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두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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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 못한 한마디(수필)
2018년 01월 13일 08시 24분  조회:872  추천:0  작성자: 허두남
하지 못한 한마디
허두남
   

누구나 세상을 살아가노라면 더러 거짓말을 할 때가 있을 것이다. 나 자신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지금까지 거짓말을 적지 않게 하였다. 남들은 나를 고정하고 거짓말을 할 줄 모른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전면적인 평가가 못된다. 필요할 때 나는 서슴없이 거짓말을 하며 또 거짓말을 하고도 크게 자책을 느끼지 않는다. 이렇듯 정직, 성실과 순결이 ‘어지럽혀’진 나지만 일생에서 처음으로 거짓말을 한 그 일만은 두고두고 잊혀지지 않는다.

내가 태여난 고향마을에서 령 하나 넘으면 아늑한 작은 벌이 있는데 너메라고 불렀다. 너메의 버들방천 뒤에는 키가 크고 가지가 양산처럼 퍼졌으며 잎이 아이들 손바닥 만큼 넙적넙적한 뽕나무가 여덟그루 줄지어 서있었다.

우리 마을 아이들은 여름이면 자주 너메에 가서 뽕나무에 열린 오디를 따먹군 했다. 지금 오디를 먹어보면 달기만 하고 딸기 같은 새콤한 맛이 없어서 별루이지만 그때의 나에겐 세상에 오디처럼 맛있는 것이 다시 없을 것 같았다. 그것은 어머니가 벌건 수수엿을 이리저리 늘이여 하얗게 만든 다음 토막토막 끊어놓은 것보다도 더 맛있었다.

여덟살 되였을 때일 것이다.

그날 나는 동갑친구 영준이와 함께 너메로 오디 따먹으러 갔다.

뽕나무 밑에 이른 우리는 제일 첫머리리에 서있는 나무의 낮은 가지에서 잘 익은 까만 오디들을 따먹기 시작했다. 말랑말랑한 오디는 입안에 향기를 가득 채우면서 스르르 녹는다. 우리는 두 손으로 부지런히 오디를 따서 입안에 쓸어넣었다. 서로 내가 딴 걸 보라고 소리치고 자기가 더 큰 걸 땄다고 자랑을 하면서.

눈이 아홉이 되여 익은 오디들을 찾아 따먹던 우리는 서로 마주보면서 깔깔 웃어댔다. 입술에 까만 오디물이 가득 묻었을 뿐만 아니라 이발까지 까맣게 물들었다. 네가 내 거울이고 내가 네 거울이였다.

오디를 어지간히 먹은 우리는 가지고 간 밥곽에 따 담기 시작했다.

오디는 익지 않았을 땐 파랗고 절반쯤 익으면 빨갛고 잘 익으면 새까만데 키가 닿는 가지에는 까만 오디가 더 보이지 않았다. 머리를 젖히고 올려다보니 높은 가지에는 파란 뽕잎 사이사이 까만 오디들이 여기저기 보였다. 까치발을 하고 손을 뻗쳐도 선자리에서 폴짝폴짝 토끼뜀을 하여도 손이 닿지 않는 오디들, 그야말로 그림의 떡이요 눈에만 풍년이였다.

“야, 영준아 여기로 오나.”

저켠 뽕나무 우에서 누군가 소리치기에 나와 영준이는 그곳으로 달려갔다.

뽕나무 우에서는 칠복이(그는 그때 열대여섯살 되였는데 영준이와 친척간이다.)가 오디를 따먹고 있었다. 칠복이가 올라간 나무는 다른 나무보다 키도 크고 아지도 많이 퍼졌는데 얼핏 보아도 먹음직하게 잘 무르익은 까만 오디들이 많았다.

“야, 내 나무가지를 흔들게 넌 떨어지는 오디를 주어먹어라”

굵은 나무가지를 가로타고 앉은 칠복이는 손을 뻗어 옆에 있는 나무가지를 잡더니 힘껏 흔들어댔다. 그러자 누에번데기처럼 생긴 까만 오디들이 우박이 떨어지듯 후둑후둑 떨어졌다. 나와 영준이는 너무 기뻐 우야! 소리 치면서 무릎걸음으로 오디를 줏기 시작했다.

“야, 영준이를 주어먹으라 했지 누가 널 먹으라 했니?”

칠복이가 나에게 꽥 소리쳤다.

