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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에 눈길을 돌리고 민족을 포옹해라"
2018년 10월 13일 23시 40분  조회:2158  추천:0  작성자: 죽림

오늘 중국조선족 시인들은 무엇을 써야 하나? 

 

                                                                                 /김관웅

 

 

 

 

우리 중국조선족의 시문학은 90년대에 들어서서 대단한 번영기를 맞이하였다.

우리의 시문학은 그 량이나 질 면에서 모두5, 60년대의 문화혁명 이전시기는 물론이고

70년대말이후로부터 80년대말에 이르기까지의 우리의 시문학에 비해서도 대단한 성취를

이룩하였음은 세인이 공인하는 바이다. 그러나90년대이후의 우리 시문학에는

성과와 함께 문제점들도 적잖은것같다.

요즘 우리 문단에서 평론계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높은데 그중에서도

우리 평론가들이 둘러리평론, 좋다식평론만 하고 비판적고 건설적이 평론은 하지 않는다는데

주로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문학창작에서 가장 중요한 관심사를 최고도로 개괄한다면, 아마도《무엇을 쓸것인가》와 《어떻게 쓸것인가》라는 두가지 문제라고 할수 있다. 사실 우리 시단의 문제점 역시 이 기본적인 두가지 문제와 여러 모로 련관되여 있다. 그러나 후자는 숙제로 남기고 오늘은 전자만 말하려고 한다. 

 

문학이 주로 현실에 치중하는가 아니면 리상에 치중하는가 하는 척도로 가늠한다면 문학을 현실재현이나 현실에 대한 주관적감수표현의 사실주의문학과 리상재현이나 리상에 대한 주관적감수를 표현하는 랑만주의문학으로 량대변할수있다. 이런 이분법은 그 어느 나라나 민족의 문학에도 죄다 적용된다. 

 

중국 전통문학에도 사실주의와 랑만주의라는2대전통이 있다. 창작의 각도에서 볼때 공자가 편찬했다는 《시경》이 사실주의의 원천이라면 굴원의 《초사》는 랑만주의의 원천이였다. 그리고 문학리론의 각도에서 볼때 유가들의 문예주장이 사실주의적이라면 도가의 문예주장은 랑만주의적이다.

중국전통시문학이 전성기에 이르렀던 당나라에 와서 사실주의시문학의 대표적시인인 시성(詩聖)두보와 랑만주의시문학의 대표적시인인 시선(詩仙)리백이 쌍벽을 이루었던 것은 하나의 좋은 실례라고 할수 있다. 

《시경》의 가장 근본적인 정신은 민본사상에 기초한 사실주의정신이라고 할수 있다.

시경》의 알맹이인 <국풍>같은 그 당시 백성들의 노래들은 《배고픈 자는 먹을것을 노래하고, 일하는 자는 먹을것을 노래하고, 일하는 자는 생업을 노래한(飢者歌其食, 勞者歌其事)》 사실주의문학이라고

할수 있다.

 

 확실히 《시경》중의 국풍과 같은 시들은 대부분 그 당시 백성들의 《슬픔과 기쁨에서 감동을 받아 생겨난것이고 그들의 생업이나 시대적사건들로부터 연유된 것이다.

(皆感于哀 樂, 緣事爾發)》 이로부터 유가학파의 문론가들은 《시경》의 실례를 들어 문학과 예술은

민생의 질고를 관심하고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두보의 삼리(三吏), 삼사(三吏)같은 시편들도 안사지란(安史之亂) 전후의 그 당시 사회의 혼란하고

암흑한 현실을 사실주의적으로 재현하고 그러한 현실에 대한 시인의 주관적 감수를 심각하게 표현한

 것으로 하여 청사에 길이 빛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이 머리는 하늘을 향하고 두발은 땅을 밟고 서있듯이 리상을 추구하는 랑만주의와 자신이

몸담고 살아가고 있는 현실에 관심을 돌리는 사실주의는 인류문예의 가장 기본적인 자세이요,

성향이라고 할수 있다. 특히 사회의 공통된 리상과 가치관이 붕괴된 무명(無名)시기에 있어서

불투명한 사회현실에 대한 인간들의 관심은 자연스레 고조되며 아울러 현실반영과 현실에 대한

사색에 주안점을 둔 사실주의문학은 필연적으로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여 문학예술의 정면에

나타나게 된다. 

