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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림성 조선족들의 전통상례문화 현황
2014년 11월 19일 13시 17분  조회:2908  추천:1  작성자: 현용수
(제1회 한국전통상례문화 국제학술세미나 지정논문)
길림성 조선족들의 전통상례문화 현황
발표인 중국 현용수
 
1, 중국조선족과 조선족 전통상례풍속
 
중국에서는 우리민족을 《조선족》이라고 부르는데, 현재 법적으로 등록되여 있는 중국 55개 소수민족중에서 비교적 선진적인 민족에 속합니다.
중국에는 조선족 인구가 약200만좌우 있는데, 주요하게 동북삼성에 분포되여 있습니다. 길림성의 조선족 인구는 약130만 좌우로서 전국 조선족 인구의 60%이상을 차지하며, 그중에서 80만 좌우가 연변조선족자치주에 호적등록이 되여 있습니다.
중국조선족 선민들 대부분은 1850년대 이후에 한반도로 부터 중국 동북지구에 들어와 정착하게 되였는데, 160여년 력사의 연혁을 거쳐, 점차 당대 중국의 한갈래 비교적 선진적인 소수민족으로 발전하였습니다.
중국조선족의 중국국적은 당국에 입적신청을 올리여 얻은것이 아닙니다. 장기간의 간거한 전쟁환경 가운데서 중국공산당의 령도를 접수하였고, 그 어느 소수민족보다도 엄청난 희생을 내였으며, 새 공화국 창립전쟁에 직접 참여하여 혁혁한 공훈을 세운 결과입니다. 중국에서 조선족은 당당한 개국민족중의 하나입니다. 나라급 노래인 《중국인민해방군 군가》도 바로 우리민족의 음악가 정률성 선생이 전쟁년대에 지은 것입니다. 정률성 선생의 고향이 한국의 전남 광주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중국조선족의 한반도에서의 본원지는 비교적 광범위 한데, 그들이 중국에 가지고 들어온 상례풍속도 지방에 따라 정도 부동하게 차이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중국의 특정된 환경에서 장기간 공동히 생활하는 가운데서, 점차 중국특색의 조선족 상례풍속이 형성되였습니다. 
문화혁명 이전까지 중국조선족들은 그래도 기본상에서 한반도에서 가지고 들어온 전통상례풍속을 실행할수 있었습니다. 상례를 한개 군체의 공동대사로 삼고 공동으로 처리하였으며, 종래로 상가의 사적인 개인일이라고 여기지 않았습니다. 