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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윤동주 시 한수 공부하기] - 비둘기
2018년 10월 15일 22시 55분  조회:3800  추천:0  작성자: 죽림

 
비둘기     윤동주


안아보고 싶게 귀여운
산비둘기 일곱 마리
하늘 끝까지 보일 듯이 
맑은 공일날 아침에
벼를 거두어 빤빤한 논에
앞을 다투어 요(모이)를 주우며
어려운 이야기를 주고 받으오.

날씬한 두 나래로
조용한 공기를 흔들어
두 마리가 나오
집에 새끼 생각이
나는 모양이요.


<감상> 비둘기하면 평화와 순결의 상징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이 시에서는 평화와 순결의 상징 비둘기를 빗대어
현실적으로 어둡고 답답한 환경과 심정을 펼쳐 보이고 있는 것 같다. /이 현 숙 


=======================///



[문학으로 읽는 경제원리]
윤동주는 펜으로, 송몽규는 총으로 

 

박병률 경향신문 기자
시(詩)로 시대에 저항했던 청년 윤동주 …
재정·통화정책에도 매파와 비둘기파로 갈려...

 

 
1947년 2월13일 경향신문에 한 청년의 시가 실렸다. 그의 이름 앞에는 ‘고(故)’가 붙었다. 신문사 주간이었던 정지용은 작가를 이렇게 소개했다.

‘간도 동촌 출생. 연전문과졸업. 교토 도시샤대학 영문학과 재학중 일본 헌병에 잡히어 무조건하고 2개년도 후쿠오카형무소에서 복역중 음학한 주사 한 대를 맞고 원통하고 아까운 나이 29세로 갔다. 일황 항복하던 해 2월26일에 일제 최후 발악기에 ‘불령선인’이라는 명목으로 꽃과 같은 시인을 암살하고 저이도 망했다. 시인 윤동주의 유골은 용정동 묘지에 묻히고 그의 비통한 시 10여 편은 내게 있다. 지면이 있는 대로 연달아 발표하기에 윤군보다도 내가 자랑스럽다(※일부 표현은 각색했다)’

시인 윤동주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쉽게 씌여진 시](원문에는 ‘쉽게 씨워진 시’)는 이렇게 세상과 조우했다. 올해는 윤동주 탄생 100주년이다.

윤동주는 자신이 쓴 시마다 시를 쓴 날짜를 기록했다. [쉽게 씌여진 시]는 1942년 6월 일본 도쿄에서 유학중에 쓴 작품이다. 이미 조선어로는 어떤 글도 쓰지 못하게 하던 험악한 때다. 윤동주는 이 시를 친구인 강처중에게 보냈다. 윤동주는 45년 2월 후쿠오카 감옥에서 사망했다. 그로부터 3개월 뒤 조선은 독립했다. 기자가 된 강처중은 이 시를 갖고 있다가 정지용에게 보여줬다. 그의 시는 서거한 지 2년5개월 만에 비로소 대중에게 알려졌다.

[쉽게 씌여진 시]는 부끄러움을 표현할 때 곧잘 인용된다. 일제강점기, 자국의 말도 글도 쓰지 못하는 불합리한 시대에 윤동주는 제대로 항거하지 못했다. 윤동주는 ‘시가 이렇게 쉽게 쓰여지는 것은/부끄러운 일이다’라고 했다. 6첩방은 다다미가 깔린 일본식 방이다. 밤비 내리는 밤, 일본 하숙집에서 자신을 돌아보니 ‘나는 뭐하는가’ 싶었던 게다. 자신은 시인이니까 시만 잘 쓰면 되는 것 아닌가, 자위를 해본다. 하지만 양심에 찔렸다. 일제 치하, 동무들은 싸우다 하나 둘 죽임을 당하거나 실종됐는데 자신만 부모님이 보내주신 학비를 받아 편안하게 유학생활을 즐기고 있는 모습을 끝내 용서할 수가 없었다.

이런 윤동주의 모습은 송몽규와 대비된다. 송몽규는 윤동주의 고종사촌이면서 친구이자 평생의 동지다. 둘은 석 달 차이로 간도 명동촌에서 태어났고, 한 달 차이로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죽었다. 송몽규는 중국 군관학교에 들어가 무력 투쟁을 시도하고, 유학생을 규합할 목적으로 일본 유학을 떠난다. 송몽규는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될 정도의 문재였지만 글쓰기를 포기한다. 글은 주권을 잃은 나라를 구할 수 없다고 생각한 탓이다.