 

중국의 주류문단인 한족문단에서 1996년부터 1997년 두해 사이에 일어났던 문학리론과 평론계에서의 《인문정신대토론》과 소설분야에서의 《사실주의충격파》는 이점을 립증하여준다. 그런데 원래부터

대단한 활약상을 보여왔던 시분야에서 이 몇년래 별로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은 참으로 이상한 현상이라고 하지 않을수없다. 그러나 시인들이나 시평가들도 무풍지대의 상아탑속에만 숨어 살아온 것은 아니며, 1998년부터는 90년대의 시문학에 대한 자아성찰을 하기 시작했다. 이 면에서 중국의 저명한 시평가 사면(谢冕)의 견해가 가장 주목을 끈다. 

 

《90년대에 있어서의 최대의 완성은 시의 개인화이다. 이는 중국의 시문학발전력사의 전반을 놓고 볼때 근대이래 초부하적인 시의 사회승낙에 대한 커다란 시정이며, 날따라 엄중해져 가던 비시(非詩)적인 이데올로기화과정에 대한 철저한 시정이였다. 》 

 

이는 중국 시문학의 하나의 커다란 진보이요, 하나의 커다란 얻음이라고 할수있다.

그러나 세상만사는 새옹지마라고 한걸음 진보하면 다른 면에서는 한걸음 후퇴하는

법이고 하나를 얻으면 필연적으로 하나를 잃는 법이다.

《시의 개인화는 사회적의의의 시로 허여금 숨막힐듯한 포위속에서 최종적으로 해탈되게는

했지만 아울러 커다란 화근을 내포하고있었다. 이때로부터 시인들은 자기만을 관심하고

자기밖의 모든것에 대해 무관심하고 멀리하게 되였다.

 

그리하여 아주 많은 부분의 시들은 자신의 자그마한 자아에 대한 끊임없는 <어루만짐>에 불과했다.

시인들이 애오라지 자기만 관심하니 대중들도 자연스럽게 시를 멀리하고 심지어는

시를 거절하게 되였던 것이다. 》) 동상서 P. 118 이런 면에서 90년대의 중국의 시문학은 오히려

 70년대말~80년대초반의 북도(北島)를 위수로 한 몽롱시보다도 한걸음 후퇴했다고 할수 있다.

 

 개인적인 자아의 각성을 보여줌과 아울러 사회와 시대에 대한 관심과 추구를 표현한 북도류의

몽롱시에 비길때, 90년대이후의 중국의 시는 확실히 현실을 멀리하고 시문학이 마땅히 짊어져야

할 사회적책임을 도피했으며 오늘을 살아가는 대중들의 생존환경과 처지들에 대해 무관심햇던것만은

분명한것 같다. 90년대 중국시문학은 확실히 시의 사회반영, 사회비판 및 민중들의 고통에 대한 대언(代言)기능을 주동적으로 포기한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우리 중국조선족문학은 중국문학이란 이 대계통속에서 변두리적위치에 처해있기에

중국 한족문단이라는 이 주류문단의 영향을 받지않을수없다. 우리의 시문학도 례외일수없다.

 

90년대이후 우리의 시단은 전례없이 번영했고 시창작의 량이나 질적인 면에서 확실이 이왕에 비해

한 차원 높아졌음은 사실이나 우리 민족의 생존상황을 관심하고 우리 민족의 오늘 날의 시대적정서를

대변하기 위해 애쓴 시편들이 그리 많지 않다는것 역시 사실이다. 사실 시집들은 상당히 많이 나왔지만 현실감이 넘치는것들은 많지 못하다.

 

사실 많은 시집들에서는 우리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시대정신의 맥박을 듣기어려우며 광범한 민중들의 희노애락의 시대적정서들을 느끼기 어렵다. 이면에서 소설이나 수필같은 분야보다 뒤떨어졌다고 생각한다. 이런 판단은 아마도 필자만의 개인적인 느낌만은 아닌것 같다. 작년 이른 봄에 발표된 조룡남선생님의 《자탄》같은것은 바로 이 점을 잘 설명해주고있다 

 

