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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11편 동시묶음
2018년 10월 31일 01시 07분  조회:2636  추천:0  작성자: 죽림
윤동주- 동시 11편 


귀뚜라미와 나와 



귀뚜라미와 나와 
잔디밭에서 이야기했다. 

귀뚤귀뚤 
귀뚤귀뚤 

아무에게도 알으켜 주지 말고 
우리 둘만 알자고 약속했다. 

귀뚤귀뚤 
귀뚤귀뚤 

귀뚜라미와 나와 
달 밝은 밤에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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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줌싸개 지도 


빨랫줄에 걸어 논 
 요에다 그린 지도 
지난 밤에 내 동생 
 오줌 싸 그린 지도 

꿈에 가 본 엄마 계신 
 별나라 지돈가? 
돈 벌러 간 아빠 계신 
 만주 땅 지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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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새 


가을 지난 마당은 하이얀 종이 
참새들이 글씨를 공부하지요. 

째액째액 입으론 받아 읽으며 
두 발로는 글씨를 연습하지요. 

하루 종일 글씨를 공부하여도 
짹 자 한 자밖에는 더 못 쓰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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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머니 


넣을 것 없어  
걱정이던 
호주머니는, 

겨울만 되면 
주먹 두 개 갑북갑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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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울 림 


까치가 울어서 
산울림, 
아무도 못 들은 
산울림. 

까치가 들었다 
산울림, 
저 혼자 들었다 
산울림. 


..................................................................................................................................... 


굴뚝 


산골짜기 오막살이 낮은 굴뚝엔 
몽기몽기 웬 연기 대낮에 솟나 

감자를 굽는 게지 총각애들이 
깜박깜박 검은 눈이 모여 앉아서 
입술에 꺼멓게 숯을 바르고 
옛 이야기 한 커리*에 감자 하나씩 

산골짜기 오막살이 낮은 굴뚝엔 
살랑살랑 솟아나네 감자 굽는 내. 

*한 커리:한 켤레,한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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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외양간 당나귀 
아앙 앙 외마디 울음 울고,  

당나귀 소리에 
으-아 아 아기 소스라쳐 깨고, 

등잔에 불을 달아요. 

아버지는 당나귀에게 
짚을 한 키 담아 주고, 

어머니는 아기에게 
젖을 한 모금 먹이고, 

밤은 다시 고요히 잠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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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선본 


어머니! 
누나 쓰다 버린 습자지는 
두었다간 뭣에 쓰나요? 

그런 줄 몰랐더니 
습자지에다 내 버선 놓고 
가위로 오려 
버선본 만드는걸. 

어머니! 
내가 쓰다 버린 몽당연필은 
두었다간 뭣에 쓰나요? 

그런 줄 몰랐더니 
천 위에다 버선본 놓고 
침 발라 점을 찍곤 
내 버선 만드는걸. 


..................................................................................................................................... 


만돌이 


만돌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다가 
전봇대 있는 데서 
돌재기* 다섯 개를 주웠습니다. 

전봇대를 겨누고 
돌 한 개를 뿌렸습니다. 
-딱- 
두 개째 뿌렸습니다. 
-아뿔싸- 
세 개째 뿌렸습니다. 
-딱- 
네 개째 뿌렸습니다. 
-아뿔싸- 
다섯 개째 뿌렸습니다. 
-딱- 

다섯 개에 세 개…… 
그만하면 되었다. 
내일 시험, 
다섯 문제에 세 문제만 하면- 
손꼽아 구구를 하여 봐도 
허양** 육십 점이다. 
볼 거 있나 공차러 가자. 

그 이튿날 만돌이는 
꼼짝 못 하고 선생님한테 
흰종이를 바쳤을까요? 
그렇잖으면 정말 
육십 점을 맞았을까요? 

*돌재기:자갈 
**허양:거뜬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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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길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내일도……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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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감고 간다 


태양을 사모하는 아이들아 
별을 사랑하는 아이들아 

밤이 어두웠는데 
눈 감고 가거라. 

가진 바 씨앗을  
뿌리면서 가거라. 

발부리에 돌이 채이거든 
감았던 눈을 와짝 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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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론>윤동주 - 여러분은 윤동주 시인을 알고 있나요? 