윤동주는 ‘비둘기파’, 송몽규는 ‘매파’성향의 청년이다. 비둘기파란 어떤 문제에 대해 과격하지 않고 온건한 방법으로 해결책을 찾으려는 사람들을 말한다. 이들은 대외정책에 있어서도 대화와 타협, 협상을 중시하고 신중한 결정을 선호한다. 이들에게 비둘기파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온순하고 평화적인 해결책을 도모하는 것이 꼭 평화의 상징인 비둘기를 닮았기 때문이다. 비둘기파가 본격 알려진 것은 베트남전쟁 때다. 전쟁을 더 이상 확대시키지 않고 한정된 범위 안에서 해결할 것을 주장한 주화파(主和派)들을 ‘비둘기파’라 불렀다.

윤동주는 비둘기파, 친구 송몽규는 매파

비둘기파의 반대편에 매파가 있다. 강경론자거나 무력동원을 지지하는 주전파(主戰派)다. 1798년 미국의 제3대 대통령인 토머스 제퍼슨이 처음 사용했다. 국내 정치와 대외정책에서는 보수 강경파를 의미한다. 강력한 보호무역주의, 이민 반대 등을 내세우는 미국의 트럼프 신행정부는 전형적인 매파 정부다. 중동과 북한을 악의 축으로 정의하고 힘으로 해결하려 했던 부시 행정부도 매파정부다.

경제학에서도 매파와 비둘기파가 있다. 재정건전성을 반드시 유지해야 한다는 강경한 태도를 지닌 사람들을 ‘재정 매파’로 부른다. 글로벌 분석기관인 스테이트 스트릿은 최근 ‘긴축의 소멸’이라는 자료를 내고 “재정 매파들이 둥지를 떠나버렸다고 봤던 기존의 가정들이 올해는 반복해서 시험을 받을 것”이라며 “트럼프가 공약한 재정 정책이 완전히 실행된다면 미국 연방정부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 비율은 다음 임기에 100%를 넘어설 수 있다”고 밝혔다. 미국의 현 부채비율은 GDP 대비 77%다. 트럼프는 사회간접자본(SOC) 등에 돈을 퍼부어 경기를 부양하겠다고 공약했다. 감세에 이은 재정 지출로 재정건전성이 급속도로 악화하면 재정 매파들의 목소리가 커질 것이라는 의미다.

통화정책을 놓고도 비둘기와 매가 싸운다. 기준은 물가다. 금리를 인하해 경기를 부양하고 성장을 도모하겠다면 비둘기파다. 반면 금리를 올려 물가를 안정시키겠다면 매파다. 즉 물가를 잡겠다면 매, 물가를 잡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면 비둘기, 이렇게 이해하면 쉽다. 돈을 잡겠다면 매, 돈을 풀겠다면 비둘기, 이렇게 생각해도 된다.

중앙은행은 매파 성향이다. 본업이 물가안정이기 때문이다. 반면 경제정책당국은 비둘기파가 많다. 높은 성장을 통해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 경제당국의 역할이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물가안정을 중시해 매파로 종종 분류된다. 앞선 이성태 총재도 역시 매파였다. 반면 재닛 옐런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은 저금리를 선호해 ‘비둘기파’로 본다. 물론 이 총재나 옐런 의장은 손사래를 친다.

이들은 “통화정책을 결정할 때는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상황에서 판단한다”며 자신을 데이터 디펜던트(Data dependent:경제지표를 보고 통화정책 판단을 판단)라고 강조한다. 통화정책 결정권자 입장에서는 어느 한쪽에 편향됐다는 얘기를 듣기가 부담스러울 것이다.

정지용은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서문에서 “윤동주는 의지가 약하였을 것이다. 그렇기에 서정시에 우수한 것이겠고, 그러나 뼈가 강하였던 것이리라, 그렇기에 일적(日賊)에게 살을 내던지고 뼈를 차지한 것이 아니었던가?”라고 말했다. 윤동주는 비둘기였다. 하지만 비둘기는 결코 매보다 약하지 않았다. 윤동주가 남긴 시는 최고의 저항시로 남아 한국인과 영원히 함께하게 됐다. 윤동주의 시는 안중근·윤봉길 의사의 의거만큼 빛난다. 윤동주는 ‘동(冬)섣달에도 꽃과 같은, 얼음 아래 다시 한 마리 잉어와 같은 조선 청년 시인’이었다.

쉽게 씌여진 시

- 고 윤동주 -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6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 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 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대학 노우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러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린 때 동무들
하나, 둘, 죄다 잃어 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쓰여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6첩방은 남의 나라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 [1942년 6월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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