《요즘세월/ 시인이 되여 시를 쓰다는것은/ 얼마나 허망하고 어리석은 짓인 가/ 절로도 허구픈 웃음이 난다/ / 어저께 황소에 관한 시를 썼다/ 가슴저린 눈물을 찍어/ 황소울움 같은 시를/ 그런데 어디에 보낸다?/ 간곳마다 천대받는 시시한 시/ / 차라리 황소들에게나 가져다 읽어줄가?/ 그러나 그것도 파악이 없다/ 황소들이 그것을 듣고 과연/ 한줌 풀을 맛본 때보다/ 얼마큼 더 감동할것 인지?…》

(《연변일보)1997. 4. 10)

 

이 시에서 《황소》는 단순한 황소가 아닌것 같다. 아마도 황소는 백성의 상징적이미지로 해석해도 과분한 견강부회는 아닐것이다. 《황소에 관한 시》는 아마도 백성들에 관한 시로 리해해도 크게 틀리지는 않을것 같다. 《황소에 관한 시》는 마땅히 황소들에게 가져다 읽어주어야 할것인데 시인은 《그것도 파악》이 없다고 한다. 그 원인은 황소들에게 있어서는 시가 《한줌 풀을 맛본것》보다 못할것이라고 시인은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판단은 옳기도 하며 틀리기도 하다. 만약 그 시가 《황소》들의 《배고품》이나 《고통》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라면 《황소》들의 《배고품》이나 채찍아래에서 밭가는《고통》이나 도살장에 끌려가는 억울함을 대언(代言)한 것이라면 아마 《황소》들은 꼭 크게 《감동》을 하여 눈물을 흘릴것이다.

 

90년대 들어서서 우리 중국조선족시단의 많은 시인들은 《황소》들의 《배고품》이나 《고통》에 대해 별로 큰 관심을 돌리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시가 《간곳마다 천대받는 시시한 시》로 전락하게 된 가장 주된 원인이 아니겠는가 생각한다. 우리 시의 현실탈리의 경향은 아래와 같은 몇가지 면에서 보여진다. 

 

첫째, 우리의 시인들은 오늘날 우리 중국조선족의 삶의 현실과는 별로 큰 련관성이 없는

시적주제를 내세우군 한다. 례컨대 요즘 우리의 적지않은 중견 시인들은 이른바

언어의식과 생명의식을 고창하며 이를 발굴하는데 자신들의 모든 정력을 쏟아붓고 있다.

 

 이 역시 시문학의 다원적추구중의 하나의 추구이므로 왈가왈부할수는 없지만,

이런 유미주의적경향과 현실탈리의 경향은 현실을 정시하고 현실의 사회생활에 뛰여들어

 현실문제를 다루는 시인들의 자세와 능력의 약화를 초래하고 사회참여의식과 사회비판정신의

상실을 적잖케 초래한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최근 몇년간 우리 시단의 적잖은 시인들은 우리 민족의 신화나 전설 그리고 지나간 력사에서

많은 시적인 소재를 가져오고 있다. 이런 추구는 개인적인 추구로서 누구도 비난할수는 없지만

현실과는 너무 먼 오랜 옛날의 신화나 전설 또는 력사같은것이 주된 창작의 소재원천으로 되고

아울러 이러한 력사적주제가 우리 시문학에 주류를 이루어서는 안되며 인위적으로 그러한 방향에로

유도해서는 더욱 안될줄로 안다…

 

지나간 력사에로의 침잠이 현실탈리의 하나의 중요한 경향이라면, 우리 중국조선족의 현실적인 삶과는 일정한 거리가 있는 시들도 역시 신발을 신고 발바닥을 긁는 격으로 우리의 현실적삶의 개선에 별 도움이 없으며 우리 민중들의 환영을 크게 받지 못한다.

 

이를테면 조선반도의 민족분단과 우리 배달민족의 생존상화에 대한 깊은 사고를 주제로 내세운 작품이다. 이 작품들 중에는 확실히 모국의 분단문화계렬에서도 수작으로 꼴힐수 있는

작품들도 없지 아니하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우리의 현실적인 삶과 거리가 있는 민족분단같은 문제는 그래도 괜찮케 쓴 시들이 심심찮케 눈에 띄이는데 오늘날 우리 중국조선족의 삶의 상황에 대한

깊이 있는 사고를 동반한 시들은 오히려 새벽의 별같이 눈에 별로 띄이지 않는것은 무엇일가?

