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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윤동주 시 한수 공부하기] - 비로봉
2018년 11월 25일 21시 37분  조회:2974  추천:0  작성자: 죽림

비로봉

          /윤동주

만상을

굽어보기란ㅡ

무릎이
오들오들 떨린다.

백화
어려서 늙었다.

새가
나비가 된다.


정말 구름이
비가 된다.

옷자락이 
춥다.

1937.9.


================///


평양,
그리고
윤동주의 '서시'와 '비로봉'
 
유시경 신부(성공회 교무원장, 평통연대 운영위원) 평화칼럼
 
 
 
 

 

 


올해는 시인 윤동주의 탄생 100주년이다.(1917-2017) 나는 2000년부터 2010년까지 10년간 윤동주의 첫 일본 유학지인 동경의 릿쿄대학에서 교목으로 일했다재직 중에 알게된 사실은한국에서는 유치원생도 알 정도로 유명한 시인이지만일본에서는 아주 일부 일본인들을 제외하고는 시인의 존재가 전혀 알려지지 않은 상태였다다만윤동주 시인을 기억하는 극소수의 일본인들은 시인의 오늘날의 위상에 큰 공적을 남겼다이 중에는 70년대에 시인의 존재를 수필로 알려 교과서에 실리게 한 분유학생 독립운동 취조와 재판 기록을 발굴한 분, 80년대에 시인의 시집을 일본어로 번역한 분아직 한국이 중국과 수교되기 전에 고향에서 묘소를 발견한 분, 90년대 들어 광복 50주년의 해인 1995년에 KBS와 NHK 공동으로 다큐멘터리를 만든 분고향방문단을 조직하고 이후 줄곧 윤동주 연구에 헌신한 분두번째 유학지인 쿄토 동지사대학에 시비를 세운 분들, 20년 이상 후쿠오카 형무소 유적지에서 시낭독 모임을 해온 분들쿄토 우지강가에 시비를 세운 분들 등결코 적지 않은 분들이 있었다.

 

이 분들과 연결되면서동경에서도 윤동주 추모회를 조직하고 2007년부터 매년 시인의 기일에 맞춰 동경 릿쿄대학에서 추모집회를 10년간 개최하고 윤동주 장학금을 만들었다이렇게 시인을 기억하고 조금씩 배움과 깨달음이 늘어가는 가운데뒤늦게 다시 알게 된 중요한 사실이 있다연변 조선족 자치주의 윤동주 연구가들을 통해 북한에서도 90년대에 윤동주 시인이 재평가되고 있다는 점이다. "일제시대 식민지 통치의 가장 포악하고 암담한 그 마지막 시기 조선문학 발전 역사에서 특기할만한 사실 중의 하나는 시인 윤동주의 출현이다."(박종식 '통일문학') 또 한가지 중요한 사실은고 문익환 목사가 1989년 3월 평양 방문 때에환영 인파 앞에서 연설 중에 윤동주의 서시를 인용한 일이다문익환 목사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는윤동주와, "모든 통일은 선"이라고 외친 장준하의 마음으로 대화하러 왔노라고 선언했다윤동주도 장준하도 문목사의 용정 명동초등학교의 동창이었다.

 

동주가 비운의 죽음을 맞이한 것은 해방을 반년 앞둔 1945년 2월 16일이다시인의 가슴 속에는 오로지 분단 이전의 "통일 한국"만이 존재했다. 1936년 평양 숭실고가 신사참배 거부로 폐교를 당해 고향으로 돌아와 광명중학교에 다니던 시인은 수학여행으로 금강산을 다녀왔고시를 한 수 읊었다.

 

비로봉

 

만상을

굽어 보기란-----

 

무릎이

오들오들 떨린다.

 

백화

어려서 늙었다.

 

새가

나비가 된다.

 

정말 구름이

비가 된다.

 

옷 자락이

춥다.

(1937.9)

 

지금 통일의 꿈이 멀어지고 작아지는 듯한 어려운 때이지만시인 윤동주가 걸었던 금강산 등산로를 남과 북의 젊은이들이 함께 오르는 평화통일 시대를 꼭 열고 싶다북의 청년들이 한라산 백록담을 보고남의 처녀들이 백두산 천지를 함께 노래하는 때를 앞당기고 싶다윤동주의 100주년에 부끄럽기 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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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신촌 연세대 내 핀슨홀 2층에 마련된 윤동주문학관. 윤동주와 관련한 원고와 평전 등을 전시하고 있다.
 