마을마다 丧舆契와 같은 자발적인 민간 상조조직들이 있었으며, 집체로 자금을 내여 丧舆(조선족 전통장례에서 썼던 운구공구, 香徒, 灵輀라고도 함)를 만들어서는 마을에서 떨어진 편벽한 곳에 상두집을 지어놓고 보관하였으며, 도감을 한사람 선발하여 마을의 장례행사를 관리하게 함으로써, 일단 마을에서 사람이 죽게되면 굴심을 할 사람과 상여, 그리고 상여를 멜 사람들까지 통일적으로 배치하였습니다. 마을에서 제일 나이가 많고, 덕망이 높은 좌상어른은 마을에서 진행되는 매차례의 장례의식을 엄격히 감독하였으며, 집집의 제사에 대하여서도 구체적으로 지도하여 주었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가풍을 다스리고, 족풍을 단정히 하고, 민족의 우량한 전통이 대대로 이어지도록 보증 하였습니다.
문화혁명이 폭팔하면서 조선족 전통상례풍속에서 제일 먼저 재앙을 당한것이 상여였습니다. 1967년 《네가지 낡은것을 때려부시는》 운동이 터지면서, 연변각지의 상여는 거의 같은 시간에 각지의 반란파들에게 의하여 봉건미신 물건짝으로 판결받고, 학교마당에 끌려나와 두들겨 부서지고, 모조리 불타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후에는 간단한 운구용 소수레로 상여를 대체하고, 장례제도를 최저한 간단하게 하였으며, 일체 소위의 미신색채를 띤 장례절차를 일률로 금지하였습니다. 그후로 부터 당시의 락후한 경제조건하에서, 또 좌적 사상의 영향을 받은 각지의 조선족 주민들은 간단하게 대충 치르는 이런 상례제도에 점차 습관되였으며, 조선족 전통상례풍속은 점차 빛을 잃게 되였습니다.
문화혁명이 결속된후, 1980년대부터 시작하여 나라에서는 성시를 중심으로 조건이 되는 지방에서는 모두 유체를 화장 할것을 제창하였습니다. 초기에 대부분 조선족 주민들은 감정상에서 일시 이렇게 화장하는 장례제도를 접수하기 어려워 하였습니다. 그러나 형세의 발전과 더불어, 1985년에 국무원에서는 《빈장관리에 관한 잠행규정》을 내오고, 1997년에 이르러 정식으로 《빈장관리 조례》를 출범 시키면서, 전국적으로 모든 장례업을 통제하고, 성시를 중심으로 조건이 되는 지방에서는 일률로 유체를 화장한다고 규정하였습니다.
나라에서 《조례》를 제정하여 화장제도를 실시하게 된것은 시대 발전의 수요로서, 자손만대에 덕을 쌓는 좋은 일일수 있으며, 조선족 전통상례풍속의 기본리념과 근본적으로 충돌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화장제도를 실시하면서 부터, 조선족 전통상례풍속은 원래의 사회질서가 변동되였고, 새로운 형세하에서 또 나라의 인정과 사회의 중시를 받지 못하였으며, 민간인들의 아리숭한 기억에 의하여 간신히 지탱하여 오다가, 인젠 시대의 충격속에 완전 매몰되여 가고 있습니다.
 