 

이것은 아마도 우리 시인들의 현실참여의식과 민족적사명감이 모자라고 현실을 정시하고 현실을

비판하고 현실을 성찰하는 담력과 용기가 부족한데서 연유된것이 안닐가 오히려 현실감이 넘치고 깊은 현실적인사색이 안받침된 시들이 오히려 함용남 같이 시에 방금 입문한 신인들한테서 나오는것은 기성세대의 시인들이 심사숙고해야 할바라고 생각한다. 례컨대1998년 연변일보의 해란강문학상 수상작품인 함용남의 《콩서리》같은 작품은 우리 시대의 가장 큰 관심사로 되고 있는 분배불공정의 사회문제를 훌륭한 은유를 통해 표현하였다. 

 

둘째, 우리의 시인들은 적잖게 우리 시대 민중들의 가장 보편적인 정서와는 유리된 순 개인적인 정서의 표출에만 열을 올리고 있는것같다. 요즘 홍수처럼 터져나오는 시집들을 읽으면서 느끼는 감수라면 시적인 정서들이 대단히 개인화되여 섬세하게 표현되여 있기는 하지만 사회적공명을 일으키는 시대적인 보편적정서,

특히는 민중들의 정서를 표출한 시집들이 극히 적다는 감을 준다. 물론 이 몇년동안 개인적정서표출은 이전의 문화혁명시기나,

 

5, 60년대의 한곬으로만 흐르던 도식적이고 허위적인 군체정서의 표출에서 많이 벗어난 점도 긍정해야 하겠지만, 80년대초반의 몽롱시들이 지녔던 정서의 공명수준만큼도 지니지못했다. 시는 소설과 달라서 독자군이 더 작은것만은 사실이나 최근에 들어서서는 더욱 작아진것만은 자타가 시인하는 사실이다.

 

시를 쓰는 분들이 들으면 노여워 하겠지만 항간에는 언녕부터 《시를 읽는 사람보다 시를 쓰는 사람이 더 많다》는 말이 떠돌았다. 시가 날로 대중성을 잃어가고 날로 개인적성질의취미로 전락하게 된 원인은 아주 많지만 그중에서 아주 중요한 원인은 우리 시들에서 표출된 정서들이 오늘 우리 중국조선족민중들의 가장 보편적인 정서와 유리된것과 무관하지 않을것이다. 

 

최근 우리 중국조선족문학의 원로작가인 김학철선생은 현실분식의 위랑만주의나 글장난이나 하는 형식주의, 유미주의 또는 현실을 도피하는 은둔문학을 매도하면서 우리의 작가나 시인들이 문학창작의 렌즈를 중국조선족의 삶의 현장에 맞출것은 호소한바있다 

 

《……밤낮 웨쳐대던 <지상락원>이 정말로 살기 좋다면 어느 미친년이 <위장결혼>을 할것이며 또 어는 미친놈이 <밀입국>을 하려다가 <사기피해>를 당할것인가. 어느 미친년놈이 부모형제를 놓아두고 처자식을 떼여놓고 정든 고향에 등 들을 돌릴것인가. 그리고 무엇때문에 온가족이 몽땅 떠돌뱅이 신세로 돼버릴것인가. ……<깡패>와 <매음녀>, <밀입국>과 <사기피해>. 이런것들은 새로 생겨 난그 무슨 <빈곤감> 때문이 아니다……지금 우리 <발등에 떨어진불>은 실업, 임금체블 같은 당장 먹고사는 문제이다. 살기가 어렵다고 아우성치는 그 문제. 바로 그 문제다.

 

 우리의 초점은 바로 여기에 맞춰져야한다. 무슨 <축구회오리>, <타이타닉바람>, <빈곤감 타령> 따위로 떠들썩거려 그 긴박성과 엄중성을 회석시켜서는 아니된다. 》 )김학철《<빈궁감>

<부유감》>(《연변문학)1999년 제4기) 지금은 우리가 《시경》의 국풍처럼

 

《배고픈 자는 먹을것을 노래하고 일하는 자는 생업을 노래하는》 사실주의, 현실참여의 문학을 주로

해야 할시기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소설문학은 지금 바로 그렇게 하고있다. 례컨대 금년도에 들어서면서 최국철의 《당신과 당신의 후예들》(《연변문학》1999. 3기), 김훈의 《또 하나의 나》(《연변문학》