나는 오디를 줏던 손을 멈추고 칠복이를 올려다보았다.

“넌 내 떨군 걸 먹지 말라.”

칠복이가 다시 소리쳤다.

나는 어찌도 억울하고 서러운지 단통 눈물이 왈칵 쏟아져나왔다. 선자리에서 입을 비쭉거리며 울음을 터뜨린 나는 밥곽에 주어담았던 오디를 활 쏟아버리고 잉잉 울면서 집으로 가려 했다.

“야, 가지 말라! 같이 주어먹자!”

영준이가 내 팔을 꽉 붙잡으며 말렸으나 나는 기어이 뿌리치고 집으로 향했다. 그때 얼마나 서러웠던지 여러번이나 칠복이가 오디를 못 주어먹게 하는 꿈을 꾸군 했다. 만약 칠복이가 가지 말라고 말렸더라면 틀림없이 팔소매로 눈물을 이리저리 쓱쓱 닦고 다시 영준이와 같이 오디를 주어먹었을 것이다. 하지만 칠복이는 가지 말라는 말도, 오디를 주어먹어도 된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2리가량 거의 되는 길을 내처 울면서 걸었다. 집에 닿게 되였을 때에도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 내가 흑흑 울음마디를 꺾어삼키며 마당에 들어서자 줄낚시를 손질하고 있던 큰형이 왜 우는가고 물었다.

나는 칠복이가 오디를 못 주어먹게 하더라고 말하자니 어린 마음에도 뭔가 모자라는 감이 들었다. 그래서 거짓말을 보태 대꾸했다.

“내 오디를 주어먹는다구 칠복이 때렸소”

이것이 오늘까지 기억에 남아있는 내가 한 첫 거짓말이다. 그전에도 거짓말을 한 적이 있는 지 모르겠지만 마음 먹고 꾸며댄 거짓말로는 이것이 처음인 것으로 기억된다.
"뭐, 칠복이가...?"
"응, 자기기 떨군 오디를 주어먹는다구 때렸소. 영준이는 주어먹게 하구 나는 못 먹게 하면서"
"그 크다만 눔아 조그만 애들을 때린단 말이... 내 이제 만나면 혼내줘야겠다."

뒤에야 안 일이지만 큰형은 정말 칠복이를 만나 닦아세웠다. 칠복이는 절대 안 때렸다고 펄쩍 뛰였지만 큰형은 “조끄만 애가 거짓말하겠니?” 하면서 한바탕 톡톡히 훈계했다고 한다.

나는 칠복이가 욕을 먹어도 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일이 늘 마음에 걸렸다. 언젠가 큰형과는 그때 내가 칠복이에게 맞지 않았다는 것을 실토정했지만 칠복이와는 그날 내가 거짓말했다는 것을 말하지 못했다. 칠복이가 나를 보면 무슨 말을 할듯 할듯 하는 것을 보면 그 일 때문이겠구나 생각하면서도 어린 마음에 죄 진 일을 들킨 것 같아 종시 말을 할 수 없었다. 한편 칠복이도 큰형에게 욕을 먹었을 뿐 맞지 않았다는데 뭐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칠복에게 끝내 사실 대로 말하지 못하고만 것은 오래지 않아 그와 영 갈라졌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않았더면 여러해 뒤에라도 꼭 털어놓았을 것이다.

얼마 뒤 칠복이는 조선으로 이민갔는데 지금껏 나는 그를 만나지 못했다. 그가 아직도 살아있는지 모르겠다. 그때 나와 함께 오디 따먹으러 갔던 동갑친구 영준이도 저세상 사람이 된 지 몇해 되는데 우리보다 여러살 더 많은 그가 살아있으리라고 어찌 장담할 수 있으랴! 더군다나 수십년 동안 고생을 겪을 대로 겪었을 텐데… 만약 살아있다해도 몰라보게 폴싹 늙었겠지. 나도 나이를 먹고 마음이 약해져서인지 세월이 갈수록 그가 자꾸 생각난다. 이제라도 만나면 이미 백발이 되였을 그에게 그때 내가 거짓말을 했댔다고 꼭 말하고 싶다. 내 잘못도 털어놓고 그때 내가 얼마나 서러웠던지도 하소연하련다. 세월은 반세기도 넘게 왔고 그는 언녕 잊어버린지도 오랠 일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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