민족 시인이라 부르는 까닭 


윤동주 시인의 시들을 다 읽고 나니까 마음이 맑고 깨끗하고 아름다워지는 것 같지 않나요? 그건 시 속에 담겨 있는 시인의 마음이 고스란히 우리 마음으로 옮겨 오기 때문일 거예요. 
윤동주 시인은 일제 치하의 어둡고 어려운 시절을 살면서도 맑고 깨끗한 마음을 담은 시들을 많이 남겼어요. 윤동주 시인을 가리켜 '민족 시인'이라 부르는 까닭은 바로 그 때문입니다. 
물론, 독립 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감옥에 갇혀 지내다가 끝내 우리 나라가 광복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스물아홉 살의 짧은 생을 마감했기 때문이기도 하지요. 하지만 그보다는 일제의 가혹한 박해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민족혼을 담은 시들을 많이 남겼다는 사실이 더 큰 의미를 지닙니다. 
시인이 세상을 떠난 지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러 편의 시들이 우리 민족의 사랑을 받으며 널리 읽히고 있습니다. 우리 민족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마음을 시 속에 그토록이나 잘 담아 놓았으니 그렇겠지요. 
더욱이 우리 어린이들이 즐거이 읽을 수 있는 동시까지 많이 남겼으니 온 국민이 함께 애송하는 시를 쓴 '국민 시인'이라고도 할 수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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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기 해란강이 흐르는 땅 


「고향 집」이라는 시를 보면 이런 구절이 있지요. 

헌 짚신짝 끄을고 
나 여기 왜 왔노 
두만강을 건너서 
쓸쓸한 이 땅에 

시에 나타난 것처럼 윤동주 시인이 태어나 자란 곳은 두만강 북쪽에 있는 옛 만주 땅입니다. 지금은 흔히 연변이라 부르는데 그 때는 북간도라고 했지요. 
1800년대 말부터 농사를 짓기에 더 비옥한 땅을 찾아 만주로 떠난 우리 민족의 대이동이 있었지요. 원래 함경 북도에 살았던 시인의 증조할아버지도 두만강을 건너 북간도로 이사를 해서 그 곳에 자리를 잡았던 거래요. 
이사를 해서 더 잘 먹고 살게 되었지만 조국을 떠난 사람들은 그래도 '남쪽 하늘 저 밑'에 있는 고향이 늘 그리웠을 거예요. 그러니 증조할아버지 때 떠나온 고향인데도 윤동주 시인조차 그 곳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시로 나타냈던 것이지요. 
고향을 떠나 살면서도 우리 민족은 고유한 전통을 지키며 강인하게 살았대요. 다른 나라 땅에 가서 살고 있지만 여전히 한민족임을 잊지 않았던 것입니다. 

흰 수건이 검은 머리를 두르고 
흰 고무신이 거친 발에 걸리우다. 
흰 저고리 치마가 슬픈 몸집을 가리고 
흰 띠가 가는 허리를 질끈 동이다. 

「슬픈 족속」이라는 시를 읽으면 그 때 그 곳에 살았던 우리 민족의 모습이 지금도 우리 눈에 생생히 보이는 것처럼 느껴져요. 
버려진 땅을 기름진 땅으로 일구어 내며 우리 민족은 후손들을 가르치는 일도 게을리하지 않았대요. 윤동주 시인이 다닌 명동 소학교도 후손들에게 민족혼을 심어 주기 위해 우리 민족 스스로 세운 학교였지요. 
우리가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겼을 때에도 그에 굴하지 않고 줄기차게 무장 독립 투쟁을 벌였던 곳이 바로 북간도입니다. 김좌진 장군과 홍범도 장군이 이끌던 독립군에 아낌없이 몸을 던진 독립 투사들을 길러 낸 곳, 가곡 「선구자」에 나오는 '일송정 푸른솔'이 서 있고 '한줄기 해란강'이 흐르는 땅, 그 곳이 바로 윤동주 시인이 가슴 속에 민족혼을 키우며 자란 곳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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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자라 무엇이 되려니 