2, 《조선족 상례풍속》과 《조선족 상례문화》
 
중국에서 조선족 전통상례풍속은 종래로 문화적 차원에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만큼 우리 조선족 전통상례풍속은 이념상에서 성숙되지 못하였고, 규범상에서 통일되지 못하였으며, 민속으로서의 특색이 돌출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지난 1980년대부터 나라에서 화장을 주요목적으로 하는 장례개혁을 시작하면서 회족, 위그르족, 따지크족 등 이슬람 종교를 신앙하는 열개 소수민족의 전통장례풍속은 국가적 보호대상에 들었지만, 우리 조선족 전통장례풍속은 국가적 보호대상에 들지 못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연변을 비록 조선족자치주라고는 하지만 연변경내의 병원이나 빈의관에는 특별히 조선족 상가를 대상으로 하는 써비스 시설이나, 써비스 항목을 따로 설치하지 않았으며, 그로하여 조선족 상가에서는 어설푼대로 나라에서 제공한 통용방식으로 장례를 대충 치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특히 길림성에서는 다른 지방보다 한걸음 더 나아가, 병원의 사체실마저 취소하였고, 사망이 판정된 사체를 병실에서 즉시로 화장터 냉동실로 옮겨야 하였기 때문에, 염습을 병실의 다른 환자들이 보는 앞에서 부랴부랴 끝내야만 하였습니다.
이렇게 30여년의 세월이 지나면서, 조선족 전통상례풍속에 대하여 익숙히 알고 계시던 많은 조선족 로선배님들은 선후하여 모두 사망하셨고, 장기간 조선족 전통상례풍속이 필요없게 된 상황에서 조선족 전통상례풍속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점점 사라지게 되였습니다.
조선족들이 보편적으로 자기의 전통상례풍속을 모르게 되니, 직접적으로 초래되는 그 악과로, 가정에서 효도가 약화되고, 전통이 끊어지고, 사명감이 없어졌으며, 민족의 퇴화가 너무나 놀라울 정도로 가속화 되였습니다.
이런 사회배경에서 전반 조선족 사회는 엄중한 생존 위기를 느끼게 되였으며, 조선족 문화계에서는 급속히 퇴화하는 민족을 만구하기 위하여, 반드시 잃어버린 전통문화부터 찾아야 한다는 공동의념이 형성되였습니다. 이런 의념의 추동하에 우리의 조선족 문화인들은 자발적으로 몇년간의 간거한 노력을 들여, 연변지역을 중심으로, 중국 동북삼성의 광범위한 조선족 집거지역을 심도있게 답사하였으며, 조선족 전통풍속습관에 대하여 전면적으로 상세하게 발굴정리 하였습니다.
그 기초상에서 2009년에 우리는 《조선족 상례풍속》을 정리하여 나라에 비물질문화유산으로 신청하였고, 많은 노력끝에 끝내 길림성 비물질문화유산 등록에 성공하였으며, 우리가 전수인 대표로 지정되였습니다.
2010년말, 우리는 정부 주관부문의 지지를 쟁취하여, 연변력사상 처음으로 《조선족 상례풍속》세미나를 개최하였는데, 회의에는 20여개 부문의 주관책임자들이 참석하였고, 덕망높은 학자들과 문화인들이 합작분공하여, 여덟편의 무게있는 논문을 발표하였으며, 《조선족 상례풍속》의 론리성, 합리성, 필요성을 논증하였습니다.
그 기초상에서 우리는 핵심을 《효도》로 하고, 주체를 《례의》로 하는 새시대 《조선족 상례풍속》체계를 건립하고, 초보적으로 문화적 차원으로 승급시켜 놓았습니다.
이때로부터 중국 조선족에게 비로서 나라의 인정을 받는 자기의 상례문화가 있게 된 셈입니다.
풍속습관도 문화의 범주에 속하지만, 아직 완미하지 못한 문화이며, 그 위상은 근근히 나라에서 존중한다는 차원에 그침니다. 풍속습관이 문화적 차원으로 승급하려면, 역사가 길고, 체계가 완미하며, 특색이 돌출한 기초상에서, 충분히 학술적 논증을 거쳐야만 합니다. 이때의 그 위상은 나라에서 보호하고, 발양하는 차원으로 승급합니다. 우리들이 발굴하고 정리한 《조선족 상례풍속》은 정부부문 전문가들의 충분한 평심을 거쳤고, 학자들의 여러면의 논증을 거쳤으며, 이미 길림성 무형문화재로 등록되여 나라의 보호를 받고 있으니, 당연히 합격된 《조선족 상례문화》라고 할수 있습니다.
중국의 여러민족 상례풍속 가운데서, 진정 문화적 차원에 도달한 풍속은 그리 많지 못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여기에서 완전 해결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비록 초보적으로 조선족 상례풍속을 문화적 차원으로 승급시켰다고는 하지만, 이 문화가 진정으로 회복되고, 자기 작용을 발휘하자면 아직도 많은 길을 걸어야만 합니다. 첫째는 조선족 상례문화 규칙본이 나와야 하고, 둘째는 조선족 상례문화 운행과 보호 시스템이 완미화 되여야 하며, 셋째는 전 민족적으로 조선족 상례문화에 참여하고, 그 혜택을 받을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오늘까지 게으름 없이 노력하여 왔으며, 또한 계속 노력할 것입니다.
 
