), 『노래동산』(1956), 『노래선물』(1957), 『엄마손』(1960), 『윤석중동요집』(1963), 『해바라기 꽃시계』(1966), 『카네이션 엄마꽃』(1967), 『꽃길』(1968), 『윤석중 노래동산』(1971), 『윤석중 동요 525곡집』(1980), 『아기꿈』(1987), 『윤석중전집 (1-30)』(1988), 동요동시집 『여든 살 먹은 아이』(1990), 『그 얼마나 고마우냐』(1994), 『반갑구나 반가워』(1995), 『깊은 산속 옹달샘 누가 와서 먹나요』(1999), 동화집 『열손가락 이야기』(1977), 『열두 대문』(1985), 아흔 기념 문집 『내일도 부르는 노래』(2000) 등이 있고, 기간 작품들은 『윤석중전집 (1-30)』에 집성되어 있음.

상훈과 추모

3·1문화상(1961), 문화훈장 국민장(1966), 외솔상(1973), 리몬 막사이사이상(1978), 대한민국 문학상(1982), 세종문화상(1983), 대한민국예술원상(1989), KBS동요대상(1990), 인촌상(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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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11. 5. 25, 서울
사망 2003. 12. 9, 서울
국적 한국

요약 아동문학가. 1924년 <신소년>지에 동시 <봄>으로 등단했으며 이후 전통적 정형률에서 벗어난 새로운 형태의 동시와 동요를 써서 한국의 아동문학 발전에 이바지했다. 방정환 선생의 뒤를 이어 <어린이>지 주간을 맡았으며, 일생을 동요와 글짓기에 바쳤다. 대표작은 <낮에 나온 반달>·<퐁당 퐁당>·<도리도리 짝짝궁> 등이다.

 
윤석중(尹石重)
윤석중(尹石重)

아동문학가. 1911년 서울에서 태어나 1930년 양정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44년 일본 조치대학[上智大學] 신문학과를 마쳤다. 1924년 <신소년>에 동시 <봄>과 1925년 <어린이>에 <오뚜기>를 발표해 문단에 나왔으며, 전통적 정형률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형식 및 반복과 대구를 사용해 율동적 표현을 구사하는 동시를 개발하는 데 힘썼다.

1933년 〈어린이〉 주간, 1934년 <소년중앙> 주간, 1936년 <소년> 주간을 역임했으며, 이후 <조선일보> 편집고문, <소년조선일보> 고문, 서울시 문화위원, 한국문인협회 아동분과 위원장 등을 역임했으며, 중앙대학교·성신여자대학교 등에서 강의했다. 1953년 '새싹회'를 창립해 회장에 취임했다.

1932년에 펴낸 <윤석중동요집>은 한국 최초의 창작동요집이며, 여기에 실린 <낮에 나온 반달>·<퐁당 퐁당>·<도리도리 짝짝궁> 등이 알려져 있다. 또한 1933년에 펴낸 동시집 <잃어버린 댕기>에는 기존의 3·4조나 7·5조의 음수율을 벗어난 동시 여러 편이 실려 있는데, 특히 그는 이 동시집을 통해 글자수를 맞추어 지은 것을 동요라 하고 자유롭게 지은 것을 동시라 하여 동시의 문학적 성격을 규정했다.

동시집으로 <어깨동무>(1940)·<굴렁쇠>(1948) 등과 동화집으로 <바람과 연>(1966)·<열 손가락 이야기>(1977) 등이 있다. 1961년 3·1문화상, 1979년 막사이사이상, 1982년 대한민국 문학상, 1989년 대한민국 예술원상, 1922년 인촌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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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尹石重
영어음역 Yun Seokjung
이칭/별칭 석동(石童),노래 나그네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예술인
지역 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율목리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집필자 이해준
충청남도 서산이 원적인 근현대 아동문학가.

본관은 파평. 호는 석동(石童). 아버지는 사회운동가이자 노동운동가인 윤덕병[1885~1950]이고 어머니는 조덕희다. 부인은 박용실이다.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원적은 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율목리다.

