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 내 미 대통령 가족이 생활 공간을 관리하는 약 90명의 직원에게 4년 또는 8년마다 주인이 바뀌는 1월20일은 가장 바쁜 날이다. 미국 대통령 가족의 주(主)생활 공간인 백악관 2층에는 16개의 방과 6개의 화장실이 있다. 또 3층에도 대통령 가족이 운동과 음악 청취 등 여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간이 있다.

백악관 2층의 대통령 가족 생활 공간/whitehousemuseum.org
 
백악관 2층의 대통령 가족 생활 공간.

백악관 관리 직원들이 20일 정오를 기해 주인이 바뀌는 이 곳에, 새 주인의 기호에 맞춰 새 가구들을 배치하고 새로운 용도에 맞게 방들을 마련하는데 허용된 시간은 약 5시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날 아침 일찍 취임식 참석 없이 바로 플로리다 팜 비치의 마라-라고 자신의 휴양지로 떠나면, 트럼프 부부의 나머지 짐들도 마라-라고로 떠나게 된다. 나가는 이삿짐에는 2019년 2월에 트럼프 대통령이 5만 달러를 들여 설치한 전세계 유명 골프코스를 골라가며 스윙 연습을 할 수 있는 골프 시뮬레이터와, 60인치 대형TV도 포함돼 있다.

트럼프의 짐이 빠져도, 바이든의 짐이 바로 들어올 수는 없다. 바이든 가족의 짐은 인근 메릴랜드 주의 한 창고에 주말부터 와 있지만, 공식적으로 그가 대통령 취임선서를 한 다음인 낮12시1분까지는 백악관에 풀 수가 없다. 따라서 그때쯤 대통령이 된 조 바이든과 퍼스트레이디 질 바이든 부부가 이날 오후 늦게 입주하기까지 5시간밖에 없다는 것이다. 2009년 미셸 오바마에게 백악관 안살림을 넘겨준 로라 부시의 비서실장이었던 애니타 맥브라이드는 “아무리 준비해도 늘 혼란스러워서, 직원들이 종종 접이시기 간이침상이나 계단에서 자면서 이삿짐을 꾸린다”고 뉴욕타임스에 말했다.

 

그런데 올해 백악관 입주는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 결과 반박과, 코로나바이러스 방역 등으로 인해 더욱 혼란스러웠다. 여느 ‘정권 이양 기간’과 달리, 트럼프는 대선 결과를 뒤집는데 집중해, 그에게 백악관을 떠날 준비를 한다는 것은 우선 관심사가 아니었다. 퍼스트레이디 멜라니아 트럼프가 미래의 퍼스트레이디 질 바이든을 백악관에 초청해서 미리 둘러보고 직원들과 얼굴을 익히게 하는 절차도 없었다.

 

백악관 여주인들이 커피 타임을 갖고, 직원들을 소개하고 치프 요리사와 얘기하고 궁금한 것을 미리 물어보는 시간을 갖는 것이 관례였다. 그래서 로라 부시는 대통령 취임식 전에 미셸 오바마를 두 번 백악관으로 초청했고, 미셸 역시 멜라니아를 미 대선이 끝난 며칠 뒤에 백악관으로 초청했었다. 그러나 멜라니아 트럼프는 수 주 동안 짐을 싸고 열네 살 된 아들 배런을 챙기며 앞으로의 계획을 짜기에 바빠, 질 바이든과는 전혀 의사소통을 하지 않았다. 물론 4년 전까지 부통령이었던 바이든과 아내는 이 백악관 거주 공간이나 직원들을 잘 알고 있기는 하다.

코로나 탓에 바이든 팀은 백악관 구석구석을 소독하는데 열을 내면서도, 바이든 부부의 20일 백악관 입주를 만류하고 있다. 아예 바이든의 일부 참모는 20일에 입주하지 말고, 영빈관인 인근 블레어하우스에 며칠 묵으라고 조언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