3, 《조선족 상례풍속》과 《조선족 실용상례》
 
우리는 전통적인 《조선족 상례풍속》에 근거하여, 《조선족 실용상례규범》을 내왔습니다. 《조선족 실용상례규범》은 크게 세가지 부분으로 나뉩니다:
,초종(初終), ,안장(安葬), ,제사(祭祀).
첫번째 부분: 초종(初終)
초종에는 임종, 수의, 고복, 소렴, 대렴, 명정, 령좌, 성복, 조문, 수령(밤지킴), 고별 … 등 내용들이 있습니다.
《조선족 상례풍속》은 자고로 사회 최하층 서민들의 상례를 계승한 풍속이기 때문에, 왕실과 양반계층의 상례를 계승한 한국의 전통상례풍속과 대비하여, 비교적 소박하고, 간단한 것이 특징입니다. 그리하여 조선족 수의는 고인이 평소에 가장 아끼던 민족례복으로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새로 장만하는 상품수의 경우에도 될수록 사치하고 화려한 것을 피합니다.
고복의 경우, 과거에는 지역에 따라 《옥보》를 부르는 지역, 《옷보시요》를 부르는 지역, 《잘가시요》를 부르는 지역 등 몹시 혼란하였으나, 그것들은 모두 글을 몰랐던 우리 조선족 선인들이 장례법을 구전으로 이어오는 과정에서 잘못 전해진 것으로 판단하고, 지금은 《아무개 돌아오세요!》로 통일 하였습니다.
중국조선족 선인들 대부분은 재황을 피하여 중국에 건네온 서민들이며, 그네들 중에 대부호 가문이나, 정부관리들은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조선족 상례풍속》에서 명정을 쓸때에 남성의 시호를 일률로 《學生》으로 하고, 녀성의 시호를 일률로 《孺人》으로 한다고 규정하였습니다. 그리고 성시에서는 명정을 더는 기발로 쓰지 않으므로, 명정의 폭을 많이 줄이여, 길이 네치, 너비 한치 되는 붉은 천으로 하고, 염습을 마친 유체우에 덮었다가 함께 화장한다고 규정하였습니다.
그리고 현재 중국의 각지 조선족들에게는 초종에서 아직 자기의 추모관이 따로 없으니, 성복, 조문, 밤지킴을 보통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시급히 해결해야할 과제입니다.
두번째 부분: 안장(安葬)
안장에는 굴광, 천구, 상여, 발인, 안장, 이장, 합장, 묘비 … 등 내용들이 있습니다.
몇해전까지만 하더라도 연변경내에 조선족들이 상사에서 상여를 쓰는 산촌마을이 몇곳 있었는데, 지금은 거의 모두가 쓰지않고 있습니다. 주요원인은 산구 도로조건이 개선되여 화장터 령구차가 들어 못가는 마을이 기본상 없어졌으며, 화장이 매장에 비해 많이 간편하고, 또 조선족 출국붐에 마을의 청장년들이 대량 출국하여, 전통식으로 매장하려 하여도, 상여를 멜 사람조차 조직하기가 어렵게 되였기 때문입니다.
지금 화장하여 골회를 따로 받지 않고 그대로 날려 보내는 경우가 많으며, 또 골회를 받아서 산이나 강물에 뿌리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런 경우를 습관적으로 골회를 버린다고 말하며, 이런 경우에는 상관제사를 지내지 않아도 되지 않느냐?고 문의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우리는 그런 경우일지라도 골회를 버린다고 하면 틀리는 말이며, 역시 특종의 안장형식으로 보아야 하며, 될수록 상례에 따른 안신제, 소상, 대상 등 상관 제사를 지내야 한다고 권장합니다.
세번째 부분: 제사(祭祀)
제사에는 제사통용규범, 제사상, 지방, 축문, 만가, 안신제, 소상, 대상, 사갑제, 청명제, 추석제 … 등 내용들이 있습니다.
현재 조선족 제사에서 지켜지는 것이 많지 못합니다. 중국조선족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한족들의 영향을 받아 장례와 제사에서 일률로 세번절을 하여 왔는데, 우리는 중국의 특성을 고려하여 그대로 따르기로 하였습니다.
그리고 지방, 축문, 만가 등 형식도 이미 자취를 감춘지 오래 되였으나, 우리가 지금 점차 회복시키는 과정에 있습니다.
 
맺는말
 
문화에는 국계가 없습니다. 조선족 상례문화의 근원은 고국에 있습니다. 고국의 유구한 전통상례문화가 없었더라면, 오늘 조선족 상례문화도 있을수 없습니다. 세월이 가고 국적은 변했지만, 조선족 상례문화는 역시 고국 상례문화의 일부분입니다. 중국에서 조선족이 자기의 특색을 확보하려면 반드시 고국과의 전통문화 동질성을 확보해야 합니다. 조선족 전통상례문화가 고국 전통상례문화와의 동질성을 확보하려면 고국으로 부터 필요한 영양분을 끊임없이 흡수해야 하며, 고국의 관심과 보살핌이 절실히 수요됩니다. 지금 중국은 급속도로 발전하여 바야흐로 미국을 따라가고 있는데, 언젠가 중국조선족들도 고국을 위하여 많은 유익한 일들을 할수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 연대성을 가강하고, 공동히 노력하여 우리민족의 우수한 전통문화를 온 천하에 빛내입시다.
 
중국길림성 연변조선족례의연구회 회장
무형문화재《조선족 상례풍속》전수인대표 현용수 발표
한국경산영남대학에서
2014년11월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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