 

유성호의 윤동주 100주년, 문학과 역사  
- 작가 송우혜의 집념으로 탄생한 ‘평전’
 

◇ 비허구 장르의 흐름 

최근 우리의 시선을 강렬하게 붙잡고 있는 책들 가운데는 이른바 ‘비허구 장르’가 많다. 회고록이나 자서전 같은 전통적 나르시시즘 독서물도 많지만, 사실적 기억에 토대를 둔 이른바 증언문학도 많이 눈에 띈다. 일례로 연전에 노벨문학상을 받은 우크라이나의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팩트와 픽션의 경계를 허물면서 인류가 겪어온 전쟁과 학살과 재난 현장의 고통을 기록해 왔고, 그렇게 사실성의 기억으로 그녀만의 문학적 기념비를 세웠다. 전통 서사인 소설보다 논픽션에 가까운 기록문학의 요청이 절실해진 측면도 이러한 평가를 가능케 했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소설가 김숨의 최근 장편 ‘한 명’은 일제강점기 종군위안부 문제를 제재로 하여 증언으로서의 속성과 기억의 문화사로서의 지향을 추구한 확연한 결실이다. 이 작품은 비록 허구이지만, 정밀한 역사적 자료와 기억의 재현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최근 흐름을 입증하고 있다. 

윤동주와 관련하여 이런 생각이 오래도록 떠나지 않는 것은, 그 역시 이러한 기억과 증언에 의해 우리에게 알려지고 각인된 대표적 사례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가령 윤동주는 자신의 삶과 생각과 실천에 대한 산문적 정보를 일절 남기지 않았다. 개개 시편에는 꼼꼼하게 창작연월일을 일일이 달아놓았지만, 그에 상응하는 산문, 이를테면 일기나 고백적 에세이를 남기지는 않았다. 그래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윤동주에 대한 자료는 그가 남긴 소중한 시편들과 4편의 문학적 산문뿐이다. 하지만 윤동주를 우리가 정확하고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었던 데는, 그의 가족과 지인과 선후배들의 증언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것은 대부분 정확한 기억과 우호적인 증언이었고, 그 기억과 증언에 기초하여 그의 시편들이 낱낱의 풍부함을 얻으면서 윤동주라는 상(像)이 형성, 착근되어간 것이다. 시집 초판에 거의 첫 기억을 남겨준 아우 윤일주, 초판에 서문과 발문을 달았던 정지용과 강처중, 육필 시집 원본을 보관했다 세상에 알린 정병욱, 그리고 윤영춘, 윤혜원 등의 가족들, 김정우, 문익환 등의 북간도 친우들의 기억 속에서 윤동주는 선하고 치열한 생을 살아간 시인의 모습으로 충일한다. 이분들의 기억과 증언이 없었다면, 아마 우리가 아는 윤동주는 텍스트 안으로 옹색하게 갇혀버렸을 것이다.



◇ 청춘과 사랑과 실천의 기억들 

이러한 기억과 증언의 최전선에 위치하는 송우혜의 ‘윤동주 평전’은 우리 근대문학사의 비허구 장르 가운데 가장 소중한 자산이 아닐 수 없다. 문제적 개인의 생애를 재현하면서도 거기에 작가의 상상력이 개입하는 ‘사실적 허구’의 양식이 바로 평전일 것인데, 이 책은 가장 순결하고도 고독한 삶을 살아갔던 윤동주 시인을 통해 험난했던 한 시대를 전체적으로 통찰하게 하는 평전문학의 속성을 잘 보여주는 방대한 노작(勞作)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 송우혜는 북간도 역사에 대해 누구보다도 열정적으로 연구해온 근대 사학자이다. 그 점에서 그가 윤동주 연구에 착수하고 기념비적인 저서를 낸 것은 어쩌면 필연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북간도의 가파른 역사를 연구해온 송우혜가 윤동주 평전에 가장 적합한 작가임을 알아본 이는 시인 최하림이었다. 최하림의 권면으로 송우혜는 윤동주 평전에 착수할 수 있었다. 지난해 개봉해 커다란 호응을 얻은 영화 ‘동주’의 감독 이준익은 “평생을 함께한 오랜 벗 윤동주와 송몽규, 두 사람이 어떻게 시대를 이겨냈고, 그 시가 어떻게 이 땅에 남았는지, 그 과정을 영화로 담고 싶다는 바람 하나로 이 작품을 시작했다”는 말을 했는데, 이들의 신산한 세월을 흑백 화면에 담아 고고학적 속성을 높여간 이 영화의 저본이 된 것 역시 송우혜의 이 책이었다. 