 1999. 4기), 리동렬의 《꿈》(《도라지》 1999. 3) 양룡철의 《황금새》(《도라지》1999. 3기) 등 많은 소설들은 이미 김학철옹의 말처럼 초점을 우리 중국조선족의 《살기 어렵다고 아우성치는 그 문제》에 맞추고 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리농향도(離農向都)의 추세에 따른 조선족농촌사회의 황페화, 농촌교육의 위기, 민족경제의 부진으로 인한 실업문제, 국제결혼과 농촌녀성들의 도시진출로 인한 농촌총각들의 결혼난과 이에따른 조선족인구의 격감추세, 국내의 발달한 지역과 외국에로의 로무송출과 보따리장사 등으로 인한 조선족인구의 대이동 및 그로 인한 민족집거구해체의 위험같은 초미의 사회문제들에 문학이라는 이 카메라의 렌즈를 맞추고 있는것이다 . 

 

필자는 몇년전부터 우리 중국조선족 문학의 주류는 민족적사실주의문학이여야한다고 거듭 강조하여

왔다. 그 개념에 대해 필자는 다음과 같이 정의한적이 있다 

 

《……우리 문학은 중국조선족의 삶의 상황을 박진감있게 반영하고 생존위기를 여실하게 제시하고 중국조선족의 물질문명과 정신문명 건설에서의 병페들을 용감히 비판하고 그 극복책을 탐구하고 앞날의 진로를 모색하는 그러한 문학으로 되여야할것이다. 일언이페지하면 중국조선족의 삶의 현장에 튼튼히 뿌리를 내리고 민족성, 현실성, 비판성, 건설성과 미래지향성을 그 기본특징으로 하는 사실주의문학을 견지해야 할것이다 . 바로 이러한 민족적 사실주의문학이 우리중국조선족문학의 주선률로 되여야할것이다. 》

 

재현양식으로서의 소설과 표현양식으로서의 시를 또같이 요구할수 없지만 시도 이 전형기(轉型期)에 처한 오늘날의 중국사회에 있어서 현실을 관심하고 현실을 표현하는 민족적사실주의에로 나아가야함은 의심할바 없다. 이면에서 우리의 시문학은 반드시 궤도조절을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우리 시문학은 창작방법에서 사실주의로 일색화되여서는 안되며 다양한 창작방법의 추구를 권장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성당시기에 랑만주의와 사실주의가 동시에 개화발전하고 두 경향의 대표적시인인 리백과 두보가 두터운 우정을 맺고 키워갔듯이 우리 시단의 여러 창작경향을 가진 시인들이 서로 보완하고 서로 단결하면서 우리의 시문학을 중흥시켰으면 하는 마음이다. 

 

사실 우리처럼 세계주류문화에서도 변두리적위치에 처해 있는 중국, 중국에서도 변두리적위치에 있는

연변이나 장춘, 심양, 할빈 같은 지방도시나 시골에 사는 우리들에게 있어서 아주 먼 래일의 리상적인

문제는 다른 발전한 나라들이나 지구에서는 바로 오늘날의 현실적문제로 되고 있다. 우리의 관념이나

의식은 흔히는 세계주류문화 및 세계주류의식과 흔히 몇십년 지어는 한세기 가까이 뒤떨어져서 살고있는 실정임을 알고 있어야 한다.

 

물론 개혁개방이후 이런 형편은 점점 개선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현실에 발을 튼튼히 붙이고 일사천리로 발전해나아가는 세계의 현실에도 면밀한

주의를 돌려야한다.

 

세계의 발달한 나라의 사람들과 동보적으로 사고하고 그와 비슷한 의식수준에는 오르지 못하더라도

그것을 알려고 노력하고 그에 따라가려고 노력해야 할것이다. 이렇게 되자면

우리들은 우물안의 개구리가 될것이아니라 세계와 우주를 향한 열린 마음을 지니고 부단한 의식갱신의 노력을 경주해야할것이다.

 

그래야만이 세계인과 대화하는 개방적인 신심을 지닐수 있으며, 우주를 가슴속에 두는 높은 시상를 가질수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세계적인 수준에서의 현대의식, 당대의식을 지녀야만이 우리의 시들도 세계인과 대화할수있는 자격을 지닐수있다.