시인 윤동주는 어린 시절에 마음이 아주 여리고 순했대요. 그래서 누가 조금만 꾸짖으면 금방 눈에 눈물이 핑 도는 울보였다네요! 어쩌다 선생님이 무얼 물어 보았는데 대답이 막히면 그 때도 금방 눈물이 핑 돌았다고 해요. 그렇게 여린 감성을 지니고 있었으니까 그처럼 맑고 아름다운 동시를 쓸 수 있었을 거예요. 
어린 윤동주가 태어나 소학교 시절까지 자란 명동촌이라는 마을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아늑한 마을이었습니다. 사시사철 아름다운 자연이 펼쳐지는 곳이었는데, 그 중에서도 눈이 많이 내리는 겨울 경치가 더욱 아름다웠대요. 그래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동시들 중에서도 겨울과 눈을 노래한 것이 많은가 봐요. 
윤동주의 집은 가랑나무가 우거진 야트막한 산 기슭에 있는 교회당 옆집이었대요. 집 뒤와 옆에는 작은 과수원이 둘러 있고 뒷문으로 나가면 수십 길도 더 되는 깊은 우물이 있었는데, 이 우물이 「자화상」이라는 시를 쓴 동기가 되었지요. 윤동주는 친구와 같이 과수원 울타리의 뽕나무에서 오디를 따 먹고, 물을 길어 입을 닦고, 그 우물 속을 들여다보고 소리치며 우물 속에 울리는 소리를 듣곤 했대요. 
윤동주의 가족은 대가족이었습니다. '떡이 쓴데도/자꾸 달다고'하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쓰다 버린 습자지'로 '버선본 만드는' 어머니와 한밤에 깨어나 '당나귀에게/짚을 한 키 담아 주'는 아버지, 그리고 '가위로 종이 쏠'다가 어머니한테 빗자루로 '볼기짝을' 얻어맞는 동생들까지 가족이 참 많았지요. 그래서 나중에 정겨운 가족들의 이야기가 담긴 동시들을 많이 썼지요. 
「편지」라는 동시를 보면 누나가 나오지요. 하지만 윤동주는 그 누나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위로 누나가 하나 있었는데 윤동주가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하늘 나라로 가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그 누나에 대한 그리움을 '흰 봉투에/눈을 한 줌 넣'어 편지로 부치겠다는 말로 표현한 것이지요. 
윤동주는 동생들을 무척이나 사랑하여 아주 다정다감하게 지냈다고 합니다. 나중에 대학에 들어가 서울에 가 있을 때에도 동생들에게 책을 사 보내기도 하고, 방학에 집에 돌아오면 동생의 손을 잡고 산책길에 나서곤 했지요. 그 때 실제로 동생과 함께 나눈 이야기를 시로 쓴 것이 바로 「아우의 인상화」랍니다. 

발걸음을 멈추어 
살그머니 앳된 손을 잡으며 
“너는 자라 무엇이 되려니” 
“사람이 되지” 
아우의 설운 진정코 설운 대답이다. 

이처럼 윤동주의 시들에는 시인 자신이 어린 시절에 겪은 일과 그 후에 자라면서 겪은 일들이 생생하게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시인의 삶과 시를 함께 살펴보는 일이 큰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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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윤동주는 중학교에 들어가 축구 선수로 뛰기도 하고 밤 늦게까지 학교에 남아 등사판 교내잡지를 만들기도 했지요. 특히 재봉질 솜씨가 뛰어나 학교 축구부원들의 유니폼에 등번호 다는 것을 모두 집으로 가져와 직접 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중학교 3학년인 열여덟 살에 윤동주는 최초의 시 작품 3편을 노트에 기록하기 시작했지요. 그 중 하나가 「내일은 없다」라는 시랍니다. 그 후 여러 선배 시인들의 시를 열심히 읽으면서 더 많은 시들을 썼습니다. 특히 「정지용 시집」의 영향을 크게 받아 그 이듬해부터는 동시도 함께 쓰기 시작했는데, 윤동주 시인의 첫 동시는 바로 「조개껍데기」이지요. 
그 후 연희 전문 학교(지금의 연세 대학교)에 입학한 해까지 많은 동시를 써서 북간도 연길에서 발간되던 『카톨릭 소년』에 「병아리」, 「오줌싸개 지도」, 「거짓부리」 등을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부터는 전혀 동시를 쓰지 않게 됩니다. 맑고 밝은 동시를 계속 쓸 수 없었던 까닭은 아마도 일제 치하의 우리 현실이 더욱 힘들어졌기 때문인 것으로 여겨집니다. 동시라는 순수한 그릇에 어려운 현실을 치열하게 담아 내기엔 어려운 점이 많았을 테니까요. 
그 대신 동시 이외의 시들을 열심히 써서 연희 전문 학교를 졸업할 즈음엔 첫 시집을 묶어 내려고 마음먹게 됩니다. 졸업 기념으로 19편의 시를 묶어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제목을 붙이려고 했지요. 그러나 거기에 실린 「슬픈 족속」과 같은 시들이 일본 경찰의 검열을 통과할 수 없다고 여겨져 시집을 내는 일을 포기하게 되었지요. 그 당시에는 일제의 탄압이 더욱 가혹해져서 우리의 민족 의식이 짙게 담긴 글들을 섣불리 내보일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윤동주 시인 자신이 직접 베껴 쓴 시집을 3부만 만들어, 스승 한 분과 가장 절친한 친구에게 각각 1부씩 나눠 주고, 나머지 1부는 자신이 갖고 말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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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감고 가거라 


전쟁을 일으킨 나라들 때문에 세계 정세가 점점 어지러워지면서 우리 민족에 대한 일본의 탄압은 점점 더 심해졌습니다. 우리의 성을 일본식으로 바꾸라는 창씨개명령을 선포하고, 우리의 신문인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를 강제로 폐간시키고, 학교에서 조선어 교육을 전면 금지시켰습니다. 우리의 이름과 말을 빼앗아 민족 의식을 말살하려는 음모였지요. 
시인 윤동주는 성을 바꾸지 않고 있다가 일본에 유학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일본식으로 바꾸게 됩니다. 윤동주라는 이름이 어이없게도 '히라누마 도오쥬우'로 바뀐 것이지요. 그 때 시인은 '파란 녹이 낀 구리거울 속에/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이다지도 욕될까'라는 구절이 있는 시 「참회록」을 써서 그 아픔과 욕됨을 표현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시인 윤동주는 끝끝내 민족 의식을 버리지 않고 줄곧 치열하게 시를 쓰고 공부를 했지요. 「눈 감고 간다」라는 시에서 시인은 세상의 현실이 캄캄한 밤과 같으니 차라리 눈 감고 건너가라고 말합니다. 