어쨌든 송우혜의 평전은 ‘지금 여기’에서 윤동주-송몽규-강처중으로 이어지는 청춘과 사랑과 실천의 아름다운 기억들을 우리에게 탕진되지 않는 감동으로 전해주고 있다. 송우혜는 평전 서문에서 “나의 아버지 송두규 목사님의 삼종형인 송몽규 어른이 윤동주 시인의 동갑내기 고종사촌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라는 점이 더욱 집필의 동력이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는데, 이처럼 윤동주와 송몽규라는 형제요, 친구요, 운명적 동지에 대한 고증과 각인은 송우혜의 노고가 없었다면 세상에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다.


▲  송우혜 작가와 윤동주 평전 표지. 왼쪽부터 1998년 세계사, 2004년 푸른역사, 2014년 서정시학 출간본.

◇ 판을 거듭해간 새로운 기억들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 책은 열음사 주간이었던 최하림의 정성스러운 부탁을 작가가 오랜 숙고 끝에 받아들인 결실이었다. (이때 우리는 최하림 역시 또 한 편의 명작 ‘김수영 평전’의 저자라는 사실을 삽화처럼 만나게 된다.) 송우혜는 이 책에서 몇 가지 놀라운 사실을 밝혀내는데, 가장 감동적으로 다가온 부분은 윤동주의 동기 동창이자 함경도 사나이인 강처중에 대한 발견 과정이었다. 처음에는 강처중이 처형되었다는 증언을 기록했는데, 나중에 그 글을 읽은 강처중 가족이 그 기억을 수정해준 과정은 평전문학의 백미였다. 판을 바꾸면서까지 그 변모 과정을 기록해내는 작가 정신은 적지 않은 감동과 외경을 내게 주었다. 나는 지난해 3월에 방영된 KBS 다큐멘터리에서 강처중의 가족이 증언하는 것을 보고는, 이 또한 송우혜의 공적이라고 속으로 되뇌었다. 또한 작가는 윤동주의 여동생 윤혜원의 헌신적 증언에 대해서도 깊은 사의를 표하면서, 다음과 같이 이 책을 가능하게 했던 분들을 호명하고 있다. 마치 윤동주가 별마다 소중한 이름을 하나하나 붙여간 것처럼 말이다. 

윤동주 시인의 명동소학교 4학년 때 담임이었던 현준명 선생님, 중국 낙양군관학교에서 송몽규와 같이 훈련을 받았고 또 후일 윤동주와 송몽규가 연전 입학시험을 치르러 처음 서울에 왔을 때 숙소를 제공해 주었으며 윤동주와 함께 북아현동에 있는 정지용 시인의 집에 찾아갔던 라사행 목사님, 일본 경도(교토)에서 사건의 공범으로 윤동주와 같은 날 일본 특고경찰에 체포되어 수감되었던 고희욱 선생님…. 그런 분들이 별세하기 전에 만나서 직접 생생한 증언을 들을 수 있었던 것은 큰 행운이었고, 두고두고 큰 위로가 되었다. 

이 ‘행운’과 ‘위로’의 끝에 작가는 네 번이나 판을 거듭하면서 새롭게 증보된 윤동주 평전을 태어나게 하였다. 그 과정은 다음과 같다. 초간본은 1988년에 ‘열음사’에서 나왔고, 1차 개정판은 1998년에 ‘세계사’에서, 2차 개정판은 2004년에 ‘푸른역사’에서 나왔다. 그리고 이 책은 지금 ‘서정시학’에서 출간되고 있다.

그렇게 여러 번 판을 거듭할 때마다 작가는 매우 중요한 자료들을 공개하고 그에 대한 예리하고도 전문가적인 해석을 덧보태 갔다. 특별히 소설가로서의 정확하고 소통 지향적인 문장은 이러한 성과를 대중에게 알리는 데 더없는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송우혜의 평전은 그야말로 수많은 인터뷰를 하고 발로 뛰면서 귀납한 자료들을 적정한 곳에 배치하고 또 풍부하게 해석하는 과정을 거쳐 윤동주와 송몽규의 연대기를 차근차근 구축해 간다. 책의 구성은 자연스럽게 전(傳)적 체제를 취하게 되었고, 시인의 출생부터 성장 과정을 거쳐 가혹한 죽음에 이르는 과정이 치밀한 고증과 필치로 드러나고 있다. 