윤석중(尹石重)[1911~2003]은 서울 중구 수표동에서 윤덕병과 조덕희의 여덟째 자녀로 태어났다. 두 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형제들도 일찍 죽어 외할머니 밑에서 외롭게 자랐다. 그래서 이름도 돌처럼 무거워 ‘날아가지 말라’는 의미에서 석중(石重)으로 지었다고 한다. 외로운 환경 탓에 일찍 자아에 눈을 떴고, 유년 시절 풀지 못한 수많은 의문이 훗날 어린이를 위한 시를 짓고 문화 운동을 펼치는 자양분이 되었다. 윤석중은 1921년 열 살에 교동보통학교에 입학하였다. 당시 초등 교과서에 실린 일본 노래 「봄이 왔다[春が来た]」에서 모티프를 얻어 우리말로 된 시 「봄」을 썼다. 이 시가 『신소년』에 실려 일찍이 문학적 소질을 인정받았다. 1923년 심재영(沈在英)과 『꽃밭』이라는 등사판 잡지를 창간하였다. 심재영은 소설 「상록수」를 쓴 심훈(沈熏)의 조카이다.

1925년에 양정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였다. 그해 『어린이』 잡지에 「오뚝이」가 입선되어 작품이 처음으로 활자화되었다. 같은 해 8월 동인회 기쁨사를 만들어 등사판 잡지 『기쁨』을 1년에 네 차례 출간하고, 『굴렁쇠』라는 회람 잡지도 만들어 동인들끼리 돌려 보았다. 『굴렁쇠』는 두꺼운 표지에 ‘회람 잡지 굴렁쇠’라 쓰고 회원들이 지은 동요와 글동무들에게 알릴 내용을 편지 형식으로 넣어서 편집하였다. 같은 해 11월부터 『어린이』의 부록인 『어린이 세상』을 맡아 꾸렸다. 그 인연으로 ‘개벽사’에 드나들게 되었고, 이때부터 방정환(方定煥) 등과 함께 일을 하였다. 이후 한층 왕성하게 창작 활동을 하였다.

1929년 11월 광주 학생 운동이 일어났다. 윤석중은 여기에 동참하지 못한 것을 자책하여 졸업이 며칠 안 남은 시점에서 5년 동안 다닌 양정고등보통학교를 자퇴하고 말았다. 이듬해 짧게 일본 유학을 다녀왔다. 1932년 7월 첫 창작 동요집인 『윤석중 동요집』을 출간하였다. 1933년 35편의 동시를 실은 최초의 동시집 『잃어버린 댕기』를 발간하고, 방정환을 대신하여 『어린이』 잡지의 주간이 되었다.

1935년에 황해도 사리원에 사는 박용실과 혼인을 하였다. 결혼식 주례는 독립운동가이자 훗날 조선건국준비위원회를 만든 여운형(呂運亨)이 섰다. 1936년에는 조선일보사로 옮겨 어린이 잡지 『소년』의 편집을 맡았다. 국내 최초의 그림 잡지 『유년』을 출간하기도 하였다. 1939년 다시 일본으로 가 동경 상지대학 신문학과에서 수학한 후, 벨기에인 고라르 신부를 도와 우리말 잡지 『빛』을 발간하였다. 해방 이듬해 우리나라 최초의 주간지인 『주간 소학생』을 창간하고 「어린이날 노래」를 지었다. 졸업식에서 불리는 「졸업식 노래」도 윤석중의 작품이다. 가사 중 ‘꽃다발을 한 아름 선사합니다.’라는 부분은 마음의 꽃다발을 생각하며 쓴 것인데, 이후 졸업식장에 그렇게 많은 꽃다발이 등장할 줄 몰랐다고 회고한 적이 있다.

한편 윤석중은 1950년 6·25 전쟁 때 아버지와 새어머니, 이복동생을 모두 잃었다. 또다시 가족을 잃은 아픔을 겪은 그는 이듬해 윤석중 아동연구소를 차리고 두 차례에 걸쳐 어린이를 대상으로 ‘내가 겪은 이번 전쟁’이란 주제의 글을 모아서 책을 펴냈다. 어린이의 글을 통해 전쟁의 아픔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1954년에는 윤석중 아동연구소의 이름을 새싹회로 바꿔 새로 창립하고 합창단과 합주단, 글짓기 교실 등 어린이를 위한 여러 조직을 만들었다. 1957년에는 소파상을 제정하고 『새싹문학』을 창간하였다. 이 책은 2011년 현재 115호까지 발행되었다. 윤석중은 스스로를 ‘노래 나그네’라고 부르며 어린이를 위한 삶을 살다가 2003년 12월 9일 9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떴다.