 

례컨대 21세기의 생태학적문화를 지향한 소위 《록색문학》과 《록색문화리론》은 세계의 발달한 나라들에서 전위를 달리고있는 포스트문학의 가장 중심적인 주제로 부상하였다. 《록색문화리론》의 주장에 따르면 차세기 이 지구상에서 살아가게 될 인간들이 직면하게 될 문제는 인간자체 내부의 문제보다도 인간과 자연간의 관계에 대한 문제일것이라는것이다.

 

지구가 병들면 지구를 유일한 보금자리로 삼고 살아가는 인류의 존속도 위협을 받는다는것이다.

이들은 지구의 상태환경의 파괴로 인한 인류훼멸의 위협을 사전에 방지하려면 절제를 모르고

방향감각을 잃은 과학문명의 근시안적 개발과 발달에 있다고 인정했은며, 아울러 이러한 무절제한

자연정복의 력사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고 인정하였다.

 

그들은 오늘의 지구적위기의 근원인은 인간중심적 세계관에 있음으로 반드시 이를 버리고

탈인간중심적이고 자연 친화적인 세계관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생태주의자

헨리 데이비드소로우는 생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자연을 인류에 맞게 개조시키는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류를 자연에 맞게 개조시키는 일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까지 주장했다.

 바로 이러한 생태주의적세계관에 립각하여 미국의 시인스나이더는 인간을 우주의 중심으로

 보는 공작의 인간 중심주의 사상을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다 

 

<인간은 우주의 심장이며 

음식과 색과 소리를 즐기려고 태여난 

오감(五感)의 총아이다……> 

공자여 , 내등에서 내리거라 

이제 그러한 잡소리는 역겹다. ) 

사실 이러한 생태주의적세계관은 대단히 리상적인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의 현실적으로 마주치고있는 사상이다. 이런 생태주의를 배부른 놈들의 홍타령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빨리 우리의 눈앞에 다가와 있다. 작년만 해도 장강의 수위가 130년전 처음 기록을 시작한이래 최고에 이르렀다.

 

그동안 중국의 젖줄기와 같은 구실을 해온 장강이 이제는 《중국의 눈물》로 바뀌였다. 이 천재지변은 지구의 온난화 현상과 중국대륙의 사막화 현상에서 비롯되 환경재해인것은 분명하다. 때문에 우리는 《배고픈 현실적인 문제》에도 눈길을 돌려야하겠지만 《래일의 근원적인 전인류적인문제》에도 관심을 돌려야 할것이다. 이러한 우주를 가슴속에 두는 드넓은 흉금과 전위적인 의식을 가져야만

세계인과 대화를 나눌 수있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현대성을 획득할수있는것이다 . 오늘의 시접에서 볼때 이러한 현대의식을 지닌 우리 시인들은 많지 못하다. 우리 시단의 이른바 《전위시》, 《선봉시》들은 대부분 모더니즘이나 포스트모더니즘의 겉 핥기로 그 형식 또는 기교의 수용이나 모방에만 급급했지 그 정수의 관념, 사상이나 의식의 수용에는 태만했지 않았나하는것이 필자의 소견이다. 

 

일언이페지하면 우리 시문학은 현실과 민족을 포옹하는 민족적사실주의의 자세와 정신을 강화해

나아가야 할뿐만 아니라 미래를 지향하고 세계와 우주를 가슴에 두는 랑만주의적 자세와 정신도 갖추어야 할것이다. 이래야만 우리 시문학이 중국의 변두리적지위에서 중심적위치에로 이동해 갈수있으며 세계적시단에로 진출할수 있는 가능성과 희망을 가질수있다. 

 

가장 민족적인것이 가장 세계적인것으로 될수있고 가장 현실적인것이 가장 영원성을 가질수있다. 

우리 시인들이여, 민족에 눈길을 돌리고 민족을 포옹하라! 

우리 시인들이여, 현실에 눈길을 돌리고 현실을 포옹하라! 

 

김관웅 략력: 

1951년 연길시 출생.

1982년 연변대학 한어학부 졸업.

연변대학 조선어문학부 석사, 박사과정 마침.

전 연변대학 조문학부 교수, 박사생도사.

주요한 저서로는 《한국고소설사고》 등 10부와 문학창작집

《소설가의 안해》가 있음. 연변문학상, 해란강문학상 등 문학,

 문화상 다수 수상. 전 연변대학비교문학연구소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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