◇ 평전의 세목과 성취 

책의 1장에서는 시인의 출생 과정을 담고 있는데, 이는 윤동주 개인사라기보다는, 2장 ‘지사들의 마을 명동’, 3장 ‘해란강의 심장 용정’과 함께 북간도의 역사이자 일제강점기 우리 민족의 이산(離散, diaspora) 역사로서도 결코 모자람이 없다. 북간도 근대사 연구자로서의 작가의 역량과 개성이 유감없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송우혜 득의의 영역이라 할 수 있는 4장 ‘송몽규 이야기’는 다른 어떤 책에서도 확인 불가능한 창의적 궤적이다. 윤동주와 송몽규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면서도 송몽규 개인의 생각과 실천을 올바로 드러냄으로써 한국 독립 운동사의 한 페이지를 추가했다는 보람을 가질 만하다. 영화 역시 이 장에 많은 빚을 졌다. 

‘평양에서 보낸 7개월’을 지나 다시 용정에 돌아와 공부를 마치는 과정이 삽화처럼 펼쳐져 있고, 7장 ‘젊음의 정거장, 서울 연희전문학교’에 오면 이 책은 윤동주의 주옥같은 시편들이 쓰이는 맥락과 배경에 대한 더없는 참고서가 되어준다. 사실 윤동주는 이 시절에 가장 아름다운 절편(絶篇)들을 썼거니와, 이때 윤동주가 겪었던 신앙적 고민이나 시대에 대한 아픔 같은 것은 송우혜의 답사와 서사적 상상력이 없었더라면 제대로 재현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8장 ‘6첩방의 고장, 일본’과 9장 ‘체포, 재판, 복역, 옥사’에서는 일본인들의 도움과 증언이 많은 역할을 하였고, 특별히 최근 공개된 판결문들을 실증적으로 제시하고 해석함으로써 일본 현지에서 일어났던 우리 독립 운동사의 흔적을 선명하게 알려준다. 마지막 10장 ‘시인윤동주지묘’와 11장 ‘민족시인의 영광’은 죽음 이후의 윤동주에 대한 소묘로서, 정지용과 강처중의 역할을 새삼 드러나게 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고 정연하게 정리된 소중한 연보로 책은 끝이 난다.


◇ 불멸의 기억을 가능케 한 기록 

 
이처럼 송우혜의 저작은 우리 시대 평전문학의 대표 격이 되어주고 있다. 물론 작가 송우혜의 열정은 또 다른 자료가 공개될 때마다 판을 거듭해갈 것이다. 사실 윤동주 연구의 역사에서 아이러니가 있다면, 하나는 문학 연구자가 아닌 역사학자가 시인에 대한 가장 적확하고 풍부한 기록자가 되었다는 사실이고, 다른 하나는 윤동주에 대한 중요한 발굴과 발견에 일본인들이 커다란 역할을 했다는 사실이다. 이제 우리는 정지용이 시집 서문에서 “무시무시한 고독에서 죽었구나! 29세가 되도록 시도 발표하여 본 적도 없이!”라고 기억했던 그 오롯한 ‘고독’이 윤동주를 불멸의 시인으로 남게 했다는 사실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불멸의 기억을 지금 우리가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송우혜의 노고 때문이다. 다행스럽고 귀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 나는 윤동주 시 전편 해설서를 쓰고 있다. 평전으로는 송우혜 저작을 넘어설 수 없어서, 작품을 꼼꼼히 읽어내고, 시의 영향사와 수용사를 알리고, 그가 가장 성실한 ‘학생’(윤동주는 평생 학생이었고, 학생으로 죽었다.)으로서 선행 고전들을 수용하며 결국 그것을 넘어서는 성장 드라마를 보여주었다고 논증하려고 한다. 이 또한 윤동주 기억의 결정(結晶)으로서의 송우혜 선행 업적이 없었다면 착수하기조차 어려웠을 것이다. (문화일보 8월 22일자 25면 5회 참조) 


/문학평론가 한양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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