윤석중의 작품 활동과 저술, 그리고 관련 활동은 매우 방대하다. 일생동안 1,300여 편의 시를 썼고, 이 가운데 800여 편이 동요로 만들어져 불리었다. 전국 30여 학교의 교가를 짓기도 하였다. 대표작으로 「새신」, 「똑같아요」, 「옹달샘」, 「나란히」, 「기찻길 옆」, 「집 보는 아기」, 「어린이날 노래」, 「졸업식 노래」 등이 있다.

묘소는 국립대전현충원 국가사회봉헌자 묘역에 있다.

1978년 동양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막사이사이상[언론 문학창작상]을 수상하였다. 윤석중은 수상 소감에서 “어린이는 나의 스승이다. 동심은 국경이 없으며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동물이나 목석하고도 자유자재로 정을 나누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마음.”이라는 말로 평생 품어 온 어린이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또한 그의 업적을 기리는 윤석중 문학제가 해미읍성과, 서산 호수공원 일원에서 매년 개최되고 있다.

======================윤석중 동시 "넉 점 반"

윤석중 시인이 1940년에 발표한 〈넉 점 반〉이라는 동시가 있습니다. 부잣집에나 시계가 있던 시절에 엄마가 아이에게 가겟집에 가서 시간을 알아오라고 심부름을 시켰던 모양입니다. 과연 아이는 엄마 심부름을 잘 완수할 수 있을까요?

아기가 아기가
가겟집에 가서
“영감님 영감님
엄마가 시방
몇 시냐구요.”
“넉 점 반이다.”
“넉 점 반
넉 점 반.”
아기는 오다가 물 먹는 닭
한참 서서 구경하고,
“넉 점 반
넉 점 반.”
아기는 오다가 개미 거둥
한참 앉아 구경하고.
“넉 점 반
넉 점 반.”
아기는 오다가 잠자리 따라
한참 돌아다니고.
“넉 점 반
넉 점 반.”
아기는 오다가
분꽃 따 물고 니나니 나니나
해가 꼴딱 져 돌아왔다.
“엄마
시방 넉 점 반이래.”
- 윤석중, 〈넉 점 반〉

절로 미소 짓게 하는 예쁜 동시입니다. 가겟집에 가서 시간을 알아오긴 했으나, 곧장 집으로 오지 않고 여기 저기 기웃기웃 닭 구경하고, 개미 구경하고, 잠자리 따라 돌아다니고, 분꽃 물고 놀고, 그러면서도 엄마 심부름은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계속 “넉 점 반, 넉 점 반” 합니다. 그리곤, 해가 꼴딱 져 돌아와서는 당당하게 말하지요.

인용문
엄마, 시방 넉 점 반이래

아이에게 시방은 지금도 시방이고, 아까도 시방입니다. 그러니, 계속 넉 점 반일 수밖에요. 그런데 넉 점 반은 도대체 몇 시일까요? 그리고 아이는 대략 몇 시간 동안 해찰하며 돌아다녔을까요?

넉 점 반은 4시 반이라는 뜻입니다. 옛날에는 시간을 표시하는 표시로 ‘점’을 사용했는데 구체적으로는 괘종시계가 종을 치는 횟수를 뜻했습니다. 아이가 가겟집에 가서 몇 시냐고 물어봤을 때 시간은 4시 반. 잠자리 따라 돌아다니고, 분꽃 따 물고 니나니 나니나 했다는걸 보니까 계절은 여름. 그리고 여름에는 대략 8시가 넘어야 해가 꼴딱 지니까, 네 시간 가량 놀다 돌아왔다는 이야기인데요. 지금 몇 신지 알아오라고 심부름 보낸 아이가 저녁 여덟 시 넘어 돌아와서는 천연덕스럽게 “엄마, 지금 네 시 반이래.” 하는 모습을 보고 엄마는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요.

가슴 따뜻한 한 편의 동화 같은 윤석중 시인의 〈넉 점 반〉, 우리에게도 그처럼 지금이 몇 시인지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던 시절이 있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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