태양을 사모하는 아이들아 
별을 사랑하는 아이들아 

밤이 어두웠는데 
눈 감고 가거라. 

가진 바 씨앗을 
뿌리면서 가거라. 

발부리에 돌이 채이거든 
감았던 눈을 와짝 떠라. 

별과 태양을 사랑하는 아이들이니 언젠가 희망과 꿈을 되찾을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들어 있는 시입니다. 그러니 눈 감고 가면서도 씨앗을 꼭 뿌려야 하고, 돌부리에 걸리기라도 하면 다시 눈을 뜨라는 말이지요. 이것은 캄캄한 밤중과도 같은 세상을 살던 그 시절의 어린이들에 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윤동주 시인 자신에게 한 말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마침내 세계 전쟁을 일으킨 일본은 우리 민족마저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합니다. 젊은이들을 징용으로 끌고 가고 학생들마저 학병으로 몰고 갑니다. 그리고 시인 윤동주도 일본에서 독립 운동을 했다는 혐의로 일본 경찰에게 체포됩니다. 
그 시절은 우리 민족의 자유와 행복을 위해 독립을 추구한다는 것 자체가 죄가 되던 시절이었지요. 아주 어렸을 적부터 형제처럼 지내던 고종 사촌 송몽규와 윤동주가 우리 민족의 독립에 대해 모의했다는 이유로 죄를 뒤집어썼던 것입니다. 또한 우리의 민족 의식이 담긴 시를 우리말로 썼다는 것도 죄가 될 수밖에 없었지요. 
시인 윤동주는 징역 2년형을 받고 옥살이를 하면서 끔찍한 생체실험을 당했다는 강한 의혹을 남긴 채 1945년 2월 16일, 해방을 6개월 앞두고 그만 죽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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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잎새에 이는 바람에도/나는 괴로워했다.'고 노래한 시인은 그처럼 안타깝게 스러져 갔지만 시인이 남긴 맑고 아름다운 시들은 이제 우리 가슴에 남아 있습니다.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우리 민족의 마음과 마음을 징검다리 삼아 영원히 남아 있겠지요. 우리 어린이 여러분의 마음도 그 마음들 중의 하나 입니다. 

그 후, 윤동주 시인의 유골은 북간도 용정동산의 중앙 교회 묘지에 묻혔습니다. 시인의 무덤 앞에는 가족들이 '시인윤동주지묘(詩人尹東柱之墓)'라고 한자로 씌어진 비석을 세웠지요. 시인이 남긴 유고들은 친구들과 가족이 잘 보관하고 있다가 한데 모아 1948년에 정음사에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제목으로 시집을 처음 펴내어 세상의 빛을 보았습니다. 그 후, 더 많은 유고들이 보태어져 여러 권의 시집이 출간되었고, 마침내 1999년에는 시인 자신이 직접 쓴 원고들을 사진으로 찍어 『사진판 윤동주 자필 시고전집』(민음사)이 나와서 시인의 흔적을 생생하게 보여 주고 있지요. 
시인의 일생과 작품 세계를 꼼꼼히 적은 책으로는 송우혜 선생님이 지은 『윤동주 평전』(세계사, 1998, 개정판)이 있습니다. 
어린이 여러분이 좀더 나이가 들면 앞에 적은 책들을 꼭 한번 읽어 보세요. 이 동시집 『별을 사랑하는 아이들아』에서 볼 수 없었던 다른 모습들을 더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지금 당장 읽을 수 있는 책으로는 손연자 선생님이 지은 동화집 『마사코의 질문』 (푸른책들, 1999)이 있습니다. 그 책에 실린 '잎새에 이는 바람'이라는 동화가 바로 윤동주 시인에 대한 이야기지요. 
시인의 모교인 연세 대학교 교정에 가면 '서시'가 새겨져 있는 윤동주 시비가 있습니다. 그리고 시비가 있는 자리에서 보면 저만치에 윤동주 시인이 머물던 기숙사의 다락방이 보입니다. 꼭 한번 가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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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동시들과 글은 윤동주 동시집『별을 사랑하는 아이들아』(푸른책들, 1999)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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